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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오직 ‘꿈과 희망’을 위해 존재하는 2군리그

2006년 10월26일 인천문학경기장. 한 선수가 MVP 트로피를 들고 서 있었다. “2군리그는 저처럼 1군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들이 서러움을 떨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입니다. 이 상을 계기로 다른 선수들이 성장했듯이 저 역시 높이 날아오르겠습니다. 내년에는 꼭 1군리그에서 제 기량을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그로부터 1년 뒤 2007년 12월6일, 다시 만난 그의 손에는 K리그 BEST11 트로피가 있었다. 자, 퀴즈를 내겠다. 여기서 ‘그’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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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이근호다. 2군리그 MVP출신 이근호(前인천Utd.)는 2006년 겨울 대구FC로 팀을 옮겼고 이후 주전으로 도약, 올림픽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이야기는 2군리그 선수들에게는 대표적인 성공신화로 회자되고 있다.

2군리그, 마지막 퍼즐을 맞추다
1990년 처음 시작된 2군리그는 1, 2차 풀리그 형태로 열렸다. 참가팀은 일화를 제외한 총 5개 구단(유공, 현대, 대우, 포항제철, 럭키금성)이었다. 그러나 1차 10경기, 2차 10경기로 팀별로는 4경기씩 밖에 치르지 못해 경기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2군리그는 2000년 시작됐다. 당시 대전을 제외한 9개 구단(안양, 부천, 포항, 전북, 수원, 전남, 성남, 울산, 부산)이 중부와 남부로 나뉘어 리그를 치렀다. 이후 경찰청(2001년) 광주(2002년) 인천(2004년) 경남(2007년)이 차례로 참가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그간 선수 부족과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2군 운영을 보류했던 대전과 대구가 2군리그 참가 의사를 밝혔다. 덕분에 올 시즌 2군리그에는 K리그 14개 구단과 경찰청을 합한 총 15팀이 참가, A조(서울, 성남, 수원, 인천, 대전, 전북, 경찰청)와 B조(울산, 경남, 대구, 포항, 부산, 광주, 전남, 제주)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르게 된다. 이후 각조 1, 2위 팀은 크로스 토너먼트로 4강전을 펼치고 결승전은 10월16일과 10월23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로써 K리그 전 구단이 참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2군리그는 끝나게 된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훗날 2008시즌 2군리그는 K리그 전 구단 참가 원년으로 기억되겠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현재 프로축구연맹이 2군리그 운영을 위해 책정한 예산 대부분은 심판진과 경기감독관, 기록원 파견 비용으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경기 운영, 경기장 대여, 선수단 이동 등에 들어가는 모든 제반 비용은 전적으로 구단이 부담한다. 그간 대전과 대구가 2군리그 참가를 유보했던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시민구단의 빠듯한 살림살이로 2군까지 꾸리는 것은 그들에게 무리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비용을 구단이 떠안다보니 2군리그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대부분의 경기들이 보조구장 혹은 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 그곳엔 라커룸도, 전광판도, 심지어 교체선수들이 앉을 의자도 없다. 정식 경기임에도 시민들의 통제 또한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선수들은 죽기 살기로 뛰고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트랙을 따라 조깅하는 일도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프로축구 2군코치의 전언이다. 물론 이같은 문제에 대해 연맹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통제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선수들은 뛰고 있으며 최소한의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피력하는 선수도 적지 않다.

2군리그를 바라보는 구단의 태도 또한 아쉽다. 사실 프로연맹이 2군리그를 창설한 가장 큰 목적은 K리그 전력 극대화와 유망주 육성에 있다. 그러나 많은 구단들은 전자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그러다 보니 2군리그를 용병 혹은 신인선수들을 새로 영입하기 위한 테스트로 이용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프로연맹 경기지원팀의 홍우승씨는 “시즌 중에 용병을 교체하거나 영입해야하는 일이 발생할 때 2군리그 경기를 통해 실력을 테스트 하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간 2군리그를 담당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고 밝혔다. 그 중 하나는 K리그로 인해 2군리그 일정과 장소가 변경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경기에 나서지 못한 1군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이 이뤄지는 곳쯤으로 생각하는 인식에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구단들은 2군리그를 1군 선수들의 경기력 유지 및 조절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2군리그 선발 라인업은 1군 스쿼드에 누수가 생겼을 때 바로 데려 갈 수 있는 즉시 전력 위주의 선수들로 꾸려진다. 그러다 보니 늘 어느 정도 이상의 실전 경험을 갖춘 선수들로 채워진다. 결국 경기를 통해 경험을 쌓고 성장해나가야 할 어린 선수들은 2군리그에도 뛰지 못해 ‘3군’으로 전락해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실제로 2군리그 MVP출신 이근호는 “2군 경기에도 나서지 못해 3군으로 분류된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정말 축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비참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홍우승씨는 “앞으로 2군리그를 어떻게 운영할지 다각적인 방법에서 고민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프로연맹은 현재 2군리그 참가 자격을 나이별, 1군경기 참가 횟수별로 나눠 제한을 둘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또한 현 시점에서 각 구단별로 클럽시스템이 완성된다면 앞으로 U-12리그, U-15리그, U-18리그 등 연령별 리그제를 꾸려 나갈 계획도 갖고 있다. 실제로 올해부터는 구단 산하 U-18팀이 참가하는 리그가 시범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진정한 2군리그를 위하여
김호 감독은 올 시즌 대전이 처음으로 2군리그에 참가하게 된다는 사실에 큰 의의를 표했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2군리그를 통해 이뤄지는 선수들의 성장이다.” 아울러 김 감독은 “경기를 통해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과 마찬가지로 대구도 올해 처음 2군리그에 참가한다. 대구 홍보팀의 이동준씨는 “클럽 문을 두드리는 어린 선수들을 발굴, 양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물론 단기적으로 봤을 땐 구단 운영비가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선진구단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라도 2군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변병주 대구 감독은 “제2, 제3의 이근호를 발굴하고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라고 낙관론을 펼쳤다.

그간 체계적으로 2군 시스템을 운영해오고 있는 FC서울의 김용갑 코치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2군리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앞으로 4~5년 뒤에 쓸 재목을 양성한다는 생각으로 꾸려나가야한다. 그렇게 하여 성장한 선수가 바로 이청용, 기성용, 김동석, 고명진, 이상협 등이다. 지난해 FC서울이 어려운 고비를 넘을 때 이들은 큰 힘이 되었다.” 김 코치는 “2군제도를 ‘꿈나무 육성 프로젝트’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2군리그는 K리그 발전을 일궈낼 든든한 밑받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밑받침이 프로축구 사반세기만에 드디어 온전한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속을 제대로 채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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