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외국인선수 한도와 상관없이 아시아축구연맹(이하 AFC) 회원국 출신 선수를 더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일명 ‘아시아 쿼터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아시아 쿼터제 도입을 조심스레 준비 중이던 일본 J리그가 내년 시즌에 맞춰 본격적으로 이를 도입하겠다고 전격 발표했으며 AFC 역시 회원국 간의 선수 교류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지지하고 나섰다. 그간 ‘강 건너 불구경’ 태도로 일관하던 국내 축구계에도 부랴부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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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그에 국내 유망주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최근 몇 년 사이 팽배해졌다. 특히 프로축구연맹이 2006년 드래프트제를 다시 도입한 이후 청소년대표 출신 유망주들이 동해를 건너는 일이 부쩍 늘어나면서 근심은 가속화됐다. 그리고 이제는 K리그 클럽을 배제한 어린 선수들의 J리그 진출 소식이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닐 지경이다. 2007U-20대표팀 출신 박주호(미토 홀리호크) 배승진(자스파 쿠사츠)이 현재 J2리그에서 뛰고 있으며, 2008U-19대표팀 주포 조영철과 김동섭 또한 각각 요코하마FC와 시미즈S펄스에서 활약 중이다. 공수 양면에서 고른 재능을 보이며 2008올림픽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김근환 역시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에 전격 입단했다. 특히 올 11월 열릴 드래프트를 앞두고 눈에 띄는 대어가 없다는 평 속에서 유일하게 ‘1순위 중의 1순위’로 손꼽히던 김근환의 갑작스런 J리그 행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고교 및 대학팀 내 젊은 재능들이 드래프트를 피해 일본으로 진출하고 있는 가운데, J리그가 본격적으로 아시아 쿼터제를 시행한다면 “유망주들의 일본 진출은 더욱 가속페달을 밟게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FA자격을 획득한 중견 선수들의 이동마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적료 없는, 그러나 K리그에서 이미 검증된 중견 선수들은 즉시 전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기에 J리그 입장에서 참으로 매력적인 카드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불안한 기운이 감지되는 와중 “K리그도 아시아 쿼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K리그 역시 아시아 내 실력 있는 선수들을 확보해 J리그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위 주장의 핵심이다. 일부에서는 동남아시아, 중국, 중동 등지에서 유망주를 발굴해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방향은 다르지만, 마치 우리나라 드라마의 수출로 동남아와 중국을 점령했듯 해당 국가 스타 플레이어 영입을 통해 ‘K리그의 한류’를 일으키자는 이야기가 주 골자다. 실제로 국내 모 구단에서는 동남아 선수 영입과 동남아시아 투어 경기 등 마케팅 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워놨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려의 목소리
근래 세계 흐름이 그러하듯, 축구시장 역시 ‘글로벌’이라는 기치 아래 ‘발전을 위한 개방’을 지향하고 있다. 아시아 쿼터제의 큰 틀도 다르지 않다. ‘아시아 쿼터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아시아축구의 발전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K리그 역시 언젠가는 개방을 통해 안팎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현재 논의 중인 ‘K리그의 아시아 쿼터제 도입’은 K리그 발전을 위한 진정한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반대론자들은 “J리그 조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성급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일단 “J리그가 아시아 쿼터제를 시행해 우리의 유망주들을 빼가려고 하니 우리도 시행해야 한다”는 논리는 국내 유망주들의 ‘엑소더스’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관련해 대구의 변병주 감독은 “국내 선수들에게 J리그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연봉의 많고 적음은 핵심이 아니다. 리그 발전 수준, 서포터스 문화, 훈련 시스템, 체계적인 선수 관리 등 많은 부분에서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란 어렵지 않은가”는 말로 운을 뗐다. 변 감독은 “일본의 아시아 쿼터제 도입이 국내 유망주들의 J리그 러시로 이어질 것이라면 우선 왜 그들이 J리그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지 반성해야만 한다”며 “하루 빨리 제대로 된 기반을 만들어야 눈을 돌릴 선수들이 줄어들 것”이라 말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인 강영철 성균관대 축구부 감독은 “국내 유망주들의 무분별한 J리그 유출이 걱정된다면 드래프트제부터 전면 수정을 하는 것이 옳은 순서일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팀에 입단하지 못한다는 불만에서부터 계약금 없이 순위별로 연봉을 차등지급하는 시스템, 드래프트 탈락에 대한 불안감 등 많은 점에서 선수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구단과 선수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제도에 대한 보안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며 “국내 유망주들의 일본 유출에 대한 응전으로 성급하게 아시아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은 부작용만을 초래할 것”라는 견해를 밝혔다.
아시아 쿼터제 도입이 연봉 인플레를 야기시킬 것이라는 또 다른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K리그에는 용병 보유 제한만 있을 뿐 연봉에 대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백승권 전북 사무국장은 “기존의 외국인 선수 보유 숫자를 5명에서 4명, 그리고 지금의 3명으로 정하게 된 데에는 ‘인건비’라는 큰 이유가 있었다. 국내 선수 연봉과 관련해서도 과다지출이 누차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선수 영입은 일련의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교진 포항 사무국장의 이야기 또한 이를 뒷받침 한다. 정 국장은 “외국인 보유 카드가 하나 더 늘게 되면 많은 구단들이 경기력에 보탬이 되는 선수 영입에 집중할 것이다. 문제는 일본이나 호주 등 수준급 아시아국가 선수들의 몸값이 생각처럼 낮지 않다는데 있다. 성적을 위해 몸값 비싼 선수들을 영입하게 된다면 가뜩이나 환율이 폭등하고 있는 시점에서 구단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하석주 경남 코치 또한 “성적이 급한 팀은 즉시 전력감이 되는 선수와 계약할 수밖에 없다. 선수 몸값으로 적잖은 지출이 예상된다. 구단은 돈이 주머니에서 그냥 나오나. 투자라고 보기엔 감당해야할 출혈이 너무 크다”며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마케팅, 과연 실효성 있나
아시아 쿼터제를 통해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현재 동남아시아나 중국의 축구 열기는 일본 못지않을 정도로 뜨거운 기운을 자랑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국리그나 자국대표팀을 향한 것이 아닌,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 등 유럽리그에 치우친다는 사실에 있다. K리그가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수준급 축구 리그와 경쟁을 해야 하는데, 국내 팬들조차 불만을 표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중동은 또 어떠한가. 해외 진출이 비교적 활발한 중동 국가들의 톱클래스 선수들은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라는 더 큰 시장을 찾아 떠나고 있다.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 국가들은 막강한 오일 달러를 앞세워 최근 세계 축구 이적시장에서 ‘셀러’가 아닌 ‘바이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에 이들 선수들의 영입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겠다.
비교적 몸값이 싼 동남아 출신 선수들을 이용한 마케팅 전략 역시 회의적인 반응이 대다수다. 이들을 이용한 마케팅으로 창출해낼 수 있는 수익은 유니폼 같은 관련 상품 판매와 중계권료 수입, K리그 관람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수입 등이다. 그러나 수익 창출과 관련해 많은 구단들이 의문을 제시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김동진이 제니트(러시아)에서 뛴다고 사람들이 제니트 유니폼을 입고 러시아로 경기를 보러 가는가? 방송사들 또한 러시아리그 중계권을 외면하지 않았던가. 제2의 피아퐁이 K리그에서 대단한 활약을 벌인다고 해도 태국에서 당장 중계권을 살 지는 의문”이라며 ‘K리그 한류 마케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순기 제주Utd. 단장은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아시아 선수가 매력적이었다면 기존 3명의 용병 쿼터 안에 포함했을 것”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물론 김석현 인천Utd.부단장처럼 “동남아시아 선수 영입을 통해 모기업을 홍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상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경기 관람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밋빛 견해를 밝힌 구단 또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아시아 쿼터와 관련해 각 구단 사이에서 크고 작은 의견들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기에 프로축구연맹은 “실무위원회의를 통해 좀 더 논의할 예정”이라며 제도 시행 여부와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다.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아시아쿼터제의 기본적인 방향은 나쁘지 않다. 한국, 일본, 호주 등 발전된 프로리그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아시아 국가들의 유망주들이 성장하고, 이들이 다시 자국 축구 수준을 끌어 올리는데 이바지한다는 것, 더 나아가 아시아 축구의 상향 평준화를 유도하는 좋은 매개체로 작용할 것이라는 그림은 실로 고무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K리그가 아시아 선수들이 정착, 건강히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인지에 대해 먼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매년 외국인 선수 영입 경쟁으로 수십만 달러가 새나가는 작금의 구조에서 준비 없이 시행되는 아시아 쿼터제는 많은 문제점을 불러일으킬 확률이 높다.
기실 개방이란 체계적으로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축복이다. 지금의 K리그는 과연 준비된 상태인가? 당장 선수 연봉에 대한 합리적인 구조조차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섣부른 개방은 또 다른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점에서 “J리그는 ‘백년구상’이라는 장기계획 아래 모든 일을 진행 중이다. 반면 K리그는 체계적인 준비과정이 생략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던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선수의 말은 많은 부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나은 K리그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인 만큼 무엇보다 신중함을 요한다. 시행에 앞서 심도 깊게 논의할 필요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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