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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K-리그 연습생, 88만원세대의 또 다른 이름


‘88만원 세대’를 아는가. 여기서 88만원은 비정규직 전체 평균 임금인 119만원에 20대 평균 소득 수준 비율인 74%를 곱한 수치를 뜻한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는 88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청년 비정규직만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20대의 불안한 현실을 상징한다. 또 K리그 연습생들의 고단한 삶을 투영하고 있다.


K리그의 88만원 세대들

지난해 2008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은 자’는 91명이었다. 드래프트 전체 신청자의 31.3%에 불과한 수치다. 그 중 28명은 번외로 지명됐다. 프로축구연맹은 2006년부터 신인선발 드래프트제를 다시 도입했다. 번외지명은 6라운드까지 선수를 선발한 뒤 이뤄진다. 순위 외 선발이기 때문이다. 2006년에는 12명의 선수가 번외로 뽑혔지만 2007년 31명, 2008년 28명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수치상으로 각 구단이 번외지명을 적극 활용하고 있음이 한눈에 보인다.

1순위로 입단한 선수들은 5000만원의 연봉을 받게 된다. 이에 반해 번외지명 선수들이 받는 연봉은 1200만원에 불과하다. 번외지명된, 소위 ‘연습생’이라 불리는 그들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88만원 세대’다. 그러나 연봉 1200만원을 열두 달로 쪼개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100만원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숙소 생활을 하기 때문에 관리비 명목으로 매달 10만원(수원 5만원, 제주·포항 없음)이 빠져 나간다. 결국 이들이 손에 쥐는 월급은 대략 90만원 선. 만약 국민연금이나 보험에 가입했다면 이보다 더 적은 돈을 받게 된다.

번외지명 제도는 구단 입장에서 볼 때 싼 가격에 쓸만한 선수들을 찾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구단에게는 유용한 선수 수급수단으로 활용된다. 구단 살림살이가 어려워 검증되지 않은 선수에게까지 많은 돈을 주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마지막 6순위로 선수를 뽑는다 해도 벌써 연봉이 2000만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 돈에 400만원만 더 얹으면 번외지명 선수 2명을 뽑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전은 지난 드래프트에서 무려 5명의 선수를 번외지명으로 선발했다. 대전 이외의 구단들도 금전적 부담이 덜한 연습생 영입에 갈수록 높은 관심을 보인다. 물론 그들은 “번외지명이 프로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며 서로에게 윈윈(win-win)이라 설명한다.

그렇지만 과연 윈윈이라 할 수 있을까. 냉정히 말해 그 기회란 것도 ‘1년’동안만 제공될 뿐이다. 번외지명 선수들이 그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기량을 십분 드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타 선수들 틈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는커녕 2군리그에서조차 살아남기 힘든게 사실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번외지명 선수들은 매년 계약이 끝남과 동시에 흔적 없이 사라지곤 한다. ‘연습생 신화’를 꿈꾸며 입단했지만 결국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는 ‘슬픈’ 결말에 고개를 떨구는 것이다.

어렵고 좁은 길

2007드래프트에서 번외지명된 선수들 중 재계약에 성공한 이는 극히 드물다. 김민구 강수일 안재곤(이상 인천) 최찬양(수원) 조성준(전북) 김민(울산) 정도다. FC서울에 있던 김바우는 대전에 입단했다. 이들 중 강수일(2경기 1도움) 조성준(3경기 1도움)만 1군 경기에 데뷔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번외지명 선수들은 ‘연습생 신화’로 포장되는 성공담이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못한다.

2006년 드래프트 부활 이후 가장 성공한 연습생을 꼽으라 하면 열에 아홉은 배기종을 거론한다. 배기종은 2006드래프트 당시 번외로 대전에 입단, 주전(27경기 7골3도움)으로 도약하며 신인왕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비록 시즌 말미에 사전접촉 의혹으로 임의탈퇴, 선수제명위기에 몰렸지만 2007년 수원으로 팀을 옮겨 여전히 선수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주전은 아니지만 교체로 꾸준히 출전(17경기 2도움)하는 그의 모습은 후배 연습생들에게 희망을 안긴다.

지난해 426경기에 출전하며 철인신화를 쓰고 있는 김기동도 1991년 연습생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K리그 베스트11에 빛나는 장학영도 시작은 연습생이었다. 그리고 이들처럼 성공신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습생으로 시작, 꾸준히 1군 경기에 얼굴을 내민 선수들이 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0경기에 출장하며 대전의 특급교체선수로 활약했던 박경규, 2003년 광주에서 이동국 김상식 등 국가대표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한상구가 그 예다.

88만원 세대의 선택과 길

변병주 감독은 “연습생 생활을 감수하면서까지 프로에 몸담고 싶은 마음을 공감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수들의 목표는 같다. ‘대표 선발’과 ‘프로 입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100만원도 채 안 되는 월급을 받고도 어떻게든 프로생활을 이어가려 하는 것이다.” 인천에서 연습생으로 뛰다 최근 재계약에 성공한 강수일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그 경험을 K리그에서 쌓을 수만 있다면 돈 없이도 좋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면 돈은 따라오는 법이니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다. 그 때문에 해마다 연습생이라도 좋다며 K리그 문을 두드리는 선수들이 생기는 것이다.”

한편 변병주 감독은 “최선을 다한다면 연습생이라도 빛을 볼 수 있다. (이)근호도 노력으로 스타가 된 경우 아닌가. 좌절하지 말고 스스로 ‘대기만성형’이라 생각하며 이겨내라”는 말도 덧붙였다. 변 감독의 당부에는 계약종료 후 자신을 책망할지도 모를 선수들을 향한 배려가 숨어 있다. 요지는 이렇다. 무릇 프로란 전문 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재계약에 실패하여 팀을 떠나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스스로를 프로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길은 또 다시 시작되는 법이니까.

팀을 나오게 된다하더라도 축구인생은 연습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위리그에서의 새출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실제로 K리그를 떠난 선수들 중 많은 이들이 내셔널리그에서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한다. 현재 내셔널리그는 과거 실업축구의 한계를 딛고 지역 연고제를 정착, 준 프로리그로의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 비록 두 시즌 연속 승격제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내셔널리그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곳에서 뛰는 선수들 역시 리그와 함께 성장하며 못다 이룬 꿈을 펼치고 있다.
 
2006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번외지명으로 FC서울에 입단했던 오기재는 2007년 안산할렐루야로 이적해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고, 2006년과 2007년 각각 번외로 울산에 지명됐던 장재완과 윤동헌은 안산 할렐루야에서 새로이 출격준비 중이다. 부산의 장신 공격수 오철석도 빼놓을 수 없겠다. 포터필드 감독 재임 시절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이에 부응하지 못했던 그는 부산교통공사로 1년간 임대돼 실전감각을 키웠다. 2006년 전체 1순위로 대구에 입단했던 황금성은 주전이 보장되지 않자 2007년 인천한국철도로 옮겼다. 2000시드니올림픽대표 출신이지만 전북에서 오래 무명생활을 하던 고민기도 고양국민은행 이적 후엔 주전으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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