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길게만 느껴졌던 나날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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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바레인과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승점1점 차는 언제라도 뒤집어질 수 있는 상황. 더욱이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보여준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모습은 조직력, 미드필드 플레이, 근성 등 모든 면에서 '기준 미달'이었다.
이와 관련해 축구팬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진 가운데 기성용은 19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 답답하면 너희들이 가서 뛰던지~ " 라는 말과 함께 오늘의 기분을 '열받음'으로 표시했다. 이후 기성용은 관련 내용을 삭제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누리꾼들은 캡처한 화면을 축구 커뮤니티로 퍼가며 성토했다.
기성용은 20일 훈련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후 미니홈피 방명록과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 감당하기 힘든 말들 들었다 " 며 " 그러나 경솔했다. 반성한다 " 라고 사과했다.
미니홈피 운영의 득과 실
2000년 이후 미니홈피 열풍이 불며 많은 축구선수들이 미니홈피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팬들과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 때문이다. 기성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인들과만 일촌을 맺는 몇몇 선수들과 달리 팬들의 일촌신청은 언제나 받아주던, 팬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선수였다.
그렇기에 이번 미니홈피 돌출발언의 파급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에 신세대다운 솔직함으로 적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아쉬운 까닭은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경기를 잘 뛰고 싶은 마음은 선수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더욱이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경기라면 더 클 것이다. 이는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팬들은 기대감으로 선수들을 지켜본다. 그러나 기대 이하의 플레이로 인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다. 최근엔 이와 관련해 팬들의 반응 또한 달라졌다. 선수들의 미니홈피를 찾아가 플레이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적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때론 팬들의 반응이 도를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지난 7월 25일 벌어진 2007 AFC 아시안컵 준결승 이라크전에서 염기훈이 승부차기에서 실축하자 일부 누리꾼들은 염기훈 미니홈피를 찾아가 심한 말을 퍼부었다. 후에 염기훈은 < 풋볼위클리 > 와의 인터뷰에서 " 그래도 가족 욕까지 하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욕을 하고 싶다면 경기를 뛴 나에게만 하면 안 되나? " 라며 섭섭한 마음을 내비쳤다.
박동혁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 바 있다. 지난 2005년 6월 3일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후반 18분 박동혁은 패스 과정에서 상대 선수에게 공을 내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는 막심 샤츠키흐에게 그대로 연결돼 결국 1골을 헌납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박주영의 만회골로 1-1 무승부로 끝났지만 박동혁은 경기 후 한동안 팬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박동혁은 " 당시 미니홈피 방명록에 올라간 글들을 읽으며 너무 속상해 제대로 식사도 못했다 " 고 회상했다.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
올림픽대표팀 A 선수는 이번 일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선수는 팬들의 반응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해서는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을 때도 많지만 어떻게 그때마다 반응하나. 특히 경기 내용과 관련해선 지나친 비난이라 해도 선수 입장에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미니홈피라는 사적인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아주 짧게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축구팬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는 그의 발언이 자극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선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때 퍼거슨이 '찜'한 영보이로 세간의 집중을 받기도 한 기성용. 그 만큼 그는 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선수다.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선수로 자랄 가능성 역시 높다. 이번 사건을 통해 기성용은 분명 많은 것들을 배웠을 것이다. 현재 기성용의 미니홈피는 모든 메뉴가 닫혀 있는 상태. 다시 미니홈피 메뉴가 열리는 날, 예전처럼 열린 마음으로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성용의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