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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의 마계대전이 추석연휴에 펼쳐졌습니다. 추석연휴에 열린AFC챔피언스리그 수원삼성과 성남일화의 8강 2차전에서 수원은 성남에 2-0으로 이겼으나 최종 스코어에서 패하며 아시아의 챔피언으로서의 위용은 과거에 묻어야만했습니다.

4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후반기 수원의 대반격은 대단합니다. 시즌 초반 부진의 늪에 빠졌던 수원은 8경기 연속 무승(1무 7패)을 달려야만 했고 월드컵을 앞두곤 꼴찌로 전반기를 마감해야만 했죠.

그러나 윤성효 감독 부임 이후 수원은 다시금 푸른 날개를 달았습니다. 어느새 7위까지 오르며 6강 플레이오프를 향한 꿈을 다시금 불태우고 있습니다, FA컵에서는 4강에 진출했으며 이번 성남과의 AFC챔스 2차전 승리로 3연패의 사실까지 끊었습니다. 또 이적생 황재원은 어느새 팀에 녹아내렸고 백지훈, 이상호는 이제 수원의 얼굴로서 손색 없는 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윤성효 감독은 부임 이후 기자들과 만날 때면 특유의 무뚝뚝한 얼굴로 대면하곤 합니다. 좀 웃으라는 이야기에도 늘 우승하면 웃겠다고 말씀하시지요. 마계대전과 관련해 묻자, 팬이 있어야 더비도 성립되지 않냐며 수도권팀들 가운데 팬이 가장 적은 성남의 상황을 꼬집어 말하는 모습에서는 무링요 감독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습니다.

부드러움보다는 강함이 더 느껴지기에 윤 감독을 볼 때면 특유의 ‘기’에 눌려 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윤성효 감독도 그랑블루 관련 질문을 던질 때에는 무척이나 애교스럽게 웃지 않겠어요. ^^

지난 9월 4일 강원FC와 수원삼성과의 정규리그 경기가 열렸던 날, 그랑블루에서는 처음으로 윤성효 송을 서포팅 중간에 불렀습니다. 윤성효 송을 혹시 들어봤냐고 어떤 기분이 들었냐고 묻자 어쩔 줄 몰라하며 웃다가 “쑥스럽습니다~”하며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소감을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카리스마 윤성효 감독의 귀여운 모습에 기자회견 도중에 저도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수원이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리빌딩 작업에 들어간 수원의 미래가 밝기에, 그래서 수많은 팬들이 아낌없이 지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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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부산과의 경기에서 강원FC는 후반에 단 1개의 슈팅만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날의 극적인 동점골이 되고 말았지요. 후반 19분 이상돈이 부산의 파울로 프리킥을 얻어냈고 리춘유가 골 에어리어 쪽으로 올려보냈습니다. 그리도 득달같이 수비수 곽광선이 달려들어 헤딩으로 연결, 골을 성공시키고 말았습니다.

지난 8월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도 곽광선은 위로 올라와 공격에 가담했고 시즌 1호골을 기록하기도 했지요. 지난해에도 3골을 성공시키며 골넣는 수비수의 반열에 올랐는데, 벌써 2호골을 기록하며 이쯤하면 대표팀의 이정수 못지 않게 공격적인 재능까지 갖춘 팔방미인 수비수라고 부를 수 있겠죠?



수비수의 적극적인 공격가담으로 인해 동점골이 터졌고 이것은 이날 경기에서 분명 인상적인 장면이 분명했죠. 그러나 참으로 인상적인 풍경은 그 다음에 펼쳐졌습니다. 곽광선이 A보드를 넘고선 서포터스석까지 달려간 것이었죠. 멀리 부산에서 열린 원정경기까지 응원하러 와준 팬들과 함께 세레모니를 하는데, 멀리서 보던 제게도 참으로 흐뭇한 장면이더군요.

가까이서 보면 이날 팬들이 얼마나 기뻤는지 사진으로만 봐도 느껴지시죠? 벌써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이 회원보고 곽광선 여자친구라는 새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네요. ^^


사실 EPL를 볼 때마다 부러웠던 건 화려한 플레이나 최신식의 경기장이 아니었어요. 관중과 선수과 하나되는 그 특유의 경기장 분위기가  전 늘 부러웠죠. 골 장면이 잡힐 때마다 관중과 함께 기뻐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저랬으면, 했는데요. K-리그 선수들도, 골 넣고 나면 늘 수줍기만 했는데 이제는 팬들을 먼저 생각하는 등 많이 바뀐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리고 팬과 하나되는 세레모니는, 역시나 그랑블루 서포터의 오직 하나뿐인 사랑, 수원 선수들이 제일 잘하는 듯 합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있으니 사랑받는 법도 잘 알고 있다는 거. 당연하겠죠? ^^


호세모따 골장면


다카하라 골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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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와 수원삼성과의 K-리그 20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이상돈 선수에게 저는 웃으면서 "동생이랑 맞대결 펼치는 거 재밌을 거 같아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돈 선수는 "왜 다들 그러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밌겠지만... 저희는..."라며 말끝을 흐리더더군요.

형제간에 우애가 좋은 사람을 많지만 이상돈-상호 형제들은 참 남다릅니다. 예전에 이상돈 선수는 어느 기자와의 대화 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대요. 경기 중에 상호는 나에게 태클할 수 있겠지만, 나는 차마 못하겠다. 상호가 다칠까봐 걱정되고 겁이난다, 라고요. 이상호 선수는 예전에 저와의 인터뷰 도중 형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축구부 훈련이 끝나면 항상 집에 와서 이 것 저 것 가르쳐줬어요. 그렇게 매일 형이랑 연습했어요. 저희 형이 정말 정말 착해요. 울산대에 제 친구들도 몇몇 있는데, 저야 대학생활을 안했으니까 궁금한 게 많잖아요. 그러다 형들이 괴롭히냐고도 한 번씩 물어봐요. 그런데 저희 형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 친구들도 저희 형이 참 좋고 착하대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저도 좋고 참 흐뭇해요.

난 형이 너무 좋아요. 중학교 때부터 정말 잘 챙겨줬어요. 어디 아프거나 힘들면 언제든지 형한테 전화하라고 해요, 전화하면 진짜 좋은 말 많이 해줘요. 축구하다보면 슬럼프 올 때가 있잖아요. 고등학교 때 어느 날은 코치 선생님께 야단을 심하게 맞은 적이 있었어요. 힘들어서 형에게 전화를 했죠. 운동이 왜 이렇게 하기 싫은지 모르겠다고 투덜댔어요. 그때 형이 그러더라구요. 다른 애들은 매일 욕먹으면서 한다고, 코치 선생님도 너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다 잘되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거라고. 그렇게 늘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줘요. 외박 받을 때면 형에게서 항상 전화가 와요. 오늘 뭐하냐고 묻고, 특별히 할 게 없다고 하면 시내에서 형 친구랑 셋이 같이 놀자고 해요. 솔직히 형도 친구랑 둘이서만 만나고 싶잖아요. 그런데 저 때문에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그러는데 그게 참 고마워요.

경기가 있을 때면 항상 게임 잘 뛰라고 해주고, 끝나고 나서도 너 뛸 때 형이 너보다 더 떨면서 본다고,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걱정 많이 한다면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못 보겠다고 해요. 늘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신경써줘요. 또 제가 프로에 있으니 돈을 벌잖아요. 그래서 가끔 형에게 얼마 안 되는 돈 주려고 해도 형은 늘 거절해요. 괜찮다고, 형 돈 있다고 그래요. 형은 항상 그래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너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라고. 늘 나를 생각하고 챙겨주는 형이 고맙고 좋아요. 진짜 좋아요. 정말 많이 사랑해요. 우리 형.“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그러니까 이상호 선수가 막 20살이 됐을 때에요. 워낙에 동안인 상호 선수였기에 나이만 20살이었지 실제로는 고등학생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죠. 어린 소년 같은 이미지의 선수가 형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데, 저도 마음이 찡해지더라고요.

두 형제가 적으로 만나지만 그래도 그라운드에서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모님께 오랜만에 아들 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밀양에서 부모님이 경기 전날 올라와서 상돈 선수 원룸에서 하룻밤을 잤지요.

“부모님은 사과 과수원을 하세요. 얼음골이라고 있거든요. 거기가 사과로 진짜 유명해요. 안에 꿀이 들어가 있어요. 사과를 쪼개면 꿀이 가운데 있는데 그게 싹 퍼져서 진짜 맛있어요. 얼음골 사과 유명한데 안 드셔보셨어요? 두 분 다 요즘은 저 때문에 어깨 피고 사신데요.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형이랑 저랑 신경 쓰느라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항상 제가 뛰는 경기는 거의 다 보러 와주시고, 정말 고생 많으셨죠. 아, 물론 어릴 때는 정말 말 안 듣는 장난꾸러기였어요. 뭐 하라 그래도 진짜 말 안 들었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까지 데려다 줘도 가기 싫다고 그냥 다시 집에 오고 그랬어요. (웃음) 또 제가 가루약을 진짜 싫어하거든요. 막 약 안 먹겠다고 뿌리칠 때마다 엄마, 아빠, 형, 누나가 제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잡고 입에 약을 넣어야했어요. 물론 가만히 있으면 다 먹은 줄 알고 놓아요. 그러면 탁 뱉어놓고 그랬죠. (웃음)”

이것 역시 상호 선수가 이야기 해준 어린 날의 추억 중 일부입니다. 과수원 농사를 뒤로 하고 강릉까지 올라온 부모님. 아들 둘 중에 어디를 응원할까, 궁금했는데 부모님은 그냥 웃기만 하시며 다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네요. 멀리서 오셨으니 티켓 걱정은 놓으라고 제가 티켓까지 준비했는데 형제의 부모님은 조용히 경기장에 들어가셔서 관람하셨다고 합니다.

역시 형제인지라 연이 남다르다고 생각한 이유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선 이상돈 선수에 맞서 수원은 동생 이상호 선수를 왼쪽 미드필더로 세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결국은 경기 내내 계속 부딪혀야했지요. 드리블 치는 동생을 막고 또 막는데, 너무 치열하게 공을 두고 다투는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상돈-상호 형제가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거든요.







형제간의 우애를 뒤로 한 채 팀을 위해서만 뛰고 있던 두 사람. 전반 30분 쯤 오른쪽 미드필더로 나선 박종진 선수와 스위칭을 하면서 둘의 대결은 잠시 멈췄습니다.



그러나 역시 후반전에도 이상돈-싱호 형제는 부딪혀야만 했습니다. 이상호 선수가 후반 43분 임경헌 선수가 교체되어 나가기까지 형제간의 대결은 계속됐습니다. 이상돈 선수는 경기 전날 웃으면서 경기장을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1-2 패배. 동생을 밀착마크하며 오른쪽 풀백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했지만 팀의 패배로 이날의 수훈은 희석되고 말았지요. 그래서 그랑블루에게 이적 후 첫 인사를 드리는 순간에도 표정이 밝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다음날 다시 만난 이상돈 선수는 어제와 달리 평온한 표정이더군요. 동생과 경기 중에 대화는 나눴냐고 묻자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네요. 보통 상대팀 선수들과도 경기 중에 종종 대화를 나누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건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듯 싶네요. 그렇지만 경기 중에 상호 선수와 눈빛으로 대화를 시도했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서 더 물어봤더니, 글쎄. 동생 상호 선수가 상돈 선수에게 윙크를 날려주었대요. 그리고 상돈 선수는 미소로 화답했고요.

사실 오른쪽미드필더로 출격해 형과 경기 내내 부딪히는 걸 피하고 싶었지만 팀 전술 때문에 왼쪽날개로 나섰고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치러야만 했다고. 그래도 부모님은 안타까운 마음보다 자랑스러운 마음을 느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 패배로 아들 둘의 희비는 엇갈렸지만 큰 아들, 막내 아들 모두 강원FC와 수원삼성이라는 두 클럽에서 매 경기 선발로 나서며 주전으로 활약 중이니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할까요.

그래서 이상돈 선수와 이상호 선수가 강원FC와 수원삼성에 몸담고 있는 한 강원과 수원의 대결은 형제더비로 불려도 좋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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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수원의 서동현이 강원FC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팬들을 위한 서동현 특유의 세레모니를 직접 볼 수 있겠구나, 였습니다. 박건하 코치를 향한 존경의 표시였던, 유니폼 깃을 세우던 그 세레모니는 참으로 유명했죠. 이밖에 팬들을 위해 그때 그때 유행하는 최신 댄스를 세레모니로 보여주며 즐거움을 줬던 선수가 강원FC에 온다는 사실은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역시나 서동현은 이적 후 첫골을 신고하던 지난 8월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한 멋진 세레모니를 보여줬습니다. 그가 보여줬던 시건방춤은, 혹자에게는 아니 브아걸의 언제적 노래인데 이걸 세레모니로 보여주냐는 의아암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나, 강원FC 서포터스 이름이 나르샤라는 걸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팬들을 향한 마음이 돋보이는 멋진 세레모니였죠. 나르샤를 위해 나르샤가 몸담고 있는 그룹 브아걸의 댄스를 보여준 거니까요.

지난 주말 수원과의 홈경기를 지켜보면서 저는 다시 한번 수원 선수들이 참으로 멋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멋진 골을 성공시켜서, 화려한 패스와 잘 짜여진 유기적인 축구를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전반을 0-0으로 마감하고 후반 중반을 향해 갈 때까지 강원FC와 수원삼성은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그 추가 수원 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후반 19분. 아크 오른쪽에서 호세모따가 슈팅을 시도했고 크로스바 아래쪽을 받은 볼은 그대로 골로 연결됐습니다.

호세모따는 골을 넣자마자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기 보단 S석으로 먼저 달려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먼 원정길도 마다않고 찾아와 응원해준 서포터스에게 인사를 드리는 건 당연한 것이겠지요. 열광하는 팬들과 함께 골을 성공시킨 기쁨을 나누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멋졌고 부러웠습니다.



그로부터 10분 뒤 다카하라 역시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으로 오른발로 팀 2번째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다카하라역시 S석 쪽으로 달려가 그랑블루 서포터스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더군요.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쳐준 뒤 나중에야 동료 선수들과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누더군요. 그 짧은 순간에도, 골을 넣은 기쁨에 휩싸이다보면 팬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S석에 있던 그랑블루의 존재를 잊지 않더군요.



나의 골이 아니라 너희가 있기에 가능했기에, 우리가 함께 넣은 골이라고 말하는 호세모따와 다카하라, 두 선수의 골 셀레브레이션은 봐도 봐도 멋져보이더군요. 이렇게나 온 마음 가득히 팬들을 향한 고마움으로 가득차있구나, 하는 생각에 수원 선수들이 참으로 멋져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요즘은 늘 수줍게 기뻐했던 강원FC 선수들도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바제는 이적 후 첫 골을 신고하자마자 N석에 있던 나르샤 앞으로 달려가 같이 환호하고 함께 기쁨을 토했습니다.



이렇게 팬들을 향한, 팬들을 위한, 팬들을 먼저 생각하는 세레모니를, 앞으로도 K-리그에서 많이 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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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꿈만 생각하며 성실하게 살았던 청년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선 어린 시절 꿈을 이뤘고 사랑하는 여자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새 아버지가 둘의 사랑을 반대했습니다. 그 남자는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고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는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죠.

그런데 새 아버지의 반대는 심했고 그녀는 결국 새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가 정해주신 남자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남자는 상처가 컸지요. 그렇지만 그녀와의 결혼이 자신의 꿈 전부가 아니었기에 마음은 아팠지만 깨끗이 잊기로 하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훗날 그녀가 자신을 다시 보게 됐을 때, 누구보다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다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남자는 또 이런 생각도 했지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됐을 때, 아름답게 성장한 자신을 모습을 보고 후회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녀와의 만남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습니다. 그녀와의 대면을 앞두고 남자의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죠. 그렇지만 마음이 앞섰는지 그녀 앞에서 그는 100%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다시 또 그녀를 만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헤어진 후 처음 가진 만남이었는데,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남자는 슬펐지요. 그래서 오래도록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눈물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지요.

축구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한 남자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이해가 안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원FC와 수원삼성의 K-리그 20라운드 경기를 보는 내내 저는 위와 같은 생각이 내내 들었거든요. 이쯤 하면 다들 짐작하시겠죠. 여기서 그 남자는 바로 서동현입니다.

2005년 건국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중도에 K-리그로 입성한 서동현은 2006년 수원삼성에 입단, K-리거로서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스쿼드가 화려하기로 소문난 수원에서 서동현은 26경기 2골 2득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보냈지요. 그해 9월 30일 광주상무와의 홈경기에서 들어간지 3분만에 결승골을 터뜨렸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수원은 덕분에 13경기 무패행진을 벌이며 선두자리를 지킬 수 있었죠.

당시 서동현은 아시안게임 대표에 탈락한 것이 아쉽지만 2008년 베이징에서 열리는 올림픽대표팀에는 꼭 선발되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보였고 저 역시 그 꿈이 이뤄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서동현은 35경기 13골 2도움을 올리며 프로 데뷔 이래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거든요. 그것도 조커로 투입 족족 골을 성공시켰으니 '서동현은 추꾸천재입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죠.

하지만 올림픽대표팀 마지막 공격수 카드가 자신이 아닌 팀 동료 신영록에게 돌아갔고 국가대표팀에서도 도장을 찍지 못한 이후 시련의 나날이 시작됐습니다. 2009년 15경기 1도움을 기록했지만 수원의 공격수로서는 다소 초라한 성적표였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팬들의 탄식과 원망 역시 거셌습니다.

그리고 2010년 여름 그는 고향팀으로 돌아왔습니다. 윤성효 감독은 애제자 박종진을 영입하기 위해 강원도 홍천 출신의 서동현을 고향팀 강원FC로 보냈습니다. 갑작스러운 트레이드에 꽤 많이 혼란스러웠겠죠.

하지만 다행인 건 서동현은 이적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금세 팀에 적응한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선수들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장난도 치고 자신의 집으로 동료 선수들을 초대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해 이적 후 첫 골 세레모니는 그들을 위해 보여주겠다며 준비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기특했는지요. 워낙에 수원에 있을 적부터 팀 충성도가 높은 선수였던지라 여전히 수원을 그리워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이 참 예뻐보이더라고요.

서동현은 수원과의 경기에서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복수심도 아니었고 증오심도 아니었습니다. 앞서 서두에 꺼낸 이야기처럼 자신을 아껴줬던 옛 팬들 앞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지요.

서동현은 이적이 확정된 후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저는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뒷모습만을 남기고, 지난 5년동안 함께했던 정든 이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라고 서포터스 그랑블루 홈페이지에 마지막 글을 남긴 바 있죠. 그래서 이번 수원전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그래 이 모습이 우리가 열광했던 서동현이었어, 라는 기억을 남기고 싶어한 듯 싶습니다.

수원전을 앞두고 몇몇 수원팬들은 과연 서동현이 경기 종료 후 인사를 하기 위해 S석으로 올까요, 라는 글들이 올라왔던 것으로 압니다. 그 글을 읽으며 저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서동현은 이적 후 첫 경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랑블루 팬들에게 경기 종료 후 인사를 드리겠다고 했거든요.

당시 박종진은 이적 후 친정팀과의 첫 경기에서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지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동현이 형은 경기 종료 후 인사하러 간다고 했는데, 너도 그렇게 인사해. 그런데 몸풀러 나올 때 한번 더 인사하는 건 어때? 그럼 팬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아, 라고 조언을 해줬죠. 착한 박종진은 다행히도 제 말대로 2번 인사를 하고 갔답니다. 나르샤 팬들이 굉장히 좋아했죠. ^^

경기는 1-2 강원FC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서동현은 경기 종료 후 잔디 위에 누워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고요. 구단 직원이 다가가 그런 서동현을 일으켜세웠지만 반쯤 고개 숙인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옛동료였던 수원선수들이 다가와 어깨를 토닥토닥, 하고 갔죠.

그리고 N석으로 달려가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에게 인사를 드린 후 서동현은 발걸음을 S석으로 돌렸습니다. 옆에 있던 이상돈에게 상돈아, 가자, 라고 말하며 함께 걸어갔지요.

만감이 교차했던 서동현의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골골골골 서동현, 하는 그의 콜도 그날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죠. 영원히는 아니겠지만 당분간은 그랑블루가 부르지 못할 그 이름 서동현. 자신의 콜을 불러준 그랑블루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가는 서동현의 뒷모습이 지금도 마음에 밟힙니다.

그래도 다음날 춘천에서 열리는 팬사인회 현장을 함께 가게 됐는데요, 분명히 제가 봤을 땐 눈이 빨갛게 충혈돼있었거든요. 그래서 어제 운 거 다 안다며 농담을 건넸는데 서동현은 끝까지 아니라며 오히려 제게 헬레나씨 술 마신 거 다 안다며 발끈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어제 자신의 콜 들었냐면서 이야기를 꺼내는데 어제 그 표정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밝아졌더라고요.

특히 그랑블루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콜 이야기를 꺼낼 때 표정은 나 이런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고 있었고요. ^^ 저는 일부러 놀려대며 기분을 업시켜주려고 골골골, 이 아니고 고고고, 아니냐고 빨리 가라고 그러네, 라고 말했고요. ㅋ

요즘 들어 서동현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잦았던 저로서는 서동현은 여전히 그랑블루를 사랑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뼛속까지 수원이었던 아이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도 이곳에서도 정을 붙이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잘하든 못하든 이제는 우리 선수라, 라는 생각 하나만 갖고 품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누가 뭐래도 서동현, 당신은 축구천재이고요, 앞으로 강원FC 이곳에서 골 단비를 뿌려주세요. 이제는 강원의 레이메이커님.

덧. 그랑블루님들의 1박 2일 즐거운 강릉여행을 위해 수원구단을 통해 제가 50% 할인된 가격에 방 20개를 알선해주고 추가로 다른 모텔도 소개시켜줬는데... 다들 즐거우셨는지요. 새벽에 택지에서 돌아다니다가 만난 그랑님들. 인사는 못했지만 굉장히 반가웠고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워져있던 단체버스들도 넘 반가웠습니다. 손님맞이는 역시, 강원 정도되야 어디가서 신경 좀 썼다 듣는 것이겠지요? ^^

그리고 마지막. 이 영상들은 제 피와 땀이 서려있는 소중한 영상입니다. 제발 불펌하지 말아주세요. 주소 복사해서 올리는 건 괜찮은데, 기계로 이용해 통째로 복사해서 자신이 찍은 것인양 알싸에 올린 거보고 굉장히 충격받았습니다. 하여 이번 영상은 주소 복사도 막았습니다. 보고 싶으면 링크 걸어서 타고 넘어와서 보세요.



곽희주와 맞서던 참으로 낯설었던 서동현의 모습.



회심의 슈팅이 크로스바 위로 지나가자 고개 숙인 서동현.
그런 서동현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던 옛 동료 리웨이펑.



공격이 잘 풀리지 않자 한숨을 쉬는 서동현.


경기 종료 후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던 서동현.



수원에서 함께 이적해 온 이상돈에게 같이 그랑블루 앞으로 가자고 말한 서동현.



서동현과 이상돈을 위한 콜 해준 서동현.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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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전반기를 마치고 휴식기 동안 수원은 강릉에서 짧은 여름 전지훈련을 가졌습니다. 그때 기회가 생겨 수원 스태프들과 만날 자리가 있었는데, 강원FC 성적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하자 왜 그러냐고 우리는 꼴찌라며 도리어 저를 위로해줬던 기억이 나네요.

6월 말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약 2달의 시간이 흐른 지금. 꼴찌 수원은 어느새 6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6강 PO, 그리고 이를 넘어 챔피언결정전까지 생각하며 달려가게 됐습니다. 윤성효 매직이라는 말처럼, 윤성효 감독 체제 이후 수원은 달라졌습니다.

윤 감독 부임 이후 K-리그 9경기 무패(7승 2무). 성적만 달라진 게 아니더군요. K-리그 20라운드 강원FC 대 수원삼성의 경기를 관전하는 내내 깜짝 놀랐습니다. 그간 롱볼 축구로 일관하던 수원 선수들이 달라졌군요. FC서울과의 라이벌전에서 4-2 대승은 그냥 나온 결과가 아니더라고요. 경기 내내 짧은 패스와 세밀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중원에서부터 압박을 가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곽희주, 리웨이펑 이 두 센터백 조합이 보여주는 수비력은 그 전부터 대단했기에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 두 수비수들은 여전하구나, 탐난다, 라는 생각만 내내 들 뿐.

김두현과 다카하라. 경기 내내 이 두 선수만 보였습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거둔 보물 다카하라와 무릎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복귀한 김두현. 두 선수의 합세는 확실히 큰 힘이 된 듯해 보였습니다.

아쉽게도 이날 신영록과 박종진은 이전 경기에서 보여줬던 힘과 스피드에서 다소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후반전 들어 주도권은 수원이 잡게 됐는데 호세모따 투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결국 후반 19분 아크 오른쪽에서 호세모따가 슈팅을 시도했고 크로스바 아래쪽을 받은 볼은 그대로 골로 연결됐습니다.

지난 4월 라피치의 턱을 팔꿈치로 가격하며 퇴장을 당해 강원FC와 한차례 ‘악연’을 맺은 바 있던 호세모따는 당시의 아픔을 멋진 골로 되갚아주더군요. 그리고 10분 뒤 다카하라의 추가골이 터지며 강원FC로서는 추격의 의지가 잠시 상실되기도 했습니다.

후반 29분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에서 오른발로 때린 슛은 낮고 빠르게 골대 왼쪽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골키퍼의 움직임까지 예측한 빠른 판단력이 돋보였고 왜 다카하라에 이토록 열광하는지 십분 이해가 되더군요.

후반 들어 수원은 4개의 유효슈팅을 시도했고 그 중 2개가 골로 연결됐습니다. 강원FC의 유효슈팅은, 슬프게도 전 후반 내내 한 개도 없었습니다. 오프사이드 트랩에만 6번이나 걸리며 너무나 좋았던 공격 타이밍이 무효화 됐고요 김영후, 서동현의 공격 기회는 리웨이펑과 곽희주에게 번번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단 한 번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던 수원의 두 외국인 선수 호세모따와 다카하라. 수원이 왜 선전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던 경기였습니다.

리웨이펑은 강했습니다.

하지만 유현의 선방도 눈부셨죠.

친정팀 수원을 상대로 뛰었던 서동현.

후반 46분 터진 강원FC의 만회골.

이상돈-이상호 두 형제간 대결도 흥미로웠죠.

1-2 패배에 고개 숙인 서동현.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더군요.

그런 서동현을 위로해줬던 강원FC 선수들.

서동현을 위로해주는 김원동 강원FC 대표이사.

친정팀 수원팬들에게 인사하러온 서동현, 이상돈.

마지막으로 수원으로 간 그리운 박종진의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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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윤성효 매직, 강원전에서도 통할까
전반기 수원의 성적은 14위. 15개팀 가운데 14위니 거의 꼴찌나 다름없었죠. 그랬던 수원이 어느새 7위까지 올랐습니다. 2승1무8패를 기록 중이었는데, 벌써 4승 1무를 챙겼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차범근 감독이 떠나며 윤성효 감독이 새롭게 수원의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동안 수원은 정규리그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윤성효 감독이 부임한 이후 얻은 성적은 9승 2무 1패인데요 정규리그에서 6승 2무, 컵대회에서 1승 1패, FA컵에서 2승을 기록하며 쉽게 지지 않는 축구를 구사하고 있지요.


이렇게 파죽지세로 달렸던 수원이 지난 수요일 성남과의 원정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잠시 주춤하는 모양세입니다. 물론 최악의 잔디 위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만으로도 어디냐고 하겠지만 최근의 수원은 멈출 줄 모르는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무승부는 그 기세가 잠시 꺾이는 결과를 낳았죠.

더구나 삼일에 한번 걸려 원정경기를 치르고 있다는 것은 수원에게는 쉽지 않는 일정일 것입니다. 염기훈, 강민수가 부상으로 오지 않았고 황재원 역시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양상민은 경고누적으로 이번 강원과의 원정경기에 함께하지 못했고요.

팀의 주축 선수들이 생각보다 많이 이탈한 상황입니다. 물론 워낙에 스쿼드가 두터운 수원이지만 1군 베스트 멤버가 있고 없고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요. 그래서 저는 이번 경기가 무척 기대됩니다. 강릉에서도 윤성효 마법이 통할까요?

이적생들의 혈투
이번 강원FC와 수원삼성과의 경기 중 흥미로운 건 이적생들의 대결입니다. 지난 7월 서동현과 박종진이 맞트레이드를 했죠. 홍천 출신의 서동현은 고향팀으로 돌아왔고 박종진은 숭실대 시설 은사 박성효 감독과 다시 만났습니다. 프로 데뷔를 했던 수원을 상대로 서동현은 골을 넣어야하고 박종진 역시 K-리그 데뷔전의 꿈을 이루게 해준 강원FC를 상대로 달려가야합니다.

이제는 수원의 박종진.


이제는 강원의 서동현.


재미있는 사실은 이 둘의 번호가 똑같이 11번이라는 사실입니다. 강원과 수원 두 11번 선수가 친정팀을 상대로 어떤 경기를 펼칠지, 강원에서 사랑하던 종날두 박종진과 수원에서 사랑하던 레인메이커 서동현이 전 소속팀 선수들에게 패배의 쓴 눈물을 안길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형제간 맞대결
이상돈과 이상호는 K-리그에서도 유명한 형제 축구선수이지요. 그동안 울산과 수원에서 한솥밥을 먹느라 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던 두 선수가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치게 됐습니다. 다행히 오른쪽 풀백 이상돈과 오른쪽 측면공격수 이상호는 둘다 팀의 오른쪽 라인을 책임지기 때문에 경기 내내 부딪힐 일은 없지만 그래도 그 둘의 만남은 여러모로 관심을 모으게 합니다.


마침 형제의 첫 맞대결을 보기 위해 밀양 얼음골에서 과수원집을 하시던 부모님이 강릉까지 올라왔습니다. 아들 이상돈의 집에서 하룻밤 잔 뒤 경기장에서 두 아들이 뛰는 경기를 보시기로 돼있는데요, 아들 두명이 다른팀에서 뛰게 됐으니 어느 한 팀을 응원하기가 힘들겠죠. 두분은 무승부를 원하실까요? ^^ 이상돈은 제게 경기가 끝나고 웃으면서 경기장을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승패보다는 두 형제의 아름다운 대결에만 시선을 두고 싶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하지만 이상돈, 이상호 모두 제가 좋아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두 선수 모두 한골씩 기록하고, 경기는... 강원FC가 이겼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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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창단 이후 강원FC가 유독 패하지 않던 팀 가운데 하나가 수원이었습니다. 진검승부를 걸겠다며 원투펀치를 날렸던 두 팀은 매번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며 K-리그 팬들의 관심을 모으곤 했습니다. 지난해 5월 강릉에서 열렸던 경기에서는 마사와 배기종이 사이좋게 1골씩 주고받으며 1-1로 비겼고요 9월 수원에서 열렸던 경기에서는 강원의 마사 1골, 김영후 2골, 수원의 배기종 1골 에두가 2골을 터뜨리며 3-3으로 비겼죠.

당시 김영후의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으며 아쉽게 무효가 됐고 해트트릭 기회를 놓쳤던게 기억이 납니다. 또 에두가 블루포토 기자단 중 하나인 신인기씨를 위해 감동적인 세레모니를 했던 것도 떠오르고요. 암투병 중에 힘들게 경기장을 찾았는데 골을 넣고 그분께 달려가 세레모니를 하는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신인기씨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날 일을 잊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4월. 강원FC는 수원과 올 시즌 들어 처음 만났는데요. 그때도 김영후가 2골을 터뜨리며 수원을 2-1로 눌렀죠. 3경기 동안 김영후가 터뜨린 골은 합이 4골. 이쯤하면 수원킬러로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이처럼 언제나 수원을 상대로 지지 않는, 그러면서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줬던 강원FC였지만 지난 5월 29일 수원과의 컵대회 원정경기에서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후반 13분 이상돈의 오른발에 터진 수원의 결승골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컵대회라 중계가 들어오지 않았고요 저 혼자서 열심히 경기장면을 촬영했죠. 당시 김대의 선수가 오른쪽 터치라인 쪽으로 볼을 보냈는데 흐르는 볼을 오버래핑하던 이상돈이 받자마자 바로 슈팅을 때렸고, 그게 그대로 골로 연결됐습니다. 결국 그골은 그날의 결승골이 됐고 이상돈은 맨 오브 더 매치에 뽑혔죠.



그러나, 운명과 역사는 도는 법이라고 했지요. 그 골이 이상돈의 운명을 결정지을 줄은 아무도 몰랐죠. 지난 7월 이상돈은 강원FC로 전격 이적을 했습니다. 이적 소감을 묻자 이상돈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강원FC에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지만 오고 싶었어요. 강원FC가 축구선수로 성장하기에, 또 운동하기에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텔레비전이나 기사를 통해 느낀 강원FC는 뭐든지 열심히 하는 팀이었고 무엇보다 팬들의 응원과 열정이 정말 보기 좋았거든요.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오고 싶었죠.

제가 컵대회에서 강원FC와 만났을 때 데뷔골을 넣었죠? 제가 수비수로 뛰다보니 K-리그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과연 데뷔골을 넣을 수 있을지 늘 궁금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강원을 상대로…(웃음). 당시 흘러나온 볼이 운 좋게 제 앞까지 왔고 슈팅하기 위해 발을 대는 순간 느낌이 좋았어요. 그날의 결승골 덕분에 제가 강원FC에 온 것 같아 제게는 운명을 결정지은 골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제는 수원에 다시 한 번 뼈아픈 패배를 안기기 위해 이상돈 나섭니다. 22번이 새겨진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선요.


이번 경기가 강원과 수원 팬들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강원FC의 이상돈과 수원삼성의 이상호는, K-리그에서도 유명한 형제 축구선수입니다. 울산에서 함께 뛰던 두 사람은 이상호가 수원으로 이적하며 잠시 헤어졌는데 올 초 이상돈이 수원으로 이적하며 다시 만나게 됐고요. 지난 5월 29일 강원과의 컵대회 경기에서 이상돈과 이상호는 수원 이적 후 처음으로 함께 뛰었습니다. 여러모로 강원FC와 연이 깊은 상돈-상호 형제네요.

이상호는 지난 달 울산과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호텔 회전문에 발뒷꿈치가 찢어지며 꽤 여러바늘을 꼬매야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강원FC와의 원정경기를 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알겠지만 언제 다쳤냐는듯이 지금은 수원에서 훨훨 날고 있네요. 서울과의 한판승부에서도 한골을 기록하며 4-2 대승을 도왔고요.

이상돈과 이상호 두 선수 모두 일단 팀내 주축선수이기 때문에 선발출장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형제간 맞대결이 더욱 기대가 되네요. 무엇보다 늘 아빠처럼 상호를 돌봐주는 이상돈과 그런 형아를 가리키며 '천사'라고 눈물 짓는 이상돈의 하나 뿐인 남동생 이상호.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지만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멋지게 이룬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참으로 감동스런 장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두 선수 모두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아끼고, 또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벌써부터 이상돈과 이상호가 만날 강원-수원전이 기다려집니다. 

경기가 끝나고 누가 이기고 졌든지 간에 서로를 꼬옥 안아줄 두 선수의 모습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응원 열심히 할게요. 이상돈, 이상호 두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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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10년 강원도의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습니다. 좀처럼 비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밭에서 키우던 감자와 옥수수는 시름시름 앓아가기 시작했죠. 그 간절함을 알았기에 하늘이 보내주신 것일까요. 지난 7월 ‘레인메이커’ 서동현이 강원FC로 전격 이적했습니다.

예로부터 가뭄이 들 때면 하늘에 제사를 올려 은총의 단비를 청했던 기우사 레인메이커. 이제는 강원의 레인메이커라 불러달라며 이곳에 골 ‘단비’를 내려주기 위해 서동현, 그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강원FC에 온 소감이 궁금하다.
7월 17일 제주전이 이적 후 첫 경기였는데, 선수들이 팀을 생각하는 마음과 협동심이 뛰는 내내 제게도 많이 전달됐어요. 다들 매 경기 이겨야한다는 마음을 강하게 갖고 있더군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는 모습이 너무 좋았고요. 팀이 앞으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잘할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이곳에 온지는 얼마 안됐지만 감독님, 선수들, 팬들 모두 너무 잘해주셔서 가족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고마운 마음은 앞으로 많은 골로 보답해야할 거 같아요.

벌써부터 김영후-서동현 투톱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
제가 봐도 (김)영후 형은 정말 골을 잘 넣는 공격수에요. 보면 아시겠지만 몸싸움에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이는 등 꽤 전투적이죠. 그래서 영후 형의 움직임 덕분에 제게 기회가 오고 또 제가 움직이면서 영후 형에게 찬스를 주고 있어요. 만약 영후 형이 없었다면 저도 크게 보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영후 형의 존재로 인해 제가 더 많이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요.


8월 14일 대전전에서 이적 후 첫 골을 터뜨렸다. 당시 세레모니가 화제였는데.
처음 강원에 와서 뽀삐뽀삐 세레모니 얘기를 많이 했는데요(웃음), 그래도 서포터스 이름이 나르샤인만큼 나르샤를 위한 세레모니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르샤가 활동하고 있는 브아걸의 시건방춤을 추게 된 거죠. 골이 터진 후 정신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약속한 것인만큼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잊지 않고 췄죠.


그런데 첫 골 신고 후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어땠는가.
감독님과 선수들에게 죄송했어요. 팀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선수들이 오히려 더 잘해줘서 고마웠어요. 특히 영후 형한테 가장 고마웠죠. 형 프리킥 덕분에 살았다며 고맙다고 했는데, 형은 그냥 웃기만 하더라고요.

선수로서 강원FC 홈경기장 분위기를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다.
다른 팀 홈경기장을 가보면 선수가 골을 넣어도 서포터들만 흥이 나서 기뻐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강원FC 홈경기장에서는 모든 관중이 한데 어우러져 흥에 겨워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지켜보는 저도 즐겁고 재밌어요.

이번 주말 친정팀이었던 수원을 만난다. 수원전에 임하는 각오를 들려달라.
반드시 이기고 싶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골을 넣고 팀이 승리하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많이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많이 부족한 선수임에도 좋게 생각해줘서 강원FC 팬 여러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가 될 테니 많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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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와 수원삼성의 '포스코컵 2010' 3라운드가 펼쳐진 수원월드컵경기장. 이날 경기는 강민수와 이상돈의 연속골로 수원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개인적으로 강원FC를 아끼는 마음이 크기에 패배는 쓰라렸지만 골이 터질 때 수원 선수들이 보여준 세레모니는 참으로 감동적이었고 또 아름다웠습니다. 오는 6월 6일 컵대회 조별예선 전북현대와의 홈경기를 끝나고 수원의 감독직을 내려놓겠다고 말씀하신 차범근 감독님. 떠나는 차범근 감독님께 잊지 못할 선물을 드린 수원선수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드립니다.





강민수 선수가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뭔가를 펼치라며 제스처를 취하던 수원의 주장 조원희 선수. 아니나다를까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뭔가를 건네더군요. 그것은 다름아닌 차범근 감독님께 선수들이 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적힌 플랭카드였습니다.

수수원을 상징하는 청, 백, 적을 나타낸 그랑블루의 세레모니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이관우 선수가 뛰는 모습도 보았어요. 그의 프리킥은 예전만큼 날카롭진 못했으나 별보다 밝은 남자, 이관우 이관우~ 하던 그랑블루의 콜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상돈 선수의 결승골. 이날 이상돈-이상호 형제 선수가 함께 뛰는 경기를 처음 보았습니다. 예전에 이상호 선수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인터뷰 내내 우리 형만 생각하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요, 하면서 울먹울먹하더군요. 축구가 힘들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걱정해주던 형의 멋진 결승골을 보며 이상호 선수는 또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이번에는 선수들이 차범근 감독님께 달려가 단체로 감독님을 껴안으며 감사의 기쁨을 표하더군요. 2연승도 기뻤겠지만, 감독님을 위한 선수들의 마음이 느낄 수 있었기에 차범근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흐뭇했을 것 같습니다.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차범근 감독 기자회견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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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성남일화와의 시즌 개막전을 시작으로 4라운드 포항전까지, 4경기 동안 강원FC가 거둔 성적은 1무 3패. 지난해 이맘 때 쯤 거둔, 참으로 찬란했던 성적 2승 1무와는 사뭇 대조되는 행보였다.

추가시간까지 계속되던 끈끈한 압박,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어지던 공격의 간결함, 투터치 안에 패스를 전개하면서도 볼을 내주지 않던 정확성 등을 볼 수 없다며 강원FC만의 특유의 색을 잃어버렸다는 혹평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지난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래도 강릉에 닥친 때 아닌 폭설로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한 날들의 영향이 컸다고 말하고 싶다. 잔디가 깔린 훈련장이 아닌 체육관에서 운동을 해야했으니 제대로 된 미니패스 훈련, 전술훈련, 세트피스 훈련 등을 할리가 만무했다. 맞춤형 훈련 대신 기본적인 체력훈련만 하다 경기를 치렀으니 어려움이 컸을 수밖에.

그런 가운데 한번은 최순호 감독님과 점심을 먹기 위해 한정식당을 찾은 적이 있었다. 주문을 받기 위해 종업원이 왔는데, 감독님 얼굴을 알아보더니만 “아이고, 감독님. 경기결과가 좋지 못하니 얼굴이 안되보이시네요”하더라. 당시 감독님은 “사람들은 보는 대로 느끼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대로 보는 것 같구나”라고 말씀하시며 멀리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셨다.

한데 잠시 후 그 종업원이 물을 가져다주며 감독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

“감독님, 계획하신 것이 있다고 하셨죠? 저희는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게 벌써 2주 전의 일인데, 감독님은 요즘도 그날 이야기를 꺼내곤 하신다. 그렇게 말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고. 더 말씀은 안하셨지만 그 말이 감독님에게는 많은 힘이 된 듯 했다.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5-2로 이긴 후에도 종종 그날 그 종업원이 했던 말을 꺼내곤 하시니까.

믿고 기다리기. 사랑하는 연인사이에서도 지키기 힘든 게 바로 믿고 기다리기 아니던가. 분명 계단을 올라간다고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고 때론 두세계단 내려가는 듯할 때, 팬들은 실망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한다. 하지만 팀과 선수는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언젠가는 이 계단을 다 밟고 올라가 정상에 서겠습니다,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팬들은, 결국엔 기약 없는 기다림 때문에 지치고 만다. 그래서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팀에 바라고, 감독에 요청하고, 선수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수원삼성의 신인 오재석 선수의 미니홈피에서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보면서도 배울수 있는 것은 많다, 로 시작되는 글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우턴하여
부드럽게 살포시 러블리함을 가미해서
기다림의 미학 이라고 표현한다.
어, 왜 우리 학교다닐 때 급식있지않습니까 급식.
배식순서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롱(Long) 줄. 그 사이에 낑겨
앞사람들 좀 빨리빨리 움직여서 퍼고 빨리 좀 갔으면 싶고
내 차례는 언제오려나하며 배식구 쪽 만을 향하는 초조한 시선.

덩치 큰 녀석이라도 앞쪽에서 버티는 날엔
나를 포함한 뒷사람들의 머리속엔
새우튀김은 저 위치에서 거덜이구나. 다신 볼수없겠다.
A급 반찬들의 운명을 저 자의 다 손에 맡겨야하는구나.
이러한 걱정들을 하곤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뭐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합니다만,
오늘은 김치 대신에 오이소박이가 나오는 납득 안되는 경우.
설마 밥과 함께 필수식단인 국에 말도안되게, 어처구니없이
오이냉국이 출격하는 이런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깟댐 상황
식사전에 오이와 눈을 맞추어 입맛이 떨어질수있는 위험이있는
만리장성과 함께 아시아의 2대 미스테리 상황같은.

허나.

이 초조한 마음들은 놀랍게도
내가 식판과 수저를 잡고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사라집니다.
초조했던 심박도는 정상을 되찾고, 뒤에서 기다릴땐
남들은 제발 좀 빨리 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사람이 됩니다.
기쁨의 아드레날린은 상승하여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과감히, 식판을 오버시켜가며
탕수육소스가 옆에 김치에 흘러들어가도 괜찮고,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으니까 같은 식의
긍정의 힘을 그 누구보다 긍정히 실천하고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리틀 조엘 오스틴이 되곤해요.

놓여진 음식들을 보며 배분율에 대해 분석에 들어가고
남겨져서 날 기다려준 새우튀김을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와 함께
앞에 지나간 뚱띠가 새우알러지가 있었음을 느낄수있는
통찰력과 예지력까지 얻을수있어요.
혹은 이미 밥 푸기 바빠서 뚱띠는 머리속에 안중에도 없거나.

축구도 그렇습니다.
선수마다 때가 있는 겁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나 초조하죠.
줄이 롱(Long) 줄 이니까요
허나 때는 분명히 옵니다.
다만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어지기때문에
막연하게 기다리면 막연하게 시간만 가기때문에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앞서의 새우튀김은 그라운드입니다.
기다림의 이유이자 기대하는 곳이죠.

그라운드에 내가 없다면 조금 실망할수도있지만
남들보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축구에선 선발선수 명단에 들기 위한 노력과 준비.
학교에선 종치면 문열고 달릴 준비를 아주 착실히 한다면

다음번엔 경기장에서 내 이름이 전광판에 떠있고 콜이 울리며

식당에선 가장 먼저나 선두권에서 Door OPEN을 기다릴수있죠
운이 좋으면 막 튀겨낸 뜨끈뜨끈 쌔삥새우를 먹을수있고요
쌔삥새우는 골이라고 치고싶네요.

배가 부른 사람은 느긋하다 늦기 쉽상입니다.
입장이 바뀐상황을 위기라고 표현할수있죠.
먼저 가는 듯 싶지만 새치기를 당할수도있고,
잘 나가는듯 싶지만 부상을 당해 잃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지금 이시기를 위한 급식 조기교육속에 자란 덕에
깨우친게 많아서 처음에 늦은 것 같다고 초조해하지않습니다.
전 룰을 잘 지키며 살지만 어려서도 지금도 단체로 밥먹으면
은근슬쩍 새치기도 악의없이 센스있게 잘합니다.

물론 새치기가 목표가 아니고 실력을 쌓아서 정상에 서고싶고
지금은 마음이야 굴뚝같고 준비되어있는데요
역시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해서 때를 기다리는 입장입니다.
키도 부족하고요. 많이라고 하지말아주세요
성장이 멈춘것같거든요. 희망이 없어서 말이죠.

키는 멈춘것같지만
선수로서의 성장은 이제 갓 14살입니다.
연골이 성장판이 쭉쭉 열릴때라서 많이 성장하고 싶습니다.

시즌은 길고 선수도 많지만 때는 옵니다.
뜻이 있는 곳에 있다는 그 길을 넓은 시야로 잘찾아보겠습니다

요즘 제 미니홈피 재미없다 그래서
몇자는 아니고 몇만자 적날하게 적어봤습니다.
여러분 황사랩니다. 삼겹살 사드세요.

[스티커 붙이시면 딸 낳으면 얼굴 드록바]

아 골 넣으라고 부탁하는 주위 분들.
1년에 1골 넣는 것도 어색하도록 10년간 수비수만 봐왔습니다.
전 수비수라 막는거부터 집중해야되니
지금은 좀 곤란한거같구요
다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요.

메시 동영상 열심히 보고있으니.

뛰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그런가 보구나, 하는 생각에 한참동안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줬으면 좋겠다고 한참동안 생각했었다. 비록 타팀이지만 오재석 선수의 글을 읽으면서 말이다.

지난해 인천전이 끝나고 왜 아직도 김영후 선수는 골을 터뜨리지 못합니까, 라고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을 때 최순호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때론 그 선수를 향한 관심을 조금만 줄이는 것도 선수를 위해선 좋은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김영후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터뜨렸다. 프로 데뷔골을 멀티골로 마감하며 괴물 공격수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K-리그에 널리 알렸다.

올 시즌 왜 아직도 김영후 선수는 시즌 첫 골을 신고하지 못합니까, 라고 사람들이 물었을 때에도 최순호 감독은 그런 김영후를 따로 불러 느긋하게 생각하라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김영후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올 시즌 K-리그 국내 선수 중 최초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또 다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왜 아직도 강원FC는 졸전만 거듭하며 1승을 거두지 못하는 거지요?, 라고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질 때에도 최순호 감독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우리는 계획한데로 가고 있습니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강원FC는 전남을 5-2로 누르며 K-리그 베스트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당장 날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추락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것. 어쩌면 더 높기 날기 위해 잠시 깃을 가다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는 쓰라리고 괴로운 법이다. 하지만 오늘의 패배가 영원한, 그리고 인생의 전부를 지배할 패배는 아니지 않던가. 중요한 건 왜 졌는지 알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고 보완하며 노력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믿고 기다리련다. 강원FC는 슬픔과 괴로움보다 기쁨과 웃음, 그리고 희망을 더 많이 줬던, 하나 뿐인 나의 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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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8월 30일 수원삼성과 강원FC와의 경기는 수원에게 있어선 고인이 된 정용훈 선수를 추모하는 경기였습니다. U-17대표팀과 U-18대표팀을 거쳤던 1998년 수원에 입단했던 유망주는 K-리그 통산 64경기 5골 3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003년 8월 31일...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죠. 당시 펑펑 울던 조병국 선수의 얼굴이 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가 준비한 추모걸개입니다.

걸개 위에 있던 국화꽃들.

  정용훈 추모경기였던 그날이 더 특별했고 아름다웠던 이유는... 함께 정용훈 선수를 그리워하며 자비로 국화 꽃을 준비했던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반 44분 2-3으로 뒤지며 패색이 짙던 수원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송종국의 크로스를 받은 에두가 껑충 뛰어 올라 헤딩슛을 시도했고, 그대로 골망을 출렁이며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빅버드가 열광의 함성으로 가득찼을 때 골을 넣은 주인공 에두는 왼쪽 코너 플래그가 꽂혀있던 곳을 지나 한쪽 구석까지 달려갔습니다. 어디로 달려가는 거지?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죠.

에두가 달려간 그곳에 링거를 꽂은 채 마스크를 한 어떤 이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누구시냐고요? 신인기씨.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블루포토라 명명된 수원삼성 명예사진기자 모임에 소속돼 푸른 전사들의 사진을 찍어주신 분입니다. 수원 팬들 사이에서는 신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신 분이죠. 저도 이분의 사진을 보며 사란 사커 키즈 중 하나입니다.

한데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진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로 뵌 신인기씨는 무척 야위어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3년 전 위암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 투병 생활 중이라군요. 최근에는 암세포가 전이되 항암제를 맞으며 말기가 주는 고통과 싸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수원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자신의 몸만한 카메라와 렌즈를 챙겨들고 경기장에 나섭니다. 강원FC와의 경기가 열렸던 그날도 그랬고요. 한데 참으로 아름다웠던 것은 그런 그의 정성에 감동받은 에두가 동점골이 터진 후 그에게 달려가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오직 신인기씨만을 위한 세레모니를 보여줬던 것이죠.

경기 종료 후에는 선수들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 그의 쾌유를 빌어줬습니다.

신인기씨 앞으로 달려간 에두 선수의 모습이 살짝 나왔군요.

경기가 끝난 후 이렇게 단체사진도 찍었고요.

강원전날 신인기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수원의 여름전지훈련 때도 그는 동행하여 사진을 찍었지요.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수원의 역사를 담기 위해서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수원 구단에서는 신인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하프타임 때 전광판을 통해 그의 영상을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진 마감 때문에 사진기자실에 있던 저는 이 동영상을 보지 못했는데 그랑블루 여순식님께서 고맙게도 보내주셔서 이렇게 블로그에 첨부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한데 오늘 수원삼성 홈페이지에 들렸다가 신인기씨께서 오늘 오전 6시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고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수원블루윙즈축구단의 명예사진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주셨던 신인기씨께서 금일 오전 6시에 別世하셨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당 구단을 위해 헌신해주셨던 故人의 죽음에 삼가 弔意를 표하며 진심으로 冥福을 빕니다.


■ 亡 人 : 신 인 기 子  (享年  43歲)

■ 亡 時 : 2009년 10월 6일(화)

■ 殯 所 : 수원 성빈센트병원 영안실

■ 發 靷 : 2009년 10월 8일(목)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랑하는 수원 선수들의 모습을 경기장에서 담을 수 있었다는 것과 그간 사진을 찍는 동안 꼭 이루고 싶었던, 바로 수원 전사들의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꿈을 이뤘던 것이죠.

전시회가 열리던 날 수원구단 관계자들과 에두, 김대의, 양상민 선수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전시회 첫날 신인기씨는 “평생소원이던 사진 전시회를 병원장과 수원구단 관계자들의 후원으로 하게 됐다”라며 “지금 부인이 많이 걱정하고 있는데 미안하다”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저 역시 전시회에 찾아가려고 했지만 다음에 가야지, 하며 아직까지 못갔었는데 이제 고인이 되셨다고 하니 그때 내 몸이 조금 피곤할지라도 갔었어야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지난달 21일부터 성빈센트병원 중앙로비에서 진행됐던 신인기씨의 사진전은 10월 6일부터는 수원 북수원성당 내 뽈리 화랑으로 옮겨 11일까지 전시됩니다. 고인이 주말이면 찾던 성당에서 열리는 전시회 첫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전시된 사진들은 신인기씨 개인 홈페이지 (http;//www.singa.pe.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뿐 아니라 가족들이 썼던 사랑의 편지, 또 고인이 쓴 병상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계실 신인기씨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명복을 빌며, 당신의 수원사랑, 그 빛나던 열정, 영원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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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8월 30일 수원삼성과 강원FC와의 경기는 수원에게 있어선 고인이 된 정용훈 선수를 추모하는 경기였습니다. U-17대표팀과 U-18대표팀을 거쳤던 1998년 수원에 입단했던 유망주는 K-리그 통산 64경기 5골 3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003년 8월 31일...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죠. 당시 펑펑 울던 조병국 선수의 얼굴이 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가 준비한 추모걸개입니다.

못다한 꿈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슬프게 다가왔던...

걸개 위에 있던 국화꽃들.

벌써 세상을 떠난지 6년이라네요.

 
정용훈 추모경기였던 그날이 더 특별했고 아름다웠던 이유는... 함께 정용훈 선수를 그리워하며 자비로 국화 꽃을 준비했던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반 44분 2-3으로 뒤지며 패색이 짙던 수원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송종국의 크로스를 받은 에두가 껑충 뛰어 올라 헤딩슛을 시도했고, 그대로 골망을 출렁이며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빅버드가 열광의 함성으로 가득찼을 때 골을 넣은 주인공 에두는 왼쪽 코너 플래그가 꽂혀있던 곳을 지나 한쪽 구석까지 달려갔습니다. 어디로 달려가는 거지?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죠.

에두가 달려간 그곳에 링거를 꽂은 채 마스크를 한 어떤 이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누구시냐고요? 신인기씨.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블루포토라 명명된 수원삼성 명예사진기자 모임에 소속돼 푸른 전사들의 사진을 찍어주신 분입니다. 수원 팬들 사이에서는 신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신 분이죠. 저도 이분의 사진을 보며 사란 사커 키즈 중 하나입니다.
한데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진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로 뵌 신인기씨는 무척 야위어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3년 전 위암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 투병 생활 중이라군요. 최근에는 암세포가 전이되 항암제를 맞으며 말기가 주는 고통과 싸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수원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자신의 몸만한 카메라와 렌즈를 챙겨들고 경기장에 나섭니다. 강원FC와의 경기가 열렸던 그날도 그랬고요. 한데 참으로 아름다웠던 것은 그런 그의 정성에 감동받은 에두가 동점골이 터진 후 그에게 달려가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오직 신인기씨만을 위한 세레모니를 보여줬던 것이죠.

경기 종료 후에는 선수들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 그의 쾌유를 빌어줬습니다.

신인기씨 앞으로 달려간 에두 선수의 모습이 살짝 나왔군요.

경기가 끝난 후 이렇게 단체사진도 찍었고요.

강원전날 신인기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수원의 여름전지훈련 때도 그는 동행하여 사진을 찍었지요.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수원의 역사를 담기 위해서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수원 구단에서는 신인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하프타임 때 전광판을 통해 그의 영상을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진 마감 때문에 사진기자실에 있던 저는 이 동영상을 보지 못했는데 그랑블루 여순식님께서 고맙게도 보내주셔서 이렇게 블로그에 첨부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신인기씨가 사랑하는 아들과 다시 축구장을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앓는 사람에게 강복하시고 갖가지 은혜로 지켜주시니 주님께 애원하는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신인기 프란치스코 형제님의 병을 낫게 하시며 건강을 도로 주소서. ● 주님이 손으로 일으켜주시고 주님의 팔로 감싸 주시며 주님의 힘으로 굳세게 하시어 더욱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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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1912년 4월10일 ‘하느님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는 찬사와 함께 출항했던 타이타닉호는, 4월14일 밤 11시 빙산과 충돌한 후 수 시간 만에 심해로 가라앉고 만다. 당시의 비극을 필름으로 재현한 영화 <타이타닉> 말미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키를 놓지 않았던 존 스미스 선장의 모습이 담겨 있다. 소임 앞에 숨까지 내놓으며 끝까지 책임을 다한 그 모습은, 나서 이끄는 사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선장의 영어식 표현이 주장을 뜻하는 단어 ‘캡틴(Captain)’과 같다는 사실은 아마도, 서 있는 자리는 다를지라도 같은 무게의 책임감을 어깨에 올려놓은 사람이기에 한 단어로 부르는 게 아닌가 싶다.


경기장 밖에서도 쉽게 주장 완장을 벗어 던지지 못했던, 지난 1년 간 오로지 푸른 군단의 재건만을 위해 뛰었던 ‘캡틴’ 송종국을 만났다. 주장 송종국이 펼쳐 보인 주장론은, 수은주는 영하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뜨겁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장시간을 오갔다.

첫 직선제 주장
“프로 데뷔 이후 정규리그에선 단 한 번도 우승컵을 들지 못했어요. 그 때문에 긴장도 심했고 걱정도 많았죠. 특히나, 결승전을 앞두고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경기 전날 수면제를 먹고 간신히 잠들었을까요. 지난 시즌 주장으로 있다 보니 일 년 내내 나 하나가 아닌 팀 전체를 생각하며 지냈어요. 그런 가운데 결승전이 다가오면서부턴 다른 선수들 컨디션까지 살펴야했고요. 신경 쓸게 너무 많았던 탓에 좀처럼 긴장을 풀 수 없었고, 아무래도 그 때문에 잠이 달아난 것 같네요.”

송종국은 원하던 열매를 얻었기에 지난날의 고생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웃었다. 하나 청자의 입장에서 따라 웃을 수 없었던 까닭은, 그 말이 곧 주장으로 보낸 시간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대사를 앞두고 홀몸 건사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와중에도 서른 명이 넘는 선수들을 일일이 챙겨야했으니.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어려운 일이었음을 분명 알 수 있었다.

“시즌을 앞두고 ‘주장 선거’를 가졌어요. 저를 비롯해 선수 몇 명이 동료 선수들의 추천을 받아 후보로 나왔고 선수단 전체가 투표에 참여했죠. 지금에 와서 말씀드리지만, 마음 한편으론 안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동안 옆에서 지켜본 수원삼성의 주장이란 자리는 결코 쉽지 않은 자리였거든요. 그런데 투표 결과 꽤 많은 후배들이 저를 지지했더군요.”

수원 역사상 최초의 직선제 주장이었다. 그만큼 믿고 따르는 선수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니 무엇보다 영광스런 마음이 컸을 듯했다. 그러나 송종국은, 앞으로 건널 가시밭길 생각에 기쁨보단 고민이 우선이었다고 고백했다.

“강하게 이끌어갈까, 아니면 부드럽게 품고 나갈까. 고민이 많았어요. 한 시즌은 하루 이틀이 아닌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이잖아요. 그 속에서 초지일관을 유지해야하는데, 그러려면 아무래도 평소 제 성격대로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속으로 후배들의 입장에서 손을 잡자고 다짐했는데, 그 부분은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선배가 아닌 우리 형 같은 느낌으로 다가갔기에 후배들도 힘든 부분에 대해 예전보단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거든요.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게 결국엔 팀 전력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보이지 않던 노력의 노력들
처음 수원의 주장으로 불리게 됐을 때, 송종국이 가장 중점을 둔 것이 바로 대화의 미학이다. 그의 말마따나, 확실히 지난 1년은 입보다 귀를 더 많이 열었던 시간이었다.

“저희 팀에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이 있는데요, 어린 선수들에게는 늘 어렵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그 때문인지 복도에서 만나게 돼도 간단히 인사만 하고 지나칠 뿐이었어요. 팀에 대한 애착도, 선수들 간의 우정도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어요. 제가 주장을 맡으면서 적어도 그 부분만은 다 같이 노력해서 깨고 싶었어요. 그래야 비로소 ‘한 팀’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송종국이 정한 방침은 ‘고충은 듣되 잘잘못을 가리진 말자’였다고 한다.

“K리그에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알게 모르게 ‘파’가 갈려 내부적으로 분열된 팀들이 몇몇 있어요. 문제는 그게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골이 깊어지면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는 좋은 위치에 있어도 볼을 안주게 되는 일들도 생기거든요. 결국엔 팀이 실패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말죠. 작년 수원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하나가 됐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합심했어요. 지난해 컵 대회와 정규리그 후반기 때 2군 선수들이 올라와 좋은 활약을 펼쳤잖아요. 전적으로 대화를 통해 서로간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줄곧 2군에서 뛰다 1군에 갓 올라온 선수들은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익숙하지 않아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기 십상이거든요. 그런데도 그 선수들이 제 몫 이상을 해줄 수 있었던 건, 물론 스스로의 노력도 컸겠지만 역시나 대화의 힘도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주장으로서, 송종국이 쏟은 노력들은 그렇게 겹겹이 쌓였는데 여기서 한 가지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솔선수범형 리더십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리더십이 가장 돋보였던 순간은 다름 아닌 챔피언결정전 현장에서였다. 중원에서 끊임없이 공격과 수비 진행 방향을 리딩하던 ‘키맨’ 송종국의 모습은 1·2차전 내내 단연 눈에 띄었다. 특히 송종국의 진가는 그의 플레이가 단순히 지시를 내리는데서만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는 기성용과 이청용의 발끝에서 시작되던 서울의 공세를 막아내는 1차 저지선으로 맹활약했고, 선수들의 구심점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숨은 살림꾼’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주장이기 이전에 선배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제 플레이하기도 바쁜데 다른 선수들 것까지 봐주면서 커버해야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한발 더 뛰면 동료들이 편하잖아요. 체력이 받쳐주는 한 더 많이 움직이며 팀에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또 선수들에게도 믿음을 주고 싶었고요.”

후배들 역시 그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지난해 12월 K리그 시상식장에서 만난 수원 선수들은 “(이)운재 형 뿐 아니라 (송)종국이 형에게도 MVP를 주고 싶다”며 입을 모아 말했다. 송종국에게 당시 이야기를 전해주자 그는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주장이 또 있을까요”라고.

주장이 생각하는 주장은
“2002월드컵 당시 제 눈에는 선배들이 참으로 대단한 선수로 비춰졌어요. 저 뿐 아니라 어린 선수들 대부분의 생각이 그랬습니다. 선배들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경기를 풀어가겠냐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특히나 주장이던 홍명보 선배님께 많이들 의지하며 지냈어요. 선배님께서 그만큼 큰 버팀목이 되어주신 거죠. 그렇지만 지금은....... 글쎄요. 요즘 선수들에게 주장이란 존재가 더 이상 의지의 대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대가 바꿨고 선수들의 사고방식 역시 변했으니 주장상(主將像)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게 송종국의 지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이 갖춰야할 덕목으론 카리스마를 꼽잖아요. 아무래도 예전부터 주장 자리에 있던 선배들이 갖고 있던 이미지가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제는 어머니 같은 포용력을 더 요구하는 것 같아요. 잘못 나가고 있을 때는 엄하게 꾸짖되 평소에는 어머니처럼 ‘네 마음 다 안다’며 품을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장이라고 목소리만 높이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송종국은 후배들과 약속한 훈련시간에 늦었다며 서둘러 채비를 갖췄다. 그러나 선수단을 위한 마지막 인사말을 잊지 않고 전했다. 마지막까지 주장은, 역시 주장다웠다.



“수원의 역사에서 가장 행복했던 주장이 아니었나 싶어요. 70점짜리 주장을 믿고 따라온 선수들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주장의 위치에서 한 계단 내려오지만 지금처럼, 앞으로도 후배들이 필드 위에서 더 많은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배로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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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년 전, 2006년 11월이 생각납니다. 성남과의 결승 2차전. 당시 수원은 1차전 0-1 패배를 극복하지 못한 채 홈에서도 패하며 안방인 '빅버드'에서 성남의 우승 세레모니를 지켜봐야했습니다.

수원 선수들에게는 지금도 잊고 싶은, 꽤나 아픈 기억이죠. 그러나 절치부심했던 시간들 덕분이었을까요.




에두의 선제골, 정조국의 PK 만회골에 이어 수원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옵니다. 키커는 수원의 주장 송종국 선수. 그러나 송종국 선수의 킥은 골키퍼 김호준 선수에 막히고 마네요. 그러나, 결자해지라고 송종국 선수는 튕겨 나온 볼을 향해 재차 슈팅을 시도했고 결국 역전 결승골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수원 선수들은 중원에서부터 확실하게 서울을 봉쇄했고 경기는 2-1 수원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2004년 이후 4년 만에 만난 우승컵 아래서 수원 선수들과 차범근 감독은 활짝 웃으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죠. 다음은 결승 2차전이 끝나는 순간까지 관중석에 앉아 찍은 영상입니다.



경기 종료 후 수원 선수들을 만났습니다. 송종국 선수는 중원에서 키맨으로서 제 역할 이상을 해줬죠. 조원희 선수의 투지가 빛났던 것은 중원에서 볼 배급을 원활히 해줬던 송종국 선수의 존재 덕분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물론 조원희 선수 역시 기성용 선수와의 1대 1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고 비단 기성용 선수 뿐 아니라 서울의 패스를 바로 바로 커트하는 등 1차 저지선으로서 완벽한 플레이를 선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에두 선수는 또 어떻고요. 서울의 데얀 선수가 마토-곽희주 두 센터백에 연방 밀리며 아무런 힘도 보여주지 못할 때, 에두 선수는 측면에서 중앙을 향해 폭넓게 움직이며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이 에두 선수과 데얀 선수의 차이였죠.

노장 김대의 선수는 효과적으로 공격 시발점이었던 이청용 선수를 막아냈고 홍순학 선수 역시 1차전에서의 부진을 거울삼아 횡으로 활발히 움직이던 아디 선수의 오버래핑을 막는데 주력했습니다. 마토-곽희주 콤비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겠죠. K리그 최고의 수비수들이라는 걸요. 저는 풀백으로 나섰던 이정수 선수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부상 때문에 근 몇달을 결장했던 그는 사실 정규리그 말미에 경기에 나설 수 있을 몸이 돼있었답니다. 그러나 혹시 또다시 부상이 재발해 챔피언결정전에 나서지 못할 일이 발생할까봐 벤치를 지켰고 결국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 복귀하며 모두를 깜짝 놀래켰죠. 최성환 선수가 이정수 선수의 공백을 잘 메웠다고 생각하나 그래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측면에서 돌아들어가며 공격을 노리던 서울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마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공은 이정수 선수가 세우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과 실력이 더해져 수원은 결국 2008 K리그 우승팀의 영광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이 모든 공을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에게 돌리던 선수들의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09년 아시아의 챔피언 수원삼성을 기대해봅니다.

마지막으로 1년 동안 2008시즌만 생각하며 뛰었던 K리그 모든 선수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그동안 멋진 경기를 보여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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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한때, 조원희를 신데렐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2005년 10월12일 A매치 데뷔전이었던 이란과의 친선경기에서, 조원희는 59초 만에 데뷔골을 터뜨리며 거한 신고식을 치렀고 그해 겨울엔 K리그 베스트11에도 뽑혔다. 하나 신데렐라 스토리는 딱 거기까지였다. 2006월드컵 이후 대표팀과의 연은 끝났고 소속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한 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해가 지나면 새 계절이 돌아오듯 2008년, 다시 만난 조원희는 새로웠다. 한결 풍성해진 모습이었다.



변신 도전 그리고 성공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듯하다. 올 시즌 수원은 컵대회에 이어 정규리그에서도 1위에 오르며 4년간 묵힌 ‘무관의 한’을 드디어 풀고 말았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에 오르기까지, 그 걸음걸음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주전 선수들의 잦은 부상, 그중에서도 중원과 후방의 누수가 가장 큰 이유였다. 초반 백지훈과 안영학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여름에는 신인 박현범이 재활군으로 분류됐다. 여기에 수원 수비의 중심축이었던 이정수 마저 부상병동에 입원하는 악재가 겹쳤다.

그때마다 나서 공백을 메운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조원희다. 올 시즌 조원희는 이운재(26경기)에 이어 가장 많은 경기(23경기)에 나서며 ‘정근’했는데, 만약 경고누적으로 받은 출장정지(3경기)가 없었다면 전경기 출장도 가능했던 시즌이었다. 여기에 상대 예봉을 차단하는 1차 저지선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는 호평까지 받았다. 중원의 힘겨루기에서 조원희가 큰 역할을 해주면서 수원의 리그 1위 등극에 공헌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다들 과분할 정도로 칭찬을 많이 해주시네요. 멋모르고 열심히 뛰기만 했을 뿐인데 말이죠. 아무래도 측면수비수에서 수비형MF로 보직을 변경한 이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알다시피 조원희의 본 포지션은 라이트백이다. 그러나 다소 부정확한 크로스가 늘 그의 발목을 잡았다. 특별히 스피드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으나 오버래핑 이후 복귀시간이 늦어 ‘돌아오지 않는 풀백’이라는 조소도 들어야만 했다. 설상가상, 2007시즌에는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급기야는 교체선수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나날들이 반복되고 말았다.

“2007시즌 전반기 내내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했어요. 일단 제 스스로에게 실망을 많이 했죠. 하지만 준비만 하고 있다면 언젠가 기회는 다시 올 거라 믿었습니다. 조급해하는 대신 개인운동에 열중하며 그 시간들을 이겨냈죠. 그러다 LA갤럭시와의 친선경기를 앞둔 7월에 차범근 감독님께서 미드필드에서 한번 뛰어 보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마침 중원에 한 자리가 비었거든요. 다시 찾아온 기회였어요. LA갤럭시전이 보직변경 후 대중 앞에 선보인 첫 경기였고 그 뒤로 수비형MF로서의 새 날들이 시작된 거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조원희의 변신에 합격점을 주었다. 덕분에 새롭게 별명도 생겼다. 팬들은 특유의 투쟁심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AC밀란의 가투소와 닮았다며 그를 ‘조투소’라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저도 가끔 (기)성용이가 대표팀에서 보여주듯 공격적으로 나서고 싶을 때가 있죠. 하지만 제 역할은 ‘청소부’입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뒤에서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을 겁니다.”

오늘의 조원희를 조각한 사람들
소속팀 동갑내기 배기종처럼 크게 알려지진 않았으나, 조원희 또한 월봉 100만원의 연습생 신분으로 처음 K리그 문을 두드린 과거를 갖고 있다.

“2002년 배재고 졸업 후 울산에서 연습생으로 있었죠. 2002월드컵 때 혼자 숙소에서 국가대표팀 경기를 지켜봤던 기억이 나요. 아무도 조원희란 제 이름 석자를 모를 때였죠. 지금도 전 그 시절을 잊고 않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에 더 감사하며 사는 지도 모르죠. (송)종국이 형과 운동하고 (이)운재 형과 밥을 먹는다는 것, 그때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특히 작년에 (안)정환이 형이 저희 팀에 있을 때, 얼마나 좋았는데요. 제 옆에서 축구화 끈을 묶고 있는 정환이 형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막 설레었다니까요.”

지난날을 잊지 않았다던 조원희는, 작금의 터를 마련해 준 옛 은사를 향한 감사인사 또한 잊지 않았다. 바로 광주상무 이강조 감독이다. 조원희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자면 “그저 거칠기만 했던 자신을 어르고 채찍질하며 다듬어 주신 분”이라고.

“2004년 11월 상무 제대 이후 고민이 많았어요. 수원에서 오라는 제의가 있었지만 가서 잘할 수 있을 지 확신이 안 섰거든요. 그때 이 감독님께서 ‘가라. 지금의 너라면 가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를 향한 감독님의 믿음이 없었다면 오늘날 ‘수원맨’ 조원희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4년 째 수원 지휘봉을 잡고 있는 차범근 감독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겠다.

“아직 젊다 보니 솔직히 구단에서 외박을 받을 때면 오랜만에 친구들과 맥주 한 잔 마시며 놀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요. 하지만 마음처럼 행동할 순 없어요. 당장 내일은 쉬겠지만 모레 다시 훈련이 잡혀 있으니까요. 차범근 감독님은 정말 예리하세요. 선수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태해지거나 그로 인해 컨디션이 떨어지는 걸 단박에 알아차리시거든요. 그리고 냉정하게 내치시죠. 그걸 잘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숙소에 남아 개인 운동을 하게 되요. 감독님께선 항상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말씀하세요. 제가 올 시즌 중원에서 붙박이로 뛰었잖아요. 하지만 이 자리는 절대 저를 위한, 저만의 자리가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악착같이 노력하며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리고 덧붙임. “얼마 전 차 감독님께서 ‘원희, 자네 올해 몇 살인가?’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스물 여섯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껄껄 웃으시더라고요. ‘쇠도 씹어 먹을 나이네’하시면서요. 그만큼 아직은 짱짱한 청춘이라는 뜻이겠죠. 그러니 더 많이, 또 열심히 뛰어야하지 않겠어요?”

나는 결코, 멈추지 않겠다
조원희는 좀처럼 지침을 모르는 사나이다. 덕분에 데뷔 이래로 제법 오랫동안 ‘근성’이란 수식어를 이름 앞에 달고 다녔다. 그 때문에 무식할 정도로 지독하다는 소리도 섭섭지 않게 들었다. 팔이 부러진 상태에서 경기를 뛴 적도 있다고 하니, 이쯤 하면 말 다 했겠다 싶을 정도다.

“상무 시절 한번은 전반 도중에 왼쪽 요골(아래팔의 바깥쪽에 있는 뼈)이 부러지고 말았어요. 당시 오른쪽 풀백으로 뛰었으니 드로인은 제 담당이었어요. 한데 큰 뼈가 부러진 상황인지라 왼팔이 머리 위로 올라갈리 없었죠. 아픔을 참아가며 겨우 왼팔을 머리 쪽에 대고 나선 오른팔로 공을 던졌어요. 그런 상태에서 전후반 90분을 모두 소화하고 나왔어요. 누군가는 미쳤다고 했지만 그만큼 전 절실했어요.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요. 이 자리만큼은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제 막 K리그에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라 더 욕심이 났는지도 몰라요.”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조원희도 프로 7년차 중고참급 선수 대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조원희는 지금도 말한다. 여전히 부족하고, 그래서 아직은 조심스러운 것들 투성이라고.

“얼마 전 이회택 기술위원장께서 ‘원희 네가 한국 축구 팬들을 다 없애는구나!’라며 버럭 야단을 치셨어요. 아무래도 제 경기력이 마음에 안 드셨던 거죠. ‘기성용 봐라. 후배지만 배울 건 배워라!’던 그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하지만 믿어요. 노력하면 언젠가 모두에게 인정받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요. 그럼 그때 꼭 다시 한 번 조원희의 재발견이라고 써주세요.”

시간이 지나고 또 한 번 계절이 바뀌면 조원희는 한결 더 깊어진 모습으로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축구화를 손에 쥔 채 연습구장으로 총총 달려가던 조원희의 뒷모습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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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챔피언결정전은 늘 빅매치일 수밖에 없겠지만 근래 들어 이보다 더 큰 빅매치는 없을 듯 합니다. 12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8 K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 FC서울과 수원삼성과의 경기가 바로 그랬죠. 평일 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 최다 관중인 3만9011명이 몰렸으니 그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방증이겠죠.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어 푸드코드에서 식사하는 데만 40분의 시간이 걸렸답니다.

 

경기 초반만 해도 상대적으로 빅매치 경험이 적은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서울이 수원에 다소 밀리는 듯한 양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골이 모든 것을 말하죠. 전반 21분 기성용 선수가 왼쪽 코너킥 라인에서 찬 공을 아디가 솟구쳐 골대 오른쪽을 향해 밀어 넣었습니다. 수원 수비수들과 이운재 선수 모두 손 놓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손써볼 틈도 없이 선제골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승기는 서울이 잡은 듯 했죠. 중앙에선 조원희 선수가 전방에선 에두가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중원에서 패스미스가 계속 됐고 볼배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에두-신영록 투톱이 할 수 있는 건 없었죠. 에두는 계속해서 움직이며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듯 했지만 신영록 선수는 안타깝게도 의욕만 앞서는 듯 하더군요.

한골을 헌납한 뒤 수원은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전환했고 전반 내내 수원의 플랫4는 다소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부상에서 회복해 오랜만에 출전한 이정수 선수는 다행히 시간이 지날 수록 안정된 수비력을 펼치더군요. 옆에 있던 전남 송정현 선수는 이정수 선수를 가리키며 후반전에는 더욱 나아진 움직임을 선보일 것이라 평하더군요.

후반 들어 서울은 데얀을 뺀 뒤 이을용 선수를 투입하며 4-4-2에서 4-5-1로 전형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수원은 배기종, 이관우, 최성현을 차례로 투입시키며 적극적으로 ‘공격 앞으로’을 외쳤죠. 그 덕분이었을까요. 후반 34분 마토의 헤딩슛을 서울 김호준 골키퍼가 쳐냅니다. 그리고 튀어 나온 공을 곽희주가 재차 넣어 극적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리하여 1-1 무승부로 챔피언결정전 1차전 혈투는 끝이 났죠.

경기 종료 후 양팀 감독과 양팀 수훈선수인 곽희주 선수와 기성용 선수의 공식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이날 기성용 선수가 제일 마지막에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요, 많이 힘들었는지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앉아 있더군요. 옆에 있던 구단 프론트는 열심히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고요. 남은 마지막 힘을 쏟아내며 90분 풀타임을 소화했으니 기운이 없을 수 밖에요. 괜히 안쓰럽더군요. 그런데 그 와중에 차범근 감독은 “이청용은 전반 잠깐 반짝했지만 기성용은 나중에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죠.

잠시 후 기성용 선수에게 차범근 감독의 혹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담담히 오늘 몸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더군요. 하나 속은 꽤나 쓰렸을 듯합니다. 후반 89분  자신이 시도했던 중거리슛이 그대로 결승골로 연결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자, 이제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는 일요일 2차전에서 우승 트로피의 향방이 갈리게 되는군요. 어느 팀이 마지막 순간 웃을지 무척 궁금하고 또 기대가 큽니다. 블로그 독자들을 위해 오늘 현장에서 건진 따끈따끈한 영상, 편집해서 올려드립니다. ^^






경기장에 3시간 동안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오리털 파카와 목도리, 장갑을 챙겨가지고 왔지요.

기자들에게는 치킨과 라면이 제공됐답니다.

그런데 기자들에게 나눠준게 또 하나 더 있었어요. 뭘까요?

바로 바로 소녀시대 포스터! 이걸 왜 나눠줬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ㅋ 후배는 완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더군요. ㅋ

K리그 우승컵입니다. 작년부터 이 모델을 사용하죠. K리그 엠블럼을 상징해서 만든 우승컵입니다.

평일 저녁이었는데도 관중이 참 많이 왔어요.

건너편에도 관중이 정말 많더라고요.

줌 기능을 이용해서 찍어보니... 역시 많군요.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도 많았어요. 정신없이 깃발 흔들며 응원 중입니다.

중무장한 꼬마도 보였어요. 어찌나 FC서울을 열심히 응원하던지요.

이렇게 아들과 같이 온 어머니도 보였습니다. 유니폼을 나란히 입고 응원하는 모자의 모습이란. ^^ 저도 부럽더군요.

FC서울 구단에서 팬들에게 빳빳한 종이를 나눠줬는데 이렇게 접으면 부채가 되더군요. 잡고 흔들면 소리가 났어요. 아이디어 굿~

나눠준 종이를 펴면 요렇습니다.

출전선수 명단. 정규리그와 컵대회 멤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었죠.

FC서울에서 깃발섹션을 펼쳐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면 종이가 아니고 깃발임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수원 그랑블루는 역시나 언제나처럼 멋진 카드섹션을. ^^

그랑블루가 '패륜송'을 부르자 '메롱'이라 적힌 판넬을 들더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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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3월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 칼바람이 에우는 꽃샘추위 속에도 1만 5000여명의 관중들은 컵대회 1라운드 제주전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결과는 3-0, 수원의 대승이었다. 경기 종료 후 차범근 감독은 “박현범과 조용태, 두 신인 선수들이 잘해줬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복덩이가 따로 없다. 수원이 12경기 무패행진을 이어나간 동안(3월9일 대전전 2-0 승~5월5일 전북전 2-0 승) 조용태(10경기 2골3도움)와 박현범(11경기 2골1도움)은 순도 높은 기록으로 팀 승리에 일조했다.



이렇듯 시작이 경쾌했으니 두 사람과의 만남이 사뭇 기대됐던 것도 사실이다. 파릇파릇한 얼굴의 두 청년이 들려줄 꿈과 희망, 그리고 내일에 관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수원클럽하우스로 가는 길,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어렵고 험한 길
아직 인터뷰가 낯선 듯 조용태와 박현범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조심스레 자리에 앉은 두 사람에게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무엇이냐는 가벼운 질문부터 던져봤다. 어깨 가득 쌓여있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웬걸. 두 사람 모두 처음 등장할 때보다 더 굳은 표정이다.

“왜 이렇게 살 빠졌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란다. 아아, 그래서 그리도 진지한 얼굴을 했나 보다.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 모두 입단 3개월 만에 3kg이나 빠졌다고 한다. 왜 그럴까? 운동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냐고 묻자 단박에 고개를 젓는다. 박현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심적인 부담이 큰 탓이라고 보면 될 거예요.”

옆에 있던 조용태도 거들었다. “수원은 선수층이 두텁잖아요. 입단 초반에 ‘신인인 내가 이렇게나 훌륭한 선수들 틈에서 잘할 수 있을까?’ ‘과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렇듯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레 살이 빠지더라고요.”

그렇다면 지금은? 꾸준히 출장횟수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 마음의 부담을 덜었을 법도 한데. 이번에도 박현범이 먼저 대답했다.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해야 하는 선수가 어디 한 둘인가요. 언제 누가 올라올지 몰라요. 저 역시 지금은 컨디션이 좋지만 어느 순간 떨어질지 모를 일이고요. 매번 경기에 나가 뛸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매 순간 ‘마지막 경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잘하자’고 다짐하며 경기에 임하고 있어요. 그러니 늘 부담이 될 수밖에요.”

조용태 역시 비슷하다 말했다. “공격수는 골로 실력을 판단하잖아요. 저희 팀에는 워낙 대표 선수들도 많고 다들 공격 포인트도 높은 편이라 경기장에 들어설 때면 ‘나도 포인트를 올려야 할텐데…’라는 생각뿐이에요. 그러다보니 부담감을 늘 안고 뛰게 되네요.”

그러나 한편으론 얻은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 조용태는 “주위를 돌아보면 롤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자랑하는 선배들뿐이에요. 이렇듯 좋은 선수들 틈에 있다 보니 그만큼 보고 배우는 것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박현범은 “‘수원에서 살아남으면 어디 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만큼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해요. 힘든 만큼 스트레스도 크지만 이렇게 경기에 뜀으로써 ‘나도 충분히 잘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많이 얻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프로의 논리, 특히나 기존의 틀을 부수고 자리를 잡아야하는 새내기 입장에서 혹독하지만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조용태와 박현범이다.

기회는 노력하는 자의 것
시즌 전 일본에서 진행된 동계훈련 기간 중 박현범과 조용태는 4골을 기록하며 신영록과 에두(7골)에 이어 팀 내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두 사람 공히 차범근 감독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기에는 부족했다고 고백했다. 우선 조용태가 먼저 말했다. “동계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해도 전 이제 막 들어온 신인이잖아요. 그동안 선배들이 한 게 있으니까 저는 ‘그 뒤’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조금씩 나아가자. 그래서 한 단계씩 올라서자’는 마음으로 훈련에 임했죠. 일단은 출전 엔트리에 이름 올리는 것이 최대 목표였습니다.”

다음은 박현범. “올 시즌 주전으로 뛸 수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어요. 선배들이 다치거나 컨디션 난조를 보일 때 쯤 기회가 주어질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시즌 초반에 (백)지훈이 형과 (안)영학이 형이 다치는 바람에 미드필드 진영에 공백이 생기고 말았어요. 기회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게 된 셈이죠.”

데뷔전은 조용태가 조금 빨랐다. 3월9일 대전전. 2008시즌 개막전이기도 했던 그날, 조용태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안영학 대신 경기에 투입되며 데뷔전을 치렀다. 박현범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3월16일 성남전에서 풀타임으로 뛰며 신고식을 마쳤다. 이번에는 다소 재미난 질문을 던져봤다. 자신의 데뷔전을 별점으로 매겨본다면? 박현범이 먼저 대답했다. “별3개요.” 조용태는 그보다 하나 더 많이 얹어 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언제라도 투입될 수 있도록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려고 했어요. 준비하는 단계에서 제가 쏟은 노력을 높이 사기에 별4개 줄래요.”

출전과는 다르게 골맛은 박현범이 빨리 보았다. 박현범은 3월19일 제주Utd와의 컵대회 개막전에서 프로 데뷔골을 터뜨렸다. 데뷔 2경기만에 얻은 성과였다. “사실 매일 밤 자리에 누워 언제 데뷔골을 넣을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하곤 했어요. 그때마다 신인교육 시간에 배운데로 사진기자가 많은 쪽으로 뛰어가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머릿속이 멍해지는 바람에 사진기자 반대편으로 뛰어가고 말았어요(웃음).”

조용태의 골소식은 다소 늦었다. 그러나 기다린 만큼 반가웠고 또 값졌다. 4월2일 ‘상암빅뱅’으로 명명된 서울전에서 조용태는 후반48분 쐐기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전날 차 감독님께서 ‘서울전은 많은 관심을 받는 경기다. 그것을 기회라 생각하고 꼭 골을 넣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정말로 골을 넣을 줄은 몰랐어요. 다 현범이가 패스를 잘 넣어준 덕분이죠. (현범이가)경기 후 씩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전부터 하나 주려고 그랬어’라고요.”

청춘의 끝없는 도전
그러나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박현범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해드릴까요?” 그런데 박현범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 그의 손을 덥썩 잡으며 조용태가 말을 막았다. “현범아, 형은 진짜 기억이 안나.” 다음은 박현범이 밝힌 하소연(?). “많은 사람들이 저희가 대학(연세대)에서 처음 만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유소년상비군 시절 처음 만났어요. 그때 다들 6학년이고 저 혼자만 5학년이라 괴롭히던 형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도 용태 형만은 저를 참 많이 챙겨줬죠. 한번은 공에 맞아 아파서 울고 있는데 형이 저 멀리서 ‘현범아, 괜찮아?’하며 달려오는 거예요. 너무 고마웠죠. ‘슈팅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거야’라던 말도, 같이 목욕탕 가던 것도, 심지어 나란히 누워 자던 일까지 난 다 기억하는데… 문제는 그 모든 것들을 형이 하나도 기억 못한다는 사실이겠죠(웃음).”

그 때의 인연이 연세대를 거쳐 수원까지 이어졌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 역시 그 시간들 속에서 켜켜이 쌓여갔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 앞에는 ‘신인왕 경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대결이 놓여 있다. 그와 관련해 박현범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시즌 초반에는 정말 신인왕을 타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간절한 마음은 없어요. 팀이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에요. 팀이 우승한다면 신인왕은 저희 둘 중 더 공헌도가 큰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겠죠. 제가 못 타도 괜찮아요. 팀만 우승하면 되요.”

조용태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팀 우승이 먼저인 것 같아요. 다행히 느낌이 좋아요. 시즌 초부터 잘될 것만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 왔어요.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다보면 신인왕이라는 좋은 결과도 함께 오겠죠.”

이어 박현범이 덧붙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같은 포지션의 선수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해요. 저와 용태 형이 신인왕 경쟁구도 속에 있다고 서로를 경계할 것만 같지만 일단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은 크게 없어요. 오히려 용태 형이 골을 넣어서 이기면 그게 좋은 거죠. 우리 팀이 이긴 것이니까요.”

두 사람 모두 신인상 수상보단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는 정신력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의 관심과 칭찬에 휩쓸려 초심을 잃을까봐 걱정된다”는 의젓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혹시라도 변했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항상 조심스러워요. 앞으로는 백 마디 말보다 90분 경기를 통해 저희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벼가 되겠다는 이야기다.

청춘(靑春). 빗대 설명하자면 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쯤 되겠다. 이 봄날이 지나면 살로 돋아난 움들은 어느새 선연한 푸른빛으로 영글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자 청춘의 여정이다. 그리고 앞으로 조용태와 박현범이 함께, 또 각자 만들 풍경이기도 하다.

“깜짝 나타났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선수가 아닌, 끝까지 팀과 함께 오래 가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대학 새내기들이 당차고 씩씩하듯 올 시즌 K리그 새내기답게 도전하고 부딪히고 또 덤비고 싶어요. 겁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아요. 깨져도 좋아요. 주위에서 알아주기만을 기다리기보다는 제 실력을 보여줘야하는 것이 먼저니까요. 제가 힘낼 수 있도록 끝까지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세요,” (박현범)




“시즌 시작 전 서포터스 그랑블루와 함께 하는 행사가 있었어요. 그때 그랑블루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날개’라고 답했던 기억이 나요. 높이 날아오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날개는 꼭 필요한 법이죠. 제겐 팬들의 응원이 바로 날개에요. 끝없이 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응원 부탁드려요. 혼자가 아닌 팬들과 함께 날고 싶습니다.” (조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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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8컵대회 포항과의 준결승전이 끝나고 믹스트존에서 만난 배기종은 “오랜만이에요”라는 인사와 함께 웃었다. 사실 배기종과 난 만나면 참 격없는 기자와 선수 사이다. 2년 전, 어리버리했던 기자와 또 역시 갓 프로에 뛰어 들어 어리버리했던 신출내기 선수는 인터뷰를 이유로 처음 만났다. 당시 배기종과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에서 대구까지 내려가는 강행군을 했어야했는데, 내가 식사도 못한 채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알고선 참 많이 미안해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건만 그는 인터뷰 내내 “배 안 고프세요?” “안 피곤하세요?” 그렇게 부러 안부를 묻던, 참 착한 청년이었다. 배기종은.  


2005년 겨울 그를 부르는 프로팀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간신히 대학시절 감독님 소개로 대전시티즌에 입단할 수 있었다. 번외지명, 그러니까 지명 외 선수로 들어간 그에게 매달 쥐어진 돈은 85만원에 불과했다. 그 적은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건만 그는 국민연금까지 낸다며, 국민연금공단 아가씨가 “배기종 선수, 내년에는 연봉 올려서 다른 선수들처럼 연금 많이 내세요”했다며 하하 웃었다. 그만큼 참 심성이 맑은 선수였다.

전반기만 해도 대전시티즌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여타 신인들 사이에서 단연 도드라졌고 신인왕 No.1으로 꼽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스타전 이후로 배기종의 컨디션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다. 골은 침묵하기 시작했고 모 구단과의 사전접촉과 태업파문에 얽히는 것으로 모자라 결국 임의탈퇴까지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잘될 거라고 믿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배기종은 다행히 맞트레이드 형식(황규환 +조재민)으로 수원에 입단하게 되었고 대전과의 개막전에도 인상깊은 모습을 보였다, 쏟아지던 빗속에서 거침없이 골문을 향해 드리블하던 오른쪽 날개 배기종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물론 그 이후 크고 작은 부상들로 인해 1군과 2군을 오갔지만 결국 배기종은 컵대회 결승전에서 보란 듯이 해냈다.

그 멋진 슛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나 결승전 때 꼭 오라고 했나보다. 전반 11분 전남 풀백 유지노를 등진 채 돌며 터뜨린 선제골은 그날의 베스트골로 선정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후반 33분 터진 에두의 결승골도 시작은 특유의 날랜 드리블로 오른쪽 측면을 무너뜨린 배기종의 발끝에서였다.

경기 후 MVP로 선정돼 잔뜩 긴장한 채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모습을 보며, 배기종의 어머니는 얼마나 기뻐하며 눈물을 흘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2년 전 배기종과 처음 만나 인터뷰 했던 그날의 녹취록을 블로그에다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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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드시죠?” “피곤하시겠어요.” “저 때문에 고생하시는 거 아니에요?” 인터뷰 내내 배기종이 제일 많이 했던 말이다. 그렇다. 이제 막 프로무대에 선 그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질문에 답할 때도 한참을 생각한 뒤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요즘이 제일 기쁘고 가장 행복해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는 기뻤던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지금 이렇게 잘되라고 그때 많이 힘들었나봐요.”

살짝 미소 짓는 얼굴에서 숨겨놓았던 슬픔이 묻어났다.

아버지. 이제는 담담하게 부를 수 있는 그 이름, 아버지. 오늘처럼 따뜻했던, 막 열한 살이 됐던 어느 봄날, 아버지는 가족 곁을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와 함께 배기종의 축구인생도 시작됐다. 그런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뒤늦게 야식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어린 기종이 새벽운동을 나갈 때 어머니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깨 위론 긴 밤 고단함을 켜켜이 쌓은 채로.

그때 배기종은 결심했다. 어른이 되야겠다고. 내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어른이 되야겠다고. 그 뒤론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쪼개고 모아 축구화를 샀고, 어머니의 단잠을 위해 오후에는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눈물을 처음 봤던 열여섯 어린 나이에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린 아이. 그때부터 오직 어머니를 위해 공을 찼던 아이, 배기종. 그리고 지금,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빨리 어른이 되길 기도하던 그 아이는 어느덧 대전을 빛내는 별로 자랐다.

배기종, 그는 매일 그라운드 위에서 희망을 쏜다. 그렇다. 그의 발끝에서 터지는 것은 골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희망이다.

-작년 한해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제 축구인생이 그래요. 잘 하다 갑자기 뚝 떨어지고 기복이 심한 편이에요. 대학 1학년 때는 잘했어요. 게임 때마다 좋은 모습 보여줬고 그래서 늘 자신감에 차있었어요. 그런데 4학년 때 동계훈련이 거의 끝날 무렵,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어요. 다행히 11월에 마카오에서 열린 동아시아대회 대표에 뽑혔지만, 1분도 뛰지 못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여 참 많이 속상했어요. 사실 처음 대학에 왔을 때만 해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늘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렇게 되니 제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어요.

당시 드래프트 결과를 전화로 듣고 핸드폰을 껐죠. 혼자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요. 그날 눈도 많이 왔는데. 다음날 코치 선생님께서 “괜찮으니까 다시 잘 하라” 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잡고 고등학교에서 운동하기 시작했어요.

드래프트 당시 어떤 팀에서도 저를 뽑아주지 않았을 때, 주위 많은 사람들은 “걱정하지 마라. 넌 꼭 갈 수 있다” 라고 말해줬어요. 물론 그때마다 ‘이렇게 속이 바싹바싹 타는 기분을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많이 힘들었어요.

-프로진출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던가요.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부터는 ‘축구부 회비’ 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가정형편상 회비를 낼 수가 없었고, 그래서 중학생이 되면서 축구부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때 다행히 중학교 코치 선생님께서 면제를 해주셨고, 그 덕분에 계속 할 수 있었죠. 그때부터 쭉 고 1때까지 면제 받았어요.

중학교 3학년 당시 운동하면서 많이 맞았어요. 어린 마음에 그게 싫어 3학년 초에 친구 한명과 팀을 나왔어요. 나중에 어머니께서 “제발 다시 운동하라” 고 하셨고 코치님께 “용서해주고 다시 받아 달라” 며 우셨어요. 그때 이후로는 한 번도 그만두거나 도망간 적 없어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도 이유 없이 형들에게 맞고 그랬지만 단지 맞는 게 싫다는 이유로 그만두는 것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꾹 참고 계속 운동했죠.

그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후배들과 운동하며 지난 12월 한 달을 보낼 때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제는 후배들에게 희망이자 귀감인 선배가 됐네요.
아직은 아니에요. 이제 겨우 시작인데요. 작년 12월 한 달 동안 고등학교 후배들과 같이 운동하면서 많이 친해졌죠. 그 때문에 나중에 연습생으로 프로에 가고 나서도 후배들이 신경 쓰였던 것이 사실이에요. 지금도 종종 후배들에게 연락이 와요. 용품 달라고 할 때마다 준다고는 하는데 막상 크게 줄 게 없어, 요즘은 그게 참 미안해요.

-축구는 어떻게 해서 시작했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감독님이 절 찾아왔어요. “축구 잘한다고 소문났는데 축구부 들어올 생각 없냐”고 물어보셨죠. 그 시절 제가 본 축구부는 매일 맞고 뛰는 이미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축구부 같은 거 하면 안 되겠다’ 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죠. 그런데 저희 외삼촌이 축구를 정말 좋아하시거든요. 제게 축구 해볼 생각 없냐며 권유하셨고, 마침 그때가 학교에서 축구부원을 뽑는다며 무작위로 아이들을 뽑아 축구부에 넣을 때였거든요. 선생님이 일부러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중에 저도 있었어요. 그렇게 축구부에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축구를 시작하게 됐죠.

-어머니 홀로 힘들게 배기종 선수와 여동생을 키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외삼촌이 하시는 야식집에서 일하세요. 밤새 음식 만드시다 매일 새벽에 들어오는데도 혹 제가 신경이라고 쓸까봐 한 번도 힘든 내색 하지 않았어요. 그 때문에 학교에서 운동하다 무슨 일 때문에 집에 전화하려해도 어머니 주무시는 거 아니까 전화를 못 걸 때도 많았고요.

아버지하고는 연락이 안돼요. 고등학교 때는 몇 번 찾아오셨는데 어느 순간 안 오시면서 연락이 끊어졌어요. ‘프로에 와서 내가 잘 되면 아버지께서 연락하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역시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요. 아버지가 찾아오시면 만날 수야 있겠지만 전처럼 좋아질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 그저 ‘꼭 성공해서 어머니 호강시켜드리자’ 는 생각뿐이에요.

프로 첫 데뷔전을 마치고 MVP를 탔어요. 어머니께 부상으로 받은 100만원 상품권을 드렸죠. 마침 그때가 어머니 생신이었거든요. 특별한 것을 준비 못해 그걸 선물로 드렸는데 어머니께서는 뭘 이런 걸주냐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고 고맙게 받으셨어요.

요즘은 “경건해져라” 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매스컴에서 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것에 자만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하세요. 참, 밥 잘 먹으라는 말씀도 많이 하세요. 밥을 많이 먹어야 힘이 난대요. (웃음)

-어떻게 프로에 적응 중인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서 잘하면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 이라고 충고해주셨어요. 첫 연습게임 때 포워드로 뛰었는데, 지켜보시던 최윤겸 감독님이 안 되겠다며 미드필드로 내려가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미드필더로 뛰게 됐는데, 처음 보는 자리라 힘들었어요. 지금도 힘들지만 그때는 더 힘들었죠.

사실 대학 때는 오는 공만 받고, 만들어주는 것만 해결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패스도 줘야하고 더 많이 움직여야하고, 지금도 그런 게 완전히 익혀지지 않은 상태라 아직은 힘든 게 사실이에요. 솔직히 아직까지 가끔 헤매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잡아주시고 가르쳐주세요. 다들 알고 계시지만 감독님 참 좋으신 분이에요. 보잘 것 없는 상태로 왔는데도 저를 믿어주시고 이렇게 기회까지 주셨어요. 그래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우고 있어요.

참, 데뷔전 때는 체력안배를 잘못해 숨 쉬는 게 힘들었어요. 그때 정말 ‘이래서 프로무대가 높다는 말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적응한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많이 늘었어요. 첫 게임 때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는데, 제가 할 말은 다하더라고요. 저도 놀랐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늘은 것 같아요. 다행이죠(웃음).

-그러고 보니 데뷔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지난 2006년 3월15일 부산전 때 데뷔하며 골까지 기록하셨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경기에 투입돼 뛰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와, 힘든 거예요. 호흡이 내려갈 생각을 안하더라고요.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당황했죠. 골 넣고 나서도 너무 힘들었어요. 형들도 제가 헐떡헐떡 숨 쉬는 것 밖에 안보였대요. (웃음)

그때 데뷔전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날 밤 혼자 누워서 이게 운일까, 실력일까, 생각했어요. 오늘 있던 일이 진짜였을까, 다시 떠올려보기도 했고. 골을 넣었다는 사실에 기뻐 잠이 안온건지 모르겠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날 새벽 2시까지 잠 못 이룬 채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데뷔전 이후 ‘힘들게 프로에 왔지만 열심히 하니까 나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자신감이 많이 생겼죠. 형들이 그래요. “너는 게임이 안 풀리면 무조건 들어간다. 그러니까 항상 들어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몸을 만들어라.” 계속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올해 세운 목표가 있다면요.
처음 프로에 왔을 때 (강)정훈이 형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요. “네가 못해서 연습생으로 들어온 게 아니니까 열심히 해. 열심히 하면 잘될 수밖에 없어.”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물론 프로에서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에요. 다들 경기에 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요. 그 속에서 저 역시 항상 배우는 자세로 꾸준히 노력하고 싶어요. 쉽게 오지 않았잖아요. 어렵게 온 만큼 더 열심히 해서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처음 프로에 왔을 때 세운 다짐들 기억하며 뛰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K리그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언젠가 (이)관우 형이 잡지 인터뷰에서 그랬어요. "오래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겠다" 고.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모두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선수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할 테니 이제 막 시작하는 저에게 많은 관심과 충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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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배기종이 내게 했던 말, 2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말을 마지막으로 긴 글을 마칠까 한다.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세요. 항상 겸손하라고. 이제 막 시작인 아들이 프로무대에서 자칫 흔들릴까봐 걱정되나봐요. 매일 기도하고 있으니까 열심히 하라고만 하세요. 어머니 말씀 새기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해요. 자신감을 갖고 하자. 그리고 처음처럼, 처음 그 마음 잊지 말고 열심히 하자. 아직 부족한 것들, 스스로가 잘 아니까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 신경쓰지 않고 계속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참, 착한 아들 배기종은 컵대회 MVP 소감을 묻자 수요예배 때문에 경기장에 못 나오신 어머니가 제일 많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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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오랜만에 축구협회에 방문했습니다. 협회 자료실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띄였던 것은 엘리베이터 안에 부착돼 있던 포스터였습니다.

7월27일 저녁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 올림픽대표팀이 코트니부아르와 친선경기를 갖는다는 내용의 홍보 포스터였죠. 포스터 안에 새겨진 선수들의 얼굴을 확인하던 순간, 저도 모르게 “이런”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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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명의 예비명단에는 포함됐지만 결국 18명 최종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서동현이 코트니부아르와의 친선경기 홍보 포스터에는 있었습니다. 최종멤버에서 탈락된 선수가 홍보 포스터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씁쓸했습니다. 물론 스스로는 더했겠지만요. 어쨌거나 축구협회에서는 그의 능력을 믿었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당연히 최종멤버에도 합류할테고 코트니부아르전에도 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겠지요.

사실 올 시즌 수원이 정규리그 1위를 달리는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는 서동현의 활약도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 간 차범근 감독은 늘 인터뷰 때마다 확실한 해결사가 없다고 말하곤 했죠. 그런 가운데 시즌을 앞두고 안정환과 나드손을 떠나 보냈지만 ‘괴물 공격수’ 영입은 없었습니다. 외인 공격수 영입 또한 없었습니다. 때문에 시즌 초 수원의 독주체제를 예견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죠.

한데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서동현의 눈부신 ‘변신’이 있었지요. 현재 서동현은 20경기에 출장해 11골을 터뜨리며 팀 내 최다 득점자로 등극했습니다. 에두 역시 11골을 터뜨렸으나 21경기 출장이니, 숫자 상으로도 확실히 서동현이 우위에 있네요. 12경기 중 7경기에 교체로 출전해, 4골을 기록했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행보입니다.

그 덕분에 팀에서는 어엿한 주전으로 발돋움 했고 올림픽대표팀에도 뽑혔습니다. 때문에 베이징행 비행기에 탈 것이라는 꿈도 조만간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협회에서는 그의 얼굴이 박힌 포스터까지 내놓았을 정도였으니 일련의 생각들은 당연했겠죠.

하지만 박성화 감독은 마지막 공격수로 신영록을 택했습니다. 박성화 감독으로서는 모험보단 실리를 택하기로 한 것이죠. 아무래도 서동현은 대표팀 경험이 없다보니 국제대회에서 검증받지 못한 선수입니다. 신영록은 17세 대표팀을 시작으로 19세, 20세 대표팀을 거치는 등 꾸준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입니다. 청소년월드컵만 벌써 3번 참가했을 뿐 아니라 지난 해 캐나다에서 열린 U-20월드컵에서는 팀내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요. 게다 현 올림픽대표팀 대다수 선수들과 함께 2004년과 2005년 아시아선수권과 U-20월드컵에 참가했던 경험까지 있다 보니 여러모로 ‘금상첨화’인 선수일 수밖에 없었겠죠.

그러나 서동현의 탈락은 여전히, 참으로 아쉽기만 합니다. 더욱이 절정의 골 감각을 자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얻은 결과라 그렇습니다. 돌이켜보면 2년 전에도 그는 이번처럼 아깝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었죠. 2년 전 7월 대만과의 2007아시안컵 예선 원정경기를 앞두고 서동현은 ‘1기 베어벡호’ 예비 엔트리 36명 안에 들었지만 결국 경기에 나설 20명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로부터 2달 뒤에는 아시안게임대표팀에 탈락했답니다.

그런 가운데 때 마침 그의 심경을 들을 기회가 있었죠. 9월30일 광주상무와의 홈경기에서였습니다. 당시 서동현은 0-0 상황에서 교체 투입 2분 만에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이 ‘13경기 무패행진’을 이어나갈 수 있게 일조했답니다. 경기 후 인터뷰를 가졌는데, 저는 그에게 대표팀 탈락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의 대답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제 기량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쉬운 점은 크게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해서 베이징올림픽에는 꼭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림픽은 2년이나 남았음에도 그는 올림픽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간절했기에 그렇게나 일찍부터 올림픽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겠지요.

그 2년 간 올림픽 하나만 바라보고 뛰었는데, 팀에서 가장 아름답게 절정으로 빛나던 순간, 결국 태극마크의 부름을 받지 못했네요.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또 2년 전 그날처럼 담담히, 또 힘차게 말하겠지요. 올림픽은 끝났지만 나의 축구는 끝난게 아니라고, 언젠가는 꼭 태극마크를 달겠노라고 말입니다.

그런 서동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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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18경기(15승3무) 무패행진을 이어오던 수원이 FC서울에 0-1로 패하며 시즌 첫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FC서울은 전반에 터진 이승렬의 결승골 덕분에 컵 대회 7경기만에 첫승을 거뒀을 뿐 아니라 수원전 5연패의 사슬까지 함께 끊었죠. 지난 경기에서 귀네슈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 출전정지를 받은 까닭에 벤치를 지키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선수들에게는 '힘'으로 작용, 마지막까지 수원에 1골로 허락하지 않는 뒷심을 발휘하게 만들었지요.

아무래도 라이벌로 비교되는 FC서울에게 당한 패배였기에 더 속상했나봅니다. 종료 직전 이정수 선수는 이대로 패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온 몸을 아래로 떨군 채 있더군요. 그런가하면 경기 내내 FC서울의 골문을 노렸지만 마지막 방점을 찍지 못했던 수원의 젊은 공격수 서동현과 신영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라커룸으로 들어갔습니다. 김대의 선수는 기자들 앞에서 열심히 목소리 높여 경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모습에서 아쉬움이 읽혀졌습니다. 통곡의 벽 마토를 비롯해 곽희주, 양상민 등 수비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이탈하는 바람에 왼쪽 풀백으로 나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던 김대의로서는 그럴 수밖에요.

수원 선수들의 슈팅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지독히도 운이 따라주지 않더군요. 또 무엇보다 FC서울의 두 선수, 수문장 김호준과 센터백 김진규이 너무 잘했습니다. 그들의 몸을 날리는 선방이 있었기에 FC서울은 실점하지 않았죠. 경기 후 만난 김호준 선수는 “너무 기분 좋아요. 오늘 최고에요”라고 말하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더군요.


FC서울 주전 이청용 선수는 “그동안 킥으로 시작되는 공격에서 주로 당했는데 오늘은 그 부분을 보안했습니다. 덕분에 경기력에서 밀리지 않았고 볼 점유율면에서도 저희가 더 높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수원이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었기에 우리가 이를 끊고 꼭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 컸고 때문에 다른 경기보다 더 많이 집중했습니다”라고 덧붙였죠.



참, 오늘은 후반전에 통증을 호소하며 풀썩풀썩 쓰러지는 선수들이 다른 때부터 많았답니다. 덕분에 추가시간이 무려 '7분'이나 주어졌죠. 지금껏 제가 본 수많은 경기들 중에서 가잔 길었던 추가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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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4월20일 수원월드컵경기장. 에두-신영록 투톱에 울산은 박병규-박동혁-서덕규 스리백으로 맞섰다. 그러나 박병규가 부상에서 완벽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 경기 전날 박병규는(지난 겨울 박병규는 발목 부상으로 동계훈련에 참여하지 못했다.) 슈팅을 때릴 때 통증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 때문일까. 울산 스리백은 계속해서 뒷공간을 내줬고 그때마다 오른쪽 윙백 김영삼이 수비진영까지 내려와 커버플레이해줬고 골로 연결될 뻔한 위험한 상황을 2번이나 온몸으로 막아내줬다. 중간에 중거리슛 욕심도 냈지만 그의 진가가 드러났던 경기.

후반25분 페널티에어리어 바깥 오른쪽 지역에서 송종국이 띄어준 볼을 신영록은 골에어리어 중앙에서 붕 뜨며 머리를 갖다대며 골로 성공시켰다. 문제는 신영록을 마크했던 수비수가 없었다는 것. 연속골을 기록하며 '영록바'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신영록을 왜 울산 선수들은 그냥 두었을까? 후반 48분에는 에두의 결승 쐐기골이 터졌다. 울산 수비진의 집중력 부족으로밖에 설명되지 않을 상황.

물론 울산에게는 어려운 경기일 수밖에 없었다. 염기훈이 부상으로 교체아웃됐고(믹스트존에서 만난 김정남 감독은 피로골절이 의심된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역시나 진단결과는 피로골절. 염기훈은 현재 수술차 일본에 건너간 상태. 지난해 아시안컵 때 피로골절로 이미 일본에서 수술한 바있다.) 우성용 역시 경기 종료 후 제대로 걷지 못해 트레이너에게 업힌 채 버스에 올라탔다. 뉴페이스 유호준은 경험이 부족한 모습을 수차례 보여줬고 전반23분 염기훈 대신 투입된 이진호는 부진한 모습으로 후반 17분 김동석과 교체아웃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이날 가장 열심히 뛴 선수는 바로 이상호. 미드필드 진영까지 내려오며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골을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새롭게 이적한 김동석은 아직 팀에 녹아내리지 못한 듯했고 이상돈은 대기명단에만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경기를 마감했다. 형제가 함께 뛰는 모습을 기대했기에 조금은 아쉽기도. 새로 영입한 용병 페레이라는 좀더 지켜봐야겠다. 그러나 최근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여느 울산 용병들과 차별성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다는 것. 아직까지는. 마지막으로 이세환. 대학시절 활약을 생각해본다면 컵대회에서는 유호준 대신 수비형MF로 출장해도 괜찮지 않을까.



전날 내겐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그곳에서 까페라떼를 사줬기에 너무나 좋아하는 크리스피도넛을 사주기로 했으나 늦잠을 자고 말아 ㅠㅠ 결국 못샀다는. 다음엔 꼭 약속 지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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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손대호 선수 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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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선수(가운데)와 페레이라 선수(오른쪽). 왼쪽에 서 있는 선수는 누구일까?


오른쪽 발목에 아이싱을 하고 나타난 오장은 선수.
경기 끝나면 늘 얼음찜질을 한다며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수원 연승의 저력을 조직력에서 보고 있던 송종국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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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발견한 피. ㅠㅠ 어느 선수가 흘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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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신인왕 후보 중 한명인 박현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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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수원삼성의 질주가 무섭습니다. 지난 주말 수원은 서동현, 박현범의 연속골로 제주를 2-1로 제압했습니다. 이로써 8연승(컵대회 포함) 및 10경기 연속 무패(9승1무)로 새롭게 기록을 갱신했죠. 그간 K리그 최다 연승기록은 2002년 성남이 세운 9연승입니다. 수원이 이 기록을 깰 수 있을지도 자뭇 궁금합니다.



전문가들은 수원의 이같은 연승행진 비결을 '안정된 포백(송종국-곽희주-마토-이정수)'과 '신인(조용태, 박현범) 및 준신인(서동현,신영록)의 활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장을 찾은 저는 또바른 비결로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꼽고 싶군요. 차범근 감독도 이를 인지했는지 경기 후 갖은 인터뷰에서 "오늘 우리가 이길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원삼성을 향한 수원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동영상으로나마 전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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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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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삼성 차범근 감독님은?
2002아시안게임 당시 마산에서 경기가 열렸어요. 지인들과 경기를 본 뒤 야간버스를 타고 올라오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게 됐어요. 버스에 불이 켜지는 순간 차범근 감독님이 같은 버스에 타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차 감독님께서 축구보고 이제 올라가냐며 대단하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요. 감독님은 정말 축구 밖에 모르세요. 또 수원 선수들을 마치 아들 두리처럼 아끼세요. 그런데도 사람들은‘질 때마다 선수 탓만 한다’고 많이들 그러죠. 저는 그게 스타일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유럽 생활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요? 한번은 “호진이가 저렇게 실수할 애가 아닌데…”라고 하신 말씀이 그만 박호진을 탓하는 기사로 나간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사실 감독님 마음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2006년 하반기에 다친 이운재 대신 박호진이 경기에 나섰을 때 감독님은 마치 아이처럼 좋아하며 박호진을 칭찬했어요. 아무래도 그런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신명주/수원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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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현대 최강희 감독님은?

전 신문사에서 미술기자로 근무 중입니다. 최강희 감독님 캐리커처를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는데 감독님께서 그걸 보신 뒤 그림 그린 사람을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죠. 한번은 감독님께서 팬들과 만남의 자리를 주최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광범위하게 팬들과 소통한 감독이 얼마나 될까요? 그것이야말로 최 감독님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진이/전북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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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상무 이강조 감독님은?
이강조 감독님은 겉으로는 참 무뚝뚝해 보여요. 서포터스와 교류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티 안 나게 뒤에서 선수들을 챙겨주시는 속정 깊은 감독님이세요. 또 아시다시피 선수 육성 능력도 뛰어나시죠. 그간 소속팀에서 기량을 제대로 선보이지 못한 많은 선수들이 상무입단 후 기회를 잡고 주전으로 성장했잖아요. (김수현/ 광주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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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티즌 최윤겸 前 감독님은?
2006년 4월1일 경남전. 대전 선수들이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으로 경기장에 나타났습니다. 감독님과 코치님 사이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언론에서 연일 시끄럽게 떠들 때였죠. 그러나 그보다 더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따로 있었어요. 그날따라 경기 후 가진 감독 인터뷰가 길어졌고 그 때문에 경기장 조명도 어느새 하나 둘씩 꺼지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나 수십 명의 대전 팬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경기장을 나서는 최윤겸 감독님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죠. 인터뷰가 끝나자 감독님은 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한명 한명에게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라며 고개 숙여 인사하셨어요. 감독님의 진심이 느껴지던 그 인사를 지금도 잊지 못해요.

최윤겸 감독님은 대전 자체를 바꾼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대전은 지금보다 선수 진(이관우, 김은중, 김성근 등)이 더 좋았는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매년 꼴찌를 달리며 “선수가 없다”, “돈이 없다” 등의 핑계를 댔어요. 그러나 최 감독이 오신 뒤론 팀 컬러가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후반전에 먼저 골을 먹으면 경기 자체를 포기했어요. 그런데 최 감독님 부임 후에는 무슨 마법을 부리셨는지 선수단에 만연했던 패배주의가 사라졌습니다. 그 당시 대전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은 최 감독님 팬이었어요. 홈 승률도 높았고요. 그런데 5년 후 사람들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줬는지조차 잊어버리더군요.

감독님은 대전을 떠나던 그날까지 후원업체들을 찾아다니며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가셨어요. 대전을 후원하는 기업이 등을 돌려버리면 키우려고 데려온 선수들이 공을 못 찰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지난해 데닐손 슈바 브라질리아를 데리고 와 성장시킨 분은 김호 감독님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김호 감독이 대전을 6강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절반 이상의 몫은 최 감독님이 하셨어요. 물론 폭력이란 건 정말 나쁜 거잖아요. 그 때문에 실망한 팬들도 많았겠지만 저 같은 마음을 가진 팬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축구계로 다시 돌아오시면 멋있게 대전을 한번 꺾어주길 바라고 있어요. 그만한 능력을 지닌 감독이란 걸 꼭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민숙/ 대전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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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내겐 기쁨과 감동으로 점철됐던 시간.
20071014 @퍼플아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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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