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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서른셋 늦깎이 국가대표 송정현을 아시나요?

국가대표 소집명단이 발표될 때면 ‘깜짝 발탁’ 같은 수식어와 함께 갑작스레 언론의 관심을 받는 선수들이 생기곤 한다. 보통 대표팀에 첫선을 보이는 새내기들이 집중의 주인공인데, 주로 20대 전후의, 아직은 어린티를 벗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지난 10월 송정현의 대표팀 발탁이 더 화제가 됐는지도 모른다.

그의 나이 서른 셋. 축구선수로서는 서서히 뒤안길을 준비해야할 늦은 나이에 송정현은 대표팀에 입성했다. 그것도 생애 첫 발탁이란 이름 아래 말이다.



노력에 노력을 더했기에
“제가 제일 고참이라서 쑥스럽더라고요.” 대표팀 발탁 소감을 묻자 대답과 함께 씩 웃는데 눈가에 잔주름이 여럿 잡혔다. 송정현의 나이가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살다보면 중요한 시기에 한번씩 기회가 찾아 오는 것 같아요. 선수들도 마찬가지죠. 물론 모두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더디더라도 꾸준히 걷는 선수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니까요. 저 같은 경우, 그동안 선수로 뛰는 내내 누구보다 충실한 모습으로 노력했다고 자신합니다. 그래서 대표팀 발탁이라는 행운도 찾아온 게 아닐까요.”

담백한 어조였지만 그 속에는 하나 가득 자신감이 있었다. 송정현도 알고 있다. 그만큼 꾸준했기 때문이란 걸. 비록 부상 때문에 5경기 출장에 거쳤던 시즌(1999․2001)도 있었지만 그는 억척스러울 정도로 매달렸고 또 노력했다.

“처음 대표팀에 발탁됐을 때 허정무 감독님 제자라서 뽑힌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죠. 하지만 이래봬도 10년 동안 리그에서만 200경기 넘게 뛴, 나름 베테랑 선수입니다. 여기에 도움 하나만 추가하면 20-20클럽에도 가입(現23골19도움)하게 되고요. 제 스스로의 관리가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기록들이죠. 그동안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대표팀 발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송정현은 유독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대표적인 예가 그간 FA컵에서 보여준 활약상이다. 송정현은 2년 전 2006FA컵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전남이 9년 만에 대회 정상에 오르는 초석을 닦은 바 있다. 그리고 이듬해 FA컵에서는 결승2차전 결승골로 전남의 2연패 일등공신으로 거듭났다. 크게 도드라지지는 않았으나, 시나브로 길을 넓혔던 송정현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꿈이 아닌 삶 속에서 태극마크와 만나게 되었다.

가족의 힘
“아내가 종종 그랬어요. 젊었을 때 일찍 자기를 만났다면 2002월드컵 대표에도 뽑혔을 거라고. 물론 남편을 향한 아내의 욕심일 수 있겠고 저를 위로하는 마음이겠죠. 3년 전부터 그랬을 거예요. 대표팀에 들어가는 게 소원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처음 대표팀 예비명단 안에 제 이름이 올랐을 때, 매일 아침마다 기도를 하더라고요. 23명 최종명단에 들어가야 한다면서요. 대표팀 소집 첫날 잘하고 오라며 눈물 그렁그렁 흘리는 아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동안 고생만 시켜 미안했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짠해지더군요.”

2002년 겨울 송정현은 지금의 아내 조소영씨를 만났다. 부상 때문에 전남을 나와 지인들과의 연락도 끊은 채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이거 하나 드실래요?” 우연한 만남이었다. 어느날 카페에 앉아있던 자신에게 과일을 건네주던 누군가의 마음이 참 예뻤단다. 그때 처음 연을 맺었던 6년 연상의 아내는 그 후로 갈급하고 외로웠던 순간마다 그의 손을 잡아줬다.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거라고 송정현은 지금도 회상한다.

“예전에는 큰애에게 ‘아빠가 누구야?’하고 물으면 ‘전남드래곤즈 송정현 선수’라고 답하곤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국가대표 송종현 선수요’한대요. 전남에서 제 등번호는 9번이에요. 그래서 아들 녀석도 9번 유니폼을 입고 친구들과 축구를 하죠. 그런데 얼마 전에 유니폼을 아내에게 가지고 가 9자 앞에 1자를 붙여달라고 졸랐대요. ‘국가대표팀에서 아빠 번호가 19번이잖아’하면서요.”



허허 웃던 송정현은 보여줄 것이 있다며 가방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둘째는 항상 저를 위한 ‘하트’를 만들어줘요. 유치원에서 종이접기를 배우고 있는데 그 뒤로 종종 하트를 만들어서 제 손에 쥐어주곤 해요. ‘이거 아빠 잘하라고 만든 거니까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 갖고 다니면 다치지도 않고 골도 많이 넣을 거야’하면서요. 그런데 신기한 건 아이가 하트를 줄 때마다 제가 리그에서 골을 넣었는데, 그게 벌써 4번이나 되요. 아, 참고로 저 올 시즌 4골 넣었습니다(웃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송정현은 10월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후반 11분 기성용 대신 교체투입되며 역대 최고령 A매치 데뷔 순위 4위에 올랐다. 1954월드컵 이후 최고령 A매치 데뷔다. 송정현의 데뷔전은 누군가에겐 위안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희망으로 자리할 수 있는 의미있는 기록이다. 송정현 역시 모르지 않았다.

“기분 좋죠. 나이가 적든 많든 열심히만 하면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후배들에게 보여준 것 같아서요.”

시즌 초 무릎 부상으로 잠시 주춤할 때 지인들이 그에게 말했단다. 이제 쉴 때 됐잖아. 무슨 부귀영화 누리려고 그 나이까지 하니, 라고. 그 말처럼 서럽고 서운했던 것도 없었다고 송정현은 털어 놓았다.

“말디니(41세) 긱스(36세) 네스타(33세) 등만 봐도 그래요. 다들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이 가진 실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른만 넘어가면 전성기는 끝났다고 생각해요. 그 점이 못내 섭섭해요. 아직 체력적으로 문제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은퇴 운운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운이 빠지곤 했어요. 그런데 사람이란 게 참 이상하죠. 다시 리그에서 예전처럼 활약하고 또 이번에 대표팀까지 들어가게 되자 몇 년 더 해야겠다며 축하해주더라고요.”

올 시즌 많은 사람들은 송정현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송정현은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고 반문한다.

“저는 충실히 제게 주어진 몫만 해냈을 뿐이에요. 앞으로도 이 자리에 오래도록 있을 겁니다. 지켜봐주세요. 변하지 않는 송정현이 될테니까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저의 길을 걷겠습니다.”

에필로그
오후훈련을 앞두고 잠깐의 휴식시간을 빌어 가진 인터뷰였다. 사실 선수들에게 이 시간은 점심식사 후 나른해진 몸을 추스르며 낮잠을 취하는 달콤한 시간이다. 때문에 보통 이 시간에 인터뷰를 잡게 되면 선수들도 적잖이 아쉬워한다. 꿀맛같은 휴식을 포기해야하는 까닭이다. 여기에 인터뷰에 어느 정도 ‘도’가 튼 일부 선수들은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빨리, 그리고 대충 대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몇 번 호되게 데인 터라 데뷔 10년 차 송정현과의 인터뷰가 긴장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춰 등장한 송정현은 인터뷰를 위해 회색 후드 티셔츠와 라인이 잘 잡힌 진을 입고 나타났다. 포인트를 준 노란 잠바는 클럽하우스를 뒤덮은 은행나무와 더없이 잘 어울렸다. 머리는 헤어 디자이너 출신 부인이 아침 일찍 만져줬다며 웃는데, 그 모습이 마치 소년 같았다. 야외로 이동해 사진을 찍다 보니 오후훈련 시작 10분 전에야 인터뷰가 끝났는데, 송정현은 끝까지 초조한 기색 없이 최선을 다해줬다. 성숙은 그래서 아름다운가 보다. 영원히 프로일 수밖에 없는 남자, 송정현과의 뜻깊은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