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일화와의 시즌 개막전을 시작으로 4라운드 포항전까지, 4경기 동안 강원FC가 거둔 성적은 1무 3패. 지난해 이맘 때 쯤 거둔, 참으로 찬란했던 성적 2승 1무와는 사뭇 대조되는 행보였다. 추가시간까지 계속되던 끈끈한 압박,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어지던 공격의 간결함, 투터치 안에 패스를 전개하면서도 볼을 내주지 않던 정확성 등을 볼 수 없다며 강원FC만의 특유의 색을 잃어버렸다는 혹평도 들어야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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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지난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래도 강릉에 닥친 때 아닌 폭설로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한 날들의 영향이 컸다고 말하고 싶다. 잔디가 깔린 훈련장이 아닌 체육관에서 운동을 해야했으니 제대로 된 미니패스 훈련, 전술훈련, 세트피스 훈련 등을 할리가 만무했다. 맞춤형 훈련 대신 기본적인 체력훈련만 하다 경기를 치렀으니 어려움이 컸을 수밖에.
그런 가운데 한번은 최순호 감독님과 점심을 먹기 위해 한정식당을 찾은 적이 있었다. 주문을 받기 위해 종업원이 왔는데, 감독님 얼굴을 알아보더니만 “아이고, 감독님. 경기결과가 좋지 못하니 얼굴이 안되보이시네요”하더라. 당시 감독님은 “사람들은 보는 대로 느끼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대로 보는 것 같구나”라고 말씀하시며 멀리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셨다.
한데 잠시 후 그 종업원이 물을 가져다주며 감독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
“감독님, 계획하신 것이 있다고 하셨죠? 저희는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게 벌써 2주 전의 일인데, 감독님은 요즘도 그날 이야기를 꺼내곤 하신다. 그렇게 말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고. 더 말씀은 안하셨지만 그 말이 감독님에게는 많은 힘이 된 듯 했다.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5-2로 이긴 후에도 종종 그날 그 종업원이 했던 말을 꺼내곤 하시니까.
믿고 기다리기. 사랑하는 연인사이에서도 지키기 힘든 게 바로 믿고 기다리기 아니던가. 분명 계단을 올라간다고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고 때론 두세계단 내려가는 듯할 때, 팬들은 실망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한다. 하지만 팀과 선수는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언젠가는 이 계단을 다 밟고 올라가 정상에 서겠습니다,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팬들은, 결국엔 기약 없는 기다림 때문에 지치고 만다. 그래서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팀에 바라고, 감독에 요청하고, 선수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수원삼성의 신인 오재석 선수의 미니홈피에서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보면서도 배울수 있는 것은 많다, 로 시작되는 글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우턴하여
부드럽게 살포시 러블리함을 가미해서
기다림의 미학 이라고 표현한다.
어, 왜 우리 학교다닐 때 급식있지않습니까 급식.
배식순서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롱(Long) 줄. 그 사이에 낑겨
앞사람들 좀 빨리빨리 움직여서 퍼고 빨리 좀 갔으면 싶고
내 차례는 언제오려나하며 배식구 쪽 만을 향하는 초조한 시선.
덩치 큰 녀석이라도 앞쪽에서 버티는 날엔
나를 포함한 뒷사람들의 머리속엔
새우튀김은 저 위치에서 거덜이구나. 다신 볼수없겠다.
A급 반찬들의 운명을 저 자의 다 손에 맡겨야하는구나.
이러한 걱정들을 하곤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뭐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합니다만,
오늘은 김치 대신에 오이소박이가 나오는 납득 안되는 경우.
설마 밥과 함께 필수식단인 국에 말도안되게, 어처구니없이
오이냉국이 출격하는 이런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깟댐 상황
식사전에 오이와 눈을 맞추어 입맛이 떨어질수있는 위험이있는
만리장성과 함께 아시아의 2대 미스테리 상황같은.
허나.
이 초조한 마음들은 놀랍게도
내가 식판과 수저를 잡고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사라집니다.
초조했던 심박도는 정상을 되찾고, 뒤에서 기다릴땐
남들은 제발 좀 빨리 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사람이 됩니다.
기쁨의 아드레날린은 상승하여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과감히, 식판을 오버시켜가며
탕수육소스가 옆에 김치에 흘러들어가도 괜찮고,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으니까 같은 식의
긍정의 힘을 그 누구보다 긍정히 실천하고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리틀 조엘 오스틴이 되곤해요.
놓여진 음식들을 보며 배분율에 대해 분석에 들어가고
남겨져서 날 기다려준 새우튀김을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와 함께
앞에 지나간 뚱띠가 새우알러지가 있었음을 느낄수있는
통찰력과 예지력까지 얻을수있어요.
혹은 이미 밥 푸기 바빠서 뚱띠는 머리속에 안중에도 없거나.
축구도 그렇습니다.
선수마다 때가 있는 겁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나 초조하죠.
줄이 롱(Long) 줄 이니까요
허나 때는 분명히 옵니다.
다만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어지기때문에
막연하게 기다리면 막연하게 시간만 가기때문에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앞서의 새우튀김은 그라운드입니다.
기다림의 이유이자 기대하는 곳이죠.
그라운드에 내가 없다면 조금 실망할수도있지만
남들보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축구에선 선발선수 명단에 들기 위한 노력과 준비.
학교에선 종치면 문열고 달릴 준비를 아주 착실히 한다면
다음번엔 경기장에서 내 이름이 전광판에 떠있고 콜이 울리며
식당에선 가장 먼저나 선두권에서 Door OPEN을 기다릴수있죠
운이 좋으면 막 튀겨낸 뜨끈뜨끈 쌔삥새우를 먹을수있고요
쌔삥새우는 골이라고 치고싶네요.
배가 부른 사람은 느긋하다 늦기 쉽상입니다.
입장이 바뀐상황을 위기라고 표현할수있죠.
먼저 가는 듯 싶지만 새치기를 당할수도있고,
잘 나가는듯 싶지만 부상을 당해 잃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지금 이시기를 위한 급식 조기교육속에 자란 덕에
깨우친게 많아서 처음에 늦은 것 같다고 초조해하지않습니다.
전 룰을 잘 지키며 살지만 어려서도 지금도 단체로 밥먹으면
은근슬쩍 새치기도 악의없이 센스있게 잘합니다.
물론 새치기가 목표가 아니고 실력을 쌓아서 정상에 서고싶고
지금은 마음이야 굴뚝같고 준비되어있는데요
역시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해서 때를 기다리는 입장입니다.
키도 부족하고요. 많이라고 하지말아주세요
성장이 멈춘것같거든요. 희망이 없어서 말이죠.
키는 멈춘것같지만
선수로서의 성장은 이제 갓 14살입니다.
연골이 성장판이 쭉쭉 열릴때라서 많이 성장하고 싶습니다.
시즌은 길고 선수도 많지만 때는 옵니다.
뜻이 있는 곳에 있다는 그 길을 넓은 시야로 잘찾아보겠습니다
요즘 제 미니홈피 재미없다 그래서
몇자는 아니고 몇만자 적날하게 적어봤습니다.
여러분 황사랩니다. 삼겹살 사드세요.
[스티커 붙이시면 딸 낳으면 얼굴 드록바]
아 골 넣으라고 부탁하는 주위 분들.
1년에 1골 넣는 것도 어색하도록 10년간 수비수만 봐왔습니다.
전 수비수라 막는거부터 집중해야되니
지금은 좀 곤란한거같구요
다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요.
메시 동영상 열심히 보고있으니.
뛰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그런가 보구나, 하는 생각에 한참동안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줬으면 좋겠다고 한참동안 생각했었다. 비록 타팀이지만 오재석 선수의 글을 읽으면서 말이다.
지난해 인천전이 끝나고 왜 아직도 김영후 선수는 골을 터뜨리지 못합니까, 라고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을 때 최순호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때론 그 선수를 향한 관심을 조금만 줄이는 것도 선수를 위해선 좋은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김영후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터뜨렸다. 프로 데뷔골을 멀티골로 마감하며 괴물 공격수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K-리그에 널리 알렸다.
올 시즌 왜 아직도 김영후 선수는 시즌 첫 골을 신고하지 못합니까, 라고 사람들이 물었을 때에도 최순호 감독은 그런 김영후를 따로 불러 느긋하게 생각하라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김영후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올 시즌 K-리그 국내 선수 중 최초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또 다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왜 아직도 강원FC는 졸전만 거듭하며 1승을 거두지 못하는 거지요?, 라고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질 때에도 최순호 감독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우리는 계획한데로 가고 있습니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강원FC는 전남을 5-2로 누르며 K-리그 베스트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당장 날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추락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것. 어쩌면 더 높기 날기 위해 잠시 깃을 가다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는 쓰라리고 괴로운 법이다. 하지만 오늘의 패배가 영원한, 그리고 인생의 전부를 지배할 패배는 아니지 않던가. 중요한 건 왜 졌는지 알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고 보완하며 노력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믿고 기다리련다. 강원FC는 슬픔과 괴로움보다 기쁨과 웃음, 그리고 희망을 더 많이 줬던, 하나 뿐인 나의 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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