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뒤로 한 채 부천종합운동장 인조잔디구장에 갔습니다. 부천FC 취재 때문이었죠. 마침 그곳에서 MD사커라는 아마추어팀과 연습경기가 열렸습니다. 졸음을 꾹 참으며 벤치에 앉아 있는데 웬 동네 아저씨도 슬쩍 옆에 앉더군요. 그런데 다시 보니 아저씨가 아니었습니다. 방승환 선수였습니다. 알다시피 그는 지난 해 FA컵 4강전 중 심판판정에 항의하다 ‘1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지요. 오랜만에 만난 얼굴이라 반가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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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마약 같아요. 안하면 근질근질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뛰고 싶어서 아는 친구 따라 나왔어요.”
문득 올 초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장외룡 감독님께서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지 궁금했습니다. “귀국 후 첫 미팅 시간에 갑자기 저를 찾더라고요. ‘승환이는 어딨니?’ 하시길래 ‘저 여기 있는데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숨어있지 말고 당당하게 있으라고요. 많이 챙겨주세요. 체력테스트 할 때 그냥 앉아 있었더니 감기 걸린다고 잠바 챙겨 입으라고 해주시고 자체 게임할 때도 갑자기 투입되면 다치니까 일단 체력부터 먼저 끌어올리라고 해주시고… 고마울 뿐이죠.”
당시 방승환 선수는 유니폼까지 벗으며 심판판정에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그라운드 추태’라 묘사 했고요. 그의 행동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심적으로 이해는 합니다. 그동안 뭉쳐있던 고름이 터진 결과였겠죠. 재정적으로, 또 힘적으로 약한 시민구단이기에 감수할 수밖에 없는 설움 이 원인일 수도 있겠죠. 자신의 소속팀은 심판판정에 있어 늘 피해자라는 생각에 순간 울분을 참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고요. 그렇지만 결과론적으로 그의 행동은 과했고 때문에 협회는 ‘1년간 자격정지를 내린다’고 발표했습니다.
“원래 ‘욱사마’가 좀 있어요. 돌아서면서 후회 많이 했죠. 그렇지만 이미 벌어진 걸 어떡해요. 감수해야죠. 한 달 동안 전화기 꺼놓고 잠수 탔어요. 그 시간 동안 아무 것도, 아무 생각도 안하며 있었죠.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저만 보면 잊고 싶은 그날 이야기만 했으니까요…”
아울러 그는 덧붙였습니다.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축구 하나 뿐”이라고요. 그리고 4월에 징계가 풀리길 소망했습니다. 지금도 자신을 잊지 않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경기장에서 꼭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말했습니다.
“올해 목표요? 축구선수잖아요.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다는게 제 목표에요. 처음에 징계 받고 나서 다시는 공을 차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27년 동안 살아오면서 축구만 15년을 했더라고요. 제 인생의 절반이 넘은 시간을 축구와 함께 했는데 어떻게 쉽게 버릴 수 있겠어요. 그만둘 수 없어요. 다시 선수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방승환 선수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투입되자마자 멋진 프리킥으로 MD사커에 승(1-0)을 안겨줬습니다. 물론 그 때문에 부정선수 출전 아니냐며 실랑이도 있었지만요. 아래는 그날 인천유나이티드 유니폼이 아닌 조기축구회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뛰던 방승환 선수의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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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뛰고 싶은 마음이 컸길래 그는 조기축구회까지 나가 뛴 것일까요. 다시 달리고 싶은 그의 강렬한 의지가 사진들에서 느껴지는군요.
선수는 그라운드 위를 달릴 때 가장 행복한 법입니다. 스스로 많이 반성했다고 하니 그의 바람처럼 여름이 오기 전에 복귀가 이뤄졌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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