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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부천FC창단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지난 일요일 부천종합운동장 옆 인조잔디구장. 매서운 날씨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찬바람을 막기 위해 준비해 온 각자의 머플러에는 ‘부천FC1995’ 마크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부천FC와 NB사커 간의 연습경기를 보기 위해 발걸음 한 부천FC1995(이하 부천FC) 서포터스였다. 연습경기까지 챙겨보냐고 묻자 이경희 회원은 “서포터가 있을 때 선수들은 110%의 힘을 발휘하는 법이니까요”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이내 되물었다. “부천FC가 팬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팀이란 건 아시죠?”

좌절 뒤에 꽃 핀 희망
2006월드컵 당시 한국대표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관중석에는 항상 눈에 띄던 걸개 하나가 있었다. ‘FOREVER BUCHEON’. 부천SK 서포터스 헤르메스가 독일 땅에 가져간 걸개였다. 그것은 2006년 2월2일 팀을 잃은 그날 이후 헤르메스의 정신을 대변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깊은 좌절과 시련에도 꺾이지 않은 헤르메스는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팀 창단에 생산적 에너지를 쏟자는 의견으로 합심했다. ‘부천축구클럽창단시민모임’은 그리하여 꾸려졌다.

이후 공모 끝에 포르투나2002를 창단대행업체로 선정하며 발빠르게 움직였다. 2006년 8월에는 에릭 로렌츠 분데스리가 국제팀장이 창단을 돕겠다며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들의 제의는 행정지원 및 지도자·프런트 연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론 내셔널리그 가입도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2007년 1월 포르투나2002와 독점적 관계를 끝냈고 창단 작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창단위원회는 새로이 TF팀을 구성한 뒤 마스터플랜부터 다시 세웠다. 마침 K3리그가 생긴다는 소식이 들렸다. 눈높이를 낮추자는 주장이 나왔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K3리그 성공 여부를 지켜보고 삽을 뜨기로 했다. 다행히 K3리그는 초반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출범했다. 특히 서울Utd.의 선전과 돌풍은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이에 탄력을 받아 2007년 9월에는 창단모임을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했다. 배기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위원장으로 위촉됐고 스폰서 유치도 한결 쉬워졌다. “TF팀에서 스폰서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박영수 수석코치의 전언이다. 그러나 정민 팀장은 비영리법인 인가 이후 비로소 결실이 드러났다고 회고했다.

창단모임을 동아리 수준 정도로 생각했던 기업들도 비영리법인화 이후론 태도가 달라졌다. 덕분에 SK에너지(3년간 6억원) 스포츠토토(3,000만원) 다음커뮤니케이션(1억원의 마케팅지원) 카카(5,000만원 용품지원) 등과의 후원 계약도 무난히 이뤄졌다. 일련의 과정에 잡음은 있었다. 최고액을 제시한 스폰서가 SK에너지였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SK에너지는 부천SK의 모기업인 SK그룹 계열사 중 하나. 이에 대해 정민 팀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과거에 얽매이기 보단 ‘창단’이라는 새 길을 걷고 싶었다. ‘창단에 도움이 된다면 받아라’던 안양 서포터스의 조언도 참고 했다. 무엇보다 SK에너지는 우리가 가진 잠재력과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SK에너지가 3년간 아무 조건 없이 우리와 스폰서십을 맺길 원한 것은 단순한 보상차원이 아니다. 우리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다. ‘진정한 부천FC가 돌아온다’던 그들의 외침은 결국 2007년 12월1일 현실이 됐다.

K3리그, 드디어 시작이다
현재 부천FC는 약 40명의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2007년 10월 강남TNT를 흡수하며 34명의 선수들이 부천FC로 이동했다. 나머지 선수들은 2007년 11월17일 열린 공개테스트를 통해 보충했다. 지원자 160명 중 최종적으로 16명이 뽑혔다. 10대 1의 경쟁률은 그만큼 관심이 뜨거웠다는 방증이다. “처음엔 55명의 선수들로 시작했죠.” 김태륭 플레잉코치의 설명이다. 이는 곧 일부 선수는 훈련과정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선수단의 약 60% 가량이 서울에서 생활하지만 주2회(수,일) 부천에서 진행되는 훈련만큼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박영수 코치는 이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운을 뗐다. “선수 대부분이 주중엔 일하는 직업인이다. 때문에 수요일 연습시간은 퇴근시간과 늘 맞물린다. 그런데도 먼 길을 마다 않고 불평 없이 내려온다. 이런 선수들의 고충을 알기에 항상 미안하다.” 선수들을 향한 박 코치의 내리사랑은 다음 말에서도 드러났다. “직업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90분 동안 지치지 않는 몸을 만들기란 상당히 어렵다. 선수들도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훈련이 없는 날이면 각자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체력을 기르고 있다. 자율적으로 노력하는 선수들의 자세는 칭찬할만하다.”

그렇다면 이런 선수들로 이뤄진 부천FC는 과연 어떤 팀일까. 일단 선수단 평균연령이 약 26세로 젊은 편이다. 이들이 표방하는 팀 컬러는 ‘공격축구’. 젊은만큼 활동력과 기동력이 좋다는 강점 때문이다. 곽창규 감독은 “우리가 말하는 ‘공격축구’는 재미있는 축구를 뜻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플레이를 펼칠 것”이라 말했다. 과연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호기심이 생긴다. 아울러 어떤 팀을 라이벌로 꼽는지 궁금했다. 박 코치의 답은 예상과 달랐다.

“대부분 서울Utd.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준우승팀 화성신우전자를 지목하고 싶다. 특례업체 특성상 선수단 동원과 훈련이 쉬울 수밖에 없다. 타 팀에 비해 조직력을 기르기 용이한 조건을 갖춘 까닭에 가장 경계해야할 팀이다.” 올 시즌 부천FC가 세운 목표는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그런데 곽 감독은 “최고보다는 최선이다. 열심히 하다보면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지 않겠냐”며 은근슬쩍 우승을 의식하는 듯한 뉘앙스를 내비쳤다.

새로운 꿈을 위한 도약의 발판대
“팀 창단 당시부터 선수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운동할 수 있는 장소만 있으면 된다고. 그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다시 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같이 밝힌 박 코치에 따르면 부천FC 선수 대다수는 학원축구를 경험한 이력을 가졌다. 그 중 주장 이태권은 특히 눈여겨볼만하다. 수원삼성과 인천Utd.를 거친 K리거로 학창시절 U-20대표팀에 뽑힌 경력도 있다. 이종민 이길호 장경호 등도 불과 얼마 전까지 K리그에 적(籍)을 뒀던 선수들이다. 이인성 유병훈은 일본실업리그, 변재혁은 U-20대표 출신이다. 김태륭 플레잉코치는 유년시절 파리생제르망 유스팀에 4년간 몸담은 경험이 있다.

핵심 미드필더 권상태는 성남일화를 거쳐 지난해까지 고양국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계속 했다. 그는 “축구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자 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축구를 통해 인생의 희열을 느낀다. 다른 선수들 또한 같은 마음일 것이다”라는 말로 서두를 놓았다. “그렇지만 다들 불가항력에 의해 축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부천FC는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의 발판이 돼줄 것”이라 합류 소감을 밝혔다.


김태륭 플레잉 코치는 “모두가 꿈을 이루지 못한 가슴 아픈 사연들을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다시 뛸 수 있게 된 현실에 한껏 고무된 상태다. K3리그 참가는 못 다 이룬 꿈을 꽃 피울 소중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FC 선수들은 올 시즌 과연 어떤 결론을 맺을까. 이같은 우문에 권상태는 실로 현명한 답을 내놨다. “공은 둥글기 때문에 축구엔 늘 예외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도 결과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력할 것이다. 제2의 축구인생을 다시 시작한 우리에게 부천FC는 새로운 꿈을 향한 디딤돌이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