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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태극전사들도 룸살롱을? 충격, 또 충격







얼마 전 벌어진 국회위원들의 룸살롱 파문을 다들 기억할 것입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몇몇 국회의원들은 지난 22일 대전 7개 기관 국감을 마친 뒤 룸살롱 방식으로 운영되는 모 단란주점에서 폭탄주 파티를 가졌습니다. 성접대를 받은 국회의원이 있었는가하면 그 모든 비용을 피감기관이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아주 큰 파문을 일으켰죠.


처음 국회위원들의 룸살롱 사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린 시절 어른들이 자주 하던 말씀처럼 “역시 정치하는 놈들은 썩었어. 그러니 우리나라가 이 모양이지”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경우는 조금 다르겠지만-우리나라 축구대표팀에서도 발생하고 말았군요.


뉴시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아시안컵 기간 중 대표팀 선수 중 일부(4명)가 숙소를 이탈, 자카르카 현지 룸살롱을 찾았다고 합니다. 선수들이 처음으로 룸살롱을 찾은 7월 13일은 바레인전을 이틀 앞둔 날이었습니다. 알콜의 타격 때문이었을까요? 우리 대표팀은 그날 김두현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1-2로 패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레인전이 끝난 후에도 다시 룸살롱을 방문하고 말았습니다. 이틀 후에는 다시 인도네시아와의 경기가 있었는데 말이죠. 다행히 인도네시아에게 1-0으로 이기며 8강에 진출했지만 만약 사우디 아라비아가 바레인을 대파하지 않았다면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뉴스가 보도된 이후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는 단합을 위해 맥주 몇 병 마신 것 가지고 다들 호들갑 떨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와중에 와전된 것 아니냐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축구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아무리 ‘단합’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술로 푼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요. 얼마만큼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그들을 괴롭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하여 음주를 했다" 사실은 분명 크게 잘못됐습니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룸살롱 아가씨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선수들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자신들에게 준 팁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간 선수들입니다. 뛸 때마다 빠른 박자로 뛰던 그들 심장 위에는 태극마크가 있었습니다. 선택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축구 선수들이 꿈꾸는 바로 그 태극마크 말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대한민국의 표상을 가슴에 단 채 뛰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끝없이 응원했습니다. 이란과의 8강전, 이라크와의 준결승전, 마지막으로 일본과의 3~4위전까지 말입니다.


혹시 아시나요? 매 경기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제발, 힘을 내세요. 이렇게 응원할게요”라고 외쳤다는 사실을요. 그러나 당신들은 우리의 한없는 마음과 간절했던 염원, 그리고 변함없던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아주 무참히 짓밟아버렸습니다. 더운 날씨 속에서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어가며, 물갈이 때문에 고통스런 와중에도 열심히 뛰던 그 모습에 가슴 저려했던 모든 순간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거짓 연기에  당한 것만 같은 생각도 듭니다.


네, 물론 압니다. 숙소를 이탈한 선수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선수들은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온 몸을 다해 뛰었죠. 후에 고트비 코치는 사석에서 제게 말했습니다.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는데도 다시 일어나서 뛰고 또 뛰는 모습은 눈물겨웠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절제와 자기관리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몇몇 노장 선수들이 아시안컵 기간 중에 보인 일탈행동은 그 어떤 눈물 어린 호소로도 용서받기 힘들 것입니다. 물론 시즌 중간에 술을 마시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사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나라 축구팬들은 그 사생활까지 간섭할만큼 참견쟁이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중요한 국제대회에 출전한 대표 선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시안컵 기간은 잠깐의 일탈이 주는 쾌감을 즐길 시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군요. "아가씨들에게 팁까지 주며 2차까지 갔다"는 내용에선 결국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웠기에 새벽 5시까지 그녀들과 함께 한 것인가요. 그것도 시합을 바로 앞두고 말입니다.


당신들은 우리 마음에 거대한 실망만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들이 뛰는 K-리그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작금의 현실에 아주 많이 마음이 아픕니다. 이 마음은 과연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다음은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http://www.kfa.or.kr)에 실린 <아시안컵 대표팀 일부 선수의 물의와 관련한 사과문> 전문입니다. (2007년 10월 30일 기준)


대한축구협회는 2007 아시안컵 기간 동안 일부 대표선수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있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당혹감과 송구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 여부를 파악해야겠지만 축구팬과 한국축구를 사랑하는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대한축구협회는 그동안 대표선수들이 소집되면 선수들에게 한국축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명예와 자존심을 갖고 행동도 ‘대표선수’답게 처신하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교육했습니다만 이번과 같은 사태를 낳게 되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대한축구협회는 조속한 시일 내에 이번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필요하다면 해당 선수의 징계 등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축구팬과 한국축구를 사랑하는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리며,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사고를 교훈삼아 대표팀 운영에 더욱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