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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올 한해 추락을 거듭했던 축구스타는 누구일까.

일찍이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답다고 했던가. 하나 지난 유로2008에서 아스라이 무너지던 별들의 모습은 왠지 모를 씁쓸함만을 안겨줬다.

영원히 누릴 것만 같던 명성을 뒤로 하고 등을 돌리던 티에리 앙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젠나로 가투소, 그리고 페테르 체흐. 이들 슬픈 4인방의 지난 여름 날을 돌아본다.



킹, 왕관을 잃어버리다
프리메라리가 입성 첫해(2007-08시즌) 앙리가 세운 기록은 30경기 12골. 8년 간 ‘아스날의 킹’으로 군림하며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4번이나 수상했던 그로선 다소 실망스런 성적이다. 그러나 리그에서의 부진과 달리 대표팀에서 보여준 모습은 나름 준수했고 덕분에 의미있는 수확도 거뒀다. 앙리는 지난 6월3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 나서며 ‘A매치 100회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튀랑, 드사이, 지단 등에 이어 6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게 됐는데, 프랑스 스트라이커 출신으로는 최초라고 하니 더욱 값진 성과였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 간 레블뢰 군단이 빛나던 순간엔 늘 앙리가 있었다. 유로2008을 앞두고도 그를 향한 기대감은 여전할 수밖에 없었다. 유로2008 예선에서 팀 내 최다골(6골)을 터뜨렸다는 사실도 청신호를 밝히는데 한 몫 했다.

그러나 본선 첫 경기부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부상으로 루마니아전에 나서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가 빠진 프랑스대표팀은 결국 무득점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이후 앙리는 ‘죽음의 조 탈출’이라는 특명을 받고 네덜란드와의 2차전부터 출격했지만 수렁에 빠진 프랑스를 건지기엔 힘이 부족했다. 이날 앙리는 90분 내내 단 6개의 슈팅만 기록했을 뿐이다. 그중 단 하나 뿐이었던 유효슈팅이 다행히 골로 연결돼 망신을 면했으나 결국엔 대회 기간 중 앙리가 세운 유일무이한 득점으로 남았으니 이름값에 반(反)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이탈리아전에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공격의 활로를 개척하던 리베리가 초반 부상으로 교체되며 프랑스는 구심점을 잃었고 앙리는 단 2개의 슈팅만 기록하며 잔혹했던, 어쩌면 자신의 축구 생애 마지막 메이저 대회가 될 지도 모를 유럽선수권 무대를 초라하게 마감했다.

1200만 유로의 사나이, 부상에 무너지다
네라주리 군단에선 모두의 기대에 부흥하는 ‘믿을 맨’이지만 국가대항전에서는 유독 약한 면모를 보이는 이브라히모비치다. 특히 지난 몇 년 간 대표팀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노란 잠수함에 갇혔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듯하다. 유로2004 조별예선 당시 터뜨린 2골이 한동안 국제대회에서 기록한 마지막 득점이다. 2006월드컵 당시엔 스웨덴이 16강까지 진출했지만 그는 단 1골도 성공시키지 못했고 유로2008 예선에서도 ‘7경기 1도움’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와중 부상마저 발목을 잡았다. 무릎 부상으로 3월29일 라치오전 이후 리그 경기에 나서지 못하며 근 2달가량 결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팀 라게르백 감독은 “이브라히모비치가 공격의 방점을 찍어주길 바란다”며 무한한 신뢰를 보냈고 덕분에 주전 스트라이커로 낙점 받을 수 있었다. 출발은 경쾌했다.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2년8개월 만에 A매치 골을 터뜨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Man of the Match’로도 선정됐다. 그러나 또 다시 닥친 무릎 부상이 문제였다. 이브라히모비치는 무릎 이상을 느꼈음에도 스페인과의 2차전 출장을 강행했다. 일단 전반34분 동점골을 터뜨리며 마치 ‘투혼의 드라마’라도 쓰는 듯 했다. 하나 무릎 통증을 참지 못하며 결국 후반1분 로젠베리와 교체되며 그라운드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브라히모비치가 공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스웨덴이었기에 부상으로 인한 그의 부진은 8강 진출에 실패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오는 2008-09시즌부터 이브라히모비치는 1200만 유로를 연봉으로 받게 된다. 이는 그간 세리에A 최고연봉자(900만 유로)였던 카카를 능가하는 액수다. 덕분에 세계 최고의 ‘부’를 누리게 됐지만 신은 그에게 유로2008의 ‘명예’까지는 부여하지 않았다.

쓸쓸히 퇴장하다

거친 몸싸움을 두려워 않던 투쟁심도 세월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이번 유로2008에서 가투소 특유의 압박과 장악력은 도통 찾을 길이 없었다. 조별예선 첫 경기였던 네덜란드전 당시 중원에서 악전고투하던 그의 모습은 실로 안쓰러웠고 때론 무기력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기대 이하였다. 이 같은 가투소의 난조는 곧 이탈리아의 전력 저하로 연결됐다. 미드필드에서 압박이 실종되자 연방 공간을 내주며 밀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탈리아는 네덜란드에게 0-3으로 대패하며 C조 첫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후 가투소는 1차전에서 보여준 부진함을 이유로 루마니아와의 2차전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던지 도나도니 감독은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프랑스전에서 그를 중용하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결과는 2-0 이탈리아의 승리. 벼랑 끝에서 극적으로 8강행을 확정지었지만 애석하게도 가투소가 팀 승리에 일조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리베리의 부상과 아비달의 퇴장 등 연달아 터진 프랑스의 ‘불운’이 이탈리아에게 역으로 작용한 덕이 컸다.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프랑스전이 가투소에게 있어 유로2008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경고 누적이 화근이었다. 가투소는 역시 경고 누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 ‘콤비’ 피를로와 함께 스탠드에 앉아 스페인전을 지켜봤는데, 애석하게도 그때 모습은 앞으로 그가 처할 현실을 예상케 하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가투소의 나이도 어느덧 31살. 중원에서 바지런히 움직이며 눈부신 활동량을 자랑하던 젊은 날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로2008에서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랬다. 그렇게 ‘그라운드의 싸움 소’는 시나브로 ‘그라운드의 늙은 양’으로 퇴화하고 있었다.

고개 숙인 1인자
골키퍼의 삶은 도박과도 같다. 단 1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비운의 골키퍼는 어김없이 발생했다. 해당자가 체흐라는 게 놀라울 뿐이다. 3경기 6실점. 유로2008에서 체흐가 남긴 기록이다. 스위스와의 개막전을 무실점으로 선방한 것을 제하면 매 경기 3골씩 실점한 것이다. UEFA가 선정한 2007년 ‘올해의 골키퍼’로서의 위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정적 실수는 터키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발생했다.

당시 8강행 티켓 1장을 두고 1승1패 중이던 체코와 터키가 싸웠는데, 일단 초반 승운은 2골을 먼저 터뜨린 체코가 탔다. 그러나 아르다의 만회골로 2-1로 따라잡은 터키는 니하트의 동점골과 역전골로 체코를 무너뜨렸다. 역전의 빌미는 체흐가 저지른 통한의 실책에서 시작했다. 후반42분 크로스를 잡으려다 놓치는 바람에 동점골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세계 축구계 골리 ‘빅4’중 하나로 군림하던 체흐답지 않은 실수였다. 결국 터키전에서의 패배로 유로2004 당시 4강까지 올랐던 체코는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게 됐다. 그리고 이 같은 성적에 대한 비난은 고스란히 체흐에게 쏟아졌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은 “이제 첼시의 새 감독 스콜라리는 구단주 로만의 자금력을 이용해 새로운 골키퍼를 찾아봐야 할 것”이라며 ‘유로2008에서 망한 선수들 Top 10’ 중 2위에 체흐의 이름을 올렸다. 팀 내부에서도 비난은 있었다. 옳지 않은 처사이나, 코스탈 체코대표팀 단장은 “터키전 패배의 모든 책임은 체흐에게 있다”며 그를 공개 비난했고 체흐 역시 “조별예선 탈락은 전적으로 내 실수 때문”이라며 인정했다. 3회 연속 체코 ‘올해의 선수’로 뽑힌 바 있던 영웅은 이렇게 한 순간에 역적으로 몰리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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