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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함께해요 K-리그

암세포도 막지못한 축구혼, 신인기씨를 기억하며

지난 8월 30일 수원삼성과 강원FC와의 경기는 수원에게 있어선 고인이 된 정용훈 선수를 추모하는 경기였습니다. U-17대표팀과 U-18대표팀을 거쳤던 1998년 수원에 입단했던 유망주는 K-리그 통산 64경기 5골 3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003년 8월 31일...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죠. 당시 펑펑 울던 조병국 선수의 얼굴이 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가 준비한 추모걸개입니다.

걸개 위에 있던 국화꽃들.

  정용훈 추모경기였던 그날이 더 특별했고 아름다웠던 이유는... 함께 정용훈 선수를 그리워하며 자비로 국화 꽃을 준비했던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반 44분 2-3으로 뒤지며 패색이 짙던 수원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송종국의 크로스를 받은 에두가 껑충 뛰어 올라 헤딩슛을 시도했고, 그대로 골망을 출렁이며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빅버드가 열광의 함성으로 가득찼을 때 골을 넣은 주인공 에두는 왼쪽 코너 플래그가 꽂혀있던 곳을 지나 한쪽 구석까지 달려갔습니다. 어디로 달려가는 거지?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죠.

에두가 달려간 그곳에 링거를 꽂은 채 마스크를 한 어떤 이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누구시냐고요? 신인기씨.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블루포토라 명명된 수원삼성 명예사진기자 모임에 소속돼 푸른 전사들의 사진을 찍어주신 분입니다. 수원 팬들 사이에서는 신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신 분이죠. 저도 이분의 사진을 보며 사란 사커 키즈 중 하나입니다.

한데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진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로 뵌 신인기씨는 무척 야위어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3년 전 위암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 투병 생활 중이라군요. 최근에는 암세포가 전이되 항암제를 맞으며 말기가 주는 고통과 싸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수원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자신의 몸만한 카메라와 렌즈를 챙겨들고 경기장에 나섭니다. 강원FC와의 경기가 열렸던 그날도 그랬고요. 한데 참으로 아름다웠던 것은 그런 그의 정성에 감동받은 에두가 동점골이 터진 후 그에게 달려가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오직 신인기씨만을 위한 세레모니를 보여줬던 것이죠.

경기 종료 후에는 선수들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 그의 쾌유를 빌어줬습니다.

신인기씨 앞으로 달려간 에두 선수의 모습이 살짝 나왔군요.

경기가 끝난 후 이렇게 단체사진도 찍었고요.

강원전날 신인기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수원의 여름전지훈련 때도 그는 동행하여 사진을 찍었지요.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수원의 역사를 담기 위해서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수원 구단에서는 신인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하프타임 때 전광판을 통해 그의 영상을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진 마감 때문에 사진기자실에 있던 저는 이 동영상을 보지 못했는데 그랑블루 여순식님께서 고맙게도 보내주셔서 이렇게 블로그에 첨부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한데 오늘 수원삼성 홈페이지에 들렸다가 신인기씨께서 오늘 오전 6시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고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수원블루윙즈축구단의 명예사진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주셨던 신인기씨께서 금일 오전 6시에 別世하셨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당 구단을 위해 헌신해주셨던 故人의 죽음에 삼가 弔意를 표하며 진심으로 冥福을 빕니다.


■ 亡 人 : 신 인 기 子  (享年  43歲)

■ 亡 時 : 2009년 10월 6일(화)

■ 殯 所 : 수원 성빈센트병원 영안실

■ 發 靷 : 2009년 10월 8일(목)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랑하는 수원 선수들의 모습을 경기장에서 담을 수 있었다는 것과 그간 사진을 찍는 동안 꼭 이루고 싶었던, 바로 수원 전사들의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꿈을 이뤘던 것이죠.

전시회가 열리던 날 수원구단 관계자들과 에두, 김대의, 양상민 선수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전시회 첫날 신인기씨는 “평생소원이던 사진 전시회를 병원장과 수원구단 관계자들의 후원으로 하게 됐다”라며 “지금 부인이 많이 걱정하고 있는데 미안하다”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저 역시 전시회에 찾아가려고 했지만 다음에 가야지, 하며 아직까지 못갔었는데 이제 고인이 되셨다고 하니 그때 내 몸이 조금 피곤할지라도 갔었어야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지난달 21일부터 성빈센트병원 중앙로비에서 진행됐던 신인기씨의 사진전은 10월 6일부터는 수원 북수원성당 내 뽈리 화랑으로 옮겨 11일까지 전시됩니다. 고인이 주말이면 찾던 성당에서 열리는 전시회 첫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전시된 사진들은 신인기씨 개인 홈페이지 (http;//www.singa.pe.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뿐 아니라 가족들이 썼던 사랑의 편지, 또 고인이 쓴 병상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계실 신인기씨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명복을 빌며, 당신의 수원사랑, 그 빛나던 열정, 영원토록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