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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World Football

경기종료 후 북한선수들의 모습은 이랬다

2010월드컵 3차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북한전은 0-0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한국과 북한은 나란히 조 1,2위를 기록하며 최종예선에 동반진출하게 됐죠. 경기가 끝난 후 믹스트존에서 북한 선수들을 기다리는데, 솔직히 긴장도 되고 또 기대도 컸습니다. 저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북한 선수들이었으니까요.



첫 테이프는 정대세 선수가 끊었습니다. 정대세 선수는 역시나 소문대로 한국 취재진들이 던진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죠. “플레이가 단조롭지 않나”는 질문에 “단조롭다”는 말의 뜻을 몰라 갸우뚱 거리기도 했고 “생명 걸고 시합하려고 했는데”라는 2% 어색한 한국어로 모두를 웃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한국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고 싶다”는 엉뚱한 말에 이번에는 취재진이 갸우뚱 거리며 되묻자 “한국은 같은 민족, 내 민족이니까 내 존재를 알리고 싶다”고 이유를 말해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죠.



정대세 선수가 지나간 뒤 북한 선수들이 우르르 나왔는데, 역시나 그들은 취재진들을 향해 미소만 살짝 짓더군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끄덕. 다음으로 북한의 실질적 키플레이어라 할 수 있는 홍영조 선수(정대세 선수의 말에 따르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북한 내에서도 기대 큰 유망주라고 합니다)가 나타났습니다. 몰려드는 취재진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지 “남과 북 모두 월드컵에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버스에 올라탔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난 선수는 바로 안영학 선수. 안영학 선수 역시 수원삼성에 뛰고 있는 터라 취재진들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죠. 그런데 너무 늦게 나타난 바람에 다른 모든 선수들이 버스에 올라와있었고 북한 쪽 관계자 분께서 “안 동무! 얼른 오시오!”하는 바람에 결국 취재진들에게 작별을 고해야했답니다. 동영상 마지막 부분에 “안 동무!”라고 애타게 부르는 북한 분의 목소리가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동무”라는 말을 듣기는 처음이라 어색한 웃음을 짓던 기자들이 몇몇 있었죠.


제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북한 선수들을 바라보며 ‘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들과 제대로 된 이야기 하나 나누지 못했음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스포츠에서만큼은 이념의 장벽을 조금 낮출 수는 없는 것일까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낳게 했던 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