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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축구대표팀 김정우 "성공한 와일드카드가 되겠다"

4년 전, 그러니까 2004년 9월 중순의 어느 날쯤 됐겠다. K리그 경기가 없던 주말, 잠시 시간을 내 서울에 올라온 김정우를 만났다. 인터뷰를 위한 자리였다. 익숙한 곳이 편하다 하여 고대 앞 노천카페에 만났는데, 삽시간에 웅성웅성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2004아테네올림픽 조별예선 멕시코전에서 터진 김정우의 중거리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하기야 첫 승을 안겨준 골이었으니 더욱 잊을 수 없었겠다. 덕분에 길고 빠른 동선을 그리며 멕시코 네트를 흔들었던 김정우의 슈팅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 강렬했던 결승골로 2004아테네올림픽 8강신화를 쏘아올린 김정우가 다시금 신화재현에 나선다고 한다. 이번엔 2008베이징올림픽이다.

선택받은 남자
“와일드카드로 뽑힐 거라는 확신은 없었습니다. 다만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가능하겠다는 믿음만 있었을 뿐이죠. 리그 경기에서 열심히 뛰었던 게 박성화 감독님께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지난 4월3일 박성화 감독은 48명의 올림픽대표팀 예비명단을 대한체육회에 제출했다. 물론 당시만 해도 김정우의 와일드카드 발탁을 예상한 이는 적었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0순위였던 박지성이 무릎이상과 팀 일정을 이유로 빠지게 되며 ‘와일드카드 시나리오’에 전면적인 개편이 가해졌다. 박성화 감독은 일단 2장의 카드를 공격수와 수비수 보강에 쓰기로 했다. 대표팀 내 왼발잡이가 드물었기에 염기훈(후에 부상으로 제외)과 김동진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남은 1장의 카드를 놓고 자연스레 김두현과 김정우가 경합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물론 선발 전까지 김두현이 한발 앞선 모양새였다. 2010월드컵 3차예선 투르크메니스탄과의 2차전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성화 감독이 선택한 마지막 카드는 다름 아닌 김정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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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김)두현이보다 아주 조금 나은 부분이 있다면 ‘수비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프로입단 후 수비형MF로 보직을 변경했고 덕분에 수비력 하나만은 제대로 기를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이번 올림픽에서 이탈리아나 카메룬 같은 강팀들과 한 조에 묶였잖아요. 그런 팀들을 이기기 위해선 중원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해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박성화 감독님께선 그 역할을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잠깐, 여기서 퀴즈 하나. 이번 유로2008에서 스페인에겐 있었지만 이탈리아에겐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 명장? 용병술? 우승컵? 여러 답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정답은 바로 세나 같은 ‘살림꾼’ 미드필더의 유무다. 우승과 조별예선 탈락의 갈림길은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 실상 이탈리아가 조별예선에서 네덜란드에게 0-3으로 대패했던 요인 중 하나도 바로 미드필드 자원의 몰락 아니었던가. 그만큼 현재 축구에서 허리싸움은 중요하다. 김정우 카드에선 바로 그와 관련한 박성화 감독의 고심이 느껴진다. 게다 김정우는 수비 뿐 아니라 공격까지 두루 아우를 수 있는 ‘멀티력’까지 갖췄으니, 아무리 봐도 또 뒤집어봐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카드다.

소리 없이, 그러나 강하게
지난 5월28일 2010월드컵 3차예선 4연전을 앞두고 대표팀 미디어데이 행사가 메이필드 호텔에서 열렸다. 당시 기자들은 돌아다니며 앉아 있던 선수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졌는데, 유독 휑한 테이블이 있었다. 바로 김정우가 있던 자리였다. 애석하게도 2007아시안컵 이후 대표팀에 1년 만에 발탁된 그에게 관심을 쏟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그는 행사가 끝나기 전 조용히 자리를 뜨고 말았다.

“괜찮아요. 수비형MF가 공격수처럼 튀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비록 눈에 띄진 않지만 소리 없이 강한 자리죠. 제가 해야할 일은 공격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춰주고 수비 시엔 적극적으로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는 것뿐이에요. 조용히 제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센스 하나만은 타고 났다”며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김정우 아니던가. 일찍이 그를 지도했던 임종헌 코치(부평고 시절) 조민국 감독(고려대 시절) 등은 “패싱력 수비력 슈팅력 3박자를 고루 갖춘 미드필더”라며 입을 모아 칭찬한 바 있다. 게다 올 시즌 벌써 15경기 3골4도움을 기록하며 소속팀 성남에선 김두현의 공백을 말끔히 메우고 있다는 호평까지 받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것들은 와일드카드 김정우를 향한 기대가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더 부담이 돼요. ‘와일드카드로 뽑힌 만큼 도움이 돼야 할텐데...’하는 걱정도 들고요. 처음 합류했을 때, 제가 나이가 제일 많을 뿐 아니라 올림픽에 한번 참가했던 경험도 있다 보니 앞장 서서 이끌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결국 그런 것들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요즘은 ‘나서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다 같이 잘해보자’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돼요. 덕분에 이런 저런 압박들에게서 자유로워졌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것 같아요.”

듣던 중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경쟁에서 오는 부담은 없는 것일까. 최근 백지훈과 오장은이 부상에서 회복하며 중원 경쟁에 새롭게 가세했고 때문에 김정우 스스로도 이제는 선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꼭 중앙만 치열하나요. 어느 자리든 뛸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다들 경쟁하죠. 치열하지 않은 곳은 없어요. 그렇지만 전 피하지 않고 즐기겠습니다. 후배들과의 경쟁은 적절한 자극이에요.” 김정우는 활짝 웃으며 현답을 내놓았다.

성공한 와일드카드가 되겠다
참 많이 변했다. 김정우와의 인터뷰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확실히, 김정우는 변해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수줍게 대답하던, ‘얼굴 빨개지던 아이’ 김정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동안 와일드카드로 뽑힌 선수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또 다시 실패로 거론되는 그런 와일드카드로 기억되고 싶지 않습니다.” 김정우의 재발견이라고 불러도 될까. 목표가 또렷한 만큼 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모두 강했다. 그날, 김정우는 분명 그랬다.

“2004아테네올림픽 당시 말리전이 생각나요. 후반 10분까지 0-3으로 지고 있었죠. 그러나 저희에겐 메달을 따겠다는 강한 목표가 있었어요. 그 덕분에 3-3으로 따라붙으며 8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었죠. 목표가 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의지까지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덧붙여 김정우는 “2번 째 주어진 기회를 쉽게 놓치고 싶지도, 또 그 앞에서 무너지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4년 전보다 올림픽 메달을 향한 염원이 더 커졌다는 이야기다.

“이번 올림픽을 살펴보면 호나우딩요 리켈메 등 와일드카드로 참가하는 선수들의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 때문에 메달을 향한 도전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무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성화 감독님께서도 “무모한 도전은 아니다. 단지 힘든 도전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죠. 이변은 늘 있는 법이잖아요. 저희가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마지막 순간 웃으며 돌아오겠다던, 와일드카드 김정우와의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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