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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지소연의 눈물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U-20여자월드컵에서 3위에 오르며, 여자청소년대표팀은 남녀 축구를 통틀어 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초청 K-리그 올스타전이 이런저런 잡음들로 시끄러웠고 그 때문에 다수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기도 했으나 U-20여자대표팀의 금위환향을 넘어갈 수는 없겠죠.

최인철 감독이 이끈 U-20여자대표팀은 조별예선에서 스위스(4-0)와 가나(4-2)를 대파하고 조 2위로 8강에 진출해 멕시코(3-1)를 꺾고 준결승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고지 하나만 넘으면 결승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지만 개최국 독일에 1-5로 패하며 4강진출에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3-4위전에서 콜롬비아(1-0)를 꺾으며 언니, 오빠 선수들이 해내지 못했던 3위에 오르며 또 하나의 축구역사를 쓰고 돌아왔습니다.
단체스포츠인만큼 모두가 합심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는, 이제는 지메시로 불리는 지소연입니다. 지소연은 8골(스위스전 3골, 가나전 2골, 멕시코전 1골, 독일전 1골, 콜롬비아전 1골)을 기록하며 6경기 8골로 실버부트와 실버볼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알렉산드라 포프가 10골로 득점왕에 올랐는데, 2골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지소연은 어른답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말했죠.

그렇게 당차고 어른스럽게 말하던 지소연도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결국은 눈물을 흘리고 말더군요.

“지금까지 고생 많았는데… 엄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사랑해요.”라고 지소연은 울먹이며 말하다 끝내 눈물을 쏟았습니다.

알다시피 지소연의 어머니는 지소연이 6학년이었을 때 이혼 뒤 봉제공장을 다니며 지소연을 뒷바라지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궁암 판정을 받아 병마와 싸우면서도 힘들게 축구선수 지소연을 길렀습니다. 그러나 암 수술 후에는 허리 디스크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고 기초생활수급자 급여 30만원 외에는 딱히 수입원이 없습니다. 지소연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받는 상금과 대표 소집 때마다 받는 훈련 일당이 유일한 수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축구화가 떨어져도 수십만원 하는 축구화를 살 형편이 되지 못해 더 이상 킥을 하지 못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신어야만 했습니다. 남동생이 MP3를 덜컥 사가지고 왔을 때는 우리 형편에 이런 고가의 물건을 사도 되냐고 나무랄 정도로 엄마를 생각하고 일찍 어른이 돼야 했습니다.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찜질방이 있는 집을 사주겠다는 꿈을 꾸며 공을 찼던 소녀 지소연. 지소연의 눈물이 더욱 특별했던 까닭은 가족을 위한 꿈이 느껴졌기 때문이고 이것은 비단 지소연만 흘린 눈물은 아니겠지요.

이번 U-20여자월드컵에서 아름다운 결실을 맺은 여자대표팀 선수 뿐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보지 못한 이 땅의 여자 축구선수들이라면 한번쯤 흘렸을 눈물이었기에 저는 그녀의 눈물이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됐을 때, 남자들이나 하는 운동을 왜하냐며 반대와 핀잔 속에서 뛰어야했겠죠. 생리통 때문에 배가 아파도 그라운드에 나서야했고 아무리 선크림을 발라도 자꾸만 까매지는 피부 때문에 고민도 많았겠죠. 20살이면 화장도 하고 싶고 치마도 입고 싶은 나이지만 햇볕에 그을려 상한 피부는 파운데이션을 거부했을테고 물집이 잡힌 발 또한 하이힐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겠죠.

많은 여자축구 선수들은 가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좋은 선수가 돼 가계에 보탬이 되는 딸이 되겠다며, 혼자가 아닌 가족을 생각하며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축구를 위한 인프라는 지극히 열악합니다. 이렇듯 안팎으로 열악한 형편 속에서도 그녀들은 남자축구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소박한 소망을 밝힙니다. 그저 여자축구가 지금처럼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요.

독일과의 준결승전. 머리 하나가 더 있던, 게르만족의 피를 받아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던 독일 여자 선수들과 부딪힐 때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나뒹굴어도, 그래서 5골이나 먹혔지만 소녀들은 당황하는 대신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다시 뛰고 골문을 향한 슈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경기를 봤던 사람이라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지소연의 눈물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간 여자선수들이 겪었을 아픔과 고뇌, 그리고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줬기에 말입니다.

그러니 소녀들이여, 이제는 울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