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8일 강릉종합운동장. 빈자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농일전’ 혹은 ‘일농전’으로 불리는, 강릉제일고와 강릉농공고 간의 축구정기전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일개 고교경기로 쉬이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이들에게는 국가대항전 못지않은 중요한 경기였다. 축구의 불모지로만 생각했던 이곳, 강원도의 축구 열기는 예상 외로 뜨거웠다. 그리고 이러한 열기를 내년부터는 K리그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를 연고로 하는 ‘강원도민프로축구단(이하 강원FC)’이 창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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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창단을 준비 중인 광주시민구단이 답보상태에 빠진 것과 달리 강원FC의 창단 준비과정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 김병두 대한적십자사 강원지사 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강원FC는 지난 8월4일 3차이사회를 열고 ▲사업예산 승인 ▲자본금 확보방안 ▲신주발행 ▲사무국 구성 ▲사규안 승인 등을 의결하며 창단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일단 9월 안으로 사무국장과 팀장을 선발해 사무국을 구성할 예정이다. 앞으로 사무국은 ▲도민주 공모 ▲스폰서 기업 유치 ▲코칭스태프 구성 ▲홈페이지 개통 및 캐릭터 발표 등을 차례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후 11월 선수 영입을 완료한 뒤 오는 12월에 창단을 완료키로 했다.
초반 논란에 쌓였던 문제들도 하나씩 해결됐다. 춘천 원주 강릉 3대 도시를 돌며 홈경기를 갖기로 한 발표 이후 도마 위에 올랐던 경기장 사용문제는 다행히 실마리를 찾았다. 일단 전반기는 강릉종합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되 중․후반기부터는 의암빙상장 옆에 조성중인 춘천송암종합운동장을 사용할 예정이다. 차후 원주종합운동장의 시설 보강이 완료되면 이곳도 홈구장 목록에 추가시킬 예정이다. 사무국 소재지와 선수단 숙소 유치를 놓고도 갈등도 있었는데, 사무국은 도청이 위치한 있는 춘천에 두기로 결정했다. 선수단 숙소 위치는 사무국이 꾸려지는 데로 정할 계획이다.
내부적으로 창단을 위한 준비가 내실 있게 진행되는 가운데 프로축구연맹의 지원 또한 부족함이 없다. 일단, 창단을 제안하고 설득시켰던 만큼 정상적으로 리그에 참여할 때까지 도와주겠다는 게 연맹의 입장이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연맹은 11월에 열린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강원FC에게 14명을 우선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기존 14개 구단이 1순위 지명권을 강원FC에게 양보한 것으로, 실로 파격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실상 14개 구단 모두 제대로 된 선수수급 없이는 한 시즌을 꾸려나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대승적 견지에서 협력하기로 했다는 게 연맹의 전언이다.
강원FC는 특정 도시에 집중되지 않은 거도적인 구단을 표방하고 있다. 잔디교체와 야간조명 설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대대적인 시설 보수가 불가피한 원주종합운동장을 홈구장 목록에 더하려는 것도, 춘천 원주 강릉 3개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소속 체육회 관계자 등 창단준비위원회 발기인에 들어가 있던 5명을 ‘특별한 입김’을 막겠다는 취지로 이사회 구성에서 제외한 것도, 바로 이런 뜻에서 이루어진 사안들이다. 광역도시의 이름을 갖고 리그에 나서는 다른 팀(전북-전주, 전남-광양, 경남-창원)들이 한 도시에 집중되어있는 것과는 달리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게 강원FC의 각오다. 문병용 강원도체육회사무처장 역시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춘천 원주 강릉 등 특정 도시 중심이 아닌 범도민축구단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도내, 도시 간 힘 겨루기가 돼서는 안 된다”며 창단 목표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우려의 목소리
그러나 그 과정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강원FC는 3차이사회에서 구단 기본금 마련에 가장 큰 밑천이 될 도민주 총수를 400만주로 변경했다. 자그마치 2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실제로 창단과정에서 경남은 77억, 인천은 164억을 시민 주식 공모로 모은 바 있는데, 규모면에서는 경남과 인천을 능가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인천(GM대우)과 경남(STX조선)처럼 지역 연고의 거대 기업을 주주로 등에 업지 못한 상황에서, 창단 첫해 필요한 비용만 약 132억(창단비용 57억원 운영비용 75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도민주 총수 범위를 넓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강원FC에 스폰서십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이 적지 않지만, 크게 잡는다하더라도 80억은 넘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구단운영비용 중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선 도민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려의 목소리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미 타 지자체 시민구단 공모주 모집 과정 중엔 ‘자발’이 아닌 ‘동원’에 가까웠던 폐단이 몇 차례 있었다. 따라서 일각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이번 도민주 공모는 진정 내 고장 축구팀의 발전을 기원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발적으로 또 투명하게 진행돼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염려스러운 점은 따로 있다. 바로 강원FC가 추구하는 ‘거도 구단’의 실현 가능성 유무다. 강원도는 굽이 굽은 산악지형이 많은 지역 특성상 군별로 왕래가 뜸하다. 뿐만 아니라 태백산맥이라는 거대 산맥으로 가로막힌 영서지방과 영동지방은 언어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많은 부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최근까지 구단 사무국, 선수단 숙소 등의 유치를 놓고 춘천 원주 강릉 도시 사이에는 갈등도 있었다.
이는 “특정 도시 중심이 아닌 범도민축구단을 만들겠다”던 창단 목표에 반(反)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기에 실망감마저 불러 일으켰다. 그런 상황에서 로테이션 홈경기의 실시가 외려 연고의식을 막는 원인이 될지 모른다는 의견도 나왔다. 실제로 K리그 최초의 도민 구단을 표방했던 경남FC도 홈구장이 있는 창원 외에 밀양, 양산, 마산 등을 돌며 도민들을 끌어안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곳에도 ‘내 고향 팀’이라는 연고의식을 심어주지 못하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기대를 안고 간다
벌써부터 걱정스런 의견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크다는 뜻과도 통한다. 15번째로 K리그 무대에 뛰어들게 될 강원FC는 창단 전부터 이미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우선 관광의 도시로만 생각했던 강원도에 축구단이 생기게 됨으로써 K리그는 프로야구, 프로농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진정한 의미의 전국구리그로 거듭나게 됐다.
뿐 만 아니라 그간 강원도는 김주성 우성용 이을용 설기현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거 배출한 고장이었지만 또 한편 오랜 기간 프로팀 하나 없는 황량한 땅이기도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지역 유망주들은 밖으로 돌아야만 했으나 강원FC창단으로 “고향 팀에서 뛸 수 있다”는 새로운 목표와 희망을 갖게 되었다. 실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 벌써부터 지역 주민들은 스포츠산업을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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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준비위원회 역시 일련의 기대를 모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무거운 책임의식을 갖고 ‘선배’ 시민구단들의 수익모델과 구단운영방식을 벤치마킹하며 오늘도 땀 흘리고 있다. 그 땀방울이 봄바람에 마를 무렵, K리그 15번째 구단 강원FC는 킥 오프 휘슬과 함께 출항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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