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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었을까요. 1996년 K-리그 데뷔 이후 줄곧 수원에서만 뛰었던, 그리고 지금도 뛰고 있는 원클럽맨 이운재의 은퇴 경기는 수원의 홈구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이것 역시 운명이었을까요. 전반을 무실점으로 마감하며 슈퍼 세이브를 보고 싶었건만 전반 26분 나이지리아에 1골을 내주며 바로 정성룡과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전반 중반 교체되면 보통은 벤치에 앉아 경기를 보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운재는 곧바로 락커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웬지 눈물을 속으로 삭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맺히는 눈물을 보여주기가 싫어 락커룸으로 가고 있다고, 그의 뒷모습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축구를 보았던 제게, 이운재는 언제나 국가대표팀 골키퍼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서 정성룡이 주전자리를 꿰차고 나왔을 때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겠지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고요.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운재는 이번 나이지리아전까지 17년 간 붉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A매치 공식기록은 132경기 114실점. 홍명보 감독(136경기)에 이어 최다 A매치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국내 GK로서는 최초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며 화려하게 빛났었죠.

1994년 월드컵 독일전에서 하프타임에 교체 출전해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데 이어 2002년과 2006년, 2010년 이렇게 4번의 월드컵을 대한민국 대표선수로서 치렀습니다. 2000년과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대한민국을 3위로 이끌기도 했고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이운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 다들 같을 것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내고 씩 웃던 장면이요. 제가 기억하는, 이운재의 가장 섹시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는 이란과 8강전에서 마다비키아의 승부차기를 막아내 대한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고 3-4위전에서는 일본의 여섯 번째 키커 하뉴의 슛을 선방해 3위 트로피를 조국에 안겼죠.

위기의 순간마다 대한민국을 승리로 이끈 해결사 수문장이었지만 관심과 사랑이 컸던 만큼 비난과 구설수도 많았습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때아닌 몸무게 논란이 일어 ‘돼운재’라는 별명과 함께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 영웅이 되어 돌아왔지만 뒤늦게 음주사건이 터졌고 대표팀 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로서 서는 마지막 순간 이운재는 행복했다고 소회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뛰어서,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습니다”라고요.

이제 파주에 소집돼 훈련을 소화하는 것도, 대표팀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 것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겠죠. 파주 가는 길도 며칠 전 그 길이 마지막 길이 되었죠. 그는 애써 참았지만 우리는 보았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던 그 순간 이운재가 흘린 눈물을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7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대표로 뛴다는 건요.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했겠죠. 하지만 그 세월동안 늘 몸무게 논란이 꼬리표처럼 이운재를 따라 다녔고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라는 조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가 17년 간 대한민국 골문을 책임질 수는 없었겠죠. 그 중압감에 무리한 다이어트로 2년간 결핵을 앓아야만 했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건너 뛰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얼마 전 수원에서 함께 뛰고 있는 한 선수가 제게 그랬습니다.

“운재 형을 보면 정말 안스러워요. 워낙에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식사시간에도 마음 놓고 밥을 못드세요. 저희가 먹는 딱 절반만 식판에 올려놓고 먹는 거 보면 저렇게만 먹고 배가 찰까?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데, 그런데도 형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시는 거 있죠.”

국가대표 선수라는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았습니다. 물론 당분간은 K-리그에서 당신을 볼 수 있겠죠. 여전히 수원맨이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은 가져도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 먹고 싶은 음식들, 조금씩 드셔보세요. 여자 주먹만큼만 밥 먹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요.

마음껏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밥 먹는 이운재,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대한민국 골문을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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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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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강원FC와 전남드래곤즈가 전지훈련 중이던 중국 쿤밍을 취재 차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그날은 전남 선수들이 쉬는 날이라 친하게 지내던 대학 후배를 만나기 위해 전남 선수들이 숙소로 쓰고 있던 호텔에 갔죠. 호텔 야외 벤치에 앉아 한국서 공수해온 커피믹스를 타서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질 시간이 됐습니다. 택시를 잡기 위해 나오는데 외출 나갔던 전남 선수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라고요.

여러명의 선수 중 제가 아는 선수는 왼쪽 풀백 젊은 피 윤석영 뿐 죄다 모르는 얼굴이라서 후배에게 전남 신인들이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후배는 저 키 큰 선수 모르냐며 슈퍼신인 지동원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호들갑을 떨더군요. 후배의 마지막 말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지금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곧 주목할 수 밖에 없을 거야. 후배는 제게 그렇게 말했죠.


지동원을 다시 만난 건 3월 28일 강원 대 전남 경기에서였습니다. 당시 지동원은 전반 1분만에 골을 기록했는데요, 그때 뭐 저런 신인이 다 있나 했습니다. 3-1로 앞서고 있던 후반 26분에는 도움도 기록했습니다. 아크 오른쪽에서 올려준 볼을 인디오가 잡아 팀 2번째 골을 성공했습니다. 3-2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아쉽게도 5-2로 패하면서 K-리그 데뷔골과 데뷔 도움 기록은 빛이 바랬죠. 그렇지만 19살 소년이, K-리그 5경기만에 순도높은 기록을 세운 건 정말 주목할만 했습니다.

이후 그를 다시 만난 건 6월 2일 컵대회에서였습니다. 이번에는 광양에서 열린 전남 대 강원의 컵대회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지동원은 또 골을 기록했지요. 후반 8분 정윤성의 크로스를 받아 팀 3번째 골을 성공했습니다. 2달 만에 만난 지동원은 어느새 K-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이었습니다. 187cm의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고 기본기도 탄탄했습니다. 보통의 장신 선수들은 보폭은 넓지만 스피드는 느리고, 발란스가 맞지 않아 키핑력이 부족하고 유연하지 못하여 수비수들의 부딪힐 때마다 쉽게 넘어지곤 하는데요, 지동원은 그렇지 않더군요.

몸싸움에도 능했고, 볼을 받고 돌아서는 움직임도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보는 내내 K-리그에 물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전남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경남과의 FA컵 16강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득점 날개까지 달았으니, 올 시즌 가장 주목할 만한 신인임은 틀림없습니다. 이쯤하면 신인왕도 탈 수 있겠지 싶습니다.

여기에 신인왕 도전장을 내민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조광래 유치원의 우등생 윤빛가람입니다. 올 초 K-리그의 이슈메이커는 경남FC였습니다. 탄탄한 수비 뒤에 정확한 패스웤을 바탕으로 경남은 역습에 능했고 무엇보다 루시오라는 결정력 높은 외국인 공격수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리그 1위까지 오르는 등 화제의 중심에 있었죠. 조광래 감독이 A대표팀에 승선한 이후 파괴력이 조금은 잠잠해진 듯 하지만 여전히 상위권(리그 3위)에 랭크돼있습니다.

지난해 K-리그 드래프트 현장에서 조광래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꽤 많이 받아야만 했습니다. 2순위에서 윤빛가람을 지명했거든요. 잊혀진 천재를 뽑은 이유에 대해 기자들은 굉장히 궁금해했죠. 당시 조광래 감독은 “빠른 패스워크 위주로 전개되는 경남의 플레이스타일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선수”라고 지명 이유를 밝혔습니다.


사실 윤빛가람은 2007년 U-17월드컵에서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대표팀이 소집할 때마다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윤빛가람에게만 쏠렸죠. 비가 내려 실내에서 진행됐던 포토데이 당일날, K-리그는 중계를 많이 해주지 않아 프리미어리그를 자주 보게 된다라고 말했는데, 기자들이 ‘중계를 많이 해주지 않아’라는 말은 쏙 빼고 “K-리그보다는 프리미어리그를 즐겨봐”라고 기사를 전송했지 뭡니까. 덕분에 ‘악플만 백만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등 대표적인 ‘밉상’선수로 낙인 찍히고 말았죠.

U-17월드컵 조별리그 토고전에서 역전골을 터뜨렸지만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었고 이후 블랙번으로 진출하겠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마저도 흐지부지 된 듯합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유럽 중소클럽들을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가 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나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서 조광래 감독과의 만남은 그에게 제2의 축구인생을 열어준 ‘전환점’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는 빠르고 정확한 패스워크 아래 이뤄집니다. 공격축구를 구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수비축구입니다. 수비를 탄탄히 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흐름대로 경기를 끌어가며 공격을 감행합니다. 무엇보다 수비안정이 중요하고 미드필더, 공격수에게도 수비가담을 요구하죠.

조광래 감독 밑에서 뛰는 동안 윤빛가람은 ‘예쁘게 공을 차던 아이’에서 정확한 패스로 게임을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로서 성장 중입니다. 19경기에서 벌써 5골 4도움을 기록하며 골과 도움 모두 고르게 관여하며 어엿하게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재밌는 건 지동원도 19경기 출장 6골 3도움을 기록하며 윤빛가람과 똑같은 공격포인트(9)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스트라이커와 미드필더를 비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죠. 특히나 지동원 같은 파괴력 있는 스트라이커의 경우 더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 없이 강한,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살림꾼 미드필더인 윤빛가람의 경우 조광래 감독의 축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선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표팀에서만큼은 지동원보다 더 밝게 빛날지도 모릅니다.

K-리그에서 시작된 신인왕 경쟁이 국가대표팀에서는 어떻게 진행될지, 앞으로가 상당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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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세상에 바뀌었다는 건 날이 가고 해가 갈 때마다 느낍니다. 트윗 상에서 내가 작성한 단문메시지가 나를 팔로우한 사람들의 핸드폰으로 전달되는 것도 신기하고 핸드폰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영상통화를 하는 것도, 제게는 참 신기한 세상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막연히 과학글짓기 대회 때, 수상을 목적으로 상상하여 적었던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 살게 됐으니까요.

몇년 전 커밍아웃을 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던 홍석천을 보며 왜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으며 눈물을 흘려야했을까, 했는데 이제는 다시 공중파에서 볼 수 있게 됐고 또 동성애가 주말 드라마 소재로도 나오니, 조금은 세상의 인식도 과학 못지 않게 바뀌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축구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나 세상 모든 스포츠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나 축구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지는 -축구를 하다 답답해도 그 공을 들고 뛰며 럭비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럭비에도 관심이 많아요. 6년 전 럭비월드컵을 취재하러 갔을 때 영국 럭비대표팀 선수에게 이번 대회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의 플레이를 보고 반했다며 흥분하자 그 선수는 한쪽 입술을 올리며, 그러니까 썩소를 지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호주랑 뉴질랜드? 걔네 절반 이상이 게이야. 그래서 난 그쪽 나라 팀이랑 경기하는 게 정말 싫어. 럭비는 종목 특성 상 뒤엉키며 싸워야하는데, 게이랑 뒹굴면서 뛰어야하다니! 너무 더러운 거 아니야?"

단순히 라이벌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되는 억지논리를 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2008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동성애자 선수에 대한 뉴스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죠. 당시 로이터통신이 동성애자 웹사이트 조사를 통해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1만 여명의 선수 중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선수는 15명이라고 발표했지요. 그중에 9명이 여성이었고 남성은 단 1명, 호주 대표팀의 다이빙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실제 동성애자 선수는 1천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맺음 때문이었죠. 그 기사를 읽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포츠 선수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기란, 쉽지 않겠죠. 동성끼리 경쟁해야하는데, 동성을 사랑하는 선수라면. 개인 스포츠가 아닌 단체 스포츠라면, 함께 뛰는 선수들이 과연 그 선수를 팀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선수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앞서 언급한 호주 대표팀의 다이빙 선수는 매튜 미참 선수입니다. 그는 당시 베이징올림픽에서 다이빙 남자 10m 플랫폼에서 호주에 금메달을 안겨주었죠.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며 했던 말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호주의 다이빙 선수로 알려지길 원한다. 내 삶에서 동성애와 다이빙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라고요. 동성애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성적 취향이고 이것과 스포츠선수로서 임하는 태도는 별개의 문제라고 세간의 관심에 딱 잘라 말했죠.

최근에 다시 한번 스포츠와 동성애가 이슈에 올랐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불의의 부상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한 발락의 에이전트가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 독일 대표팀을 'bunch of gays'라고 말했거든요. 해석하자면 게이소굴 쯤 되는데, 이 같은 발언을 한 미하엘 베커는 1999년부터 발락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으니, 독일에서는 나름 슈퍼 에이전트로 분류되는 사람이죠.

미하엘 베커는 이번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독일 대표팀 중 일부 선수들이 동성애자라는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전 독일대표팀 선수는 이 같은 사실을 밝히려고 했는데 문제의 그 선수는 바이(양성애자)였다고 하네요. 뭐, 사실 중년도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며 훈남 감독 대열에 오른 요아힘 뢰브 감독도 월드컵 기간 중 동성애 소문이 돌았는데요 -남다른 패션 센스도 그의 게이설을 뒷받침한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 그 때문인지 부인과 찍은 사진을 몇 장 공개하기도 했죠. 사진 속 뢰브 감독 와이프는 약간 후덕한 중년의 독일 아줌마 포스를 마구 뿜아내고 있어, 저도 그 사진을 보며 이 아주머니는 전생에 도이칠란드를 구했나, 하는 생각도 했더랬죠.
사랑에 있어 신분과 국경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평소 생각하며 살아온터라 성별 역시 전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 역시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성애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동성애를 버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하지만 난 동성애자인걸, 이라고 인정하기까지 쉽진 않았겠죠. 그래서 저는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더럽다며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만, 종교적 관점에서 생각하더라도 그 역시 조물주가 만든 소중한 생명체이고, 존중받을 권리는 당연히 있습니다. 돌은, 그렇게 쉽게 던지라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가끔 국내 프로축구 선수는 모두가 이성애자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있어도 부정하고 말 못하는 게 아닐까,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감추고 이성애자의 가면을 쓴 채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아주 가끔 품어본 적도 있고요.

몇년 전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선수였고, 그래서 인터뷰를 꽤 여러번 했기에 안면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조금은 편하게 축구가 아닌 다른 이야기도 하는 사이였거든요. 기자 대 선수가 아니라 다른 국적을 지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요. 그때 그 선수가 해준 이야기가 자신의 팀에 있던 코치가 양성애자였다는 겁니다.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양성애자였기에 동성에 대해 남다른 사랑의 감정도 꽤나 깊게 느꼈나봐요. 그걸 선수들도 조금씩 눈치챘는데 어느 날 락커룸에 앉았는데, 새로 들어온 이적선수 옆에 꼭 붙어 앉자마자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무릎과 허벅지를 만졌다지 뭐에요. 축구는 몸으로 부딪히며 하는 스포츠일 뿐 아니라 심장박동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흥분도, 열기도 대단한 스포츠고 또 무엇보다 팀 스포츠다보니 선수들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역시 남다르죠. 동료 선수가 골을 터뜨릴 때마다 얼싸안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곤 하는데, 때론 이게 남다른 애정표현처럼 보여 관련 사진들을 모아서 커플로 엮어 글을 쓰는 블로거들도 있죠.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는 기청용(기성용-이청용의 합성어, 브란젤리나 같은 합성어로 생각하면 되겠죠) 커플이 가장 유명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

어쨌거나, 그게 좀 파급이 셌나봅니다. 코치의 동성애적 기질을 선수들도 느꼈는데, 새로운 선수가 오자마자 직접적인 터치가 오가는 모습을 선수들이 목격했으니, 팀이 어수선할 수밖에요. 그래서 결국엔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고 하네요. 외국에선 동성애가 국내보다 관대한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스포츠계에서는 더 보수적인 것 같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선수들은 K-리그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잔다르크가 아닌 이상 성정체성 증명보다는 스포츠인으로서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선수들이 대부분, 아니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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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에서 멋진 프리킥 골로 우리의 새벽을 뜨겁게 만들었던 박주영 선수가 프랑스로 출국했습니다. 8월부터 다시 시작되는 프랑스리그를 준비하기 위해 떠났는데요,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 생각했지만 현장에서 취소됐다는 소식만 전해졌습니다.

당초에는 출국 전 스탠딩인터뷰가 준비돼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건 최근 그를 둘러싼 뜨거운 감자, 다름 아닌 ‘결혼설’ 때문이었죠. 프리미어리그 빅클럽으로의 이적설에 이은 결혼설이라.

인터뷰 없이 굳은 표정으로 출국한 박주영 선수.

축구선수 박주영이 아닌 인간 박주영으로서, 그러니까 축구가 아닌 것들로 관심을 받는다든 사실에, 박주영 선수는 늘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늘 축구 이외의 것들에도 관심을 갖곤 하죠. 대중의 관심이 그렇다는 이유 아래서 말이죠. 그래서 그는 늘 미디어 앞에서 말을 아낍니다.

이번엔 참 갑작스럽게 결혼설이 터졌습니다. 서울 강남의 모 웨딩 전문 스튜디오에서 여자친구와 웨딩촬영을 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부터였죠. 마침 그때 즈음 치렁치렁,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한, 이마를 덮은 덥수룩한 머리가 예쁘게 다듬어졌고 살짝 펌도 들어갔더라고요. 기자들은 웨딩촬영용 머리라며 수군수군 댔죠.

결혼임박 기사가 나온 이후로 줄줄이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날 박주영의 에이전트는 핸드폰을 끄고 잠적했다는 사실이죠. 그런데도 출처도 없는, 또 박주영의 측근 혹은 지인이라는 내용으로 기사들이 쏟아졌는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측근 중 기자와 통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박주영 선수와 그의 여자친구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요. 박주영의 여자친구는 “나 결혼해?? 양가 엄마 아빠 나 쭈가 날짜도 모르고 장소도 모르는데.. 그들에 의하면 우리가 결혼하는구나”라는 글을 올려 황당한 심기를 드러냈고요.

사실 박주영 선수는 그날 정몽준 회장이 초청한 월드컵 16강 기념 만찬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었는데, 기자들과의 만남이 불편했던지 갑작스레 불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출국을 앞두고도 스탠딩인터뷰를 취소했고요.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이게 왜 기자들의 취재거리가 되야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도, 또 그의 대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에이전트도 노코멘트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전 이번 박주영 선수의 결혼설을 보면서 일단 제대로 된 취재 없이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받아쓰고 돌려쓰는 기자들의 모습에 적잖게 실망했습니다. 일단 쓰고 보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워낙에 팬들의 관심 역시 컸으니까요.

일련의 보도들에 지친 박주영 선수의 여자친구가 미니홈피를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 몇몇 사람들은 공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경솔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카더라 통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혼설과 관련해 마구잡이로 써내려간 기사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쨌거나 이렇게 사건은 이렇게 터져버렸고, 제가 만약 박주영 선수의 에이전트라면 핸드폰을 꺼버리는 대신 공식입장을 발표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세간의 관심은 박주영 선수의 결혼으로 향했고, 무작위로 써내려가는 기사를 막을 순 없을테니, 오히려 공식입장을 프레스에 전달해 정확한 이야기가 기사로 써내려가게 하는 거죠.

결혼을 한다면 지금의 여자친구와 하겠지만, 당장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등의 내용으로 말이죠. 추측성 기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박주영 선수 결혼설과 관련해 모두의 대처방식이 상당히 아쉬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개인사가 아닌 그의 축구사, 기왕이면 화려한 골들로 빛나는 축구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싶군요. 우리들의 축구천재, 박주영 선수의 새 시즌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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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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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지인들에게 그래도 월드컵 우승팀을 알겠지, 라는 생각에 이번 월드컵 우승팀을 물어보니 역시나, 정답을 빗겨난 대답들뿐이었습니다. 유로2008 당시 앙리 들로네컵에 이어 이번에는 월드컵까지 거푸 들어 올린 무적함대 스페인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먼나라 이야기였죠.

하나 우승팀 스페인은 몰라도 파울은 알더군요. 반칙의 영어 표현 Foul이 아니라 점쟁이 문어 Paul의 이야기입니다. 축구에 관심 없던 지인들도 파울이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경기 승패를 모두 맞힌 게 참 신통하다며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군요.

독일에서 살고 있는 2살 반의 문어 파울은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의 7경기와 스페인-네덜란드의 결승전까지 맞추며, 무려 8경기의 승리팀을 정확하게 예측한 덕분에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큰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사실 승패를 고르는 건 2분의 1의 확률이지만 8경기를 연속으로 적중시키는 확률은 256분의 1로 확 떨어집니다. 프로토의 달인이라도 8경기 연속은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문어 파울은 참으로 신통하게도 해냈습니다.

무엇보다 파울이 더욱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건 금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점친 펠레의 예언을 이겨냈다는 것이었죠. 알다시피 펠레는 늘 16강 진출팀을 시작으로 우승팀까지 매번 월드컵에서 열심히 지목하고 ‘설’을 풀어내지만 ‘펠레의 저주’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가 지목한 팀은 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경기에 패하며 서둘러 고국행 비행기를 타야했거든요.

그런데 파울도 스페인을 우승국으로 지목했고 펠레도 지목했습니다. 결국 파울의 예지력이 펠레의 저주를 이겨낸 셈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더 열광했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며,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편으론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선수가 스타가 아닌 동물이 스타가 된 월드컵이라뇨.

별들의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별보다 빛났던 스타의 쓸쓸한 뒷모습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신예의 비상에 박수쳤습니다.

그러나 유독 이번 월드컵만은 조용하네요. 남아공월드컵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거 예상했던 메시와 호날두는 침묵했으며 카카 역시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수아레즈의 신의 손 사건은 마라도나만 못했죠. 비야와 스네이더는 유로2008만 못했고요 외질과 뮐러, 수아레즈 역시 스타성에서는 2%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앙리와 오언이 외려 더 강렬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최다골 2위에 오른 클로제도 호나우도의 아성을 이겨내진 못했고요 근래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월드컵 스타 지단과 칸나바로만큼 빛을 발한 선수 또한 없었고요.

어쩜 빅클럽들간의 대항전, 챔피언스리그의 바쁜 일정 속에서 지칠 데로 지친 스타들에게 이번 월드컵은 고난의 행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쉴 틈 없이 바로 월드컵이 이어졌으니 팬들의 기대만큼 기량을 보여주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 언젠가 마라도나가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 중에 했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축구를 했다, 라고요.

오늘날의 축구판은 빅클럽들의 선수영입 경쟁으로 뜨겁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계적인 선수들의 몸값은 자신들이 가진 기량을 넘어서 이미 천문학적으로 올라만 가고 있고요. 빅클럽들은 그 싸움에 이기기 위해 더 크게 옵션을 걸고 베팅을 합니다. 뷰티풀게임에서 머니게임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축구란... 본질은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는 것만 같아 서글퍼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네요.

바라옵건대, 4년 뒤에는 진짜 축구를 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월드컵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마라도나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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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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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요르단과의 A매치가 끝나고 믹스트존에서 만난 기성용 선수에게 넌지시 물어봤죠. 그날 그의 단짝 이청용 선수가 데뷔골을 기록했는데 부럽지 않냐고요. 멋적을 때면 늘 고개를 살짝 위로 올린 채 수줍게 웃던 그는, 역시나 그 질문에 대답할 때도 천장을 바라보며 웃더군요. "너무 부럽죠"라면서 말이죠.

데뷔전도, 데뷔골도 늘 청용이가 빠르다며 아쉬워했던 기성용 선수. 그런 그가 북한전에서 홍영조의 PK골로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23분 김두현의 패스를 그대로 오른발 발리슛으로 성공시키며 한국에 동점골을 안겼습니다. 본인에겐 A매치 데뷔골이었죠. 그것도 2경기 만에 얻은 성과니 실로 값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요르단전에 이어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던 북한전까지. 허정무 감독은 기성용 선수에게 '공격적'으로 뛸 것을 주문하는 듯 했습니다. 특히 요르단전 때는 후반 말미 기성용 선수가 뛰던 공간은 거의 스트라이커와 다름없는 위치에 있었죠. 결국은 그의 공격적 움직임이, 찬스를 놓치지 않던 집중력이 벼랑 끝에 있던 한국대표팀을 구해냈군요.

북한전이 끝난 후 지인들에게서 꽤 연락이 왔습니다. 동점골을 성공시킨 저 샤방한 선수는 누구냐면서요. 경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성용 선수는 축구선수(?) 답지 않게 고운 외모를 자랑합니다. 피부도 얼마나 좋은지 볼 때마다 저는 부럽습니다. 햇볕 아래서 뛰는 선수가 어떻게 여자인 나보다 피부가 더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죠.


그랬던 기성용 선수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도움을 2개나 기록하는 등 날카로운 킥력을 선보이며  대한민국의 원정 첫 16강 진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청용 선수 못지 않게 화제의 중심에 오른 기성용 선수. 모델보다 더 모델 같은 외모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엄친아로 등극한 그와 진행했던 화보사진을 살짝 공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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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 촬영은 이청용 선수와 함께 했는데, 촬영 내내 두 선수가 티격대격하더군요. 배고플까봐 준비한 김밥을 내왔을 때 '빵'만 좋아하는 이청용 선수가 극구 사양하자 성의를 생각하면 먹어야되는게 아니냐며 화를 버럭내던 기성용 선수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답니다. ㅋ

늘 예의바르고, 또 수줍음도 많지만, 할 말은 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는 기성용 선수. 그 모습을 지금처럼, 또 언제나처럼 간직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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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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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3일. 올림픽대표팀이 일본과의 친선경기를 하루 앞뒀던 그날, 훈련장에서 정성룡 선수를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정성룡은 포항에 적을 두고 있었고, 플레이오프에서 수원에게 아쉽게 패한 뒤였죠.

“괜찮아요. 언제까지 그 게임만 생각할 수 없잖아요. 수원에게 진 건 마음 아프지만 이제 다음을 준비해야죠. 물론 아쉬운 마음은 조금 있지만요. 아직까지 한 번도 우승이란 걸 해보지 못해서 욕심은 있었어요. 작년 2군리그에서도 4강에서 떨어졌거든요. 그렇지만 올해 처음 1군에서 뛴 거잖아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에요.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제 막 시작했다, 며 예의 변함없던, 그 느릿느릿한 말투로 담담히 속 이야기를 털어놨던 정성룡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포항에 왔을 때만해도 2군에서 게임 뛰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김)병지 형이랑 (조)준호 형도 있었고, 저까지 합해 골키퍼가 5명이나 있었거든요. 전 그저 형들 게임하는 거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건요, 그가 결국엔 꼭 4년 전 제게 말했던 그 꿈을 이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제가 원래는 스위퍼였는데 중2 때부터 골키퍼로 뛰었거든요. 그때가 마침 프랑스월드컵 기간이었는데, 네덜란드전에서 보여줬던 병지 형 모습에 반했어요. 우리나라가 5-0으로 졌지만 형의 움직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때부터 좋아하게 됐어요. 그 후 제주도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제주도에서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가 열렸어요. 그때 볼보이한다고 골키퍼 뒤에 있었는데 그 골키퍼가 병지 형이었어요. 평소 존경하던 선수가 바로 제 옆에서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다고 다짐했죠. 열심히 해서 꼭 형처럼 국가대표 골키퍼가 되겠다고 제 자신과 약속했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형이랑 같은 팀에서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그게 더 운동에만 전념하게 된 계기가 됐고요.”

그날 정성룡이 해줬던 이야기 중에는 가슴 아픈 가족사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체구는 크지만 눈이 참 슬퍼 보인다고, 눈물이 많은 사람 같다고 말이죠.

“눈물이요? 원래는 많았어요. 음… 많았는데…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그날 다 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눈물이 안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서귀포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요. 저 혼자 제주도로 갔어요. 부모님은 분당에 계셨고요. 그런데 제주도 간지 얼마 안돼서, 그러니까 막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께서 저희 집에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따라 갔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하시더니 저를 장례식장으로 데려가시더라고요.”

“음… 원래 몸이 안 좋으셨는데… 갑작스럽게… 그러니까 참으로 갑작스럽게 그렇게 떠나셨어요. 그날 병원 뒷길에서 엉엉 울었어요. 한참 울다 이제 내가 가장이니까 강해져야겠다. 성공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프로 갈 때만해도 계약금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계약금 받은 걸로 어머니께 집도 사드리고, 빚도 갚았어요. 음… 그렇지만 그걸로 효도했다 생각하진 않아요.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죄송한 마음뿐이거든요. 늘 제 뒷바라지만 하셨어요. 그런데도 전 항상 제 생각만 했고요. 용돈 달라고 떼도 많이 쓰고.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는 참 강한 분이세요.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렇겠지만요.”

어떻게 보면 청소년대표팀을 거쳐 올림픽대표팀, 그리고 이제는 국가대표팀까지. 이 정도만 듣다보면 엘리트코스만 밟은 신의 아들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004년과 2005년 박주영의 유명세 때문에 유독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청소년대표팀에 몸을 담고 있었을 때는 차기석의 그늘에 가린 2인자였습니다. 프로 데뷔전도 입단 3년 만에 치러야 했으니 꽤 늦은 셈이었죠.

“항상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기회는 오니까. 그런데 자주 오지 않는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매일 준비하며 기다렸어요. 기분이요? 그냥 덤덤했어요. 아직 더 많이 경험을 쌓아야 하잖아요. 좋아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K-리그 데뷔전을 마친 소감이었는데요, 이번에 월드컵을 치르며 느낀 소감과 참 비슷하지요? 이때 정성룡은 A매치 데뷔전도 어서 빨리 치르고 싶다며 간절한 소망도 드러냈었죠.

“저도 A매치 뛰고 싶죠. 진짜. 뛰어보고는 싶지만 무슨 일이든 쉬운 건 없잖아요. 조금 더 노력하고 기다려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에 대표팀에 있으면서 쟁쟁한 선배들 밑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언젠가는 제게도 기회가 오겠죠. 어떻게 보면 아주 큰 경쟁의 장이잖아요. 그 경쟁 속에서 좋은 날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어야죠.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또 과감하게.”

지난 십년간 이운재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수문장 자리. 이번 월드컵에서 그는 그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결과에 상관없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그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두었겠지요. 어쩌면 은퇴하는 그날까지 그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연습에는 장사없다던 미니홈피 속다짐처럼 땀 흘리며 준비했겠죠.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정성룡 활약 영상>

“나이지리아전이 끝나고 16강을 확정짓던 순간 아버지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4년 전 꿈을 이룬 지금, 이제는 4년 후의 더 큰 꿈을 떠올립니다.

“열심히 했어요. 경기 내용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아쉽긴 하지만 아쉽다고 그 경기만 생각할 순 없잖아요. 이제 또 다음을 준비해야하죠.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다시 인사드릴게요.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17살의 봄, 엄마를 지켜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아직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소년은 그렇게 껍질을 벗고 채 자라지 않은 생살을 드러내며 세상과 싸웠고요. 그래서 꿈을 이룬 지금 이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럽게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지낸 세월의 굴곡만큼, 앞으로는 그의 말처럼 웃는 일들만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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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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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선수가 2006 독일월드컵을 마치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팀의 결과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정말 축구를 사랑한다면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그들이 걸어온 여정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볼 수도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박지성은 바로 그런 점에서 당시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거 같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대한민국은 사상 처음으로 원정에서 16강 진출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조금 더 맛보아도 좋으련만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의 열기가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정상에서 박수칠 때 떠나자가 이유였지만, 퇴임 기자회견 중 나온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했습니다.

“잘못해서 비판받는 건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인식공격성 댓글이 지나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힘들다. 조금은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허정무 감독은 인터넷 댓글을 안 본지 10년이 넘었다고 덧붙였죠. 10년 전 허정무 감독의 부친이 돌아가신 그때, 관련 기사에 달린 고인을 향한 악의적인 댓글을 읽고 허 감독은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전혀 댓글을 보지 않는다고 하니 당시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그랬기에 허 감독은 가족들이 더 이상 축구인인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는 일도, 아파하는 일도, 또 힘들어하는 일도 없기를 바랬겠죠. 영광의 순간을 더 만끽하고 싶은 마음도 컸겠지만 가족의 평화 역시 바라는 마음 역시 컸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퇴임을 결정하는데 또 다른 영향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허정무 감독의 부인 최미나씨도 최근 “가족들이 그동안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친분이 두터웠던 기자에게 속내를 비추기도 했으니까요.

아마도, 대다수 축구인들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겁니다. 몇 년 전 터진 기성용 선수의 미니홈피 사건이 문득 떠오릅니다. 당시 기성용 선수는 올림픽대표팀이 연일 졸전을 펼치자 급기야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악플을 다는 네티즌들을 향해 “답답하면 너희들이 축구하던지”라는 글을 메인화면에 쓴 적이 있었죠.

당시 언론과 팬들은 기성용 선수의 이러한 행동이 경솔했다며 몰아세웠습니다. 그때 전 기성용 선수가 K-리거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무명이었을 때 인터뷰를 한 덕분에 나름 안면이 있었습니다. 워낙에 애어른 같던 선수였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왜 그랬냐며 이것 또한 곧 지나갈 거니까 힘내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워낙에 안팎으로 부침이 심해 답장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침 답장이 왔더군요. 하고 싶은 말을 문자에 다 담기에는 부족했나봅니다. 그가 보낸 멀티메일 속 이야기를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축구를 못한다면, 저 하나만 몰아세우고 욕하고 비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왜 그들은 저희 아버지, 어머니를 거론하며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족들이 악플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들었어요. 제가 경기에 나서 기대에 못 미친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못했다고 제 가족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한 네티즌들도 어느 정도는 잘못하지 않은가요? 축구를 못해서 제가 마음에 안 든다면 저한테만 욕했으면 좋겠어요. 축구를 하면서 못해서 욕먹는 건 감당할 수 있어도 제 가족들이 저로 인해 상처받는 모습은 볼 수가 없어요.”

악플과의 싸움. 언제부턴가 축구선수들 역시 이름이 알려지고, 누구나 알만한 공인이 되면 언제고는 한번쯤은 치러야할 통과의례고 연례행사인 듯합니다. 인터넷의 시대는 그렇게 축구선수들에게 피하고 싶은 ‘태클’을 안겨주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 한일전에서 모 선수가 자살골을 넣었던 적이 있죠. 그때 그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가장 먼저 했던 게 뭔지 아시나요? 버스에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호텔 방까지 달려가 미니홈피 방명록을 닫았던 일이라고, 누군가가 웃으면서 해줬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그 선수의 나이는 겨우 스물셋. 어린 나이였지만, 감당하기 힘든 말들이 쏟아질 것을 알았던 거죠. 어떤 이들에게는 코믹한 상황으로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그 선수에게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 악담들을, 어린 마음에는 감당하기 힘들었기에 그는 스스로 방명록을 닫는 것을 택한 거죠.

차범근 감독도 얼마 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마이크로블로그에서 한 네티즌이 무릎팍 도사에는 출연할 계획이 없냐고 물었죠. 최근 팬들의 질문에 진솔하고 재치있는 답변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던 만큼, 무릎팍 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간 차범근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겠죠.

“우리 식구들이 남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맘 놓고 하기에는 아직 가슴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아... 아직도 우리식구들은 98년을 기억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화제에 올리질 않거던…

그때 배운 게 무고한 일로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지. 지난번 우리 범석이 일을 지켜보면서도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거던… 이런 일에 휩싸이면 우선 본인이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팀이 망가져버려.

98년 내가 할 때도, 최용수가 불교라서 안뛰게하고 기독교인 김도훈이가 대신 뛰어서 졌다고 우기는데 돌아버리겠더라고…… 사실 김도훈은 염주를 손목에 차고 다니는 불교신자고, 최용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는데 말이야… 황선홍 선수도 마지막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난감해 죽겠는데, 내가 황선홍을 시기해서 안 뛰게 한다는 거야.

문제는 이럴 때 기자들이 알면서도 입을 닫는다는 거야.

그때 한국축구가 좀 될려면 바로 이럴 때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구나 생각하기도 했어… 그 후 나한테 늘 미안해하던 최용수는 2002년 월드컵팀 고참으로서 팀 막내 두리한테 아주 잘해줘서 고마웠지.

팬들은 그럴 수 있어. 그러나 대표팀에 해가되는 오해나 억지는 적극 풀어줘야 팀이 건강하게 꾸려지는 거야. 나나 우리가족은 그때 받은 상처 때문에 여성지나 토크쇼에 단 한 번도 출연을 안 하고 있어

두리가 반박자 늦어서 골 찬스를 줬을 때 나는 숨이 멎는 거 같더라고. 온몸의 피가 쏵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물론 두리 , 이럴 때는 차두리 선수라고 불러야겠다. 차두리 선수 개인의 문제도 아버지 입장에서 걱정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리마저 주저앉으면 오른쪽이 없다는 거야.

우리 범석이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생각해 봤어? 어린 나이에 그런 중압감을 이겨내기가 쉽겠냐고!!!! 통화할 때마다 범석이 좀 잘 다독거리고 위로하라고 이르기는 하는데 핵폭탄을 맞은 상처가 쉽게 회복되겠냐고!!! 두리가 실수 이후에 그냥 주저앉아 버리지 않고 경기에 집중을 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은 했지

우리선수들도 다 여러분들의 동생이나 친구 같은 나이야. 아버지나 선생님한테 야단맞아도 슬프고 화나고 그러잖아. 그런데 융단처럼 쏟아지는 비난을 그 어리고 작은 가슴으로 받는다고 생각해봐. 나는 마음이 너무 아퍼.

두리더러 한번 안아주라고 하면 분명 지 힘자랑 하느라 헤드락을 걸어버릴테니 범석이가 더 힘들 거고....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미안해하자고. 오케이?”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의 요지는 허정무 감독의 사퇴 뒤에 악플이 직접적인 원인이었기에 반성하자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축구선수들이,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근거 없는 비난과 악플 때문에 힘든지를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최선을 다하더라도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넘어질 때도 있고요. 2등도 아닌 정상에 멀리 떨어진 채 서 있는 자신을 볼 때도 있습니다. 자신은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지요.

다시 시계를 돌려봅시다. 학창시절로요.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던데, 중간고사 성적 하나만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고 가치가 매겨지고 1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쓸 모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그런 경험을 다들 한번쯤은 해봤을 거라고 봅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우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단지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부적격자 취급을 받았고 부모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경우와도 만나야만 했습니다. 특히나, 너희 부모님이 너를 그렇게 가르치시던, 너희 어머니는 이런 너를 낳고 미역국을 드셨을까? 식의 발언을 들을 때면 정체감이 상실되다 못해 모멸감까지 느꼈을 것입니다.

많은 축구인들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10대 말에서부터 20대 중후반까지, 사회 초년생에 해당되는 어린 나이에 그들은 참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였으니까요. 단 한 번의 패스미스로 골을 헌납했으니까요. 무수히 많은 찬스를 허공에 날려보냈으니까요. 바보같이 자책골을 기록했으니까요. 쓸데없는 반칙으로 상대팀의 선제골을 도왔으니까요.

팀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크고 깊은 만큼, 선수들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팬들의 실망감 역시 큽니다. 그래서 더 비판하게 되고 쓴소리를 하게 됩니다. 압니다. 저 역시 그런 순간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남편이고 혹은 남자친구입니다. 그 소중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욕지거리를 듣게 되고 비난을 받는다면, 그들의 가족은 어떤 마음으로 그 선수를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카테고리에 묶여 함께 비난을 받을 때 그 선수의 마음은 또 어떨까요. 그 자괴감과, 상실감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진정 축구를 사랑한다면 경기력으로만 판단하고 애정 어린 비판을 할 수 있는 우리이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축구를 축구로만 생각하는 우리 모습을 그려봅니다. 다음 월드컵에서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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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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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진짜로 34살!!”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이 끝난 후 이영표 선수의 나이를 확인 한 후 저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축구의 신이 있다면, 저 선수가 정말 34살이 맞습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죠.

그러나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실린 프로필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1977년생. 우리나이로 34살. 초롱이 이영표 선수도 어느새 노장의 대열에 들어섰더군요.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이영표는 이번 월드컵에서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뒤적였던 거죠. 34살이 24살처럼 뛸 수는 없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현장에서 직접 본 아르헨티나전. 현란한 개인기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이것이 최순호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선수들의 플레이구나, 라며 정신없이 지켜보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가 너무 대단해 저는 우리가 대패하고 있다는 생각도 잠시 잊었습니다- 또 한 선수가 저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영표 선수였습니다.

아무도 메시를 막지 못하고 있을 때, 그때마다 이영표 선수는 로이스 기자를 구하던 슈퍼맨처럼 쨘, 하고 나타나 메시를 봉쇄했습니다. 이영표의 밀착마크에 막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패스를 할 수밖에 없던 메시의 모습을 저는 꽤 여러 번 봤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이영표 활약상>


허정무 감독 역시 아르헨티나전를 마치고 메시 봉쇄법의 열쇠를 이영표가 갖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물론 전담 마크맨은 아니었지만 메시가 측면에서 문전을 향해 적극적으로 드리블할 때마다 이영표의 수비가담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메시에게 공간도, 슈팅도 내주지 않던 이영표의 맨마킹은 칭찬 받을만 했습니다.

이영표 역시 “(내가 마크할 때면) 메시가 슈팅을 많이 하지 못했다. (나는) 쉽게 공간을 주지 않았고 돌파를 허용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찬스 역시 많이 가지지 못했다”며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스러운 평을 내렸죠.

오버래핑 후 복귀 시간도 20대 전성기 시절 못지않게 빨랐으며 크로스 역시 꽤 정확했습니다. 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전에서 이정수 선수가 터뜨린 팀 첫 번째 골 역시 시작은 이영표 선수였다는 거, 이제는 다들 아시죠? 기성용 선수의 정확한 프리킥과 이정수 선수의 위치선정도 훌륭했지만 이영표 선수가 파울을 얻어내지 못했다면 이 모든 것들은 꿈속의 장면으로만 끝날 수도 있었죠. 그것을 현실로 나타날 수 있도록 첫 스케치를 그린 사람이 바로 이영표 선수입니다.

나이지리아와 2-2 동점으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같은 시간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2-0으로 이긴 덕분에 조 2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 이영표 선수는 울었습니다.

월드컵 4강에 오르던 그 순간에도 초롱초롱한 눈에는 그저 함박웃음만 가득했는데, 늘 웃기만 하던 이영표 선수가 울었습니다.

원정에서 치른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16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맛봤기에, 그 감동이 커서 그랬던 것인가. 나름의 추측을 했습니다. 후에 저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됐죠.

“축구를 하는 동안 2가지 기적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2002년 월드컵 당시 이룬 4강 진출이었고 다른 하나가 원정 16강 진출이었습니다. 오늘 그 소원을 다 이뤘습니다. 한국 축구가 저에게 요구한 사명을 오늘 경기를 통해 완수했다는 기쁨에 눈물이 났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이룬 2002 황금세대 중 하나로서 책임감을 느낀 듯 했습니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그는 16강 진출을 위해 뛰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받은 부름이었고 한국 축구가 그에게 맡긴 임무였습니다.

처음 축구화를 신었던 그날부터 꿈꿨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그 중심에 동거동락했던 23명의 선수들이 있었다고 말했죠.

나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감동은 바로 다음 멘트에서 이어졌죠.

“오늘은 모든 걸 잊고, 마음껏 즐기며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오늘만큼은 우리 선수 중 어느 누구도 비판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비판한다면 단호하게 오늘만큼은 그 비판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페널티에어리어에서 불필요한 반칙으로 PK골을 내준 김남일 선수를 두둔하여 한 말 같았습니다. 누군들 김남일 선수들 두둔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경기를 하다보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의욕이 불러낸 안타까운 실수라고 선수들은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나 십자가를 메고 막아줄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대신 김남일 선수를 위해 방패막이 돼 주는 말을 할 수 있다면, 박지성 선수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다들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가 많아도 첫 번째 월드컵이었던 선수들이 많았으니 김남일 선수를 두둔하니까 참으로 애매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박주영, 염기훈 선수가 그를 두둔하기엔 이미 지쳤기에 -지난 예선 2경기 동안 이미 축구팬들의 비난에 심히 시달린 선수들이었으니까요- 그들은 라커룸에서 조용히 “형,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 가운데 오늘만큼은 비판을 거부하겠다고 당당히 말했던 이영표 선수의 마음이 저는 참으로 멋졌고 감동이었습니다.

팀 내 캡틴은 박지성 선수이지만 뒤에서 그 캡틴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나무 같은 사람. 그가 바로 이영표 선수였습니다.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우리는 16강 진출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16강 진출은 대표팀 선수들이 함께 이룬 기적이지만,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그 길이 조금 더 험난했을지 모릅니다.

대표팀의 포백을 책임졌던 이정수, 조용형, 차두리, 오범석 선수 모두 수비수로 나선 첫 번째 월드컵입니다. 만약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조직력과 호흡으로 승부를 걸어야하는 우리 대표팀의 플랫 4는 금이 가다 못해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3번의 월드컵과 네덜란드를 거쳐 잉글랜드, 독일 등 유럽리그를 거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그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번 월드컵에서 쏟아냈고 토해냈고 전수했습니다.

만약 저에게 대표팀 선수들 중 MVP를 주라고 한다면 저는 이영표 선수 앞으로 달려가 FIFA컵보다 더 밝게 빛날 트로피를 건네고 싶습니다.  그 모든 골 뒤에는 이영표, 당신이 있었고 화려하게 스스로 빛나기 보단 팀을 위해 마지막 하나까지 아낌없이 태우는 그런 당신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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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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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와의 16강전. 후반 들어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아공에서 뛰던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던 한국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를 맞으며 선수들은 뛰었고 넘어졌고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섰고 그들을 보며 지구 반대편에 있던 우리는, 그들이 온몸으로 맞고 있던 그 비를 맞으며 응원했습니다.

경기는 졌지만 그들 가슴에 새긴 투혼, 이란 두 글자가 어울리던 경기였습니다. 뭐 비단 16강전만 그랬던가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보여줬던 경기는 투혼과 끈기가 어울렸고, 그들은 90분 내내 포기하지 않았으며 실로 아름다운 축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예전과 달리 빠른 패스로 공격의 주도를 잡았고, 문전을 향한 저돌적 플레이는 결국 동점골을 낳았습니다. 당황하는 대신 짧고 긴 패스를 혼용하며 기선을 잡으려는 침착함과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 무엇보다 돋보였습니다.

얼마 전 최진철 코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가 열렸던 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을 보고 있자니 그대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고요. 관중 대다수가 홈팬인 우리 국민들었음에도, 나서 자란 대한민국에서 열린 월드컵이었지만 그래도 긴장은 컸다고 합니다. 그 거대한 긴장과 두려움이 주는 무게에 눌려 빨리 경기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경기 시작 전부터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이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달랐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득점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롱패스를 보여줬던 과거 ‘뻥축구’는 볼 수 없었습니다. 넓은 시야와 패싱력이 돋보이는 조용형을 시발점으로 해서 후반 들어 계속 됐던 정확한 전진패스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졌지만 이긴 것과 다름 없는 경기였다는 호평도 많았습니다. 이렇듯 우루과이전에서 우리는 희망을 봤습니다. 그러나 풀어야할 숙제도 있었죠.

수아레즈에서 선제골을 허용할 당시 정성룡의 판단 미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돌아 들어가던 수아레즈가 노마크 상황에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도 그랬습니다. 3번째 골 상황이 오프사이드였기에 오심에 피해를 입은 결과가 됐지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당시 이과인을 마크하던 수비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 특히나 자주 보였던 장면은 메시에게 볼이 갈 때마다 2명, 3명의 선수들이 그를 마크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빈공간을 향해 달려들어가던 선수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자주 연출했다는 것입니다. 위험지역에서 너무나 쉽게 상대공격수를 놓쳐버리곤 말았죠.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누차 지적되던 수비불안은 여전히 대한민국 대표팀이 해결해야할 숙제입니다.

우루과이전에서 박주영은 의욕을 갖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만들어가는 과정일 얼마나 좋았던지 간에 공격수는 골로 말합니다. 많은 찬스를 만들었지만 그 찬스는 모두 크로스바를 맞고 나가거나 허공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AS모나코에서 주전 공격수로서 유럽무대를 휘젓고 있다는 박주영지만 그는 2% 부족했습니다. 대한민국대표팀의 다른 공격수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아레즈는 찬스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켰죠. 결정력과 집중력의 수준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상대가 극단적으로 전원수비를 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속에서 골을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실력의 척도입니다. 우리가 운이 없었기에 동점골을 터뜨리지 못했다고 하지만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처럼 유명한 말이 운도 실력이라는 말 아니던가요.

최순호 감독은 수비숲을 뚫고 골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기술이 좋아야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희망적인 것은 예전과 달리 축구지능과 테크닉이 뛰어난 이청용, 기성용에서 알 수 있듯 대표팀 내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입니다. 다행히 입때껏 누차 지적되던 골 결정력 부족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많이 희석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축구계를 쥐락 펴락하는 축구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창을 더 날카롭게 보완해야겠지요.

우루과이전 후반 이청용의 동점골이 터진 이후 우리 대표팀은 공격과 수비의 전환이 빨랐고 강한 압박과 짧고 정확한 패스웍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3선의 균형도 제법 잘 맞았습니다. 때문에 우루과이 선수들은 적잖게 당황했죠.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경기를 월드컵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요. 아마 손에 꼽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전 희망을 봤습니다. 그리고 풀어야할 숙제 또한 함께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보완을 통해 성장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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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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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들을 자주 만나다보면 그들의 고민의 늘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군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알다시피 축구선수들은 보통 30대 초반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물론 몸관리를 잘한 선수들의 경우 -강원의 이을용, 경남의 김병지, 포항의 김기동 등이 대표적이겠지요-30대 중반을 넘어 40을 바라보는 나이에게도 현역에서 선수생활을 하지만 실제 K-리그 대다수 선수들의 이야기는 아니죠. 최근에는 오히려 선수단 평균 연령이 점점 젊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 말은 곧 30살을 넘은 ‘준노장’ 선수들의 은퇴가 많아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로선수들은 꽤 많은 돈을 손에 쥡니다. 그래도 그들은 늘 불안합니다. 축구단은 그들에게 평생직장이 아니니까요. 또 군대를 가야하기 때문에 2년이나 돈을 벌지 못하니까요. 그들에게 2년은 꽤 큰 시간입니다. 대학 졸업 후 24살에 프로에 왔다고 봤을 때, 만약 32살에 은퇴를 한다고 한다면, 그는 프로에서 8년을 뛴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서 군대에서 보내는 2년의 시간을 빼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6년 동안 프로선수 생활을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만약 결혼을 일찍 한 선수라면 아내와 아이를 두고 군대를 가게 됩니다. 그 동안 가계수입은 ‘0’이고 그전에 저금해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아내와 아이는 축구선수인 남편을 기다리겠죠.

여기까지는 보통의 K-리그 선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나이대별 대표팀을 두루 역임하며 국가대표까지 입성한 엘리트 선수들의 경우에는 군대와 관련해 조금 다른 고민을 합니다. 군대 문제 때문에 자유롭게 해외진출을 하기가 힘들다는 게 그들의 고민인 거죠. K-리그와 국가대표를 오가며 얻은 명성으로 해외팀에서 오퍼가 들어오는데, 만약 그의 나이가 27세라면 축구선수로서는 딱 좋은 전성기의 나이대지만 이 나이는 이제 슬슬 군대 문제를 생각해야할 나이입니다. 28세에는 적어도 상무나 경찰청에서 군 생활을 해야 하는데, 해외 유명 클럽에서 딱 1년만 데리고 있을 선수를 위해 그 많은 이적료와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기는 힘듭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비슷한 레벨이지만 군대 문제에서 자유로운 선수를 영입하겠죠.

그래서 많은 축구선수들을 말합니다. 분단국가의 특성상 병역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국방의 의무는 국민이 지켜야할 기본 의무 중 하나다. 우리는 군대에 가기 싫은 게 아니다. 우리의 꿈을 해외에서도 펼칠 수 있도록 적어도 축구선수로 활동할 기간만은 군대문제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28세까지 미룰 수 있는 현 제도에서 35세 후 혹은 은퇴 후에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좋겠다. 등등의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들의 병역문제가 요즘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나이지리아전 종료 후 락커룸을 찾은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저는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왜 지금?’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는 겁니다. 회사에서 중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동안 야근에 지친 직원들에게 “고생 많았지? 오늘은 내가 쏜다!” 혹은 “직원들에게 각자 포상을 내리겠다”고 말하는 사장님 같아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군대문제와 관련해 축구선수들의 고민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바로 너무나 즉흥적인 협회의 태도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2007년 병역볍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병역특례 대상자를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제한했습니다. 기존의 월드컵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라는 조항을 없앤 거죠.

그런데 그때 협회는 당시 아주 조용하게 넘어갔습니다. 월드컵 16강의 경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했을 때만큼의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의 효과가 있으니 선수들에게도 병역혜택을 줘야한다는 문제제기 조차 없었습니다. 월드컵에 진출했을 때 나라가 얻을 수 있는 이익과 16강 진출 시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보고서라도 준비해 월드컵에 나서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군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그래서 지금의 박지성처럼 유럽리그를 휘젓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다져줄 수 있도록, 최소한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했던 거 아닐까요?

당시 많은 언론에서 월드컵 16강 진출에도 선수들은 군대를 가야한다는 등의 뉴스가 나왔지만 협회가 이를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병역혜택이라는 당근이 16강에 진출했으니 이제 할 일은 다했다며 다소 느슨해질 선수들을 채찍할 가능성은 큽니다. 8강을 넘어 4강진출까지 다시 한 번 노려볼 생각에 병역혜택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요?

이런 즉흥적인 모습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병역법 개정을 위해 이전부터 노력을 했더라면, 그래서 삭제된 조항이 다시 들어가거나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라는 조항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갑론을박은 나오지도 않았겠죠.

이미 다른 종목 선수들이 월드컵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 같은 자신들의 종목에서 유치하는 국제대회도 추가적으로 특례 조항을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정부는 2007년 병역특례 범위를 종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로 한정지은 바 있습니다.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의례적으로 병역면제를 받았을 때 이제는 다른 종목 선수들이 이번 대표팀의 예를 들며 병역면제를 요구할지 모릅니다. 만약 다음 WBC 대회에서 야구대표팀이 4강안에 들어갔다면 축구대표팀의 예를 들며 병역면제를 요청할 지도 모르죠. 이미 축구대표팀에 허한 ‘예’가 있기 때문에 월드컵과 WBC대회는 규모나 수준면에서 비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4강에 진출했다고 해도 병역혜택을 줄 수 없다고 과연 국방부에서 말할 수 있을까요? 그들로서는 선례가 있기 때문에 바로 ‘노’라고 말할 수 없겠죠. 그래서 이번에 그러한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WBC 준우승 시에도 병역혜택을 주지 않았다며 선례를 남기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 역시 현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받아 더 넓은 무대에서 자유롭게 뛰며 꿈을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말하고 행동하려는 협회의 모습을 보니 참 안타깝고 슬픕니다. 병역혜택을 줘야한다, 말아야한다고 서로들 싸우기 전에 문제의 본질과 발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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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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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하루종일 월드컵 16강 진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행복하하셨죠? 축구가 우리모두의 삶을 이렇게나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웃던 하루였습니다.

그 가운데 지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며 뛰었던 선배 선수들이 현 대표팀 선수들에게 감동어린 격려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을용의 편지>
다들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가슴 졸이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우리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며, 나이지리아에 선제골을 헌납했을 때 마치 현장에서 뛰던 선수들처럼 마음 안타까워하며 중계를 시청했고 또 응원했습니다.

국민들에게는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이자 내게는 참으로 멋진, 그래서 아낄 수 밖에 없는 후배들은 기어코 해내고 말았습니다.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삼 2002년과 2006년, 태극마크가 박힌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뛰던 그 시절의 열정넘치던 제가 떠올라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당시 한솥밥을 먹으며 대표팀에 있었던 후배 이영표가 눈물 흘리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습니다.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기쁘고 감격스러워하는 그 마음이 제게도 전달돼 저 역시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며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이 한국 축구를 위해 떠나기 전에 해야할 일들 중 하나가 바로 16강 진출이었습니다. 현 대표팀에 남아있는 2002세대들에게는 어쩌면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주어진 시간은 짧았으나 후배들과 함께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멋지게 썼다는 점에서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만해도 세계의 벽은 높았습니다. 빅리그의 선수들과 즐비한 다른 국가들과의 대결에서 한국이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컸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2002년을 기점으로 한국 축구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이제는 세계 선수들과도 해볼만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우리 가슴과 머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금 선수들은 분명 그때의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투혼도, 열정도, 실력도, 자신감도, 모든 점에서 저보다 뛰어나는 생각을 하며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성적을 거둬 국민들의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안고 돌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끝은 아니겠지요. 우리에게는 가야할 길, 개척할 길이 더 많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기쁨이 우리의 6월을 환희로 물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태극전사들이여, 승리의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뜁시다.


<최순호 감독의 편지>
제가 월드컵에서 뛰던 시절 대표팀의 수준이 6점이었다면 지금 대표팀의 수준은 8점 이상 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을 희망적으로 보았습니다. 축구 인프라가 발전하게 되면서 선수들 개인 기량과 조직력도 좋아졌고 내심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허정무 감독의 승부사 기질도 남달랐기에 승리를 향한 대표팀의 열망으로 이어져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긴장하기 보다는 경기 자체를, 또 축구라는 본질 자체를 즐기는 선수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축구는 이기기 위해서만 하면 안되고. 즐기는 마음으로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믿습니다. 그간 허정무 감독이 항상 강조했던 ‘즐기는 축구’가 결실을 맺게 된 것 같습니다. ‘유쾌한 도전’이 드디어 현실이 됐습니다. 16강 이후에도 선수들이 지금처럼 즐기는 축구를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최진철 코치의 편지>
용형아. 내가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나갔을 때, 그때 내 나이는 32살이었다. 서른을 넘기고 늦깍이 태극전사가 됐을 때, 기쁨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에서, 부산아시아드경기장에서 폴란드와 첫 경기를 치르게 됐을 때, 그라운드로 나서는 순간 관중석을 가득 메운 붉은악마의 물결을 보면서도 역시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이대로 이기지 못했을 때 이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텐데,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던 것도,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만 사실이다.

공격수는 단 한골만 성공시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수비수는 단 한골만 허용해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있을 지 모를 패배를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기 보단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냐는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싸워주길 바란다. 유럽 선수들과 많이 맞서봤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 대표 선수들도 이제는 그에 뒤지지 않는 실력들을 갖추고 있지 않더냐. 우리는 강하다. 가장 두려운 적은 우리 자신일 뿐. 그것을 잊지 말아라.


<정경호의 편지>
지성아!

2002년과 2006년과 달리 이번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의 주장으로 부임하며 선수들을 이끌어야했지. 네가 가진 모든 것을 그라운드에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캡틴’이라는 수식어도 너에게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 이제는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대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이곳 강원FC에서 2010년 새 시즌 주장으로 뛰게 되면서 모름지기 주장이란, 단순히 오른발에 차는 완장 이상의 책임과 가치를 알고 지켜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어. 네가 그렇지. 그간 대표팀 주장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그 어려운 고비들 앞에서도 너는 흔들리지 않았고 행동으로 실천하며 선수들을 격려했지. 주장인 네가 그렇게 중심이 잡혔기에 모든 선수들이 한마음이 되어 국민들의 염원을 이뤄냈다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나는 너를 ‘국민 주장’으로 부르고 싶다.

16강까지 정말 힘들었다며 이제야 속내를 털어놨지만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이겨내는 사람. 그게 바로 너라고 생각해. 일본 교토퍼플상가 시절에도 그랬고, 이어진 네덜란드와 영국생활에서도 너는 항상 당면한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너의 길을 걸어 갔잖아.

고교시절 너희 학교가 강릉으로 전지훈련을 오면서부터 알고 지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구나. 2006년 월드컵때는 대표팀에서 동거동락하며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는데….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전화로 늘 나와 가족의 안부를 물어보고 우리 딸 예진이의 돌 선물까지 챙겨주고. 참 속정 깊은 친구다. 너라는 사람은.

남아공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너의 플레이를 보며 달래고 있다. 내 몫까지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 한번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쓰는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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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대한민국 대표팀이 또 하나의 역사를 썼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원정에서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한 것이죠. 나이지리아와 2-2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은 같은 시간 그리스를 2-0으로 이긴 아르헨티나에 이어 2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그 역사의 순간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기쁘네요.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은 얼싸 안으며 기쁨을 표했고 이청용, 김동진, 이영표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다 천국에 있는 기분으로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듯 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이정수, 박주영, 김남일, 기성용 이 4인방의 기분이 더욱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전과 비슷한 위치에서 이정수는 기성용의 킥을 받아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마치 데자뷔와도 같았는데요, 수비수로서 팀 내 최다골(2)을 터뜨렸다는 점에서 새롭게 대표팀 내 골 넣는 수비수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마음고생은 적잖게 많이 했지요. 곽태휘의 부상으로 백업멤버였던 이정수는 소위 말하는 ‘대타’로 그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잘하면 본전이요 못하면 곽태휘가 있어야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 테니 얼마나 부담이 컸을까요.

그런 가운데 2경기에서 팀 첫번째 골을 넣어주며 16강 진출의 초석을 만들어줬으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특히나 아르헨티나전에서 4골이나 내주며 대패했기에 주전 센터백으로서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다시 한 번 선제골을 넣어줬으니 아르헨티나전 대패 아픔을 털고 천국에 갈 수 있었죠.

그리고 박주영. 아르헨티나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며 대패의 시발점이 됐다는 지적과 함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무득점이라는 수모를 함께 겪어야만 했습니다. 4년 전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스위스전에서 자신의 파울로 얻은 프리킥이 스위스의 득점으로 연결되는 바람에 16강 진출의 좌초가 됐다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멋지게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그간의 아픔을 한 번에 털어냈습니다. 평소보다 기도가 짧았고 포효가 꽤나 길었습니다. 동료 선수들이 얼싸 안은 순간에도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하늘을 향해 소리 쳤죠. 마치 그간의 가슴앓이를 포효로 풀어내는 것 같아 새삼 가슴이 짠해졌습니다.

김남일. 그에게는 이번 대회가 마지막 월드컵이 될 듯합니다. 각오가 남다를테지요. 그러나 기성용-김정우 두 중앙MF 조합에 밀려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김남일은 교체멤버로 밀려나고 말았죠. 오늘 나이지리아전이 이번 월드컵 마지막 경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김남일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의욕이 과했던 탓일까요.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의 깊은 태클로 결국 PK를 내주고 말았고 이는 나이지리아의 2번째 골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이겨주었고 덕분에 무승부만 기록해도 조2위로 16강에 진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남은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겠죠. 만약 졌다면 그의 축구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경기로 남았을 것이고 16강 진출 실패의 역적으로 몰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경기에서 천국에 와있는 듯 한 기분을 가장 강하게 느낀 사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성용. 스코틀랜드리그로 이적 이후 기성용의 경기력이 예전만 못하는 지적이 연일 계속됐습니다. 경기에 꽤 오래 나서지 못했고 그 때문에 경기를 읽던 그만의 너른 시야, 송곳 같던 패싱력, 정확했던 프리킥력들이 빛을 잃은 듯했고 급기야는 기성용 교체설까지 팬들 사이에서 흘러나왔죠. 그러나 기성용은 월드컵 본선무대에 가까워짐과 동시에 예전의 기량을 함께 회복했고 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전의 선제골을 모두 그의 킥으로 도왔습니다. 이정수의 머리를 향해 정확하게 올려준 기성용의 프리킥은 기라드라는 별명 대신 기긱스라고 불리기도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그간 절친 이청용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표현은 못했겠지만 많이 부러웠을 것입니다. 왜 자신에게는 그런 순간이 오지 않는지 자책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목표의식이 뚜렷한 기성용이니까요. 그러나 그는 골보다 멋진 프리킥으로 팀을 도우며 누구보다도 밝게 빛났습니다. 그간의 우려도 한순간에 불식했고요.

90분이 900분처럼 느껴졌다며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던 주장 박지성의 말처럼, 쉽지 않은 길이었지요. 16강으로 가는 길은요, 하지만 16강이 이 길의 끝은 아니기에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하며 뒤에서 지켜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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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44년만의 꿈은 그렇게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갔습니다.

21일 케이프타운 그린포티인트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G조 2차전에서 북한은 포르투갈에 0-7로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2002년 월드컵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독일에 0-8로 패한 이후 근래 들어 가장 큰 점수 차로 패한 경기로 남게 됐습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은 아시아국가 중 최초로 8강에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포르투갈을 3-0으로 앞서 나가며 4강 신화를 우리나라보다 먼저 쓸 뻔 했지만 국제 경기 경험이 부족했던 북한은 리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후 흑표범 에우제비우에게만 4골을 내주며 3-5로 역전패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이 보여준 모습은 호평을 받기도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44년 만에 다시 세계무대에 나선 북한. 지난 브라질전에서 보여준 경기 역시 1-2로 패했지만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벽은 44년보다 높았습니다. 44년 전 4골을 넣으며 북한 선수들의 선전을 8강에서 멈추게 만들었던 에우제비우는 자신의 후계자 호날두가 팀의 6번째 골이자 이번 월드컵 첫 골을 뽑아내자 엄지손가락을 들며 기쁨을 표했습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대세의 민족통일 염원 세레모니를 보지 못해 아쉬웠고 전반까지 밀어붙이던 기세가 후반 들어 급격히 무너지며 연속골을 내리 헌납하는 북한 선수들의 모습 역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북한대표팀의 김정훈 감독의 경기 후 기자회견이 참으로 인상적이더군요. 김정훈 감독은 0-7 대패를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며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국제대회에서, 그것도 가장 큰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월드컵에서 감독 자신의 잘못이라며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김정훈 감독의 경기 후 소감은 참으로 덕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감독의 전술이 완벽하지 못했기에 많은 실점을 한 것 같다”며 상황에 맞는 전술을 제때 구사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또 “실점 후 득점으로 만회하려고 하는 욕심이 강하다보니 공수의 조화가 맞지 않았다”며 “선수들이 흥분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이를 조절하지 못했다”며 다시 한 번 감독의 능력 부족으로 담담히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연달아 골을 허용하다 보면 선수들은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입니다. 미드필더까지 공격을 위해 전방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패스미스가 발생하다보면 단 한 번의 미스가 또 다시 실점으로 허용되기 쉽습니다. 대량실점은 이렇게 일어나게 되는 거죠. 오늘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준 북한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전반까지도 견고했던 북한의 수비가 후반 8분 시망에 2번째 골을 허용하고 난 후 급격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비가 많이 내렸고 국제무대 경험이 미천한 북한 선수들은 이러한 악천후 속에서 전반 체력을 이미 너무 써버린 듯 했습니다. 90분 동안 체력을 안배하며 뛰어야했음에도 조국에 1승을 안겨주겠다는 마음이 컸던 탓인지 전반에 그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쓰고 말았단 것이죠.

북한의 돌풍을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그래도 휴전선만 있을 뿐 본디 한민족이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의 대패는 많이 아쉽습니다. 홍영조, 정대세 등 북한의 젊은 피들이 이번 대회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패배의 아픔 속에서도, 감독으로서 오히려 더 많이 힘들어하고 아파할 선수들을 다독거리고 감싸주는 북한대표팀 김정훈 감독의 모습을 보며 저는 크나 큰 아쉬움 속에서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감독의 격려 아래 다시 명태 먹고 ^^ 마지막 경기 코트니부아르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며 다음 대회를 기약할 것이라 믿습니다. 아름답게 마무리할 북한대표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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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항에서 우연히 정대세 선수의 어머니 리정금씨를 만났습니다. 지인들과 함께 앉아 담소 중이었는데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드린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얼마 전 정대세 선수 어머니가 북한과 브라질과의 조별예선을 경기장에서 관람한 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하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죠.


당시 '이겨라! 천리마'라고 쓴 두건을 쓰고 아들의 한글이름이 새겨진 담요를 덮은 채로 -지금 남아공은 무척 춥답니다. 저는 겨울 패딩 점퍼를 입고 응원을 해야 했답니다. ㅠㅠ- 응원을 했던 어머니는 “대단히 잘 싸웠다고 생각한다. 오늘 경기로 북한에 대한 이미지도 변했다고 생각한다”며 “아들은 내 자랑”이라며 감격스러워 했죠. 


브라질전만 보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던 정대세 선수 어머니는 북한의 경기를 보지 못한 한국 축구팬이 정대세 선수가 못 넣어서 아쉬웠다며 홍영조 선수가 골을 넣었냐고 묻자 “지윤남 선수”라고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들 정대세 선수가 한국에서 정말 유명하다고 얘기해주자 정 선수 어머니는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압니다”라고 하셨죠. 옆에 계시던 한 아저씨께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만큼 좋아한다고 첨언하자 “아 그래요? 그것은 몰랐는데...”라며 굉장히 놀라는 모습이었고 또 그만큼 아들을 향한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마음에 감동받은 모습이더라고요.


박지성 선수와 찍은 광고 이야기도 물었는데 그 광고 때문에 여기저기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덕분에 추억도 많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박지성 선수 잘 압니다. 팬입니다”라며 아들 정대세 선수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알다시피 정대세 선수도 박지성 선수를 존경한다며 팬이라고 인터뷰 때마다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으니까요.


정대세 선수 어머니는 “아들과 북한 선수들이 잘해줄 거라고 믿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남과 북이 16강에 동시에 출전하길 바란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되는 걸 원합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척이나 확신에 차 있었고 말씀에서 힘이 느껴졌습니다. 정대세 선수가 강건한 것도 다 어머니 덕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브라질전 당시 북한 국가를 들으며 정대세 선수가 눈물을 정말 많이 흘렸죠? 아들이 눈물이 많은 건 막내라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막내라서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정이 많고 감성적이고 또 낙천적이라네요. 애교도 많다고 하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참으로 예쁜 막내 아들인 듯 싶었습니다.


이제 오늘 정대세 선수는 포르투갈과 조별예선 2차전을 치릅니다. 경기 시작 전 조국통일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혹은 통일 조국의 지도가 그려진 옷을 유니폼 아래 입은 뒤 골을 넣으면 벗어 보이겠다고 말했다고 하지요.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북한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일본에서 태어나 입때껏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언제나 경계인으로만 살아야했던 정대세 선수. 2008년 월드컵 예선 당시에도 북한 국가를 들으며 그는 펑펑 울었죠. 그때 “조국 통일이 가까워진 것 같았다”고 말했던 정대세 선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날 더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남과 북, 분단이라는 현실 아래 호위를 받으며 재빨리 버스에 올라타야만 했던 당시 풍경도 생각나네요.


통일 조국을 꿈꾸는 열혈남아 정대세 선수. 같은 민족이니까,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할 때처럼 뜨겁게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대세 선수 어머니. 어머니의 교육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멋진 선수를 우리는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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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1-4 대패에 가려졌지만 아르헨티나전은 이동국 선수에게는 참으로 의미 깊었던 경기였습니다. 1998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 이후 12년만에 월드컵 경기에 나선 뜻깊었던 날이었으니까요.


후반 35분 경, 몸을 풀고 있던 이동국 선수를 벤치에서 부르더군요. 교체로 투입되는 듯 했습니다. 중계 카메라에는 그 모습이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제 카메라는 계속해서 이동국 선수를 따라갔습니다. 얼굴에서는 약간의 긴장도 느껴졌어요. 안정환 선수가 쓱 오더니 잘하라는 의미로 엉덩이를 툭툭 치더군요.


그리고 대기심 옆에 서서 교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럴 수가. 또 골을 허용했습니다. 이과인의 해트트릭. 1-4로 스코어는 더 벌어졌습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이동국 선수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출전 시간은 짧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밀리고 있었고요. 그런 상황에서 원톱으로 뛰었던 이동국이 내밀 수 있던 반전카드는 없었습니다. 잘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이동국에서 볼은 오지 않았고 이청용의 패스는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아 받지 못했고요. 그 패스를 받았다면, 이라는 아쉬움도 컸고요.


오른쪽 허벅지 부상 때문에 월드컵 최종멤버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지배적이었지만 운명은 결국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20살 겁없던 나이에 월드컵을 잠깐 맛봤던  청년은 어느새 30대가 되어 인생의 마지막일지 모르기에 몸이 부서져라 뛰겠다며 월드컵에 임합니다.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트로이카 3인방 중에 하나였던 이동국 선수. 90년대 말이었던 시절, 처음으로 K-리그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선수가 바로 그이기에 저는 메시의 화려한 플레이 속에서도 저의 카메라는 이동국 선수의 움직임을 좇았습니다.


아프리카 밀림의 왕인 사자. 라이언킹이라는 별명처럼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진정 왕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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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아르헨티나와의 조별예선 2차전의 패배의 충격은 아직 가시지 않습니다. 1-4패. 1998프랑스월드컵 당시 네덜란드에 0-5로 패한 이후, 근래 들어 국제대회에서 가장 큰 스코어차로 진 경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이청용의 만회골로 1-2로 전반을 마칠 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는데 말이죠.

많은 분들이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에 질책하고 쓴소리를 하시는 걸로 압니다. 현장에서 직접 본 저는 참으로 처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메시와 이과인, 테베즈의 빛나는 플레이에 우리 선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했으니까요. 답답하기도 했고 상심도 컸습니다. 대한민국을 응원하러 왔는데 빛나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넋 놓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슬펐고 가슴아팠습니다.

현장에 있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제 카메라에 담긴 영상들을 포스팅했습니다. 나이지리아전에서는 그리스전에서 보여줬던 자신감과 활기찬 플레이가 부활하기를 바랍니다.


경기장은 아르헨티나 서포터들로 가득찼습니다. 정말 많이 왔더라고요.


첫번째 골 상황. 박주영 선수의 자책골로 판정이 나 마음 아팠습니다.


이과인의 헤딩골이 터지는 순간입니다.


이청용의 골은 워낙 기습적으로 터졌던지라 세레모니 장면만 찍었습니다.








기뻐하던 아르헨 팬들.


몸을 풀고 있던 김보경 선수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죠.


90분 내내 질주하던 메시도 휘슬이 울리자 지쳐 쉽게 못 일어날 정도로 힘든 경기였습니다. 무엇보다 패배의 아픔 속에서도 대한민국 팬들에게 인사하던 선수들의 모습을 보니 참 마음이 아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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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10남아공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심판들에게 가이드라인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월드컵 심판 가이드라인을 인지하는 것은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K-리그에서는 묵인된 것들이 국제대회에서까지 용인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심판 강습회에서도 월드컵을 앞둔 만큼 월드컵에서 요하는 가이드라인을 선수들에게도 요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 시즌에는 예년보다 심판 판정이 엄격해지고 비신사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카드가 내려졌습니다. 연맹의 5mm 정책도 물론 한몫을 했지요.

1. 거친 태클을 강력하게 처단하라
FIFA는 거친 태클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강한 규제를 내려리고 했습니다. 1998월드컵을 기점으로 예전에는 백태클에 대해 규제가 강했지만 -당시 멕시코전에서 프리킥 선제골을 넣었던 우리나라 하석주 선수가 백태클 퇴장의 아픔을 겪기도 했죠- 이번 월드컵에서는 전후좌우 위치에 관계없이 선수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태클(특히 발바닥이 보이는 태클)에 대해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것이 FIFA의 입장입니다. 무엇보다 선수의 안전을 위한 우선히 하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수비수들과 이청용 선수가 이 부분을 잘 인지했으면 좋겠어요. 이청용 선수 심성은 곱고 착한데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태클은... 가끔 보면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어요.

2. 팔꿈치로 가격하는 행위를 차단하라
손, 그중에서도 팔꿈치를 사용하는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것이 FIFA의 입장입니다. 경합 과정에서 흔히 나오는 팔꿈치 가격은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특히 헤딩 경함 과정에서 나중에 착지하게 되는 선수들이 머리를 움직이며 팔꿈치를 함께 쓰는데, 이런 경우 무조건 퇴장입니다. K-리그에서도 습관적으로 이러한 반칙을 하는 선수들이 있어 심판들 사이에는 요주의 선수로 불리며 경기 중에 그 선수가 엘보잉 파울을 범하는지 신경쓰며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습관적인 팔꿈치 사용에 대해서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것이 FIFA의 의지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3. 심판에 대한 항의를 줄여라.
FIFA는 축구의 이미지에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축구는 전세계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입니다. 따라서 월드컵의 이미지, 그리고 어린 선수들에 대한 교육적인 측면에서 좋지 않은 장면은 용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억울한 판정이라 할지라도 적당한 선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심판의 몸을 건들지 않더라도 과격한 항의, 그리고 심판에게 달려오면서 위협적인 모습을 연출한다면 규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K-리그 심판 강습회 때 받았던 교육에서는 선수들이 판정에 항의하며 ‘떼’를 지어 달려올 때 심판은 결코 뒷걸음질을 치거나 피하면 안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이 관중과 어린 선수들에게는 심판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단체로 선수들이 몰려올 때는 가장 먼저 심판에게 달려온 선수에게 가차없이 카드를 뽑으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혹자는 주장은 심판에게 항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냐고 하는데요, FIFA 규칙서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주장이라고 팀을 대표해서 항의할 수 있는 권한은 없으므로 가볍게 어필할 수 있을지언정 십자가를 짊어지고 항의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찍이 월드컵에서 대표적인 오심 중에 하나인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이나 얼마전 앙리에 의해 연출됐던 핸드볼 사건은 모든 사람들이 명백히 봤지만 주심이 미처 보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럴 경우에도 선수들의 과도한 항의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축구고 잘못된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월드컵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5월 에콰도르전에서 이동국의 첫 번째 골에 대해 오프사이드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TV시청자들이나 그 라인을 볼 수 있었던 관중들은 그 장면이 오프사이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크게 항의하지 않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순간의 오심을 받아들이고 경기에 임한 것은 높아진 대표팀의 수준을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월드컵에서도 이런 평정심을 유지해야합니다.

4. 명백한 득점 기회 무산시켰을 때는 퇴장
이외에도 골키퍼와 1대 1로 맞서는 명백한 득점 기회에서 파울로 끊을 경우 곧바로 퇴장을 당한다는 것을 유념해야합니다. 또한 좋은 기회를 파울로 무산시켰을 때는 경고조치를 받는다는 것도 같이 알아둡시다.

마지막으로 FIFA는 월드컵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보복행위 같은 경우는 엄중에 취하게 되니 깨끗하고 상대 선수를 존중하며 동반자로 생각하는 플레이를 선보여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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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머니, 아버지께서 많이 뿌듯해하셨어요. 주위에서 아버님한테 축하메시지 많이 가니까 약주 많이 하셨죠. 사실 국가대표에 발탁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부딪혀보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기회가 오면 잡으려고 했죠.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준비를 잘하고 있자, 그래서 꼭 기회를 잡자라고 생각하며 운동했죠. 지는 걸 싫어하는 악바리 근성이 있어요. 제가.”



2년 전, 허정무 감독 밑에서 또 다른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던 곽태휘 선수. 제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6개월간의 재활을 마치고 복귀한지 얼마 안됐을 때였습니다. 2007년 11월25일 포항과의 FA컵 결승 1차전에서 곽태휘 선수는 극적인 역전골을 터뜨리며 전남의 대회 2연패의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이듬해 1월에는 ‘생애 첫 국가대표 발탁’이라는 경사까지 누렸습니다. 한데 금상첨화라고 A매치 데뷔전과 데뷔골 기록이라는 겹경사도 맞았으니 웃음이 가실 길 없었죠. 특히 2010월드컵 3차예선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터진 A매치 데뷔골은 550분 간 이어졌던 대표팀 골가뭄을 해갈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3월8일 포항과의 개막전에서 왼쪽발목 인대파열로 교체아웃 된 이후 근 6개월동안 재활에 매진해야만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또다시 부상 때문에, 이제는 다 올라갔다고 생각한 월드컵이라는 고지에서 다시 내려와야만 합니다. 부상은 그렇게 또다시 그를 붙잡았군요.

“축구를 하면서 부상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눈을 다쳤고 대학교 때는 어깨도 다치고 프로와서는 발목에 무릎까지... 한번 다치면 부상이 심해 오래 쉬어야만 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 많이 다치면서 축구를 했던 거 같아요.”

아시겠지만 그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제는 익숙해졌다며 담담히 말했던 곽태휘 선수였습니다.

“눈은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적에 다쳤어요. 처음엔 다쳤을 땐 어머니가 많이 슬퍼하셨어요. 공에 맞았는데 그 순간에 공이 돌면서 망막이 찢어지고 말았어요. 수술을 했지만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죠. 하지만 요즘은 일부러 그런 얘기를 안하려고 하는데요, 운동하는 선수들은 다들 부상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운동해요. 저만 특별한 게 아니니까요. 처음엔 많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많이 적응했어요. 아직까지는 조명을 본다거나 햇볕이 비출 때는 거리가 안 맞고 글씨가 잘 안 보이는데, 한쪽으로만 생활하다보니 시력이 점점 나뻐지고 있어요. 나이를 좀 먹으면 그나마 보이던 눈이 더 나빠질까봐... 그게 걱정이에요. 눈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한번씩 그런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생각만 이레 하는데 답이 없으니까 막막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그는 참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산 듯했습니다. 17살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한 것도 그랬고,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보란 듯이 일어서서 프로에 입단했고 결국엔 태극마크까지 달았으니까요.

“운동은 어릴 때부터 많이 좋아했어요. 왜관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1학년 여름방학 때 대구공고에 가서 테스트를 받았어요. 그때 감독님께서 졸업할 때까지 한게임도 못 뛸 수도 있다. 지금와서 뭘하겠느냐, 라고 하셨던게 생각나요. 그래서 축구를 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하겠다고 했는데, 알겠다며 받아주시더라고요. 처음에 대구공고 축구부에 들어가서 다른 친구들이 훈련할 때 저는 뒤에서 기본기를 연습하곤 했어요. 늦게 들어왔으니까 당연히 그래야하니까 스트레스는 없었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했기 때문에 늘어가는 과정을 즐기면서 했어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제가 좋아서 시작한 축구니까 즐기면서 하려고 했죠. 처음엔 가족들 반대도 심했지만 제가 고집이 있어요. 한다고 하니까 결국 다들 허락해주셨죠. 그리고 나서 경기에는 1학년 말부터 투입이 됐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죠.”

. 17살 적 처음 축구부 문을 두드렸을 때, 그 나이에 축구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말에좌절했지만, 혹은 망막 부상 이후 “축구선수로 대성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세간의 목소리에 흔들렸다면, K리그와 대표팀을 누비는 곽태휘 선수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 제가 만난 곽태휘 선수는 참으로 단단했고, 역경에 굴하지 않던 ‘긍정’으로 똘똘 뭉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솔직히 인간인데 그런 거 한번씩 생각하죠. 안 다쳤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봤거든요 지금 안 다쳤으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고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가있을까, 하고요, 하지만 생각만 하면 가슴만 아프죠. 이미 다친 걸 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너무 급하게 올라가서 그런가 돌아보라고 그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지금부터 다시 또 올라가면 되요.”

하늘은 내게 월드컵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또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고 결코 세상에 지지 않겠다고, 지금도 곽태휘 선수는 생각하고 있겠지요.

“계속 발전하고 싶어요. 점점 더 발전해서 말했듯이 기회가 되면 다른데 가서 부딪혀보고 싶어요. 여기서 멈추는게 아니라 계속 업그레이드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사람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나쁜 일이 있어도 나중에 잘될 거니까 신경쓰지 말자, 하며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요. 시련이 와도 역경이 와도 다시 할 수 있다고 마음 먹고 준비하면 일어서다 보면 좋을 결과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인드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2년 전 제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계속 도전하고, 그 속에서 발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여전히 꾸고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다고 하여도 여전히, 곽태휘 당신은 우리들의 국가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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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한일전 2-0 통쾌한 승리로 모두의 관심은 박지성에게 쏠려있습니다. 경기 내내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처럼 지칠 줄 모르는 활동량을 선보이며 공수의 징검다리를 역할을 하던 모습은 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그가 필요한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 출전선수 명단을 알릴 때 울려퍼지던 일본 서포터들의 야유를 들으면서 한국 밖에서도 모두가 주목하는 키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고요,


박지성의 세레모니 또한 연일 화제였죠. 전반 선제골을 터뜨린 후 무심한 표정으로 관중석을 바라보던 박지성의 세레모니는 언론에서도 많이 궁금해했는데요, 저 역시 어떤 대답이 나올까 무척 궁금했답니다.


사실 그간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동료 선수들과 주로 얼싸안으며 세레모니를 하곤 했는데요, 가끔 손으로 심장을 두드리거나 아래에서 위로 올리면서 관중들을 ‘Cheer up’ 시키는 세레모니를 하기도 했지요. 예전에 A매치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손가락을 X자로 교차하는 세레모니를 했었는데, 그때 많은 기자들은 박지성을 기다리며 그 세레모니의 의미를 궁금해했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어떤 의미를 갖고 한 건 아니었는데...”였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의미가 있어보였어요. 그가 관중석을 물끄러미 쳐다봤을 때 경기장 내 일본 팬들은 침묵했으니까요. 그의 표정에서는 “봐라.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실력이고 투혼이고 저력이다”라는 뜻도 읽혀졌거든요.


이번에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대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보낸 야유에 답을 하고 싶었다는 박지성의 대답.

그 말 속에서 세계 무대 위에서도 담대하게 뛰던 모습이 떠올랐고,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게 성장한, 무거운 존재감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의 선수들은 그러한 야유를 들으면 부담을 갖거나 혹은 흥분하거나, 이렇게 극으로 갈리기 쉬운데 외려 침착한 모습으로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던 박지성의 모습에서는 냉철한 전략가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일전을 앞두고 가진 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 도중에는 “교토 퍼플상가에서 뛰던 10년 전보다 일본 대표팀은 확실히 약해졌다”는 발언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지요.

사실 1999U-20세계청소년축구대회 준우승, 2000시드니올림픽 8강, 2001아시안컵 우승을 거두며 2000대 초반 아시아의 축구강국은 일본이라는 여론이 지배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의 축구는 연일 진화하고 있지만 일본은 나카다 히데요시의 은퇴 이후 쇠퇴하고 있다는 게 대세입니다.

그런 가운데 박지성이 일본대표팀의 현 전력과 관련해 아주 냉정한 분석을 해줬네요. 알다시피 존경하고, 또 닮고 싶은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 또한 가져다주죠. 그런 점에서 박지성의 말은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됐을 거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한일전은 스포츠이기 전에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가 먼저 떠오르기에 국민들은 승리를 바라고,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선수들은 이겨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서 경기에 임합니다. 선수단 내 만연해있던 부담을 긍정의 힘으로 바꾼 박지성은 타고난 리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4강이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세운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일본만의 목표일 뿐 우리는 16강 진출이 목표라고 말했는데요, 그 간결한 대답에서 현실을 회피한 채 오리무중하고 있는 일본대표팀에 대한 나름의 비꼼(?)도 느껴져서 ㅎ 그 말을 들으며 혼자 지긋이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한데 박지성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일본대표팀의 수준이 10년 전보다 낮아졌다고 외신과의 인터뷰 도중 했던 말을 다시 하며 재확인해줬는데요,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항상 뭔가 민감한 질문에는 즉각적인 대답을 회피하던 박지성이었기에, 기자들도 “~ 때문에 ~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겠지, 하며 그의 대답을 늘 예상하곤 했거든요. 상대의 평가를 내리기에는 늘 조심스러워했고, 늘 잘한다고 칭찬했고, 정석에 가까운 말들만 하던 박지성이었죠. 할 말은 하되,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캡틴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난 한일전에서 전반 17분 이청용 혼다를 태클로 저지하자 심판이 휘슬을 불었죠. 그 다음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박지성이 주심에게 다가가 뭔가 이야기를 하며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이었죠. 주장은 선수를 대표해 심판에게 항의를 할 권리는 없다는 건, 피파 경기 규칙서에도 나오는 ‘룰’이지만 그래도 주장이라면 의도하지 않은 정당한 태클이었다며 심판에게 다가가 대표로 말하는게, 선수단 내의 암묵적인 또다른 ‘룰’이죠.

그간 경기장 내에서 늘 착했던 주장은, 2010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는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단순히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에 이청용 선수를 대신해 정당한 태클이었다며 얘기해준 것은 아니겠지요. 그간 다른 선수 뿐 아니라 본인이 반칙을 당해도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는 박지성이 지난 한일전에는 엔도의 백태클로 넘어지자 주심에게 왜 경고를 주지 않느냐는 제스처도 취해봤고요.

이뿐만이 아니죠. 박지성이 주장이 된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죠. 늘 정해진 시간에 다 같이 아침을 먹는 규칙도 자유롭게 먹는 걸로 바꿨구요, 당일 아침이 되야지만 통보되던 훈련 스케쥴도 전날 공지되는 걸로 바꿨죠. 선수들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위치에서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위치로 바꿨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혁신이었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가는 버스 안에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하는가하면 고개 숙인 채 끌려나가는 듯이 앉아 있던 라커룸 분위기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바꿔놓았습니다.

뭐든 즐기는 마음으로 해야 실력이 발휘될 수 있는 법이죠. 잘해야만한다는 생각이 중압감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양발을 묶는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작용하겠죠.


이번 월드컵은 사실상 그에게 마지막 월드컵입니다. 더 이상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다고 해서 그의 축구인생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박지성의 모습을 보며, 이번 남아공월드컵 이후 펼쳐질 박지성의 축구인생이, 저는 무척이나 궁금하고 또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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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10월 4일 오후 8시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가대표와 세네갈 국가대표와의 친선경기는 이청용, 오범석의 연속골을 앞세운 대한민국의 2-0 승리로 끝났습니다.

평일(수) 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는 3만 명이 넘은 관중들이 운집해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요, 선수들은 시원한 플레이로 주중에 어려운 시간을 마련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화답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이청용, 박지성, 박주영, 그리고 돌아온 차두리의 플레이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이들 모두는 볼튼, 맨체스터Utd, AS모나코, 크라이부르크에 적을 두고 있는 ‘해외파’들입니다.


이날 이근호와 함께 투톱으로 나선 박주영은 비록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힘과 높이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던 가나 수비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더군요. 예전 바람에 불면 날아갈 것만 같던 본 프레레 감독이 이를 보면 어찌 생각할까, 하는 재미난 궁금증도 들었습니다. 확실히 프랑스 리그 앙에서의 경험은 그를 한층 더 강한 공격수로 키워준 듯 했습니다. 프리킥 감각은 여전했고요. 전반 27분 아깝게 골포스트를 맞았지만 명실 공히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전담프리키커로서 자리를 꿰찬 모양세였습니다.

세네갈전 MVP에 뽑힌 이청용은 볼튼의 신성으로 떠오른 최근의 상승세가 대표팀에서도 그대로 이어진 듯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대표팀의 부동의 오른쪽 날개로 ‘굳히기’한 이청용은 이날도 활발하게 움직이며 공격의 물꼬를 텄는데요, 세네갈의 수비수들이 겹겹이 붙어도 빠르게 치고 달리며 볼을 살려내는데, 이청용 특유의 드리블과 키핑력은 대한민국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전반 내내 단짝 기성용에게 골 찬스를 만들어줬는데, 초반에는 최근 심적으로 겪은 부침이 컸던 까닭인지 기성용의 몸은 무거웠고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전반 42분 오른쪽 측면을 가뿐히 돌파하던 이청용이 왼쪽에서 따라 달려오던 기성용에게 패스했고 기성용은 그 짧은 순간에 정확하게 볼을 잡은 뒤 왼발로 슈팅,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늘 청용이와는 눈빛만 봐도 통한다던 기성용의 말처럼, 완벽한 호흡이 만들어낸 선제골이었습니다.

그리고 차두리. 근 3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언제나 차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로서는 이번 평가전이 꽤나 걱정스러웠을 법도 합니다. 대표팀 복귀전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여야 재차 부름을 받을 수 있을테니까요. 결론은 차두리의 복귀는 기대 이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스피드 말고는 볼 것이 없다던 냉혹한 비판에서도 자유로워진 모습이었고 공격 일선까지 올라갔다 재빠르게 수비에 가담하는 오버래핑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후반에 오범석 대신 교체되어 나갈 때 관중들은 차두리를 연호하며 기립박수를 쳤는데요, 그런 관중들에게 더 많은 박수를 유도하며 인사하며 나가는 차두리의 모습을 보며 모두들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답니다.

마지막으로 박지성. 공격포인트 없이 세네갈전을 마감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박지성의 헌신적 플레이는 여전히 현 대표팀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전반에는 왼쪽 날개로, 후반에는 중앙MF로 변신하였는데요, 박지성을 비롯한 세네갈전에 출장한 해외파들은 끝까지 볼을 살려내는 집중력과 키핑력의 수준이 상당해 한층 높아진 대한민국의 축구 수준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장에 오지 못한 분들을 위하여 현장의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세요. ^^


기성용의 첫골이 터지고 난 후...


경기 중 허정무 감독의 모습.


박주영이 나가고 염기훈이 들어갑니다.


오범석이 들어가고 차두리가 교체로 나갈 때,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쳐줬답니다. 차두리 역시 이에 화답하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박수를 치며 인사드렸죠.


이청용의 도움을 받은 오범석의 팀 2번째 골이 터지고...


FC서울 시절 절친이었던 고요한-이청용 라인. 이청용 대신 투입된 고요한은 이날 A매치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경기 종료 후 모습. MVP 탄 이청용. 관중들에게 공인구를 던져주는 선수들 등... 흥겨웠던 A매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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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겨울 이적시장 개장과 함께 나라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선수들이 일종의 ‘붐’을 이루고 있다.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해외진출지는 단연 일본이다. 기존의 용병 보유한도에서 아시아 국가선수 한 명을 추가로 영입할 수 있는 아시아쿼터제 시행과 ‘엔고 현상’에 탄력을 받아 조성환(포항→삿포로) 조재진(전북→감바오사카) 박동혁(울산→감바오사카) 이정수(수원→교토퍼플상가) 김진현(동국대→세레소 오사카) 등이 이미 대한해협을 건넜다. 연일 J리그행 뉴스가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또 한 곳, K리거들의 주요 이적 대상지로 오르내리는 나라가 있다.


멀게는 톨스토이와 차이코프스키의 고향으로 알려진, 가깝게는 히딩크 감독이 유로2008을 통해 다시 한 번 ‘마법’을 부린 그곳. 바로 러시아다.

러시아 커넥션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형태는 2002월드컵 이후 질과 양에서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다소 무모하게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빅 리그’로의 곧장 진출을 마냥 바라던 모습에서 차츰 ‘선배’ 설기현처럼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위성리그에 우선 진출해 실력을 검증받은 후 이를 발판으로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현실적 방향으로 수정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네덜란드, 프랑스, 포르투갈 등 ‘디딤돌’로 삼을만한 리그들이 주목을 끌기 시작했는데, 최근 러시아리그가 그중 하나로 급부상한 것이다.

2006년 울산 소속이던 현영민이 제니트에 진출한 이후 김동진, 이호(이상 제니트) 김동현(루빈 카잔) 오범석(사마라) 등 다수의 K리그 젊은 ‘재능’들이 러시아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오범석이 2008시즌 내내 주전으로 맹활약했고 김동진의 경우 비록 부상 때문에 마지막 방점을 완벽히 찍지는 못했으나 2007-08시즌 UEFA컵에서 팀이 우승하는데 일조하는 등 한국 선수들은 짧은 개척역사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남겼다. 물론 성공소식만 들린 것은 아니다.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 이후 벤치멤버로 밀린 현영민(울산)과 러시아 특유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김동현(성남)이 K리그로 유턴했고, 티모슈크에 주전 자리를 빼앗긴 이호 역시 K리그로 돌아왔다.

금번 이적시장에서 톰 톰스크가 조원희, 정경호, 신영록 등에 관심을 보이며 러시아리그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톰 톰스크는 지난 해 16개 팀 중 13위(7승8무15패/승점29)에 그치며 간신히 강등을 면한 중하위권팀으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부천(現제주)을 이끌었던 ‘신사’ 니폼니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K리그통’ 니폼니시 감독이 전력 강화 차원에서 정경호, 조원희, 신영록의 영입을 구단에 요구하며 K리거들의 러시아리그행 여부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오르기도 했다. (재정 악화에 따른 예산 축소로 신영록만이 “계약기간 1년에 연봉 40만 달러 조건의 구두계약에 합의”하는데 성공했으나 신영록은 최종적으로 터키로 기수를 돌렸다.)

유럽 리그의 블루칩
1992년 구소련 해체 이후 탄생한 러시아리그는 한국 뿐 아니라 유럽 축구계의 새로운 ‘블루칩’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이미 조(맨체스터 시티) 파블류첸코(토튼햄) 등이 러시아리그를 발판 삼아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고, 바그너 러브(CSKA모스크바) 아르샤빈(제니트) 등 유망한 선수들이 리그에서 활약했거나 활약 중이다. 2004-05시즌에는 CSKA모스크바가, 2007-08시즌에는 제니트가 UE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유로2008에서 러시아리그 소속 선수들이 주축이 된 러시아대표팀이 ‘4강 신화’의 기적을 쏜 것 또한 관심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찬란했던 구소련의 영광을 뒤로한 채 한동안 유럽축구의 변방으로 저평가되던 러시아리그가 이처럼 급부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역시나 프로스포츠에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 바로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2000년대 들어 러시아 최대 천연가스회사인 가즈프롬으로 대표되는 러시아 에너지 재벌들이 러시아 클럽들에 막대한 투자를 쏟기 시작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자금력을 등에 업은 러시아 구단들은 선수 영입에 아낌없는 금액을 투자했고 세계적인 선수들의 러시아행이 꼬리를 물었다.

K리그 선수들이 러시아리그에 강한 유혹을 느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러시아리그에 정통한 한 에이전트는 “K리그에서 3~4년 뛰어야 모을 수 있는 돈을 러시아에서는 한 시즌만에 받을 수 있다. 돈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선수는 없을 것”이라고 현실을 이야기했다. 빅 리그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는데다 높은 연봉까지 보장되는, 한마디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러시아리그인 것이다.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 다소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리그에선 외인 선수들의 비중이 높아 텃새가 심하지 않다는 점,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등도 국내 선수들을 유혹하는 요인 중 하나다. 현지적응 문제, 그중에도 특히 언어 문제는 해외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해결해야 할 큰 문제 중 하나인데 현지어가 아닌 영어로도 의사소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플러스요인이다. 리그 일정이 추춘제인 대다수 유럽 리그와 달리 봄에 시작해 초겨울에 끝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도 한국 선수들의 이적을 보다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조건 중 하나다.

진정 신세계인가
그러나 러시아무대를 마냥 장밋빛 신세계라고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다른 리그와 마찬가지로 러시아리그 역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도태되고 마는 잔혹한 ‘정글의 세계’인 까닭이다. 특히 한국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체격조건이 좋은 동구권 선수들을 상대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사마라FC에서 주전으로 활약 중인 오범석은 “선수들의 체격이 크고 경기 스타일 또한 꽤나 터프하다. 몸싸움 때 느껴지는 강도가 K리그와는 다르다. 잘못 부딪히면 십자인대가 파열되기 십상”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덧붙여 “바깥에선 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리그보다 저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러시아리그 빅4(CSKA모스크바, FK모스크바, 로코모티브모스크바, 제니트)의 수준은 유럽 3대 리그 클럽 못지않다. 이런 팀들과 경기를 치르는 가운데서도 꾸준히 실력을 발휘해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는 법인데,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을 앞두고 오범석의 경기력을 체크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던 대표팀 박태하 코치는 “러시아리그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더라. 경기전개 속도가 상당히 빨랐고 파워도 넘쳤다. 깜짝 놀랐다”고 말하며 오범석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축구 외적으로 시선을 돌리면 ‘외로움’이란 난제와 만나게 된다. 아직은 치안이 불안해 여가시간을 오로지 집에서 보내야 하는 것도 젊은 선수들에게는 고충이다. 다른 유럽국가처럼 교민사회가 발달하지 않은 곳이기에 같이 어울릴 한국인 이웃조차 없다. 오범석이 머물고 있는 사마라에는 한국인이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이 때 만나게 되는 내부의 적이 바로 외로움이다. 워낙에 낙천적인 성격을 자랑하는 오범석은 “요리도 하고 한국 TV드라마를 보며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제니트에서 한 시즌을 뛰고 돌아 온 현영민은 “하루에 운동하는 시간은 고작 1~2시간인데 나머지 시간은 할 일이 없었다.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힘들었다”며 이국 생활의 고통을 토로했다.

어려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럽에서 제일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어웨이 경기 때마다 해외 원정에 버금가는 긴 여정을 감수해야한다는 점도 선수에게는 큰 짐이다. 최근엔 국제사회의 기류 또한 심상치 않다. 얼마 전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주식에서 막대한 손해를 입으며 프리미어리그 구단주 재산 순위에서 3위로 미끄러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비단 아브라모비치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러시아리그의 부흥을 주도한 에너지 재벌들이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미국발 금융위기 한파에 직격탄을 제대로 맞은 상황이다.


당연히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리그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킨 ‘촉매제’ 톰 톰스크의 정경호, 조원희 이적설이 ‘없던 일’이 된 가장 큰 요인도 경기 침체로 인한 구단의 지출 축소 때문이었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두 감독만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는 러시아가 ‘신세계’로 자리 잡아 한국축구 해외진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선수들이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달콤한 유혹’이면서 넘어야할 ‘적잖은 장벽’도 있다는 사실이다. 덮어두고 무작정 나간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신세계가 어둔 터널에 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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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정과 망치로도 도통 깰 수 없는 얼음장을 보는 듯하다. 전 세계를 엄습한 경제 한파가 K리그에도 닥쳤다. 이적시장 문이 열린지 여러 날이 흘렀으나 현재 K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굳을 데로 굳어버린 얼음장 밑으로도 강물은 쉼 없이 흐르는 법. ‘큰 손’의 움직임은 확실히 줄어들었으나 와중에도 이적 소식은 꾸준히 들려오고 있다. 이번 겨울 ‘난 자’와 ‘든 자’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감의 특성상 모든 기준이 ‘1월15일까지’라는 점을 미리 밝히겠다. 따라서 이 시간에도 시나브로 진행 중일 겨울 이적시장의 중간동향 정리 정도로 보면 무난할 듯싶다.


여느 때보다 조용한
2009시즌을 대비한 K리그 이적시장은 지난해 12월24일 프로축구연맹이 자유계약(FA) 자격 취득선수 140명의 명단을 발표함과 동시에 실질적인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보통 각 구단들의 동계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월 중순 쯤이면 이적시장도 절정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 조용한 발걸음만 보일 뿐이다.

일단 K리그에서 대표적으로 알아주는 ‘큰 손’들이 이렇다 할 영입 없이 동면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겠다. 지난 시즌 챔피언 수원과 준우승팀 서울이 대표적인 예다. 경제 한파로 구단 예산이 줄어든 수원은 아직까진 ‘고요한 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수원은 마토(오미야)를 시작으로 이정수(교토) 박주성(센다이) 안효연(전남) 안영학(재계약포기) 등 주전 및 준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여기에 재계약을 천명했던 신영록, 조원희 등도 FA자격을 획득을 무기로 해외진출을 노리고 있는 중이다. 1군 선수들의 무더기 이탈이 이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를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원이 아니다. 물론 4년 만에 우승컵을 든 차범근 감독 마저 자신의 연봉을 자진 삭감했을 정도로 구단의 씀씀이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기에 대어급 선수들의 영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주전급 선수들을 활용한 트레이드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 AFC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해야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챔스와 K리그 제패를 동시에 노리고 있는 욕심 많은 수원이다. 따라서 이적시장 문이 닫히기 전까지는 성급히 결론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이 조용한 이유는 다소 다르다. 최원권을 광주로, 이을용을 강원으로 각각 떠나보냈지만 부상과 군 입대 등을 이유로 전열에서 이탈했던 선수들이 상당수 복귀하며 선수보강이 충분히 이뤄진 까닭이다. 심우연, 고명진, 이종민 등 부상으로 지난 시즌 많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던 선수들이 회복했고 김승용, 한태유, 여효진, 박동석 등 입대 전 주전급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이 지난해 11월 상무에서 전역하며 팀에 합류했다. 여기에 이청용, 기성용 등 꾸준히 성장 중인 젊은 선수들의 활약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이 지금까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침묵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고요속의 분주함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가운데도 판을 벌인 팀들도 있다. 감독 교체 후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 작업을 진행 중인 성남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명실 공히 팀의 ‘레전드’라 할 수 있는 신태용을 새 감독으로 앉힌 성남은 대대적인 방출과 영입 과정을 통해 개편작업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브라질 듀오 두두와 모따의 방출을 확정지었고 김상식, 김영철, 박진섭 등 베테랑들과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이동국에게 결별을 통보했다. 그러나 이동국, 김상식을 내주는 조건으로 전북으로부터 문대성과 홍진섭을, 인천으로 손대호를 보내는 대신 라돈치치를, 마지막으로 제니트로부터 이호를 영입해 세대교체와 누수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최근 2년 간 선수단에 역동적인 변화를 줬던 전북은 올 시즌에도 이적시장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공격의 재구성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재진(감바 오사카) 정경호(강원) 홍진섭, 문대성(이상 성남)을 떠나보낸 전북은 이동국(前성남)을 영입한데 이어 에닝요(대구)에도 손을 잡으며 공격진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시도하고 있다. 올 시즌 처음으로 K리그에 뛰어드는 강원FC 역시 선수 영입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미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23명의 선수들을 영입한 강원은 이을용(前서울) 정경호(前전북) 등 연고지역 출신의 스타 선수들은 물론 문주원(前대구) 김진일(前부산교통공사) 오하시 마사히로(前가와사키 프론탈레) 등 주전급으로 활용 가능한 선수들까지 팀에 합류시키며 다가오는 첫 시즌을 대비하고 있다.

그간 골키퍼 포지션이 다소 취약했던 것으로 평가받았던 경남과 대구는 각각 김병지(前서울)와 조준호(前제주)를, 스트라이커 부재에 시달렸던 전남은 정윤성(前경남) 안효연(前수원)을 영입하며 부족한 2%를 채웠다. 부산 역시 팀의 ‘아이콘’ 안정환의 이적에 대비해 공격수 보강에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양동현(前울산)과 호물로(前제주) 영입에 성공했다. 인천 역시 팀을 대표하는 공격수였던 라돈치치(現성남)와 방승환(現제주)을 떠나보냈지만 국가대표 출신의 미드필더 손대호(前성남)와 호주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제이드 노스(現뉴캐슬 제트)를 영입하여 중원과 수비라인 강화를 꾀했다.

아시아 쿼터제 후폭풍
이번 이적시장 최고 키워드는 단연 ‘아시아쿼터제’다. 기존 용병 한도 3명에 AFC 회원국 선수를 별도로 1명 더 둘 수 있는 ‘아시아쿼터제’가 적용되는 원년인 만큼 아시아쿼터제 승차권을 이용한 선수들이 꽤나 많았다. 특히나 K리거들의 J리그 대이동이 현실로 나타난 겨울 이적시장이었다. 박동혁, 조재진(이상 감바 오사카) 이정수(교토) 박원재(오미야) 박주성(센다이) 조성환(삿포로) 등이 일본행을 택했다. 비단 K리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U-20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U리그에서의 활약으로 대학 유망주로 손꼽히던 정정현(쇼난 벨마레) 포르투갈리그에서 뛰었던 김병석(야마가타) 내셔널리그 부산교통공사의 유효진(요코하마FC) 등 많은 선수들이 대한해협을 건넜다. 특히 주목할 것은 1·2부에 상관없이 일본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J2리그는 유망주들의 진출 무대쯤으로 여겨졌으나 이번 이적시장에선 박주성과 조성환처럼 K리그에서 준주전급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의 진출 또한 이뤄졌다는 특징을 보였다.

물론 K리그 내에서도 아시아쿼터제 시행으로 인한 ‘진출’ 못지않게 이를 대비한 ‘영입’도 활발히 전개됐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은 팀이 바로 인천이다. 인천은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호주 대표로 활약했던 수비수 제이드 노스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올해 27세인 노스는 1998년 데뷔 이후 10년 간 호주 A리그에서만 202경기에 출장했던 잔뼈 굵은 선수다. 노스의 합류는 세대교체 이후 젊어졌지만 경험 부족이 문제로 지적되던 인천의 수비라인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팀들 가운데서는 수원이 가장 빨리 움직였다. 이정수, 마토 등 주축 수비수들의 이탈에 대비해 ‘중국의 홍명보’로 통하는 리 웨이펑을 영입한 것이다. 차범근 감독이 선전 핑안에서 지휘봉을 잡던 시절 선수와 감독으로 만난 인연이 이적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은 애들레이드에서 베테랑 수비수 사사 오그네노프스키를 데려와 김상식과 김영철의 공백을 메웠으며 신생팀 강원 역시 가와사키의 주전 미드필더 오하시 마사히로를 영입, 스쿼드에 노련함을 가미했다.


이들의 합류는 그간 브라질 선수들이 대세를 이루던 K리그 외인 선수 판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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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년 전, 2006년 11월이 생각납니다. 성남과의 결승 2차전. 당시 수원은 1차전 0-1 패배를 극복하지 못한 채 홈에서도 패하며 안방인 '빅버드'에서 성남의 우승 세레모니를 지켜봐야했습니다.

수원 선수들에게는 지금도 잊고 싶은, 꽤나 아픈 기억이죠. 그러나 절치부심했던 시간들 덕분이었을까요.




에두의 선제골, 정조국의 PK 만회골에 이어 수원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옵니다. 키커는 수원의 주장 송종국 선수. 그러나 송종국 선수의 킥은 골키퍼 김호준 선수에 막히고 마네요. 그러나, 결자해지라고 송종국 선수는 튕겨 나온 볼을 향해 재차 슈팅을 시도했고 결국 역전 결승골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수원 선수들은 중원에서부터 확실하게 서울을 봉쇄했고 경기는 2-1 수원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2004년 이후 4년 만에 만난 우승컵 아래서 수원 선수들과 차범근 감독은 활짝 웃으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죠. 다음은 결승 2차전이 끝나는 순간까지 관중석에 앉아 찍은 영상입니다.



경기 종료 후 수원 선수들을 만났습니다. 송종국 선수는 중원에서 키맨으로서 제 역할 이상을 해줬죠. 조원희 선수의 투지가 빛났던 것은 중원에서 볼 배급을 원활히 해줬던 송종국 선수의 존재 덕분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물론 조원희 선수 역시 기성용 선수와의 1대 1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고 비단 기성용 선수 뿐 아니라 서울의 패스를 바로 바로 커트하는 등 1차 저지선으로서 완벽한 플레이를 선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에두 선수는 또 어떻고요. 서울의 데얀 선수가 마토-곽희주 두 센터백에 연방 밀리며 아무런 힘도 보여주지 못할 때, 에두 선수는 측면에서 중앙을 향해 폭넓게 움직이며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이 에두 선수과 데얀 선수의 차이였죠.

노장 김대의 선수는 효과적으로 공격 시발점이었던 이청용 선수를 막아냈고 홍순학 선수 역시 1차전에서의 부진을 거울삼아 횡으로 활발히 움직이던 아디 선수의 오버래핑을 막는데 주력했습니다. 마토-곽희주 콤비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겠죠. K리그 최고의 수비수들이라는 걸요. 저는 풀백으로 나섰던 이정수 선수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부상 때문에 근 몇달을 결장했던 그는 사실 정규리그 말미에 경기에 나설 수 있을 몸이 돼있었답니다. 그러나 혹시 또다시 부상이 재발해 챔피언결정전에 나서지 못할 일이 발생할까봐 벤치를 지켰고 결국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 복귀하며 모두를 깜짝 놀래켰죠. 최성환 선수가 이정수 선수의 공백을 잘 메웠다고 생각하나 그래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측면에서 돌아들어가며 공격을 노리던 서울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마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공은 이정수 선수가 세우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과 실력이 더해져 수원은 결국 2008 K리그 우승팀의 영광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이 모든 공을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에게 돌리던 선수들의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09년 아시아의 챔피언 수원삼성을 기대해봅니다.

마지막으로 1년 동안 2008시즌만 생각하며 뛰었던 K리그 모든 선수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그동안 멋진 경기를 보여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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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챔피언결정전은 늘 빅매치일 수밖에 없겠지만 근래 들어 이보다 더 큰 빅매치는 없을 듯 합니다. 12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8 K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 FC서울과 수원삼성과의 경기가 바로 그랬죠. 평일 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 최다 관중인 3만9011명이 몰렸으니 그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방증이겠죠.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어 푸드코드에서 식사하는 데만 40분의 시간이 걸렸답니다.

 

경기 초반만 해도 상대적으로 빅매치 경험이 적은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서울이 수원에 다소 밀리는 듯한 양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골이 모든 것을 말하죠. 전반 21분 기성용 선수가 왼쪽 코너킥 라인에서 찬 공을 아디가 솟구쳐 골대 오른쪽을 향해 밀어 넣었습니다. 수원 수비수들과 이운재 선수 모두 손 놓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손써볼 틈도 없이 선제골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승기는 서울이 잡은 듯 했죠. 중앙에선 조원희 선수가 전방에선 에두가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중원에서 패스미스가 계속 됐고 볼배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에두-신영록 투톱이 할 수 있는 건 없었죠. 에두는 계속해서 움직이며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듯 했지만 신영록 선수는 안타깝게도 의욕만 앞서는 듯 하더군요.

한골을 헌납한 뒤 수원은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전환했고 전반 내내 수원의 플랫4는 다소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부상에서 회복해 오랜만에 출전한 이정수 선수는 다행히 시간이 지날 수록 안정된 수비력을 펼치더군요. 옆에 있던 전남 송정현 선수는 이정수 선수를 가리키며 후반전에는 더욱 나아진 움직임을 선보일 것이라 평하더군요.

후반 들어 서울은 데얀을 뺀 뒤 이을용 선수를 투입하며 4-4-2에서 4-5-1로 전형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수원은 배기종, 이관우, 최성현을 차례로 투입시키며 적극적으로 ‘공격 앞으로’을 외쳤죠. 그 덕분이었을까요. 후반 34분 마토의 헤딩슛을 서울 김호준 골키퍼가 쳐냅니다. 그리고 튀어 나온 공을 곽희주가 재차 넣어 극적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리하여 1-1 무승부로 챔피언결정전 1차전 혈투는 끝이 났죠.

경기 종료 후 양팀 감독과 양팀 수훈선수인 곽희주 선수와 기성용 선수의 공식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이날 기성용 선수가 제일 마지막에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요, 많이 힘들었는지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앉아 있더군요. 옆에 있던 구단 프론트는 열심히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고요. 남은 마지막 힘을 쏟아내며 90분 풀타임을 소화했으니 기운이 없을 수 밖에요. 괜히 안쓰럽더군요. 그런데 그 와중에 차범근 감독은 “이청용은 전반 잠깐 반짝했지만 기성용은 나중에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죠.

잠시 후 기성용 선수에게 차범근 감독의 혹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담담히 오늘 몸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더군요. 하나 속은 꽤나 쓰렸을 듯합니다. 후반 89분  자신이 시도했던 중거리슛이 그대로 결승골로 연결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자, 이제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는 일요일 2차전에서 우승 트로피의 향방이 갈리게 되는군요. 어느 팀이 마지막 순간 웃을지 무척 궁금하고 또 기대가 큽니다. 블로그 독자들을 위해 오늘 현장에서 건진 따끈따끈한 영상, 편집해서 올려드립니다. ^^






경기장에 3시간 동안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오리털 파카와 목도리, 장갑을 챙겨가지고 왔지요.

기자들에게는 치킨과 라면이 제공됐답니다.

그런데 기자들에게 나눠준게 또 하나 더 있었어요. 뭘까요?

바로 바로 소녀시대 포스터! 이걸 왜 나눠줬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ㅋ 후배는 완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더군요. ㅋ

K리그 우승컵입니다. 작년부터 이 모델을 사용하죠. K리그 엠블럼을 상징해서 만든 우승컵입니다.

평일 저녁이었는데도 관중이 참 많이 왔어요.

건너편에도 관중이 정말 많더라고요.

줌 기능을 이용해서 찍어보니... 역시 많군요.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도 많았어요. 정신없이 깃발 흔들며 응원 중입니다.

중무장한 꼬마도 보였어요. 어찌나 FC서울을 열심히 응원하던지요.

이렇게 아들과 같이 온 어머니도 보였습니다. 유니폼을 나란히 입고 응원하는 모자의 모습이란. ^^ 저도 부럽더군요.

FC서울 구단에서 팬들에게 빳빳한 종이를 나눠줬는데 이렇게 접으면 부채가 되더군요. 잡고 흔들면 소리가 났어요. 아이디어 굿~

나눠준 종이를 펴면 요렇습니다.

출전선수 명단. 정규리그와 컵대회 멤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었죠.

FC서울에서 깃발섹션을 펼쳐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면 종이가 아니고 깃발임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수원 그랑블루는 역시나 언제나처럼 멋진 카드섹션을. ^^

그랑블루가 '패륜송'을 부르자 '메롱'이라 적힌 판넬을 들더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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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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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과 J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만나 한판 대결을 가졌습니다.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올스타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올해 처음 갖는 이 경기를 차마 놓칠 수는 없었기에, 또 실로 오랜만에 열린 또 하나의 '한일전'인지라  저는 자비를 털어 비행기를 타고 도쿄까지 날아 갔습니다.



그런데 올스타전이 코앞인데도 도쿄에서 저는 관련된 행사 포스터를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2006년 클럽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도쿄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거리 곳곳에는 대회 관련 홍보물이 넘쳐났죠. 때문에 이번에는 너무 홍보에 무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시합 당일엔 2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고 그래서 정말 깜짝 놀랐답니다. 한데 특이한 점은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올스타전’이라는 특별한 경기 같은 경우 그간 K리그 연맹에서는 경기 시작 전과 전반전이 끝난 하프타임 때, 이렇다 할 공연이나 행사 같은 것들을 마련하곤 했답니다. 그런데 J리그 연맹에서 모든 것을 준비한 이번 올스타전에서는 그런 이벤트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을 소개하는 영상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경기는 초반 J리그 올스타전 선수들이 지배하는 양상이었으나 행운의 여신은 우리 편이었습니다. 선제골은 최성국 선수의 몫이었습니다. 전 일본 관중들로 둘러싸였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이 들어갈 때마다 벌떡 일어나서 마구 마구 소리를 질렀답니다. 그때마다 저와 제 친구들을 둘러싸고 있던 일본 관중들은 그저 침묵할 뿐이었죠. 그래서 원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인가 보다 했는데 3-0으로 지고 있다가 1골을 만회하자 다들 소리치며 좋아하더군요. 저처럼 벌떡 일어섰던 관중들도 있었습니다. ^^

K리그 올스타 선수들은 독도문제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 이 시점에서 일본에게 절대 질 수는 없다며 정말 이를 악 물고 뛰었다고 하더군요. 최성국 선수는 첫 골을 성공시킨 후 총을 쏘는 시늉을 했는데 다분히 독도문제와 관련한 ‘의미’가 있는 세레모니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경기 종료 후 "이번 올스타전을 통해 한일 양국의 축구가 서로 돈독하게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던 최성국 선수의 발언처럼,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에서만 끝내서는 안되겠죠.

어쨌거나 일본 적지에서 무려 3골이나 터뜨리며 시원하게 이긴 모습은 정말 ‘더위’를 한번에 날려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별중의 별, K리그 올스타선수들은 역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들이었습니다.

중계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던 뒷풍경들, 한번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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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종료 후 일본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던
일본 꼬마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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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18경기(15승3무) 무패행진을 이어오던 수원이 FC서울에 0-1로 패하며 시즌 첫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FC서울은 전반에 터진 이승렬의 결승골 덕분에 컵 대회 7경기만에 첫승을 거뒀을 뿐 아니라 수원전 5연패의 사슬까지 함께 끊었죠. 지난 경기에서 귀네슈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 출전정지를 받은 까닭에 벤치를 지키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선수들에게는 '힘'으로 작용, 마지막까지 수원에 1골로 허락하지 않는 뒷심을 발휘하게 만들었지요.

아무래도 라이벌로 비교되는 FC서울에게 당한 패배였기에 더 속상했나봅니다. 종료 직전 이정수 선수는 이대로 패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온 몸을 아래로 떨군 채 있더군요. 그런가하면 경기 내내 FC서울의 골문을 노렸지만 마지막 방점을 찍지 못했던 수원의 젊은 공격수 서동현과 신영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라커룸으로 들어갔습니다. 김대의 선수는 기자들 앞에서 열심히 목소리 높여 경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모습에서 아쉬움이 읽혀졌습니다. 통곡의 벽 마토를 비롯해 곽희주, 양상민 등 수비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이탈하는 바람에 왼쪽 풀백으로 나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던 김대의로서는 그럴 수밖에요.

수원 선수들의 슈팅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지독히도 운이 따라주지 않더군요. 또 무엇보다 FC서울의 두 선수, 수문장 김호준과 센터백 김진규이 너무 잘했습니다. 그들의 몸을 날리는 선방이 있었기에 FC서울은 실점하지 않았죠. 경기 후 만난 김호준 선수는 “너무 기분 좋아요. 오늘 최고에요”라고 말하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더군요.


FC서울 주전 이청용 선수는 “그동안 킥으로 시작되는 공격에서 주로 당했는데 오늘은 그 부분을 보안했습니다. 덕분에 경기력에서 밀리지 않았고 볼 점유율면에서도 저희가 더 높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수원이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었기에 우리가 이를 끊고 꼭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 컸고 때문에 다른 경기보다 더 많이 집중했습니다”라고 덧붙였죠.



참, 오늘은 후반전에 통증을 호소하며 풀썩풀썩 쓰러지는 선수들이 다른 때부터 많았답니다. 덕분에 추가시간이 무려 '7분'이나 주어졌죠. 지금껏 제가 본 수많은 경기들 중에서 가잔 길었던 추가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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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K-리그에서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전 김두현 선수가 좋았습니다. 경기 중 관중석을 바라보며 간간히 보여주던 환한 눈웃음과 그때마다 가지런히 빛나는 하얀 치아가 좋았습니다. 팬들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먼저 인사해주던 그의 성품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김두현만의 자신감이었습니다.



2006년 초 다음과 같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올해도 K-리그 베스트11에 뽑힐 수 있겠어요?”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죠. “올해도 작년처럼 열심히 하면 3년 연속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열심히 뛰는 것만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렇게 그저 '열심히'만 뛰던 이 사람은 결국 해냈죠. 2006 K-리그 MVP의 최종 주인공은 우리들의 영원한 꾀돌이 김두현 선수였습니다.

다시 1년의 시간이 흐르고 2007년 시즌이 찾아왔습니다. 그때도 그는 제게 이렇게 말했지요. "올해도 열심히 해서 4년 연속 K-리그 베스트 11에 꼭 뽑히겠어요. 지켜봐주세요"라고요. 그리고 2007년 그는 또 다시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며 자신의 실력을 다시 한 번 모두에게 입증했죠.

그런데 그가 중대한 결심을 했다고 고백하더군요.

“모따가 종종 제게 말했어요. 왜 아직도 여기 있냐면서요. 외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거라며 꼭 도전해보라고 조언해 줬어요. 그런 말들을 통해 자신감을 많이 얻었죠. 자극도 많이 받았고요. 그러다 2006년 말 K-리그 우승컵과 MVP를 동시에 거머쥐면서 생각했죠. ‘그동안 K-리그에서 뛰면서 참 많은 것을 이뤘구나. 이젠 나가야할 시간이다’라고요. 제겐 큰 전환점이 된 순간이었어요.”

그는 K-리그 경험을 발판으로 더 크게 도약하겠다고 말했죠. 웨스트 브롬위치에서 테스트를 받기로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누군가는 그랬어요. K-리그 MVP 출신이 테스트를 받으면서까지 가야하겠냐고요. 그렇지만 전 그런 자세로는 절대 해외진출에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축구 종주국이 아니에요. 월드컵 4강에 올랐지만 그렇다고 아직 축구 강대국도 아니고요. 그렇기 때문에 K-리그 선수들의 실력은 아직 검증받지 못한 상태죠. 속상하지만 이를 인정해야해요. 그리고 하루 빨리 우리 스스로 수준을 높여야겠죠. 그래야 비디오 혹은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 하나만으로 뽑히는 날이 올테니까요.”



결론은 다들 아시죠? 입단 테스트를 통과한 김두현은 그로부터 6개월 후인 지난 5월 결국 웨스트 브롬위치와 2년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웨스트 브롬위치가 프리미어십에서 우승하며 1부리그에 진출했으니 드디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5번 째 선수가 됐군요. 그 사실만으로도 대단한데 이번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하며 골가뭄에 허덕이던 한국대표팀에 ‘단비’가 돼줬네요. 문득 인터뷰 도중 그가 제게 했던 말이 생각합니다.

“중학교 때 숙소 앞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어요. 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 때까지 참고 견디며 노력하자. 그 문구를 보며 운동했는데 정말로 현실이 돼서 나타났어요. 정말 기분 좋았죠. ‘나도 이제 대표구나’ 하는 사명감도 생겼고요. 경기가 끝났는데도 다시 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넘쳤어요. 늘 그때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며 뛰려고 해요.”

지금도 김두현 선수는 처음 국가대표가 됐던 순간, 태극마크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A매치에 데뷔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의 해트트릭 비결은 바로 ‘초심’에 있는 게 아닐까요? 물론 그의 해트트릭은 공수를 아우르는 기동력, 너른 시야, 남다른 슈팅력 등등 그가 가진 장점들이 잘 어우러진 덕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전 ‘처음의 마음’을 지금도 잊지 않는 김두현 선수만의 근성이 지닌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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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박지성 선수의 선제골과 박주영 선수의 PK골로 전반 2-0으로 앞서갔지만 후반에 내리 2골을 내주며 결국 2-2 무승부로 경기는 끝이 났습니다.

동점골이 터지자 하산 압델 파타는 유니폼까지 벗어 던지며 기쁨을 표현하더군요. 2골 모두 자신의 발끝에서 터졌으니 그럴 수밖에요. 때문에 경고 카드를 받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습니다.


믹스트존에서 우리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요르단 선수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렸습니다. 요르단 선수들은 일부러 보란 듯이 믹스트존에 있던 문을 활짝 연 다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더군요. -.-;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난 우리 대표팀 선수들. 대부분 고개를 푹 숙인 채 갔고 기자들 역시 그 마음을 이해하는지라 꼭 멘트가 필요한 선수들에게만 가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지막에 나타난 박지성 선수는 대부분 기자들이 김남일 선수에게 몰린 틈을 타 조용히 가려했으나 결국 그를 발견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를 해야만 했지요.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박지성 선수의 인터뷰가 궁금하신 분들은 동영상을 확인해보세요. 마침 박지성 선수가 제 앞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정면에서 박지성 선수의 멘트를 딸 수 있었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떠난 후 믹스트존을 나서려는데 요르단 축구협회 관계자 분께서 우리 한국 기자들에게 요르단 기념품을 선물로 나눠줬습니다. 제 재킷 왼쪽 깃에다가는 특별히 요르단 배지를 달아주시더군요.



물론 선물을 주는 그 마음에는 감사했으나 2-2라는 스코어 때문에 씁쓸한 마음으로 경기장을 나섰습니다. 열심히 뛰었으나 막판 뒷심 부족으로 2골을 헌납한 우리 대표팀 선수들의 마음은 또 오죽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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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삼성의 질주가 무섭습니다. 지난 주말 수원은 서동현, 박현범의 연속골로 제주를 2-1로 제압했습니다. 이로써 8연승(컵대회 포함) 및 10경기 연속 무패(9승1무)로 새롭게 기록을 갱신했죠. 그간 K리그 최다 연승기록은 2002년 성남이 세운 9연승입니다. 수원이 이 기록을 깰 수 있을지도 자뭇 궁금합니다.



전문가들은 수원의 이같은 연승행진 비결을 '안정된 포백(송종국-곽희주-마토-이정수)'과 '신인(조용태, 박현범) 및 준신인(서동현,신영록)의 활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장을 찾은 저는 또바른 비결로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꼽고 싶군요. 차범근 감독도 이를 인지했는지 경기 후 갖은 인터뷰에서 "오늘 우리가 이길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원삼성을 향한 수원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동영상으로나마 전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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