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연을 만났습니다. 2년만의 만남이었어요. 2008년 8년 U-17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을 때 주장 완장을 차고 있던 꼬마 아가씨는 2년 만에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을 넘어 세계 여자축구계를 지배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앳된 느낌은 이제 없더군요. 그녀의 플레이가 성장한 것처럼 말이에요.



지소연은 2년 전 우리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 기억나요, 라며 라커룸으로 들어가는데 굉장히 밝아보였고 또 또랑또랑한 느낌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2년 전만에도 제가 던진 질문에 잘 대답하지 못하던 수줍던 소녀는 이제 없더라고요. 언론과의 인터뷰가 많았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저를 대하는 태도도 한결 자연스러워졌더군요. 부쩍 성장한 지소연의 모습에 제가 조금 압도되기도 했습니다.

통일대기 전국여자종별축구대회 결승전이 열린 강릉종합경기장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폭우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상당히 많은 비가 내렸고 선수들이 뛰기에는 열악한 날씨였습니다. 유니폼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유니폼은 비를 다 머금었고 꽤 무거웠습니다. 잔디는 미끄러웠고 몸은 무거웠고 비가 세차게 뿌려 시야는 좋지 않았고요.



그렇지만 지소연은 후반 23분과 36분에 연속골을 터뜨려 4-1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소속팀 한양여대에 우승트로피를 안겨주었죠. 악천후의 날씨 속에서도 단 한 번의 찬스를 놓지 않던 센스와 결정력.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날씨 속에서는 트래핑도 어렵고 볼이 예상을 빗나가며 튀기기 때문에 키핑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키더군요. 기본기가 너무나 좋았고 집중력도 뛰어났습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지소연은 반짝반짝 빛나더군요. 무엇보다 빗속에서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와준 몇 안 되는 관중들을 위한 세레모니도 빛났어요. 비로 젖은 잔디위로 미끄러지며 슬라이딩 세레모니를 보여주더니 관중석을 향해 박수를 치더군요. 학원축구에서는 보기 드문, 팬과 함께 하는 그녀의 세레모니에 이 선수, 참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감탄사를 연신 내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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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달 독일에서 U-20여자월드컵에서 여자청소년대표팀은 3위에 오르며 남녀 축구를 통들어 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중에서 팀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지소연은 FIFA 주관대회에서 첫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고 6경기 8골을 터뜨리며 실버부트와 실버볼을 동시에 차지했습니다.

남자축구 같은 지원도 대우도 받지 못하여 운동선수로서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은 처우가 좋은 여자배구나 여자농구를 선택하고 있을 때, 그래도 축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공을 차던 몇 안되는 소녀들은 눈물 나는 결과를 이뤄냈습니다.


헝그리정신이니, 투혼이니, 그런 말들을 쓰고 싶지 않지만 작금의 여자축구 환경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소연을 더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소연이 때아닌 안티팬들의 공격을 받고 있네요.

한 언론사에서 청와대를 방문하기로 돼 있지 않냐고 질문을 던졌는데, 지소연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될 것 같다.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대통령에게 '셀카(셀프 카메라)' 찍자고 해볼 생각이다(웃음).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대통령께는 여자축구에 많은 관심 가져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축구팀 창단을 늘려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앞으로 후배들은 우리와 선배들이 겪었던 열악한 환경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셀카는, 20살 어린 소녀의 순수한 답변이었습니다. 일반 사람 뿐 아니라 운동 선수들에게도 청와대는 쉽게 방문할 수 없는 곳이고, 특히나 운동 선수들에게 청와대는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안고 돌아왔을 때 갈 수 있는 특별한 곳입니다. 가슴이 설레는 건 당연할 거고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것 역시 자연스러운 감정이겠죠. 엄마로서 자식에게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상도 받고 국민들의 사랑도 받고 대통령도 이렇게 만났다며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겠죠.

중요한 건 그 마음 멘트였습니다.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은 서두에 꺼내면서 말문을 연 것이고 지소연이 진실로 하고 싶었던 말은 여자축구의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팀 창단도 늘리고 인적, 환경적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너무나 안타까운 건 지소연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묻히고 단지 대통령과 셀카를 찍고 싶다는 발언에만 일부 누리꾼들이 집중하고 악플을 단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는데, 운동만 하고 지내 사회를 잘 모르는 순수한 축구소녀가 대통령과 사진 찍고 싶다는 발언으로 악플에 시달린다는 건,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이제 막 대중에 이름을 알렸고, 대중의 사랑에 기뻐하며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연 지소연이 이번 일로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자신의 기사가 포털사이트에 매일 같이 개재되는 일도 없었기에 기사도 읽고 그 밑에 달린 댓글도 읽어볼텐데 그러다 육두문자가 섞인 욕들을 발견한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까요?

축구를 할 때면 강심장으로 바뀐다는 지소연이지만, 악플은 주먹보다 더 아프고 큰 상처를 남깁니다. 이보다 더 힘든 일에도 묵묵히 공을 찼다고 하지만 이번 악플 사건은 꽤나 아프게 다가올 것입니다.

몇몇 누리꾼들은 노트북 갖고 싶다는 발언도 ‘공짜’를 위해서 일부러 한 게 아니냐는 말도 서슴치 않게 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런데, 전 정말 인터넷같은 데 그 내용이 나가게 될 줄 몰랐어요. 그냥 예전부터 해외에 나갈 때 노트북 필요했고, 운동 때문에도 여러번 필요성을 느꼈거든요. 그동안 친구들한테 빌려쓰면서 미안했는데, 이제 제 것이 생겨서 기뻐요. 아직 컴퓨터를 몇 개 받았는지는 몰라요. 여러 개 받게 되면 제 동생하고, 팀 동생들한테도 줄래요.”

이 내용이 기사로 전해져 실제로 선물로 들어올 예상조차 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에 필요한 걸 이야기했을 뿐인데 이것이 이제는 악플로 되돌아오고 있네요.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읽지 못하는 우리야말로 악인이 아닐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5월이었나.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입고 공항을 지나가는데 어떤 분이 '붉은악마'냐고 물으셨어요. 12년이나 축구를 했는데, 여자축구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그래서 여자 축구 발전을 위해 이를 악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아니요. 대회 중엔 (맥주) 절대 안되죠. 콜라조차 안되요. 첫 경기 해트트릭 때는 그렇게 중요한 경기에서 제가 골을 많이 넣고 이겼다는 게 기뻤고요, 한국인 최초로 FIFA 대회에서 해트트릭 했다는 게 영광스러웠어요. 솔직히 저는 우리가 결승에 갈 줄 알았거든요. 우승할 줄 알았는데 독일에 너무 크게 져서 좀 속상했어요. 우리가 국내에서 대회 치를 때는 관중이 없는데, 그 날은 2만명도 넘는 관중이 야유를 막 해대니까 당황하고 긴장했어요. 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절대 당황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많이 배웠죠."

"남자대표팀이 파주에 들어오면 여자대표팀은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훈련 중 파주에서 잠시 인근 호텔로 옮겼어요. 당연히 기분이 좋진 않죠. 우리 여자팀도 똑같은 대표팀이니까요. 이해해야 하지만 왜 그럴까 하는 불만은 있어요. 그런데 지금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남자 대표팀과 여자 대표팀은 규모 자체가 다르니까요."

남자대표팀이 트레이닝센터에 들어오면 숙소를 옮겨야하고,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붉은악마로 착각하고, 늘 관중 없이 뛰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만원관중의 야유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잘했다며 소녀들의 선전에 박수보냈지만 지금의 성과를 이루기까지 어떤 환경 속에서 뛰었는지는 모릅니다. 관심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독일 가기 전에는 월드컵을 하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는데 돌아오니 우리한테 관심이 많이 쏠려서 깜짝 놀랐어요. 돌아오자마자 인천공항에 기자분들이 정말 많이 오셔서 놀랐죠.”

지소연은 지금의 관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한순간에 썰물처럼 사라질까봐 두렵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여타 비인기종목들이 그간 좋은 성과를 안고 돌아와도 다 한때일 뿐 다시 그림자 생활을 하는 것처럼 여자축구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허리가 아픈 엄마를 위해 찜질방 딸린 집을 사드리고 싶고, 노트북 선물이 들어오면 동생과 후배 선수들에게 주겠다며 자신의 욕심보다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뛰는 지소연의 순수한 마음을요.

그러니 이 어린 소녀가 상처 대신 희망과 용기를 안고 그라운드에서 뛰어다닐 수 있도록 악플 대신 격려를 보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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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U-20여자월드컵에서 3위에 오르며, 여자청소년대표팀은 남녀 축구를 통틀어 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초청 K-리그 올스타전이 이런저런 잡음들로 시끄러웠고 그 때문에 다수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기도 했으나 U-20여자대표팀의 금위환향을 넘어갈 수는 없겠죠.

최인철 감독이 이끈 U-20여자대표팀은 조별예선에서 스위스(4-0)와 가나(4-2)를 대파하고 조 2위로 8강에 진출해 멕시코(3-1)를 꺾고 준결승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고지 하나만 넘으면 결승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지만 개최국 독일에 1-5로 패하며 4강진출에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3-4위전에서 콜롬비아(1-0)를 꺾으며 언니, 오빠 선수들이 해내지 못했던 3위에 오르며 또 하나의 축구역사를 쓰고 돌아왔습니다.
단체스포츠인만큼 모두가 합심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는, 이제는 지메시로 불리는 지소연입니다. 지소연은 8골(스위스전 3골, 가나전 2골, 멕시코전 1골, 독일전 1골, 콜롬비아전 1골)을 기록하며 6경기 8골로 실버부트와 실버볼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알렉산드라 포프가 10골로 득점왕에 올랐는데, 2골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지소연은 어른답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말했죠.

그렇게 당차고 어른스럽게 말하던 지소연도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결국은 눈물을 흘리고 말더군요.

“지금까지 고생 많았는데… 엄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사랑해요.”라고 지소연은 울먹이며 말하다 끝내 눈물을 쏟았습니다.

알다시피 지소연의 어머니는 지소연이 6학년이었을 때 이혼 뒤 봉제공장을 다니며 지소연을 뒷바라지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궁암 판정을 받아 병마와 싸우면서도 힘들게 축구선수 지소연을 길렀습니다. 그러나 암 수술 후에는 허리 디스크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고 기초생활수급자 급여 30만원 외에는 딱히 수입원이 없습니다. 지소연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받는 상금과 대표 소집 때마다 받는 훈련 일당이 유일한 수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축구화가 떨어져도 수십만원 하는 축구화를 살 형편이 되지 못해 더 이상 킥을 하지 못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신어야만 했습니다. 남동생이 MP3를 덜컥 사가지고 왔을 때는 우리 형편에 이런 고가의 물건을 사도 되냐고 나무랄 정도로 엄마를 생각하고 일찍 어른이 돼야 했습니다.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찜질방이 있는 집을 사주겠다는 꿈을 꾸며 공을 찼던 소녀 지소연. 지소연의 눈물이 더욱 특별했던 까닭은 가족을 위한 꿈이 느껴졌기 때문이고 이것은 비단 지소연만 흘린 눈물은 아니겠지요.

이번 U-20여자월드컵에서 아름다운 결실을 맺은 여자대표팀 선수 뿐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보지 못한 이 땅의 여자 축구선수들이라면 한번쯤 흘렸을 눈물이었기에 저는 그녀의 눈물이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됐을 때, 남자들이나 하는 운동을 왜하냐며 반대와 핀잔 속에서 뛰어야했겠죠. 생리통 때문에 배가 아파도 그라운드에 나서야했고 아무리 선크림을 발라도 자꾸만 까매지는 피부 때문에 고민도 많았겠죠. 20살이면 화장도 하고 싶고 치마도 입고 싶은 나이지만 햇볕에 그을려 상한 피부는 파운데이션을 거부했을테고 물집이 잡힌 발 또한 하이힐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겠죠.

많은 여자축구 선수들은 가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좋은 선수가 돼 가계에 보탬이 되는 딸이 되겠다며, 혼자가 아닌 가족을 생각하며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축구를 위한 인프라는 지극히 열악합니다. 이렇듯 안팎으로 열악한 형편 속에서도 그녀들은 남자축구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소박한 소망을 밝힙니다. 그저 여자축구가 지금처럼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요.

독일과의 준결승전. 머리 하나가 더 있던, 게르만족의 피를 받아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던 독일 여자 선수들과 부딪힐 때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나뒹굴어도, 그래서 5골이나 먹혔지만 소녀들은 당황하는 대신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다시 뛰고 골문을 향한 슈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경기를 봤던 사람이라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지소연의 눈물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간 여자선수들이 겪었을 아픔과 고뇌, 그리고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줬기에 말입니다.

그러니 소녀들이여, 이제는 울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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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6년 10월에는 마산에서 열린 피스퀸컵 브라질전. 15세 8개월만에 A매치에 데뷔한 그녀 때문에 한국 축구 최연소 A매치 기록이 깨졌습니다. 그녀는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지소연. 종전 기록은 16세 6개월에 A매치에 출전했던 박은선이 세웠죠.

한국여자축구 사상 최초로 AFC 올해의 선수상 후보에 오른 것은 박은선(2004년). 후에 지소연이 그 뒤를 이어졌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은 박은선 뿐이었습니다.

4강에 오른 U-20여자축구대표팀의 선전에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있을 때, 박은선이 소속팀 서울시청을 무단으로 이탈한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서호정 서울시청 감독의 말에 따르면 박은선이 전반기를 마치고 준 휴가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20일에 돌아오지 않았고 아직도 연락이 없다고 하네요.
박은선은 지난 5월 AFC 여자 아시안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선발됐으나 훈련을 소화할 정도로 체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라 중도에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A매치가 2005년 8월16일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였으니 햇수로만 벌써 6년째. 여자대표팀에서 박은선의 모습을 보지 못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2004아시아여자청소년선수권에서 결승전 해트트릭을 포함, 8골을 터뜨리며 득점상과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여자축구의 ‘New hope’으로 떠올랐지만 그 이후의 나날들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와중에도 박은선은 2005동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가을에는 ‘FIFA 올해의 선수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녀의 이탈은 이번이 처음만은 아니죠. 2006년 5월26일 아시아여자선수권을 앞두고 소집된 국가대표 훈련 도중 합숙소를 2차례나 무단이탈하기도 했죠.

뿐 아닙니다. 박은선은 2005동아시아선수권을 앞둔 합숙훈련 당시에도 대표팀 이탈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표팀 내부적으로 ‘박은선이 우리 팀에 정말 필요한 선수인가?’에 대한 투표가 진행됐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숨어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의견이 ‘필요하다’였기에 그녀는 다시 대표팀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찜찜한 기운은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에는 사정이 달랐다. 여자대표팀을 맡고 있던 안종관 감독은 “나로선 할 만큼 다 해봤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월드컵 본선 티켓이 걸린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2차례나 숙소를 무단이탈한 박은선을 더 이상 봐줄 수 없었다는 뜻이었습니다.

2007년 1월에는 소속팀 서울시청이 중국으로 동계훈련을 떠나기 이틀 전 “축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쪽지를 남긴 뒤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했고요. 그즈음 박은선 아버지와 구단 사이에서 연봉문제로 갈등이 있었는데 그것이 원인이 된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만이 난무했습니다. 6개월간 소식이 끊어졌고 늦여름, 잠적했던 박은선이 돌아왔습니다.

1년여의 공백이 있었지만 박은선은 8월과 9월 여왕기종별대회와 추계여자축구연맹전에 연속으로 득점왕에 오르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서울시청 서정호 감독은 “지도자 입장에서 돌출행위가 못마땅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포용하고 안고 가야한다”라며 “(박)은선이가 이렇게 되기까지엔 나 뿐 아니라 부모, 관계자들 등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뼈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 박은선이 이제는 오롯이 축구에만 전념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녀의 방황은 계속 되고 있네요. 이제는 철이 들 때도 되지 않았냐고 누군가는 그러지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던 청소년기부터 사람들은 남자같은 선수가 등장했다며 그녀의 성정체성을 희화화하기도 했고, 선수가 아닌 득점 괴물 정도 쯤으로만 생각했습니다.

20대가 돼서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 즈음으로 자신을 생각하여 정체성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래서 그녀의 방황이 저는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는 축구선수로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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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최인철 감독이 이끄는 U-20여자축구대표팀이 4강에 올랐습니다. 드디어 오늘 밤 여자축구계의 강호라 할 수 있는 독일을 상대로 결승행 티켓을 놓고 다툽니다. 만약 한국이 독일을 꺾는다면 남녀 축구사 들어 최초로 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 결승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사실 U-20여자축구대표팀의 선전은 이미 2년 전에 예견됐습니다. 메시를 떠올리게 하는 판타지스타 지소연은 이미 2년 전, U-17여자월드컵에서부터 빛났죠. 당시 U-17여자대표팀은 대회 8강에 오르며 눈부시게 빛났는데, 그때 선수들이 이번 U-20여자대표팀의 주축으로 잘 성장해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년 전인 2008년 7월 파주트레이닝센터를 방문했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때라 파주NFC는 늘 시끄러웠죠. 올림픽대표팀 선수들과 취재기자들로 붐볐거든요. 한데 그날따라 파주가 꽤 조용했습니다. 올림픽대표팀 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K-리그 소속 선수들이 주말경기 출전을 위해 잠시 클럽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적막함을 깬 건 멀리서 들려오던 기합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발걸음을 돌려 도착한 청운구장에는 파주NFC에서 종종 마주쳤던 앳된 얼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여름강화훈련 중이던 U-17여자대표팀 선수들이 있었던 거죠.

그제야 U-17여자대표팀 선수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고, 명색히 축구기자라는 사람이 또다른 대표선수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게 내심 미안했습니다. 벌써 10일째 파주NFC에 있었지만 올림픽대표팀과 같은 시기에 훈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있었거든요. 그것은 그만큼 언론의 관심이 오로지 올림픽대표팀을 향해 있다는 방증이었는데, 지소연에게 슬쩍 다가가 물어봤습니다. 혹 섭섭하진 않냐고요.

박희영(좌) 지소연(중) 이현영(우)

“괜찮아요. 저희는 잘하고 있으니까요. 10월에 열린 U-17여자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 거둘 거라고 믿어요.” 

당시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말했던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이번 대회가 낳은 스타 지소연 선수입니다. U-17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던 지소연 선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축구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열심히만 할 생각이에요”라며 무척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자축구계가 밝지만은 않지만 그때는 정말 암흑기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참 힘들었습니다. 2008베이징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 청소년대표 김지수 선수 사망, 최추경 前대교 감독 사망 등 우울한 소식들만 이어졌기 때문이죠.

그런 가운데 여자축구계에 희망을 불어넣은 소녀들이 바로 당시 U-17대표팀이고 이제는 현 U-20대표팀이라고 할 수 있죠.

이번 U-20대표팀은 여자축구계의 ‘황금세대’로 불립니다. 타 종목에서 축구로 전향한 선수들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축구만 했기 때문에 일단 기본기가 탄탄한 될성 부른 떡잎들입니다. 그 인재들을, 다행히 협회에서도 나이대별 대표팀을 운영하는 등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소연 선수가 U-17여자대표팀에 있었을 당시, 어린 소녀선수들은 그간 대표팀 언니들이 누리지 못했던 혜택 속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죠.

U-17여자월드컵을 1년 앞둔 2007년 11월에는 U-17여자월드컵 개최지인 뉴질랜드로 3주간 전지훈련을 다녀왔으며 이듬해 8월에는 덴마크와 독일에서 유럽전지훈련도 치렀습니다. 특히나 축구협회와 여자축구연맹, 각급 대표팀 및 일선 학교 지도자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조 또한 큰 역할을 했죠.

학교들은 최대한 선수차출에 협조하며 ‘대표 선수 만들기’에 온 힘을 쏟았으며, 협회 및 대표팀 지도자들은 지소연 여민지 등의 스타급 선수들이 U-17대표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U-19대표팀과 성인대표팀 차출을 자제시키는 등 ‘지극정성’을 쏟았습니다.

뭐 그렇다고 하지만 남자대표팀이 받는 혜택이나 대우를 비교한다면 조족지혈이겠지만요. 그래서 더 대견스럽고 혹 지더라도 정말 최고였다는 말을 수천번 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원더걸스요? 대중음악계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번 U-20여자월드컵에서 소녀들이 보여준 실력과 투혼을 본다면, 그녀들이 진짜 원더걸스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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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믹스트존에서 박지성은 날래다. 다른 선수들 틈에서 슬쩍 묻혀 가는데 그때마다 난 참 애탄 목소리로 그를 부르곤 했다. 한데 그냥 부르면 안된다. 진짜 애탄 목소리로 손까지 휘휘 저으며 이리로 오라고 해야한다. 예전엔 그냥 지나갔고 그런 그를 몇번 놓치곤 했다.

그 와중 나름 생긴 노하우라는게, 난 정말 당신과의 인터뷰가 필요해요, 라는 애절한 표정으로 오른팔로 아주 큰 동선을 그리며 그를 부르는 거다. 그게 통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르면 박지성은 오곤 했다. 고맙게도.


박지성을 처음 만난게 딱 9년 전 여름이었다. 2000년 8월의 어느 날 타워호텔. 당시 허정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운영하던 웹진 허스풋볼에 들어갈 선수 인터뷰 취재 차 호텔이 방문해 올림픽대표팀 선수 전원의 멘트를 땄었다. 그때 박지성도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호텔 로비에서 꽤 오랜 시간 서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당시 박지성은 두서없이 긴 이야기를 죽 늘어놨었다. 지금은 그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가 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무척이나 열심히 말해줬었다, 는 생각만 아련히, 또 어렴풋이 날 뿐이다.

그리고 기자 경력이 일년 이년 쌓여 이제는 웬만한 축구선수 인터뷰가 쉬워지기 시작했을 때, 그와는 반대로 박지성은 참으로 인터뷰 하기 어려운 선수가 됐었다. 그러던 중 한가지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국가대표를 꿈꾸며 공을 차던 그 시절, 박지성이 가장 즐겨보던 잡지가 다름 아닌 베스트일레븐이었다는 이야기를 지인을 통해 듣게 되었다. 정기구독까지 하며 매달 닳을 때까지 읽었을 정도였단다. 한데 더 재미났던 것은 말미였다. 올림픽대표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도 정기구독을 끊지 않았는데, 이제는 브로마이드로 내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로마이드 주인공이 되지 않아 은근 섭섭해했더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꼭 석달 뒤인 2008년 6월. 6월호 표지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지성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2010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파주NFC에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모여 훈련을 시작하게 됐는데, 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베스트일레븐 6월호를 들고 파주로 달려갔다. 훈련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선수들 틈에 있던 박지성을 불렀다. "박지성 선수!!!!" 역시나 다급한 내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려주시고. 난 긴장된 목소리로 "저희 잡지에 표지로 나오셨어요.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아주 멋지게 잡지를 내밀었다. 한데, 박지성 표정이 좀 이상하다. "네. 감사합니다"하며 받긴 받았는데 표정이...역시 이상하다.

돌아서면서 선배에게 "박지성 선수 표정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라고 묻자 선배 내게 말씀하시길. "이눔아. 표지가 나오게 줘야지, 축구공 광고가 실린 뒷면을 주면 어떡하냐." 뿔싸.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난 뒷면을 주면서 표지 운운하고 있었다. 그렇다. 박지성은 내겐 너무 어려운 선수였다. 때문에 그런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된 것이고. 그렇게 여느 선수와 다르게 날 긴장시키는 그런 어려운 선수. 그가 바로 박지성이었다.

보통 선수들은 자주 만나는 기자들에게는 눈인사나 농담을 하며 친분을 드러내곤 한다. 그럴 때면 기자 대 선수로 만나지만 어느 정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다는 느낌 때문에 편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는데 박지성은 유독 달랐다. 항상 정도의 대답만 할 뿐이고 때문에 기자 대 선수로 만났다는 인상을 깊이 받았다. 그 벽을 뛰어 넘기란... 역시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게 바로 프로 아니겠는가.

한데 MBC 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에서 만난 박지성은 경기장에서, 또는 믹스트존에서 만난 박지성과 달랐다. 언젠가 한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랬지. "인터뷰 때문에 박지성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와하하, 하며 누군가 크게 웃는 소리가 나더라고. 그게 누구였는지 알아? 박지성이었어. 정말 호탕하게 웃더라고." 그 얘기를 듣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우습게도 아, 박지성도 그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 였었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리 웃을 줄 알텐데도 박지성이? 하며 신기하게 생각하던 나라니. 참 우습지 않은가.

축구오락을 즐겨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제로 자신을 주인공 삼아 플레이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박지성!"을 외치며 골이 들어갔다며 입으로 중계하며 오락을 즐길 줄 또한 몰랐다. 20살 이후로 일본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까지, 줄곧 해외에서 뛰며 모든 일을 스스로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자신의 세탁물까지 직접 찾아 갈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린시절부터 국가대표를 꿈꾸며 열심히 축구일지를 작성하던 꿈많은 축구선수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모두가 존경하는 위치에 오른 지금까지 "여전히 축구를 잘하고 싶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 쓴 개구리즙을 먹으며, 결국엔 역겨워 게워낸 적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싫다는 소리 없이 마셨을 줄은, 역시 몰랐다.

올림픽대표팀에서도 히딩크 감독 밑에서 2002월드컵을 준비하던 대표팀 그 시절에도, "대표팀 퇴출명단 1호"에 꼽혔지만 그런 언론의 쓴소리와 잣대와 상관없이 "누구도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웠기에 상관하지 않았다"며 담대하게 생각하며 운동했을 줄은 몰랐다. 맨유 시절 미국까지 날아서 무릎 수술을 받고 모두가 예전과 같은 기량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음에도, 맨유 주치의들과 재활 트레이너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하게 재활에 매달렸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당시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며 덤덤히 말하는 사람일 줄도 몰랐다.

언젠가 화제가 됐던, 상처투성이의 그의 발. 그의 축구인생이 모두 담겨있는 소중한 그것.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그리고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던 장면은 박지성의 부모님이 흘린 눈물이었다. 2002월드컵 최종 엔트리 명단 발표를 앞두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언론에서는 탈락 선수들을 꼽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1순위로 뽑힌 선수는 다름 아닌 박지성이었다고. 그의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하며 채 말을 잇지 못하다 결국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160cm를 갓 넘은 키 작은 아들을 위해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돌아다니며 뱀과 개구릴 잡아 먹이던, 그래도 모자라 고기라도 많이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정육점 가게를 냈던, 맨유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을 때 무조건 가자며 결단력을 보여줬던 그의 아버지. 늘 기자들에게 웃으면서 인사하던 푸근하던 박지성의 아버지는 이제 7년도 더 된 옛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자에게는 박지성 퇴출 1순위라는 문장이, 수많은 기사 속에서 큰 의미 없는 한 줄의 문장에 불과했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에서는 오랫동안 깊은, 그리고 숨은 상처로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지켜 보던 내 마음 역시 아팠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마음 아팠던 건 박지성의 어머니가 눈물 흘리며 하던 말씀이었다. 남들은 화려하다 생각하며 부러워할지 모르겠지만 운동만 하며 살았던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어머니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 나이 또래면 누구나 다 할 것들을 하지 못하고 살아서, 추억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마음 아프다며 눈물 쏟던 모정을 지켜보며... 어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박지성의, 그러니까 맨유라는 최고의 팀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는 그 겉에만 너무 치중하며 바라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년 여름 월드컵 예선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박지성을 만났을 때, 한결 여유로워진 그의 모습에 기자들끼리 농담식으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박지성에게 여자친구라도 생긴 게 아닐까? 여전과 다른 여유로운 표정과 말투에서, 사랑 혹은 연애라도 하게 돼 사람이 달라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기자들 사이에서 오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최근에 느껴진 박지성의 여유란, 치열한 프로의 세계에서 다져진 가운데서 얻은 '성장'에서 나온게 아닐까, 였다. 

그렇다. 박지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뿌리를 뻗은 나무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가지들을 잘라 후배들을 위한 축구센터까지 준비 중인 기특한 청년이기까지 했다. 

아인트호벤에 적을 뒀던 시절, 무릎 부상으로 원하던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자 홈 팬들에게까지 야유를 받던 그때, 박지성은 공이 자신에게 오는 것이 두럽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축구를 하는게 즐겁다며 더 잘하고 싶다며 웃었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그가 흘린 눈물과 땀과 시련과 고난, 그리고 노력들을 미처 다 헤아리지는 못하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다만 이렇게 존경의 박수를 보낼 뿐이다.

기자였을 땐 미처 몰랐던 박지성을 만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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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오랜만에 만난 하대성은 부쩍 키가 자라 있었다. 경험은, 확실히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가장 큰 원동력인 듯했다. 울산에 몸담았던 2005년, 2경기 출장이 프로경력의 전부였던 그의 이름을 외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나 2006년 대구 이적 이후 매년 20경기 이상을 소화했고 이제는 어엿한 팀 내 구심점으로 거듭난 상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다시 만난 하대성은 태극마크 아래 서 있다. 생애 첫 국가대표 발탁. 늦가을 하대성에게 전해진 희소식이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자리에 들어선 하대성과 만난 순간 수원과의 시즌 21라운드 홈경기에서 터뜨린, 그림 같던 시저스킥이 생각났다. 공중에서 하대성의 두 발이 교차하던 찰나 대퇴근은 잘게 쪼개지며 드러났고, 그렇게 빠르고 강한 슈팅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K리그 전문 프로그램이 조사한, 팬들이 뽑은 해당 라운드 베스트골로 선정될 만큼 참으로 멋진 골이었다.

한데 당사자인 하대성은 칭찬이 머쓱해질 정도로 덤덤한 반응이다. 골은 넣었지만 경기력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더구나 팀은 1-2로 패했기에 큰 의미는 두지 않는다면서.

“전반 초반부터 몸이 무거웠어요. 팀을 위해서라면 교체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도 변병주 감독님께선 끝까지 저를 믿고 기용해주셨죠. 덕분에 그런 골도 넣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경기 중 교체아웃 됐다면 정신적으로 무너졌을지 몰라요. (전임)박종환 감독님이 계실 적엔 자주 그랬거든요. 전반만 뛰고 라커룸에 들어갈 때면 이렇게 뛸 바엔 차라리 안 뛴 게 나았다며, 제 자신에게 실망했다며 자책을 많이 했었죠.”

사람은 믿는 만큼 자라기 마련인데 하대성의 경우가 꼭 그랬다.

“언젠가 변병주 감독님께서 ‘네가 마음먹고 뛴다면 어떤 선수도 절대 따라 잡지 못할 거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보다 더 힘이 되는 게 또 있을까요. 제겐 보약 같은 말씀이었죠.”

사실 하대성을 향한 변병주 감독의 믿음은 시즌 전부터 유달랐다. 변 감독은 시즌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올 시즌엔 하대성을 주목하라. 분명 뭔가 해낼 것”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만큼 하대성을 향한 감독의 기대는 컸고 그 역시 이를 모르진 않았다.

“물론 처음엔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에요. 아무래도 책임감이 크게 다가오니까요. 그렇지만 이제는 팀에서 제가 갖고 있는 비중이 커졌기에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고 생각해요. 대전전(6월28일 1-1무) 때 발목 부상을 입고 2경기를 쉬어야만 했어요. 당시 감독님께서 인터뷰 도중 ‘우리 팀은 하대성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경기력의 차이가 크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를 좋게 봐주시는 마음에 감사드려요. 하지만 거기에 고무돼 안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중원에서 더욱 무게감 있는 플레이를 펼치고 싶거든요. 감독님 말씀대로 존재감 있는 선수가 되기 위해서라도요.”

그의 이름을 한자로 쓰면 大成. ‘큰 대’자에 ‘이룰 성’자로, 풀어 설명하자면 ‘크게 이루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름처럼 살기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하대성이라면 어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교시절 부상으로 2년 간 운동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잊혀진 유망주는, 결국 보란 듯이 일어서 대표팀까지 입성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헤어지기 전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손끝에서 여운이 참 깊고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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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4년 전, 그러니까 2004년 9월 중순의 어느 날쯤 됐겠다. K리그 경기가 없던 주말, 잠시 시간을 내 서울에 올라온 김정우를 만났다. 인터뷰를 위한 자리였다. 익숙한 곳이 편하다 하여 고대 앞 노천카페에 만났는데, 삽시간에 웅성웅성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2004아테네올림픽 조별예선 멕시코전에서 터진 김정우의 중거리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하기야 첫 승을 안겨준 골이었으니 더욱 잊을 수 없었겠다. 덕분에 길고 빠른 동선을 그리며 멕시코 네트를 흔들었던 김정우의 슈팅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 강렬했던 결승골로 2004아테네올림픽 8강신화를 쏘아올린 김정우가 다시금 신화재현에 나선다고 한다. 이번엔 2008베이징올림픽이다.

선택받은 남자
“와일드카드로 뽑힐 거라는 확신은 없었습니다. 다만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가능하겠다는 믿음만 있었을 뿐이죠. 리그 경기에서 열심히 뛰었던 게 박성화 감독님께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지난 4월3일 박성화 감독은 48명의 올림픽대표팀 예비명단을 대한체육회에 제출했다. 물론 당시만 해도 김정우의 와일드카드 발탁을 예상한 이는 적었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0순위였던 박지성이 무릎이상과 팀 일정을 이유로 빠지게 되며 ‘와일드카드 시나리오’에 전면적인 개편이 가해졌다. 박성화 감독은 일단 2장의 카드를 공격수와 수비수 보강에 쓰기로 했다. 대표팀 내 왼발잡이가 드물었기에 염기훈(후에 부상으로 제외)과 김동진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남은 1장의 카드를 놓고 자연스레 김두현과 김정우가 경합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물론 선발 전까지 김두현이 한발 앞선 모양새였다. 2010월드컵 3차예선 투르크메니스탄과의 2차전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성화 감독이 선택한 마지막 카드는 다름 아닌 김정우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가 (김)두현이보다 아주 조금 나은 부분이 있다면 ‘수비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프로입단 후 수비형MF로 보직을 변경했고 덕분에 수비력 하나만은 제대로 기를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이번 올림픽에서 이탈리아나 카메룬 같은 강팀들과 한 조에 묶였잖아요. 그런 팀들을 이기기 위해선 중원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해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박성화 감독님께선 그 역할을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잠깐, 여기서 퀴즈 하나. 이번 유로2008에서 스페인에겐 있었지만 이탈리아에겐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 명장? 용병술? 우승컵? 여러 답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정답은 바로 세나 같은 ‘살림꾼’ 미드필더의 유무다. 우승과 조별예선 탈락의 갈림길은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 실상 이탈리아가 조별예선에서 네덜란드에게 0-3으로 대패했던 요인 중 하나도 바로 미드필드 자원의 몰락 아니었던가. 그만큼 현재 축구에서 허리싸움은 중요하다. 김정우 카드에선 바로 그와 관련한 박성화 감독의 고심이 느껴진다. 게다 김정우는 수비 뿐 아니라 공격까지 두루 아우를 수 있는 ‘멀티력’까지 갖췄으니, 아무리 봐도 또 뒤집어봐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카드다.

소리 없이, 그러나 강하게
지난 5월28일 2010월드컵 3차예선 4연전을 앞두고 대표팀 미디어데이 행사가 메이필드 호텔에서 열렸다. 당시 기자들은 돌아다니며 앉아 있던 선수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졌는데, 유독 휑한 테이블이 있었다. 바로 김정우가 있던 자리였다. 애석하게도 2007아시안컵 이후 대표팀에 1년 만에 발탁된 그에게 관심을 쏟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그는 행사가 끝나기 전 조용히 자리를 뜨고 말았다.

“괜찮아요. 수비형MF가 공격수처럼 튀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비록 눈에 띄진 않지만 소리 없이 강한 자리죠. 제가 해야할 일은 공격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춰주고 수비 시엔 적극적으로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는 것뿐이에요. 조용히 제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센스 하나만은 타고 났다”며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김정우 아니던가. 일찍이 그를 지도했던 임종헌 코치(부평고 시절) 조민국 감독(고려대 시절) 등은 “패싱력 수비력 슈팅력 3박자를 고루 갖춘 미드필더”라며 입을 모아 칭찬한 바 있다. 게다 올 시즌 벌써 15경기 3골4도움을 기록하며 소속팀 성남에선 김두현의 공백을 말끔히 메우고 있다는 호평까지 받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것들은 와일드카드 김정우를 향한 기대가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더 부담이 돼요. ‘와일드카드로 뽑힌 만큼 도움이 돼야 할텐데...’하는 걱정도 들고요. 처음 합류했을 때, 제가 나이가 제일 많을 뿐 아니라 올림픽에 한번 참가했던 경험도 있다 보니 앞장 서서 이끌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결국 그런 것들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요즘은 ‘나서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다 같이 잘해보자’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돼요. 덕분에 이런 저런 압박들에게서 자유로워졌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것 같아요.”

듣던 중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경쟁에서 오는 부담은 없는 것일까. 최근 백지훈과 오장은이 부상에서 회복하며 중원 경쟁에 새롭게 가세했고 때문에 김정우 스스로도 이제는 선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꼭 중앙만 치열하나요. 어느 자리든 뛸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다들 경쟁하죠. 치열하지 않은 곳은 없어요. 그렇지만 전 피하지 않고 즐기겠습니다. 후배들과의 경쟁은 적절한 자극이에요.” 김정우는 활짝 웃으며 현답을 내놓았다.

성공한 와일드카드가 되겠다
참 많이 변했다. 김정우와의 인터뷰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확실히, 김정우는 변해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수줍게 대답하던, ‘얼굴 빨개지던 아이’ 김정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동안 와일드카드로 뽑힌 선수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또 다시 실패로 거론되는 그런 와일드카드로 기억되고 싶지 않습니다.” 김정우의 재발견이라고 불러도 될까. 목표가 또렷한 만큼 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모두 강했다. 그날, 김정우는 분명 그랬다.

“2004아테네올림픽 당시 말리전이 생각나요. 후반 10분까지 0-3으로 지고 있었죠. 그러나 저희에겐 메달을 따겠다는 강한 목표가 있었어요. 그 덕분에 3-3으로 따라붙으며 8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었죠. 목표가 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의지까지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덧붙여 김정우는 “2번 째 주어진 기회를 쉽게 놓치고 싶지도, 또 그 앞에서 무너지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4년 전보다 올림픽 메달을 향한 염원이 더 커졌다는 이야기다.

“이번 올림픽을 살펴보면 호나우딩요 리켈메 등 와일드카드로 참가하는 선수들의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 때문에 메달을 향한 도전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무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성화 감독님께서도 “무모한 도전은 아니다. 단지 힘든 도전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죠. 이변은 늘 있는 법이잖아요. 저희가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마지막 순간 웃으며 돌아오겠다던, 와일드카드 김정우와의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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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27일 코트디부아르전 도중 상대 수비수와 충돌, 교체아웃된 김승용 선수의 최종진단이 나왔습니다. 오른쪽 7∼8번 갈비뼈 사이의 연골이 골절됐다는군요.

박성화 감독은 대체선수로 교체하는 대신 '집중치료'를 통해 김승용 선수를 올림픽 본선무대에 데리고 가겠다고 밝혔습니다.



4-4-2포메이션을 쓰고 있는 현 올림픽대표팀에서 왼쪽 윙 미드로 뛰고 있는 김승용 선수는 '주전'이자 전력의 '핵'이었습니다. 최전방 투톱인 박주영-이근호 선수와는 일찍이 고교시절부터 호흡을 맞췄죠. 이근호 선수와는 부평고 시절 동기로 당시 전국대회 3관왕에 오르며 '부평고 돌풍' 주역으로 빛난바 있습니다. 박주영 선수와는 2004년 U-19대표팀에서 함께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하며 아시아청소년대회 우승컵을 거머줬고 이듬해 U-20월드컵에서도 발을 맞췄습니다. 게다 이들의 호흡은 소속팀 FC서울에서도 계속 됐죠. 이처럼 올림픽대표팀 선수들과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함께 뛰었던 김승용 선수의 부상은 많은 우려를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일단, 올림픽이 얼마남지 않는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력'입니다. 우리보다 전력이 한 수 위인 팀을 상대로 할 때, 승산은 '약속된 플레이가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느냐'에 있습니다. 때문에 김승용 선수처럼 부상으로 인해 전력 이탈 상황이 발생할 시에는 제대로 된 조직력을 갖추기가 힘들어지죠. 결국 '전력강화'에서 시나브로 '전력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승용 선수가 시합을 앞두고 기적적으로 완쾌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지만 이또한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므로 걱정은 여전히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김승용 선수 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 역시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몸입니다. 훈련 도중 발생하는 크고 작은 태클 등으로 인한 부상 위험은 언제고 있습니다. 올림픽대표팀 코칭 스태프들 역시 갑작스런 부상으로 인한 전력누수를 심히 걱정하는 눈치입니다. 오늘도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중 김진규 선수가 넘어진 뒤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들 걱정스런 시선으로 그를 지켜봤는데, 다행히 가벼운 타박상이더군요. 덕분에 모두들 한숨을 휴, 내쉬었죠.



현재 올림픽대표팀 선수들의 몸놀림은 가볍고 경쾌합니다. 파주NFC에서 훈련이 계속될 수록 점점 올림픽대표팀 특유의 색깔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베이징올림픽 공인구에도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축구계에서는 "가장 몸상태가 좋을 때 조심해야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부상은 바로 한껏 올라올대로 올라온 컨디션에 고무돼, 마음을 푹 놓고 있을 때 갑자기 찾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잘 차려진 밥상 앞에서 이제 한 숟가락만 뜨면 될 상황입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부상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탈락하게 된다면 그것은 스스로 뿐 아니라 올림픽대표팀 전체에게도 손해이자 슬픔입니다. 따라서 우리 선수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부상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베이징올림픽 메달을 향한 장도에 올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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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코트니부아르와의 친선경기가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 전반 40분 정성룡이 찬 롱 킥이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에 떨어져 한 차례 튀더니 그대로 골키퍼를 머리 위를 지나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그마치 85m나 되는 행운의 선제골이자 대표팀 사상 첫 GK골이었다. 동료 선수들이 달려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해주는데도 정성룡은 겸연쩍은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지극지 정성룡스러워 지켜보던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정성룡은 참 무던한 사람이다. 쉬이 기뻐하지도, 또 슬퍼하지도 않는다. 감정의 기복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경기 중에 수비수들을 향해 시종일관 지시를 내리지만 보통의 골키퍼들이 보여주는, ‘화’나 ‘성질을 좀체 제어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다. 끊임없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 치지만 그의 얼굴에선 감정을 읽을 수 없다. 그만큼 포커 페이스다. 정성룡은.

언젠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다 굴곡 많은 삶에 이미 길들여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었다. 아마 그도 알 것이다. 살아온 날들 가운데 쉬운 길이란 결코 없었다는 사실 말이다.

“고등학교 마치고 포항에 왔을 때만해도 2군에서 게임 뛰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김)병지 형이랑 (조)준호 형도 있었고, 저까지 합해 골키퍼가 5명이나 있었거든요. 전 그저 형들 게임하는 거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사실 그가 인내할 수 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가 원래는 스위퍼였는데 중2 때부터 골키퍼로 뛰었거든요. 그때가 마침 1998프랑스월드컵 기간이었는데, 네덜란드전에서 보여줬던 (김)병지 형 모습에 반했어요. 우리나라가 5-0으로 졌지만 형의 움직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때부터 좋아하게 됐어요. 그 후 제주도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제주도에서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가 열렸어요. 그때 볼보이한다고 골키퍼 뒤에 있었는데 그 골키퍼가 병지 형이었어요. 평소 존경하던 선수가 바로 제 옆에서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다고 다짐했죠. 열심히 해서 꼭 형처럼 국가대표 골키퍼가 되겠다고 제 자신과 약속했어요. 처음 포항에 왔을 때, 형이랑 같은 팀에서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그게 더 운동에만 전념하게 된 계기가 됐고요.”

그리고 포항에 입단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때, 2004아테네올림픽대표팀 예비멤버로 발탁됐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신은 가혹히도 그에게 잠시 쉬라 말하였다.

“소집 첫날이었어요. 연습 도중 다이빙까지는 좋았는데요. 그때 바닥에 깔린 잔디가 안 밀리는 잔디였던 거예요. 그 바람에 접질렸죠. 결국 어깨탈골로 수술까지 했고요. 다시 운동하기까지 4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정말 많이 속상했죠.”

“혼자서 눈물을 삼키진 않았나요? 그랬을 것만 같아요”라고 묻자 잠시 침묵하던 정성룡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래는 많았어요. 음… 많았는데…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그날 다 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눈물이 안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서귀포고등학교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어요. 저 혼자 제주도로 갔어요. 부모님은 분당에 계셨고요. 그런데 제주도 간지 얼마 안돼서, 그러니까 막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께서 저희 집에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따라 갔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하시더니 저를 장례식장으로 데려가시더라고요. 음… 원래 몸이 안 좋으셨는데… 갑작스럽게… 그렇게 떠나셨어요. 그날 병원 뒷길에서 엉엉 울었어요. 한참 울다 이제 내가 가장이니까 강해져야겠다. 성공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프로 갈 때만해도 계약금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계약금 받은 걸로 어머니께 집도 사드리고, 빚도 갚았어요. 음… 그렇지만 그걸로 효도했다 생각하진 않아요.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죄송한 마음뿐이거든요. 늘 제 뒷바라지만 하셨어요. 그런데도 전 항상 제 생각만 했고요. 용돈 달라고 떼도 많이 쓰고.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는 참 강한 분이세요.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렇겠지만요.”

어머니와 축구만 생각했다. 그라운드에 우뚝설 날만 기다리며 기도했다. 그리고 2007년 5월22일 경남전, 그의 오랜 기도는 끝났다, 정성룡은 프로 입단 3년 만에 무실점이라는 깔끔한 기록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항상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기회는 오니까. 그런데 자주 오지 않는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매일 준비하며 기다렸어요. 기분이요? 그냥 덤덤했어요. 아직 더 많이 경험을 쌓아야 하잖아요. 좋아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반가운 소식은 연이어 배달됐다. 그해 여름 정성룡은 베어백 호 1기에 발탁됐고, 도하 아시안게임 최종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오가며 두집 살림 중이다. 그렇게 어느새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열심히 했어요. 경기 내용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 경기만 생각할 순 없잖아요. 이제 또 다음을 준비해야하죠.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뭔가 대단한 멘트를 기다렸지만 역시나 정성룡은 담담히 다음을 준비하겠다고 말한다. 참 여전하고 늘 변함없다.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 골문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참으로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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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오랜만에 축구협회에 방문했습니다. 협회 자료실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띄였던 것은 엘리베이터 안에 부착돼 있던 포스터였습니다.

7월27일 저녁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 올림픽대표팀이 코트니부아르와 친선경기를 갖는다는 내용의 홍보 포스터였죠. 포스터 안에 새겨진 선수들의 얼굴을 확인하던 순간, 저도 모르게 “이런”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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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명의 예비명단에는 포함됐지만 결국 18명 최종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서동현이 코트니부아르와의 친선경기 홍보 포스터에는 있었습니다. 최종멤버에서 탈락된 선수가 홍보 포스터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씁쓸했습니다. 물론 스스로는 더했겠지만요. 어쨌거나 축구협회에서는 그의 능력을 믿었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당연히 최종멤버에도 합류할테고 코트니부아르전에도 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겠지요.

사실 올 시즌 수원이 정규리그 1위를 달리는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는 서동현의 활약도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 간 차범근 감독은 늘 인터뷰 때마다 확실한 해결사가 없다고 말하곤 했죠. 그런 가운데 시즌을 앞두고 안정환과 나드손을 떠나 보냈지만 ‘괴물 공격수’ 영입은 없었습니다. 외인 공격수 영입 또한 없었습니다. 때문에 시즌 초 수원의 독주체제를 예견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죠.

한데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서동현의 눈부신 ‘변신’이 있었지요. 현재 서동현은 20경기에 출장해 11골을 터뜨리며 팀 내 최다 득점자로 등극했습니다. 에두 역시 11골을 터뜨렸으나 21경기 출장이니, 숫자 상으로도 확실히 서동현이 우위에 있네요. 12경기 중 7경기에 교체로 출전해, 4골을 기록했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행보입니다.

그 덕분에 팀에서는 어엿한 주전으로 발돋움 했고 올림픽대표팀에도 뽑혔습니다. 때문에 베이징행 비행기에 탈 것이라는 꿈도 조만간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협회에서는 그의 얼굴이 박힌 포스터까지 내놓았을 정도였으니 일련의 생각들은 당연했겠죠.

하지만 박성화 감독은 마지막 공격수로 신영록을 택했습니다. 박성화 감독으로서는 모험보단 실리를 택하기로 한 것이죠. 아무래도 서동현은 대표팀 경험이 없다보니 국제대회에서 검증받지 못한 선수입니다. 신영록은 17세 대표팀을 시작으로 19세, 20세 대표팀을 거치는 등 꾸준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입니다. 청소년월드컵만 벌써 3번 참가했을 뿐 아니라 지난 해 캐나다에서 열린 U-20월드컵에서는 팀내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요. 게다 현 올림픽대표팀 대다수 선수들과 함께 2004년과 2005년 아시아선수권과 U-20월드컵에 참가했던 경험까지 있다 보니 여러모로 ‘금상첨화’인 선수일 수밖에 없었겠죠.

그러나 서동현의 탈락은 여전히, 참으로 아쉽기만 합니다. 더욱이 절정의 골 감각을 자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얻은 결과라 그렇습니다. 돌이켜보면 2년 전에도 그는 이번처럼 아깝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었죠. 2년 전 7월 대만과의 2007아시안컵 예선 원정경기를 앞두고 서동현은 ‘1기 베어벡호’ 예비 엔트리 36명 안에 들었지만 결국 경기에 나설 20명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로부터 2달 뒤에는 아시안게임대표팀에 탈락했답니다.

그런 가운데 때 마침 그의 심경을 들을 기회가 있었죠. 9월30일 광주상무와의 홈경기에서였습니다. 당시 서동현은 0-0 상황에서 교체 투입 2분 만에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이 ‘13경기 무패행진’을 이어나갈 수 있게 일조했답니다. 경기 후 인터뷰를 가졌는데, 저는 그에게 대표팀 탈락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의 대답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제 기량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쉬운 점은 크게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해서 베이징올림픽에는 꼭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림픽은 2년이나 남았음에도 그는 올림픽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간절했기에 그렇게나 일찍부터 올림픽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겠지요.

그 2년 간 올림픽 하나만 바라보고 뛰었는데, 팀에서 가장 아름답게 절정으로 빛나던 순간, 결국 태극마크의 부름을 받지 못했네요.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또 2년 전 그날처럼 담담히, 또 힘차게 말하겠지요. 올림픽은 끝났지만 나의 축구는 끝난게 아니라고, 언젠가는 꼭 태극마크를 달겠노라고 말입니다.

그런 서동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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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골을 터뜨린 라돈치치의 ‘원맨쇼’로 인천Utd.가 온두라스 올림픽대표팀에게 2-1로 승리했습니다. 온드라스와의 친선경기는 한국 올림픽대표팀에게 아주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온드라스는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과 조에 묶여 있습니다. 때문에 이날 경기는 전력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죠.



인천Utd.는 3-4-3 전형으로 나섰습니다. 라돈치치를 중심으로 방승환과 보로코과 날개공격수로 뒤를 받쳤습니다. 스피드가 좋은 전재호(왼쪽)와 파워 넘치는 이준영(오른쪽)은 윙미드로 중앙에는 박창현과 주장 노종건이 나왔고요, 안현식-안재준-김영빈 젊은 수비수들이 플랫3를 구성했습니다.

온드라스는 4-4-2 전형으로 맞섰습니다. 사무엘 카바예로(Samuel Caballero)와 퀴아롤 아르주(Quiarol Arzu)가 플랫4 수비를 이끌었습니다. 양 풀백으로는 에릭 노랄레스(Erick Norales)와 다비드 몰리나(David Molina)가 나섰죠. 중앙 미드필더로는 마빈 산체스(Marvin Sanchez) 조지 카를로스(Jorge Claros)가, 윙 미드로는 에밀 마르티네스(Emil Martinez) 리조베르토 파딜라(Rigoberto Padilla)가 선발됐습니다. 최전방은 라몬 누네즈(Ramon Nunez) 카를로스 파본(Carlos Pavon)이 맡았죠.

10번 누네즈와 8번 파딜라는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며 전방과 중원에서 쉬지 않고 스위칭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때문에 경기 초반에는 이들이 위치한 오른쪽 측면에서 모든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와일드 카드 중 하나인 7번 마르티네스의 키핑력과 개인기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기로 인천 선수들을 따돌리며 끝까지 볼을 살리는데 왜 그가 와일드 카드로 선발될 수밖에 없는지, 십분 이해가 가더군요. 마치 온드라스의 ‘다비드 실바’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4번 카바예로는 지난 4월 포항 홈에서 열린 장춘야타이와의 AFC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경기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는 선수입니다. 184cm 84kg라는 체격조건에서도 알 수 있듯 타고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중앙에서 거대한 '벽'처럼 온드라스를 지키고 있더군요. 라돈치치 역시 힘 하나는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카바예로는 그보다 더 강하게 보였습니다. 라돈치치와 부딪혀서 흔들림 없던 카바예로의 모습은 사실 조금 무섭기도 했답니다. 외려 인천 선수들이 부딪힐 때마다 툭, 튕겨져 나가더군요. 경기 종료 후 라돈치치는 이에 동의한다며 한국 수비수들보다 힘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아, 참고로 카바예로 역시 와일드 카드입니다.

또 다른 와일드 카드 중 하나인 9번 파본은 움직임이 최전방에서만 국한됐는데, 이렇다 할 위력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한데 장외룡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파본을 위협적인 선수로 거론하더군요. 베이징올림픽 조별예선에서 또 다른 '무기'를 선보일지 모를 일이죠. 경계를 늦춰서는 안될 듯 합니다.

후반에 온드라스는 파본-누네즈 전방 투톱 대신 14번 제퍼슨 베르날데스(Jefferson Bernardez) 11번 루이스 로다스(Luis Rodas)를 투입시켰습니다. 또 전방과 중원을 아우르며 왕성하게 뛰던 오른쪽 윙 미드 파딜라 대신 17번 다비드 알바레즈(David Alvarez)를 넣었습니다. 그런데 후반 거의 끝날 무렵 마르티네스가 결국 다리를 잡고 쓰러지더군요. 쥐가 난 듯했습니다. 경기 내내 가장 열심히 뛰었던 탓이겠지요. 결국 6번 에릭 노랄레스(Erick Norales)와 교체되며 나갔습니다. 참, 마르티네스가 쥐가 나자 인천의 김영빈이 다리를 잡고 쥐를 풀어줬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은 승부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풍경이라며 박수를 쳤답니다. 김영빈이 PA 안에서 위험한 태클로 온드라스에게 PK를 줬는데 그 PK를 성공시킨 선수가 마침 마르티네스였죠.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기'를 누른 마르티네스에게 '사심'을 버리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김영빈은 많은 박수를 받을 만 했습니다.

하프타임 때 만난 박성화 감독, 이근호, 오장은, 김진규는 모두 약속이라고 한 듯 “측면을 노린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하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온드라스의 풀백들은 뒷공간을 수차례 놓치는 등 돌아 들어가는 공격수들을 좀체 막지 못했답니다. 인천의 2골 모두 오른쪽 사이드에서 보르코가 올려준 크로스에서 시작됐죠. 올림픽대표팀에서는 그 역할을 오른쪽 미드필더 이청용이 능히 해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뭐, 문제는 언제나처럼 최전방 공격수들이 해결을 짓느냐, 못 짓느냐겠지요. 그런 점에서 박주영 이하 대표팀 공격수들이 어깨가 무거울 듯합니다.



참, 동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라돈치치가 결승골을 넣고 유니폼을 벗는 ‘누드’ 세레모니를 펼쳐 보였습니다. 그 덕분에 경고를 받았는데요, 최명용 주심이 노란 카드를 집어 들자 90도로 꾸벅 숙여 인사를 하더군요. 라돈도 어느새 한국 사람 다 됐나봅니다. ^^;

이날, 경기 후 주차장으로 가던 중 인천 여고생들의 사인세례를 받는 라돈의 모습을 봤답니다. ‘미운오리’ 또는 '말썽꾸러기' 취급받던 그의 지난날이 떠올라 괜시리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ㅜ



아, 마지막으로 안현식-안재준의 신인 수비수들의 선전도 인상적이었는데요, 특히 안현식의 대인마크 능력은 정말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육상선수 출신답게 빠른 스피드도 인상적이었지만 지능적으로 수비를 마크하는 모습은 정말 최고더군요. 반면 김영빈은 아직 덜 다듬어진 ‘옥석’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비수로의 보직변경이 쉽지는 않겠지만 좀 더 가다듬어야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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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제 하루동안 주로 경기도와 강원도를 중심으로 100~300mm 가량 내렸다고 하네요. 그중에서도 가장 비가 많이 내린 곳은 파주로, 자그마치 280mm의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올림픽축구대표팀이 합숙훈련 중인 파주NFC에는 훈련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주 내내 불볕더위 속에서 훈련을 했던 선수들인지라 오히려 비를 반기는 눈치더군요. 가볍게 러닝을 한 뒤 ‘5대 2’라고 부르는 미니게임을 했는데요, 선수들의 얼굴에선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더군요. 즐겁게 훈련에 임하는 그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 올림픽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태라 부담이 적잖았을텐데도 이를 극복하여, 마치 레크레이션처럼 훈련을 즐기는 선수들을 보며 어쩌면 이들이 오는 8월, 모두를 놀라게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봤습니다.



더위 속에서도, 장대비 속에서도, 온 몸을 감싸는 열기와 습기 속에서도 올림픽대표팀의 훈련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해결사의 부재, 골 결정력 난조, 흔들리는 수비라인 등등 올림픽대표팀을 따라다니는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저는 그래도 희망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이 젊은 청춘들에게 말이죠.

파주트레이닝 센터를 뒤덮었던 이들의 웃음 소리가 지금도 들리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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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올림픽대표팀 선수들이 훈련 중인 파주트레이닝센터도 예외일 수는 없었죠.

파주트레이닝센터 입구에 있던 온도계가 가리키던 숫자는 자그마치 33. 33도 찜통더위 속에서 선수들은 오전(10시30분~11시30분)과 오후(5시~6시), 2번에 걸쳐 훈련에 임했습니다.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 동안 저를 비롯한 기자들은 천막 아래 그늘 속에 피신(?)해 있었는데요,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도 땀은 계속 주르륵, 흐르더군요. 온몸은 끈적끈적하고 급기야 입고 있던 티셔츠가 조금씩 젖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선수들은 땀으로 배출된 수분을 채우고자 30분에 한번 씩 물을 마시더군요. 먹던 물을 그대로 얼굴에 끼얹는 선수도 보였습니다. 그래도 더위는 가시지 않았겠죠. 부상 때문에 훈련에 참가하지 않았던 신광훈(전북현대) 선수는 “지금껏 운동하면서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또 그의 말에 따르면, 운동이 끝나면 대부분 선수들은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숙소 침대 위에 쓰러져 버린다고 하네요. 샤워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대요. 그 모습이 어떨지 절로 상상이 갑니다.

운동이 끝난 후 오랜만에 선수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사는 모두 같았습니다. “아, 너무 더워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더위 죽겠다”는 말을 반복해서 하던 그들에게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몇몇 기자들은 생긋 웃으며 말했지요. “더워요? 그런데 올림픽 열리는 베이징은 더 더울 거예요. 어떡해요?”

그랬더니 기겁하며 선수들은 숙소로 달려가더군요. 그 모습이 지금도 생각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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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린 시절 집 앞 마당에는 제 이름을 딴 나무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그 나무 앞에 저를 세워놓곤 했죠. “3cm나 자랐네? 우리 딸 다음 달에는 얼마나 더 자랄까? 빨리 나무만큼 커야지.” 그렇게 저는 나무와 함께 자랐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저의 성장을 대견스러워하셨고요.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은 무릇 그런 법이랍니다. 하지만 그땐 너무 어렸나봅니다. 그 마음을 채 헤아리지 못했으니까요.


혹시 2006년 3월 12일이 어떤 날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짐작컨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는 이는 아마도 무척 드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말씀드립니다. 그날은 K-리그 개막전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프레스 카드라는 걸 처음으로 들고 갔던 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잊을 수 없는 그런 날이지요. 그럴 수 밖에요. 기자 데뷔전을 치룬 날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프레스 출입구를 찾기 못해 혼자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두 바퀴나 돌았던 기억도 나는군요.

그날, 자원봉사자들을 잡고 물어 물어 겨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느새 선수들은 에스코트 키즈 손을 잡고 필드 안으로 들어서더군요. 그때 낯선 얼굴 하나가 보였습니다. 출전선수 명단을 살펴봤습니다. 이청용.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프로에 입단한지 벌써 3년이나 됐다고 했지만 평소 2군리그를 챙겨보지 않던 제겐 무척이나 생경한 선수였죠. 설렘과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K-리그 데뷔전을 치룬 열아홉 소년, 이청용. 그는 그렇게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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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부터 꼭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침부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던 지난 3월 4일. 귓가를 스치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상암 잔디를 적시던 봄비만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아마 이청용 선수에게는 더 그랬겠지요. 조금은 먼 미래에 이뤄질 거라 생각했던 데뷔골을 터뜨린 날이니까요. 지난 1년 동안 잠시 잊고 있던 이 미완의 청춘은, 봄비 속에서 아름답게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작년 전북과 치렀던 홈 개막전이 생각납니다. 당시 그는 경기 초반 받은 옐로우 카드를 의식했는지 다소 소극적인 모습으로 뛰었습니다. 결국 전반 29분 한태유 선수와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라커룸으로 들어가던 그 뒷모습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껍질을 깨고 나온 지금의 모습이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네요. 한없이 작고 여리게만 봤던 존재가 어느새 이렇게 자랐으니 말입니다.

작은 꽃씨가 바람을 타고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는 모습은 말없이 지켜보는 이에겐 무한한 충만감을 안겨줍니다. 문득 그 옛날 제 어머니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다음 달에는 얼마나 더 자랄까?”라고 묻던 어머니처럼 그에게 묻습니다. “여기서 얼마큼 더 자라 우리를 또다시 놀라게 할 생각인가요?”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K-리그 최대 화두는 이청용 선수입니다.
리그가 개막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지만 그 기간 동안 이청용 선수가 보여준 모습들은 또래 선수들의 수준을 초월했다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합니다.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그의 이름이 검색순위 상위에 오르기 시작됐고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청용 선수는 특유의 묵묵함으로 애써 넘어가려고 합니다. “요즘 너무 좋겠어요”라는 말에도 그저 “아니에요”라고 답할 뿐입니다. 사실 이청용 선수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꼭 한번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작년에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운동은 원래 힘들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1군에 있다 다시 2군으로 내려갔을 때, 그땐 참 힘들었어요. 처음엔 제가 못해서 간 거였으니까 괜찮았는데 사람들이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걱정해주는 그 마음은 알겠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이게 안 괜찮은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속상한 마음도 들고… 혼자서 잘 이겨내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여러 말들이 들려오니까 마음이… 그랬어요.”

소년, 이청용은 열여섯이란 어린 나이에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자 프로에 왔습니다. 축구, 그 하나만을 생각하며 뛰어든 것이죠. 고민은 사치에 불과했고 애써 축구화 끈을 조여매여 외면해야만했습니다. 소년에게 미래는 안개 속의 풍경과도 같았고 자유는 내일을 위해 저당 잡힌 상태였습니다. 오늘 쉬면 내일 뛰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작은 일탈조차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 여름 FC서울이 컵대회에서 우승했던 날에도 모두들 건배를 외치며 즐거워했지만 이청용 선수는 조용히 숙소로 돌아갔답니다. ‘하루쯤은 괜찮지 않겠어?’라는 유혹을 뒤로 하고 말이죠. 그날 밤에도 잠들기 전, 언제나처럼 야간조명 아래에서 홀로 공을 찼죠. 그렇게 매일 다시 1군 무대에서 뛸 그날을 꿈꿨습니다.

“축구하는 게 그냥 좋았어요. 아직도 제가 어떻게 해서 프로선수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공차는 게 좋았을 뿐인데… 지금도 그래요. 전 이제 스무 살이에요. 그건 말이죠 이제 시작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에요.” 그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지금의 관심이 버거운 짐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일찍 프로에 뛰어든 탓에 어른스럽게 보이지만 그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소년일 뿐입니다. “중학교 때 전교생의 응원을 받으며 결승전에서 뛰었던 날이 제일 신났어요. 다음 날 피곤해서 수업 시간에 졸았는데 선생님들도 그냥 넘어가주시고 학교 친구들도 축구부 최고라고 축하해주고… 지금껏 축구하면서 가장 즐겁게 뛴 경기였어요.” 덧니까지 보이며 웃었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술은 한 번도 입에 대본 적 없는데… 앞으로도 그래야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축구 그만 두면요? 어렸을 때부터 빵을 너무 좋아했어요. 빵집 주인이 되고 싶어요!” "밥도 잘 먹어요. 살이 안 쪄서 그렇죠.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어요. 김치찌개 있으면 밥 세 그릇 뚝딱이에요.” “여행 많이 다녀보셨어요?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았어요? 축구만 하고 살아서 여기 저기 다녀본 적이 없어서 궁금한 게 많아요. 참. 저는 꼭 한번 홍콩에 가보고 싶어요.”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축구 하나만 생각하며 뛰었기에 하고 싶은 것도 모르는 것도 참 많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인지 모릅니다.사실 마음 한편에는 지금의 관심과 열광이 금세 돌변하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그런 순간과 과정들을 꽤 많이 봤으니까요. 그러다 혹 다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한번 부러진 민들레 줄기도 낫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자연이 그럴 지언데 사람 역시 예외일 수는 없겠죠.

“항상 좋을 수만은 없어요. 갑자기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겠죠. 주전은 언제든지 바뀌는 법이고요. 언젠가는 그런 순간과 만날 거예요.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겨내야죠. 혼자서 이겨내는 수밖에 없어요. 누구도 대신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껏 잘 극복했으니까 앞으로도 잘 할 거라고 믿어요. 저는 제 자신을 믿어요.”

그리고 덧붙여 말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기대가 커져가는 건 사실이에요.”

어쩜 그건 우리가 이청용 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또 얼마나 자란 모습으로 우리를 경이감에 빠뜨릴까요? 아이의 성장에 웃음 짓던 어머니의 마음으로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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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11월 21일 안산 와~스타디움.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6차전 바레인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둠으로써 올림픽행 티켓을 땄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은 " 해냈다 " 는 기쁨에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약간의 실랑이가 일어났다.


축구협회 직원 한명이 그라운드로 내려와 박주영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려한 것이다. 박주영이 안가겠다며 뒷걸음질을 치자 이번에는 직원 한명이 더 내려와 뒤에서 그를 밀어 기자단이 있는 쪽으로 데리고 갔다. 알고 보니 박주영은 바레인전 최우수 선수(Man of the Match)로 뽑혔던 것. 시상을 하기 위해서라도 꼭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난 8월 3일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은 올스타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당시 박주영은 다른 선수들과 함께 구세군 서울 후생원을 방문, 그곳 어린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특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어린이를 위해 직접 음료수 캔을 따주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때문에 옆에 있던 이근호, 김치곤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 오늘 이렇게 아이들 만나보니까 어떠세요? " 내심 기분 좋다는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 인터뷰 하기 싫어요. " 옆에 있던 다른 기자가 다시 한 번 물었다. " 그래도 오늘은 즐거운 날이잖아요. 아이들이랑 재밌게 노시던데 짧게라도 소감 말씀해주시면 안되나요? " " 전 원래 인터뷰 안해요. " 그러나 무뚝뚝한 표정도 잠시, 옆에 있던 아이들이 " 형, 공 차러 가요 " 라고 말하자 박주영은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 그래. 빨리 가자. "


박주영은 올스타전이라는 즐거운 행사 앞에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것은 경기 최우수 선수로 뽑혔던 바레인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꼭 그날만 그랬던가. 어느 날은 골을 넣고도 바로 라커룸에 들어가는 바람에 소속팀 홍보 관계자들의 발목을 동동 구르게 만들기도 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와 관련해 박주영은 언젠가 지인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 축구 선수니까 축구로 말하고 싶어요. "


그렇다. 모든 해답은 그 안에 들어 있다. 그동안 박주영은 그라운드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유무에도 세인들은 지나친 관심을 드러냈으며 부상 역시 대단한 뉴스인양 보도가 돼왔다. 그 와중에 박주영은 지쳐갔고, 결국 우리가 만난 건 기자들을 피한 채 시무룩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지금의 박주영 뿐이다.


2005년 데뷔 첫해 30경기 출장, 18득점 4도움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던 박주영은 이듬해에는 30경기 출장 8득점 1도움이라는 다소 저조한 기록으로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것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14경기 출장 5득점'이라는 축구천재와는 거리가 먼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3일)은 박주영이 2005년 3월 9일 대구전에 교체로 출장, 프로 무대를 밟은 지 꼭 1000일 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그의 데뷔 1000일은 가는 곳마다 돌풍을 일으켰던 데뷔 첫해와 비교해보면 조용하다 못해 쓸쓸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그를 향한 기대와 희망을 저버릴 시간은 아직 아니다. 박주영의 나이는 이제 겨우 23살. 그는 지금의 3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빛날 선수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옛말의 주인공이 바로 박주영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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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11월 21일 수요일 안산와~스타디움.
최종예선 바레인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비록 0-0으로 끝났지만
승점 1점차로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베이징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습니다.

이로서 한국은 올림픽 6회 연속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부상에서 돌아온 박주영 선수는
예전같인 골결정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점점 감각을 회복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미니홈피 돌출발언 파문으로
누리꾼들에게 뭇매를 맞았던 기성용 선수는
이를 경기력으로 보답하고자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고요.


소속팀 수원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이지 못한
올 시즌을 보답받고자 서동현 선수도
최전방에서 역시 저돌적으로 몰아부쳤죠.


올림픽팀이 배출한 스타 이근호 선수 역시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를 보였으나
마지막 2%가 부족해 조금 아쉬웠고요


이제는 상병 마크를 단 김승용 선수는
전담 프리키커 답게 정확한 코너킥으로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해보였습니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선수들은 무승부로 끝났지만
'올림픽 진출'이라는 목표를 따냈기 때문인지
다들 기분이 좋아보였습니다.


그래요, 그들 말처럼
부족한 부분들은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열심히 준비하면 되니까요.

긴 레이스였습니다.
모두들 수고많았습니다.


지친 몸을 추스리고
내년에 다시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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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기성용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길게만 느껴졌던 나날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17일 2008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졸전 끝에 0-0 무승부로 경기를 끝마쳤다. 다행히 바레인도 홈에서 시리아와 1-1로 비기며 3승1무1패(승점 10)로 3승2무(승점11)인 한국에 이어 조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아직 바레인과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승점1점 차는 언제라도 뒤집어질 수 있는 상황. 더욱이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보여준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모습은 조직력, 미드필드 플레이, 근성 등 모든 면에서 '기준 미달'이었다.


이와 관련해 축구팬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진 가운데 기성용은 19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 답답하면 너희들이 가서 뛰던지~ " 라는 말과 함께 오늘의 기분을 '열받음'으로 표시했다. 이후 기성용은 관련 내용을 삭제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누리꾼들은 캡처한 화면을 축구 커뮤니티로 퍼가며 성토했다.


기성용은 20일 훈련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후 미니홈피 방명록과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 감당하기 힘든 말들 들었다 " 며 " 그러나 경솔했다. 반성한다 " 라고 사과했다.


미니홈피 운영의 득과 실
2000년 이후 미니홈피 열풍이 불며 많은 축구선수들이 미니홈피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팬들과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 때문이다. 기성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인들과만 일촌을 맺는 몇몇 선수들과 달리 팬들의 일촌신청은 언제나 받아주던, 팬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선수였다.


그렇기에 이번 미니홈피 돌출발언의 파급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에 신세대다운 솔직함으로 적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아쉬운 까닭은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경기를 잘 뛰고 싶은 마음은 선수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더욱이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경기라면 더 클 것이다. 이는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팬들은 기대감으로 선수들을 지켜본다. 그러나 기대 이하의 플레이로 인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다. 최근엔 이와 관련해 팬들의 반응 또한 달라졌다. 선수들의 미니홈피를 찾아가 플레이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적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때론 팬들의 반응이 도를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지난 7월 25일 벌어진 2007 AFC 아시안컵 준결승 이라크전에서 염기훈이 승부차기에서 실축하자 일부 누리꾼들은 염기훈 미니홈피를 찾아가 심한 말을 퍼부었다. 후에 염기훈은 < 풋볼위클리 > 와의 인터뷰에서 " 그래도 가족 욕까지 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욕을 하고 싶다면 경기를 뛴 나에게만 하면 안 되나? " 라며 섭섭한 마음을 내비쳤다.

박동혁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 바 있다. 지난 2005년 6월 3일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후반 18분 박동혁은 패스 과정에서 상대 선수에게 공을 내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는 막심 샤츠키흐에게 그대로 연결돼 결국 1골을 헌납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박주영의 만회골로 1-1 무승부로 끝났지만 박동혁은 경기 후 한동안 팬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박동혁은 " 당시 미니홈피 방명록에 올라간 글들을 읽으며 너무 속상해 제대로 식사도 못했다 " 고 회상했다.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
올림픽대표팀 A 선수는 이번 일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선수는 팬들의 반응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해서는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을 때도 많지만 어떻게 그때마다 반응하나. 특히 경기 내용과 관련해선 지나친 비난이라 해도 선수 입장에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미니홈피라는 사적인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아주 짧게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축구팬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는 그의 발언이 자극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선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때 퍼거슨이 '찜'한 영보이로 세간의 집중을 받기도 한 기성용. 그 만큼 그는 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선수다.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선수로 자랄 가능성 역시 높다. 이번 사건을 통해 기성용은 분명 많은 것들을 배웠을 것이다. 현재 기성용의 미니홈피는 모든 메뉴가 닫혀 있는 상태. 다시 미니홈피 메뉴가 열리는 날, 예전처럼 열린 마음으로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성용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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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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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골 누가 넣을까?”
“이근호 선수가 넣지 않을까?”


경기 시작 전 관중석에 앉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근호 선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가슴을 땅땅치며 말했죠. 이근호 선수가 넣을게 분명하다고요. 그냥 그런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 넣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8월 22일 오후 8시 상암월드컵경기장.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우스베키스탄과의 첫 경기가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이근호 선수는 변함없이 왼쪽 윙포워드로 선발출장했죠. 경기 내내 그는 특유의 힘을 바탕으로 활발히 측면 돌파를 시도했습니다. 계속해서 혼자 고립돼 있던 원톱 하태균 선수에게 열심히 크로스도 올렸고요. 때론 직접 중앙으로 이동해 슈팅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함께 호흡을 맞춘 김승용 선수와의 스위치 플레이는 또 어떻고요. 그때마다 우즈벡 수비진은 당황해야만했죠.


후반 6분 한동원 선수 대신 이상호 선수가 투입되자 한국팀은 포메이션을 변경했습니다. 하태균 선수와 이상호 선수, 이렇게 두 명의 공격수를 두는 4-4-2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죠. 이때부터 이근호 선수는 뒤로 돌아 들어가 중앙에서 적극적인 공격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효과를 보였습니다. 후반 33분 하태균 선수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머리로 떨어뜨려준 공을 받은 이근호 선수는 멋지게 가슴 트래핑 후 왼발 터닝슛을 선보였습니다. 골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전 혼전 상황 중에 좁은 지역에서 터뜨린 그 골은 결승골이었기에 더욱 빛났습니다.


골네트가 출렁거리는 순간, 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답니다. 저질댄스를 추려다 기뻐서 달려드는 동료들 때문에 멈춰야만했을 때엔 좀처럼 웃음을 참을 수 없었죠. 그러고 보니 지난 8월 4일 열린 올스타전에서도 그는 거성댄스와 단신댄스 세레모니를 선보이며 지켜 보던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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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올림픽팀에서 오랜 기간 골이 터지지 않았을 때 한번은 “골 좀 넣으라”고 타박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근호 선수는 “그러게요. 저도 빨리 넣고 싶어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요”라고 말했죠. 그런데 그 다음 대답이 또 저를 웃게 만들었답니다. “골 넣으면요, 타잔 세레모니 할거에요. 고트비 선생님이 파마한 제 머리보고 타잔 같대요. 만날 훈련 때마다 타잔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타잔 세레모니 해보려고요. 재밌겠죠? 그런데 제 머리 진짜 타잔 같아요? 잘 어울리지 않나요? 중계 카메라에 잘 나와야하는데…(웃음).”


그로부터 한달 뒤인 2007년 6월 6일. 그날은 공휴일이었습니다. 모처럼 집에서 쉬고 싶었죠. 그러나 제 마음은 대전에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올림픽 2차 예선 UAE와의 경기가 그곳에서 열렸거든요. 그날도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웬지 이근호 선수가 골을 넣을 것 같다는 예감 말이에요.


잠실에서 미디어다음 블로거 기자 하정임님과 몽구님을 만나 함께 대전에 내려갔죠. 내려가는 차안에 하정임님은 “기사 ‘야마’를 누구로 잡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저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물론 고민할 필요도 없었죠. 그때 저는 “당연히 이근호죠. 오늘 이근호가 골 넣을 거예요. 분명해요. 이근호 선수만 찍으세요. 믿어도 좋아요”라며 오늘처럼 큰소리 쳤답니다.


결과는 물론 다들 아시죠? 그날 이근호 선수는 2골을 터뜨리며 3-1 대승의 주인공이 됐답니다. 지난 달에 이야기했던 타잔 세레모니도 코트비 코치와 즐겁게 했죠. 올림픽팀에서 넣은 첫 번 째 골이라 경황이 없었을텐데도 양 손으로 가슴을 치며 타잔 흉내를 냈답니다.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에서 이근호 선수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근호 선수는 먼저 다가와 제게 오른손을 내밀었죠.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아, 와줘서 고마워요”라며 오히려 제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악수를 건넨 그의 손은 무척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마음 때문에 아마 그러한 것이겠지요. 


대부분의 선수들은 항상 먼저 선을 긋는 편입니다. 이 사람은 기자니까 조심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기자들을 대하곤 합니다. 격식을 갖추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진심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일 때문에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죠. 하지만 이근호 선수는 달랐습니다. 그가 제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할 때 저는 다시 한 번 따뜻한 인간애와 진실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악수를 통해 그 모든 것들이 전해졌으니까요.


그리고 오늘 저는 다시 한 번 그 순간과 만났습니다. 우즈벡전이 끝난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이근호 선수는 언제나처럼 기자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기 바빴죠. 그리고 저는 뒤에서 조용히 그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서있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그에게 “너무 축하해요. 제가 넣은 것처럼 기분 좋네요”라는 축하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이근호 선수는 가볍게 제 등을 안으며 “행복해요. 대구 한 번 놀러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뭐랄까요. 기자와 선수로 처음 만났지만 이제는 그 관계를 초월한 것만 같아 가슴이 조금 뭉클했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축하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런 형식적인 관계에서 벗어난 듯합니다. 기자석에 앉아 있을 때면 냉철하게 경기를 지켜보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의 눈부신 성장에 기뻐하고 잠깐의 좌절에 안타까워합니다. 무엇보다 프로라는 냉정한 곳에서 이런 진심 어린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에 한없이 감사할 뿐입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이근호 선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처음 그를 만났던 지난 해 가을을 떠올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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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할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꿈 자리가 좋았거든요(웃음). 그렇지만 MVP 받는 건 예상 못했어요. 그냥 형들이 네가 받는다. 긴장하고 있어. 이렇게 장난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진짜로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버지께서 ‘상 받았으니까 외식할까?’ 하시네요(웃음).사실 1군 게임 못 뛰는 서러움을 떨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곳, 2군리그에요. 그런데 이렇게 우승까지 했으니 그동안의 서러움을 모두 푼 것 같아 기분 좋네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겠네요. 다른 선수들처럼 이 상을 계기로 더 높이 올라가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긴 많았나 봅니다. 2군리그 결승전이 끝난 후 MVP 수상소감을 묻자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쉬지 않고 말했죠.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까만 머루 같던 그의 눈동자였습니다. 더 뛸 수 있다는 확신과 언젠가는 다시 날아오르겠다는 믿음으로 가득 찼던 그 눈동자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그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후,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게임을 못 뛰는 게 제일 힘들었죠. 항상 좋았던 때만 있었거든요. 지금까지 축구하면서 게임 못 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2군 경기도 못 뛴 거 있죠. 말 그대로 3군이었어요. 사실 지금 당장 경기장에 열 살짜리 꼬마를 데리고 와 봐도 게임 뛰고 싶다 말할 거예요. 그러니 선수 입장에서는 오죽하겠어요. 그런데 전 2군 경기까지 못 뛰었으니 말 다한 거죠. 그때 진짜로 ‘정말 프로라는 곳에서 살아남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지금까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하며 온갖 생각을 다했어요. 그러다 나중엔 청소년 대표팀에도 못 뽑혔어요. 그 상황에서 저는 대표팀은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죠. 그런데 주위에서 괜찮다며 위로해주는 거예요. 그게 더 상처가 됐어요. 화살로 다시 날아와 이렇게 제 가슴을 콱콱 찔렀어요.”


계속해서 쏟아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의 얼굴에선 빛이 났거든요. 마치 잘 딱은 거울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반짝반짝 말이에요.


“기대도 안했죠. 올림픽 대표팀에 뽑힐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뽑히고 나서도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곧 마음 편하게 먹었죠. 처음에 축구 시작할 때의 마음, 축구를 즐기던 그때 그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해보자. 어차피 바라지도 않던 기회니까 한번 죽기 살기로 해보자. 그렇게 다짐했어요.”


믿음은 자신감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지난 해 11월 창원과 도쿄에서 연이어 열렸던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이근호 선수가 보여줬던 모습은 ‘왜 그동안 우리는 저 선수를 모르고 있었지?’라는 의문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이마 위로 끝없는 서광이 비치는 듯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 그것도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바로 뛰는 거잖아요. 더 많이, 더 열심히 뛰자. 다른 생각보다는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 그 생각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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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따뜻한 차를 마시며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 그는 “이제 시작인데요. 앞으로 더 좋은 소식 알려드릴 수 있게 최선을 다할게요”라는 인사말을 제게 남겼습니다. 물론 예의상 하는 말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 ‘시작’이라는 그 단어만은 또렷이 들렸기에 저는 온전히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게 제 뜻대로 쉽게 되지는 않지만요, 꼭 다시 날고 싶어요”라던 그의 간절한 기도가 이뤄지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날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의 기도가 이렇게나 빨리 이뤄질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왜 저만 보면 그렇게 웃으세요? 저 개그맨 아니에요. 축구선수에요.”


2007년 3월 4일 서울전을 시작으로 이근호 선수는 대구의 주전 공격수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에 예년과 달리 경기장에서 그를 만날 기회가 늘어났죠. 그런데 그때마다 이근호 선수는 “왜 나만 보면 웃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그만 보면 웃음이 나오는 걸요. 그의 모습은 분명 웃음을 자아내는 힘을 갖고 있으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을 때, 그 성장에 감탄하며 웃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요? 더욱이 지난 해의 아쉬움들을 묵은 해에 보내겠다며 씁쓸해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선 결코 웃지 않을 수 없겠죠.


“축구가 좋아요.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여자친구보다 더 좋은 게 축구에요. 제 인생의 전부인 축구를 너무 많이 사랑합니다.”


요즘도 이근호 선수는 만날 때마다 “왜 이렇게 축구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연애를 못하나봐요”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만 사실 이근호 선수에게서  “축구가 제일 좋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저는 그 속에 실린 진정성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축구를 향한 이근호 선수의 진심 어린 사랑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이근호 선수를 만든 기저라는 사실도요.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근호 선수의 축구 사랑만큼은 영원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것은 마르지 않는 옹달샘처럼, 언제나 지금처럼 퐁퐁퐁 샘솟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근호 선수의 오늘과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선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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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김동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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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