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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World Football

박지성 빠진 와일드 카드, 누구에게 돌아갈까?

오는 8월8일 중국에서 개막하는 베이징올림픽은 대륙을 돌고 돌아 20년 만에 다시 아시아에서 개최하는 대회다. 인접하고 친숙한 지역에서 열리는 만큼 한국올림픽대표팀은 1988서울올림픽에서 이루지 못한 ‘메달권 진입’을 일찌감치 목표로 세웠다. 각오가 남다르나 부담도 적잖을 것이다. 때문에 대회를 목전에 둔 지금, 박성화 감독의 머리는 꽤나 복잡하다. 그런 박 감독에게 힘이 될 수 있는 3장의 카드가 앞에 놓여있다.


뼈를 단단하게 하고 살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이나 선뜻 뽑아들기가 주저스럽다. 바로 와일드카드 이야기다.

와일드카드 잔혹사
한국올림픽대표팀은 새로운 제도가 생겨난 1996올림픽을 시작으로 2004올림픽까지 꾸준히 와일드카드를 사용했다. 애석하게도 ‘전력증강’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뿐이다. 1996년 당시 올림픽대표팀을 이끈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최초의 와일드카드’로 황선홍과 이임생 하석주를 뽑았다. 본선무대에서 가나 멕시코 이탈리아와 한조에 속한 한국은 예선 첫 경기였던 가나전에서 윤정환의 페널티킥으로 1-0 승리를 거뒀다. 최초로 참가했던 1948올림픽에서 멕시코를 5-3으로 이긴 뒤 48년 만에 거둔 감격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멕시코와 비긴 후(0-0) 이탈리아에 패하며(1-2)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한국이 1승1무1패의 성적을 거두는 동안 와일드카드로 선발된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은 ‘만능패’라는 본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격자원 황선홍과 하석주는 단 1골도 기록하지 못했고 수비수 이임생은 2차전에서 부상을 입고 중도하차했다.

2000올림픽에서 허정무 감독은 김도훈 홍명보 김상식을 와일드카드로 선발했다. 하지만 또 일이 꼬였다. 홍명보가 스페인과 조별리그 첫 경기를 불과 2일 앞둔 상태에서 부상으로 대회 출전을 포기하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대신 발탁된 강철은 경기 당일날 아침 호주에 도착해 선수들과 발을 맞출 새도 없이 경기에 나섰다. 이는 수비조직력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빌미가 됐고 결과는 0-3 대패로 끝났다. 다행히 이후 모로코(1-0)와 칠레(1-0)에 연승을 거두며 칠레 스페인과 함께 2승1패를 기록했지만 골득실차에서 밀려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스페인전에서의 실점이 더욱 뼈아픈 순간이었다.

2004년 올림픽대표팀을 맡은 김호곤 감독은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을 와일드카드 대상 1순위로 올려놨다. 아시안컵이라는 중요한 대회가 있었음에도 국민적인 정서와 협회차원의 ‘특별한 배려’로 유상철 송종국 김남일 등 간판들을 공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송종국과 김남일이 또 부상 때문에 하차했다. 한국은 대체 선수로 정경호만 뽑는 임시방편으로 대회가 열린 아테네로 날아갔다. 모순되게도 아테네대회에서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8강에 오르는 쾌거를 올렸다. 내용적으로 봤을 때 와일드카드의 활약은 미비했다. 최종예선까지 함께 했던 조병국-박용호-김치곤의 플랫3는 유상철의 투입으로 변경될 수밖에 없었고 호흡을 맞출 시간이 적었던 만큼 조직력에서도 일정 부분 문제점을 보였다. 이는 본선무대에서 대량 실점을 허용하는 폐단이 됐다. 다행히 많이 내준 만큼(8실점) 많이 넣었기에(9골) 8강행이 가능했을 뿐이다. 또 다른 와일드 카드 정경호 역시 분위기 반전을 위한 후반 조커로 활용됐을 뿐, 골을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시간이 부족하다
4월3일 박성화 감독은 대한체육회에 올림픽대표팀 예비명단을 제출했다. 명단 안에는 박지성 조재진 염기훈 김정우 이호 김치곤 김동진 김치우 등 8명의 와일드카드 후보군들도 포함돼 있다. 한국이 쓸 수 있는 3장의 카드 중 1장은 가장 먼저 박지성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박성화 감독은 “박지성의 합류는 확정적이다. 프리미어리그 시즌이 끝난 뒤 올림픽이 열리므로 참가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말하며 그의 기용을 기정사실화했다. 정몽준 회장 역시 “박지성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이 와일드카드로 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며 박 감독의 말에 힘을 실어줬다.

그간 협회 쪽에서도 박지성의 합류를 검토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최근 ‘와일드카드’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들이 많아진 현실 때문일 것이다. 가장 최근에 열린 2004올림픽에서 아얄라, 에인세(이상 아르헨티나) 카힐, 알로이시(이상 호주) 피를로(이탈리아) 보아 모르테(포르투갈) 등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대거 와일드카드로 참여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탈리아 네덜란드 카메룬 코트디부아르 등 강호들이 ‘월드클래스 와일드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르헨티나의 메시가 소속팀 바르셀로나와 올림픽 출전에 대한 합의를 마친 상태라는 보도가 나온데 이어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 에투(카메룬) 델 피에로(이탈리아) 수아조(온두라스) 등도 대회 참가를 고려중이란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간 한국의 카드 0순위 박지성도 2004올림픽 당시 소속팀 아인트호벤을 이끌고 있던 히딩크 감독의 반대로 합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기회가 되면 뛰고 싶다”는 의력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바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박지성이 수술 받은 무릎의 이상 통증을 호소하며 박지성 카드는 다시 백지화 됐다. 기실 박지성의 합류는 애초부터 많은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부상은 차치하더라도 맨체스터Utd.에 적을 둔 이상 개막 보름 전쯤에야 대표팀 합류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있었다. 2주의 시간은 2년 가까이 손발을 맞춰 온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는 그간 와일드카드 제도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더욱이 U-20월드컵(2005년, 2007년) 주축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現올림픽대표팀 선수들 중, 박주영 정도를 제한다면 박지성과 제대로 발을 맞춰 본 이가 전무한 상태다.

만약 박지성이 합류했다면 현 올림픽대표팀에 이근호 김승용 이청용 등의 날개공격수 자원이 넘치는 특성 상 측면이 아닌 중앙MF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중원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공격의 활로를 개척하는 박지성의 능력은 높이 사지만 이것이 기존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될지는 의구심마저 든다. 누구보다 조직력을 강조하는 박 감독으로서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간 올림픽대표팀 선수들은 박지성의 합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올림픽대표팀 선수는 “아무래도 경험이 많다 보니 중앙에서 효율적으로 경기를 조율해 줄 것이다. 현재 올림픽대표 선수들 중에는 이 같은 능력을 가진 선수가 없다.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또 다른 선수는 “완벽히 맞추기엔 시간이 다소 부족하지만 (박)지성이 형 같은 경우 특유의 성실함으로 팀에 협조하며 금세 녹아내릴 것”이라 말했다.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시간은 부족하다. 그러나 필요하다”였다.

최적의 조합을 위하여
그렇다면 와일드 카드는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 지난 최종예선에서 올림픽대표팀이 보여줬던 가장 큰 문제는 골 결정력의 부재였다. 지난해 9월12일 시리아전에서 터진 김승용의 결승골을 마지막으로 올림픽대표팀 공격수들의 골침묵은 11월21일 바레인전까지 이어졌다. 때문에 “공격수를 와일드 카드로 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5월14일 홍명보 코치는 “최근 올림픽팀 공격수들이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와일드카드를 공격수로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는 의견을 밝혔다. 홍 코치의 발언대로 최근 서동현(8골) 이근호(6골) 신영록(5골) 이상호(4골) 등 최종예선 당시 주축이 됐던 선수들의 공격력이 꽤나 매섭다. 그간 소속팀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던 박주영(2골) 김승용(1골)도 팀의 상승세에 더불어 감각을 끌어 올리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조동건(4골) 서상민(4골) 등의 신예 공격수들까지 가세했다.

때문에 분위기는 외려 수비수 선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실상 중앙수비수 보완이 시급하기는 하다. 그간 올림픽대표팀의 붙박이 센터백은 김진규와 강민수 뿐이었다. 최근 이강진이 부상에서 회복, 소속팀에서 안정된 수비력을 선보이고 있지만 늘 마지막 순간 부상 때문에 전력 外로 구분된 적이 많아 안심하긴 이르다. 제3수비수로 김근환이 합류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공격수로 기용된 적이 더 많다. 따라서 시선은 자연스레 와일드카드로 향한다. 와일드카드 후보군에는 김동진과 김치곤, 두 명의 수비수가 있으며 이들 모두 김진규와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그중 김동진이 눈에 띈다. 현재 경미한 부상 때문에 재활 중이지만 올림픽이 열리는 8월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김동진 카드’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김동진은 풀백과 센터백 공히 겸업이 가능해 전술적 활용도가 높을 뿐 아니라 국제무대 경험도 많다. 뿐만 아니라 군미필 상태이므로 ‘올림픽 메달을 통한 병역면제’라는 동기부여 역시 남다를 것이다. 박성화 감독 역시 “목표의식이 없으면 집념이 떨어질 수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군미필 선수들을 와일드카드 우선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카드 선택은 박성화 감독의 몫이다. ‘에이스’를 선택하길 기대하는 마음이야 박 감독이나 팬들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감히 당부하건대, 카드의 ‘숫자’만 보는 과오가 없기를 희망한다. 과연 누가 지금 선수들과 어울릴 수 있을지, ‘무늬’에도 신경을 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