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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었을까요. 1996년 K-리그 데뷔 이후 줄곧 수원에서만 뛰었던, 그리고 지금도 뛰고 있는 원클럽맨 이운재의 은퇴 경기는 수원의 홈구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이것 역시 운명이었을까요. 전반을 무실점으로 마감하며 슈퍼 세이브를 보고 싶었건만 전반 26분 나이지리아에 1골을 내주며 바로 정성룡과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전반 중반 교체되면 보통은 벤치에 앉아 경기를 보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운재는 곧바로 락커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웬지 눈물을 속으로 삭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맺히는 눈물을 보여주기가 싫어 락커룸으로 가고 있다고, 그의 뒷모습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축구를 보았던 제게, 이운재는 언제나 국가대표팀 골키퍼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서 정성룡이 주전자리를 꿰차고 나왔을 때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겠지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고요.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운재는 이번 나이지리아전까지 17년 간 붉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A매치 공식기록은 132경기 114실점. 홍명보 감독(136경기)에 이어 최다 A매치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국내 GK로서는 최초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며 화려하게 빛났었죠.

1994년 월드컵 독일전에서 하프타임에 교체 출전해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데 이어 2002년과 2006년, 2010년 이렇게 4번의 월드컵을 대한민국 대표선수로서 치렀습니다. 2000년과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대한민국을 3위로 이끌기도 했고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이운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 다들 같을 것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내고 씩 웃던 장면이요. 제가 기억하는, 이운재의 가장 섹시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는 이란과 8강전에서 마다비키아의 승부차기를 막아내 대한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고 3-4위전에서는 일본의 여섯 번째 키커 하뉴의 슛을 선방해 3위 트로피를 조국에 안겼죠.

위기의 순간마다 대한민국을 승리로 이끈 해결사 수문장이었지만 관심과 사랑이 컸던 만큼 비난과 구설수도 많았습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때아닌 몸무게 논란이 일어 ‘돼운재’라는 별명과 함께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 영웅이 되어 돌아왔지만 뒤늦게 음주사건이 터졌고 대표팀 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로서 서는 마지막 순간 이운재는 행복했다고 소회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뛰어서,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습니다”라고요.

이제 파주에 소집돼 훈련을 소화하는 것도, 대표팀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 것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겠죠. 파주 가는 길도 며칠 전 그 길이 마지막 길이 되었죠. 그는 애써 참았지만 우리는 보았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던 그 순간 이운재가 흘린 눈물을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7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대표로 뛴다는 건요.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했겠죠. 하지만 그 세월동안 늘 몸무게 논란이 꼬리표처럼 이운재를 따라 다녔고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라는 조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가 17년 간 대한민국 골문을 책임질 수는 없었겠죠. 그 중압감에 무리한 다이어트로 2년간 결핵을 앓아야만 했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건너 뛰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얼마 전 수원에서 함께 뛰고 있는 한 선수가 제게 그랬습니다.

“운재 형을 보면 정말 안스러워요. 워낙에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식사시간에도 마음 놓고 밥을 못드세요. 저희가 먹는 딱 절반만 식판에 올려놓고 먹는 거 보면 저렇게만 먹고 배가 찰까?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데, 그런데도 형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시는 거 있죠.”

국가대표 선수라는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았습니다. 물론 당분간은 K-리그에서 당신을 볼 수 있겠죠. 여전히 수원맨이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은 가져도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 먹고 싶은 음식들, 조금씩 드셔보세요. 여자 주먹만큼만 밥 먹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요.

마음껏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밥 먹는 이운재,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대한민국 골문을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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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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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세상에 바뀌었다는 건 날이 가고 해가 갈 때마다 느낍니다. 트윗 상에서 내가 작성한 단문메시지가 나를 팔로우한 사람들의 핸드폰으로 전달되는 것도 신기하고 핸드폰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영상통화를 하는 것도, 제게는 참 신기한 세상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막연히 과학글짓기 대회 때, 수상을 목적으로 상상하여 적었던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 살게 됐으니까요.

몇년 전 커밍아웃을 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던 홍석천을 보며 왜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으며 눈물을 흘려야했을까, 했는데 이제는 다시 공중파에서 볼 수 있게 됐고 또 동성애가 주말 드라마 소재로도 나오니, 조금은 세상의 인식도 과학 못지 않게 바뀌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축구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나 세상 모든 스포츠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나 축구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지는 -축구를 하다 답답해도 그 공을 들고 뛰며 럭비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럭비에도 관심이 많아요. 6년 전 럭비월드컵을 취재하러 갔을 때 영국 럭비대표팀 선수에게 이번 대회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의 플레이를 보고 반했다며 흥분하자 그 선수는 한쪽 입술을 올리며, 그러니까 썩소를 지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호주랑 뉴질랜드? 걔네 절반 이상이 게이야. 그래서 난 그쪽 나라 팀이랑 경기하는 게 정말 싫어. 럭비는 종목 특성 상 뒤엉키며 싸워야하는데, 게이랑 뒹굴면서 뛰어야하다니! 너무 더러운 거 아니야?"

단순히 라이벌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되는 억지논리를 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2008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동성애자 선수에 대한 뉴스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죠. 당시 로이터통신이 동성애자 웹사이트 조사를 통해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1만 여명의 선수 중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선수는 15명이라고 발표했지요. 그중에 9명이 여성이었고 남성은 단 1명, 호주 대표팀의 다이빙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실제 동성애자 선수는 1천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맺음 때문이었죠. 그 기사를 읽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포츠 선수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기란, 쉽지 않겠죠. 동성끼리 경쟁해야하는데, 동성을 사랑하는 선수라면. 개인 스포츠가 아닌 단체 스포츠라면, 함께 뛰는 선수들이 과연 그 선수를 팀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선수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앞서 언급한 호주 대표팀의 다이빙 선수는 매튜 미참 선수입니다. 그는 당시 베이징올림픽에서 다이빙 남자 10m 플랫폼에서 호주에 금메달을 안겨주었죠.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며 했던 말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호주의 다이빙 선수로 알려지길 원한다. 내 삶에서 동성애와 다이빙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라고요. 동성애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성적 취향이고 이것과 스포츠선수로서 임하는 태도는 별개의 문제라고 세간의 관심에 딱 잘라 말했죠.

최근에 다시 한번 스포츠와 동성애가 이슈에 올랐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불의의 부상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한 발락의 에이전트가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 독일 대표팀을 'bunch of gays'라고 말했거든요. 해석하자면 게이소굴 쯤 되는데, 이 같은 발언을 한 미하엘 베커는 1999년부터 발락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으니, 독일에서는 나름 슈퍼 에이전트로 분류되는 사람이죠.

미하엘 베커는 이번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독일 대표팀 중 일부 선수들이 동성애자라는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전 독일대표팀 선수는 이 같은 사실을 밝히려고 했는데 문제의 그 선수는 바이(양성애자)였다고 하네요. 뭐, 사실 중년도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며 훈남 감독 대열에 오른 요아힘 뢰브 감독도 월드컵 기간 중 동성애 소문이 돌았는데요 -남다른 패션 센스도 그의 게이설을 뒷받침한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 그 때문인지 부인과 찍은 사진을 몇 장 공개하기도 했죠. 사진 속 뢰브 감독 와이프는 약간 후덕한 중년의 독일 아줌마 포스를 마구 뿜아내고 있어, 저도 그 사진을 보며 이 아주머니는 전생에 도이칠란드를 구했나, 하는 생각도 했더랬죠.
사랑에 있어 신분과 국경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평소 생각하며 살아온터라 성별 역시 전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 역시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성애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동성애를 버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하지만 난 동성애자인걸, 이라고 인정하기까지 쉽진 않았겠죠. 그래서 저는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더럽다며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만, 종교적 관점에서 생각하더라도 그 역시 조물주가 만든 소중한 생명체이고, 존중받을 권리는 당연히 있습니다. 돌은, 그렇게 쉽게 던지라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가끔 국내 프로축구 선수는 모두가 이성애자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있어도 부정하고 말 못하는 게 아닐까,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감추고 이성애자의 가면을 쓴 채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아주 가끔 품어본 적도 있고요.

몇년 전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선수였고, 그래서 인터뷰를 꽤 여러번 했기에 안면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조금은 편하게 축구가 아닌 다른 이야기도 하는 사이였거든요. 기자 대 선수가 아니라 다른 국적을 지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요. 그때 그 선수가 해준 이야기가 자신의 팀에 있던 코치가 양성애자였다는 겁니다.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양성애자였기에 동성에 대해 남다른 사랑의 감정도 꽤나 깊게 느꼈나봐요. 그걸 선수들도 조금씩 눈치챘는데 어느 날 락커룸에 앉았는데, 새로 들어온 이적선수 옆에 꼭 붙어 앉자마자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무릎과 허벅지를 만졌다지 뭐에요. 축구는 몸으로 부딪히며 하는 스포츠일 뿐 아니라 심장박동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흥분도, 열기도 대단한 스포츠고 또 무엇보다 팀 스포츠다보니 선수들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역시 남다르죠. 동료 선수가 골을 터뜨릴 때마다 얼싸안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곤 하는데, 때론 이게 남다른 애정표현처럼 보여 관련 사진들을 모아서 커플로 엮어 글을 쓰는 블로거들도 있죠.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는 기청용(기성용-이청용의 합성어, 브란젤리나 같은 합성어로 생각하면 되겠죠) 커플이 가장 유명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

어쨌거나, 그게 좀 파급이 셌나봅니다. 코치의 동성애적 기질을 선수들도 느꼈는데, 새로운 선수가 오자마자 직접적인 터치가 오가는 모습을 선수들이 목격했으니, 팀이 어수선할 수밖에요. 그래서 결국엔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고 하네요. 외국에선 동성애가 국내보다 관대한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스포츠계에서는 더 보수적인 것 같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선수들은 K-리그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잔다르크가 아닌 이상 성정체성 증명보다는 스포츠인으로서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선수들이 대부분, 아니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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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리그 신인왕의 주인공. MBC 축구드라마 <맨땅의 헤딩> 실제모델인 남자. 내셔널리그에서 3년간 절치부심하다 K-리그를 접수한, 인생역전의 사나이. 2009년 공격포인트 1위라는 기록에 걸맞은 괴물 공격수.

이제 겨우 K-리그 2년차에 접어든 아직은 신출내기이지만 김영후 선수를 수식하는 말들은,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의 존재가 그만큼 특별해졌다는 뜻이겠고 무게감이 점점 생겼다는 증거겠지요.

올 시즌에도 김영후 선수는 신인왕 징크스, 혹은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준수한 활약을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전남전에는 K-리그 데뷔 이후 첫 해트트릭에 성공했고 4월 수원전에서는 멀티골을 터뜨렸습니다. 유병수, 이동국에 이어 K-리그 국내 선수 득점 3위에 오르며 차근차근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K-리그 후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는데요, 김영후 선수를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솔직담백한 인터뷰를 원했고, 김영후 선수도 꽤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어요. 그래서 이번 인터뷰 컨셉은 "무릎팍도사"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더라고요.

인터뷰 중간 작년 한해 신인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한 유병수 선수에 대해 질문을 던졌더니 영후 선수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고요.

"솔직히 마지막까지 정말 확신을 못했고. 일단은 그때 유병수 선수가 막판에 정말 활약이 좋은 상태였고. 저는 막판에 좀 부진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이렇게 확정을 지을 수 없었고. 그런데 마지막에 플레이오프때 성남이랑 인천이랑 햇을 때 유병수 선수가 골을 못넣고 질 때. 그때는 조금 희망을 갖고 있었죠. 그때 만약 유병수 선수가 골을 넣거나 인천이 승리했거나 그랬으으면 저는 거의 포기를 했었을거 같아요."

"유병수 선수 보면 네 어색하죠. 솔직히 신인상 타기 전까지는. 조모컵 올스타전 갔을 때나 이럴때는 말도 많이하고 그래도 어느정도 좀 친하게 지냈었는데. 제가 신인왕을 타고나서부터 좀. 저도 좀 유병수 선수를 어색하게 대했던 것 같아요. 그 선수도 저를 그렇게 대했던거 같아요. 조모컵 때 거의 유병수 선수랑 제일 많이 얘기했던거 같은데. 다른선수들보다. (축구얘기만 했어요?) 할게 축구 얘기 밖에 없잖아요. 그냥 저희 강원FC랑 경기한거 그런 내용들을 얘기하고. 그래도 그런 경쟁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발전할 수 있는 것 같고. 그 선수는 어리잖아요. 전 나이가 많고. 유병수 선수랑 저랑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대요. 닮았으면 뭐. 유병수 선수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요?"

이건 2%에 불과하고요 나머지 98%는 아래의 영상을 클릭해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중간 중간 들리는 제 목소리는 애교로 넘어가주세요. ^^ 김영후 선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려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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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는 창단할 때부터 도민구단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도민을 위한 구단이 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매달 지역민들을 위해 선수단이 나서 봉사활동을 갖습니다. 년간 50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의무화하겠다고 최순호 감독님은 늘 말씀하시죠.

사실 지도자의 입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나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축구도, 봉사도, 소홀히할 수 없는게 바로 프로선수다, 라는 게 감독님이 내건 기치죠. 언젠가는 제게 나중에 내가 강원FC를 떠나더라도 이게 잘 정착되 매달 봉사활동하는 것이 '습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더군요.

겉치레 혹은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실천이라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전 강원FC 선수들과 중증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늘푸른마을>을 방문할 때였습니다. 그때 감독님은 팔을 걷어부치고 선수드과 같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시설을 청소하시더라고요. 이후 식사 시간에는 장애인의 식사 보조 도우미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중 하이라이트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노래자랑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생활 중인 장애인들은 노래방 기계에 맞춰 춤추고 노래부르는 걸 상당히 좋아하더라고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선수들은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뒤에서 쭈볏쭈볏 서있기만 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와서 손을 잡고 같이 추자고 해도 같이 어울리지 못하더라고요.

한데 최순호 감독님께서 나서서 장애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같이 노래를 부르시고 춤을 추시더라고요. 진심에서 우러나온 그 모습에 저는 정말 놀랐고 감동받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비록 팀 성적은 좋지 못하지만 이런 진정성을 가진 감독님이 이끄는 팀이라면 곧 부활할 것이고 모두의 귀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희망도 얻었고요.

이런 감독님, 여러분들은 혹시 보셨나요? 제게는 너무나 뜻깊은 시간을 안겨준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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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이번 월드컵에서 멋진 프리킥 골로 우리의 새벽을 뜨겁게 만들었던 박주영 선수가 프랑스로 출국했습니다. 8월부터 다시 시작되는 프랑스리그를 준비하기 위해 떠났는데요,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 생각했지만 현장에서 취소됐다는 소식만 전해졌습니다.

당초에는 출국 전 스탠딩인터뷰가 준비돼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건 최근 그를 둘러싼 뜨거운 감자, 다름 아닌 ‘결혼설’ 때문이었죠. 프리미어리그 빅클럽으로의 이적설에 이은 결혼설이라.

인터뷰 없이 굳은 표정으로 출국한 박주영 선수.

축구선수 박주영이 아닌 인간 박주영으로서, 그러니까 축구가 아닌 것들로 관심을 받는다든 사실에, 박주영 선수는 늘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늘 축구 이외의 것들에도 관심을 갖곤 하죠. 대중의 관심이 그렇다는 이유 아래서 말이죠. 그래서 그는 늘 미디어 앞에서 말을 아낍니다.

이번엔 참 갑작스럽게 결혼설이 터졌습니다. 서울 강남의 모 웨딩 전문 스튜디오에서 여자친구와 웨딩촬영을 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부터였죠. 마침 그때 즈음 치렁치렁,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한, 이마를 덮은 덥수룩한 머리가 예쁘게 다듬어졌고 살짝 펌도 들어갔더라고요. 기자들은 웨딩촬영용 머리라며 수군수군 댔죠.

결혼임박 기사가 나온 이후로 줄줄이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날 박주영의 에이전트는 핸드폰을 끄고 잠적했다는 사실이죠. 그런데도 출처도 없는, 또 박주영의 측근 혹은 지인이라는 내용으로 기사들이 쏟아졌는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측근 중 기자와 통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박주영 선수와 그의 여자친구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요. 박주영의 여자친구는 “나 결혼해?? 양가 엄마 아빠 나 쭈가 날짜도 모르고 장소도 모르는데.. 그들에 의하면 우리가 결혼하는구나”라는 글을 올려 황당한 심기를 드러냈고요.

사실 박주영 선수는 그날 정몽준 회장이 초청한 월드컵 16강 기념 만찬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었는데, 기자들과의 만남이 불편했던지 갑작스레 불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출국을 앞두고도 스탠딩인터뷰를 취소했고요.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이게 왜 기자들의 취재거리가 되야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도, 또 그의 대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에이전트도 노코멘트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전 이번 박주영 선수의 결혼설을 보면서 일단 제대로 된 취재 없이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받아쓰고 돌려쓰는 기자들의 모습에 적잖게 실망했습니다. 일단 쓰고 보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워낙에 팬들의 관심 역시 컸으니까요.

일련의 보도들에 지친 박주영 선수의 여자친구가 미니홈피를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 몇몇 사람들은 공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경솔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카더라 통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혼설과 관련해 마구잡이로 써내려간 기사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쨌거나 이렇게 사건은 이렇게 터져버렸고, 제가 만약 박주영 선수의 에이전트라면 핸드폰을 꺼버리는 대신 공식입장을 발표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세간의 관심은 박주영 선수의 결혼으로 향했고, 무작위로 써내려가는 기사를 막을 순 없을테니, 오히려 공식입장을 프레스에 전달해 정확한 이야기가 기사로 써내려가게 하는 거죠.

결혼을 한다면 지금의 여자친구와 하겠지만, 당장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등의 내용으로 말이죠. 추측성 기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박주영 선수 결혼설과 관련해 모두의 대처방식이 상당히 아쉬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개인사가 아닌 그의 축구사, 기왕이면 화려한 골들로 빛나는 축구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싶군요. 우리들의 축구천재, 박주영 선수의 새 시즌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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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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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지인들에게 그래도 월드컵 우승팀을 알겠지, 라는 생각에 이번 월드컵 우승팀을 물어보니 역시나, 정답을 빗겨난 대답들뿐이었습니다. 유로2008 당시 앙리 들로네컵에 이어 이번에는 월드컵까지 거푸 들어 올린 무적함대 스페인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먼나라 이야기였죠.

하나 우승팀 스페인은 몰라도 파울은 알더군요. 반칙의 영어 표현 Foul이 아니라 점쟁이 문어 Paul의 이야기입니다. 축구에 관심 없던 지인들도 파울이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경기 승패를 모두 맞힌 게 참 신통하다며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군요.

독일에서 살고 있는 2살 반의 문어 파울은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의 7경기와 스페인-네덜란드의 결승전까지 맞추며, 무려 8경기의 승리팀을 정확하게 예측한 덕분에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큰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사실 승패를 고르는 건 2분의 1의 확률이지만 8경기를 연속으로 적중시키는 확률은 256분의 1로 확 떨어집니다. 프로토의 달인이라도 8경기 연속은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문어 파울은 참으로 신통하게도 해냈습니다.

무엇보다 파울이 더욱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건 금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점친 펠레의 예언을 이겨냈다는 것이었죠. 알다시피 펠레는 늘 16강 진출팀을 시작으로 우승팀까지 매번 월드컵에서 열심히 지목하고 ‘설’을 풀어내지만 ‘펠레의 저주’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가 지목한 팀은 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경기에 패하며 서둘러 고국행 비행기를 타야했거든요.

그런데 파울도 스페인을 우승국으로 지목했고 펠레도 지목했습니다. 결국 파울의 예지력이 펠레의 저주를 이겨낸 셈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더 열광했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며,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편으론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선수가 스타가 아닌 동물이 스타가 된 월드컵이라뇨.

별들의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별보다 빛났던 스타의 쓸쓸한 뒷모습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신예의 비상에 박수쳤습니다.

그러나 유독 이번 월드컵만은 조용하네요. 남아공월드컵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거 예상했던 메시와 호날두는 침묵했으며 카카 역시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수아레즈의 신의 손 사건은 마라도나만 못했죠. 비야와 스네이더는 유로2008만 못했고요 외질과 뮐러, 수아레즈 역시 스타성에서는 2%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앙리와 오언이 외려 더 강렬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최다골 2위에 오른 클로제도 호나우도의 아성을 이겨내진 못했고요 근래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월드컵 스타 지단과 칸나바로만큼 빛을 발한 선수 또한 없었고요.

어쩜 빅클럽들간의 대항전, 챔피언스리그의 바쁜 일정 속에서 지칠 데로 지친 스타들에게 이번 월드컵은 고난의 행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쉴 틈 없이 바로 월드컵이 이어졌으니 팬들의 기대만큼 기량을 보여주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 언젠가 마라도나가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 중에 했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축구를 했다, 라고요.

오늘날의 축구판은 빅클럽들의 선수영입 경쟁으로 뜨겁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계적인 선수들의 몸값은 자신들이 가진 기량을 넘어서 이미 천문학적으로 올라만 가고 있고요. 빅클럽들은 그 싸움에 이기기 위해 더 크게 옵션을 걸고 베팅을 합니다. 뷰티풀게임에서 머니게임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축구란... 본질은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는 것만 같아 서글퍼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네요.

바라옵건대, 4년 뒤에는 진짜 축구를 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월드컵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마라도나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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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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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요르단과의 A매치가 끝나고 믹스트존에서 만난 기성용 선수에게 넌지시 물어봤죠. 그날 그의 단짝 이청용 선수가 데뷔골을 기록했는데 부럽지 않냐고요. 멋적을 때면 늘 고개를 살짝 위로 올린 채 수줍게 웃던 그는, 역시나 그 질문에 대답할 때도 천장을 바라보며 웃더군요. "너무 부럽죠"라면서 말이죠.

데뷔전도, 데뷔골도 늘 청용이가 빠르다며 아쉬워했던 기성용 선수. 그런 그가 북한전에서 홍영조의 PK골로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23분 김두현의 패스를 그대로 오른발 발리슛으로 성공시키며 한국에 동점골을 안겼습니다. 본인에겐 A매치 데뷔골이었죠. 그것도 2경기 만에 얻은 성과니 실로 값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요르단전에 이어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던 북한전까지. 허정무 감독은 기성용 선수에게 '공격적'으로 뛸 것을 주문하는 듯 했습니다. 특히 요르단전 때는 후반 말미 기성용 선수가 뛰던 공간은 거의 스트라이커와 다름없는 위치에 있었죠. 결국은 그의 공격적 움직임이, 찬스를 놓치지 않던 집중력이 벼랑 끝에 있던 한국대표팀을 구해냈군요.

북한전이 끝난 후 지인들에게서 꽤 연락이 왔습니다. 동점골을 성공시킨 저 샤방한 선수는 누구냐면서요. 경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성용 선수는 축구선수(?) 답지 않게 고운 외모를 자랑합니다. 피부도 얼마나 좋은지 볼 때마다 저는 부럽습니다. 햇볕 아래서 뛰는 선수가 어떻게 여자인 나보다 피부가 더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죠.


그랬던 기성용 선수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도움을 2개나 기록하는 등 날카로운 킥력을 선보이며  대한민국의 원정 첫 16강 진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청용 선수 못지 않게 화제의 중심에 오른 기성용 선수. 모델보다 더 모델 같은 외모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엄친아로 등극한 그와 진행했던 화보사진을 살짝 공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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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 촬영은 이청용 선수와 함께 했는데, 촬영 내내 두 선수가 티격대격하더군요. 배고플까봐 준비한 김밥을 내왔을 때 '빵'만 좋아하는 이청용 선수가 극구 사양하자 성의를 생각하면 먹어야되는게 아니냐며 화를 버럭내던 기성용 선수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답니다. ㅋ

늘 예의바르고, 또 수줍음도 많지만, 할 말은 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는 기성용 선수. 그 모습을 지금처럼, 또 언제나처럼 간직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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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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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3일. 올림픽대표팀이 일본과의 친선경기를 하루 앞뒀던 그날, 훈련장에서 정성룡 선수를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정성룡은 포항에 적을 두고 있었고, 플레이오프에서 수원에게 아쉽게 패한 뒤였죠.

“괜찮아요. 언제까지 그 게임만 생각할 수 없잖아요. 수원에게 진 건 마음 아프지만 이제 다음을 준비해야죠. 물론 아쉬운 마음은 조금 있지만요. 아직까지 한 번도 우승이란 걸 해보지 못해서 욕심은 있었어요. 작년 2군리그에서도 4강에서 떨어졌거든요. 그렇지만 올해 처음 1군에서 뛴 거잖아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에요.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제 막 시작했다, 며 예의 변함없던, 그 느릿느릿한 말투로 담담히 속 이야기를 털어놨던 정성룡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포항에 왔을 때만해도 2군에서 게임 뛰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김)병지 형이랑 (조)준호 형도 있었고, 저까지 합해 골키퍼가 5명이나 있었거든요. 전 그저 형들 게임하는 거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건요, 그가 결국엔 꼭 4년 전 제게 말했던 그 꿈을 이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제가 원래는 스위퍼였는데 중2 때부터 골키퍼로 뛰었거든요. 그때가 마침 프랑스월드컵 기간이었는데, 네덜란드전에서 보여줬던 병지 형 모습에 반했어요. 우리나라가 5-0으로 졌지만 형의 움직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때부터 좋아하게 됐어요. 그 후 제주도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제주도에서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가 열렸어요. 그때 볼보이한다고 골키퍼 뒤에 있었는데 그 골키퍼가 병지 형이었어요. 평소 존경하던 선수가 바로 제 옆에서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다고 다짐했죠. 열심히 해서 꼭 형처럼 국가대표 골키퍼가 되겠다고 제 자신과 약속했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형이랑 같은 팀에서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그게 더 운동에만 전념하게 된 계기가 됐고요.”

그날 정성룡이 해줬던 이야기 중에는 가슴 아픈 가족사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체구는 크지만 눈이 참 슬퍼 보인다고, 눈물이 많은 사람 같다고 말이죠.

“눈물이요? 원래는 많았어요. 음… 많았는데…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그날 다 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눈물이 안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서귀포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요. 저 혼자 제주도로 갔어요. 부모님은 분당에 계셨고요. 그런데 제주도 간지 얼마 안돼서, 그러니까 막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께서 저희 집에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따라 갔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하시더니 저를 장례식장으로 데려가시더라고요.”

“음… 원래 몸이 안 좋으셨는데… 갑작스럽게… 그러니까 참으로 갑작스럽게 그렇게 떠나셨어요. 그날 병원 뒷길에서 엉엉 울었어요. 한참 울다 이제 내가 가장이니까 강해져야겠다. 성공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프로 갈 때만해도 계약금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계약금 받은 걸로 어머니께 집도 사드리고, 빚도 갚았어요. 음… 그렇지만 그걸로 효도했다 생각하진 않아요.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죄송한 마음뿐이거든요. 늘 제 뒷바라지만 하셨어요. 그런데도 전 항상 제 생각만 했고요. 용돈 달라고 떼도 많이 쓰고.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는 참 강한 분이세요.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렇겠지만요.”

어떻게 보면 청소년대표팀을 거쳐 올림픽대표팀, 그리고 이제는 국가대표팀까지. 이 정도만 듣다보면 엘리트코스만 밟은 신의 아들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004년과 2005년 박주영의 유명세 때문에 유독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청소년대표팀에 몸을 담고 있었을 때는 차기석의 그늘에 가린 2인자였습니다. 프로 데뷔전도 입단 3년 만에 치러야 했으니 꽤 늦은 셈이었죠.

“항상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기회는 오니까. 그런데 자주 오지 않는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매일 준비하며 기다렸어요. 기분이요? 그냥 덤덤했어요. 아직 더 많이 경험을 쌓아야 하잖아요. 좋아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K-리그 데뷔전을 마친 소감이었는데요, 이번에 월드컵을 치르며 느낀 소감과 참 비슷하지요? 이때 정성룡은 A매치 데뷔전도 어서 빨리 치르고 싶다며 간절한 소망도 드러냈었죠.

“저도 A매치 뛰고 싶죠. 진짜. 뛰어보고는 싶지만 무슨 일이든 쉬운 건 없잖아요. 조금 더 노력하고 기다려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에 대표팀에 있으면서 쟁쟁한 선배들 밑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언젠가는 제게도 기회가 오겠죠. 어떻게 보면 아주 큰 경쟁의 장이잖아요. 그 경쟁 속에서 좋은 날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어야죠.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또 과감하게.”

지난 십년간 이운재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수문장 자리. 이번 월드컵에서 그는 그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결과에 상관없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그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두었겠지요. 어쩌면 은퇴하는 그날까지 그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연습에는 장사없다던 미니홈피 속다짐처럼 땀 흘리며 준비했겠죠.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정성룡 활약 영상>

“나이지리아전이 끝나고 16강을 확정짓던 순간 아버지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4년 전 꿈을 이룬 지금, 이제는 4년 후의 더 큰 꿈을 떠올립니다.

“열심히 했어요. 경기 내용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아쉽긴 하지만 아쉽다고 그 경기만 생각할 순 없잖아요. 이제 또 다음을 준비해야하죠.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다시 인사드릴게요.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17살의 봄, 엄마를 지켜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아직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소년은 그렇게 껍질을 벗고 채 자라지 않은 생살을 드러내며 세상과 싸웠고요. 그래서 꿈을 이룬 지금 이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럽게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지낸 세월의 굴곡만큼, 앞으로는 그의 말처럼 웃는 일들만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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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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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선수가 2006 독일월드컵을 마치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팀의 결과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정말 축구를 사랑한다면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그들이 걸어온 여정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볼 수도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박지성은 바로 그런 점에서 당시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거 같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대한민국은 사상 처음으로 원정에서 16강 진출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조금 더 맛보아도 좋으련만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의 열기가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정상에서 박수칠 때 떠나자가 이유였지만, 퇴임 기자회견 중 나온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했습니다.

“잘못해서 비판받는 건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인식공격성 댓글이 지나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힘들다. 조금은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허정무 감독은 인터넷 댓글을 안 본지 10년이 넘었다고 덧붙였죠. 10년 전 허정무 감독의 부친이 돌아가신 그때, 관련 기사에 달린 고인을 향한 악의적인 댓글을 읽고 허 감독은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전혀 댓글을 보지 않는다고 하니 당시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그랬기에 허 감독은 가족들이 더 이상 축구인인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는 일도, 아파하는 일도, 또 힘들어하는 일도 없기를 바랬겠죠. 영광의 순간을 더 만끽하고 싶은 마음도 컸겠지만 가족의 평화 역시 바라는 마음 역시 컸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퇴임을 결정하는데 또 다른 영향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허정무 감독의 부인 최미나씨도 최근 “가족들이 그동안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친분이 두터웠던 기자에게 속내를 비추기도 했으니까요.

아마도, 대다수 축구인들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겁니다. 몇 년 전 터진 기성용 선수의 미니홈피 사건이 문득 떠오릅니다. 당시 기성용 선수는 올림픽대표팀이 연일 졸전을 펼치자 급기야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악플을 다는 네티즌들을 향해 “답답하면 너희들이 축구하던지”라는 글을 메인화면에 쓴 적이 있었죠.

당시 언론과 팬들은 기성용 선수의 이러한 행동이 경솔했다며 몰아세웠습니다. 그때 전 기성용 선수가 K-리거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무명이었을 때 인터뷰를 한 덕분에 나름 안면이 있었습니다. 워낙에 애어른 같던 선수였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왜 그랬냐며 이것 또한 곧 지나갈 거니까 힘내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워낙에 안팎으로 부침이 심해 답장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침 답장이 왔더군요. 하고 싶은 말을 문자에 다 담기에는 부족했나봅니다. 그가 보낸 멀티메일 속 이야기를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축구를 못한다면, 저 하나만 몰아세우고 욕하고 비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왜 그들은 저희 아버지, 어머니를 거론하며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족들이 악플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들었어요. 제가 경기에 나서 기대에 못 미친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못했다고 제 가족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한 네티즌들도 어느 정도는 잘못하지 않은가요? 축구를 못해서 제가 마음에 안 든다면 저한테만 욕했으면 좋겠어요. 축구를 하면서 못해서 욕먹는 건 감당할 수 있어도 제 가족들이 저로 인해 상처받는 모습은 볼 수가 없어요.”

악플과의 싸움. 언제부턴가 축구선수들 역시 이름이 알려지고, 누구나 알만한 공인이 되면 언제고는 한번쯤은 치러야할 통과의례고 연례행사인 듯합니다. 인터넷의 시대는 그렇게 축구선수들에게 피하고 싶은 ‘태클’을 안겨주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 한일전에서 모 선수가 자살골을 넣었던 적이 있죠. 그때 그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가장 먼저 했던 게 뭔지 아시나요? 버스에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호텔 방까지 달려가 미니홈피 방명록을 닫았던 일이라고, 누군가가 웃으면서 해줬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그 선수의 나이는 겨우 스물셋. 어린 나이였지만, 감당하기 힘든 말들이 쏟아질 것을 알았던 거죠. 어떤 이들에게는 코믹한 상황으로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그 선수에게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 악담들을, 어린 마음에는 감당하기 힘들었기에 그는 스스로 방명록을 닫는 것을 택한 거죠.

차범근 감독도 얼마 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마이크로블로그에서 한 네티즌이 무릎팍 도사에는 출연할 계획이 없냐고 물었죠. 최근 팬들의 질문에 진솔하고 재치있는 답변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던 만큼, 무릎팍 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간 차범근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겠죠.

“우리 식구들이 남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맘 놓고 하기에는 아직 가슴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아... 아직도 우리식구들은 98년을 기억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화제에 올리질 않거던…

그때 배운 게 무고한 일로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지. 지난번 우리 범석이 일을 지켜보면서도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거던… 이런 일에 휩싸이면 우선 본인이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팀이 망가져버려.

98년 내가 할 때도, 최용수가 불교라서 안뛰게하고 기독교인 김도훈이가 대신 뛰어서 졌다고 우기는데 돌아버리겠더라고…… 사실 김도훈은 염주를 손목에 차고 다니는 불교신자고, 최용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는데 말이야… 황선홍 선수도 마지막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난감해 죽겠는데, 내가 황선홍을 시기해서 안 뛰게 한다는 거야.

문제는 이럴 때 기자들이 알면서도 입을 닫는다는 거야.

그때 한국축구가 좀 될려면 바로 이럴 때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구나 생각하기도 했어… 그 후 나한테 늘 미안해하던 최용수는 2002년 월드컵팀 고참으로서 팀 막내 두리한테 아주 잘해줘서 고마웠지.

팬들은 그럴 수 있어. 그러나 대표팀에 해가되는 오해나 억지는 적극 풀어줘야 팀이 건강하게 꾸려지는 거야. 나나 우리가족은 그때 받은 상처 때문에 여성지나 토크쇼에 단 한 번도 출연을 안 하고 있어

두리가 반박자 늦어서 골 찬스를 줬을 때 나는 숨이 멎는 거 같더라고. 온몸의 피가 쏵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물론 두리 , 이럴 때는 차두리 선수라고 불러야겠다. 차두리 선수 개인의 문제도 아버지 입장에서 걱정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리마저 주저앉으면 오른쪽이 없다는 거야.

우리 범석이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생각해 봤어? 어린 나이에 그런 중압감을 이겨내기가 쉽겠냐고!!!! 통화할 때마다 범석이 좀 잘 다독거리고 위로하라고 이르기는 하는데 핵폭탄을 맞은 상처가 쉽게 회복되겠냐고!!! 두리가 실수 이후에 그냥 주저앉아 버리지 않고 경기에 집중을 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은 했지

우리선수들도 다 여러분들의 동생이나 친구 같은 나이야. 아버지나 선생님한테 야단맞아도 슬프고 화나고 그러잖아. 그런데 융단처럼 쏟아지는 비난을 그 어리고 작은 가슴으로 받는다고 생각해봐. 나는 마음이 너무 아퍼.

두리더러 한번 안아주라고 하면 분명 지 힘자랑 하느라 헤드락을 걸어버릴테니 범석이가 더 힘들 거고....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미안해하자고. 오케이?”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의 요지는 허정무 감독의 사퇴 뒤에 악플이 직접적인 원인이었기에 반성하자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축구선수들이,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근거 없는 비난과 악플 때문에 힘든지를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최선을 다하더라도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넘어질 때도 있고요. 2등도 아닌 정상에 멀리 떨어진 채 서 있는 자신을 볼 때도 있습니다. 자신은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지요.

다시 시계를 돌려봅시다. 학창시절로요.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던데, 중간고사 성적 하나만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고 가치가 매겨지고 1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쓸 모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그런 경험을 다들 한번쯤은 해봤을 거라고 봅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우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단지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부적격자 취급을 받았고 부모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경우와도 만나야만 했습니다. 특히나, 너희 부모님이 너를 그렇게 가르치시던, 너희 어머니는 이런 너를 낳고 미역국을 드셨을까? 식의 발언을 들을 때면 정체감이 상실되다 못해 모멸감까지 느꼈을 것입니다.

많은 축구인들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10대 말에서부터 20대 중후반까지, 사회 초년생에 해당되는 어린 나이에 그들은 참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였으니까요. 단 한 번의 패스미스로 골을 헌납했으니까요. 무수히 많은 찬스를 허공에 날려보냈으니까요. 바보같이 자책골을 기록했으니까요. 쓸데없는 반칙으로 상대팀의 선제골을 도왔으니까요.

팀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크고 깊은 만큼, 선수들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팬들의 실망감 역시 큽니다. 그래서 더 비판하게 되고 쓴소리를 하게 됩니다. 압니다. 저 역시 그런 순간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남편이고 혹은 남자친구입니다. 그 소중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욕지거리를 듣게 되고 비난을 받는다면, 그들의 가족은 어떤 마음으로 그 선수를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카테고리에 묶여 함께 비난을 받을 때 그 선수의 마음은 또 어떨까요. 그 자괴감과, 상실감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진정 축구를 사랑한다면 경기력으로만 판단하고 애정 어린 비판을 할 수 있는 우리이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축구를 축구로만 생각하는 우리 모습을 그려봅니다. 다음 월드컵에서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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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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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진짜로 34살!!”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이 끝난 후 이영표 선수의 나이를 확인 한 후 저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축구의 신이 있다면, 저 선수가 정말 34살이 맞습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죠.

그러나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실린 프로필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1977년생. 우리나이로 34살. 초롱이 이영표 선수도 어느새 노장의 대열에 들어섰더군요.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이영표는 이번 월드컵에서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뒤적였던 거죠. 34살이 24살처럼 뛸 수는 없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현장에서 직접 본 아르헨티나전. 현란한 개인기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이것이 최순호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선수들의 플레이구나, 라며 정신없이 지켜보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가 너무 대단해 저는 우리가 대패하고 있다는 생각도 잠시 잊었습니다- 또 한 선수가 저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영표 선수였습니다.

아무도 메시를 막지 못하고 있을 때, 그때마다 이영표 선수는 로이스 기자를 구하던 슈퍼맨처럼 쨘, 하고 나타나 메시를 봉쇄했습니다. 이영표의 밀착마크에 막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패스를 할 수밖에 없던 메시의 모습을 저는 꽤 여러 번 봤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이영표 활약상>


허정무 감독 역시 아르헨티나전를 마치고 메시 봉쇄법의 열쇠를 이영표가 갖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물론 전담 마크맨은 아니었지만 메시가 측면에서 문전을 향해 적극적으로 드리블할 때마다 이영표의 수비가담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메시에게 공간도, 슈팅도 내주지 않던 이영표의 맨마킹은 칭찬 받을만 했습니다.

이영표 역시 “(내가 마크할 때면) 메시가 슈팅을 많이 하지 못했다. (나는) 쉽게 공간을 주지 않았고 돌파를 허용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찬스 역시 많이 가지지 못했다”며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스러운 평을 내렸죠.

오버래핑 후 복귀 시간도 20대 전성기 시절 못지않게 빨랐으며 크로스 역시 꽤 정확했습니다. 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전에서 이정수 선수가 터뜨린 팀 첫 번째 골 역시 시작은 이영표 선수였다는 거, 이제는 다들 아시죠? 기성용 선수의 정확한 프리킥과 이정수 선수의 위치선정도 훌륭했지만 이영표 선수가 파울을 얻어내지 못했다면 이 모든 것들은 꿈속의 장면으로만 끝날 수도 있었죠. 그것을 현실로 나타날 수 있도록 첫 스케치를 그린 사람이 바로 이영표 선수입니다.

나이지리아와 2-2 동점으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같은 시간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2-0으로 이긴 덕분에 조 2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 이영표 선수는 울었습니다.

월드컵 4강에 오르던 그 순간에도 초롱초롱한 눈에는 그저 함박웃음만 가득했는데, 늘 웃기만 하던 이영표 선수가 울었습니다.

원정에서 치른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16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맛봤기에, 그 감동이 커서 그랬던 것인가. 나름의 추측을 했습니다. 후에 저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됐죠.

“축구를 하는 동안 2가지 기적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2002년 월드컵 당시 이룬 4강 진출이었고 다른 하나가 원정 16강 진출이었습니다. 오늘 그 소원을 다 이뤘습니다. 한국 축구가 저에게 요구한 사명을 오늘 경기를 통해 완수했다는 기쁨에 눈물이 났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이룬 2002 황금세대 중 하나로서 책임감을 느낀 듯 했습니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그는 16강 진출을 위해 뛰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받은 부름이었고 한국 축구가 그에게 맡긴 임무였습니다.

처음 축구화를 신었던 그날부터 꿈꿨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그 중심에 동거동락했던 23명의 선수들이 있었다고 말했죠.

나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감동은 바로 다음 멘트에서 이어졌죠.

“오늘은 모든 걸 잊고, 마음껏 즐기며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오늘만큼은 우리 선수 중 어느 누구도 비판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비판한다면 단호하게 오늘만큼은 그 비판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페널티에어리어에서 불필요한 반칙으로 PK골을 내준 김남일 선수를 두둔하여 한 말 같았습니다. 누군들 김남일 선수들 두둔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경기를 하다보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의욕이 불러낸 안타까운 실수라고 선수들은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나 십자가를 메고 막아줄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대신 김남일 선수를 위해 방패막이 돼 주는 말을 할 수 있다면, 박지성 선수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다들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가 많아도 첫 번째 월드컵이었던 선수들이 많았으니 김남일 선수를 두둔하니까 참으로 애매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박주영, 염기훈 선수가 그를 두둔하기엔 이미 지쳤기에 -지난 예선 2경기 동안 이미 축구팬들의 비난에 심히 시달린 선수들이었으니까요- 그들은 라커룸에서 조용히 “형,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 가운데 오늘만큼은 비판을 거부하겠다고 당당히 말했던 이영표 선수의 마음이 저는 참으로 멋졌고 감동이었습니다.

팀 내 캡틴은 박지성 선수이지만 뒤에서 그 캡틴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나무 같은 사람. 그가 바로 이영표 선수였습니다.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우리는 16강 진출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16강 진출은 대표팀 선수들이 함께 이룬 기적이지만,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그 길이 조금 더 험난했을지 모릅니다.

대표팀의 포백을 책임졌던 이정수, 조용형, 차두리, 오범석 선수 모두 수비수로 나선 첫 번째 월드컵입니다. 만약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조직력과 호흡으로 승부를 걸어야하는 우리 대표팀의 플랫 4는 금이 가다 못해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3번의 월드컵과 네덜란드를 거쳐 잉글랜드, 독일 등 유럽리그를 거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그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번 월드컵에서 쏟아냈고 토해냈고 전수했습니다.

만약 저에게 대표팀 선수들 중 MVP를 주라고 한다면 저는 이영표 선수 앞으로 달려가 FIFA컵보다 더 밝게 빛날 트로피를 건네고 싶습니다.  그 모든 골 뒤에는 이영표, 당신이 있었고 화려하게 스스로 빛나기 보단 팀을 위해 마지막 하나까지 아낌없이 태우는 그런 당신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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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Tag 16강 진출 병역면제, 16강 진출 병역혜택, 1966 월드컵, 2010월드컵, 4.25팀, FC서울, WBC, 가와사키, 경계인, 곤잘레스 이과인, 국방부, 기라드, 기성용, 기성용 프리킥, 김남일, 김남일 반칙, 김영후, 김정우, 김정훈 감독, 나이지리아, 남아공 월드컵,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병역논란, 대표팀 병역혜택, 대한축구협회, 디디에 드록바, 라이언킹, 리정금, 마라도나, 마라도나 사위, 마르체라노,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메시, 바르셀로나, 박주영, 박주영 골, 박주영 자책골, 박주영 프리킥, 박지성, 박지성 정대세 박카스 CF, 북한, 북한국가대표팀, 북한대표팀, 수와레즈, 수원삼성, 시망, 아게로, 아르헨티나 패배, 아르헨티나전, 아르헨티나전 패배, 에우제비오, 염기훈, 염기훈 노골, 오범석, 우루과이, 우루과이전 패배, 월드컵, 월드컵 16강, 을용타, 이과인, 이과인 해트트릭, 이근호, 이동국, 이동국 MVP, 이동국 득점왕, 이동국 월드컵, 이동국 월드컵 12년, 이동국 월드컵 한, 이동국 프랑스월드컵, 이영표, 이영표 눈물, 이을용, 이정수, 이정수 골, 이청용, 이청용 골, 자이니치, 정경호, 정대세, 정대세 어머니, 정성룡, 정성룡 득남, 정성룡 선방, 정이세, 정해성, 조국통일 세레모니, 조선학교, 조용형, 조중연 회장, 주장 박지성, 지윤남, 차두리, 차두리 눈물, 차미네이터, 차바타, 차범근, 차정혁, 천리마, 최순호, 최진철, 카르발뉴, 코카콜라 원정대, 테베즈, 티티아나, 한민족, 한반도, 호나우도, 호나우두, 호날두, 홍영조, 황선홍 밴드, 흑표범
우루과이와의 16강전. 후반 들어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아공에서 뛰던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던 한국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를 맞으며 선수들은 뛰었고 넘어졌고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섰고 그들을 보며 지구 반대편에 있던 우리는, 그들이 온몸으로 맞고 있던 그 비를 맞으며 응원했습니다.

경기는 졌지만 그들 가슴에 새긴 투혼, 이란 두 글자가 어울리던 경기였습니다. 뭐 비단 16강전만 그랬던가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보여줬던 경기는 투혼과 끈기가 어울렸고, 그들은 90분 내내 포기하지 않았으며 실로 아름다운 축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예전과 달리 빠른 패스로 공격의 주도를 잡았고, 문전을 향한 저돌적 플레이는 결국 동점골을 낳았습니다. 당황하는 대신 짧고 긴 패스를 혼용하며 기선을 잡으려는 침착함과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 무엇보다 돋보였습니다.

얼마 전 최진철 코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가 열렸던 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을 보고 있자니 그대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고요. 관중 대다수가 홈팬인 우리 국민들었음에도, 나서 자란 대한민국에서 열린 월드컵이었지만 그래도 긴장은 컸다고 합니다. 그 거대한 긴장과 두려움이 주는 무게에 눌려 빨리 경기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경기 시작 전부터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이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달랐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득점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롱패스를 보여줬던 과거 ‘뻥축구’는 볼 수 없었습니다. 넓은 시야와 패싱력이 돋보이는 조용형을 시발점으로 해서 후반 들어 계속 됐던 정확한 전진패스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졌지만 이긴 것과 다름 없는 경기였다는 호평도 많았습니다. 이렇듯 우루과이전에서 우리는 희망을 봤습니다. 그러나 풀어야할 숙제도 있었죠.

수아레즈에서 선제골을 허용할 당시 정성룡의 판단 미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돌아 들어가던 수아레즈가 노마크 상황에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도 그랬습니다. 3번째 골 상황이 오프사이드였기에 오심에 피해를 입은 결과가 됐지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당시 이과인을 마크하던 수비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 특히나 자주 보였던 장면은 메시에게 볼이 갈 때마다 2명, 3명의 선수들이 그를 마크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빈공간을 향해 달려들어가던 선수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자주 연출했다는 것입니다. 위험지역에서 너무나 쉽게 상대공격수를 놓쳐버리곤 말았죠.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누차 지적되던 수비불안은 여전히 대한민국 대표팀이 해결해야할 숙제입니다.

우루과이전에서 박주영은 의욕을 갖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만들어가는 과정일 얼마나 좋았던지 간에 공격수는 골로 말합니다. 많은 찬스를 만들었지만 그 찬스는 모두 크로스바를 맞고 나가거나 허공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AS모나코에서 주전 공격수로서 유럽무대를 휘젓고 있다는 박주영지만 그는 2% 부족했습니다. 대한민국대표팀의 다른 공격수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아레즈는 찬스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켰죠. 결정력과 집중력의 수준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상대가 극단적으로 전원수비를 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속에서 골을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실력의 척도입니다. 우리가 운이 없었기에 동점골을 터뜨리지 못했다고 하지만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처럼 유명한 말이 운도 실력이라는 말 아니던가요.

최순호 감독은 수비숲을 뚫고 골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기술이 좋아야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희망적인 것은 예전과 달리 축구지능과 테크닉이 뛰어난 이청용, 기성용에서 알 수 있듯 대표팀 내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입니다. 다행히 입때껏 누차 지적되던 골 결정력 부족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많이 희석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축구계를 쥐락 펴락하는 축구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창을 더 날카롭게 보완해야겠지요.

우루과이전 후반 이청용의 동점골이 터진 이후 우리 대표팀은 공격과 수비의 전환이 빨랐고 강한 압박과 짧고 정확한 패스웍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3선의 균형도 제법 잘 맞았습니다. 때문에 우루과이 선수들은 적잖게 당황했죠.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경기를 월드컵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요. 아마 손에 꼽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전 희망을 봤습니다. 그리고 풀어야할 숙제 또한 함께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보완을 통해 성장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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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Tag 16강 진출 병역면제, 16강 진출 병역혜택, 1966 월드컵, 2010월드컵, 4.25팀, FC서울, WBC, 가와사키, 경계인, 곤잘레스 이과인, 국방부, 기라드, 기성용, 기성용 프리킥, 김남일, 김남일 반칙, 김영후, 김정우, 김정훈 감독, 나이지리아, 남아공 월드컵,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병역논란, 대표팀 병역혜택, 대한축구협회, 디디에 드록바, 라이언킹, 리정금, 마라도나, 마라도나 사위, 마르체라노,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메시, 바르셀로나, 박주영, 박주영 골, 박주영 자책골, 박주영 프리킥, 박지성, 박지성 정대세 박카스 CF, 북한, 북한국가대표팀, 북한대표팀, 수와레즈, 수원삼성, 시망, 아게로, 아르헨티나 패배, 아르헨티나전, 아르헨티나전 패배, 에우제비오, 염기훈, 염기훈 노골, 오범석, 우루과이, 우루과이전 패배, 월드컵, 월드컵 16강, 을용타, 이과인, 이과인 해트트릭, 이근호, 이동국, 이동국 MVP, 이동국 득점왕, 이동국 월드컵, 이동국 월드컵 12년, 이동국 월드컵 한, 이동국 프랑스월드컵, 이영표, 이영표 눈물, 이을용, 이정수, 이정수 골, 이청용, 이청용 골, 자이니치, 정경호, 정대세, 정대세 어머니, 정성룡, 정성룡 득남, 정성룡 선방, 정이세, 정해성, 조국통일 세레모니, 조선학교, 조용형, 조중연 회장, 주장 박지성, 지윤남, 차두리, 차두리 눈물, 차미네이터, 차바타, 차범근, 차정혁, 천리마, 최순호, 최진철, 카르발뉴, 코카콜라 원정대, 테베즈, 티티아나, 한민족, 한반도, 호나우도, 호나우두, 호날두, 홍영조, 황선홍 밴드, 흑표범
축구선수들을 자주 만나다보면 그들의 고민의 늘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군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알다시피 축구선수들은 보통 30대 초반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물론 몸관리를 잘한 선수들의 경우 -강원의 이을용, 경남의 김병지, 포항의 김기동 등이 대표적이겠지요-30대 중반을 넘어 40을 바라보는 나이에게도 현역에서 선수생활을 하지만 실제 K-리그 대다수 선수들의 이야기는 아니죠. 최근에는 오히려 선수단 평균 연령이 점점 젊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 말은 곧 30살을 넘은 ‘준노장’ 선수들의 은퇴가 많아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로선수들은 꽤 많은 돈을 손에 쥡니다. 그래도 그들은 늘 불안합니다. 축구단은 그들에게 평생직장이 아니니까요. 또 군대를 가야하기 때문에 2년이나 돈을 벌지 못하니까요. 그들에게 2년은 꽤 큰 시간입니다. 대학 졸업 후 24살에 프로에 왔다고 봤을 때, 만약 32살에 은퇴를 한다고 한다면, 그는 프로에서 8년을 뛴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서 군대에서 보내는 2년의 시간을 빼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6년 동안 프로선수 생활을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만약 결혼을 일찍 한 선수라면 아내와 아이를 두고 군대를 가게 됩니다. 그 동안 가계수입은 ‘0’이고 그전에 저금해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아내와 아이는 축구선수인 남편을 기다리겠죠.

여기까지는 보통의 K-리그 선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나이대별 대표팀을 두루 역임하며 국가대표까지 입성한 엘리트 선수들의 경우에는 군대와 관련해 조금 다른 고민을 합니다. 군대 문제 때문에 자유롭게 해외진출을 하기가 힘들다는 게 그들의 고민인 거죠. K-리그와 국가대표를 오가며 얻은 명성으로 해외팀에서 오퍼가 들어오는데, 만약 그의 나이가 27세라면 축구선수로서는 딱 좋은 전성기의 나이대지만 이 나이는 이제 슬슬 군대 문제를 생각해야할 나이입니다. 28세에는 적어도 상무나 경찰청에서 군 생활을 해야 하는데, 해외 유명 클럽에서 딱 1년만 데리고 있을 선수를 위해 그 많은 이적료와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기는 힘듭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비슷한 레벨이지만 군대 문제에서 자유로운 선수를 영입하겠죠.

그래서 많은 축구선수들을 말합니다. 분단국가의 특성상 병역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국방의 의무는 국민이 지켜야할 기본 의무 중 하나다. 우리는 군대에 가기 싫은 게 아니다. 우리의 꿈을 해외에서도 펼칠 수 있도록 적어도 축구선수로 활동할 기간만은 군대문제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28세까지 미룰 수 있는 현 제도에서 35세 후 혹은 은퇴 후에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좋겠다. 등등의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들의 병역문제가 요즘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나이지리아전 종료 후 락커룸을 찾은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저는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왜 지금?’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는 겁니다. 회사에서 중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동안 야근에 지친 직원들에게 “고생 많았지? 오늘은 내가 쏜다!” 혹은 “직원들에게 각자 포상을 내리겠다”고 말하는 사장님 같아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군대문제와 관련해 축구선수들의 고민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바로 너무나 즉흥적인 협회의 태도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2007년 병역볍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병역특례 대상자를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제한했습니다. 기존의 월드컵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라는 조항을 없앤 거죠.

그런데 그때 협회는 당시 아주 조용하게 넘어갔습니다. 월드컵 16강의 경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했을 때만큼의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의 효과가 있으니 선수들에게도 병역혜택을 줘야한다는 문제제기 조차 없었습니다. 월드컵에 진출했을 때 나라가 얻을 수 있는 이익과 16강 진출 시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보고서라도 준비해 월드컵에 나서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군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그래서 지금의 박지성처럼 유럽리그를 휘젓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다져줄 수 있도록, 최소한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했던 거 아닐까요?

당시 많은 언론에서 월드컵 16강 진출에도 선수들은 군대를 가야한다는 등의 뉴스가 나왔지만 협회가 이를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병역혜택이라는 당근이 16강에 진출했으니 이제 할 일은 다했다며 다소 느슨해질 선수들을 채찍할 가능성은 큽니다. 8강을 넘어 4강진출까지 다시 한 번 노려볼 생각에 병역혜택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요?

이런 즉흥적인 모습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병역법 개정을 위해 이전부터 노력을 했더라면, 그래서 삭제된 조항이 다시 들어가거나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라는 조항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갑론을박은 나오지도 않았겠죠.

이미 다른 종목 선수들이 월드컵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 같은 자신들의 종목에서 유치하는 국제대회도 추가적으로 특례 조항을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정부는 2007년 병역특례 범위를 종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로 한정지은 바 있습니다.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의례적으로 병역면제를 받았을 때 이제는 다른 종목 선수들이 이번 대표팀의 예를 들며 병역면제를 요구할지 모릅니다. 만약 다음 WBC 대회에서 야구대표팀이 4강안에 들어갔다면 축구대표팀의 예를 들며 병역면제를 요청할 지도 모르죠. 이미 축구대표팀에 허한 ‘예’가 있기 때문에 월드컵과 WBC대회는 규모나 수준면에서 비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4강에 진출했다고 해도 병역혜택을 줄 수 없다고 과연 국방부에서 말할 수 있을까요? 그들로서는 선례가 있기 때문에 바로 ‘노’라고 말할 수 없겠죠. 그래서 이번에 그러한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WBC 준우승 시에도 병역혜택을 주지 않았다며 선례를 남기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 역시 현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받아 더 넓은 무대에서 자유롭게 뛰며 꿈을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말하고 행동하려는 협회의 모습을 보니 참 안타깝고 슬픕니다. 병역혜택을 줘야한다, 말아야한다고 서로들 싸우기 전에 문제의 본질과 발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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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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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하루종일 월드컵 16강 진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행복하하셨죠? 축구가 우리모두의 삶을 이렇게나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웃던 하루였습니다.

그 가운데 지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며 뛰었던 선배 선수들이 현 대표팀 선수들에게 감동어린 격려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을용의 편지>
다들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가슴 졸이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우리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며, 나이지리아에 선제골을 헌납했을 때 마치 현장에서 뛰던 선수들처럼 마음 안타까워하며 중계를 시청했고 또 응원했습니다.

국민들에게는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이자 내게는 참으로 멋진, 그래서 아낄 수 밖에 없는 후배들은 기어코 해내고 말았습니다.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삼 2002년과 2006년, 태극마크가 박힌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뛰던 그 시절의 열정넘치던 제가 떠올라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당시 한솥밥을 먹으며 대표팀에 있었던 후배 이영표가 눈물 흘리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습니다.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기쁘고 감격스러워하는 그 마음이 제게도 전달돼 저 역시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며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이 한국 축구를 위해 떠나기 전에 해야할 일들 중 하나가 바로 16강 진출이었습니다. 현 대표팀에 남아있는 2002세대들에게는 어쩌면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주어진 시간은 짧았으나 후배들과 함께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멋지게 썼다는 점에서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만해도 세계의 벽은 높았습니다. 빅리그의 선수들과 즐비한 다른 국가들과의 대결에서 한국이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컸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2002년을 기점으로 한국 축구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이제는 세계 선수들과도 해볼만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우리 가슴과 머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금 선수들은 분명 그때의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투혼도, 열정도, 실력도, 자신감도, 모든 점에서 저보다 뛰어나는 생각을 하며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성적을 거둬 국민들의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안고 돌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끝은 아니겠지요. 우리에게는 가야할 길, 개척할 길이 더 많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기쁨이 우리의 6월을 환희로 물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태극전사들이여, 승리의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뜁시다.


<최순호 감독의 편지>
제가 월드컵에서 뛰던 시절 대표팀의 수준이 6점이었다면 지금 대표팀의 수준은 8점 이상 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을 희망적으로 보았습니다. 축구 인프라가 발전하게 되면서 선수들 개인 기량과 조직력도 좋아졌고 내심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허정무 감독의 승부사 기질도 남달랐기에 승리를 향한 대표팀의 열망으로 이어져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긴장하기 보다는 경기 자체를, 또 축구라는 본질 자체를 즐기는 선수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축구는 이기기 위해서만 하면 안되고. 즐기는 마음으로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믿습니다. 그간 허정무 감독이 항상 강조했던 ‘즐기는 축구’가 결실을 맺게 된 것 같습니다. ‘유쾌한 도전’이 드디어 현실이 됐습니다. 16강 이후에도 선수들이 지금처럼 즐기는 축구를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최진철 코치의 편지>
용형아. 내가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나갔을 때, 그때 내 나이는 32살이었다. 서른을 넘기고 늦깍이 태극전사가 됐을 때, 기쁨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에서, 부산아시아드경기장에서 폴란드와 첫 경기를 치르게 됐을 때, 그라운드로 나서는 순간 관중석을 가득 메운 붉은악마의 물결을 보면서도 역시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이대로 이기지 못했을 때 이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텐데,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던 것도,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만 사실이다.

공격수는 단 한골만 성공시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수비수는 단 한골만 허용해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있을 지 모를 패배를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기 보단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냐는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싸워주길 바란다. 유럽 선수들과 많이 맞서봤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 대표 선수들도 이제는 그에 뒤지지 않는 실력들을 갖추고 있지 않더냐. 우리는 강하다. 가장 두려운 적은 우리 자신일 뿐. 그것을 잊지 말아라.


<정경호의 편지>
지성아!

2002년과 2006년과 달리 이번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의 주장으로 부임하며 선수들을 이끌어야했지. 네가 가진 모든 것을 그라운드에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캡틴’이라는 수식어도 너에게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 이제는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대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이곳 강원FC에서 2010년 새 시즌 주장으로 뛰게 되면서 모름지기 주장이란, 단순히 오른발에 차는 완장 이상의 책임과 가치를 알고 지켜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어. 네가 그렇지. 그간 대표팀 주장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그 어려운 고비들 앞에서도 너는 흔들리지 않았고 행동으로 실천하며 선수들을 격려했지. 주장인 네가 그렇게 중심이 잡혔기에 모든 선수들이 한마음이 되어 국민들의 염원을 이뤄냈다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나는 너를 ‘국민 주장’으로 부르고 싶다.

16강까지 정말 힘들었다며 이제야 속내를 털어놨지만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이겨내는 사람. 그게 바로 너라고 생각해. 일본 교토퍼플상가 시절에도 그랬고, 이어진 네덜란드와 영국생활에서도 너는 항상 당면한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너의 길을 걸어 갔잖아.

고교시절 너희 학교가 강릉으로 전지훈련을 오면서부터 알고 지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구나. 2006년 월드컵때는 대표팀에서 동거동락하며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는데….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전화로 늘 나와 가족의 안부를 물어보고 우리 딸 예진이의 돌 선물까지 챙겨주고. 참 속정 깊은 친구다. 너라는 사람은.

남아공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너의 플레이를 보며 달래고 있다. 내 몫까지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 한번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쓰는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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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대한민국 대표팀이 또 하나의 역사를 썼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원정에서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한 것이죠. 나이지리아와 2-2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은 같은 시간 그리스를 2-0으로 이긴 아르헨티나에 이어 2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그 역사의 순간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기쁘네요.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은 얼싸 안으며 기쁨을 표했고 이청용, 김동진, 이영표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다 천국에 있는 기분으로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듯 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이정수, 박주영, 김남일, 기성용 이 4인방의 기분이 더욱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전과 비슷한 위치에서 이정수는 기성용의 킥을 받아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마치 데자뷔와도 같았는데요, 수비수로서 팀 내 최다골(2)을 터뜨렸다는 점에서 새롭게 대표팀 내 골 넣는 수비수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마음고생은 적잖게 많이 했지요. 곽태휘의 부상으로 백업멤버였던 이정수는 소위 말하는 ‘대타’로 그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잘하면 본전이요 못하면 곽태휘가 있어야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 테니 얼마나 부담이 컸을까요.

그런 가운데 2경기에서 팀 첫번째 골을 넣어주며 16강 진출의 초석을 만들어줬으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특히나 아르헨티나전에서 4골이나 내주며 대패했기에 주전 센터백으로서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다시 한 번 선제골을 넣어줬으니 아르헨티나전 대패 아픔을 털고 천국에 갈 수 있었죠.

그리고 박주영. 아르헨티나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며 대패의 시발점이 됐다는 지적과 함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무득점이라는 수모를 함께 겪어야만 했습니다. 4년 전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스위스전에서 자신의 파울로 얻은 프리킥이 스위스의 득점으로 연결되는 바람에 16강 진출의 좌초가 됐다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멋지게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그간의 아픔을 한 번에 털어냈습니다. 평소보다 기도가 짧았고 포효가 꽤나 길었습니다. 동료 선수들이 얼싸 안은 순간에도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하늘을 향해 소리 쳤죠. 마치 그간의 가슴앓이를 포효로 풀어내는 것 같아 새삼 가슴이 짠해졌습니다.

김남일. 그에게는 이번 대회가 마지막 월드컵이 될 듯합니다. 각오가 남다를테지요. 그러나 기성용-김정우 두 중앙MF 조합에 밀려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김남일은 교체멤버로 밀려나고 말았죠. 오늘 나이지리아전이 이번 월드컵 마지막 경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김남일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의욕이 과했던 탓일까요.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의 깊은 태클로 결국 PK를 내주고 말았고 이는 나이지리아의 2번째 골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이겨주었고 덕분에 무승부만 기록해도 조2위로 16강에 진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남은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겠죠. 만약 졌다면 그의 축구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경기로 남았을 것이고 16강 진출 실패의 역적으로 몰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경기에서 천국에 와있는 듯 한 기분을 가장 강하게 느낀 사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성용. 스코틀랜드리그로 이적 이후 기성용의 경기력이 예전만 못하는 지적이 연일 계속됐습니다. 경기에 꽤 오래 나서지 못했고 그 때문에 경기를 읽던 그만의 너른 시야, 송곳 같던 패싱력, 정확했던 프리킥력들이 빛을 잃은 듯했고 급기야는 기성용 교체설까지 팬들 사이에서 흘러나왔죠. 그러나 기성용은 월드컵 본선무대에 가까워짐과 동시에 예전의 기량을 함께 회복했고 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전의 선제골을 모두 그의 킥으로 도왔습니다. 이정수의 머리를 향해 정확하게 올려준 기성용의 프리킥은 기라드라는 별명 대신 기긱스라고 불리기도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그간 절친 이청용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표현은 못했겠지만 많이 부러웠을 것입니다. 왜 자신에게는 그런 순간이 오지 않는지 자책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목표의식이 뚜렷한 기성용이니까요. 그러나 그는 골보다 멋진 프리킥으로 팀을 도우며 누구보다도 밝게 빛났습니다. 그간의 우려도 한순간에 불식했고요.

90분이 900분처럼 느껴졌다며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던 주장 박지성의 말처럼, 쉽지 않은 길이었지요. 16강으로 가는 길은요, 하지만 16강이 이 길의 끝은 아니기에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하며 뒤에서 지켜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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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44년만의 꿈은 그렇게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갔습니다.

21일 케이프타운 그린포티인트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G조 2차전에서 북한은 포르투갈에 0-7로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2002년 월드컵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독일에 0-8로 패한 이후 근래 들어 가장 큰 점수 차로 패한 경기로 남게 됐습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은 아시아국가 중 최초로 8강에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포르투갈을 3-0으로 앞서 나가며 4강 신화를 우리나라보다 먼저 쓸 뻔 했지만 국제 경기 경험이 부족했던 북한은 리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후 흑표범 에우제비우에게만 4골을 내주며 3-5로 역전패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이 보여준 모습은 호평을 받기도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44년 만에 다시 세계무대에 나선 북한. 지난 브라질전에서 보여준 경기 역시 1-2로 패했지만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벽은 44년보다 높았습니다. 44년 전 4골을 넣으며 북한 선수들의 선전을 8강에서 멈추게 만들었던 에우제비우는 자신의 후계자 호날두가 팀의 6번째 골이자 이번 월드컵 첫 골을 뽑아내자 엄지손가락을 들며 기쁨을 표했습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대세의 민족통일 염원 세레모니를 보지 못해 아쉬웠고 전반까지 밀어붙이던 기세가 후반 들어 급격히 무너지며 연속골을 내리 헌납하는 북한 선수들의 모습 역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북한대표팀의 김정훈 감독의 경기 후 기자회견이 참으로 인상적이더군요. 김정훈 감독은 0-7 대패를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며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국제대회에서, 그것도 가장 큰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월드컵에서 감독 자신의 잘못이라며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김정훈 감독의 경기 후 소감은 참으로 덕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감독의 전술이 완벽하지 못했기에 많은 실점을 한 것 같다”며 상황에 맞는 전술을 제때 구사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또 “실점 후 득점으로 만회하려고 하는 욕심이 강하다보니 공수의 조화가 맞지 않았다”며 “선수들이 흥분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이를 조절하지 못했다”며 다시 한 번 감독의 능력 부족으로 담담히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연달아 골을 허용하다 보면 선수들은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입니다. 미드필더까지 공격을 위해 전방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패스미스가 발생하다보면 단 한 번의 미스가 또 다시 실점으로 허용되기 쉽습니다. 대량실점은 이렇게 일어나게 되는 거죠. 오늘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준 북한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전반까지도 견고했던 북한의 수비가 후반 8분 시망에 2번째 골을 허용하고 난 후 급격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비가 많이 내렸고 국제무대 경험이 미천한 북한 선수들은 이러한 악천후 속에서 전반 체력을 이미 너무 써버린 듯 했습니다. 90분 동안 체력을 안배하며 뛰어야했음에도 조국에 1승을 안겨주겠다는 마음이 컸던 탓인지 전반에 그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쓰고 말았단 것이죠.

북한의 돌풍을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그래도 휴전선만 있을 뿐 본디 한민족이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의 대패는 많이 아쉽습니다. 홍영조, 정대세 등 북한의 젊은 피들이 이번 대회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패배의 아픔 속에서도, 감독으로서 오히려 더 많이 힘들어하고 아파할 선수들을 다독거리고 감싸주는 북한대표팀 김정훈 감독의 모습을 보며 저는 크나 큰 아쉬움 속에서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감독의 격려 아래 다시 명태 먹고 ^^ 마지막 경기 코트니부아르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며 다음 대회를 기약할 것이라 믿습니다. 아름답게 마무리할 북한대표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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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항에서 우연히 정대세 선수의 어머니 리정금씨를 만났습니다. 지인들과 함께 앉아 담소 중이었는데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드린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얼마 전 정대세 선수 어머니가 북한과 브라질과의 조별예선을 경기장에서 관람한 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하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죠.


당시 '이겨라! 천리마'라고 쓴 두건을 쓰고 아들의 한글이름이 새겨진 담요를 덮은 채로 -지금 남아공은 무척 춥답니다. 저는 겨울 패딩 점퍼를 입고 응원을 해야 했답니다. ㅠㅠ- 응원을 했던 어머니는 “대단히 잘 싸웠다고 생각한다. 오늘 경기로 북한에 대한 이미지도 변했다고 생각한다”며 “아들은 내 자랑”이라며 감격스러워 했죠. 


브라질전만 보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던 정대세 선수 어머니는 북한의 경기를 보지 못한 한국 축구팬이 정대세 선수가 못 넣어서 아쉬웠다며 홍영조 선수가 골을 넣었냐고 묻자 “지윤남 선수”라고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들 정대세 선수가 한국에서 정말 유명하다고 얘기해주자 정 선수 어머니는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압니다”라고 하셨죠. 옆에 계시던 한 아저씨께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만큼 좋아한다고 첨언하자 “아 그래요? 그것은 몰랐는데...”라며 굉장히 놀라는 모습이었고 또 그만큼 아들을 향한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마음에 감동받은 모습이더라고요.


박지성 선수와 찍은 광고 이야기도 물었는데 그 광고 때문에 여기저기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덕분에 추억도 많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박지성 선수 잘 압니다. 팬입니다”라며 아들 정대세 선수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알다시피 정대세 선수도 박지성 선수를 존경한다며 팬이라고 인터뷰 때마다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으니까요.


정대세 선수 어머니는 “아들과 북한 선수들이 잘해줄 거라고 믿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남과 북이 16강에 동시에 출전하길 바란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되는 걸 원합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척이나 확신에 차 있었고 말씀에서 힘이 느껴졌습니다. 정대세 선수가 강건한 것도 다 어머니 덕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브라질전 당시 북한 국가를 들으며 정대세 선수가 눈물을 정말 많이 흘렸죠? 아들이 눈물이 많은 건 막내라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막내라서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정이 많고 감성적이고 또 낙천적이라네요. 애교도 많다고 하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참으로 예쁜 막내 아들인 듯 싶었습니다.


이제 오늘 정대세 선수는 포르투갈과 조별예선 2차전을 치릅니다. 경기 시작 전 조국통일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혹은 통일 조국의 지도가 그려진 옷을 유니폼 아래 입은 뒤 골을 넣으면 벗어 보이겠다고 말했다고 하지요.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북한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일본에서 태어나 입때껏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언제나 경계인으로만 살아야했던 정대세 선수. 2008년 월드컵 예선 당시에도 북한 국가를 들으며 그는 펑펑 울었죠. 그때 “조국 통일이 가까워진 것 같았다”고 말했던 정대세 선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날 더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남과 북, 분단이라는 현실 아래 호위를 받으며 재빨리 버스에 올라타야만 했던 당시 풍경도 생각나네요.


통일 조국을 꿈꾸는 열혈남아 정대세 선수. 같은 민족이니까,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할 때처럼 뜨겁게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대세 선수 어머니. 어머니의 교육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멋진 선수를 우리는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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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1-4 대패에 가려졌지만 아르헨티나전은 이동국 선수에게는 참으로 의미 깊었던 경기였습니다. 1998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 이후 12년만에 월드컵 경기에 나선 뜻깊었던 날이었으니까요.


후반 35분 경, 몸을 풀고 있던 이동국 선수를 벤치에서 부르더군요. 교체로 투입되는 듯 했습니다. 중계 카메라에는 그 모습이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제 카메라는 계속해서 이동국 선수를 따라갔습니다. 얼굴에서는 약간의 긴장도 느껴졌어요. 안정환 선수가 쓱 오더니 잘하라는 의미로 엉덩이를 툭툭 치더군요.


그리고 대기심 옆에 서서 교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럴 수가. 또 골을 허용했습니다. 이과인의 해트트릭. 1-4로 스코어는 더 벌어졌습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이동국 선수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출전 시간은 짧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밀리고 있었고요. 그런 상황에서 원톱으로 뛰었던 이동국이 내밀 수 있던 반전카드는 없었습니다. 잘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이동국에서 볼은 오지 않았고 이청용의 패스는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아 받지 못했고요. 그 패스를 받았다면, 이라는 아쉬움도 컸고요.


오른쪽 허벅지 부상 때문에 월드컵 최종멤버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지배적이었지만 운명은 결국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20살 겁없던 나이에 월드컵을 잠깐 맛봤던  청년은 어느새 30대가 되어 인생의 마지막일지 모르기에 몸이 부서져라 뛰겠다며 월드컵에 임합니다.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트로이카 3인방 중에 하나였던 이동국 선수. 90년대 말이었던 시절, 처음으로 K-리그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선수가 바로 그이기에 저는 메시의 화려한 플레이 속에서도 저의 카메라는 이동국 선수의 움직임을 좇았습니다.


아프리카 밀림의 왕인 사자. 라이언킹이라는 별명처럼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진정 왕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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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아르헨티나와의 조별예선 2차전의 패배의 충격은 아직 가시지 않습니다. 1-4패. 1998프랑스월드컵 당시 네덜란드에 0-5로 패한 이후, 근래 들어 국제대회에서 가장 큰 스코어차로 진 경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이청용의 만회골로 1-2로 전반을 마칠 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는데 말이죠.

많은 분들이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에 질책하고 쓴소리를 하시는 걸로 압니다. 현장에서 직접 본 저는 참으로 처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메시와 이과인, 테베즈의 빛나는 플레이에 우리 선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했으니까요. 답답하기도 했고 상심도 컸습니다. 대한민국을 응원하러 왔는데 빛나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넋 놓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슬펐고 가슴아팠습니다.

현장에 있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제 카메라에 담긴 영상들을 포스팅했습니다. 나이지리아전에서는 그리스전에서 보여줬던 자신감과 활기찬 플레이가 부활하기를 바랍니다.


경기장은 아르헨티나 서포터들로 가득찼습니다. 정말 많이 왔더라고요.


첫번째 골 상황. 박주영 선수의 자책골로 판정이 나 마음 아팠습니다.


이과인의 헤딩골이 터지는 순간입니다.


이청용의 골은 워낙 기습적으로 터졌던지라 세레모니 장면만 찍었습니다.








기뻐하던 아르헨 팬들.


몸을 풀고 있던 김보경 선수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죠.


90분 내내 질주하던 메시도 휘슬이 울리자 지쳐 쉽게 못 일어날 정도로 힘든 경기였습니다. 무엇보다 패배의 아픔 속에서도 대한민국 팬들에게 인사하던 선수들의 모습을 보니 참 마음이 아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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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전반 7분. 코너 근처에서 이영표가 그리수 선수의 파울을 얻어 낸 뒤 기성용이 프리킥을 차올렸습니다. 문전에서 올라오는 볼을 보던 이정수가 그리스 수비수들 사이로 뛰어 올리며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2002년 월드컵 3-4위전 터키전에서 이을용이 터뜨렸던 우리나라 대표팀 월드컵 최단시간 골을 2분이나 단축시킨, 시원한 선제골이었습니다.

이정수. 그는 사실 대한민국 대표팀의 베스트 11은 아니었습니다. 허정무 감독의 애제자 조용형 - 곽태휘 두 센터백 콤비의 그늘에 가려진 제 3의 수비수였죠. 처음부터 선발을 장담하던 멤버는 아니었으나 곽태휘의 부상과 조용형의 대상포진 증세로 이정수는 그 공백을 메울 대안이었고, 덕분에 월드컵 출전이라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죠.

이정수는 기회란 노력한 자만 붙잡을 수 있다는 축구계의 정설을 실력으로 입증했습니다. 선수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보통 유럽 수비수들은 세트 피스 상황에서 골대를 향해 올라오는 볼에만 시선을 두고 주전 스트라이커의 움직임에만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말은 곧 뒤에서 뒷공간을 노리며 달려 들어오는 수비수는 열외로 둔다는 이야기와도 같죠. 덕분에 이정수는 그리스의 장대숲같은 수비수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선제골은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정수에게 있어 그리스전은 참으로 특별했을 듯합니다. 비주전으로 분류됐던 자신이 부상선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전으로 투입됐을 때, 스스로 많은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선제골을 터뜨려 승리의 초석을 다졌고, 무엇보다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감하며 승리로 이끌었기에 주전 센터백으로 느꼈을 마음의 짐들을 한 번에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던 경기였을 것입니다.

“제가 대표팀 수비수들 중에선 나이도, K리그 경험도 제일 많아요. 어느 정도 리드해야한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어요. 그렇지만 전 이제 막 대표팀에 들어왔잖아요. 그 때문에 A매치 경험이 제일 적죠. 대표팀 경험이 풍부하지 못하다보니 위축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요. 좀 더 경험도 쌓고 자신감도 붙으면 선수들한테 이렇게 하자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글쎄요. 아직은......”

2008년 막 대표팀에 승선했을 때 이정수가 제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만약 단 한번의 패스미스로, 또는 상대 공격수의 돌아들어가는 움직임을 놓치거나 수비 뒷공간을 내주며 골을 허용했다면, 다른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스스로 ‘내가 들어가서 골을 허용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하는 지레짐작으로 마음이 위축됐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마음이 위축될 때 플레이도 함께 위축된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포백라인에서의 센터백은 기존의 홍명보 감독의 경우처럼, 리더로서 당당하게 수비수들을 이끌어야하는 법인데, 마음이 불안하거나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면 최후의 보루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죠. 수비불안은 심리적인 요인에서도 나오기 쉬운 법인데, 그런 점에서 이정수가 보여준 120% 활약은 남은 2경기의 선전도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이정수가 허정무호에 처음 승선한 때는 2008년 봄입니다. 2010월드컵 3차예선 북한과의 1차전에 나설 24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태극마크와 인연을 맺었죠. 무려 3년 만에 달게 된 태극마크였습니다. 사실 2005년 7월 동아시아선수권을 앞두고 대표팀에 전격 발탁된 바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으로 중도하차했지만 말입니다.

당시 이정수는 제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쉬운 전적이 있기에 마음을 비운 채 대표팀에 들어갔어요. 그저 뽑혔다는 사실에만 의의를 뒀죠. 당연히 곽태휘 선수가 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발목 통증을 호소하며 못 뛰겠다고 하더군요. 그로 인해 제게 기회가 주어졌고 다행히도 ‘제 것’으로 만들며 잘 잡은 것 같습니다.”

당시 이정수는 북한전에 출장하며 ‘정대세를 잡아라’는 허 감독의 숙제를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허심’을 잡은 것도 그때부터였죠.

사실 이정수는 2002년 경희대를 나와 안양LG에서 프로에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공격수였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당시 조광래 안양 감독이 수비수로의 보직 변경을 제안했습니다. 팀에 용병 공격수들이 포화상태였던 것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스피드가 좋으며 제공권에도 강하기 때문에 수비수로서 성장하기에 좋은 DNA를 가지고 있었기에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 컸다고 본 것이죠.

물론 이정수 본인도 저와의 인터뷰 당시 이를 인정했습니다.

“공격수 출신 수비수로서 말씀드리자면, 저 같은 ‘보직변경’이 수비수로 살아가는데 있어 더 도움이 되는 순간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읽는 것도 수월하거니와 패싱력이나 기동력 또한 전문수비수 출신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정수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죠. 2004년 인천으로 이적해 2005년 인천에 K-리그 준우승컵을 안겼고 그때의 활약으로 2006년 수원으로 이적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장외룡 감독은 내게 대표팀 감독이라면 이정수를 발탁할 것이다, 그는 K-리그 최고의 수비수이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수원에서 그는 날개를 단 듯 거침없이 질주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를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닥쳤죠. 그러나 워낙에 긍정적인 사람인지라 빅버드에 앉아 손수 수원선수단의 전력분석을 위한 경기 촬영 장면을 찍겠다며 일일 경기분석관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으며, 관중석에 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홈경기를 관람하다 중계 카메라에 잡힌 적도 있었죠. 팬들은 그에게 ‘계란정수’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는데, 지금도 그는 그 별명을 얘기할 때마다 쑥스러운지 어쩔 줄 몰라합니다. ^^

2008년 한일올스타전에서는 K-리그 대표팀으로 나갔던 그가 2009년에는 교토로 이적, J리그 올스타에 뽑혔고 대회 최우수 선수에도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J리그 진출 전에 밥 한번 꼭 먹자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때만해도 저는 으레 하는 인사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한데 전화가 왔더라고요. 밥 약속을 지키겠다면서요. 그런데 당시 제가 마감 중이라 제가, 감히, 그와의 밥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거절했습니다. 제 지인들은 월드컵 스타의 밥 약속을 거절했냐며 요즘 놀리고 있네요.

그때 일이 떠오르는 건, 그의 성품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흘리는 말이 아니라 꼭 할 말만 하고, 그 말은 꼭 지키는 것. 한 마디로 됨됨이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래서 결국엔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에서 드디어 축구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언젠가 그가 “10번 잘해도 1번 못하면 욕먹을 수밖에 없는 게 수비수의 숙명 아니겠냐”며 웃으며 해줬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참으로 씁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지요. 그래서 적어도 저를 비롯한 이 글을 읽는 사람들만큼은 단 1번의 실수로 인해 1골을 허용하더라도 2골을 막으면 되지 않겠냐며 박수치고 격려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은 2경기에서도 지금처럼만 뛰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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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에는 월드컵을 빛낸 스타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순호 감독이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터뜨린 동점골은 영국 일간지 타임스가 선정한 역대 월드컵 베스트골 50위 중 29에 뽑힌 바 있죠.

최진철 코치는 2002년과 2006년 대한민국 대표팀의 수비의 핵으로 활약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대표 선수가 됐지만, 이렇게 훌륭한 선수를 왜 이제야 발견했냐며 모두의 박수를 받았고 2006년 스위스전에서 보여준 붕대 투혼은 모두를 눈물흘리게 만들었죠.

이을용 선수는 또 어떤가요. 2002년 미국전에서 PK를 실축했지만 3-4위전에서 보란듯이 프리킥골을 터뜨리며 든든한 ‘믿을필더’로 활약했죠.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경기 그리스전을 앞두고 최순호 감독님, 최진철 코치, 이을용 선수 등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월드컵을 먼저 치른 국가대표 선배로서 우리 대한민국 대표팀이 어떤 경기를 치렀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더니 세 분 모두 “꼭 이겨야한다”고 강조하더군요. 승리를 바라는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죠.

한데 세 분은 단순히 이겼으면 좋겠다가 아니었어요. 첫 단추를 어렵게 뀄을 때 2번째, 3번째 경기를 풀어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뛰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중요한 경기를 수없이 많이 뛰었더라도 월드컵 무대는 다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긴장과 부담이 선수들의 마음을 지배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고 하네요.

최진철 코치는 말씀하셨습니다. 축구 인프라가 발전하고 훌륭한 축구 유전자를 가진 선수들이 일찍부터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예전과 달리 우리나라 선수들의 실력도 급성장했다고요. 따라서 유럽팀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문제는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 잘해야할텐데, 하는 부담, 그리고 그로 인한 긴장에서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 선수들은 약속된 플레이도 잘 나오지 않고 자기 자리를 못찾고 헤매거나, 수동적인 플레이를 하기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최진철 코치도 첫 번째 폴란드전이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 그러니까 ‘홈’에서 열린 경기였음에도, 경기장 가득 붉은악마로 가득 차 응원 속에서 뛰었음에도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의 선수들은 W세대인지라 이기고 지는 것보다 경기 자체를 즐기는 마음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월드컵은 선수라면 모두가 생각하는 ‘꿈의 무대’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중압감은 강심장이라 할지라도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 적어도 첫 번째 경기에서만큼은 그렇다는 것. 그것이 월드컵을 먼저 치른 ‘선배’들의 중론이었습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늘 첫 경기를 어렵게 풀었고 그래서 늘 ‘경우의 수’를 생각하게 만들었죠. 사실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컵에서 -비록 2006년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1승 1무 1패라는 어웨이에서 열린 월드컵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었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선 첫경기에서 거둔 승점 3점은 그 이상의 값어치를 갖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씀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2번째 3번째 경기를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 있고 그로 인해 다른 팀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최순호 감독, 최진철 코치, 이을용 선수가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단순히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제게, 세 분과의 대화는 선수들이 첫경기를 앞두고 어떤 상태인지 한번 더 선수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그저 막연히 짐작만 했는데 말이죠.

다음 포스팅에서는 최진철 코치가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당시를 회고하며 제가 이야기해주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월드컵편”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처음에 코치님이 해주신 월드컵 이야기를 듣고 저는 정말 놀랬답니다. 기대되시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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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10남아공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심판들에게 가이드라인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월드컵 심판 가이드라인을 인지하는 것은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K-리그에서는 묵인된 것들이 국제대회에서까지 용인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심판 강습회에서도 월드컵을 앞둔 만큼 월드컵에서 요하는 가이드라인을 선수들에게도 요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 시즌에는 예년보다 심판 판정이 엄격해지고 비신사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카드가 내려졌습니다. 연맹의 5mm 정책도 물론 한몫을 했지요.

1. 거친 태클을 강력하게 처단하라
FIFA는 거친 태클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강한 규제를 내려리고 했습니다. 1998월드컵을 기점으로 예전에는 백태클에 대해 규제가 강했지만 -당시 멕시코전에서 프리킥 선제골을 넣었던 우리나라 하석주 선수가 백태클 퇴장의 아픔을 겪기도 했죠- 이번 월드컵에서는 전후좌우 위치에 관계없이 선수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태클(특히 발바닥이 보이는 태클)에 대해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것이 FIFA의 입장입니다. 무엇보다 선수의 안전을 위한 우선히 하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수비수들과 이청용 선수가 이 부분을 잘 인지했으면 좋겠어요. 이청용 선수 심성은 곱고 착한데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태클은... 가끔 보면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어요.

2. 팔꿈치로 가격하는 행위를 차단하라
손, 그중에서도 팔꿈치를 사용하는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것이 FIFA의 입장입니다. 경합 과정에서 흔히 나오는 팔꿈치 가격은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특히 헤딩 경함 과정에서 나중에 착지하게 되는 선수들이 머리를 움직이며 팔꿈치를 함께 쓰는데, 이런 경우 무조건 퇴장입니다. K-리그에서도 습관적으로 이러한 반칙을 하는 선수들이 있어 심판들 사이에는 요주의 선수로 불리며 경기 중에 그 선수가 엘보잉 파울을 범하는지 신경쓰며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습관적인 팔꿈치 사용에 대해서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것이 FIFA의 의지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3. 심판에 대한 항의를 줄여라.
FIFA는 축구의 이미지에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축구는 전세계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입니다. 따라서 월드컵의 이미지, 그리고 어린 선수들에 대한 교육적인 측면에서 좋지 않은 장면은 용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억울한 판정이라 할지라도 적당한 선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심판의 몸을 건들지 않더라도 과격한 항의, 그리고 심판에게 달려오면서 위협적인 모습을 연출한다면 규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K-리그 심판 강습회 때 받았던 교육에서는 선수들이 판정에 항의하며 ‘떼’를 지어 달려올 때 심판은 결코 뒷걸음질을 치거나 피하면 안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이 관중과 어린 선수들에게는 심판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단체로 선수들이 몰려올 때는 가장 먼저 심판에게 달려온 선수에게 가차없이 카드를 뽑으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혹자는 주장은 심판에게 항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냐고 하는데요, FIFA 규칙서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주장이라고 팀을 대표해서 항의할 수 있는 권한은 없으므로 가볍게 어필할 수 있을지언정 십자가를 짊어지고 항의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찍이 월드컵에서 대표적인 오심 중에 하나인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이나 얼마전 앙리에 의해 연출됐던 핸드볼 사건은 모든 사람들이 명백히 봤지만 주심이 미처 보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럴 경우에도 선수들의 과도한 항의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축구고 잘못된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월드컵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5월 에콰도르전에서 이동국의 첫 번째 골에 대해 오프사이드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TV시청자들이나 그 라인을 볼 수 있었던 관중들은 그 장면이 오프사이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크게 항의하지 않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순간의 오심을 받아들이고 경기에 임한 것은 높아진 대표팀의 수준을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월드컵에서도 이런 평정심을 유지해야합니다.

4. 명백한 득점 기회 무산시켰을 때는 퇴장
이외에도 골키퍼와 1대 1로 맞서는 명백한 득점 기회에서 파울로 끊을 경우 곧바로 퇴장을 당한다는 것을 유념해야합니다. 또한 좋은 기회를 파울로 무산시켰을 때는 경고조치를 받는다는 것도 같이 알아둡시다.

마지막으로 FIFA는 월드컵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보복행위 같은 경우는 엄중에 취하게 되니 깨끗하고 상대 선수를 존중하며 동반자로 생각하는 플레이를 선보여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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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제 강원FC 1년차 신인선수가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빙 서류를 떼달라고 부탁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전 웃으면서 그럼 있다 오후까지 처리해서 보내주겠다고 원본을 받으러 사무실로 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지금 급하게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가는 길이라면서 은행에서 전화를 다시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사무실에 들릴 시간이 없다면서 은행에 도착해서 은행 팩스 번호를 알려줄테니 팩스로 바로 넣어달라하면서요. 


집안이 어려운 그 선수는 가계에 빚도 많았고 오늘 오전까지 갚아야할 돈이 있었나봐요. 갑작스레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그의 부모님은 고민하다가 아들에게 부탁을 한 거였죠. 사실 부모된 입장으로서 아들에게 어려운 모습을 보이며 손을 벌린다는 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얼마나 상황이 급하고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아 제가 전화를 걸었지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급하게 은행을 가는 길에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어서요.

"어떻게 된거야? 은행 도착했니? 팩스 번호 알려주면 지금 바로 보내줄게. 서류 다 만들어놓았어."

잠시 침묵하던 그 선수는 "아니에요. 안 보내주셔도 되요" 했습니다.

눈치없이도 저는 아무렇지 않게 "왜? 대출 안하기로 했어?"라고 바로 되물었죠.

역시나, 이번에도 잠시 뜸을 들이던 그 선수는 힘들게 말을 이었습니다.

"대출할 수 있는 자격이 안된대요. 사실 제 연봉만 보면 은행에서도 대출해주기가 힘들겠죠."

그 선수는 올 시즌 번외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한, 소위 말하는 '연습생'입니다. 드래프트에서 6순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들의 경우 번외로 프로에 지명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 선수들은 모두 연봉 1200만원에 계약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한달에 100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고 세금 떼고, 클럽하우스 숙식비를 떼면 80만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옵니다.

88만원 세대보다 더 어려운 이들, 그들은 바로 프로 축구 연습생입니다.

100만원이라도 안되겠냐고 하자 은행에서는 거래 기간이 1년도 안되고 월급보다 많은 돈을 대출해줄 수 없다고 했네요. 그래도 아들이 프로구단에 있으니까 어떻게든 대출이 되지 않겠냐고 부모님들은 믿으셨을텐데, 하던 선수의 낮은 목소리가 내내 귓가에 울려펴졌습니다.

지금 6월은 뜨겁습니다. 거리엔 한국 축구의 승리를 기원하며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과 신나는 축구 관련 음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박지성의 연봉이 얼마고, 이청용의 이적을 위해 빅클럽에서 이적료 베팅에 들어갔다고 하고, 16강 진출에 성공했을 때 대표팀이 받게 되는 수당은 얼마고...

빛나고 비싼 이야기들만 가득합니다. 그속에서 전반기 일정을 마치고 함량미달로 짐을 꾸리며 떠나가는 선수들이 있는가하면 80만원 남짓하는 월급을 아껴가며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핸드폰비가 5만원이나 나왔다고 이번달 예산이 초과했다며 한숨을 쉬는 선수들도 있고요.

그야말로 명과 암, 빛과 그림자입니다.

모두의 눈이 왼쪽 가슴에 박힌 태극마크에 쏠려 있는 순간,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박수치는 순간에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묵묵히 땀흘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이땅의 K-리그 연습생들. 저 역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 아래 살고 있기에 그들의 모습에 더 시선이 가고 마음이 아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바랍니다. 그들이 지금의 고난을 이겨내고 끝까지 축구선수로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는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마치 제가 꿈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들의 앞날에 건승만이 가득하길, 온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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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와 수원삼성의 '포스코컵 2010' 3라운드가 펼쳐진 수원월드컵경기장. 이날 경기는 강민수와 이상돈의 연속골로 수원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개인적으로 강원FC를 아끼는 마음이 크기에 패배는 쓰라렸지만 골이 터질 때 수원 선수들이 보여준 세레모니는 참으로 감동적이었고 또 아름다웠습니다. 오는 6월 6일 컵대회 조별예선 전북현대와의 홈경기를 끝나고 수원의 감독직을 내려놓겠다고 말씀하신 차범근 감독님. 떠나는 차범근 감독님께 잊지 못할 선물을 드린 수원선수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드립니다.





강민수 선수가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뭔가를 펼치라며 제스처를 취하던 수원의 주장 조원희 선수. 아니나다를까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뭔가를 건네더군요. 그것은 다름아닌 차범근 감독님께 선수들이 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적힌 플랭카드였습니다.

수수원을 상징하는 청, 백, 적을 나타낸 그랑블루의 세레모니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이관우 선수가 뛰는 모습도 보았어요. 그의 프리킥은 예전만큼 날카롭진 못했으나 별보다 밝은 남자, 이관우 이관우~ 하던 그랑블루의 콜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상돈 선수의 결승골. 이날 이상돈-이상호 형제 선수가 함께 뛰는 경기를 처음 보았습니다. 예전에 이상호 선수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인터뷰 내내 우리 형만 생각하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요, 하면서 울먹울먹하더군요. 축구가 힘들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걱정해주던 형의 멋진 결승골을 보며 이상호 선수는 또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이번에는 선수들이 차범근 감독님께 달려가 단체로 감독님을 껴안으며 감사의 기쁨을 표하더군요. 2연승도 기뻤겠지만, 감독님을 위한 선수들의 마음이 느낄 수 있었기에 차범근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흐뭇했을 것 같습니다.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차범근 감독 기자회견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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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가상의 아르헨티나였던 스페인과 평가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0-1로 석패했습니다. 공-수에 걸쳐 노련하게 경기를 이끌던 캡틴 박지성의 부재 속에서도 유로2008의 챔피언 스페인을 상대로 잘 싸웠습니다.

이번 스페인전은 박지성이 없을 때의 대비책인 플랜B의 조합을 실험할 수 있었던 경기였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김정우의 재발견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김정우는 유난히 가늘고 마른 몸매 때문에 우리에게는 약골 이미지가 강합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그에게 뼈정우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지요.



하지만 갸날픈 체격과 달리 체력과 활동량 만큼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박지성 못지 않습니다. 패스와 중거리슈팅 역시 정확하고 남다르죠.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센스 하나만은 타고 났다”며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김정우입니다.

일찍이 그를 지도했던 임종헌 코치(부평고 시절) 조민국 감독(고려대 시절) 등은 “패싱력 수비력 슈팅력 3박자를 고루 갖춘 미드필더”라며 입을 모아 칭찬한 바 있습니다. 강원FC의 젊은 미드필더 권순형은 “대학시절 함께 훈련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너른 시야 속에서 나오는 한 박자 빠른 슈팅과 패스에 차원이 다른 선수라고 깨달았다”고 말한 적이 있고요.

스페인과의 평가전을 마친 후 대표팀 선수들은 입을 모아 수훈 선수로 김정우를 뽑았지요. 센터백 이정수는 “김정우가 많이 뛰어준 덕에 수비하기가 편했다”며 치켜세워줬으며 사실상 최종 수비벽이라 할 수 있는 정성룡도 김정우의 수비력에 엄지를 들어보였죠.

전반 14분 염기훈의 패스를 받은 김정우는 오밀조밀 스페인 선수들이 운집했던 문전을 향해 위협적인 중거리슛을 시도했습니다. 하기야, 2004아테나올림픽 조별예선 멕시코전 당시에도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성공하며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적이 있었죠.

김정우는 이날 풀타임을 소화했는데, 그 와중에도 이니에스타, 파브레가스, 사비, 알론소 등 세계 탑 레벨의 미드필더들과 맞서 싸우며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김정우의 재발견은 우리가 이날 경기에서 얻은 최대 수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날 한국대표팀은 4-2-3-1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는데요, 강원FC 역시 리그에서 같은 포메이션을 사용하는데요, 각각의 포지션이 다 중요하겠지만 경기의 승패를 가로지르는 시작은 두명의 수비형미드필더가 얼마나 제 역할을 해주었냐에서 나옵니다.

공수의 연결고리로서 삼선의 균형을 잡아주고 템포를 조절하는 것까지, 수비형미드필더는 공수 모든 부분에서 관여하며 살림꾼 역할을 해야합니다.

지난 유로2008에서 우승팀 스페인에겐 있었지만 탈락팀 이탈리아에겐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명장? 용병술? 우승컵? 여러 답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정답은 바로 세나 같은 ‘살림꾼’ 미드필더의 유무입니다. 실상 이탈리아가 조별예선에서 네덜란드에게 0-3으로 대패했던 요인 중 하나도 바로 미드필드 자원의 몰락 아니었던가요. 그만큼 현재 축구에서 허리싸움은 중요합니다.

“수비형MF가 공격수처럼 튀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비록 눈에 띄진 않지만 소리 없이 강한 자리죠. 제가 해야할 일은 공격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춰주고 수비 시엔 적극적으로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는 것뿐이에요. 조용히 제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싶습니다.”

언젠가 김정우가 제게 했던 말입니다. 그말처럼 김정우는 미드필드와 수비라인의 간격을 촘촘하게 유지하며 세계 수준의 스페인 미드필더들을 수비수들과 협력해 막아냈습니다. 사실 김정우의 수비력은 K-리그 시절부터 검증이 됐지요. 지난 2008북경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선발됐을 당시에도 그는 자신의 수비력 덕분에 승선할 수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죠.

“제가 다른 미드필더보다 아주 조금 나은 부분이 있다면 ‘수비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프로입단 후 수비형MF로 보직을 변경했고 덕분에 수비력 하나만은 제대로 기를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이번 올림픽에서 이탈리아나 카메룬 같은 강팀들과 한 조에 묶였잖아요. 그런 팀들을 이기기 위해선 중원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해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박성화 감독님께선 그 역할을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김정우는 “스페인 선수들의 기량이 너무 뛰어나 너무 힘든 경기였다. 축구인생에서 가장 힘이 들었던 경기가 아니었나 싶다”며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뛰었다는 얘기로 들려 역시 김정우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6월드컵에서 흘린 눈물을 4년 뒤에는 웃음으로 바꾸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던 김정우였으니까요. 덕분에 이제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목표 앞까지 성큼 다가왔네요.

“2004아테네올림픽 당시 말리전이 생각나요. 후반 10분까지 0-3으로 지고 있었죠. 그러나 저희에겐 메달을 따겠다는 강한 목표가 있었어요. 그 덕분에 3-3으로 따라붙으며 8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었죠. 목표가 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의지까지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의지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외유내강맨 김정우. 이번 월드컵에서의 성장과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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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1월. 강원FC 선수단 저녁식사 자리. 선수들은 훈련 후 허기를 채우려는 바쁘게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지만 골키퍼 유현은 일찌감치 수저를 놓은 채 식사 중인 선수들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휴가 기간 중 체중이 2kg 늘었거든요. 감독님께서 겨울 전지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 원래 몸무게를 만들라고 하셔서 식사량을 줄이고 있는 중이에요.”

배가 불러도 앞에 음식이 놓여 있으면 절로 젓가락이 가는 저에게, 고픈 배를 잡고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던 유현 선수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 신의 영역에 도달한 ‘탈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수면욕’ 만큼이나 참기 힘든 게 ‘식탐’ 아니던가요.


하지만 유현 선수는, 적정체중을 만들기 위하여 참고 버티었고, 결국 2주일 만에 원래 몸무게로 복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매일 저녁 식사량을 평소보다 줄이는 고난이 있었지요.


대부분의 선수들에게는 완벽한 경기력을 뽐낼 수 있는 ‘적정체중’이 있습니다. 적정체중으로 몸을 만들었을 때 선수들은 힘든 운동 스케줄을 버틸 수 있고 한계 속에서도 휘슬이 울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점(dead point)’을 오고 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는 근원이 바로 이 ‘적정체중’입니다.

하지만 적정체중을 유지하기란 선수들에게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근육을 키워 몸무게를 늘리면 순발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고요, 순발력을 위해 몸무게를 너무 많이 감량하다보면 근력이나 근지구력이 떨어지는 일도 발생하기도 하고요.

보통 축구선수들의 몸은 미세한 근육들로 덮여 있습니다. 흔히 운동선수들은 람보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할 것 같은데, 실제로 축구선수들의 몸은 많이 쓰는 허벅지 근육을 제외하곤 큰 근육보단 잘게 쪼개진 근육들이 더 많이 보입니다. 사실 세밀한 근육은 단기간에 만들기가 힘듭니다. 오랜 시간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만 근육이 세밀하게 발달하다보니 대다수 축구 선수들의 근육은 작고 세밀하게 다져진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나, 어깨 뒷부분 승모근의 세밀함은 그간 선수로서 보낸 세월이 절로 느껴질 정도랍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죠. 축구 선수들의 몸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부상으로 운동을 쉬어야하는 경우나 리그가 끝난 후 연말에 주어지는 한 달가량의 휴가기간 동안 몸무게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처럼 5~6kg씩 증가하는 경우는 아니지만, 축구 선수들의 경우 2kg 정도만 찌더라도 체중증가가 크게 보입니다. 또 선수 스스로도 몸이 무거워졌다는 느낌을 받고요.

그럴 때면 훈련복귀와 동시에 감량에 들어가는데, 훈련량이 많을 때도 일단 몸무게를 줄어야한다면 평소 식사량보다 20~30% 덜 섭취하며 식이조절과 함께 감량정책에 들어갑니다. 몸은 여전히 더 많은 음식들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참는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지만 선수들은 참습니다. 적정체중으로 돌아갔을 때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지난해 여름 휴식기를 앞두고 최순호 감독은 골 침묵 중인 김영후 선수를 불러 따로 미팅을 가졌습니다. 문전에서 더 집중력을 발휘하려면 90분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하겠고, 좀 더 몸놀림이 가벼웠으면 좋겠다, 를 주문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3~4kg 정도 감량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김영후 선수는 단 3주 만에 감독님이 요구하신 체력 다지기와 체중 감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3kg도 빼기 힘들어 쩔쩔 매는 제게는 놀라운 뉴스였죠. 그래서 김영후 선수에게 그 비결을 조심히 물어봤습니다.

“저녁을 평소의 70~80% 정도 되는 양만큼만 먹었고요, 기름에 튀긴 음식들은 입에 대지 않았어요.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했고요.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숙소 뒤쪽의 산을 뛰었어요. 전력을 다해 40분 정도 올라갔다 내려갔다는 반복하며 뛰어다녔죠.”

그렇게 100m를 뛸 때처럼 전력으로 달리며 산을 타다 보면 현기증이 나고 속이 울렁대곤 했는데, 그때도 그는 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진짜로 구토를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토하고 나서 다시 또 뛰었다고 하니... 체력과 체중감량,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섭게 노력했던 김영후 선수야 말로 진정 ‘용자’가 아닌지요.

박종진 선수와 윤준하 선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죠. 박종진 선수 같은 경우 강원FC 입단했을 당시 다소 살이 붙어있던 상태였습니다. 일본에서 J리거로 생활했던 지난 몇 년 간 부상 때문에 훈련을 쉬어야만했던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감독님도 박종진 선수에게 몸무게를 정상으로 돌려놓으라고 주문하셨죠. 군것질도 끊고 체중감량에 들어간 박종진 선수는 저녁마다 운동장에 나가는 등 개인적으로 훈련량도 늘렸습니다. 지난 해 봄 저녁마다 절친 김주봉 선수와 함께 운동장으로 나가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 끝에 박종진 선수는 금세 부상을 입기 전 원래 몸무게로 돌아가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박종진 선수는 리그 개막 1달만인 4월 11일 전남전에서 교체로 투입되며 K-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그달 22일 대전과의 컵대회 경기에서는 1도움을 기록하며 첫 공격포인트를 올렸고 5월 5일 인천에서 열린 컵대회 원정 경기에서는 꿈에 그리던 데뷔골을 성공시켰죠.


윤준하 선수 역시 끊임없이 체중과 싸우고 있습니다. 조금만 웨이트트레이닝을 해도 쉽게 근육이 생기는데, 체중 역시 조금만 관리에 소홀하다 싶으면 쉽게 증가하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윤준하 선수는 “쉬는 날 뭐하면서 지냈냐”는 물음에 “집에서 쉬면서 먹고 놀았다”고 대답하면 “그러면 금방 살찐다”며 “운동도 하면서 관리하라”는 충고를 해주곤 하죠.

그러나 여전히 저는 운동은 ‘관람’으로만 그치며 자주 튀긴 음식들을 즐기며 ‘비지니스’라는 허울 아래 술도 마시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신인 하정헌 선수가 “술 마시면 금방 배 나와요”라며 따끔하게 지적하지만... 습관을 고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네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먹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더 많이 뛰며 늘 관리하는 축구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뭐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프로’라고 부르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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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성남일화와의 시즌 개막전을 시작으로 4라운드 포항전까지, 4경기 동안 강원FC가 거둔 성적은 1무 3패. 지난해 이맘 때 쯤 거둔, 참으로 찬란했던 성적 2승 1무와는 사뭇 대조되는 행보였다.

추가시간까지 계속되던 끈끈한 압박,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어지던 공격의 간결함, 투터치 안에 패스를 전개하면서도 볼을 내주지 않던 정확성 등을 볼 수 없다며 강원FC만의 특유의 색을 잃어버렸다는 혹평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지난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래도 강릉에 닥친 때 아닌 폭설로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한 날들의 영향이 컸다고 말하고 싶다. 잔디가 깔린 훈련장이 아닌 체육관에서 운동을 해야했으니 제대로 된 미니패스 훈련, 전술훈련, 세트피스 훈련 등을 할리가 만무했다. 맞춤형 훈련 대신 기본적인 체력훈련만 하다 경기를 치렀으니 어려움이 컸을 수밖에.

그런 가운데 한번은 최순호 감독님과 점심을 먹기 위해 한정식당을 찾은 적이 있었다. 주문을 받기 위해 종업원이 왔는데, 감독님 얼굴을 알아보더니만 “아이고, 감독님. 경기결과가 좋지 못하니 얼굴이 안되보이시네요”하더라. 당시 감독님은 “사람들은 보는 대로 느끼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대로 보는 것 같구나”라고 말씀하시며 멀리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셨다.

한데 잠시 후 그 종업원이 물을 가져다주며 감독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

“감독님, 계획하신 것이 있다고 하셨죠? 저희는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게 벌써 2주 전의 일인데, 감독님은 요즘도 그날 이야기를 꺼내곤 하신다. 그렇게 말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고. 더 말씀은 안하셨지만 그 말이 감독님에게는 많은 힘이 된 듯 했다.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5-2로 이긴 후에도 종종 그날 그 종업원이 했던 말을 꺼내곤 하시니까.

믿고 기다리기. 사랑하는 연인사이에서도 지키기 힘든 게 바로 믿고 기다리기 아니던가. 분명 계단을 올라간다고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고 때론 두세계단 내려가는 듯할 때, 팬들은 실망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한다. 하지만 팀과 선수는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언젠가는 이 계단을 다 밟고 올라가 정상에 서겠습니다,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팬들은, 결국엔 기약 없는 기다림 때문에 지치고 만다. 그래서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팀에 바라고, 감독에 요청하고, 선수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수원삼성의 신인 오재석 선수의 미니홈피에서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보면서도 배울수 있는 것은 많다, 로 시작되는 글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우턴하여
부드럽게 살포시 러블리함을 가미해서
기다림의 미학 이라고 표현한다.
어, 왜 우리 학교다닐 때 급식있지않습니까 급식.
배식순서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롱(Long) 줄. 그 사이에 낑겨
앞사람들 좀 빨리빨리 움직여서 퍼고 빨리 좀 갔으면 싶고
내 차례는 언제오려나하며 배식구 쪽 만을 향하는 초조한 시선.

덩치 큰 녀석이라도 앞쪽에서 버티는 날엔
나를 포함한 뒷사람들의 머리속엔
새우튀김은 저 위치에서 거덜이구나. 다신 볼수없겠다.
A급 반찬들의 운명을 저 자의 다 손에 맡겨야하는구나.
이러한 걱정들을 하곤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뭐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합니다만,
오늘은 김치 대신에 오이소박이가 나오는 납득 안되는 경우.
설마 밥과 함께 필수식단인 국에 말도안되게, 어처구니없이
오이냉국이 출격하는 이런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깟댐 상황
식사전에 오이와 눈을 맞추어 입맛이 떨어질수있는 위험이있는
만리장성과 함께 아시아의 2대 미스테리 상황같은.

허나.

이 초조한 마음들은 놀랍게도
내가 식판과 수저를 잡고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사라집니다.
초조했던 심박도는 정상을 되찾고, 뒤에서 기다릴땐
남들은 제발 좀 빨리 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사람이 됩니다.
기쁨의 아드레날린은 상승하여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과감히, 식판을 오버시켜가며
탕수육소스가 옆에 김치에 흘러들어가도 괜찮고,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으니까 같은 식의
긍정의 힘을 그 누구보다 긍정히 실천하고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리틀 조엘 오스틴이 되곤해요.

놓여진 음식들을 보며 배분율에 대해 분석에 들어가고
남겨져서 날 기다려준 새우튀김을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와 함께
앞에 지나간 뚱띠가 새우알러지가 있었음을 느낄수있는
통찰력과 예지력까지 얻을수있어요.
혹은 이미 밥 푸기 바빠서 뚱띠는 머리속에 안중에도 없거나.

축구도 그렇습니다.
선수마다 때가 있는 겁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나 초조하죠.
줄이 롱(Long) 줄 이니까요
허나 때는 분명히 옵니다.
다만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어지기때문에
막연하게 기다리면 막연하게 시간만 가기때문에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앞서의 새우튀김은 그라운드입니다.
기다림의 이유이자 기대하는 곳이죠.

그라운드에 내가 없다면 조금 실망할수도있지만
남들보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축구에선 선발선수 명단에 들기 위한 노력과 준비.
학교에선 종치면 문열고 달릴 준비를 아주 착실히 한다면

다음번엔 경기장에서 내 이름이 전광판에 떠있고 콜이 울리며

식당에선 가장 먼저나 선두권에서 Door OPEN을 기다릴수있죠
운이 좋으면 막 튀겨낸 뜨끈뜨끈 쌔삥새우를 먹을수있고요
쌔삥새우는 골이라고 치고싶네요.

배가 부른 사람은 느긋하다 늦기 쉽상입니다.
입장이 바뀐상황을 위기라고 표현할수있죠.
먼저 가는 듯 싶지만 새치기를 당할수도있고,
잘 나가는듯 싶지만 부상을 당해 잃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지금 이시기를 위한 급식 조기교육속에 자란 덕에
깨우친게 많아서 처음에 늦은 것 같다고 초조해하지않습니다.
전 룰을 잘 지키며 살지만 어려서도 지금도 단체로 밥먹으면
은근슬쩍 새치기도 악의없이 센스있게 잘합니다.

물론 새치기가 목표가 아니고 실력을 쌓아서 정상에 서고싶고
지금은 마음이야 굴뚝같고 준비되어있는데요
역시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해서 때를 기다리는 입장입니다.
키도 부족하고요. 많이라고 하지말아주세요
성장이 멈춘것같거든요. 희망이 없어서 말이죠.

키는 멈춘것같지만
선수로서의 성장은 이제 갓 14살입니다.
연골이 성장판이 쭉쭉 열릴때라서 많이 성장하고 싶습니다.

시즌은 길고 선수도 많지만 때는 옵니다.
뜻이 있는 곳에 있다는 그 길을 넓은 시야로 잘찾아보겠습니다

요즘 제 미니홈피 재미없다 그래서
몇자는 아니고 몇만자 적날하게 적어봤습니다.
여러분 황사랩니다. 삼겹살 사드세요.

[스티커 붙이시면 딸 낳으면 얼굴 드록바]

아 골 넣으라고 부탁하는 주위 분들.
1년에 1골 넣는 것도 어색하도록 10년간 수비수만 봐왔습니다.
전 수비수라 막는거부터 집중해야되니
지금은 좀 곤란한거같구요
다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요.

메시 동영상 열심히 보고있으니.

뛰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그런가 보구나, 하는 생각에 한참동안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줬으면 좋겠다고 한참동안 생각했었다. 비록 타팀이지만 오재석 선수의 글을 읽으면서 말이다.

지난해 인천전이 끝나고 왜 아직도 김영후 선수는 골을 터뜨리지 못합니까, 라고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을 때 최순호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때론 그 선수를 향한 관심을 조금만 줄이는 것도 선수를 위해선 좋은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김영후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터뜨렸다. 프로 데뷔골을 멀티골로 마감하며 괴물 공격수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K-리그에 널리 알렸다.

올 시즌 왜 아직도 김영후 선수는 시즌 첫 골을 신고하지 못합니까, 라고 사람들이 물었을 때에도 최순호 감독은 그런 김영후를 따로 불러 느긋하게 생각하라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김영후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올 시즌 K-리그 국내 선수 중 최초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또 다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왜 아직도 강원FC는 졸전만 거듭하며 1승을 거두지 못하는 거지요?, 라고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질 때에도 최순호 감독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우리는 계획한데로 가고 있습니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강원FC는 전남을 5-2로 누르며 K-리그 베스트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당장 날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추락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것. 어쩌면 더 높기 날기 위해 잠시 깃을 가다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는 쓰라리고 괴로운 법이다. 하지만 오늘의 패배가 영원한, 그리고 인생의 전부를 지배할 패배는 아니지 않던가. 중요한 건 왜 졌는지 알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고 보완하며 노력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믿고 기다리련다. 강원FC는 슬픔과 괴로움보다 기쁨과 웃음, 그리고 희망을 더 많이 줬던, 하나 뿐인 나의 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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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떨거지 차봉군이 FC소울 선수가 됐다구!” - 맨땅에 헤딩 2화 中

MBC 수목드라마 <맨땅에 헤딩>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자연스레 수원삼성 차범근 감독과 FC서울이 연상되죠. 실제로 차봉군이 데뷔전을 치렀던 경기장은 FC서울이 홈으로 삼고 있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이고 드라마 중간 나오던 서포터들은 FC서울 서포터스 수호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셔널리그에서 고군분투하다 극적으로 K-리그에 입성, 데뷔전을 치른 후 시나브로 팬들에게 강렬히 이름을 기억시킨다는 차봉군의 이야기는 올 시즌 K-리그서 많이 본 누군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대요. 그러니까 아무리 어둡고 캄캄해도… 무서워하면 안 돼. 조금만 기다리면 해가 뜨니까… 어두울수록 빛이 가까운 거니까.” - 맨땅에 헤딩 2화 中

숙소에 앉아 MBC 수목드라마 <맨땅에 헤딩>을 보고 있던 김영후는 극중 주인공 차봉군(유노윤호)의 에이전트 김해빈(고아라)의 독백을 들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처음 내셔널리그에 입성할 당시 그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죠.

2005년 12월 20일은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가 열린 ‘운명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냉혹한 현실과 만난 날이기도 하고요. 눈이 아주 많이 내렸던 그날, 김영후를 지명한 구단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2005년 한국축구대상 대학부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프로의 벽은 실로 높았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라는 좌절 속에서 며칠을 보내고 있던 중 모교 숭실대 축구부 감독에게서 “프로 연습생과 울산현대미포조선 行 중 하나를 택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김영후의 어머니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는 말과 함께 “미포조선에서 열심히 뛰다 보면 또 다른 빛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믿음과 기도, 그리고 노력이 함께 한다면 곧 밝은 태양이 비추는 아침이 돌아올 것”이라 말했고, 그 말대로 꼭 3년 후인 2008년 11월 20일. 김영후는 ‘K-리그’라는 아침 해와 드디어 만나게 되었지요.

2009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강원FC 최순호 감독이 우선지명한 김영후는 “올 시즌 목표는 10골”이라는 말과 함께 취재진 앞에서 웃는 여유까지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디지털 캠코더로 고스란히 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현재 <맨땅에 헤딩> 연출을 맡고 있는 박성수 PD였습니다.

제가 박성수 PD와 만난 순간이기도 했지요. 그날 저는 베스트일레븐 8월호에 실릴 인터뷰 때문에 김영후와 인터뷰를 가졌던 7월 이후 약 4개월만에 만났던 터라 그와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죠. 당시 박성수 PD가 그런 저와 김영후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때만해도 저는 박성수 PD의 얼굴을 모르고 있던 터라, 속으로 ‘어. 모자를 푹 눌러쓴 저 아저씨는 누구지. 계속 쳐다보고 계시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강원FC가서도 잘할 거라고 믿는다는 덕담을 건네며 악수를 나눈 뒤 돌아서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아저씨(?)가 제게 다가와 축구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는데 도움을 받고 싶다며 명함을 건넸습니다.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며 설명을 하시는데 처음엔 ‘혹시 사기꾼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방송국 PD라고 사칭하면서 사기치는 사람들 이야기를 좀 들었나요.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날 드라마에 출연시키고 싶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ㅎ 

그리고... 집에 가서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게 명함을 주신 그 PD님이 지금도 최고의 드라마로 회자 중인 ‘네 멋대로 해라’를 연출했던 그 PD님이더라고요. 그리하여 김영후 덕분에 저는 박성수 PD와 만나게 되었고 축구 드라마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아주 조금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크진 않았던, 미약한 도움이었지만 그래도 제가 알고 있는 축구 지식, 축구 선수들과 얽힌 에피소드들이 드라마에 녹아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습니다.

무명선수가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그리고 3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가운데 결국엔 꿈을 이룬다는 내용의 축구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던 박성수 PD는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로 입성한 김영후의 7전8기 스토리를 눈여겨 지켜보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드래프트 현장에서 김영후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자연스레 저와도 만나게 된 것이지요. 김영후의 이야기는 드라마를 준비할 당시 주인공 차봉군의 캐릭터 설정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쳤고요.

박성수 PD는 본격적인 드라마 촬영 전 K-리그 경기장을 둘러보며 사전답사에도 심혈을 기울였는데, 박 PD가 처음 찾았던 경기장이 바로 강릉종합운동장입니다. 박성수 PD가 강릉에 왔던 4월 10일. 경포 근처 횟집에서 저녁을 함께 했는데, 그날  인터뷰 때문에 김영후와 문자를 주고 받던 저를 보고 있던 중 제 핸드폰을 뺏으시더군요. 그러더니 “우리 가슴 뛰게 만드는 멋진 골 기대!”라고 문자를 제 이름으로 보내시더라고요.

드라마 준비 중 강릉 월드구장에서 강원FC 선수단 훈련을 지켜보던 박성수 PD님.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위해 사전준비에도 참 열심히셨죠.

한데 신기하게도 그 문자는 곧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전남드래곤즈와의 11라운드 경기가 열렸던 다음날, 김영후는 박성수 PD가 보는 앞에서 K-리그 데뷔골에 이어 추가골까지 터뜨리며 ‘괴물 공격수’의 부활을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그 골은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정말로 멋진 골이었습니다.

<맨땅에 헤딩>이 처음 방송됐던 9월 9일 저녁. 저와 주무는 김영후의 방에 가서 “오~ 김영후 드라마 드디어 나오는 거야?”라며 놀려댔습니다. 다음날 드라마를 본 소감을 묻자 “1회 때 차봉군이 내셔널리그에서 뛰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년까지 몸담아 뛰었던 곳이라 보는 순간 가슴이 짠했어요. 차봉군의 최종목표가 ‘국가대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목표 역시 태극마크를 다는 거예요. 제가 ‘원조’인 만큼 차봉군보다 먼저 국가대표가 됐으면 좋겠네요”라며 웃더군요.

또한 김영후는 2회 마지막 장면에서 차봉군이 FC소울 입단 확정 소식을 들은 뒤 “나는 K-리거다!”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맨땅에 헤딩> 최고 명장면으로 뽑았습니다. “우선지명으로 강원FC에 입단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 역시 차봉군처럼 ‘드디어 K-리거가 됐다’고 방에 앉아 소리쳤던 기억이 나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차봉군의 모습에서 내셔널리그 무대에 있었을 당시 K-리거가 되겠다는 꿈을 잊지 않고 노력했던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곤 해요”라고 말했지요.

누군가는 축구가 실종된 축구드라마라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게는 참으로 현실 같은 축구드라마로 느껴집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하나 하나가 제겐 곧 현실이었으니까요. <맨땅에 헤딩>에서 에이전트 해빈은 차봉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죠.

“좀 바보같지만 나한테는 소중한 '첫 번째, 내 선수' 에요.”
“차봉군. 진짜 멋진 선수로 만들 거에요. 에이전트 일 할 수 있게 해준 선수고... 공동 운명체니까.”

제게도 김영후는 소중한 우리팀 강원FC의 첫 번째 내 선수입니다. 언젠가 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영후 선수 위해서라면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어요. K-리그에서 가장 멋진 선수로 만들 거에요. 그래서 꼭 신인왕 타게 도울 거구. 어쩜 신인왕 타는 날 엉엉 울지도 몰라요. ^^”라고요.

지난 여름, 맨체스터Utd.와 FC서울과의 친선경기가 열렸던 날, 상암월드컵경기장에 사람들로 가득찼다는 문자를 보내자 김영후는 “상암이세요? 완전 좋겠다^^”라고 답문을 보내왔지요. 그날 저는 김영후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TV앞에서 그들을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맨체스터Utd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더 넓은 무대에서 멋지게 뛸 영후 선수 모습을 그려보며. 지금도 최고지만 앞으로는 더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 믿어요.”

해빈도 봉군에게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죠. “내 꿈이 뭐냐면요.. 맨유 가는 거. 그쪽이랑.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요. 올드 트래포드에서.. 공중에 뜬 볼을 발리슛으로 내다 꽂는 거야. 함성 소리.. 들려요? 차봉군을 보고.. 열광하는 거야. 그쪽이 달리는 모습... 골세레머니 하는 모습 보면서.. 어떤 사람은.. 살고 싶어질 거에요.”

어디 그뿐인가요. K-리그 미디어데이 때 운전을 못하는 저로 인해 김영후는 강릉에서 서울까지 무려 3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운전을 했었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피곤에 지쳐 영동고속도로에서 졸기도 했고요. 그날 어찌나 심장이 덜컹했었는지요. 그래서 지난 여름 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 6시마다 운전교육을 받았습니다. 면허를 따기까지 꼬박 1달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요, 새벽잠이 너무 많아 여느 때의 저라면 침대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겠지만 운전학원을 다니던 그때만큼은 달랐습니다. 자명종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으니까요. 하루 빨리 운전면허를 따 선수 대신 내가 운전할 것. 단순명료했지만 절대적으로 지킬 수 밖에 없던 저와의 약속 때문이었죠.

그리고 지난 8월 조모컵 한일올스타전이 열렸던 그때, 저는 드디어 제 차로 김영후를 인천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죠. 제가 초보운전이었기 때문에 김영후는 거듭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했지만 “운전하느라 힘 빼면 안되요. 우리 선수니까요”라며 운전대를 잡았죠. 마치 해빈이 봉군에게 “비 맞으면 안돼. 내 선수”라고 말했듯이요.

김영후는 제게 말했습니다.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맨땅이 아닌 시멘트바닥에라도 헤딩할 수 있어요”라고요. 그 말이 참 와닿더라고요. 그런 절박함과 치열함이 지금의 김영후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맨땅에 헤딩>을 보며 자충우돌하는 봉군에게서 김영후의 모습을 대입시키겠죠. 차봉군도, 김영후도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길 바라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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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예로부터 수확이 시작되는 9월을 선인들은 결실의 계절의 시작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프로축구단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9월은 봄과 여름 소중히 쌓아놓았던 승점을 바탕으로 서서히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열매를 얼추 따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강원FC와 울산현대에게 9월은 시련의 나날인 듯 싶습니다. 9월 2일 수원전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했을 때만해도 올 시즌 최고의 경기, 혹은 EPL 부럽지 않은 높은 수준의 경기였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넓게 윙에서부터 시작되는 공격의 공격, 강한 압박과 미드필드에서 보여주는 짧고 빠른 패스는 APT(실제 경기시간)을 높이는 효과를 낳았고 덕분에 관중들의 눈은 즐거웠습니다. 신생팀 답지 않은 저력이란 바로 강원을 두고 하는 말이라며 K-리그 누리꾼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죠.

울산 역시 지난 9월 6일 부산에 3-1로 앞서며 전통의 명가로서 위력을 다시금 보여주는 듯 하였지요. 그러나 9월 12일 인천전과 9월 19일 전남전, 이렇게 2경기 연이어 0-0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하며 다소 침체된 분위기 속에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는 9월 27일 일요일 오후 7시 송암스포츠타운 내 종합운동장에서 울산현대와 2009 K-리그 25라운드 경기를 치릅니다. 9월 들어 아직까지 승수를 쌓지 못한 강원FC와 울산현대에게는 사활을 걸어야만하는 경기입니다. 이 경기에서 패한다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의 꿈을 지워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그러나 강원FC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습니다. 울산현대와 관련해 즐거운 추억을 갖고 있거든요. 지난 5월 24일 울산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1라운드 경기에서 울산과 만났던 강원FC는 당시 4-3이라는 난타전 끝에 승리한 바 있습니다. 당시 4-3이라는 짜릿한 승리가 준 힘은 실로 컸습니다.

이후 강원FC는 6월 21일 성남전 4-1 승, 6월 27일 전북전 5-2 승을 기록하며 창단 첫 3연승이라는 위업을 작성했거든요. 이것이 더 의미가 깊었던 까닭은 3경기 연속 4골 이상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는 그간 그 어느 구단도 작성하지 못했던 것으로서, 창단 첫 해인 신생팀이 이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할 수밖에 없는 신기록입니다.

하나 더. 당시 울산전이 특별했던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공격루트의 활용, 그리고 성공에 있었습니다. 중앙수비수 곽광선, 왼쪽 날개 오원종, 왼쪽 풀백 전원근, 중앙미드필더 마사가 차례로 골을 기록하며 강원FC는 기존 김영후-윤준하로 대표되는 강원FC의 공격 조합에 의지하는 모습에서 전적으로 완벽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최대 강점은 어디서 터질 지 모르는 다양한 공격 루트”라던 최순호 감독의 호언처럼 현재 강원FC의 공격루트는 더욱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데, 그 시작이 바로 5월 24일 울산과의 원정경기였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8월 2일 춘천 홈 개막전에서 데뷔전 데뷔골을 터뜨린 크로아티아 용병 라피치와 지난 8월 복귀 이후 복귀골(9월 6일 수원전)과 복귀 도움(9월 20일 대구전)을 연달아 쏘아올린 재팬 특급 마사, 지난 대구전에서 강원 이적 후 첫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키며 곽광선(3골) 김봉겸(2골)에 이은 ‘골넣는 수비수’ 등장을 알린 이세인 등 기존 공격수 뿐 아니라 미드필더, 수비수들이 최근 연달아 득점포를 가동하며 강원FC 선수단은 최순호식 화려한 공격축구의 진가를 깊이 드러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강원FC의 울산과의 홈경기가 더욱 기대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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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8월 30일 수원삼성과 강원FC와의 경기는 수원에게 있어선 고인이 된 정용훈 선수를 추모하는 경기였습니다. U-17대표팀과 U-18대표팀을 거쳤던 1998년 수원에 입단했던 유망주는 K-리그 통산 64경기 5골 3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003년 8월 31일...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죠. 당시 펑펑 울던 조병국 선수의 얼굴이 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가 준비한 추모걸개입니다.

못다한 꿈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슬프게 다가왔던...

걸개 위에 있던 국화꽃들.

벌써 세상을 떠난지 6년이라네요.

 
정용훈 추모경기였던 그날이 더 특별했고 아름다웠던 이유는... 함께 정용훈 선수를 그리워하며 자비로 국화 꽃을 준비했던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반 44분 2-3으로 뒤지며 패색이 짙던 수원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송종국의 크로스를 받은 에두가 껑충 뛰어 올라 헤딩슛을 시도했고, 그대로 골망을 출렁이며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빅버드가 열광의 함성으로 가득찼을 때 골을 넣은 주인공 에두는 왼쪽 코너 플래그가 꽂혀있던 곳을 지나 한쪽 구석까지 달려갔습니다. 어디로 달려가는 거지?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죠.

에두가 달려간 그곳에 링거를 꽂은 채 마스크를 한 어떤 이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누구시냐고요? 신인기씨.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블루포토라 명명된 수원삼성 명예사진기자 모임에 소속돼 푸른 전사들의 사진을 찍어주신 분입니다. 수원 팬들 사이에서는 신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신 분이죠. 저도 이분의 사진을 보며 사란 사커 키즈 중 하나입니다.
한데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진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로 뵌 신인기씨는 무척 야위어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3년 전 위암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 투병 생활 중이라군요. 최근에는 암세포가 전이되 항암제를 맞으며 말기가 주는 고통과 싸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수원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자신의 몸만한 카메라와 렌즈를 챙겨들고 경기장에 나섭니다. 강원FC와의 경기가 열렸던 그날도 그랬고요. 한데 참으로 아름다웠던 것은 그런 그의 정성에 감동받은 에두가 동점골이 터진 후 그에게 달려가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오직 신인기씨만을 위한 세레모니를 보여줬던 것이죠.

경기 종료 후에는 선수들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 그의 쾌유를 빌어줬습니다.

신인기씨 앞으로 달려간 에두 선수의 모습이 살짝 나왔군요.

경기가 끝난 후 이렇게 단체사진도 찍었고요.

강원전날 신인기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수원의 여름전지훈련 때도 그는 동행하여 사진을 찍었지요.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수원의 역사를 담기 위해서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수원 구단에서는 신인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하프타임 때 전광판을 통해 그의 영상을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진 마감 때문에 사진기자실에 있던 저는 이 동영상을 보지 못했는데 그랑블루 여순식님께서 고맙게도 보내주셔서 이렇게 블로그에 첨부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신인기씨가 사랑하는 아들과 다시 축구장을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앓는 사람에게 강복하시고 갖가지 은혜로 지켜주시니 주님께 애원하는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신인기 프란치스코 형제님의 병을 낫게 하시며 건강을 도로 주소서. ● 주님이 손으로 일으켜주시고 주님의 팔로 감싸 주시며 주님의 힘으로 굳세게 하시어 더욱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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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엎치락 뒷치락 하는 강원과 수원 때문에 빅버드를 찾은 관중들은 마지막까지 "달려!" "포기하지마!"를 외치며 선수들을 응원했습니다. 어느 팀이 이길지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까지 가늠하지 못했을 만큼 참으로 흥미롭던 공방전이었습니다.

전반 시작과 동시에 에두의 공격이 시작됐고 강원 역시 김영후를 축으로 매섭게 달려들었습니다. 전반 8분 김영후의 슈팅이 오른쪽 포스트 하단을 맞으며 튕겨져 나가는데 아, 너무 아쉽더군요. 첫 득점은 강원 킬러 배기종의 발끝에서 나왔습니다. 강릉에서 열린 첫 대결에서 동점골로 강원FC를 뼈아프게 했던 배기종은 이날도 선제골을 쏘아올리며 강원의 간담을 서늘케 했죠.

그러나 강원에는 최근 급성장한 김영후가 있었습니다. 전반 29분 전원근의 패스를 받은 김영후는 침착하게 왼발로 차 넣으며 1-1 동점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 동료 직전 에두가 라피치에게서 얻은 프리킥은 너무나 멋진 곡선을 그리며 강원의 왼쪽 골망을 갈랐습니다. 골키퍼가 미처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구석을 파고든 멋진 골이었습니다. 하지만 후반 4분 김영후가 PA에 있던 마사에게 패스했고 마사는 멋지게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습니다. 하지만 공격의 공격을 거듭했던 강원은 후반 14분 안성남의 패스를 받아 추가골을 성공시킵니다. 축구에서 가장 재밌다는 펠레스코어가 나온 거죠. 하지만 더 극적이었던 것은 후반 44분 에두가 높이 떠오르며 헤딩 동점골을 성공시켰다는 사실에 있었죠. 빅버드는 그야말로 무너질 것만 같은 함성으로 가득했죠. 강원에게는 너무나 속상했던, 그러나 수원에게는 기적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양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인 김영후와 에두. 두 선수 모두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진정한 공격축구의 진수가 무엇인지 알려줬습니다. 위기의 K-리그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강원과 수원 선수들의 노력들 -쥐가 나는 다리를 붙잡고, 침으로 피를 뽑아내는 아픔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뛰고 또 뛰며 데드볼 타임을 줄였던-은 K-리그의 성장과 희망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고, 무엇보다 정용훈 선수의 추모경기에서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한 수원 선수들에게 축하 인삿말을 전합니다.

선수들이 들어옵니다.

정용훈 선수의 추모 걸개...

아직도 우리 기억 속에 있는 선수입니다. 당시 눈물을 펑펑 쏟던 수원 선수들의 모습도 생각나구요.

질주본능 김영후.

1-1 동점골을 성공시킨 후 하늘을 향해 세레모니를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중원의 든든한 젊은 살림꾼. 권순형 선수입니다.

강원FC의 유명한 가발부대. ^^

2-2 동점골을 터뜨린 재팬특급 마사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엄지를 들어보이는 마사.

동료 선수들에게 축하 인사도 받고. ^^ 마사가 너무 어린이 같이 보이네요. ^^

김영후의 역전골로 3-2로 앞서 나가는 강원입니다.

완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큰형님 을용 형님. ㅎ

그러나 44분 에두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며 고개 숙인 채 경기장을 나서야했습니다.

멀리 수원까지 원정 나온 강원FC 팬들. 버스가 무려 4대나 떴답니다.

정용훈 선수 추모경기에서 마법같은 무승부를 이뤄낸 수원 선수들. 멋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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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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