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었을까요. 1996년 K-리그 데뷔 이후 줄곧 수원에서만 뛰었던, 그리고 지금도 뛰고 있는 원클럽맨 이운재의 은퇴 경기는 수원의 홈구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이것 역시 운명이었을까요. 전반을 무실점으로 마감하며 슈퍼 세이브를 보고 싶었건만 전반 26분 나이지리아에 1골을 내주며 바로 정성룡과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전반 중반 교체되면 보통은 벤치에 앉아 경기를 보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운재는 곧바로 락커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웬지 눈물을 속으로 삭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맺히는 눈물을 보여주기가 싫어 락커룸으로 가고 있다고, 그의 뒷모습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축구를 보았던 제게, 이운재는 언제나 국가대표팀 골키퍼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서 정성룡이 주전자리를 꿰차고 나왔을 때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겠지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고요.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운재는 이번 나이지리아전까지 17년 간 붉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A매치 공식기록은 132경기 114실점. 홍명보 감독(136경기)에 이어 최다 A매치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국내 GK로서는 최초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며 화려하게 빛났었죠.

1994년 월드컵 독일전에서 하프타임에 교체 출전해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데 이어 2002년과 2006년, 2010년 이렇게 4번의 월드컵을 대한민국 대표선수로서 치렀습니다. 2000년과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대한민국을 3위로 이끌기도 했고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이운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 다들 같을 것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내고 씩 웃던 장면이요. 제가 기억하는, 이운재의 가장 섹시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는 이란과 8강전에서 마다비키아의 승부차기를 막아내 대한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고 3-4위전에서는 일본의 여섯 번째 키커 하뉴의 슛을 선방해 3위 트로피를 조국에 안겼죠.

위기의 순간마다 대한민국을 승리로 이끈 해결사 수문장이었지만 관심과 사랑이 컸던 만큼 비난과 구설수도 많았습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때아닌 몸무게 논란이 일어 ‘돼운재’라는 별명과 함께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 영웅이 되어 돌아왔지만 뒤늦게 음주사건이 터졌고 대표팀 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로서 서는 마지막 순간 이운재는 행복했다고 소회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뛰어서,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습니다”라고요.

이제 파주에 소집돼 훈련을 소화하는 것도, 대표팀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 것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겠죠. 파주 가는 길도 며칠 전 그 길이 마지막 길이 되었죠. 그는 애써 참았지만 우리는 보았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던 그 순간 이운재가 흘린 눈물을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7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대표로 뛴다는 건요.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했겠죠. 하지만 그 세월동안 늘 몸무게 논란이 꼬리표처럼 이운재를 따라 다녔고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라는 조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가 17년 간 대한민국 골문을 책임질 수는 없었겠죠. 그 중압감에 무리한 다이어트로 2년간 결핵을 앓아야만 했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건너 뛰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얼마 전 수원에서 함께 뛰고 있는 한 선수가 제게 그랬습니다.

“운재 형을 보면 정말 안스러워요. 워낙에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식사시간에도 마음 놓고 밥을 못드세요. 저희가 먹는 딱 절반만 식판에 올려놓고 먹는 거 보면 저렇게만 먹고 배가 찰까?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데, 그런데도 형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시는 거 있죠.”

국가대표 선수라는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았습니다. 물론 당분간은 K-리그에서 당신을 볼 수 있겠죠. 여전히 수원맨이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은 가져도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 먹고 싶은 음식들, 조금씩 드셔보세요. 여자 주먹만큼만 밥 먹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요.

마음껏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밥 먹는 이운재,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대한민국 골문을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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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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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ultraion.tistory.com BlogIcon 리얼라이즈 2010.08.12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운재 선수 대학시절 "저런 뚱뚱한골키퍼.."라는 유형의제목으로 기사가나온적이있죠ㅋ 전수원팬이니 활약은좀더 볼수있을듯합니다ㅋ

    • Favicon of https://helenadream.net BlogIcon Helena. 2010.08.13 0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클럽에서 계속 볼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요. 계속 응원하며 지켜볼 수 있어서 수원팬들은 그래도 다행이고 행복할 거 같아요.

  • 2010.08.12 1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helenadream.net BlogIcon Helena. 2010.08.13 0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눈물을 꾹꾹 참는게 보여서 보던 저도 마음이 아리더라고요. 수원에서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된다면 그땐 정말 많이 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는 여자고요... ^^ 그런데 성격은 굉장히 남자 같아서 블로그에 오신 분들이 남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요 서동현 선수랑 이상돈 선수 강원에서 적응 잘하고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는 심적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들었고 아무래도 수원보다는 전력이 약하다보니까요. 그래서 팀의 중심으로 구단에서도 많이 대우해주고 있어서 책임감도 느끼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대요. 그렇다고 수원이 가족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말은 아니고... ㅎ

      여기가 지방이다보니 뭔가 지방 특유의 정감 어린 분위기가 있어요. 제가 서울사람이라서 저도 느끼곤 했는데 선수들도 느꼈더라고요.

      최근에 서동현 선수 경기 못보셨죠? 강원 원정경기 때 한번 보세요. 굉장히 움직임이 부드러워졌고 슈팅도 정확해졌고 축구 천재의 부활이라고 저는 요즘 생각하고 있답니다. ^^

  • Favicon of http://inblue29.blog.me BlogIcon 미스트 2010.08.12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8년즈음부터 수원팬이었던 제게는, "골키퍼=이운재"였습니다. 잠깐잠깐 바뀐 적도 있었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죠. 당연한 것만 같았던 것이, 어느새 바뀔 때가 되었네요.
    아직은 어색합니다.

    이운재와 함께하는 동안 저역시 정말로 행복했다고, 저도 선수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

    • Favicon of https://helenadream.net BlogIcon Helena. 2010.08.13 0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늘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이제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니 저도 어색하고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번 강원 원정경기 때 이운재 선수를 유심히 지켜보려고요. 이젠 K-리그에서 우리와 함께 할 날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이운재 선수는 안티팬도 많았지만 수원팬들에게는 꽤나 특별한 선수잖아요. 수원의 별 4개를 안겨주신 분인데... 팀의 레전드 중 레전드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수원 홈에서 은퇴 경기를 치르게 된 것도 저는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미스트님 강원 원정경기 때 오시나요? 그때 괜찮으면 오프라인에서도 얼굴 보고 인사하고픕니다. ^^

  • Favicon of http://nalokubi.tistory.com BlogIcon Nalo Kubi 2010.08.12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돼운재라는 소리를 사람들이 할 때는 조금 안쓰럽더라고요.

    글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helenadream.net BlogIcon Helena. 2010.08.13 0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인도 그 별명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듣지 않기 위래 노력을 많이 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마음을 우리도 알아줬음 좋겠고 이제는 그 상처에서 조금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고요.

      글 잘 읽고 가셔서 감사합니다. ^^

  • Favicon of https://sejin90.tistory.com BlogIcon 이세진 2010.08.13 0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2월드컵때부터 대한민국 대표팀의 골문은 당연히 이운재 골키퍼의 몫이였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는게 새삼 놀랍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새로운 골키퍼들의 치열한 경쟁을 볼 생각에 설레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No.1 이운재 골키퍼, 그동안 넘 수고하셨습니다.
    클럽팀 수원에서, 그리고 후배양성을 위해서 꾸준한 활약 해주시기를....^^

  • 이 글을 2010.08.13 0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읽으니 이운재 선수에 대해 제가 그동안 경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운재 선수 정말 수고 많으셨고, 고마웠다는 말 하고 싶어요.

  • 아직 선수경력 끝난게 아닙니다.. 2010.08.13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원팬으로써 솔직히 제목이 기분나쁘네요..
    단지 국대에서만 은퇴한 것일 뿐이지 프로선수로서
    아예은퇴한게 아닙니다..
    이운재 선수는 국가대표에서도 전설이지만 수원에서도
    전설입니다..그리고 국대처럼 이제 기억속에서만 남아있는
    게 아니라 수원에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아직 수원에서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 무너진 수원성을 다시 쌓아야 하시구요.
    그리고 아시아챔피언의 자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이제 밥 많이 먹으라니..
    그럼 아예 선수생활 접으라는 건가요?
    수원은 내팽겨치라는 건가요?
    사과하세요...

  • Favicon of http://inblue29.blog.me BlogIcon 미스트 2010.08.13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재선수가 꼭 강원원정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전 좀더 오래 보고 싶네요.
    제블로그의 답글 확인해주시고^^, 강원 원정은 1박 2일로 가게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