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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K리그 선수들은 군입대를 앞둘 때 거의 대부분 상무 축구단의 문을 두드렸다. 정해진 수순과도 같았다. 그러나 김두현은 달랐다. 2010년 가을 경찰청 축구단에 원서를 내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K리그 MVP, 국가대표, 프리미어리거 등 화려한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잘나가던 K리그 김두현의 뒤를 이어 2010년 겨울에는 국가대표 출신의 염기훈과 2006년 염기훈과 함께 신인왕 경쟁에 나섰던 배기종, 그리고 2009년 K리그 신인왕 출신의 김영후가 경찰청에 입대했스타의 경찰청행은 파격이라는 단어 말고는 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상무팀은 K리그에 참가하기 때문에 비록 군팀이지만 꾸준히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한데 경찰청 축구단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R리그와 내셔널리그선수권대회 등에서만 뛰면서도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예전과 같은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까, 등의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두현은 잘해냈다. 김두현은 R리그의 메시라는 별명처럼 K리그 샛별들과의 대결에서 한차원 다른 플레이를 선보이며 모두를 놀라게 했고 다른 K리그 선수들에게는 경찰청에서 군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의 전환을 안겨줬다.

다.

덕분에 경찰청 축구단은 ‘레알 경찰청’이라는 새 별명을 얻게 됐다. 다행히 화려한 선수들의 기량은 꾸준했고, 지난 5월에는 김두현과 염기훈이 최강희호에 승선하며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다.

특히 5월 31일 열린 스페인과의 A매치에서 대한민국은 1-4로 패했지만 김두현만큼은 빛났다, 김두현은 호쾌한 중거리포를 성공시키며 존재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해보였다.

경찰청 입대 전 김두현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K리그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앞으로 많은 K리그 선수들이 내 뒤를 따라서 경찰청에 입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하며 웃은 적이 있다.

그의 말처럼 K리그를 빛내던 별들이 김두현을 따라 경찰청에 입대했고 올해도 각 클럽에서 주전으로 뛰던 선수들이 경찰청에 원서를 낼 것이라고 한다. 첫 테이프를 본인이 끊었다는 점에서 혼자서 뿌듯한 미소를 지었던 김두현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래서 따라 웃음이 나온다.

R리그에서 만난 김두현, 염기훈, 배기종, 그리고 김영후. K리그로 곧 컴백할 별들과 만난, 그날의 풍경이다.

배기종

 

여전히 16번을 사랑하는 남자. ^^

 

 

 

 

 

교체아웃되는 배기종. 교체아웃 될 때도 군인답게 거수경례를.

 

김두현.

 

왼발의 스페셜리스트 염기훈의 프리킥 찬스.

 

동료 선수들의 위치를 잡아주고.

 

아쉽게 프리킥은 성공하지 못했다.

 

 

R리그의 메시 김두현. ^^

 

경기가 끝나면 모든 선수는 이렇게 거수경례를.

 

 

9번은 강원 신인왕의 주인공 김영후!

 

수원맨 김두현과 염기훈.

 

고개숙인 김두현과 머쓱한 배기종.

 

강원팬들을 위해 포즈를 잡아준 아기아빠 김영후.

 

성남시절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었던 김학범 감독과 김두현이 경기 후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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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제가 소나무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건 2006년입니다. 당시 저와 친한 후배 한명은 오장은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했습니다. 후배는 오장은과 통화 중에 늘 이렇게 묻곤 했죠. “이번에 휴가 받으면 또 산에가요?”

여기서 산이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산골을 말하는 거구요 소나무 선생님은 그곳에 계신 선생님을 가리킵니다. 정확하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는 모르겠어요. 그 분은 민간요법에도 능하시고 기치료에도 정통하고 순수의학이 아닌 대체의학을 통해 선수들의 심신을 맑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선생님이십니다.


오장은의 경우 발가락 2개가 어린시절 사고로 마디가 절단된 상태라 발란스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무게중심이 양 발바닥에 고루 퍼지지 못해 피로가 쌓이고 그러다보면 부상도 많이 당하곤 하죠.

그때마다 병원에서는 꽤 오래 쉬어야할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신기하게도 함양에 다녀오면, 그곳에서 소나무 선생님의 치료를 받으며 쉬었고, 그러다보면 예정보다 빨리 나아 금세 복귀전을 치르곤 했죠.

제가 아끼던 선수 한명도 그곳을 잘 다녔습니다. 휴가 때 얼굴 보며 밥이라도 먹자고 하면 그 선수는 늘 말했죠. 산에 가야해요, 라고요.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산 입구까지 가서 걸어올라가야하는 그곳. 그곳까지 가는 동안 정신없이 통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도착하죠. 이제 핸드폰 꺼야해요, 라는 말을 하면 도착한 겁니다. 그곳에는 불문율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핸드폰을 통해 개인통화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또 생각하는 건...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돌아다니거나 여자를 만나지 않을 것. ^^

한번은 산에 있던 식구들이 모두 대구FC 경기를 보러 가서 혼자 있다며 그 선수가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산 식구인 오장은을 응원하기 위해서였죠. 지금도 기억에 선연한 건,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별들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것 같다던 그 말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로맨틱한 대사라 기억하는 게 아니냐며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곳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이해할 것입니다. 한번도 가지 못했지만 그 산을 방문하던 선수들은 참으로 맑아 아마추어 같은 프로선수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아마추어 시절의 열정을 가슴 한 가득 품고 있던 그 느낌이 늘 좋았는데, 아... 저렇게 맑은 곳에서 쉬고 명상하면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산과 하늘과 별을 닮은 그런 영혼을 가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더랬지요.

축구선수들에게 입소문이 제대로 나면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겠지만 그곳에 계신 소나무 선생님은 돈보다는 인연과 영혼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치료를 받으며 산에 있던 선수들은 그 인연을 소중히 이어나가고 또 간직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추캥’인데요, ‘축구로 만드는 행복’을 의미합니다. 그 앞 글자인 ‘축’과 ‘행’을 이어 발음한 ‘추캥’을 그대로 모임명으로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참 센스돋죠? ^^

박건하 코치님과 오장은, 김재성의 주도 아래 추캥 식구들은 십시일푼씩 모아 어려운 이웃을을 위해 썼습니다. 함안군 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한 선수도 있었고 고아원, 양로원을 방문해 선물도 드리고 친선게임도 가졌고요. 2000년부터 했으니 올해로 11년 째이네요. 그들의 선행이.


추캥은 올해 2000만원의 장학금을 모았습니다. K리그에서 골을 넣으면 30만원, 도움을 올리면 10만원씩 적립했는데 5골·12도움을 기록한 구자철이 270만원, 2골·3도움을 올린 오장은이 90만원을 냈습니다. 특히 구자철은 3년 째 안의초등학교 축구선수 2명을 후원하고 있다네요.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저는 단 한번도 그들의 선행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없습니다. 드러내고 하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죠. 조용히 알음알음으로 하는 그 본심을 존중하고자 저는 단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는데요, 오늘은 드디어 추캥의 선행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됐네요. 오늘 오후 함양공설운동장에서 아주 특별한 추캥의 축구경기가 열립니다.

설기현, 김재성, 신형님, 신광훈, 김다솔, 조성환, 서정진, 김두현, 윤석영, 백용선이 축구팀으로 나서게 되고 박건하, 이요한, 김승용, 하대성, 유경렬, 오장은, 김진욱, 최진수, 이용, 정혁이 행복팀으로 나눠 친선경기를 가집니다.

함양군 군수가 함양공설운동장에서 친선경기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고 참가선수들을 위한 숙소도 무료로 제공했네요. 자선경기가 끝난 뒤 장학금은 함양군수에게 전달되고 일부는 함양출신의 연평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위로금으로 쓰이게 됩니다.

자선경기지만 협찬도 없고, 입장료도 없습니다. 선수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고요, 그 주머니에서 나오는 건 단순히 돈만이 아니라는 거... 다들 잘 아시죠? 프로라는 경쟁체제 속에서 이웃을 위한 사랑을 잊기 쉬운데, 10년이 넘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묵묵히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했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죠.

돈을 많이 버는 프로선수라면 나라도 할 수 있겠다고, 누군가는 볼멘소리로 말하겠지요. 하지만 커피 한잔 값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죠. 그런 점에서 귀중한 시간을 쪼개 축구를 통해 사랑을 베푸는 건 대단한 일이고 박수받아 마땅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캥 자선경기에 꼭 오라고 초대했는데, 회사 일 때문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네요. 그래도 마음은 그곳에 있고요 건강한 그 모습이 오래도록 영원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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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와 수원삼성과의 K-리그 20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이상돈 선수에게 저는 웃으면서 "동생이랑 맞대결 펼치는 거 재밌을 거 같아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돈 선수는 "왜 다들 그러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밌겠지만... 저희는..."라며 말끝을 흐리더더군요.

형제간에 우애가 좋은 사람을 많지만 이상돈-상호 형제들은 참 남다릅니다. 예전에 이상돈 선수는 어느 기자와의 대화 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대요. 경기 중에 상호는 나에게 태클할 수 있겠지만, 나는 차마 못하겠다. 상호가 다칠까봐 걱정되고 겁이난다, 라고요. 이상호 선수는 예전에 저와의 인터뷰 도중 형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축구부 훈련이 끝나면 항상 집에 와서 이 것 저 것 가르쳐줬어요. 그렇게 매일 형이랑 연습했어요. 저희 형이 정말 정말 착해요. 울산대에 제 친구들도 몇몇 있는데, 저야 대학생활을 안했으니까 궁금한 게 많잖아요. 그러다 형들이 괴롭히냐고도 한 번씩 물어봐요. 그런데 저희 형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 친구들도 저희 형이 참 좋고 착하대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저도 좋고 참 흐뭇해요.

난 형이 너무 좋아요. 중학교 때부터 정말 잘 챙겨줬어요. 어디 아프거나 힘들면 언제든지 형한테 전화하라고 해요, 전화하면 진짜 좋은 말 많이 해줘요. 축구하다보면 슬럼프 올 때가 있잖아요. 고등학교 때 어느 날은 코치 선생님께 야단을 심하게 맞은 적이 있었어요. 힘들어서 형에게 전화를 했죠. 운동이 왜 이렇게 하기 싫은지 모르겠다고 투덜댔어요. 그때 형이 그러더라구요. 다른 애들은 매일 욕먹으면서 한다고, 코치 선생님도 너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다 잘되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거라고. 그렇게 늘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줘요. 외박 받을 때면 형에게서 항상 전화가 와요. 오늘 뭐하냐고 묻고, 특별히 할 게 없다고 하면 시내에서 형 친구랑 셋이 같이 놀자고 해요. 솔직히 형도 친구랑 둘이서만 만나고 싶잖아요. 그런데 저 때문에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그러는데 그게 참 고마워요.

경기가 있을 때면 항상 게임 잘 뛰라고 해주고, 끝나고 나서도 너 뛸 때 형이 너보다 더 떨면서 본다고,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걱정 많이 한다면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못 보겠다고 해요. 늘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신경써줘요. 또 제가 프로에 있으니 돈을 벌잖아요. 그래서 가끔 형에게 얼마 안 되는 돈 주려고 해도 형은 늘 거절해요. 괜찮다고, 형 돈 있다고 그래요. 형은 항상 그래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너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라고. 늘 나를 생각하고 챙겨주는 형이 고맙고 좋아요. 진짜 좋아요. 정말 많이 사랑해요. 우리 형.“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그러니까 이상호 선수가 막 20살이 됐을 때에요. 워낙에 동안인 상호 선수였기에 나이만 20살이었지 실제로는 고등학생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죠. 어린 소년 같은 이미지의 선수가 형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데, 저도 마음이 찡해지더라고요.

두 형제가 적으로 만나지만 그래도 그라운드에서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모님께 오랜만에 아들 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밀양에서 부모님이 경기 전날 올라와서 상돈 선수 원룸에서 하룻밤을 잤지요.

“부모님은 사과 과수원을 하세요. 얼음골이라고 있거든요. 거기가 사과로 진짜 유명해요. 안에 꿀이 들어가 있어요. 사과를 쪼개면 꿀이 가운데 있는데 그게 싹 퍼져서 진짜 맛있어요. 얼음골 사과 유명한데 안 드셔보셨어요? 두 분 다 요즘은 저 때문에 어깨 피고 사신데요.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형이랑 저랑 신경 쓰느라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항상 제가 뛰는 경기는 거의 다 보러 와주시고, 정말 고생 많으셨죠. 아, 물론 어릴 때는 정말 말 안 듣는 장난꾸러기였어요. 뭐 하라 그래도 진짜 말 안 들었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까지 데려다 줘도 가기 싫다고 그냥 다시 집에 오고 그랬어요. (웃음) 또 제가 가루약을 진짜 싫어하거든요. 막 약 안 먹겠다고 뿌리칠 때마다 엄마, 아빠, 형, 누나가 제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잡고 입에 약을 넣어야했어요. 물론 가만히 있으면 다 먹은 줄 알고 놓아요. 그러면 탁 뱉어놓고 그랬죠. (웃음)”

이것 역시 상호 선수가 이야기 해준 어린 날의 추억 중 일부입니다. 과수원 농사를 뒤로 하고 강릉까지 올라온 부모님. 아들 둘 중에 어디를 응원할까, 궁금했는데 부모님은 그냥 웃기만 하시며 다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네요. 멀리서 오셨으니 티켓 걱정은 놓으라고 제가 티켓까지 준비했는데 형제의 부모님은 조용히 경기장에 들어가셔서 관람하셨다고 합니다.

역시 형제인지라 연이 남다르다고 생각한 이유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선 이상돈 선수에 맞서 수원은 동생 이상호 선수를 왼쪽 미드필더로 세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결국은 경기 내내 계속 부딪혀야했지요. 드리블 치는 동생을 막고 또 막는데, 너무 치열하게 공을 두고 다투는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상돈-상호 형제가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거든요.







형제간의 우애를 뒤로 한 채 팀을 위해서만 뛰고 있던 두 사람. 전반 30분 쯤 오른쪽 미드필더로 나선 박종진 선수와 스위칭을 하면서 둘의 대결은 잠시 멈췄습니다.



그러나 역시 후반전에도 이상돈-싱호 형제는 부딪혀야만 했습니다. 이상호 선수가 후반 43분 임경헌 선수가 교체되어 나가기까지 형제간의 대결은 계속됐습니다. 이상돈 선수는 경기 전날 웃으면서 경기장을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1-2 패배. 동생을 밀착마크하며 오른쪽 풀백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했지만 팀의 패배로 이날의 수훈은 희석되고 말았지요. 그래서 그랑블루에게 이적 후 첫 인사를 드리는 순간에도 표정이 밝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다음날 다시 만난 이상돈 선수는 어제와 달리 평온한 표정이더군요. 동생과 경기 중에 대화는 나눴냐고 묻자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네요. 보통 상대팀 선수들과도 경기 중에 종종 대화를 나누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건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듯 싶네요. 그렇지만 경기 중에 상호 선수와 눈빛으로 대화를 시도했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서 더 물어봤더니, 글쎄. 동생 상호 선수가 상돈 선수에게 윙크를 날려주었대요. 그리고 상돈 선수는 미소로 화답했고요.

사실 오른쪽미드필더로 출격해 형과 경기 내내 부딪히는 걸 피하고 싶었지만 팀 전술 때문에 왼쪽날개로 나섰고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치러야만 했다고. 그래도 부모님은 안타까운 마음보다 자랑스러운 마음을 느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 패배로 아들 둘의 희비는 엇갈렸지만 큰 아들, 막내 아들 모두 강원FC와 수원삼성이라는 두 클럽에서 매 경기 선발로 나서며 주전으로 활약 중이니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할까요.

그래서 이상돈 선수와 이상호 선수가 강원FC와 수원삼성에 몸담고 있는 한 강원과 수원의 대결은 형제더비로 불려도 좋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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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서동현이 강원FC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팬들을 위한 서동현 특유의 세레모니를 직접 볼 수 있겠구나, 였습니다. 박건하 코치를 향한 존경의 표시였던, 유니폼 깃을 세우던 그 세레모니는 참으로 유명했죠. 이밖에 팬들을 위해 그때 그때 유행하는 최신 댄스를 세레모니로 보여주며 즐거움을 줬던 선수가 강원FC에 온다는 사실은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역시나 서동현은 이적 후 첫골을 신고하던 지난 8월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한 멋진 세레모니를 보여줬습니다. 그가 보여줬던 시건방춤은, 혹자에게는 아니 브아걸의 언제적 노래인데 이걸 세레모니로 보여주냐는 의아암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나, 강원FC 서포터스 이름이 나르샤라는 걸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팬들을 향한 마음이 돋보이는 멋진 세레모니였죠. 나르샤를 위해 나르샤가 몸담고 있는 그룹 브아걸의 댄스를 보여준 거니까요.

지난 주말 수원과의 홈경기를 지켜보면서 저는 다시 한번 수원 선수들이 참으로 멋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멋진 골을 성공시켜서, 화려한 패스와 잘 짜여진 유기적인 축구를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전반을 0-0으로 마감하고 후반 중반을 향해 갈 때까지 강원FC와 수원삼성은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그 추가 수원 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후반 19분. 아크 오른쪽에서 호세모따가 슈팅을 시도했고 크로스바 아래쪽을 받은 볼은 그대로 골로 연결됐습니다.

호세모따는 골을 넣자마자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기 보단 S석으로 먼저 달려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먼 원정길도 마다않고 찾아와 응원해준 서포터스에게 인사를 드리는 건 당연한 것이겠지요. 열광하는 팬들과 함께 골을 성공시킨 기쁨을 나누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멋졌고 부러웠습니다.



그로부터 10분 뒤 다카하라 역시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으로 오른발로 팀 2번째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다카하라역시 S석 쪽으로 달려가 그랑블루 서포터스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더군요.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쳐준 뒤 나중에야 동료 선수들과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누더군요. 그 짧은 순간에도, 골을 넣은 기쁨에 휩싸이다보면 팬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S석에 있던 그랑블루의 존재를 잊지 않더군요.



나의 골이 아니라 너희가 있기에 가능했기에, 우리가 함께 넣은 골이라고 말하는 호세모따와 다카하라, 두 선수의 골 셀레브레이션은 봐도 봐도 멋져보이더군요. 이렇게나 온 마음 가득히 팬들을 향한 고마움으로 가득차있구나, 하는 생각에 수원 선수들이 참으로 멋져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요즘은 늘 수줍게 기뻐했던 강원FC 선수들도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바제는 이적 후 첫 골을 신고하자마자 N석에 있던 나르샤 앞으로 달려가 같이 환호하고 함께 기쁨을 토했습니다.



이렇게 팬들을 향한, 팬들을 위한, 팬들을 먼저 생각하는 세레모니를, 앞으로도 K-리그에서 많이 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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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꿈만 생각하며 성실하게 살았던 청년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선 어린 시절 꿈을 이뤘고 사랑하는 여자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새 아버지가 둘의 사랑을 반대했습니다. 그 남자는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고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는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죠.

그런데 새 아버지의 반대는 심했고 그녀는 결국 새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가 정해주신 남자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남자는 상처가 컸지요. 그렇지만 그녀와의 결혼이 자신의 꿈 전부가 아니었기에 마음은 아팠지만 깨끗이 잊기로 하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훗날 그녀가 자신을 다시 보게 됐을 때, 누구보다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다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남자는 또 이런 생각도 했지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됐을 때, 아름답게 성장한 자신을 모습을 보고 후회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녀와의 만남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습니다. 그녀와의 대면을 앞두고 남자의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죠. 그렇지만 마음이 앞섰는지 그녀 앞에서 그는 100%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다시 또 그녀를 만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헤어진 후 처음 가진 만남이었는데,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남자는 슬펐지요. 그래서 오래도록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눈물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지요.

축구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한 남자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이해가 안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원FC와 수원삼성의 K-리그 20라운드 경기를 보는 내내 저는 위와 같은 생각이 내내 들었거든요. 이쯤 하면 다들 짐작하시겠죠. 여기서 그 남자는 바로 서동현입니다.

2005년 건국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중도에 K-리그로 입성한 서동현은 2006년 수원삼성에 입단, K-리거로서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스쿼드가 화려하기로 소문난 수원에서 서동현은 26경기 2골 2득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보냈지요. 그해 9월 30일 광주상무와의 홈경기에서 들어간지 3분만에 결승골을 터뜨렸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수원은 덕분에 13경기 무패행진을 벌이며 선두자리를 지킬 수 있었죠.

당시 서동현은 아시안게임 대표에 탈락한 것이 아쉽지만 2008년 베이징에서 열리는 올림픽대표팀에는 꼭 선발되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보였고 저 역시 그 꿈이 이뤄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서동현은 35경기 13골 2도움을 올리며 프로 데뷔 이래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거든요. 그것도 조커로 투입 족족 골을 성공시켰으니 '서동현은 추꾸천재입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죠.

하지만 올림픽대표팀 마지막 공격수 카드가 자신이 아닌 팀 동료 신영록에게 돌아갔고 국가대표팀에서도 도장을 찍지 못한 이후 시련의 나날이 시작됐습니다. 2009년 15경기 1도움을 기록했지만 수원의 공격수로서는 다소 초라한 성적표였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팬들의 탄식과 원망 역시 거셌습니다.

그리고 2010년 여름 그는 고향팀으로 돌아왔습니다. 윤성효 감독은 애제자 박종진을 영입하기 위해 강원도 홍천 출신의 서동현을 고향팀 강원FC로 보냈습니다. 갑작스러운 트레이드에 꽤 많이 혼란스러웠겠죠.

하지만 다행인 건 서동현은 이적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금세 팀에 적응한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선수들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장난도 치고 자신의 집으로 동료 선수들을 초대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해 이적 후 첫 골 세레모니는 그들을 위해 보여주겠다며 준비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기특했는지요. 워낙에 수원에 있을 적부터 팀 충성도가 높은 선수였던지라 여전히 수원을 그리워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이 참 예뻐보이더라고요.

서동현은 수원과의 경기에서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복수심도 아니었고 증오심도 아니었습니다. 앞서 서두에 꺼낸 이야기처럼 자신을 아껴줬던 옛 팬들 앞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지요.

서동현은 이적이 확정된 후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저는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뒷모습만을 남기고, 지난 5년동안 함께했던 정든 이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라고 서포터스 그랑블루 홈페이지에 마지막 글을 남긴 바 있죠. 그래서 이번 수원전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그래 이 모습이 우리가 열광했던 서동현이었어, 라는 기억을 남기고 싶어한 듯 싶습니다.

수원전을 앞두고 몇몇 수원팬들은 과연 서동현이 경기 종료 후 인사를 하기 위해 S석으로 올까요, 라는 글들이 올라왔던 것으로 압니다. 그 글을 읽으며 저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서동현은 이적 후 첫 경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랑블루 팬들에게 경기 종료 후 인사를 드리겠다고 했거든요.

당시 박종진은 이적 후 친정팀과의 첫 경기에서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지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동현이 형은 경기 종료 후 인사하러 간다고 했는데, 너도 그렇게 인사해. 그런데 몸풀러 나올 때 한번 더 인사하는 건 어때? 그럼 팬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아, 라고 조언을 해줬죠. 착한 박종진은 다행히도 제 말대로 2번 인사를 하고 갔답니다. 나르샤 팬들이 굉장히 좋아했죠. ^^

경기는 1-2 강원FC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서동현은 경기 종료 후 잔디 위에 누워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고요. 구단 직원이 다가가 그런 서동현을 일으켜세웠지만 반쯤 고개 숙인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옛동료였던 수원선수들이 다가와 어깨를 토닥토닥, 하고 갔죠.

그리고 N석으로 달려가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에게 인사를 드린 후 서동현은 발걸음을 S석으로 돌렸습니다. 옆에 있던 이상돈에게 상돈아, 가자, 라고 말하며 함께 걸어갔지요.

만감이 교차했던 서동현의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골골골골 서동현, 하는 그의 콜도 그날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죠. 영원히는 아니겠지만 당분간은 그랑블루가 부르지 못할 그 이름 서동현. 자신의 콜을 불러준 그랑블루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가는 서동현의 뒷모습이 지금도 마음에 밟힙니다.

그래도 다음날 춘천에서 열리는 팬사인회 현장을 함께 가게 됐는데요, 분명히 제가 봤을 땐 눈이 빨갛게 충혈돼있었거든요. 그래서 어제 운 거 다 안다며 농담을 건넸는데 서동현은 끝까지 아니라며 오히려 제게 헬레나씨 술 마신 거 다 안다며 발끈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어제 자신의 콜 들었냐면서 이야기를 꺼내는데 어제 그 표정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밝아졌더라고요.

특히 그랑블루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콜 이야기를 꺼낼 때 표정은 나 이런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고 있었고요. ^^ 저는 일부러 놀려대며 기분을 업시켜주려고 골골골, 이 아니고 고고고, 아니냐고 빨리 가라고 그러네, 라고 말했고요. ㅋ

요즘 들어 서동현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잦았던 저로서는 서동현은 여전히 그랑블루를 사랑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뼛속까지 수원이었던 아이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도 이곳에서도 정을 붙이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잘하든 못하든 이제는 우리 선수라, 라는 생각 하나만 갖고 품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누가 뭐래도 서동현, 당신은 축구천재이고요, 앞으로 강원FC 이곳에서 골 단비를 뿌려주세요. 이제는 강원의 레이메이커님.

덧. 그랑블루님들의 1박 2일 즐거운 강릉여행을 위해 수원구단을 통해 제가 50% 할인된 가격에 방 20개를 알선해주고 추가로 다른 모텔도 소개시켜줬는데... 다들 즐거우셨는지요. 새벽에 택지에서 돌아다니다가 만난 그랑님들. 인사는 못했지만 굉장히 반가웠고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워져있던 단체버스들도 넘 반가웠습니다. 손님맞이는 역시, 강원 정도되야 어디가서 신경 좀 썼다 듣는 것이겠지요? ^^

그리고 마지막. 이 영상들은 제 피와 땀이 서려있는 소중한 영상입니다. 제발 불펌하지 말아주세요. 주소 복사해서 올리는 건 괜찮은데, 기계로 이용해 통째로 복사해서 자신이 찍은 것인양 알싸에 올린 거보고 굉장히 충격받았습니다. 하여 이번 영상은 주소 복사도 막았습니다. 보고 싶으면 링크 걸어서 타고 넘어와서 보세요.



곽희주와 맞서던 참으로 낯설었던 서동현의 모습.



회심의 슈팅이 크로스바 위로 지나가자 고개 숙인 서동현.
그런 서동현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던 옛 동료 리웨이펑.



공격이 잘 풀리지 않자 한숨을 쉬는 서동현.


경기 종료 후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던 서동현.



수원에서 함께 이적해 온 이상돈에게 같이 그랑블루 앞으로 가자고 말한 서동현.



서동현과 이상돈을 위한 콜 해준 서동현.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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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전반기를 마치고 휴식기 동안 수원은 강릉에서 짧은 여름 전지훈련을 가졌습니다. 그때 기회가 생겨 수원 스태프들과 만날 자리가 있었는데, 강원FC 성적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하자 왜 그러냐고 우리는 꼴찌라며 도리어 저를 위로해줬던 기억이 나네요.

6월 말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약 2달의 시간이 흐른 지금. 꼴찌 수원은 어느새 6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6강 PO, 그리고 이를 넘어 챔피언결정전까지 생각하며 달려가게 됐습니다. 윤성효 매직이라는 말처럼, 윤성효 감독 체제 이후 수원은 달라졌습니다.

윤 감독 부임 이후 K-리그 9경기 무패(7승 2무). 성적만 달라진 게 아니더군요. K-리그 20라운드 강원FC 대 수원삼성의 경기를 관전하는 내내 깜짝 놀랐습니다. 그간 롱볼 축구로 일관하던 수원 선수들이 달라졌군요. FC서울과의 라이벌전에서 4-2 대승은 그냥 나온 결과가 아니더라고요. 경기 내내 짧은 패스와 세밀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중원에서부터 압박을 가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곽희주, 리웨이펑 이 두 센터백 조합이 보여주는 수비력은 그 전부터 대단했기에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 두 수비수들은 여전하구나, 탐난다, 라는 생각만 내내 들 뿐.

김두현과 다카하라. 경기 내내 이 두 선수만 보였습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거둔 보물 다카하라와 무릎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복귀한 김두현. 두 선수의 합세는 확실히 큰 힘이 된 듯해 보였습니다.

아쉽게도 이날 신영록과 박종진은 이전 경기에서 보여줬던 힘과 스피드에서 다소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후반전 들어 주도권은 수원이 잡게 됐는데 호세모따 투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결국 후반 19분 아크 오른쪽에서 호세모따가 슈팅을 시도했고 크로스바 아래쪽을 받은 볼은 그대로 골로 연결됐습니다.

지난 4월 라피치의 턱을 팔꿈치로 가격하며 퇴장을 당해 강원FC와 한차례 ‘악연’을 맺은 바 있던 호세모따는 당시의 아픔을 멋진 골로 되갚아주더군요. 그리고 10분 뒤 다카하라의 추가골이 터지며 강원FC로서는 추격의 의지가 잠시 상실되기도 했습니다.

후반 29분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에서 오른발로 때린 슛은 낮고 빠르게 골대 왼쪽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골키퍼의 움직임까지 예측한 빠른 판단력이 돋보였고 왜 다카하라에 이토록 열광하는지 십분 이해가 되더군요.

후반 들어 수원은 4개의 유효슈팅을 시도했고 그 중 2개가 골로 연결됐습니다. 강원FC의 유효슈팅은, 슬프게도 전 후반 내내 한 개도 없었습니다. 오프사이드 트랩에만 6번이나 걸리며 너무나 좋았던 공격 타이밍이 무효화 됐고요 김영후, 서동현의 공격 기회는 리웨이펑과 곽희주에게 번번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단 한 번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던 수원의 두 외국인 선수 호세모따와 다카하라. 수원이 왜 선전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던 경기였습니다.

리웨이펑은 강했습니다.

하지만 유현의 선방도 눈부셨죠.

친정팀 수원을 상대로 뛰었던 서동현.

후반 46분 터진 강원FC의 만회골.

이상돈-이상호 두 형제간 대결도 흥미로웠죠.

1-2 패배에 고개 숙인 서동현.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더군요.

그런 서동현을 위로해줬던 강원FC 선수들.

서동현을 위로해주는 김원동 강원FC 대표이사.

친정팀 수원팬들에게 인사하러온 서동현, 이상돈.

마지막으로 수원으로 간 그리운 박종진의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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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윤성효 매직, 강원전에서도 통할까
전반기 수원의 성적은 14위. 15개팀 가운데 14위니 거의 꼴찌나 다름없었죠. 그랬던 수원이 어느새 7위까지 올랐습니다. 2승1무8패를 기록 중이었는데, 벌써 4승 1무를 챙겼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차범근 감독이 떠나며 윤성효 감독이 새롭게 수원의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동안 수원은 정규리그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윤성효 감독이 부임한 이후 얻은 성적은 9승 2무 1패인데요 정규리그에서 6승 2무, 컵대회에서 1승 1패, FA컵에서 2승을 기록하며 쉽게 지지 않는 축구를 구사하고 있지요.


이렇게 파죽지세로 달렸던 수원이 지난 수요일 성남과의 원정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잠시 주춤하는 모양세입니다. 물론 최악의 잔디 위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만으로도 어디냐고 하겠지만 최근의 수원은 멈출 줄 모르는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무승부는 그 기세가 잠시 꺾이는 결과를 낳았죠.

더구나 삼일에 한번 걸려 원정경기를 치르고 있다는 것은 수원에게는 쉽지 않는 일정일 것입니다. 염기훈, 강민수가 부상으로 오지 않았고 황재원 역시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양상민은 경고누적으로 이번 강원과의 원정경기에 함께하지 못했고요.

팀의 주축 선수들이 생각보다 많이 이탈한 상황입니다. 물론 워낙에 스쿼드가 두터운 수원이지만 1군 베스트 멤버가 있고 없고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요. 그래서 저는 이번 경기가 무척 기대됩니다. 강릉에서도 윤성효 마법이 통할까요?

이적생들의 혈투
이번 강원FC와 수원삼성과의 경기 중 흥미로운 건 이적생들의 대결입니다. 지난 7월 서동현과 박종진이 맞트레이드를 했죠. 홍천 출신의 서동현은 고향팀으로 돌아왔고 박종진은 숭실대 시설 은사 박성효 감독과 다시 만났습니다. 프로 데뷔를 했던 수원을 상대로 서동현은 골을 넣어야하고 박종진 역시 K-리그 데뷔전의 꿈을 이루게 해준 강원FC를 상대로 달려가야합니다.

이제는 수원의 박종진.


이제는 강원의 서동현.


재미있는 사실은 이 둘의 번호가 똑같이 11번이라는 사실입니다. 강원과 수원 두 11번 선수가 친정팀을 상대로 어떤 경기를 펼칠지, 강원에서 사랑하던 종날두 박종진과 수원에서 사랑하던 레인메이커 서동현이 전 소속팀 선수들에게 패배의 쓴 눈물을 안길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형제간 맞대결
이상돈과 이상호는 K-리그에서도 유명한 형제 축구선수이지요. 그동안 울산과 수원에서 한솥밥을 먹느라 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던 두 선수가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치게 됐습니다. 다행히 오른쪽 풀백 이상돈과 오른쪽 측면공격수 이상호는 둘다 팀의 오른쪽 라인을 책임지기 때문에 경기 내내 부딪힐 일은 없지만 그래도 그 둘의 만남은 여러모로 관심을 모으게 합니다.


마침 형제의 첫 맞대결을 보기 위해 밀양 얼음골에서 과수원집을 하시던 부모님이 강릉까지 올라왔습니다. 아들 이상돈의 집에서 하룻밤 잔 뒤 경기장에서 두 아들이 뛰는 경기를 보시기로 돼있는데요, 아들 두명이 다른팀에서 뛰게 됐으니 어느 한 팀을 응원하기가 힘들겠죠. 두분은 무승부를 원하실까요? ^^ 이상돈은 제게 경기가 끝나고 웃으면서 경기장을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승패보다는 두 형제의 아름다운 대결에만 시선을 두고 싶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하지만 이상돈, 이상호 모두 제가 좋아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두 선수 모두 한골씩 기록하고, 경기는... 강원FC가 이겼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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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창단 이후 강원FC가 유독 패하지 않던 팀 가운데 하나가 수원이었습니다. 진검승부를 걸겠다며 원투펀치를 날렸던 두 팀은 매번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며 K-리그 팬들의 관심을 모으곤 했습니다. 지난해 5월 강릉에서 열렸던 경기에서는 마사와 배기종이 사이좋게 1골씩 주고받으며 1-1로 비겼고요 9월 수원에서 열렸던 경기에서는 강원의 마사 1골, 김영후 2골, 수원의 배기종 1골 에두가 2골을 터뜨리며 3-3으로 비겼죠.

당시 김영후의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으며 아쉽게 무효가 됐고 해트트릭 기회를 놓쳤던게 기억이 납니다. 또 에두가 블루포토 기자단 중 하나인 신인기씨를 위해 감동적인 세레모니를 했던 것도 떠오르고요. 암투병 중에 힘들게 경기장을 찾았는데 골을 넣고 그분께 달려가 세레모니를 하는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신인기씨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날 일을 잊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4월. 강원FC는 수원과 올 시즌 들어 처음 만났는데요. 그때도 김영후가 2골을 터뜨리며 수원을 2-1로 눌렀죠. 3경기 동안 김영후가 터뜨린 골은 합이 4골. 이쯤하면 수원킬러로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이처럼 언제나 수원을 상대로 지지 않는, 그러면서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줬던 강원FC였지만 지난 5월 29일 수원과의 컵대회 원정경기에서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후반 13분 이상돈의 오른발에 터진 수원의 결승골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컵대회라 중계가 들어오지 않았고요 저 혼자서 열심히 경기장면을 촬영했죠. 당시 김대의 선수가 오른쪽 터치라인 쪽으로 볼을 보냈는데 흐르는 볼을 오버래핑하던 이상돈이 받자마자 바로 슈팅을 때렸고, 그게 그대로 골로 연결됐습니다. 결국 그골은 그날의 결승골이 됐고 이상돈은 맨 오브 더 매치에 뽑혔죠.



그러나, 운명과 역사는 도는 법이라고 했지요. 그 골이 이상돈의 운명을 결정지을 줄은 아무도 몰랐죠. 지난 7월 이상돈은 강원FC로 전격 이적을 했습니다. 이적 소감을 묻자 이상돈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강원FC에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지만 오고 싶었어요. 강원FC가 축구선수로 성장하기에, 또 운동하기에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텔레비전이나 기사를 통해 느낀 강원FC는 뭐든지 열심히 하는 팀이었고 무엇보다 팬들의 응원과 열정이 정말 보기 좋았거든요.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오고 싶었죠.

제가 컵대회에서 강원FC와 만났을 때 데뷔골을 넣었죠? 제가 수비수로 뛰다보니 K-리그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과연 데뷔골을 넣을 수 있을지 늘 궁금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강원을 상대로…(웃음). 당시 흘러나온 볼이 운 좋게 제 앞까지 왔고 슈팅하기 위해 발을 대는 순간 느낌이 좋았어요. 그날의 결승골 덕분에 제가 강원FC에 온 것 같아 제게는 운명을 결정지은 골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제는 수원에 다시 한 번 뼈아픈 패배를 안기기 위해 이상돈 나섭니다. 22번이 새겨진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선요.


이번 경기가 강원과 수원 팬들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강원FC의 이상돈과 수원삼성의 이상호는, K-리그에서도 유명한 형제 축구선수입니다. 울산에서 함께 뛰던 두 사람은 이상호가 수원으로 이적하며 잠시 헤어졌는데 올 초 이상돈이 수원으로 이적하며 다시 만나게 됐고요. 지난 5월 29일 강원과의 컵대회 경기에서 이상돈과 이상호는 수원 이적 후 처음으로 함께 뛰었습니다. 여러모로 강원FC와 연이 깊은 상돈-상호 형제네요.

이상호는 지난 달 울산과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호텔 회전문에 발뒷꿈치가 찢어지며 꽤 여러바늘을 꼬매야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강원FC와의 원정경기를 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알겠지만 언제 다쳤냐는듯이 지금은 수원에서 훨훨 날고 있네요. 서울과의 한판승부에서도 한골을 기록하며 4-2 대승을 도왔고요.

이상돈과 이상호 두 선수 모두 일단 팀내 주축선수이기 때문에 선발출장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형제간 맞대결이 더욱 기대가 되네요. 무엇보다 늘 아빠처럼 상호를 돌봐주는 이상돈과 그런 형아를 가리키며 '천사'라고 눈물 짓는 이상돈의 하나 뿐인 남동생 이상호.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지만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멋지게 이룬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참으로 감동스런 장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두 선수 모두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아끼고, 또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벌써부터 이상돈과 이상호가 만날 강원-수원전이 기다려집니다. 

경기가 끝나고 누가 이기고 졌든지 간에 서로를 꼬옥 안아줄 두 선수의 모습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응원 열심히 할게요. 이상돈, 이상호 두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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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바르셀로나 초청 K-리그 올스타전은 바르셀로나의 5-2 승리로 끝났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시종일관 K-리그 올스타를 압도한 경기력을 보여줬고 경기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농락당한 것만 같은 이번 K-리그 올스타전.

올스타전이 열리기 전날 공개훈련이 열린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기자들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제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바르셀로나 대다수 선수들이 믹스드존 인터뷰를 거부하고 버스에 올라탔다면서요.

처음엔 메시를 비롯한 3명의 선수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고 합니다. 방송카메라로 준비됐고 기자들도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바르셀로나 언론담당관이 오늘 인터뷰는 없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고 선수들도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기자들을 외면한 채 갔다고 하더군요. 즐라탄이 인터뷰에 응해줬다고 하지만,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간단한 이야기만 하고 갔으니 기자들은 답답했고 또 부아가 치밀 수 밖에요.

저는 믹스드존 인터뷰를 거부하고 갔다는 사실을 듣고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건 선수들이 언론을 무시하고 싶을 때 보이는 태도거든요.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우 대표팀과 클럽팀에서 진행되는 믹스드존 인터뷰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경기장의 모든 불이 꺼질 때까지 믹스드존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그것이 선수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성실히 임합니다.

그들이 처음 명문 클럽에 입단하고 세계적인 무대에서 프로선수로서 날개를 피기 시작할 때, 각 클럽의 언론담당관들에게서 교육 받는 것이 바로 언론을 대하는 법과 믹스드존 인터뷰에 관한 내용들인데, 그런 교육을 받은 선수들이 믹스드존 인터뷰를 거부했다는 건 K-리그 담당기자들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그래서 그 상황을 듣고 언짢은 기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알다시피 공식기자회견에서 알베스는 이번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한국과 경기를 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알베스의 모국 브라질과 경기를 한 나라는 북한이죠. 한국에 입국하면서 북한과 헷갈려 했다는 건 아무 생각없이 입국하여 아무 생각없이 기자회견에 임했다는 거죠.

메시 역시 비슷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첫 느낌을 묻자 “자고 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말했는데요. 당시 K-리그 담당 기자들은 두 선수에게 많은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질문이 제한된 상황에서 아주 불성실한 내용의 답변을 들어야했고 귀중한 질문 하나는 그렇게 날아가버리고 말았죠.

메시를 출전시키지 않겠다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폭탄발언 뒤 바르셀로나를 초청한 대회 주관사 스포츠앤스토리와 프로축구연맹, 바르셀로나 이사진의 심야협상 뒤 자정에야 메시의 출전이 확정됐습니다. 급한 연맹은 메시가 출전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막기 위해 자정에 한번, 새벽에 한번 관련 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전달하는 등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고요.

메시를 30분 이상 출전시켜야한다는 계약조항을 알지 못했던 과르디올라 감독의 발언이 만든 한밤 해프닝이었고, 계약서 조항을 주지시키지 못한 연맹과 상관없다는 듯이 팔짱만 끼고 있던 바르셀로나 이사진 등 한마디로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올스타전이었습니다.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메시의 마술같은 슈팅이 아니라 경기장에 난입했던 2명의 팬이라고 여겨지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그간 바르셀로나는 클럽 그 이상의 클럽이라며 스폰서사를 마킹하지 않았던 유니폼에 유니세프 로고를 박으며 어려운 이웃 돕기에 앞장서던 클럽입니다. 그러나 이번 올스타전에서만큼은 그 모습을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뼈아팠던 이번 올스타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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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오늘 성남구단 관계자와 메신저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제게 물었습니다.

“올스타전 가시나요?”
“아뇨. 남의 잔치에 갈 일이 있겠나요.”

그러자 성남구단 관계자가 “아이코. 언제부터 올스타전이 남의 잔치가 됐는지...”하며 안타까워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축구판에 일하고 있는터라 K-리그 관계자 중 하나겠지만 이번 K-리그 올스타전은 우리 축제가 아닌 남의 잔치 같습니다.

바르셀로나 1.5군과 함께 뛰게 된 K-리그 올스타 선수들. 팬 투표와 감독 및 기술위원회 추천으로 선수가 꾸러졌는데 처음 발표된 20명의 선수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성남(정성룡, 몰리나)
울산(김영광, 김동진, 김치곤)
제주(조용형, 구자철)
포항(김형일, 김재성)
서울(최효진, 하대성, 이승렬)
전북(김상식, 에닝요, 이동국)
부산(김창수, 박희도)
수원(김두현)
광주(최성국)
경남(루시오)
10개 구단 20명의 선수들. 인천, 전남, 대구, 강원, 대전에서는 올스타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팬심의 부족인가요. 아니면 바르샤에 대적할 경기력을 보여줄 창과 방패 역할을 할 선수가 없어서인가요.

후에 부상과 이적을 이유로 김동진과 조용형이 빠지게 되면서 우승제(대전)과 인디오(전남)가 추가 발탁됐습니다. 이로써 인천과 대구, 그리고 강원은 올스타전과 전혀 상관없는 팀이 되버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다 시도민구단. 모기업을 스폰으로 하는 기업구단이 아닌 지자체의 후원으로, 그래서 그들보다 열악한 K-리그에 나서고 있는 시도민구단에서는 올스타 선수를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우리에게는 모두다 스타보다 빛나는 스타인데 말이죠.

작년 이맘 때 강원FC 선수단은 조모컵 한일 올스타전을 보기 위해 인천에 왔습니다.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렸던 한일 올스타전에 같은 팀 동료인 김영후가 출전했거든요. 김영후도 응원하고, K-리그 잔치인 올스타전도 축하하기 위해 강릉에서 4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긴 거리를 버스틀 타고 갔습니다. 알다시피 운동선수들은 장시간 앉아있기를 굉장히 힘들어하죠. 그래도 올스타전에 우리 선수가 뛴다는데 영동고속도로가 막히더라도 가야한다는게 팀과 감독과 선수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무척 더웠던 8월의 여름밤. 연맹에서 나눠준 부채로 부채질을 하며 경기를 기다렸는데, 아쉽게도 김영후는 교체멤버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후반전. 김영후가 슬슬 몸을 풀기 시작했을 때 강원FC 선수들은 하나 둘 셋, 하는 구령과 함께 “김영후!”라고 이름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K-리그에서 뛰고 있는 프로선수가 아닌 정말 올스타전을 즐기러 온 축구팬의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보기 좋아 저도 웃으면서 함께 김영후의 이름을 외치고 환호하고 손까지 흔들었죠.


이후 교체로 김영후가 들어갔고, 중앙공격수로 뛰던 그에게 차범근 감독은 오른쪽 윙포워드라는 낯선 자리에서 뛰게 하였고, 그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며 경기에 임해야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저희에게는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올스타전에 강원FC 선수들은 상암에 가지 않습니다. 단체로 미팅룸 VTR을 통해 경기를 지켜볼 계획도 없구요. 강원FC 선수들에게 이번 올스타전은 정말로 남의 잔치거든요. 그건 아마 인천유나이티드나 대구FC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최강희 감독의 입장에서는 바르샤 1.5군이라 할지라도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모인만큼 꼭 이기고 싶겠죠. 그래서 자신의 축구색깔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선수들로 뽑았겠죠. 인천, 강원, 대구 선수들의 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다른 팀에 자신의 축구를 잘 이해하는 선수들이 좀 더 많았던 거겠죠.

K-리그 올스타전이라면 K-리그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클럽 이상의 클럽을 표방하는 바르셀로나와의 대결을 위해 경기 일정을 변경하고 고가의 티켓 가격(1등석 11만원. 2등석 9만 9천원, 3등석 7만 7천원 등)을 매겼습니다.

이것이 정말 K-리그 팬들 위한 올스타전인가요. K-리그 선수도 외면한 올스타전. 이것이 이번 FC 바르셀로나 초청 K리그 올스타전 2010의 현 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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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세상에 바뀌었다는 건 날이 가고 해가 갈 때마다 느낍니다. 트윗 상에서 내가 작성한 단문메시지가 나를 팔로우한 사람들의 핸드폰으로 전달되는 것도 신기하고 핸드폰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영상통화를 하는 것도, 제게는 참 신기한 세상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막연히 과학글짓기 대회 때, 수상을 목적으로 상상하여 적었던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 살게 됐으니까요.

몇년 전 커밍아웃을 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던 홍석천을 보며 왜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으며 눈물을 흘려야했을까, 했는데 이제는 다시 공중파에서 볼 수 있게 됐고 또 동성애가 주말 드라마 소재로도 나오니, 조금은 세상의 인식도 과학 못지 않게 바뀌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축구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나 세상 모든 스포츠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나 축구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지는 -축구를 하다 답답해도 그 공을 들고 뛰며 럭비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럭비에도 관심이 많아요. 6년 전 럭비월드컵을 취재하러 갔을 때 영국 럭비대표팀 선수에게 이번 대회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의 플레이를 보고 반했다며 흥분하자 그 선수는 한쪽 입술을 올리며, 그러니까 썩소를 지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호주랑 뉴질랜드? 걔네 절반 이상이 게이야. 그래서 난 그쪽 나라 팀이랑 경기하는 게 정말 싫어. 럭비는 종목 특성 상 뒤엉키며 싸워야하는데, 게이랑 뒹굴면서 뛰어야하다니! 너무 더러운 거 아니야?"

단순히 라이벌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되는 억지논리를 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2008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동성애자 선수에 대한 뉴스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죠. 당시 로이터통신이 동성애자 웹사이트 조사를 통해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1만 여명의 선수 중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선수는 15명이라고 발표했지요. 그중에 9명이 여성이었고 남성은 단 1명, 호주 대표팀의 다이빙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실제 동성애자 선수는 1천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맺음 때문이었죠. 그 기사를 읽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포츠 선수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기란, 쉽지 않겠죠. 동성끼리 경쟁해야하는데, 동성을 사랑하는 선수라면. 개인 스포츠가 아닌 단체 스포츠라면, 함께 뛰는 선수들이 과연 그 선수를 팀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선수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앞서 언급한 호주 대표팀의 다이빙 선수는 매튜 미참 선수입니다. 그는 당시 베이징올림픽에서 다이빙 남자 10m 플랫폼에서 호주에 금메달을 안겨주었죠.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며 했던 말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호주의 다이빙 선수로 알려지길 원한다. 내 삶에서 동성애와 다이빙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라고요. 동성애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성적 취향이고 이것과 스포츠선수로서 임하는 태도는 별개의 문제라고 세간의 관심에 딱 잘라 말했죠.

최근에 다시 한번 스포츠와 동성애가 이슈에 올랐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불의의 부상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한 발락의 에이전트가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 독일 대표팀을 'bunch of gays'라고 말했거든요. 해석하자면 게이소굴 쯤 되는데, 이 같은 발언을 한 미하엘 베커는 1999년부터 발락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으니, 독일에서는 나름 슈퍼 에이전트로 분류되는 사람이죠.

미하엘 베커는 이번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독일 대표팀 중 일부 선수들이 동성애자라는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전 독일대표팀 선수는 이 같은 사실을 밝히려고 했는데 문제의 그 선수는 바이(양성애자)였다고 하네요. 뭐, 사실 중년도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며 훈남 감독 대열에 오른 요아힘 뢰브 감독도 월드컵 기간 중 동성애 소문이 돌았는데요 -남다른 패션 센스도 그의 게이설을 뒷받침한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 그 때문인지 부인과 찍은 사진을 몇 장 공개하기도 했죠. 사진 속 뢰브 감독 와이프는 약간 후덕한 중년의 독일 아줌마 포스를 마구 뿜아내고 있어, 저도 그 사진을 보며 이 아주머니는 전생에 도이칠란드를 구했나, 하는 생각도 했더랬죠.
사랑에 있어 신분과 국경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평소 생각하며 살아온터라 성별 역시 전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 역시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성애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동성애를 버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하지만 난 동성애자인걸, 이라고 인정하기까지 쉽진 않았겠죠. 그래서 저는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더럽다며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만, 종교적 관점에서 생각하더라도 그 역시 조물주가 만든 소중한 생명체이고, 존중받을 권리는 당연히 있습니다. 돌은, 그렇게 쉽게 던지라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가끔 국내 프로축구 선수는 모두가 이성애자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있어도 부정하고 말 못하는 게 아닐까,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감추고 이성애자의 가면을 쓴 채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아주 가끔 품어본 적도 있고요.

몇년 전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선수였고, 그래서 인터뷰를 꽤 여러번 했기에 안면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조금은 편하게 축구가 아닌 다른 이야기도 하는 사이였거든요. 기자 대 선수가 아니라 다른 국적을 지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요. 그때 그 선수가 해준 이야기가 자신의 팀에 있던 코치가 양성애자였다는 겁니다.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양성애자였기에 동성에 대해 남다른 사랑의 감정도 꽤나 깊게 느꼈나봐요. 그걸 선수들도 조금씩 눈치챘는데 어느 날 락커룸에 앉았는데, 새로 들어온 이적선수 옆에 꼭 붙어 앉자마자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무릎과 허벅지를 만졌다지 뭐에요. 축구는 몸으로 부딪히며 하는 스포츠일 뿐 아니라 심장박동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흥분도, 열기도 대단한 스포츠고 또 무엇보다 팀 스포츠다보니 선수들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역시 남다르죠. 동료 선수가 골을 터뜨릴 때마다 얼싸안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곤 하는데, 때론 이게 남다른 애정표현처럼 보여 관련 사진들을 모아서 커플로 엮어 글을 쓰는 블로거들도 있죠.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는 기청용(기성용-이청용의 합성어, 브란젤리나 같은 합성어로 생각하면 되겠죠) 커플이 가장 유명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

어쨌거나, 그게 좀 파급이 셌나봅니다. 코치의 동성애적 기질을 선수들도 느꼈는데, 새로운 선수가 오자마자 직접적인 터치가 오가는 모습을 선수들이 목격했으니, 팀이 어수선할 수밖에요. 그래서 결국엔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고 하네요. 외국에선 동성애가 국내보다 관대한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스포츠계에서는 더 보수적인 것 같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선수들은 K-리그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잔다르크가 아닌 이상 성정체성 증명보다는 스포츠인으로서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선수들이 대부분, 아니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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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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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에서 멋진 프리킥 골로 우리의 새벽을 뜨겁게 만들었던 박주영 선수가 프랑스로 출국했습니다. 8월부터 다시 시작되는 프랑스리그를 준비하기 위해 떠났는데요,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 생각했지만 현장에서 취소됐다는 소식만 전해졌습니다.

당초에는 출국 전 스탠딩인터뷰가 준비돼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건 최근 그를 둘러싼 뜨거운 감자, 다름 아닌 ‘결혼설’ 때문이었죠. 프리미어리그 빅클럽으로의 이적설에 이은 결혼설이라.

인터뷰 없이 굳은 표정으로 출국한 박주영 선수.

축구선수 박주영이 아닌 인간 박주영으로서, 그러니까 축구가 아닌 것들로 관심을 받는다든 사실에, 박주영 선수는 늘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늘 축구 이외의 것들에도 관심을 갖곤 하죠. 대중의 관심이 그렇다는 이유 아래서 말이죠. 그래서 그는 늘 미디어 앞에서 말을 아낍니다.

이번엔 참 갑작스럽게 결혼설이 터졌습니다. 서울 강남의 모 웨딩 전문 스튜디오에서 여자친구와 웨딩촬영을 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부터였죠. 마침 그때 즈음 치렁치렁,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한, 이마를 덮은 덥수룩한 머리가 예쁘게 다듬어졌고 살짝 펌도 들어갔더라고요. 기자들은 웨딩촬영용 머리라며 수군수군 댔죠.

결혼임박 기사가 나온 이후로 줄줄이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날 박주영의 에이전트는 핸드폰을 끄고 잠적했다는 사실이죠. 그런데도 출처도 없는, 또 박주영의 측근 혹은 지인이라는 내용으로 기사들이 쏟아졌는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측근 중 기자와 통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박주영 선수와 그의 여자친구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요. 박주영의 여자친구는 “나 결혼해?? 양가 엄마 아빠 나 쭈가 날짜도 모르고 장소도 모르는데.. 그들에 의하면 우리가 결혼하는구나”라는 글을 올려 황당한 심기를 드러냈고요.

사실 박주영 선수는 그날 정몽준 회장이 초청한 월드컵 16강 기념 만찬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었는데, 기자들과의 만남이 불편했던지 갑작스레 불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출국을 앞두고도 스탠딩인터뷰를 취소했고요.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이게 왜 기자들의 취재거리가 되야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도, 또 그의 대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에이전트도 노코멘트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전 이번 박주영 선수의 결혼설을 보면서 일단 제대로 된 취재 없이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받아쓰고 돌려쓰는 기자들의 모습에 적잖게 실망했습니다. 일단 쓰고 보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워낙에 팬들의 관심 역시 컸으니까요.

일련의 보도들에 지친 박주영 선수의 여자친구가 미니홈피를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 몇몇 사람들은 공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경솔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카더라 통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혼설과 관련해 마구잡이로 써내려간 기사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쨌거나 이렇게 사건은 이렇게 터져버렸고, 제가 만약 박주영 선수의 에이전트라면 핸드폰을 꺼버리는 대신 공식입장을 발표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세간의 관심은 박주영 선수의 결혼으로 향했고, 무작위로 써내려가는 기사를 막을 순 없을테니, 오히려 공식입장을 프레스에 전달해 정확한 이야기가 기사로 써내려가게 하는 거죠.

결혼을 한다면 지금의 여자친구와 하겠지만, 당장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등의 내용으로 말이죠. 추측성 기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박주영 선수 결혼설과 관련해 모두의 대처방식이 상당히 아쉬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개인사가 아닌 그의 축구사, 기왕이면 화려한 골들로 빛나는 축구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싶군요. 우리들의 축구천재, 박주영 선수의 새 시즌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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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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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지인들에게 그래도 월드컵 우승팀을 알겠지, 라는 생각에 이번 월드컵 우승팀을 물어보니 역시나, 정답을 빗겨난 대답들뿐이었습니다. 유로2008 당시 앙리 들로네컵에 이어 이번에는 월드컵까지 거푸 들어 올린 무적함대 스페인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먼나라 이야기였죠.

하나 우승팀 스페인은 몰라도 파울은 알더군요. 반칙의 영어 표현 Foul이 아니라 점쟁이 문어 Paul의 이야기입니다. 축구에 관심 없던 지인들도 파울이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경기 승패를 모두 맞힌 게 참 신통하다며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군요.

독일에서 살고 있는 2살 반의 문어 파울은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의 7경기와 스페인-네덜란드의 결승전까지 맞추며, 무려 8경기의 승리팀을 정확하게 예측한 덕분에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큰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사실 승패를 고르는 건 2분의 1의 확률이지만 8경기를 연속으로 적중시키는 확률은 256분의 1로 확 떨어집니다. 프로토의 달인이라도 8경기 연속은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문어 파울은 참으로 신통하게도 해냈습니다.

무엇보다 파울이 더욱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건 금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점친 펠레의 예언을 이겨냈다는 것이었죠. 알다시피 펠레는 늘 16강 진출팀을 시작으로 우승팀까지 매번 월드컵에서 열심히 지목하고 ‘설’을 풀어내지만 ‘펠레의 저주’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가 지목한 팀은 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경기에 패하며 서둘러 고국행 비행기를 타야했거든요.

그런데 파울도 스페인을 우승국으로 지목했고 펠레도 지목했습니다. 결국 파울의 예지력이 펠레의 저주를 이겨낸 셈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더 열광했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며,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편으론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선수가 스타가 아닌 동물이 스타가 된 월드컵이라뇨.

별들의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별보다 빛났던 스타의 쓸쓸한 뒷모습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신예의 비상에 박수쳤습니다.

그러나 유독 이번 월드컵만은 조용하네요. 남아공월드컵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거 예상했던 메시와 호날두는 침묵했으며 카카 역시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수아레즈의 신의 손 사건은 마라도나만 못했죠. 비야와 스네이더는 유로2008만 못했고요 외질과 뮐러, 수아레즈 역시 스타성에서는 2%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앙리와 오언이 외려 더 강렬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최다골 2위에 오른 클로제도 호나우도의 아성을 이겨내진 못했고요 근래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월드컵 스타 지단과 칸나바로만큼 빛을 발한 선수 또한 없었고요.

어쩜 빅클럽들간의 대항전, 챔피언스리그의 바쁜 일정 속에서 지칠 데로 지친 스타들에게 이번 월드컵은 고난의 행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쉴 틈 없이 바로 월드컵이 이어졌으니 팬들의 기대만큼 기량을 보여주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 언젠가 마라도나가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 중에 했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축구를 했다, 라고요.

오늘날의 축구판은 빅클럽들의 선수영입 경쟁으로 뜨겁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계적인 선수들의 몸값은 자신들이 가진 기량을 넘어서 이미 천문학적으로 올라만 가고 있고요. 빅클럽들은 그 싸움에 이기기 위해 더 크게 옵션을 걸고 베팅을 합니다. 뷰티풀게임에서 머니게임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축구란... 본질은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는 것만 같아 서글퍼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네요.

바라옵건대, 4년 뒤에는 진짜 축구를 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월드컵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마라도나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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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Tag 16강 진출 병역면제, 16강 진출 병역혜택, 1966 월드컵, 2010 남아공월드컵, 2010월드컵, 4.25팀, FC서울, WBC, 가와사키, 게르트뮐러, 경계인, 곤잘레스 이과인, 국방부, 기라드, 기성용, 기성용 동점골, 기성용 프리킥, 김남일, 김남일 경고, 김남일 반칙, 김남일 카드, 김두현, 김영후, 김정우, 김정훈 감독, 나이지리아, 남아공 월드컵, 남아공월드컵, 다비드 실바, 대표팀 병역논란, 대표팀 병역혜택, 대한축구협회, 디디에 드록바, 라이언킹, 리정금, 마라도나, 마라도나 사위, 마르체라노,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메시, 뮐레, 바르셀로나, 박주영, 박주영 골, 박주영 자책골, 박주영 프리킥, 박지성, 박지성 정대세 박카스 CF, 북한, 북한국가대표팀, 북한대표팀, 비야, 사비, 수아레즈, 수와레즈, 수원삼성, 스네이더, 시망, 신의 손, 실리축구, 아게로, 아르헨티나 패배, 아르헨티나전, 아르헨티나전 패배, 안영학, 앙리, 에우제비오, 염기훈, 염기훈 노골, 오범석, 우루과이, 우루과이전 패배, 월드컵, 월드컵 16강, 을용타, 이과인, 이과인 해트트릭, 이근호, 이니에스타, 이동국, 이동국 MVP, 이동국 득점왕, 이동국 월드컵, 이동국 월드컵 12년, 이동국 월드컵 한, 이동국 프랑스월드컵, 이영표, 이영표 눈물, 이운재 충고, 이을용, 이정수, 이정수 골, 이청용, 이청용 골, 자이니치, 점쟁이 문어 파울, 정경호, 정대세, 정대세 어머니, 정성룡, 정성룡 눈물, 정성룡 득남, 정성룡 선방, 정이세, 정해성, 조국통일 세레모니, 조선학교, 조용형, 조중연 회장, 주장 박지성, 지난, 지단, 지윤남, 차두리, 차두리 눈물, 차미네이터, 차바타, 차범근, 차정혁, 챔피언스리그, 천리마, 최순호, 최진철, 카르발뉴, 카시야스, 카카, 칸나바로, 코카콜라 원정대, 클로제, 테베즈, 토레스, 토탈사커, 티티아나, 파울, 푸욜, 프로테, 프로토, 한민족, 한반도, 허정무, 헤스케, , 호나우도, 호나우두, 호날두, 홍영조, 황선홍 밴드, 흑표범

2008년 9월. 요르단과의 A매치가 끝나고 믹스트존에서 만난 기성용 선수에게 넌지시 물어봤죠. 그날 그의 단짝 이청용 선수가 데뷔골을 기록했는데 부럽지 않냐고요. 멋적을 때면 늘 고개를 살짝 위로 올린 채 수줍게 웃던 그는, 역시나 그 질문에 대답할 때도 천장을 바라보며 웃더군요. "너무 부럽죠"라면서 말이죠.

데뷔전도, 데뷔골도 늘 청용이가 빠르다며 아쉬워했던 기성용 선수. 그런 그가 북한전에서 홍영조의 PK골로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23분 김두현의 패스를 그대로 오른발 발리슛으로 성공시키며 한국에 동점골을 안겼습니다. 본인에겐 A매치 데뷔골이었죠. 그것도 2경기 만에 얻은 성과니 실로 값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요르단전에 이어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던 북한전까지. 허정무 감독은 기성용 선수에게 '공격적'으로 뛸 것을 주문하는 듯 했습니다. 특히 요르단전 때는 후반 말미 기성용 선수가 뛰던 공간은 거의 스트라이커와 다름없는 위치에 있었죠. 결국은 그의 공격적 움직임이, 찬스를 놓치지 않던 집중력이 벼랑 끝에 있던 한국대표팀을 구해냈군요.

북한전이 끝난 후 지인들에게서 꽤 연락이 왔습니다. 동점골을 성공시킨 저 샤방한 선수는 누구냐면서요. 경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성용 선수는 축구선수(?) 답지 않게 고운 외모를 자랑합니다. 피부도 얼마나 좋은지 볼 때마다 저는 부럽습니다. 햇볕 아래서 뛰는 선수가 어떻게 여자인 나보다 피부가 더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죠.


그랬던 기성용 선수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도움을 2개나 기록하는 등 날카로운 킥력을 선보이며  대한민국의 원정 첫 16강 진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청용 선수 못지 않게 화제의 중심에 오른 기성용 선수. 모델보다 더 모델 같은 외모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엄친아로 등극한 그와 진행했던 화보사진을 살짝 공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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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 촬영은 이청용 선수와 함께 했는데, 촬영 내내 두 선수가 티격대격하더군요. 배고플까봐 준비한 김밥을 내왔을 때 '빵'만 좋아하는 이청용 선수가 극구 사양하자 성의를 생각하면 먹어야되는게 아니냐며 화를 버럭내던 기성용 선수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답니다. ㅋ

늘 예의바르고, 또 수줍음도 많지만, 할 말은 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는 기성용 선수. 그 모습을 지금처럼, 또 언제나처럼 간직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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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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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7분. 코너 근처에서 이영표가 그리수 선수의 파울을 얻어 낸 뒤 기성용이 프리킥을 차올렸습니다. 문전에서 올라오는 볼을 보던 이정수가 그리스 수비수들 사이로 뛰어 올리며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2002년 월드컵 3-4위전 터키전에서 이을용이 터뜨렸던 우리나라 대표팀 월드컵 최단시간 골을 2분이나 단축시킨, 시원한 선제골이었습니다.

이정수. 그는 사실 대한민국 대표팀의 베스트 11은 아니었습니다. 허정무 감독의 애제자 조용형 - 곽태휘 두 센터백 콤비의 그늘에 가려진 제 3의 수비수였죠. 처음부터 선발을 장담하던 멤버는 아니었으나 곽태휘의 부상과 조용형의 대상포진 증세로 이정수는 그 공백을 메울 대안이었고, 덕분에 월드컵 출전이라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죠.

이정수는 기회란 노력한 자만 붙잡을 수 있다는 축구계의 정설을 실력으로 입증했습니다. 선수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보통 유럽 수비수들은 세트 피스 상황에서 골대를 향해 올라오는 볼에만 시선을 두고 주전 스트라이커의 움직임에만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말은 곧 뒤에서 뒷공간을 노리며 달려 들어오는 수비수는 열외로 둔다는 이야기와도 같죠. 덕분에 이정수는 그리스의 장대숲같은 수비수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선제골은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정수에게 있어 그리스전은 참으로 특별했을 듯합니다. 비주전으로 분류됐던 자신이 부상선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전으로 투입됐을 때, 스스로 많은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선제골을 터뜨려 승리의 초석을 다졌고, 무엇보다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감하며 승리로 이끌었기에 주전 센터백으로 느꼈을 마음의 짐들을 한 번에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던 경기였을 것입니다.

“제가 대표팀 수비수들 중에선 나이도, K리그 경험도 제일 많아요. 어느 정도 리드해야한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어요. 그렇지만 전 이제 막 대표팀에 들어왔잖아요. 그 때문에 A매치 경험이 제일 적죠. 대표팀 경험이 풍부하지 못하다보니 위축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요. 좀 더 경험도 쌓고 자신감도 붙으면 선수들한테 이렇게 하자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글쎄요. 아직은......”

2008년 막 대표팀에 승선했을 때 이정수가 제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만약 단 한번의 패스미스로, 또는 상대 공격수의 돌아들어가는 움직임을 놓치거나 수비 뒷공간을 내주며 골을 허용했다면, 다른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스스로 ‘내가 들어가서 골을 허용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하는 지레짐작으로 마음이 위축됐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마음이 위축될 때 플레이도 함께 위축된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포백라인에서의 센터백은 기존의 홍명보 감독의 경우처럼, 리더로서 당당하게 수비수들을 이끌어야하는 법인데, 마음이 불안하거나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면 최후의 보루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죠. 수비불안은 심리적인 요인에서도 나오기 쉬운 법인데, 그런 점에서 이정수가 보여준 120% 활약은 남은 2경기의 선전도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이정수가 허정무호에 처음 승선한 때는 2008년 봄입니다. 2010월드컵 3차예선 북한과의 1차전에 나설 24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태극마크와 인연을 맺었죠. 무려 3년 만에 달게 된 태극마크였습니다. 사실 2005년 7월 동아시아선수권을 앞두고 대표팀에 전격 발탁된 바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으로 중도하차했지만 말입니다.

당시 이정수는 제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쉬운 전적이 있기에 마음을 비운 채 대표팀에 들어갔어요. 그저 뽑혔다는 사실에만 의의를 뒀죠. 당연히 곽태휘 선수가 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발목 통증을 호소하며 못 뛰겠다고 하더군요. 그로 인해 제게 기회가 주어졌고 다행히도 ‘제 것’으로 만들며 잘 잡은 것 같습니다.”

당시 이정수는 북한전에 출장하며 ‘정대세를 잡아라’는 허 감독의 숙제를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허심’을 잡은 것도 그때부터였죠.

사실 이정수는 2002년 경희대를 나와 안양LG에서 프로에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공격수였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당시 조광래 안양 감독이 수비수로의 보직 변경을 제안했습니다. 팀에 용병 공격수들이 포화상태였던 것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스피드가 좋으며 제공권에도 강하기 때문에 수비수로서 성장하기에 좋은 DNA를 가지고 있었기에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 컸다고 본 것이죠.

물론 이정수 본인도 저와의 인터뷰 당시 이를 인정했습니다.

“공격수 출신 수비수로서 말씀드리자면, 저 같은 ‘보직변경’이 수비수로 살아가는데 있어 더 도움이 되는 순간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읽는 것도 수월하거니와 패싱력이나 기동력 또한 전문수비수 출신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정수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죠. 2004년 인천으로 이적해 2005년 인천에 K-리그 준우승컵을 안겼고 그때의 활약으로 2006년 수원으로 이적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장외룡 감독은 내게 대표팀 감독이라면 이정수를 발탁할 것이다, 그는 K-리그 최고의 수비수이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수원에서 그는 날개를 단 듯 거침없이 질주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를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닥쳤죠. 그러나 워낙에 긍정적인 사람인지라 빅버드에 앉아 손수 수원선수단의 전력분석을 위한 경기 촬영 장면을 찍겠다며 일일 경기분석관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으며, 관중석에 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홈경기를 관람하다 중계 카메라에 잡힌 적도 있었죠. 팬들은 그에게 ‘계란정수’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는데, 지금도 그는 그 별명을 얘기할 때마다 쑥스러운지 어쩔 줄 몰라합니다. ^^

2008년 한일올스타전에서는 K-리그 대표팀으로 나갔던 그가 2009년에는 교토로 이적, J리그 올스타에 뽑혔고 대회 최우수 선수에도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J리그 진출 전에 밥 한번 꼭 먹자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때만해도 저는 으레 하는 인사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한데 전화가 왔더라고요. 밥 약속을 지키겠다면서요. 그런데 당시 제가 마감 중이라 제가, 감히, 그와의 밥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거절했습니다. 제 지인들은 월드컵 스타의 밥 약속을 거절했냐며 요즘 놀리고 있네요.

그때 일이 떠오르는 건, 그의 성품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흘리는 말이 아니라 꼭 할 말만 하고, 그 말은 꼭 지키는 것. 한 마디로 됨됨이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래서 결국엔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에서 드디어 축구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언젠가 그가 “10번 잘해도 1번 못하면 욕먹을 수밖에 없는 게 수비수의 숙명 아니겠냐”며 웃으며 해줬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참으로 씁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지요. 그래서 적어도 저를 비롯한 이 글을 읽는 사람들만큼은 단 1번의 실수로 인해 1골을 허용하더라도 2골을 막으면 되지 않겠냐며 박수치고 격려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은 2경기에서도 지금처럼만 뛰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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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한일전 2-0 통쾌한 승리로 모두의 관심은 박지성에게 쏠려있습니다. 경기 내내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처럼 지칠 줄 모르는 활동량을 선보이며 공수의 징검다리를 역할을 하던 모습은 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그가 필요한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 출전선수 명단을 알릴 때 울려퍼지던 일본 서포터들의 야유를 들으면서 한국 밖에서도 모두가 주목하는 키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고요,


박지성의 세레모니 또한 연일 화제였죠. 전반 선제골을 터뜨린 후 무심한 표정으로 관중석을 바라보던 박지성의 세레모니는 언론에서도 많이 궁금해했는데요, 저 역시 어떤 대답이 나올까 무척 궁금했답니다.


사실 그간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동료 선수들과 주로 얼싸안으며 세레모니를 하곤 했는데요, 가끔 손으로 심장을 두드리거나 아래에서 위로 올리면서 관중들을 ‘Cheer up’ 시키는 세레모니를 하기도 했지요. 예전에 A매치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손가락을 X자로 교차하는 세레모니를 했었는데, 그때 많은 기자들은 박지성을 기다리며 그 세레모니의 의미를 궁금해했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어떤 의미를 갖고 한 건 아니었는데...”였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의미가 있어보였어요. 그가 관중석을 물끄러미 쳐다봤을 때 경기장 내 일본 팬들은 침묵했으니까요. 그의 표정에서는 “봐라.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실력이고 투혼이고 저력이다”라는 뜻도 읽혀졌거든요.


이번에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대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보낸 야유에 답을 하고 싶었다는 박지성의 대답.

그 말 속에서 세계 무대 위에서도 담대하게 뛰던 모습이 떠올랐고,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게 성장한, 무거운 존재감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의 선수들은 그러한 야유를 들으면 부담을 갖거나 혹은 흥분하거나, 이렇게 극으로 갈리기 쉬운데 외려 침착한 모습으로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던 박지성의 모습에서는 냉철한 전략가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일전을 앞두고 가진 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 도중에는 “교토 퍼플상가에서 뛰던 10년 전보다 일본 대표팀은 확실히 약해졌다”는 발언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지요.

사실 1999U-20세계청소년축구대회 준우승, 2000시드니올림픽 8강, 2001아시안컵 우승을 거두며 2000대 초반 아시아의 축구강국은 일본이라는 여론이 지배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의 축구는 연일 진화하고 있지만 일본은 나카다 히데요시의 은퇴 이후 쇠퇴하고 있다는 게 대세입니다.

그런 가운데 박지성이 일본대표팀의 현 전력과 관련해 아주 냉정한 분석을 해줬네요. 알다시피 존경하고, 또 닮고 싶은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 또한 가져다주죠. 그런 점에서 박지성의 말은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됐을 거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한일전은 스포츠이기 전에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가 먼저 떠오르기에 국민들은 승리를 바라고,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선수들은 이겨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서 경기에 임합니다. 선수단 내 만연해있던 부담을 긍정의 힘으로 바꾼 박지성은 타고난 리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4강이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세운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일본만의 목표일 뿐 우리는 16강 진출이 목표라고 말했는데요, 그 간결한 대답에서 현실을 회피한 채 오리무중하고 있는 일본대표팀에 대한 나름의 비꼼(?)도 느껴져서 ㅎ 그 말을 들으며 혼자 지긋이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한데 박지성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일본대표팀의 수준이 10년 전보다 낮아졌다고 외신과의 인터뷰 도중 했던 말을 다시 하며 재확인해줬는데요,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항상 뭔가 민감한 질문에는 즉각적인 대답을 회피하던 박지성이었기에, 기자들도 “~ 때문에 ~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겠지, 하며 그의 대답을 늘 예상하곤 했거든요. 상대의 평가를 내리기에는 늘 조심스러워했고, 늘 잘한다고 칭찬했고, 정석에 가까운 말들만 하던 박지성이었죠. 할 말은 하되,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캡틴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난 한일전에서 전반 17분 이청용 혼다를 태클로 저지하자 심판이 휘슬을 불었죠. 그 다음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박지성이 주심에게 다가가 뭔가 이야기를 하며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이었죠. 주장은 선수를 대표해 심판에게 항의를 할 권리는 없다는 건, 피파 경기 규칙서에도 나오는 ‘룰’이지만 그래도 주장이라면 의도하지 않은 정당한 태클이었다며 심판에게 다가가 대표로 말하는게, 선수단 내의 암묵적인 또다른 ‘룰’이죠.

그간 경기장 내에서 늘 착했던 주장은, 2010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는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단순히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에 이청용 선수를 대신해 정당한 태클이었다며 얘기해준 것은 아니겠지요. 그간 다른 선수 뿐 아니라 본인이 반칙을 당해도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는 박지성이 지난 한일전에는 엔도의 백태클로 넘어지자 주심에게 왜 경고를 주지 않느냐는 제스처도 취해봤고요.

이뿐만이 아니죠. 박지성이 주장이 된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죠. 늘 정해진 시간에 다 같이 아침을 먹는 규칙도 자유롭게 먹는 걸로 바꿨구요, 당일 아침이 되야지만 통보되던 훈련 스케쥴도 전날 공지되는 걸로 바꿨죠. 선수들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위치에서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위치로 바꿨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혁신이었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가는 버스 안에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하는가하면 고개 숙인 채 끌려나가는 듯이 앉아 있던 라커룸 분위기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바꿔놓았습니다.

뭐든 즐기는 마음으로 해야 실력이 발휘될 수 있는 법이죠. 잘해야만한다는 생각이 중압감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양발을 묶는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작용하겠죠.


이번 월드컵은 사실상 그에게 마지막 월드컵입니다. 더 이상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다고 해서 그의 축구인생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박지성의 모습을 보며, 이번 남아공월드컵 이후 펼쳐질 박지성의 축구인생이, 저는 무척이나 궁금하고 또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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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8월 30일 수원삼성과 강원FC와의 경기는 수원에게 있어선 고인이 된 정용훈 선수를 추모하는 경기였습니다. U-17대표팀과 U-18대표팀을 거쳤던 1998년 수원에 입단했던 유망주는 K-리그 통산 64경기 5골 3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003년 8월 31일...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죠. 당시 펑펑 울던 조병국 선수의 얼굴이 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가 준비한 추모걸개입니다.

걸개 위에 있던 국화꽃들.

  정용훈 추모경기였던 그날이 더 특별했고 아름다웠던 이유는... 함께 정용훈 선수를 그리워하며 자비로 국화 꽃을 준비했던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반 44분 2-3으로 뒤지며 패색이 짙던 수원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송종국의 크로스를 받은 에두가 껑충 뛰어 올라 헤딩슛을 시도했고, 그대로 골망을 출렁이며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빅버드가 열광의 함성으로 가득찼을 때 골을 넣은 주인공 에두는 왼쪽 코너 플래그가 꽂혀있던 곳을 지나 한쪽 구석까지 달려갔습니다. 어디로 달려가는 거지?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죠.

에두가 달려간 그곳에 링거를 꽂은 채 마스크를 한 어떤 이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누구시냐고요? 신인기씨.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블루포토라 명명된 수원삼성 명예사진기자 모임에 소속돼 푸른 전사들의 사진을 찍어주신 분입니다. 수원 팬들 사이에서는 신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신 분이죠. 저도 이분의 사진을 보며 사란 사커 키즈 중 하나입니다.

한데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진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로 뵌 신인기씨는 무척 야위어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3년 전 위암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 투병 생활 중이라군요. 최근에는 암세포가 전이되 항암제를 맞으며 말기가 주는 고통과 싸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수원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자신의 몸만한 카메라와 렌즈를 챙겨들고 경기장에 나섭니다. 강원FC와의 경기가 열렸던 그날도 그랬고요. 한데 참으로 아름다웠던 것은 그런 그의 정성에 감동받은 에두가 동점골이 터진 후 그에게 달려가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오직 신인기씨만을 위한 세레모니를 보여줬던 것이죠.

경기 종료 후에는 선수들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 그의 쾌유를 빌어줬습니다.

신인기씨 앞으로 달려간 에두 선수의 모습이 살짝 나왔군요.

경기가 끝난 후 이렇게 단체사진도 찍었고요.

강원전날 신인기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수원의 여름전지훈련 때도 그는 동행하여 사진을 찍었지요.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수원의 역사를 담기 위해서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수원 구단에서는 신인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하프타임 때 전광판을 통해 그의 영상을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진 마감 때문에 사진기자실에 있던 저는 이 동영상을 보지 못했는데 그랑블루 여순식님께서 고맙게도 보내주셔서 이렇게 블로그에 첨부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한데 오늘 수원삼성 홈페이지에 들렸다가 신인기씨께서 오늘 오전 6시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고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수원블루윙즈축구단의 명예사진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주셨던 신인기씨께서 금일 오전 6시에 別世하셨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당 구단을 위해 헌신해주셨던 故人의 죽음에 삼가 弔意를 표하며 진심으로 冥福을 빕니다.


■ 亡 人 : 신 인 기 子  (享年  43歲)

■ 亡 時 : 2009년 10월 6일(화)

■ 殯 所 : 수원 성빈센트병원 영안실

■ 發 靷 : 2009년 10월 8일(목)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랑하는 수원 선수들의 모습을 경기장에서 담을 수 있었다는 것과 그간 사진을 찍는 동안 꼭 이루고 싶었던, 바로 수원 전사들의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꿈을 이뤘던 것이죠.

전시회가 열리던 날 수원구단 관계자들과 에두, 김대의, 양상민 선수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전시회 첫날 신인기씨는 “평생소원이던 사진 전시회를 병원장과 수원구단 관계자들의 후원으로 하게 됐다”라며 “지금 부인이 많이 걱정하고 있는데 미안하다”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저 역시 전시회에 찾아가려고 했지만 다음에 가야지, 하며 아직까지 못갔었는데 이제 고인이 되셨다고 하니 그때 내 몸이 조금 피곤할지라도 갔었어야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지난달 21일부터 성빈센트병원 중앙로비에서 진행됐던 신인기씨의 사진전은 10월 6일부터는 수원 북수원성당 내 뽈리 화랑으로 옮겨 11일까지 전시됩니다. 고인이 주말이면 찾던 성당에서 열리는 전시회 첫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전시된 사진들은 신인기씨 개인 홈페이지 (http;//www.singa.pe.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뿐 아니라 가족들이 썼던 사랑의 편지, 또 고인이 쓴 병상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계실 신인기씨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명복을 빌며, 당신의 수원사랑, 그 빛나던 열정, 영원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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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8월 30일 수원삼성과 강원FC와의 경기는 수원에게 있어선 고인이 된 정용훈 선수를 추모하는 경기였습니다. U-17대표팀과 U-18대표팀을 거쳤던 1998년 수원에 입단했던 유망주는 K-리그 통산 64경기 5골 3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003년 8월 31일...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죠. 당시 펑펑 울던 조병국 선수의 얼굴이 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가 준비한 추모걸개입니다.

못다한 꿈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슬프게 다가왔던...

걸개 위에 있던 국화꽃들.

벌써 세상을 떠난지 6년이라네요.

 
정용훈 추모경기였던 그날이 더 특별했고 아름다웠던 이유는... 함께 정용훈 선수를 그리워하며 자비로 국화 꽃을 준비했던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반 44분 2-3으로 뒤지며 패색이 짙던 수원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송종국의 크로스를 받은 에두가 껑충 뛰어 올라 헤딩슛을 시도했고, 그대로 골망을 출렁이며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빅버드가 열광의 함성으로 가득찼을 때 골을 넣은 주인공 에두는 왼쪽 코너 플래그가 꽂혀있던 곳을 지나 한쪽 구석까지 달려갔습니다. 어디로 달려가는 거지?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죠.

에두가 달려간 그곳에 링거를 꽂은 채 마스크를 한 어떤 이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누구시냐고요? 신인기씨.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블루포토라 명명된 수원삼성 명예사진기자 모임에 소속돼 푸른 전사들의 사진을 찍어주신 분입니다. 수원 팬들 사이에서는 신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신 분이죠. 저도 이분의 사진을 보며 사란 사커 키즈 중 하나입니다.
한데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진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로 뵌 신인기씨는 무척 야위어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3년 전 위암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 투병 생활 중이라군요. 최근에는 암세포가 전이되 항암제를 맞으며 말기가 주는 고통과 싸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수원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자신의 몸만한 카메라와 렌즈를 챙겨들고 경기장에 나섭니다. 강원FC와의 경기가 열렸던 그날도 그랬고요. 한데 참으로 아름다웠던 것은 그런 그의 정성에 감동받은 에두가 동점골이 터진 후 그에게 달려가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오직 신인기씨만을 위한 세레모니를 보여줬던 것이죠.

경기 종료 후에는 선수들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 그의 쾌유를 빌어줬습니다.

신인기씨 앞으로 달려간 에두 선수의 모습이 살짝 나왔군요.

경기가 끝난 후 이렇게 단체사진도 찍었고요.

강원전날 신인기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수원의 여름전지훈련 때도 그는 동행하여 사진을 찍었지요.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수원의 역사를 담기 위해서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수원 구단에서는 신인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하프타임 때 전광판을 통해 그의 영상을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진 마감 때문에 사진기자실에 있던 저는 이 동영상을 보지 못했는데 그랑블루 여순식님께서 고맙게도 보내주셔서 이렇게 블로그에 첨부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신인기씨가 사랑하는 아들과 다시 축구장을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앓는 사람에게 강복하시고 갖가지 은혜로 지켜주시니 주님께 애원하는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신인기 프란치스코 형제님의 병을 낫게 하시며 건강을 도로 주소서. ● 주님이 손으로 일으켜주시고 주님의 팔로 감싸 주시며 주님의 힘으로 굳세게 하시어 더욱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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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요르단과의 평가전이 열린 9월5일 금요일 상암월드컵경기장. 경기 시작 30분 전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관중석은 텅텅 비었죠. 8시에 경기가 시작됐지만 관중석은 여전히 비어있었고 축구를 향한 국민들, 혹은 팬들의 관심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청용의 결승골로 1-0 대한민국이 승리했지만 경기 내용적으로는 다소 실망스럽다는게 사실입니다. 전반 우리대표팀은 4-2-3-1 포메이션으로 나섰는데 원톱 조재진은 또 다시 고립되더군요. 오른쪽 날개 이청용이 유연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조재진에게 몇 번의 크로스를 올렸으나 무용지물. 왼쪽 날개 김치우는 그간 왼쪽 풀백으로만 뛰었던 선수인지라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다소 불편해보였습니다. 그의 슈팅은 연신 크로스바를 훌쩍 넘기기 일수였죠.

후반에는 올림픽대표팀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며 4-3-3에서 4-4-2으로 포메이션이 바뀌었습니다. 신영록 원톱에서 서동현이 가세해 투톱으로 바꿨지만 두 선수 모두 A매치 데뷔전이라서 그랬을까요. 올림픽대표팀에서 보여주던 파괴력 넘치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수확은 패싱력 공격성 등을 두루 갖춘 중앙미드필더 기성용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장신 미드필더가 드문 우리 대표팀에 남다른 하드웨어를 지닌 기성용의 합류는 앞으로 큰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라 예상됩니다.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기성용 선수는 “솔직히 저희 오늘도 관중이 안와서 놀랐어요. 야구가 금메달 따서 선수들이 부담이 되는데요”라고 말하더군요. 최근 베이징올림픽에서 축구대표팀이 여타 스포츠에 비해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지만 가장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데에 대해 “축구장에 물 채워라”는 팬들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냐고도 물어봤습니다.




기성용 선수는 “자극이 되죠. 저희가 못했기 때문에 저희가 잘못한 거고. 그렇지만 지나갔기 때문에 현재만 생각하고 노력해서 본선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경험있는 선수들도 있고 젊은 선수들이 이제 대표팀에 합류하고 세대교체하는 시기니까 그 점에서 양해 부탁드려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김남일 선수는 "허정무 감독님이 더이상 실험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선수들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라는 뼈있는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대다수 선수들은 다소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나섰고 그 모습이 현 대표팀의 현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어찌하여 축구대표팀이 이렇게 됐을까요. 하지만 팬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그들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군요. 베이징올림픽에서 팬들은 금메달을 딴 선수들에게만 박수와 사랑을 보낸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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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북한과의 마지막 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한국대표팀은 일찌감치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으며 3차예선을 통과했다. 물론 최종티켓을 따낸 공은 인정하나 3차예선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다소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전문가들에게 쓴소리도 좋다며 전반적인 평가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제 막 장도에 오른 대표팀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성급한 판단을 경계했다.


김호 <대전시티즌 감독>
일단 월드컵을 향한 고개 하나를 통과했다는 사실에 축하 인사말을 건넨다. 3차예선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누구보다 허정무 감독이 잘 알 것이다. 그동안 노출된 문제점들을 잘 분석해 최종예선에 임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난관도 있을 것이다. 전술에 맞는 선수들을 선발해 배치할텐데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각 전술에 적합한 선수를 배치하는 ‘눈’은 곧 감독이 가진 ‘능력’이다.

관련해 첨언한다면 공격수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득점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만 한다. 쉽지만은 않다. 금세 만들어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게감 있는 중앙공격수도 필요하다고 본다. 수비 쪽에선 ‘리더’가 가장 필요하다. 수비라인을 조율하고 이끌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해야 한다. 현재의 자원 중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택하여 수비조직을 안정되게 이끌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맡겨야한다.

앞으로 최종예선을 통과하기 위해선 선수들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는 기본이다. 따라서 지금보다 더 많이 땀을 쏟으며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에 대한 이해력을 키워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해외파와 국내파 상관없이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한 배를 탔다는 생각으로 지도자와 합심해야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 부족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공격수들이 골을 넣지 못했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 최종예선에서 만날 상대들은 3차예선보다 어렵고 강하다. 어떻게 하면 득점찬스를 골로 결정지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수비 조직력에서도 문제점이 많았다. 상대 역습 시 중앙수비수 뒷공간으로 연결되는 패스나 공격에 허점을 노출했다는 사실은 많은 걱정을 낳게 한다. 중앙수비수들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경기장에서 가능한 많은 대화를 나누며 라인을 조율해야하는데 현 대표팀에서는 그런 리더 역할을 하는 선수가 없는 듯하다.

해외파들의 경기력 난조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최종예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일단 그 부분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한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던 선수들의 등장은 반가웠다. 데뷔전에서 이청용이 보여준 움직임이나 패스연결 등은 기존 선수들이 갖고 있지 못한 부분들이었다. 대표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 또 수비형MF로 출전한 조원희는 그동안 단순히 수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3차예선 동안 공격상황에서 보여준 패스나 움직임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또 괜찮았다. 김치우도 칭찬해주고 싶다. 3차예선에서는 투르크메스탄과의 2차전 때만 출장했지만 스피드, 크로스, 오버래핑 등 모두 좋았다.

김정남 <울산현대 감독>
2010월드컵에 출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최종예선 진출은 축하할 일이다. 월드컵 진출을 향한 기대가 높기 때문에 다들 부담이 많을 것이다. 다행히 경기를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희망적이다. 물론 일부 팬들은 경기 중 노출된 몇몇 단점들을 지적하며 성을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때 대표팀을 맡았던 경험자로서 말한다면 그럴 때마다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감독은 혼란에 빠지기 쉽다. 동시에 선수들이 겪는 압박감도 상당하다.

월드컵 진출을 위한 걸음은 이제 막 시작되지 않았나. 아직 가야할 길이 멀기에 그들이 좀 더 힘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이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월드컵 참가 경험이 가장 많다고들 하지만 최근 아시아 국가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 되고 있는 실정이라 월드컵 최종티켓을 따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긍정적인 점은 선수들에게서 자신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이 자신감이 앞으로 쌓을 조직력, 포지션별 경쟁을 통한 시너지 효과 등과 잘 버무려진다면 충분히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축구에서는 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순탄치 않을 때도 많겠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마지막에는 꼭 좋은 성적이 이에 보답할 것이다.

신문선 <한국축구연구소 책임연구원>
최종예선을 앞두고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수비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 되풀이 됐고 전방 공격수들의 움직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할 뿐 아니라 골 결정력에서도 문제를 보였다. 미드필드 지역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간 한국이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는 흐름으로 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이 3선의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이청용에 관한 부분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청용이 요르단과의 1차전에서 부상당하기 전까지 보여준 모습이 인상깊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 1경기만으로 선수의 능력을 논한다는 것은 어려고 위험한 일이다. 그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 위화감이 조성될까 걱정스럽다. 그가 가진 가능성과 능력은 대표팀에 선발됨으로서 이미 평가받은 것 아닌가. 선수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덧붙여 우리는 1경기에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해외파 선수들이 리그에서 뛰지 못한 탓에 컨디션 난조가 있었지만 몇 경기만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선수들이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모습들과 기여도를 생각해봐라. 성급한 평가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 대표팀은 과거에 비해 훈련일수가 줄어들어 조직력을 쌓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허정무 감독 이하 선수들 역시 이러한 변화 적응, 노력 중이므로 조금 더 지켜보자.

장외룡 <인천Utd. 감독>
이제 3차예선을 마친 상황이라 구체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 그러나 대표팀 내에서 세대교체가 진행됐다는 부분은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추세가 그렇지 않나. 유수 클럽들을 살펴보면 20대 초반 선수들이 팀 스쿼드의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로2008만 봐도 그렇지 않나. 지난 대회에 나섰던 선수들을 고수한 팀들은 새 얼굴과 함께 등장한 팀들에게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2002월드컵 이후 제대로 된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했다. 그 때문에 허정무 감독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듯하다. 특히 요르단전에서 이청용을 기용한 사실은 상당히 좋았다고 본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박지성 이영표 같은 해외파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다. 게다 이청용은 A매치까지 소화했으니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최종예선에서는 젊은 선수들에게 이 같은 기회가 많이 생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실상 최종예선에서 여유 있는 행보를 보일 나라가 얼마나 있겠는가. 최종예선은 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 사활을 거는 승부의 장이지 영건들이 경험을 쌓는 장은 아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최종예선에 들어서기 전, 좋은 젊은 선수들을 발굴, 육성했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과제는 신구조합을 통한 조직력 강화뿐이라고 본다.

김대길 <KBS N 해설위원>
전방에 위치한 3명의 공격수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부족했다. 골 결정력의 부재 또한 뼈아팠다. 미드필드 지역에서는 전방을 향해 보내는 패스의 날카로움이 떨어졌고 2선에서 침투하는 능력 역시 부족했다. 수비라인 쪽에서는 중앙수비들이 뒷공간을 자주 노출시키며 불안했고 풀백들은 공격의 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요르단과의 1차전에서 김용대가 불안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2실점을 골키퍼만의 책임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앙에서 후방으로, 계속해서 상대에게 공을 내주며 밀리다 실점으로 이어졌는데 실상 골키퍼의 결정적인 실수가 아니었으므로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최종예선 진출이라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전체적으로 경기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이청용을 거론하고 싶다. 부상 때문에 원정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첫 경기에서 보여준 가능성은 성공적이었다고 칭찬하고 싶다. 득점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까지 가는데 보여준 날카로움이 꽤 인상적이었다. 아울러 투르크메니스탄과의 2차전에서 김두현의 플레이가 살아났다는 점, 김치우 최효진의 투입으로 측면 공격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는 점도 희망적이다. 마지막으로 김두현의 2번째 득점 장면을 칭찬해주고 싶다. 최근 대표팀이 세트피스 상황에서 보여준 모습은 날카롭지 못했고 기대 이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김두현의 득점이 바로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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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4년 전, 그러니까 2004년 9월 중순의 어느 날쯤 됐겠다. K리그 경기가 없던 주말, 잠시 시간을 내 서울에 올라온 김정우를 만났다. 인터뷰를 위한 자리였다. 익숙한 곳이 편하다 하여 고대 앞 노천카페에 만났는데, 삽시간에 웅성웅성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2004아테네올림픽 조별예선 멕시코전에서 터진 김정우의 중거리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하기야 첫 승을 안겨준 골이었으니 더욱 잊을 수 없었겠다. 덕분에 길고 빠른 동선을 그리며 멕시코 네트를 흔들었던 김정우의 슈팅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 강렬했던 결승골로 2004아테네올림픽 8강신화를 쏘아올린 김정우가 다시금 신화재현에 나선다고 한다. 이번엔 2008베이징올림픽이다.

선택받은 남자
“와일드카드로 뽑힐 거라는 확신은 없었습니다. 다만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가능하겠다는 믿음만 있었을 뿐이죠. 리그 경기에서 열심히 뛰었던 게 박성화 감독님께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지난 4월3일 박성화 감독은 48명의 올림픽대표팀 예비명단을 대한체육회에 제출했다. 물론 당시만 해도 김정우의 와일드카드 발탁을 예상한 이는 적었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0순위였던 박지성이 무릎이상과 팀 일정을 이유로 빠지게 되며 ‘와일드카드 시나리오’에 전면적인 개편이 가해졌다. 박성화 감독은 일단 2장의 카드를 공격수와 수비수 보강에 쓰기로 했다. 대표팀 내 왼발잡이가 드물었기에 염기훈(후에 부상으로 제외)과 김동진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남은 1장의 카드를 놓고 자연스레 김두현과 김정우가 경합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물론 선발 전까지 김두현이 한발 앞선 모양새였다. 2010월드컵 3차예선 투르크메니스탄과의 2차전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성화 감독이 선택한 마지막 카드는 다름 아닌 김정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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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김)두현이보다 아주 조금 나은 부분이 있다면 ‘수비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프로입단 후 수비형MF로 보직을 변경했고 덕분에 수비력 하나만은 제대로 기를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이번 올림픽에서 이탈리아나 카메룬 같은 강팀들과 한 조에 묶였잖아요. 그런 팀들을 이기기 위해선 중원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해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박성화 감독님께선 그 역할을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잠깐, 여기서 퀴즈 하나. 이번 유로2008에서 스페인에겐 있었지만 이탈리아에겐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 명장? 용병술? 우승컵? 여러 답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정답은 바로 세나 같은 ‘살림꾼’ 미드필더의 유무다. 우승과 조별예선 탈락의 갈림길은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 실상 이탈리아가 조별예선에서 네덜란드에게 0-3으로 대패했던 요인 중 하나도 바로 미드필드 자원의 몰락 아니었던가. 그만큼 현재 축구에서 허리싸움은 중요하다. 김정우 카드에선 바로 그와 관련한 박성화 감독의 고심이 느껴진다. 게다 김정우는 수비 뿐 아니라 공격까지 두루 아우를 수 있는 ‘멀티력’까지 갖췄으니, 아무리 봐도 또 뒤집어봐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카드다.

소리 없이, 그러나 강하게
지난 5월28일 2010월드컵 3차예선 4연전을 앞두고 대표팀 미디어데이 행사가 메이필드 호텔에서 열렸다. 당시 기자들은 돌아다니며 앉아 있던 선수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졌는데, 유독 휑한 테이블이 있었다. 바로 김정우가 있던 자리였다. 애석하게도 2007아시안컵 이후 대표팀에 1년 만에 발탁된 그에게 관심을 쏟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그는 행사가 끝나기 전 조용히 자리를 뜨고 말았다.

“괜찮아요. 수비형MF가 공격수처럼 튀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비록 눈에 띄진 않지만 소리 없이 강한 자리죠. 제가 해야할 일은 공격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춰주고 수비 시엔 적극적으로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는 것뿐이에요. 조용히 제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센스 하나만은 타고 났다”며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김정우 아니던가. 일찍이 그를 지도했던 임종헌 코치(부평고 시절) 조민국 감독(고려대 시절) 등은 “패싱력 수비력 슈팅력 3박자를 고루 갖춘 미드필더”라며 입을 모아 칭찬한 바 있다. 게다 올 시즌 벌써 15경기 3골4도움을 기록하며 소속팀 성남에선 김두현의 공백을 말끔히 메우고 있다는 호평까지 받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것들은 와일드카드 김정우를 향한 기대가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더 부담이 돼요. ‘와일드카드로 뽑힌 만큼 도움이 돼야 할텐데...’하는 걱정도 들고요. 처음 합류했을 때, 제가 나이가 제일 많을 뿐 아니라 올림픽에 한번 참가했던 경험도 있다 보니 앞장 서서 이끌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결국 그런 것들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요즘은 ‘나서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다 같이 잘해보자’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돼요. 덕분에 이런 저런 압박들에게서 자유로워졌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것 같아요.”

듣던 중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경쟁에서 오는 부담은 없는 것일까. 최근 백지훈과 오장은이 부상에서 회복하며 중원 경쟁에 새롭게 가세했고 때문에 김정우 스스로도 이제는 선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꼭 중앙만 치열하나요. 어느 자리든 뛸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다들 경쟁하죠. 치열하지 않은 곳은 없어요. 그렇지만 전 피하지 않고 즐기겠습니다. 후배들과의 경쟁은 적절한 자극이에요.” 김정우는 활짝 웃으며 현답을 내놓았다.

성공한 와일드카드가 되겠다
참 많이 변했다. 김정우와의 인터뷰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확실히, 김정우는 변해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수줍게 대답하던, ‘얼굴 빨개지던 아이’ 김정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동안 와일드카드로 뽑힌 선수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또 다시 실패로 거론되는 그런 와일드카드로 기억되고 싶지 않습니다.” 김정우의 재발견이라고 불러도 될까. 목표가 또렷한 만큼 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모두 강했다. 그날, 김정우는 분명 그랬다.

“2004아테네올림픽 당시 말리전이 생각나요. 후반 10분까지 0-3으로 지고 있었죠. 그러나 저희에겐 메달을 따겠다는 강한 목표가 있었어요. 그 덕분에 3-3으로 따라붙으며 8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었죠. 목표가 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의지까지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덧붙여 김정우는 “2번 째 주어진 기회를 쉽게 놓치고 싶지도, 또 그 앞에서 무너지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4년 전보다 올림픽 메달을 향한 염원이 더 커졌다는 이야기다.

“이번 올림픽을 살펴보면 호나우딩요 리켈메 등 와일드카드로 참가하는 선수들의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 때문에 메달을 향한 도전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무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성화 감독님께서도 “무모한 도전은 아니다. 단지 힘든 도전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죠. 이변은 늘 있는 법이잖아요. 저희가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마지막 순간 웃으며 돌아오겠다던, 와일드카드 김정우와의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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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10월드컵 3차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북한전은 0-0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한국과 북한은 나란히 조 1,2위를 기록하며 최종예선에 동반진출하게 됐죠. 경기가 끝난 후 믹스트존에서 북한 선수들을 기다리는데, 솔직히 긴장도 되고 또 기대도 컸습니다. 저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북한 선수들이었으니까요.



첫 테이프는 정대세 선수가 끊었습니다. 정대세 선수는 역시나 소문대로 한국 취재진들이 던진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죠. “플레이가 단조롭지 않나”는 질문에 “단조롭다”는 말의 뜻을 몰라 갸우뚱 거리기도 했고 “생명 걸고 시합하려고 했는데”라는 2% 어색한 한국어로 모두를 웃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한국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고 싶다”는 엉뚱한 말에 이번에는 취재진이 갸우뚱 거리며 되묻자 “한국은 같은 민족, 내 민족이니까 내 존재를 알리고 싶다”고 이유를 말해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죠.



정대세 선수가 지나간 뒤 북한 선수들이 우르르 나왔는데, 역시나 그들은 취재진들을 향해 미소만 살짝 짓더군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끄덕. 다음으로 북한의 실질적 키플레이어라 할 수 있는 홍영조 선수(정대세 선수의 말에 따르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북한 내에서도 기대 큰 유망주라고 합니다)가 나타났습니다. 몰려드는 취재진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지 “남과 북 모두 월드컵에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버스에 올라탔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난 선수는 바로 안영학 선수. 안영학 선수 역시 수원삼성에 뛰고 있는 터라 취재진들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죠. 그런데 너무 늦게 나타난 바람에 다른 모든 선수들이 버스에 올라와있었고 북한 쪽 관계자 분께서 “안 동무! 얼른 오시오!”하는 바람에 결국 취재진들에게 작별을 고해야했답니다. 동영상 마지막 부분에 “안 동무!”라고 애타게 부르는 북한 분의 목소리가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동무”라는 말을 듣기는 처음이라 어색한 웃음을 짓던 기자들이 몇몇 있었죠.


제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북한 선수들을 바라보며 ‘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들과 제대로 된 이야기 하나 나누지 못했음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스포츠에서만큼은 이념의 장벽을 조금 낮출 수는 없는 것일까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낳게 했던 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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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K-리그에서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전 김두현 선수가 좋았습니다. 경기 중 관중석을 바라보며 간간히 보여주던 환한 눈웃음과 그때마다 가지런히 빛나는 하얀 치아가 좋았습니다. 팬들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먼저 인사해주던 그의 성품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김두현만의 자신감이었습니다.



2006년 초 다음과 같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올해도 K-리그 베스트11에 뽑힐 수 있겠어요?”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죠. “올해도 작년처럼 열심히 하면 3년 연속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열심히 뛰는 것만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렇게 그저 '열심히'만 뛰던 이 사람은 결국 해냈죠. 2006 K-리그 MVP의 최종 주인공은 우리들의 영원한 꾀돌이 김두현 선수였습니다.

다시 1년의 시간이 흐르고 2007년 시즌이 찾아왔습니다. 그때도 그는 제게 이렇게 말했지요. "올해도 열심히 해서 4년 연속 K-리그 베스트 11에 꼭 뽑히겠어요. 지켜봐주세요"라고요. 그리고 2007년 그는 또 다시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며 자신의 실력을 다시 한 번 모두에게 입증했죠.

그런데 그가 중대한 결심을 했다고 고백하더군요.

“모따가 종종 제게 말했어요. 왜 아직도 여기 있냐면서요. 외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거라며 꼭 도전해보라고 조언해 줬어요. 그런 말들을 통해 자신감을 많이 얻었죠. 자극도 많이 받았고요. 그러다 2006년 말 K-리그 우승컵과 MVP를 동시에 거머쥐면서 생각했죠. ‘그동안 K-리그에서 뛰면서 참 많은 것을 이뤘구나. 이젠 나가야할 시간이다’라고요. 제겐 큰 전환점이 된 순간이었어요.”

그는 K-리그 경험을 발판으로 더 크게 도약하겠다고 말했죠. 웨스트 브롬위치에서 테스트를 받기로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누군가는 그랬어요. K-리그 MVP 출신이 테스트를 받으면서까지 가야하겠냐고요. 그렇지만 전 그런 자세로는 절대 해외진출에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축구 종주국이 아니에요. 월드컵 4강에 올랐지만 그렇다고 아직 축구 강대국도 아니고요. 그렇기 때문에 K-리그 선수들의 실력은 아직 검증받지 못한 상태죠. 속상하지만 이를 인정해야해요. 그리고 하루 빨리 우리 스스로 수준을 높여야겠죠. 그래야 비디오 혹은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 하나만으로 뽑히는 날이 올테니까요.”



결론은 다들 아시죠? 입단 테스트를 통과한 김두현은 그로부터 6개월 후인 지난 5월 결국 웨스트 브롬위치와 2년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웨스트 브롬위치가 프리미어십에서 우승하며 1부리그에 진출했으니 드디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5번 째 선수가 됐군요. 그 사실만으로도 대단한데 이번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하며 골가뭄에 허덕이던 한국대표팀에 ‘단비’가 돼줬네요. 문득 인터뷰 도중 그가 제게 했던 말이 생각합니다.

“중학교 때 숙소 앞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어요. 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 때까지 참고 견디며 노력하자. 그 문구를 보며 운동했는데 정말로 현실이 돼서 나타났어요. 정말 기분 좋았죠. ‘나도 이제 대표구나’ 하는 사명감도 생겼고요. 경기가 끝났는데도 다시 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넘쳤어요. 늘 그때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며 뛰려고 해요.”

지금도 김두현 선수는 처음 국가대표가 됐던 순간, 태극마크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A매치에 데뷔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의 해트트릭 비결은 바로 ‘초심’에 있는 게 아닐까요? 물론 그의 해트트릭은 공수를 아우르는 기동력, 너른 시야, 남다른 슈팅력 등등 그가 가진 장점들이 잘 어우러진 덕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전 ‘처음의 마음’을 지금도 잊지 않는 김두현 선수만의 근성이 지닌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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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기자에게 외고를 써서 받는 원고비는 이른바 '꽁돈'이다. 작년 봄 원고비로 받은 몇십만원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샀었지.

새로산 카메라는 제법 마음에 들었고 그 중에서도 동영상 기능이 제일 마음에 들어찼다. 제법 신기하기도 해 취재갈 때마다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인터뷰를 마치면 선수들에게 나에 대한 코멘트를 아주 뻔뻔스럽게 부탁하곤 했는데, ^^;

그 동영상을 오랜만에 본 김에 이렇게 포스팅 한다. 불과 1년 만에 우린 참 많은 발전을 이뤄낸 듯해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김두현 씨는 어느새 프리미어리거가 됐고 이청용 씨는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 데뷔전까지 치렀다. 기성용 씨는 한때 퍼거슨이 찜한 영보이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 무럭무럭 성장해서 지금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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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박지성 선수의 선제골과 박주영 선수의 PK골로 전반 2-0으로 앞서갔지만 후반에 내리 2골을 내주며 결국 2-2 무승부로 경기는 끝이 났습니다.

동점골이 터지자 하산 압델 파타는 유니폼까지 벗어 던지며 기쁨을 표현하더군요. 2골 모두 자신의 발끝에서 터졌으니 그럴 수밖에요. 때문에 경고 카드를 받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습니다.


믹스트존에서 우리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요르단 선수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렸습니다. 요르단 선수들은 일부러 보란 듯이 믹스트존에 있던 문을 활짝 연 다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더군요. -.-;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난 우리 대표팀 선수들. 대부분 고개를 푹 숙인 채 갔고 기자들 역시 그 마음을 이해하는지라 꼭 멘트가 필요한 선수들에게만 가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지막에 나타난 박지성 선수는 대부분 기자들이 김남일 선수에게 몰린 틈을 타 조용히 가려했으나 결국 그를 발견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를 해야만 했지요.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박지성 선수의 인터뷰가 궁금하신 분들은 동영상을 확인해보세요. 마침 박지성 선수가 제 앞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정면에서 박지성 선수의 멘트를 딸 수 있었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떠난 후 믹스트존을 나서려는데 요르단 축구협회 관계자 분께서 우리 한국 기자들에게 요르단 기념품을 선물로 나눠줬습니다. 제 재킷 왼쪽 깃에다가는 특별히 요르단 배지를 달아주시더군요.



물론 선물을 주는 그 마음에는 감사했으나 2-2라는 스코어 때문에 씁쓸한 마음으로 경기장을 나섰습니다. 열심히 뛰었으나 막판 뒷심 부족으로 2골을 헌납한 우리 대표팀 선수들의 마음은 또 오죽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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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8K리그 개막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채 일주일도 안 남았으니 말이에요. 이번 시즌에도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팀을 옮기는 대이동을 했습니다. 뽀뽀와 까보레, 따바레즈처럼 한국을 떠나 새로운 리그에서 새출발을 시작한 선수들이 있었는가 하면 더 좋은 조건 하에 다른 팀으로 옮긴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선수들은 후자입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 덕분에 타 팀에서 열렬한 구애를 보냈고

그 덕분에 올시즌부터는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시작하는 외국인 선수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브라질 삼총사 데닐손, 루이지뉴, 두두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분석글이다 보니 편하게 말을 놓겠습니다. 감안하시고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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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부르는 브라질 탱크, 데닐손
3월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7K리그 개막전에서 대전은 수원에 2-1로 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이후 8경기 무승(4무4패)을 기록하며 팀 전체는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꿋꿋이 제 몫을 한 선수가 있었다. 데닐손이다. 연속무승행진을 기록하던 기간 중 대전이 올린 전체득점은 겨우 7골. 그중 절반(4골)이 넘는 골이 데닐손의 발끝에서 터졌다. 데닐손의 진가는 이후 더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전은 4월15일 전북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뒤늦게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2골 모두 데닐손의 작품이다. 4월18일 광주전에서는 1-0으로 이기며 창단 10년 만에 100승 고지에 올랐다. 데닐손의 결승골 덕분이었다. 4월은 데닐손에게 ‘잔인한 달’이 아니었다. 데닐손은 5경기 연속골(4월7일~4월22일) 행진을 펼쳤고 대전 선수들은 그에게 ‘데닐신(神)’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데닐손은 대전에서 다양한 진기록들도 세웠다. 데닐손은 4월11일 열린 컵대회 서울전에 전반 35초 만에 선제골을 넣었다. 2007시즌 최단시간 골 기록이었다. 물론 한 달 뒤에 방승환(11초)에 의해 밀려났지만 K리그 전체로 봤을 땐 12위에 해당한다. 9월22일 대구전에서는 해트트릭에도 성공했다. 전반 42분 만에 3골을 성공시켰고 이는 2007시즌 최단시간 해트트릭 기록으로 남았다. 동시에 대전에게는 창단 이래 첫 해트트릭을 선물했다. 데닐손은 후반 12분에브라질리아의 추가골을 도왔고 ‘북치고 장구까지’친 데닐손 덕분에 대전은 홈에서 4-1 대승을 거뒀다.

대전은 2007시즌을 데닐손 타이슨 페르난도, 이렇게 세 명의 용병과 함께 시작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영입한 타이슨은 부상에 시달리며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페르난도는 리그 적응에 실패했다. 국내 공격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식은 부상-수술-재활 수순을 밟고 있었고 우승제는 슬럼프가 심했다. 정성훈만 간신히 면치레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데닐손은 꾸준히 제 기량을 보여줬으니 대전 입장에선 구세주일 수밖에 없었다. 데닐손은 지난해 24경기에 출장하며 14골이나 넣었다. 득점순위로만 따지면 18골을 넣은 까보레에 이은 2위다. 데닐손을 처음 영입했던 최윤겸 前감독은 “골 결정력이 탁월하다”며 칭찬했다. PO에서 데닐손을 상대했던 박병규(울산)는 “탱크처럼 힘이 상당히 좋아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데닐손은 파워 넘치는 드리블러답게 문전 앞까지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스타일이다. 찬스가 생기면 놓치지 않고 바로 슈팅으로 연결한다. 슈팅수로만 따지면 87회로 정규리그 1위다. 어찌보면 골 욕심이 많아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데닐손은 골 수당 때문에 과욕을 부리는 일부 용병들과 다르다. 그의 진가는 슈바 영입 이후 더욱 드러났다. 대전은 여름 휴식기 동안 타이슨과 페르난도를 내보내고 슈바와 브라질리아를 데려왔다. 지난 시즌 데닐손이 올린 5도움 중 4도움이 바로 이들의 합류 이후 이뤄진다. 특히 슈바와의 콤비 플레이가 눈부셨다. 3경기 연속도움(9월22일~10월6일)도 이때 이뤄졌다.

후반기 대전은 3-4-3에서 4-3-3 포메이션으로 새 옷을 입었다. 최전방 데닐손을 중심으로 좌우날개로 브라질리아와 슈바가 섰다. 그러나 라인을 따라 뛰는 브라질리아와 달리 슈바는 살짝 처진 상태에서 데닐손과 자주 스위칭을 시도하며 그를 도왔다. 확실히 데닐손 혼자 고분분투하던 전반기와는 달랐다. 시즌 종료 후 몸값이 오른 데닐손은 아랍에미레이트리그에서 뛰기로 결정하며 11월 중순 경 두바이로 떠났다. 그러나 러브콜을 보냈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는 바람에 허공에 붕 뜬 상태가 됐다. 다행히 포항이 적극적인 영입의사를 밝혔다. J리그 某팀보다 더 좋은 조건이었다.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다는 사실도 그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지난 시즌 우승팀 포항은 3-4-1-2 포메이션으로 성공시대를 이뤘다. 올해도 포메이션은 크게 변화되지 않을 전망이다. 부상이라는 이변이 없는 한 투톱 중 한 자리는 데닐손 몫이다. 데닐손의 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알도, 이광재, 남궁도, 고기구 중 유력한 후보는 알도와 남궁도다. 그중 데닐손-남궁도 투톱이 눈여겨볼만하다. 동계훈련 기간 중 데닐손은 남궁도와 함께 뛰며 루미니아1부리그 소속팀 U.클뤼를 2-0으로 눌렀다. 골도 사이좋게 하나씩 기록했다. 데닐손을 향한 파리야스 감독의 믿음은 크다. 지난 해 야심차게 영입한 마우리시오(전반기) 슈벵크 조네스(이상 후반기) 모두 ‘실패한 농사’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그 중심에 데닐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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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별을 꿈꾼다, 루이지뉴 
2006시즌 대구FC 브라질 트리오 에듀(3골) 지네이(4골) 가브리엘(2골)이 성공시킨 골은 도합 9골이다. 용병 셋의 합작이라고 말하기엔 심히 부끄러운 성적표다. 그래서일까. 이듬해 박종환 감독 후임으로 온 변병주 감독은 터키에서 진행된 동계훈련 기간 동안 용병 영입에 가장 큰 신경을 썼다. 그런데 때 마침 변 감독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선수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루이지뉴다. “루이지뉴는 화려한 드리블과 빠른 스피드, 거기다 골 결정력까지 겸비한 선수였다. 보는 순간 ‘저 선수다’ 싶었다.”

루이지뉴는 산토스FC의 촉망받던 유망주 중 하나다. 1997년 산토스 유스팀에 들어가 호빙유(레알마드리드) 디에고(브레맨) 등과 같이 축구를 배웠다. 그중 디에고와는 함께 방을 쓰며 우정을 쌓았다. U-17 및 U-20대표팀(2001년~2005년)에서 뛰었으며 파리아스 감독과 그때 처음 연을 맺었다.

루이지뉴를 향한 변 감독의 신뢰는 컸다. 루이지뉴는 그 덕분에 FC서울과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3월 첫 달, 6경기 연속 선발출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플레이는 감독의 기대와는 반비례했다. 개막달 루이지뉴가 기록한 골은 단 2골. 그것도 2번 모두 필드골이 아닌 PK골이다. 보다 못한 변 감독의 따끔한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식이라면 다시 브라질로 돌려보내겠다는 엄포도 있었다. 그뒤 4월에 다시 만난 루이지뉴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4월에만 무려 9골을 몰아넣었다. 루이지뉴는 그 비결을 ‘에닝요 덕분’이라 설명했다. 요지는 이렇다. “에닝요는 패스를 통해 경기를 풀어나갈 줄 아는 선수다. 3월 말부터 합류한 에닝요는 내게 많은 도움이 됐다.” 컵대회에서 7골을 넣은 루이지뉴는 5골을 넣은 데얀, 데닐손을 제치며 득점왕을 수상했다. “데뷔 첫해 받은 상이라 더 기쁘다”는 소감처럼 K리그에서 보낸 첫 시즌은 스스로도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렇지만 소속팀 대구는 2007K리그에서 12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12위도 감독내홍으로 수난시대를 맞이한 부산(13위)과 만년꼴찌 광주(14위)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야만 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다. 그러나 칭찬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근호-루이지뉴 투톱의 위용만큼은 여느 팀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이 그것이다.

루이지뉴는 수비수와 일대일 상황일 때 개인기를 이용, 돌파하는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다. 주로 수비 배후 공간으로 돌아들어가는 걸 즐기는 편이다. 이때 보여주는 놀라운 스피드와 정확한 슈팅은 그간 골을 많이 넣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대구에서 함께 운동했던 조홍규는 “문전 앞에서 보여주는 공을 향한 집착과 집중력, 위치선정은 무서울 정도로 좋다”라고 평했다. 그의 말처럼 루이지뉴는 문전 앞에서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로 골 냄새를 잘 맡는다. 지난 해 기록한 18골 가운데 PK 3골을 제외해도 자그마치 14골을 골에어리어 안에서 성공시켰다. 조홍규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골에어리어 안에서 뒤엉킨 상황에도 기가 막히게 골이 될 만한 위치를 찾아냈다”고 회상했다. 175cm의 단신이지만 공중볼 장악능력도 좋다. 4월14일 수원전에서는 수원의 장신수비벽을 뚫고 동점 헤딩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그런 루이지뉴에게도 단점은 있다. 스리백을 쓰는 팀을 만날 때면 ‘한없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맨투맨 수비에 약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럴 때면 이근호가 나타나 좌우 중앙에서 활발히 움직이며 이를 뚫어줬다. ‘태양의 아들’ 이근호의 커버 플레이가 빛났기에 루이지뉴도 동반상승할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지난 시즌 이근호가 8골로 득점순위 8위(국내선수 1위)에 오를 수 있던 까닭도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2007시즌을 끝으로 대구와 계약이 만료된 루이지뉴는 울산에 새둥지를 틀었다. 지난 해 울산은 공격수들의 연이은 악재 때문에 FC서울 못지않은 분루를 삼켰다. 호세를 시작으로 마차도 양동현이 부상으로 시즌을 접어야만 했다. 여름 이적시장 때 이천수는 네덜란드로 떠났고 정경호와 맞트레이드 한 염기훈은 피로골절로 시즌 막바지였던 PO때 겨우 출전할 수 있었다. 노장 우성용 혼자 울산의 공격을 담당하기엔 버거웠다. 울산이 올 시즌을 영입한 용병은 루이지뉴 브라질리아 레안드롱(임대복귀)이다. K리그를 통해 이미 검증된 선수들과 하고 싶다는 김정남 감독의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올해도 울산은 스리톱과 투톱을 적절히 혼용하며 경기에 임할 계획이다. 투톱일 경우 루이지뉴는 우성용(양동현)과 함께 빅 앤 스몰 조합을 구성할 예정이다. 반면 스리톱에서는 중앙이 아닌 측면에서 타깃맨을 지원사격할 듯하다. 오른발을 주로 쓰기 때문에 염기훈이 아닌 이상호 또는 브라질리아와의 경쟁이 예상된다. 이천수가 떠난 뒤 울산은 ‘스타’없는 밤하늘을 바라봐야만 했다. 2008년 루이지뉴는 과연 그곳을 빛낼 별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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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날개가 되어라, 두두
“두두는 20분 만에 2번이나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다. 그 중 1번은 골키퍼 선방에 막혔지만 정확하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두두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2007년 3월11일 전남과의 원정경기에서 FC서울은 정조국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귀네슈 감독은 공격수들에게 쓴소리를 가했다. 골을 넣지 못한 두두의 위치선정과 감(感)을 보고 배우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날 두두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귀네슈 감독 부임 이후 벤치멤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FC서울은 개막전에서 대구를 상대로 2-0으로 이겼지만 두두에게는 잊고 싶은 경기였다. 승리가 거의 확정적이던 후반42분 아디 대신 투입됐기 때문이다. 두두의 수난시대는 그 뒤로도 계속됐다.

2007시즌 초 귀네슈 감독은 4-4-2 포메이션으로 팀을 재정비하며 ‘공격축구론’을 펼쳤다.  두두에게는 왼쪽 측면을 맡겼다. 갑작스레 왼쪽 윙어로 보직을 변경하게 됐지만 두두는 스트라이커 출신답게 중앙을 파고들며 날카로운 공격을 선보였다. 이렇듯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에 힘을 실어주는 듯 했지만 문제는 ‘주전’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박주영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수원을 4-1로 이겼던 그날도 두두는 후반43분 교체선수로 투입됐다. 시즌 시작 이래로 6경기 연속 교체출전. 말이 좋아 ‘조커’였지 한때 성남에서 최고의 공격 삼각편대를 이뤘던 두두에게는 자존심에 금이 갈 법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4월29일 홈에서 경남에게 3-0으로 지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그날이후 두두는 사라졌다. 배가 아프다는 이유였다. 몇몇 선수들은 태업(怠業)에 들어갔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곧 병명이 밝혀졌다. ‘스포츠 헤르니아’였다. 두두는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 브라질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름 휴식기가 끝날 쯤 두두는 부상에서 완벽히 회복한 상태로 팀에 복귀했다. 당시 FC서울은 김은중, 정조국, 박주영, 심우연 등 주전 공격수들의 부상으로 신음 중이었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두두는 복귀전이었던 8월8일 포항전에서 귀중한 결승골로 귀네슈 감독에게 승리를 안겼다. 이어 열린 제주전에서는 1골 1도움으로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마치 2년 전 FC서울로 팀을 옮기자마자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던 그때를 보는 듯 했다.

2004년 8월 브라질1부리그 크루제이루에서 뛰던 두두는 계약금 10만 달러에 성남과 계약했다. 이듬해 두두는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박주영, 마차도와의 득점경쟁은 모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두두는 2005시즌 10골 4도움으로 마차도(13골 1도움) 박주영(12골 1도움)에 이어 득점랭킹 3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함께 성남 공격 삼각편대를 이뤘던 김도훈은 5위, 모따는 9위(7골 4도움)였다.

당시 김도훈-두두-모따로 구성된 삼각편대의 공격력은 매서웠다. 지금은 모따를 더 인정하지만 그때만 해도 모따보다는 두두였다. 상대 수비수들이 두두만 잡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두두는 성남을 2004컵대회 우승과 2004AFC챔피언스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05후기리그와 2006전기리그 우승컵도 들었다. 2006컵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을 때엔 히칼도(前서울,4도움)를 제치고 도움왕(5도움)도 수상했다. 두두는 컵대회를 마치고 FC서울로 전격 이적했다. 당시 팀을 이끌던 이장수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기리그 내내 득점이 없어 고민이었다. 그렇기에 두두의 영입은 큰 의미가 있다. 만족스런 보강이다.” 2006 후기리그 때만 해도 두두는 2년차 슬럼프에 빠졌던 박주영을 제치고 주전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두두는 전형적인 브라질리언이었다. 자율적인 분위기에서는 절제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체중은 점점 증가했다. 성남시절에는 팀 규정상 아침저녁으로 몸무게를 체크하며 관리했다. 그러나 FC서울에서는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하고 관리해야만 했다. 볼 컨트롤과 왼발 프리킥은 여전히 뛰어났지만 늘어난 체중 탓에 결국 움직임은 예전만 못했다.

2008시즌을 앞두고 두두는 비록 임대지만 다시 친정팀 성남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성남으로의 복귀는 그에게 전화위복이 될 듯하다. 왼쪽 윙포워드 자리를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2005후기리그와 2006전기리그 우승컵을 들 당시 성남에게는 ‘두두’와 ‘모따’라는 양 날개가 있었다. 두두가 다시 찾은 날개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김학범 감독 아래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두두는 부활이라는 이름하에 분명 천마의 화려한 날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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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개구진 웃음이 참 인상적이었던 김두현 선수가 드디어 결혼을 했습니다. 영원히 소년으로만 제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던 그가 드디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네요.

그전까지 제게 김두현 선수는 가까이 하기엔 참 어려운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해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짧은 인터뷰는 그간 가지고 있던 그의 이미지를 한번에 깨뜨린 아주 좋은 계기가 되었죠.

K-리그 MVP까지 수상한 선수라면 조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먼저 인사하고 웃어주던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을 때면 늘 제게 먼저 알려주는 고마운 선수였지요. 빨리 기사 쓰면 더 좋지 않냐는 이유 때문이었으니까요. ^^

그런 그가 결혼을 한다며 제게 청첩장을 건네줬습니다. 꼭 와서 도장 찍고 가라는 협박성 멘트와 함께요. 축구를 취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리버리하던 그 시절, 저를 도와주던 그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장까지 달려갔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김두현 선수는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겨줬습니다. 축하해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요.

그에게 축하 악수를 건네는데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 그러냐고요? 김두현 선수의 손이 땀으로 축축히 젖어있었거든요. 그래서 씩 웃으며 물어봤죠. "A매치 때도 긴장 잘 안하면서 오늘은 왜 이렇게 긴장하세요? 손이 땀으로 가득해요." 그러자 그는 절대 아니라며 변명했답니다. "아니에요. 긴장해서 그런게 아니라요 요기 안이 너무 더워서 그래요."

그렇지만 다들 짐작하시겠죠? 식장 내부는 전혀 덥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땀 한방울 나지 않았거든요. 역시, 김두현 선수는 긴장을 한  것 같습니다. ^^

국가대표 출신 선수답게 그의 결혼식에는 수많은 축구스타들이 참석해 결혼식을 축하해줬습니다. 그러나 역시 가장 빛났던 사람은 오늘의 주인공 김두현 선수와 정혜원 씨였죠. 반짝반짝 빛나던 그들의 모습처럼 앞으로 함께 걸을 길도 그렇게 오래도록 반짝반짝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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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김두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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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대기실에서 만난 신부 정혜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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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선수 팬들도 축하하러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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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쪽 친지께서 평소 팬이었다며 신랑 김두현 선수를 꽉 안아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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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되서 나타난 조재진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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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코치도 결혼식장에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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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고요? 바로 고종수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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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그에서 뛰고 있는 오범석 선수도 휴가 기간을 맞이해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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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원 선수가 왜 이렇게 웃고 있냐고요? 제 얼굴을 못 알아본게 미안하다며 요렇게 웃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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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으로 참석한 김은중 선수는 사인하기 바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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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박주영 선수는 전화하기 바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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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자리잡은 김진규 선수 모습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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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코치는 고종수 선수와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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늠름한 모습으로 입장하고 있는 신랑 김두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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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손을 꼭 잡고 들어서는 신부 정혜원 씨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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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 맞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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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아름다웠던 신부 정혜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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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주례사를 듣고 있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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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의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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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잡은 두 손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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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가는 홍경민 씨와 유리상자가 불렀답니다. 사진 속 모습은 홍경민 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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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는 만세삼창 대신 입맞춤을 시켰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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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의 행진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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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기 전 분주한 모습의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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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진 찍기 3초 전부터는 다들 멋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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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에서 보던 모습과는 조금 색다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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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위한 신랑 신부의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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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선수, 정혜원 씨 오래 오래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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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1년 수원 입단 당시 처음 만난 김두현과 조성환. 당시 수원에는 수많은 '김호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이 둘의 끈끈한 우정은 동료 선수들이 놀릴 정도로 남달랐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적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는 것이다. 2005년 후기리그를 앞두고 김두현과 조성환은 성남과 포항으로 이적했다.



함께 수원의 중흥기를 이끌던 이들은 이후 적으로 다시 만나 싸워야했지만 그라운드 밖에서는 역시 둘도 없는 친구였다.


2005년 12월 24일. 최성국 결혼식에 참석했던 선수들은 뒤풀이 장소에 모여 김두현을 찾았지만 그는 다른 장소에 있었다. 바로 일주일(31일) 후 결혼할 조성환을 만나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던 것.


이후 김두현은 둘도 없는 친구 조성환을 위해 결혼식 사회자로 나섰다. 지금도 김두현은 결혼식 사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 평소 그렇게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아마 성환이 결혼식 사회가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사회가 될 듯하다. 그만큼 특별한 친구니까 " 라고 말한다.


그리고 2년 후, 조성환은 당시 진 마음의 빚을 갚았다. 오는 12월 15일 결혼식을 앞둔 김두현에게 웨딩촬영 들러리를 자청한 것. 비록 팀이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웨딩촬영 현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조성환을 대신해 동갑내기 신부 박창희 씨가 신부 쪽 들러리로 나서 함께 웨딩사진을 찍었다.


대신 김두현은 동반 신혼여행을 제의했다. 동계훈련 때문에 결혼식 이후 신혼여행도 가지 못한 조성환 부부는 김두현 부부와 함께 결혼식 다음날(16일) 발리로 떠난다.


김두현 부부가 일궈낸 6년간의 사랑만큼 빛나는 6년간의 우정. 이들이 함께 가는 신혼여행지 발리에선 과연 무슨 일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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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김두현의 얼굴에선 시종일관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 제 아내 될 사람이에요. 예쁘죠? "


김두현(26, 성남)이 6년 열애 끝에 웨딩마치를 올린다. 상대는 2001년 수원 입단 당시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정혜원 씨.


웨딩촬영을 위해 아침 일찍 미용실에서 모든 준비를 마친 김두현, 정혜원 예비부부는 신사동 스튜디오로 이동해 저녁 늦게까지 사진촬영에 임했다.




이미 각종 매체들을 통해 화보촬영 경험이 있는 김두현은 능숙한 포즈로 정혜원 씨를 이끌었다. 예비 신부가 어색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할 때마다 김두현은 " 그렇게 웃는 건 가짜 웃음! 진짜로 웃자 " 며 촬영장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었다.


마침 이날은 특별한 친구들도 함께했다. 바로 남궁도(26, 전남)와 김동현(24, 성남).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 시절 처음 연을 맺은 이들은 그간 쌓은 우정을 바탕으로 이번 웨딩촬영 들러리를 자청했다.


남궁도는 " 상무에서 제대하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 며 " 두현이가 결혼한다 하니 눈물이 나려 한다 " 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동현 역시 " 형이 먼저 간다고 하니 부럽다. 나도 빨리 가야겠다 " 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궁도는 " 그래도 너보단 내가 먼저 가야지 " 라며 받아치기도.


정오부터 시작된 이날의 웨딩촬영은 늦은 저녁까지 계속됐다. 남궁도와 김동현은 " 차라리 축구가 덜 피곤하지만 그래도 기쁘다 " 며 김두현의 결혼을 축복했다.


김두현은 " 아내의 내조에 힘입어 내년에는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라고 새신랑의 포부를 밝혔다.


김두현, 정혜원 예비부부의 결혼식은 오는 12월 15일 토요일 오후 1시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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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7 삼성하우젠 K-리그 우승팀은 ‘전통의 명가’ 포항 스틸러스에게 돌아갔습니다.

11월 11일 성남 탄천운동장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포항은 전반 43분 터진 죠네스의 선제골을 잘 지켜 2연승(1차전 3대 0 포항 승)으로 너무나 쉽게 2007 시즌 K-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요.


이번 포항의 우승은 여러모로 인상 깊습니다. 우선은 리그 5위 팀이 '6강 플레이오프 제도' 덕분에 경남, 울산, 수원을 연거푸 제압하며 결국엔 우승했다는 사실이 가장 눈에 띕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포항의 우승이 더욱 주목을 끄는 이유는 바로 ‘축구는 이름값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참’임을 다시 한 번 증명시켜줬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비록 1차전에서 장학영 선수에게 한 골을 허용했지만 골키퍼 정성룡 선수는 특유의 침착함으로 마지막까지 포항의 골문을 지켜냈습니다. 청소년대표 시절 한 살 어린 차기석 선수에게 밀리며 2인자의 설움을 겪어야만 했지만 그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묵묵히 이겨냈지요. 결국 정성룡 선수는 이번 챔피언결승전에서 포항을 우승으로 이끌며 ‘진정한 1인자’로 빛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가 대단하게만 보이는군요.

박원재 선수 역시 그렇습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포항 스틸러스가 배출한 또 다른 스타지요. 수원과의 플레이오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끈 그는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연속골을 뿜어내며 단번에 자신의 이름을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아보지 못한 ‘중고 신인’이 챔피언결정전을 통해 ‘스타’로 거듭났습니다. 또 하나의 신데렐라 역사를 쓴 그 모습이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네요. 


최효진 선수도 빼놓을 수 없겠죠.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그때, 그는 울산에게 우승컵을 내주며 굵은 눈물방울을 잔디 위로 쏟아내야만 했지요. 당시 이를 보다 못한 장외룡 감독이 직접 나서 그를 달래줘야만 했을 정도로 그는 참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아픔은 결국 오늘의 기쁨으로 승화됐습니다. 올 시즌 포항으로 이적하며 오범석 선수에게 밀려 벤치 설움도 겪었지만 그는 결국 주전 자리를 꿰차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네요. 그 모습에 대견하다는 생각만 연신 드는군요.  


이광재 선수는 또 어떻고요. 경남과의 6강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기분 좋은 조짐을 보였던 그는 이어 펼쳐진 울산전과 성남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역시 골을 기록하며 ‘특급 조커’로서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줬습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가봅니다.


그러고 보니 포항 수비의 핵 조성환 선수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한때 ‘김호의 아이들’ 중 하나로 총망 받는 미래를 보장받는 듯 했지만 포항 이적 후 잠시 잊혀진 존재가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지난겨울 진행했던 루마니아 리그 진출이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중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많은 우려의 눈으로 그를 지켜봤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역시 프로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플레이로 포항의 수비를 책임졌으니까요.  그의 노고 역시 칭찬하지 않을 수 없겠죠.   


‘돌아온 스트라이커’ 고기구 선수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지난 해 포항은 이동국 선수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최전방 공격수의 부재를 걱정해야만 했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9골3도움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이동국 선수의 자리를 확실히 메운 고기구 선수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올 시즌 개막전이었던 3월 4일 인천전에서 첫 골을 기록한 이후 10월 10일 울산전까지 그는 연이은 골 침묵 속에서 괴로워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문에 경남, 울산, 수원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중용되지 못하는 결과와 만나야만 했고요. 그러나 성남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파리아스 감독은 그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고기구 선수는 그 믿음에 보답했지요. 성남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보여준 그의 골은 정말 멋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장 투혼을 불사른 K-리그 17년 차 김기동 선수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번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마지막으로 필드 플레이어로서는 최다출장(426경기)인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만약 그만의 지독한 ‘자기 관리’가 없었다면 우승컵을 드는 오늘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7년 만에 손에 든 우승컵, 그 뒤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뒤에 얻은 승리가 있었습니다. 진정한 승자가 된 그에게 존경의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이로서 2007 K-리그도 끝이 났습니다. 2007 시즌 일정표가 나오길 기다렸던 지난겨울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참 빠르기도 하지요. 어느새 다음주에는 신인 선수 드래프트 일정까지 잡혀있고요. 내년에는 또 어떤 선수들이 등장하여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할까요?  그 생각만으로도 제 마음은 어느새 내년 봄을 꿈꾸며 빠르게 뛰기 시작하네요.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에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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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