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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나무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건 2006년입니다. 당시 저와 친한 후배 한명은 오장은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했습니다. 후배는 오장은과 통화 중에 늘 이렇게 묻곤 했죠. “이번에 휴가 받으면 또 산에가요?”

여기서 산이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산골을 말하는 거구요 소나무 선생님은 그곳에 계신 선생님을 가리킵니다. 정확하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는 모르겠어요. 그 분은 민간요법에도 능하시고 기치료에도 정통하고 순수의학이 아닌 대체의학을 통해 선수들의 심신을 맑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선생님이십니다.


오장은의 경우 발가락 2개가 어린시절 사고로 마디가 절단된 상태라 발란스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무게중심이 양 발바닥에 고루 퍼지지 못해 피로가 쌓이고 그러다보면 부상도 많이 당하곤 하죠.

그때마다 병원에서는 꽤 오래 쉬어야할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신기하게도 함양에 다녀오면, 그곳에서 소나무 선생님의 치료를 받으며 쉬었고, 그러다보면 예정보다 빨리 나아 금세 복귀전을 치르곤 했죠.

제가 아끼던 선수 한명도 그곳을 잘 다녔습니다. 휴가 때 얼굴 보며 밥이라도 먹자고 하면 그 선수는 늘 말했죠. 산에 가야해요, 라고요.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산 입구까지 가서 걸어올라가야하는 그곳. 그곳까지 가는 동안 정신없이 통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도착하죠. 이제 핸드폰 꺼야해요, 라는 말을 하면 도착한 겁니다. 그곳에는 불문율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핸드폰을 통해 개인통화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또 생각하는 건...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돌아다니거나 여자를 만나지 않을 것. ^^

한번은 산에 있던 식구들이 모두 대구FC 경기를 보러 가서 혼자 있다며 그 선수가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산 식구인 오장은을 응원하기 위해서였죠. 지금도 기억에 선연한 건,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별들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것 같다던 그 말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로맨틱한 대사라 기억하는 게 아니냐며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곳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이해할 것입니다. 한번도 가지 못했지만 그 산을 방문하던 선수들은 참으로 맑아 아마추어 같은 프로선수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아마추어 시절의 열정을 가슴 한 가득 품고 있던 그 느낌이 늘 좋았는데, 아... 저렇게 맑은 곳에서 쉬고 명상하면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산과 하늘과 별을 닮은 그런 영혼을 가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더랬지요.

축구선수들에게 입소문이 제대로 나면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겠지만 그곳에 계신 소나무 선생님은 돈보다는 인연과 영혼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치료를 받으며 산에 있던 선수들은 그 인연을 소중히 이어나가고 또 간직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추캥’인데요, ‘축구로 만드는 행복’을 의미합니다. 그 앞 글자인 ‘축’과 ‘행’을 이어 발음한 ‘추캥’을 그대로 모임명으로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참 센스돋죠? ^^

박건하 코치님과 오장은, 김재성의 주도 아래 추캥 식구들은 십시일푼씩 모아 어려운 이웃을을 위해 썼습니다. 함안군 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한 선수도 있었고 고아원, 양로원을 방문해 선물도 드리고 친선게임도 가졌고요. 2000년부터 했으니 올해로 11년 째이네요. 그들의 선행이.


추캥은 올해 2000만원의 장학금을 모았습니다. K리그에서 골을 넣으면 30만원, 도움을 올리면 10만원씩 적립했는데 5골·12도움을 기록한 구자철이 270만원, 2골·3도움을 올린 오장은이 90만원을 냈습니다. 특히 구자철은 3년 째 안의초등학교 축구선수 2명을 후원하고 있다네요.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저는 단 한번도 그들의 선행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없습니다. 드러내고 하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죠. 조용히 알음알음으로 하는 그 본심을 존중하고자 저는 단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는데요, 오늘은 드디어 추캥의 선행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됐네요. 오늘 오후 함양공설운동장에서 아주 특별한 추캥의 축구경기가 열립니다.

설기현, 김재성, 신형님, 신광훈, 김다솔, 조성환, 서정진, 김두현, 윤석영, 백용선이 축구팀으로 나서게 되고 박건하, 이요한, 김승용, 하대성, 유경렬, 오장은, 김진욱, 최진수, 이용, 정혁이 행복팀으로 나눠 친선경기를 가집니다.

함양군 군수가 함양공설운동장에서 친선경기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고 참가선수들을 위한 숙소도 무료로 제공했네요. 자선경기가 끝난 뒤 장학금은 함양군수에게 전달되고 일부는 함양출신의 연평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위로금으로 쓰이게 됩니다.

자선경기지만 협찬도 없고, 입장료도 없습니다. 선수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고요, 그 주머니에서 나오는 건 단순히 돈만이 아니라는 거... 다들 잘 아시죠? 프로라는 경쟁체제 속에서 이웃을 위한 사랑을 잊기 쉬운데, 10년이 넘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묵묵히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했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죠.

돈을 많이 버는 프로선수라면 나라도 할 수 있겠다고, 누군가는 볼멘소리로 말하겠지요. 하지만 커피 한잔 값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죠. 그런 점에서 귀중한 시간을 쪼개 축구를 통해 사랑을 베푸는 건 대단한 일이고 박수받아 마땅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캥 자선경기에 꼭 오라고 초대했는데, 회사 일 때문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네요. 그래도 마음은 그곳에 있고요 건강한 그 모습이 오래도록 영원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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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달 독일에서 U-20여자월드컵에서 여자청소년대표팀은 3위에 오르며 남녀 축구를 통들어 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중에서 팀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지소연은 FIFA 주관대회에서 첫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고 6경기 8골을 터뜨리며 실버부트와 실버볼을 동시에 차지했습니다.

남자축구 같은 지원도 대우도 받지 못하여 운동선수로서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은 처우가 좋은 여자배구나 여자농구를 선택하고 있을 때, 그래도 축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공을 차던 몇 안되는 소녀들은 눈물 나는 결과를 이뤄냈습니다.


헝그리정신이니, 투혼이니, 그런 말들을 쓰고 싶지 않지만 작금의 여자축구 환경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소연을 더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소연이 때아닌 안티팬들의 공격을 받고 있네요.

한 언론사에서 청와대를 방문하기로 돼 있지 않냐고 질문을 던졌는데, 지소연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될 것 같다.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대통령에게 '셀카(셀프 카메라)' 찍자고 해볼 생각이다(웃음).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대통령께는 여자축구에 많은 관심 가져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축구팀 창단을 늘려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앞으로 후배들은 우리와 선배들이 겪었던 열악한 환경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셀카는, 20살 어린 소녀의 순수한 답변이었습니다. 일반 사람 뿐 아니라 운동 선수들에게도 청와대는 쉽게 방문할 수 없는 곳이고, 특히나 운동 선수들에게 청와대는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안고 돌아왔을 때 갈 수 있는 특별한 곳입니다. 가슴이 설레는 건 당연할 거고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것 역시 자연스러운 감정이겠죠. 엄마로서 자식에게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상도 받고 국민들의 사랑도 받고 대통령도 이렇게 만났다며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겠죠.

중요한 건 그 마음 멘트였습니다.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은 서두에 꺼내면서 말문을 연 것이고 지소연이 진실로 하고 싶었던 말은 여자축구의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팀 창단도 늘리고 인적, 환경적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너무나 안타까운 건 지소연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묻히고 단지 대통령과 셀카를 찍고 싶다는 발언에만 일부 누리꾼들이 집중하고 악플을 단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는데, 운동만 하고 지내 사회를 잘 모르는 순수한 축구소녀가 대통령과 사진 찍고 싶다는 발언으로 악플에 시달린다는 건,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이제 막 대중에 이름을 알렸고, 대중의 사랑에 기뻐하며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연 지소연이 이번 일로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자신의 기사가 포털사이트에 매일 같이 개재되는 일도 없었기에 기사도 읽고 그 밑에 달린 댓글도 읽어볼텐데 그러다 육두문자가 섞인 욕들을 발견한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까요?

축구를 할 때면 강심장으로 바뀐다는 지소연이지만, 악플은 주먹보다 더 아프고 큰 상처를 남깁니다. 이보다 더 힘든 일에도 묵묵히 공을 찼다고 하지만 이번 악플 사건은 꽤나 아프게 다가올 것입니다.

몇몇 누리꾼들은 노트북 갖고 싶다는 발언도 ‘공짜’를 위해서 일부러 한 게 아니냐는 말도 서슴치 않게 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런데, 전 정말 인터넷같은 데 그 내용이 나가게 될 줄 몰랐어요. 그냥 예전부터 해외에 나갈 때 노트북 필요했고, 운동 때문에도 여러번 필요성을 느꼈거든요. 그동안 친구들한테 빌려쓰면서 미안했는데, 이제 제 것이 생겨서 기뻐요. 아직 컴퓨터를 몇 개 받았는지는 몰라요. 여러 개 받게 되면 제 동생하고, 팀 동생들한테도 줄래요.”

이 내용이 기사로 전해져 실제로 선물로 들어올 예상조차 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에 필요한 걸 이야기했을 뿐인데 이것이 이제는 악플로 되돌아오고 있네요.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읽지 못하는 우리야말로 악인이 아닐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5월이었나.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입고 공항을 지나가는데 어떤 분이 '붉은악마'냐고 물으셨어요. 12년이나 축구를 했는데, 여자축구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그래서 여자 축구 발전을 위해 이를 악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아니요. 대회 중엔 (맥주) 절대 안되죠. 콜라조차 안되요. 첫 경기 해트트릭 때는 그렇게 중요한 경기에서 제가 골을 많이 넣고 이겼다는 게 기뻤고요, 한국인 최초로 FIFA 대회에서 해트트릭 했다는 게 영광스러웠어요. 솔직히 저는 우리가 결승에 갈 줄 알았거든요. 우승할 줄 알았는데 독일에 너무 크게 져서 좀 속상했어요. 우리가 국내에서 대회 치를 때는 관중이 없는데, 그 날은 2만명도 넘는 관중이 야유를 막 해대니까 당황하고 긴장했어요. 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절대 당황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많이 배웠죠."

"남자대표팀이 파주에 들어오면 여자대표팀은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훈련 중 파주에서 잠시 인근 호텔로 옮겼어요. 당연히 기분이 좋진 않죠. 우리 여자팀도 똑같은 대표팀이니까요. 이해해야 하지만 왜 그럴까 하는 불만은 있어요. 그런데 지금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남자 대표팀과 여자 대표팀은 규모 자체가 다르니까요."

남자대표팀이 트레이닝센터에 들어오면 숙소를 옮겨야하고,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붉은악마로 착각하고, 늘 관중 없이 뛰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만원관중의 야유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잘했다며 소녀들의 선전에 박수보냈지만 지금의 성과를 이루기까지 어떤 환경 속에서 뛰었는지는 모릅니다. 관심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독일 가기 전에는 월드컵을 하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는데 돌아오니 우리한테 관심이 많이 쏠려서 깜짝 놀랐어요. 돌아오자마자 인천공항에 기자분들이 정말 많이 오셔서 놀랐죠.”

지소연은 지금의 관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한순간에 썰물처럼 사라질까봐 두렵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여타 비인기종목들이 그간 좋은 성과를 안고 돌아와도 다 한때일 뿐 다시 그림자 생활을 하는 것처럼 여자축구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허리가 아픈 엄마를 위해 찜질방 딸린 집을 사드리고 싶고, 노트북 선물이 들어오면 동생과 후배 선수들에게 주겠다며 자신의 욕심보다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뛰는 지소연의 순수한 마음을요.

그러니 이 어린 소녀가 상처 대신 희망과 용기를 안고 그라운드에서 뛰어다닐 수 있도록 악플 대신 격려를 보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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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U-20여자월드컵에서 3위에 오르며, 여자청소년대표팀은 남녀 축구를 통틀어 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초청 K-리그 올스타전이 이런저런 잡음들로 시끄러웠고 그 때문에 다수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기도 했으나 U-20여자대표팀의 금위환향을 넘어갈 수는 없겠죠.

최인철 감독이 이끈 U-20여자대표팀은 조별예선에서 스위스(4-0)와 가나(4-2)를 대파하고 조 2위로 8강에 진출해 멕시코(3-1)를 꺾고 준결승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고지 하나만 넘으면 결승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지만 개최국 독일에 1-5로 패하며 4강진출에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3-4위전에서 콜롬비아(1-0)를 꺾으며 언니, 오빠 선수들이 해내지 못했던 3위에 오르며 또 하나의 축구역사를 쓰고 돌아왔습니다.
단체스포츠인만큼 모두가 합심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는, 이제는 지메시로 불리는 지소연입니다. 지소연은 8골(스위스전 3골, 가나전 2골, 멕시코전 1골, 독일전 1골, 콜롬비아전 1골)을 기록하며 6경기 8골로 실버부트와 실버볼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알렉산드라 포프가 10골로 득점왕에 올랐는데, 2골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지소연은 어른답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말했죠.

그렇게 당차고 어른스럽게 말하던 지소연도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결국은 눈물을 흘리고 말더군요.

“지금까지 고생 많았는데… 엄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사랑해요.”라고 지소연은 울먹이며 말하다 끝내 눈물을 쏟았습니다.

알다시피 지소연의 어머니는 지소연이 6학년이었을 때 이혼 뒤 봉제공장을 다니며 지소연을 뒷바라지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궁암 판정을 받아 병마와 싸우면서도 힘들게 축구선수 지소연을 길렀습니다. 그러나 암 수술 후에는 허리 디스크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고 기초생활수급자 급여 30만원 외에는 딱히 수입원이 없습니다. 지소연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받는 상금과 대표 소집 때마다 받는 훈련 일당이 유일한 수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축구화가 떨어져도 수십만원 하는 축구화를 살 형편이 되지 못해 더 이상 킥을 하지 못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신어야만 했습니다. 남동생이 MP3를 덜컥 사가지고 왔을 때는 우리 형편에 이런 고가의 물건을 사도 되냐고 나무랄 정도로 엄마를 생각하고 일찍 어른이 돼야 했습니다.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찜질방이 있는 집을 사주겠다는 꿈을 꾸며 공을 찼던 소녀 지소연. 지소연의 눈물이 더욱 특별했던 까닭은 가족을 위한 꿈이 느껴졌기 때문이고 이것은 비단 지소연만 흘린 눈물은 아니겠지요.

이번 U-20여자월드컵에서 아름다운 결실을 맺은 여자대표팀 선수 뿐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보지 못한 이 땅의 여자 축구선수들이라면 한번쯤 흘렸을 눈물이었기에 저는 그녀의 눈물이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됐을 때, 남자들이나 하는 운동을 왜하냐며 반대와 핀잔 속에서 뛰어야했겠죠. 생리통 때문에 배가 아파도 그라운드에 나서야했고 아무리 선크림을 발라도 자꾸만 까매지는 피부 때문에 고민도 많았겠죠. 20살이면 화장도 하고 싶고 치마도 입고 싶은 나이지만 햇볕에 그을려 상한 피부는 파운데이션을 거부했을테고 물집이 잡힌 발 또한 하이힐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겠죠.

많은 여자축구 선수들은 가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좋은 선수가 돼 가계에 보탬이 되는 딸이 되겠다며, 혼자가 아닌 가족을 생각하며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축구를 위한 인프라는 지극히 열악합니다. 이렇듯 안팎으로 열악한 형편 속에서도 그녀들은 남자축구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소박한 소망을 밝힙니다. 그저 여자축구가 지금처럼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요.

독일과의 준결승전. 머리 하나가 더 있던, 게르만족의 피를 받아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던 독일 여자 선수들과 부딪힐 때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나뒹굴어도, 그래서 5골이나 먹혔지만 소녀들은 당황하는 대신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다시 뛰고 골문을 향한 슈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경기를 봤던 사람이라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지소연의 눈물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간 여자선수들이 겪었을 아픔과 고뇌, 그리고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줬기에 말입니다.

그러니 소녀들이여, 이제는 울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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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제 오늘 김별명 김태균 선수와 여신 김석류 아나운서의 결혼발표가 스포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네요. 저는 축구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이쪽 축구 쪽 관계자들도 굉장히 놀랐고 또 상당히 관심 있게 지켜본 결혼 소식입니다.

사실, 저는 김석류 아나운서가 스포츠 쪽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할 거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어요. 이쪽 일이 워낙에 바쁘고, 주말에도 경기가 있기 때문에 현장에 나가야하니까. 그렇다 보면 일반 사람과의 연애는 굉장히 힘들어요. 한마디로 먼나라 이야기죠. 라이프 스케쥴이 전혀 맞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 역시 여전히 솔로랍니다. 솔로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소개팅도 몇 번 해봤는데요., 안되더라고요. 일반 회사원들은 주말에 쉬는데 저는 주말에 축구경기가 있고 일하기 위해서는 경기장에 나가야하니까요.

그래서 김석류 아나도 분명 오며 가며 만난 스포츠계 관계자와 결혼을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선수랑 결혼을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고요. 김석류 아나가 처음 스포츠아나운서로 일하게 됐을 때 그때는 축구와 야구를 동시에 취재를 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저도 축구장에서 오며 가며 몇 번 봤었거든요.

그때 제가 몸담고 있던 잡지사에서 남자기자가 사심을 품고 ㅋ 김석류 아나와 화보촬영을 진행했는데, 후에 그 잡지를 보며 제가 알고 있던 정말 꽤 많은 축구선수들이 김석류 아나와 친하냐고, 좀 알면 다리 좀 놔달라고 성화였습니다. 한데 전 잘 알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 용기로 직접 얘기해보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참고로 그 중에 한 명은 국가대표까지 승선한 선수였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야구를 전담으로 맡게 됐고 더 볼 기회는 없었는데, 작년 12월 서포터즈 연합회에서 마련한 시상식에서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시상식이 끝나고 짧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SK구단에서 뛰고 있던 대학시절 친구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알고 봤더니 석류 아나도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 친분을 쌓았더라고요. 잘 알고 있다며 굉장히 놀라워하며 제가 명함을 줬는데, 그때도 제 주위 남자기자들이 이것이 정녕 석류 여신의 명함이냐며 다들 구경하고 명함 속 핸드폰 번호를 외우려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받았던 인상은 굉장히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구나, 였습니다. 제가 축구 관계자라는 걸 밝혔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이었던 그녀가 야구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 거렸거든요. 그래서 그녀의 열정이 야구 관계자, 그러니까 야구 감독, 선수들, 팬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헤어졌던 기억이 나네요.

두 사람의 결혼소식이 발표되고 축하해주는 사람도 많았지만 악플도 많고 그래서 이래저래 마음 고생이 심한 듯 합니다. 그녀가 최근에 쓴 아이러브 베이스볼을 보면 야구선수와 연애는 하지 않겠다는 구절을 예로 들며 연애는 안하고 결혼은 하겠다는 거냐며 반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고요.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결혼은, 분명, 축하받아야하는 일인데 말이죠.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스포츠인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그녀를 이해합니다. 얼마 전에 저도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러다 축구선수랑 어느 날 갑자기 연애하는 거 아니냐고 남자기자들이 제게 그랬는데요. 스포츠계에서 일하는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질문을 한두번씩 받는 듯합니다.

남자기자들이 취재차 선수들과 통화하면 직업의식이지만 여자기자가 선수에게 전화할 때는 왜?라는 색안경을 끼고 볼 때가 많거든요. 남자기자와 선수들이 시즌 종료 후 편하게 술자리를 가질 수는 있어도 여자기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매력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에게는 호감을 갖기 마련인데요, 남자기자들도 그런 선수들에게는 마음을 표현하며 굉장히 잘해줍니다. 그렇게 친분을 쌓으면 종종 선수들이 자신의 유니폼이 축구화 등 선수용품을 선물로 주고 기자들은 이에 고마운 마음에 경기 때 잘나온 사진 좀 챙겨놨다며 주는 등 꽤나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는데요. 이게 남자기자와 남자선수 사이에서는 형과 동생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여자기자는... 글쎄요. 호형호제가 만든 풍경과는 조금 거리가 멉니다. 여자기자가 남자선수에게 잘해주면 좋아하는게 아닐까, 저건 좀 과한게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게, 이쪽의 사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해져도 항상 존대를 하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선수 쪽에서 누나, 왜 그러세요, 말 편하게 하세요, 라고 하더라도 제가 존대말을 꼬박꼬박 하면 선수 쪽에서도 저를 조심히 대하게 되고 그게 편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죠.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가 택한 방법입니다.

또 시즌 종료 후에 선수와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자리에도 선수가족과 함께 먹거나 선수 애인도 동석하는 쪽을 택했고 선수가 잘나온 사진을 부탁해도 선수 본인이 아닌 그의 부모님이나 여자친구에게 주며 챙겨주는 방법을 취했죠. 그러면 다들 남자가 아닌 선수로서 생각해주는구나, 하는 제 본심을 알더라고요. 뭐 가끔은 이렇게까지 힘들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뭐든 조심해서 나쁜 건 없으니까요. 남자뿐인 스포츠 세상에서 몇 안되는 여자로 일하는 저로서는 늘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조심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아마, 김석류 아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야 뭐 그녀처럼 -이렇게 되면 꼭 자기 비하성 발언일 수도 있겠는데요, 그래도 사실이니까요. 흑. - 예쁜 편이 아니라서 사실 선수와 편한 모습을 보여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선수 여자친구들이 얼마나 예쁜데요. 다들 키크고 날씬하고 긴 팔다리를 자랑하고, 쌩얼도 화장 한 저보다 고운 그녀들이니까요. 반면 저는 늘 피곤에 지쳐보이고 요즘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운동을 안하다보니 살도 좀 쪄서 저희 엄마 표현을 적자면 토실토실하다는. 하지만 석류 아나는 여자인 제가 봐도 연애감정이 생길만큼 정말 과일 석류처럼 참 매력적으로 빛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미모 때문에, 열심히 현장을 뛰어도 저러다 야구선수랑 연애하겠지, 하는 시선으로 많이들 본 것 같아요. 그녀가 나는 절대로 야구선수와 연애하지 않겠다고 높은 담을 치고 사람들에게 말한 것도, 아마 스스로에게 한 다짐일 수도 있겠죠. 혼자가 아닌 여러사람들에게 말함으로써 그 말에 의미와 책임을 부여하고 싶었겠죠.

스포츠아나운서로 있는 동안, 스스로가 말했듯이 야구의 야자도 몰랐다고 하니, 지금 이렇게 대본없이 야구선수들을 인터뷰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요. 그녀는 그 노력이 희석되는 걸 바라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주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엔 결혼으로, 야구장을 떠나게 됐지만, 제가 아쉬운 건 자신이 땀과 눈물을 흘렸던 현장을 결혼과 학업, 내조를 이유로 이렇게 쉽게 떠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스포츠계에 일하는 여자들이 늘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바로 결혼하면 그만둘 거면서, 이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학업 소식을 먼저 듣고 결혼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요.

그녀는 야구와 연애하기도 벅찬데 야구선수와 사랑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책에다 썼었죠. 그러나 제가 보고 싶은 건 야구와도 멋지게 연애하고 야구선수와도 찐하게 사랑하는 김석류 아나운서의 모습입니다.

처음 현장에 나섰을 때 무시하던 감독님들과 선수들 때문에 눈물나게 속상했다던 김석류 아나운서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열심히 야구를 공부했고 수첩 가득 야구 정보를 적으며 멋지게 야구인으로 성장했죠.

그녀는 또 자신의 책에 야구선수와는 연애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야구선수에게는 여자이고 싶지 않다”는 선언이라고 했죠.

이제 결혼을 하게 되면 김태균 선수만의 여자일테니 김석류 아나운서, 당신은 김태균 선수를 제외한 모든 야구선수에게는 여자가 아닌 스포츠 아나운서일 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정말 야구를 사랑한다면, 현장의 잔디냄새를 그리워한다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다시 마운드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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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황선홍 밴드로 요즘 인기몰이 중이신 최진철 코치. 무뚝뚝한 인상과 말 없는, 그러나 화가 날 때는 확 달아올라 그 화를 쉽게 잘 참지 못하는 다혈질 성격 때문에 제게는 늘 어려운 코치님이십니다.

그래서 처음 황선홍 밴드 CF가 나왔을 때, 헤드폰을 끼고 “오 대한민국~ 승리의 함성~”을 외치는 첫 번째 CF를 봤을 때만해도 평소 코치님 모습 그대로인 듯하여 제게는 큰 감흥이 오지 않은 그런 CF였습니다.

그런데 2탄이 곧 나왔어요. 발로 손을 두 번 올렸다 내린 뒤, 큰 박수를 치는 동작이 나오는 CF였는데요, 그 CF가 나온 뒤에 코치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코치님께서 “음치인 줄 알았는데 박치에다 몸치였다”며 CF를 찍던 당시의 고통을 몸소 재연하시더라고요. 처음에 그 동작을 배우는데 너무 어려웠다면서 계속해서 엉거주춤하는 자세로 배웠다고 하시는데, 그 모습이 절로 상상해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동작을 익힌 다음에는 CF촬영에 들어갔는데 반나절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찍었다고 하네요. 찍고 난 코치님의 소감은...?

“팔이랑 다리가 아고고 너무 아파 죽는 줄 알았어.”

아무래도 다리를 들어 올리고 큰 박수를 반복해서 치는 동작이다 보니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컸죠. 축구를 할 때 쓰는 근육과는 다른 근육을 쓰다 보니 힘들었나봅니다.

그러나 코치님은 이내 씩 웃으면서 “그래도 축구만 하다 보니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서 재미있게 찍었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로부터 며칠 뒤 강원FC 선수단은 K-리그 심판 가이드라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K-리그 경기 영상을 심판들과 같이 보고 파울과 반칙, 경고 및 퇴장에 대한 심판들의 지침과 선수들이 지켜야할 룰에 대해 배웠는데, 교육이 끝나고 질의 응답 시간이 있었죠.

한데 선수들은 저녁 늦게까지 심판 교육을 받은 터라 꽤나 피곤했어요. 빨리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은데 코치님들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끝났겠지, 하는데 최진철 코치님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질문도 길었는데요, 마침 그때 앞자리에 앉아있던 어린 선수가 앉은 자리에서 다리와 손을 올렸다 내렸다하면서 CF 속 최진철 코치님을 흉내내더라고요. 그때 와, 하며 선수들이 웃었는데 코치님은 왜 선수들이 웃는지 그 이유를 아마도 몰랐을 겁니다. 물론 저도 웃음을 참지 못한 1인이었죠. ^^

그리고 얼마 전. 드디어 사건이 터졌습니다.

프로축구 2군리그인 R리그 경기가 열린 강릉축구공원. 오후 3시에 열리는 경기라 꽤나 더웠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 나와 준비를 한 터라 더위에 지쳤고, 짜증도 나기 시작했죠.

그런데 볼보이 자원봉사를 하게 된 한 학생이 최진철 코치님이 지나가자 CF속 춤 동작을 흉내내더라고요. 경기가 나가기 위해 웜업을 하는 시간은 다소 진지한 시간인데, 그 모습을 보고 선수들이 순간 웃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최진철 코치님이 “학생, 이리와 봐!”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순간 큭큭 웃던 선수들의 얼굴에선 긴장이 감돌았고, 문제의 그 학생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 얼음처럼 서있었습니다.

“이리와 보라는 소리 안 들려!”

최진철 코치님이 다시 고함을 치셨습니다.

그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코치님 앞에 쭈뼛쭈뼛 걸어갔죠.

“아까 한 거 뭐야? 엉? 내가 보는 앞에서 다시 해봐!”

학생이 가만히 있자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내 말 안 들려? 다시 해보라고!”하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코치님의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는지 학생은 천천히 아까 했던 동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를 살짝 올렸다 내렸고 그때마다 손도 함께 올라갔다 내려갔죠.

한참동안 그 동작을 보시던 최진철 코치님은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을 말씀하셨습니다.

“동작이 그게 아니잖아. 마지막에 큰 박수를 딱딱 쳐줘야한다고. 이렇게.”

그러시더니 큰 박수를 치시며 “알겠어? 이렇게!하시더라고요.

이번에도 웃음이 나왔지만 이대로 큰 소리로 웃었다간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이게 뭐냐며 야단을 맞을 것 같아 입을 가린 채 힘들게, 아주 힘들게 웃음을 참았답니다.

그날 경기가 끝나고 저와 선수들은 말했죠.

역시 최진철 코치님은 국가대표 출신이라 그런지 달라. 대인배야, 라고요.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그 모습 그대로, 은퇴 뒤에도 여전히 멋진 최진철 코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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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제 강원FC 1년차 신인선수가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빙 서류를 떼달라고 부탁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전 웃으면서 그럼 있다 오후까지 처리해서 보내주겠다고 원본을 받으러 사무실로 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지금 급하게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가는 길이라면서 은행에서 전화를 다시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사무실에 들릴 시간이 없다면서 은행에 도착해서 은행 팩스 번호를 알려줄테니 팩스로 바로 넣어달라하면서요. 


집안이 어려운 그 선수는 가계에 빚도 많았고 오늘 오전까지 갚아야할 돈이 있었나봐요. 갑작스레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그의 부모님은 고민하다가 아들에게 부탁을 한 거였죠. 사실 부모된 입장으로서 아들에게 어려운 모습을 보이며 손을 벌린다는 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얼마나 상황이 급하고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아 제가 전화를 걸었지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급하게 은행을 가는 길에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어서요.

"어떻게 된거야? 은행 도착했니? 팩스 번호 알려주면 지금 바로 보내줄게. 서류 다 만들어놓았어."

잠시 침묵하던 그 선수는 "아니에요. 안 보내주셔도 되요" 했습니다.

눈치없이도 저는 아무렇지 않게 "왜? 대출 안하기로 했어?"라고 바로 되물었죠.

역시나, 이번에도 잠시 뜸을 들이던 그 선수는 힘들게 말을 이었습니다.

"대출할 수 있는 자격이 안된대요. 사실 제 연봉만 보면 은행에서도 대출해주기가 힘들겠죠."

그 선수는 올 시즌 번외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한, 소위 말하는 '연습생'입니다. 드래프트에서 6순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들의 경우 번외로 프로에 지명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 선수들은 모두 연봉 1200만원에 계약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한달에 100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고 세금 떼고, 클럽하우스 숙식비를 떼면 80만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옵니다.

88만원 세대보다 더 어려운 이들, 그들은 바로 프로 축구 연습생입니다.

100만원이라도 안되겠냐고 하자 은행에서는 거래 기간이 1년도 안되고 월급보다 많은 돈을 대출해줄 수 없다고 했네요. 그래도 아들이 프로구단에 있으니까 어떻게든 대출이 되지 않겠냐고 부모님들은 믿으셨을텐데, 하던 선수의 낮은 목소리가 내내 귓가에 울려펴졌습니다.

지금 6월은 뜨겁습니다. 거리엔 한국 축구의 승리를 기원하며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과 신나는 축구 관련 음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박지성의 연봉이 얼마고, 이청용의 이적을 위해 빅클럽에서 이적료 베팅에 들어갔다고 하고, 16강 진출에 성공했을 때 대표팀이 받게 되는 수당은 얼마고...

빛나고 비싼 이야기들만 가득합니다. 그속에서 전반기 일정을 마치고 함량미달로 짐을 꾸리며 떠나가는 선수들이 있는가하면 80만원 남짓하는 월급을 아껴가며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핸드폰비가 5만원이나 나왔다고 이번달 예산이 초과했다며 한숨을 쉬는 선수들도 있고요.

그야말로 명과 암, 빛과 그림자입니다.

모두의 눈이 왼쪽 가슴에 박힌 태극마크에 쏠려 있는 순간,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박수치는 순간에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묵묵히 땀흘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이땅의 K-리그 연습생들. 저 역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 아래 살고 있기에 그들의 모습에 더 시선이 가고 마음이 아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바랍니다. 그들이 지금의 고난을 이겨내고 끝까지 축구선수로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는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마치 제가 꿈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들의 앞날에 건승만이 가득하길, 온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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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해 많은 축구팬들의 시선이 쏠렸던 드림풋볼 캠페인. 축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는 SK텔레콤의 지원활동을 통해 리더스 유나이티드의 존재가 알려졌고 연변FC 선수들은 처음으로 조국의 땅을 밟았습니다. 시골 삼례여중 선수들은 우상과도 같았던 K-리그 선수들을 만나 축구를 배우는 소중한 배움의 시간을 보냈고, 그날은 앞으로도 소녀들에게 꿈만 같던 날로 그려질 것입니다.

또 크리스마스마다 열리는 홍명보 자선축구를 후원해 더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방문할 수 있었고 그렇게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행렬에 축구팬들도 함께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축구가 사랑이 될 수 있고, 꿈과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고,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저는 SK텔레콤의 드림풋볼 캠페인을 통해 배웠답니다.

올해는 드림풋볼 시즌2가 시작됩니다. 이름하여 꿈나무의 해피풋볼! 2018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고 뛸 태극전사를 꿈꾸는 축구 꿈나무를 선발합니다.

오는 6월 6일까지 홈페이지(http://www.dreamfootball.co.kr/event/intro.asp)를 통해 본인이 속한, 또는 추천하고 싶은 유소년 축구부(클럽)의 소개 사진이나 훈련 동영상을 사연과 함께 등록하면 됩니다.

응원댓글 수와 사연심사 점수를 합산해 5개팀이 선발된 뒤 투표를 통해 최종 3개팀이 선정되는데, 최종 3개팀에 오르게 되면 드림풋볼이라는 이름답게 꿈같은 혜택들이 주어지게 됩니다.

K-리그 Best 선수 3명과 함께 드림클리닉 진행되고요, 수해클럽 중 1인을 선발하여 홍명보장학재단 유소년 유학프로그램에 참가시켜줍니다. 1차에서 아쉽게 탈락한 2개팀에게는 축구용품을 후원해주고요.

SK텔레콤은 2008년부터 홍명보장학재단과 함께 '대한민국 유소년축구꿈나무 육성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6명의 학생이 산토스FC클럽과 코린티안스 클럽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기만을 꿈꾸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올해부터는 K-리그 오피셜 스폰서로 참가해 대표 선수들의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근간인 K-리그의 저변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 시민이 만들고, 시민의 힘으로 운영하는 시민구단 부천FC1995의 메인스폰서로도 활동 중이고요. 지난해 부천FC와 7부리그 United of Manchester의 국경을 넘은 우정의 대결은 널리 회자되기도 했죠.

그리고 이번 여름에는 유소년축구 저변확대를 위해 꿈나무 육성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시작합니다.

주변에 ‘꿈’하나만 생각하며 땀흘리는 어린 축구소년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알고 계신다면, 대신 사연을 접수해주세요. 혼자만 알기 아까운, 소년들의 성장 스토리를 이번 드림풋볼 시즌2에서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제 곧 소년들이 쓰는 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두근두근, 드림풋볼 시즌2에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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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성남일화와의 시즌 개막전을 시작으로 4라운드 포항전까지, 4경기 동안 강원FC가 거둔 성적은 1무 3패. 지난해 이맘 때 쯤 거둔, 참으로 찬란했던 성적 2승 1무와는 사뭇 대조되는 행보였다.

추가시간까지 계속되던 끈끈한 압박,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어지던 공격의 간결함, 투터치 안에 패스를 전개하면서도 볼을 내주지 않던 정확성 등을 볼 수 없다며 강원FC만의 특유의 색을 잃어버렸다는 혹평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지난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래도 강릉에 닥친 때 아닌 폭설로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한 날들의 영향이 컸다고 말하고 싶다. 잔디가 깔린 훈련장이 아닌 체육관에서 운동을 해야했으니 제대로 된 미니패스 훈련, 전술훈련, 세트피스 훈련 등을 할리가 만무했다. 맞춤형 훈련 대신 기본적인 체력훈련만 하다 경기를 치렀으니 어려움이 컸을 수밖에.

그런 가운데 한번은 최순호 감독님과 점심을 먹기 위해 한정식당을 찾은 적이 있었다. 주문을 받기 위해 종업원이 왔는데, 감독님 얼굴을 알아보더니만 “아이고, 감독님. 경기결과가 좋지 못하니 얼굴이 안되보이시네요”하더라. 당시 감독님은 “사람들은 보는 대로 느끼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대로 보는 것 같구나”라고 말씀하시며 멀리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셨다.

한데 잠시 후 그 종업원이 물을 가져다주며 감독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

“감독님, 계획하신 것이 있다고 하셨죠? 저희는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게 벌써 2주 전의 일인데, 감독님은 요즘도 그날 이야기를 꺼내곤 하신다. 그렇게 말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고. 더 말씀은 안하셨지만 그 말이 감독님에게는 많은 힘이 된 듯 했다.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5-2로 이긴 후에도 종종 그날 그 종업원이 했던 말을 꺼내곤 하시니까.

믿고 기다리기. 사랑하는 연인사이에서도 지키기 힘든 게 바로 믿고 기다리기 아니던가. 분명 계단을 올라간다고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고 때론 두세계단 내려가는 듯할 때, 팬들은 실망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한다. 하지만 팀과 선수는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언젠가는 이 계단을 다 밟고 올라가 정상에 서겠습니다,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팬들은, 결국엔 기약 없는 기다림 때문에 지치고 만다. 그래서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팀에 바라고, 감독에 요청하고, 선수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수원삼성의 신인 오재석 선수의 미니홈피에서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보면서도 배울수 있는 것은 많다, 로 시작되는 글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우턴하여
부드럽게 살포시 러블리함을 가미해서
기다림의 미학 이라고 표현한다.
어, 왜 우리 학교다닐 때 급식있지않습니까 급식.
배식순서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롱(Long) 줄. 그 사이에 낑겨
앞사람들 좀 빨리빨리 움직여서 퍼고 빨리 좀 갔으면 싶고
내 차례는 언제오려나하며 배식구 쪽 만을 향하는 초조한 시선.

덩치 큰 녀석이라도 앞쪽에서 버티는 날엔
나를 포함한 뒷사람들의 머리속엔
새우튀김은 저 위치에서 거덜이구나. 다신 볼수없겠다.
A급 반찬들의 운명을 저 자의 다 손에 맡겨야하는구나.
이러한 걱정들을 하곤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뭐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합니다만,
오늘은 김치 대신에 오이소박이가 나오는 납득 안되는 경우.
설마 밥과 함께 필수식단인 국에 말도안되게, 어처구니없이
오이냉국이 출격하는 이런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깟댐 상황
식사전에 오이와 눈을 맞추어 입맛이 떨어질수있는 위험이있는
만리장성과 함께 아시아의 2대 미스테리 상황같은.

허나.

이 초조한 마음들은 놀랍게도
내가 식판과 수저를 잡고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사라집니다.
초조했던 심박도는 정상을 되찾고, 뒤에서 기다릴땐
남들은 제발 좀 빨리 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사람이 됩니다.
기쁨의 아드레날린은 상승하여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과감히, 식판을 오버시켜가며
탕수육소스가 옆에 김치에 흘러들어가도 괜찮고,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으니까 같은 식의
긍정의 힘을 그 누구보다 긍정히 실천하고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리틀 조엘 오스틴이 되곤해요.

놓여진 음식들을 보며 배분율에 대해 분석에 들어가고
남겨져서 날 기다려준 새우튀김을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와 함께
앞에 지나간 뚱띠가 새우알러지가 있었음을 느낄수있는
통찰력과 예지력까지 얻을수있어요.
혹은 이미 밥 푸기 바빠서 뚱띠는 머리속에 안중에도 없거나.

축구도 그렇습니다.
선수마다 때가 있는 겁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나 초조하죠.
줄이 롱(Long) 줄 이니까요
허나 때는 분명히 옵니다.
다만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어지기때문에
막연하게 기다리면 막연하게 시간만 가기때문에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앞서의 새우튀김은 그라운드입니다.
기다림의 이유이자 기대하는 곳이죠.

그라운드에 내가 없다면 조금 실망할수도있지만
남들보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축구에선 선발선수 명단에 들기 위한 노력과 준비.
학교에선 종치면 문열고 달릴 준비를 아주 착실히 한다면

다음번엔 경기장에서 내 이름이 전광판에 떠있고 콜이 울리며

식당에선 가장 먼저나 선두권에서 Door OPEN을 기다릴수있죠
운이 좋으면 막 튀겨낸 뜨끈뜨끈 쌔삥새우를 먹을수있고요
쌔삥새우는 골이라고 치고싶네요.

배가 부른 사람은 느긋하다 늦기 쉽상입니다.
입장이 바뀐상황을 위기라고 표현할수있죠.
먼저 가는 듯 싶지만 새치기를 당할수도있고,
잘 나가는듯 싶지만 부상을 당해 잃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지금 이시기를 위한 급식 조기교육속에 자란 덕에
깨우친게 많아서 처음에 늦은 것 같다고 초조해하지않습니다.
전 룰을 잘 지키며 살지만 어려서도 지금도 단체로 밥먹으면
은근슬쩍 새치기도 악의없이 센스있게 잘합니다.

물론 새치기가 목표가 아니고 실력을 쌓아서 정상에 서고싶고
지금은 마음이야 굴뚝같고 준비되어있는데요
역시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해서 때를 기다리는 입장입니다.
키도 부족하고요. 많이라고 하지말아주세요
성장이 멈춘것같거든요. 희망이 없어서 말이죠.

키는 멈춘것같지만
선수로서의 성장은 이제 갓 14살입니다.
연골이 성장판이 쭉쭉 열릴때라서 많이 성장하고 싶습니다.

시즌은 길고 선수도 많지만 때는 옵니다.
뜻이 있는 곳에 있다는 그 길을 넓은 시야로 잘찾아보겠습니다

요즘 제 미니홈피 재미없다 그래서
몇자는 아니고 몇만자 적날하게 적어봤습니다.
여러분 황사랩니다. 삼겹살 사드세요.

[스티커 붙이시면 딸 낳으면 얼굴 드록바]

아 골 넣으라고 부탁하는 주위 분들.
1년에 1골 넣는 것도 어색하도록 10년간 수비수만 봐왔습니다.
전 수비수라 막는거부터 집중해야되니
지금은 좀 곤란한거같구요
다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요.

메시 동영상 열심히 보고있으니.

뛰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그런가 보구나, 하는 생각에 한참동안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줬으면 좋겠다고 한참동안 생각했었다. 비록 타팀이지만 오재석 선수의 글을 읽으면서 말이다.

지난해 인천전이 끝나고 왜 아직도 김영후 선수는 골을 터뜨리지 못합니까, 라고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을 때 최순호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때론 그 선수를 향한 관심을 조금만 줄이는 것도 선수를 위해선 좋은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김영후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터뜨렸다. 프로 데뷔골을 멀티골로 마감하며 괴물 공격수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K-리그에 널리 알렸다.

올 시즌 왜 아직도 김영후 선수는 시즌 첫 골을 신고하지 못합니까, 라고 사람들이 물었을 때에도 최순호 감독은 그런 김영후를 따로 불러 느긋하게 생각하라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김영후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올 시즌 K-리그 국내 선수 중 최초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또 다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왜 아직도 강원FC는 졸전만 거듭하며 1승을 거두지 못하는 거지요?, 라고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질 때에도 최순호 감독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우리는 계획한데로 가고 있습니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강원FC는 전남을 5-2로 누르며 K-리그 베스트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당장 날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추락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것. 어쩌면 더 높기 날기 위해 잠시 깃을 가다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는 쓰라리고 괴로운 법이다. 하지만 오늘의 패배가 영원한, 그리고 인생의 전부를 지배할 패배는 아니지 않던가. 중요한 건 왜 졌는지 알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고 보완하며 노력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믿고 기다리련다. 강원FC는 슬픔과 괴로움보다 기쁨과 웃음, 그리고 희망을 더 많이 줬던, 하나 뿐인 나의 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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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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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사실, 축구계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도대체 왜 축구가 좋냐는 물음이었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보다 더 솔직한 스포츠는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나의 대답은 같았다. 하긴, 그 누군가도 그랬었지. 땀보다 솔직한 건 없다, 라고.

성장 호르몬에 문제가 있어 키가 안자라던 메시가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도 있던 것도, 거리의 부랑아로 지내던 앙리가 희망의 전도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170cm 밖에 되지 않은 열 아홉 민우가 쟁쟁한 선수들 틈에서 3골이나 터뜨리며 U-20월드컵의 ‘작은 거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축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여기, 축구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과, 내일에 대한 희망과, 사람을 향한 믿음을 얻은 아이들이 있다.

리더스 유나이티드. 소년소녀 가장, 결손 가정, 새터민 자녀, 왕따 청소년들로 구성된 유소년 축구팀이다. 2003년 정읍에서 카센터를 운영 중이었던 김명철 감독이 방황하던 아이들이 안쓰러운 마음에 사재를 털어 만든 축구단이다. 지금도 한달에 100만~150만원의 개인돈이 축구단 운영에 들어가지만 김 감독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더 많은 지원을 해주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과 단절됐던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전용 훈련장을 마련할 여건이 되지 않아 주말과 일요일에만 정읍지역 학교 내 운동장을 어렵사리 빌려 공을 차고 있는 와중에도 리더스 유나이티드가 올린 성적은 제법 준수하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전북도지사배 풋살대회와 정읍시 YMCA 청소년축구대회 우승컵을 손에 쥐었으며 올해에는 제2회 국민생활전국청소년축구대회에 나가 3위에 올랐다.

세상이 버렸다고 생각했던 문제아들이, 이제는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느새 그림자에서 빛이 된 아이들이 공과 함께 몸으로 쓰는 아름다운 이야기. 분명, 축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희망록.

16년도 더 된 고물차를 타고 이동하고, 비어있는 축구장을 찾아 떠돌고, 잔디가 아닌 흙먼지가 폴폴 이는 맨땅에서 공을 차야하지만, 그래도 리더스 유나이티드 아이들은 행복하다. 축구는, 패배의식만 가득했던 그들에게 자신감을 알려줬고 달릴 때마다 울리는 심장의 고동소리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줬으니까. 언제나 꼴찌를 도맡았고, 왕따였을 뿐 아니라 지도교사들도 포기한, ‘루저’라는 카테고리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에게 사랑 받고, 또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줬다. 축구는.

김명철 감독은 말한다. 사고뭉치였던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고.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준다면 사회에 필요한 사림이 될 수 있다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동안 겪는 방황은 인생의 긴 여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밑줄 긋는다.

“이 아이들이 멈추지 않는 꿈을 갖고 사회의 리더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영웅, 홍명보 감독을 만나 즐거운 배움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는 꿈같은 하루였다. 아니 꿈에서도 겪어보지 못했을, 그런 날이었다.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축구를 몰랐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만남이었고 또 쓰지 못했을 이야기였다.

확실히, 축구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다. 정읍의 아이들이 공과 함께 써내려가는 희망 이야기는 앞으로도 이어지리라. 그들이 만들어낼 기적 같은 이야기들은 멈추지 않는 공처럼 계속 되리라. 그것은 오직 축구만이 이뤄낼 수 있는 기적. 그래서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보다. 축구를. 우리들의 축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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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베컴은 그룹 <스파이스 걸스> 출신 빅토리아를, 애슐리 콜은 <걸스 얼라우드>의 멤버 셰릴을 아내로 맞았다. 허정무 감독은 선수시절 방송인 최미나와 결혼했으며 안정환과 김남일은 미스코리아 출신 이혜원, 아나운서 김보민과 각각 웨딩마치를 올렸다. 옛말에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했는데, 능력있는 축구선수는 미인이 따르는 모양이다. 이런 논리가 참이라면, 인천Utd.의 이준영도 능력있는 선수다. 마음까지 예쁜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니까.



그러나 이준영의 여자친구에겐 여느 축구선수들의 ‘그녀’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이준영의 아내가 될 오수정씨는 바로 전직 축구선수 출신으로, b11이 오늘 들려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축구선수가 축구선수를 만났다’는 문장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롤로그
“제 여자친구가 축구선수 출신이라 하면 다들 한 번씩 놀라더라고요. 그렇게 신기한가요?” 전화로 인터뷰 시간을 잡던 중 이준영이 불쑥 던진 질문이다. 아무래도 축구선수가 축구선수를 만났다는 사실은 극히 드문 일이기에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순간,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희가 일반적인 커플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단지 제 여자친구 직업이 다른 이들의 여자친구들과 달랐을 뿐이죠. 그래도 궁금하시다면 만나서 얘기해요.” 그리고 다음날 이준영 오수정 커플과의 접선 장소가 정해졌다.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위치한 신혼집. 그곳에서 결혼식 준비로 바쁜 와중 어렵게 시간을 낸 두 사람을 만났다.

만남, 그리고 시작
“이래봬도 7년 째 연애 중인 장수커플이에요. 대학 때 처음 만났어요. 그때 전 경희대 여자축구부 소속이었죠. 2001년 3월 초로 기억해요. 대통령배에 출전한 남자축구부를 응원하고자 여자축구부원들과 경기장을 찾았어요. 낯선 선수가 선발로 뛰고 있었는데, 문전 움직임이 유독 남달라 눈에 띄더라고요. 주위 사람들에게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신입생 이준영이래요. 그때부터 눈여겨보게 됐죠.” (오수정)

“제 여자친구가 저보다 한 학번 위 선배다 보니 처음엔 대하기 어려웠어요. 한번은 저녁식사 후 남자축구부와 여자축구부 선수들이 한데 어울려 미니게임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같이 운동하고 밥 먹으며 자연스레 친해졌죠. 당시 제가 새내기라 시간표 짜는 것부터 수강신청 하는 것까지 어렵고 서툰 게 참 많았는데, 그때 여자친구가 옆에서 많이 챙겨줬어요. 그러면서 차츰 호감이 생겼죠.” (이준영)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건 2001년 11월부터다. “우리 만나면서 하루씩 날짜를 세볼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민망한 ‘작업멘트’와 함께 이준영이 용기를 냈고 이를 수정씨가 화답하며 정식으로 교제가 이뤄졌다. 물론 두 사람의 연애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감독님께서 선수들끼리 만나는 걸 싫어하셨어요. 아무래도 운동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을 하신 거죠. 그런데 제게는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됐어요. 여자친구랑 같이 산도 뛰고 웨이트트레이닝도 하고 또 패스연습도 했는데, 저희에게는 운동이 곧 데이트였거든요.”

함께 운동하며 붙어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지만 두 사람 사이의 연애전선을 감지하는 이는 없었다. 그만큼 소문에 조심하며 주의를 기울였는데, 워낙 완벽했던 탓에 나중에는 웃지 못 할 일이 발생하기도 했단다. “어느 날 후배 녀석이 고민이 있다며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여자축구부에 좋아하는 누나가 있는데 형이 중간에서 다리를 놔주면 안 되냐면서요. 그런데 그 여자선수가 글쎄 제 여자친구였던 거예요. 처음엔 저도 당황해 아무 말도 못했죠. 차라리 다행이었어요. 더 이상 속여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에게 공표하게 됐으니까요. 반응이요? 다들 <식스센스>에 버금가는 반전이라며 깜짝 놀라던 걸요(웃음).”

사랑은 축구를 타고
그로부터 2년 뒤인 2003년, 이준영은 학업을 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안양LG(現서울)에 입단했고 그때부터 캠퍼스 커플이던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에 돌입하게 됐다. “프로선수는 주말에 경기가 있어 바쁘지만 대학선수들은 그때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날이에요. 그러다 보니 서로 스케줄이 맞지 않아 데이트를 자주 할 수 없었지요. 그래도 평일 저녁시간마다 짬을 내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곤 했어요. 숙소 근처 강변역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여자친구 집이 있는 오산까지 가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오고 가는데만 2시간이 걸려요. 숙소 통금시간까지 있어 30분 정도 잠깐 얼굴만 보고 돌아올 때가 많았어요.”

축구선수 여자친구를 위한 이준영의 남다른 지극정성은 예서 다가 아니다. “K리그는 여름에 잠깐 휴식기를 갖잖아요. 마침 그때 여자친구가 강원도 화천에서 열린 전국대회에 출전 중이었어요. 저도 선수이다 보니 더운 여름날 텅 빈 경기장에서 뛴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화천까지 달려가 시원한 음료수 사주며 잘하라고 응원해준 적도 있어요.”

그때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정씨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당시 저희 팀 선수들이 얼마나 절 부러워하던지요”라는 말과 함께 웃었다. 다음은 수정씨가 전해준 ‘친절한 준영씨’ 이야기의 후편이다.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인대가 파열됐어요. 안쪽 근육을 잡아주는 인대를 다치는 바람에 1년을 고스란히 날려 보내고 말았죠.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유했지만 그러면 선수 생명이 끝날 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술 대신 재활을 택했는데, 그거 아세요? 운동보다 더 힘든 게 재활이에요. 몸과 마음 모두 지쳐있던 당시 남자친구가 옆에서 참 많은 힘이 되어줬어요. 자신도 프로에서 자리 잡느라 힘들었을텐데 내색 한번 없이요. 항상 병원에서 재활 중인 저를 먼저 생각해줬어요. 언젠가 한번은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며 장문의 편지를 보냈는데, 고마운 마음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행복한 축구선수 커플을 꿈꾼다
이준영의 한없는 격려 덕분이었을까. 결국 수정씨는 재활에 성공했고 실업팀에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도 그녀는 말한다. 자신을 향한 믿음과 격려가 없었다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은퇴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서울시청(2004~2005)과 충남일화(2006)에서 보낸 실업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축구선수로서 유종지미를 거둘 수 있었기에 수정씨는 지금도 만족한다. 그리고 고마워한다. “실업에서 몸담고 있던 시절엔 남자친구에게 고마움을 많이 표현하지 못했어요. 운동 때문에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고요. 하지만 이제는 축구선수가 아닌 축구선수의 아내니까, 그동안 못해줬던 것들 하나하나 채워주며 잘해주고 싶어요.”

이번에는 옆에 있던 이준영이 거든다. “제가 더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죠. 여자친구가 운동을, 그것도 같은 종목에 몸담았던 사람이다 보니 누구보다 축구선수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여자친구의 조언이 제게 도움이 될 때가 참 많아요.

예를 들어 술이 운동선수에게 안 좋다는 걸 몸소 체득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휴가 때면 옆에서 못 마시도록 자제시켜준답니다. 경기에 나서기 위해선 한 자리를 두고 3~4명의 선수들과 싸워야하는데, 이렇게 흐트러진다면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면서 말이죠. 이보다 더 든든한 지원군이 또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 제 아내가 된다는 건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죠. 앞으로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좋은 남편이자 또 멋진 축구 선수로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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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신록의 빛이 캠퍼스 곳곳에서 반짝이던 지난 5월 첫 출항했던 U리그가 6개월의 대장정 끝에 경희대의 우승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시범리그였지만 U리그 ‘원년의 해’라는 대의 아래 서울·경기 지역 10개교(광운대 고려대 경희대 건국대 명지대 수원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한양대)가 참가, 대학축구 부흥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애쓴 이들은 선수 뿐이 아니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바지런히 뛰어다닌 ‘벌꿀’들이 있었다. 바로 U리그 명예기자단이다. 어느새 낙엽은 졌지만 그들이 기억하는 U리그는 여전히 봄날 한가운데 있었다. U리그 명예기자단들을 만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알콩달콩 U리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명예기자가 말하는 U리그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그런데 제가 군대를 다녀와 선수들보다 나이가 많거든요. 선수들이 “형”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온 덕분에 저도 편하게 대할 수 있었어요. (성현재/한양대)

같은 (체육교육)과 친구들이 선수로 뛰다보니 처음엔 존댓말로 인터뷰하는 게 어색했어요. 친구들도 당황스럽다며 웃더라고요. 그런데 시즌이 끝날 때 쯤 되니 기자와 선수로 만나는 상황에 서로 익숙해지더라고요. 나중엔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갈 정도로 발전했죠. (이해령/고려대)

광운대는 학교 운동장이 협소해 노원 마들공원에서 경기를 치렀어요. 학교 밖에서 경기를 치르다 보니 처음엔 다들 관심이 없었죠. 그러다 시즌 말미엔 조금씩 관심이 생기는 눈치였어요. 내년엔 학교 운동장에서 할 수 없냐고 묻는 동기도 있었고, 최근에는 얼짱 축구선수와의 소개팅을 부탁하는 여자 후배들까지 생겼죠(웃음). (김윤환/광운대)

선수들 이름 외우는 게 어려웠어요. 그 때문에 실수를 하나 했죠. 시즌 초 U리그 책자에 들어갈 인사말을 싣기 위해 감독님과 통화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감독님께서 “서#덕 선수가 잘한다”고 하셨는데 통화 상태가 좋지 않아 제대로 듣지 못했어요.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서영덕이라는 선수가 있더라고요. 자신있게 서영덕이라고 썼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수 이름은 ‘서용덕’이더라고요. 서영덕 선수는 고려대 축구부 소속이었고요. 나중에 경기장에서 서용덕 선수를 만났는데 자기 이름이 잘못 나왔다며 속상해하는 눈치더군요. 정말 미안했죠. (정광수/연세대)

전 후기리그부터 합류한 바람에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인터뷰도 축구협회에서 지정한 선수하고만 가능한 줄로 알았다니까요(웃음). (최태환/명지대)

이번 U-19아시아선수권 일본과의 8강전에서 우리 학교 최정한 선수가 결승골을 넣었어요. 그런데 이 선수가 참 재밌는 친구에요. U리그 기사 모니터를 하나 봐요. 한번은 “고려대 이재민 선수는 인터뷰 기사도 올라오는데 저랑은 인터뷰 안 하나요?”라고 묻더라고요. 또 얼마 전에는 “이번에 청소년대표팀에서 아르헨티나와 친선경기를 갖는데 혹시 오시나요? 그럼 제 플래카드 부탁합니다”라는 이야기로 저를 웃게 만들기도 했고요(웃음) (정광수/연세대)

감독님들도 기사를 챙겨보시는 것 같아요. 한번은 선수들이 경기에서 졌다며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인사도 없이 경기장을 나선 적이 있어요. 그 모습에 실망하여 기사에다 일갈했는데 바로 다음 경기에서 선수단 전체가 확 달라져서 나타났더라고요. 여전히 관중은 적었지만 그들 앞에서 즐겁게 골 세레머니를 펼쳤고 끝인사도 잊지 않았어요. 알고 봤더니 감독님께서 제가 쓴 기사를 보고 나서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 열심히 하라”며 야단쳤다고 하더라고요. (성현재/한양대)

U리그, 이점이 아쉬웠다
개막 전만해도 학교 측에서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홈페이지 접속할 때마다 U리그 안내 팝업창 뜰 정도였으니까요. 한데 개막전 이후로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습이더라고요. 홍보에 소홀해지자 관중 역시 자연스레 줄어들고 말았죠. (이해령/고려대)

명지대도 전기리그 때까진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플래카드가 걸리곤 했어요. 그런데 후기리그부터는 그마저도 없어졌어요. (최태환/명지대)

아무래도 한창 수업 중인 3시에 경기에 열리다 보니 보러 가는 학생이 거의 없어요. 관중 대부분이 선수 부모님들이죠. 그 때문에 “한양대 파이팅!”하는 외침보다 운동장 옆 음대 건물에서 들려오는 소프라노 목소리가 더 클 때가 많아요. (성현재/한양대)

후기리그 때 일정 변경이 잦았어요. 경기 에 맞춰 시간표를 짰는데, 나중엔 잦은 변경 때문에 학사일정에 지장이 생기더라고요. 여기에 하나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기장 내 의료시설이 열악하다는 사실이에요. 경기 때마다 의사가 상주하지만 선수들만 전문적으로 진료한 선생님이 아닌지라 관련 지식이 부족해요. 엊그제도 경기 중에 한 선수가 실려 나왔는데, 처음에는 근육 파열로 판단하더라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뛰던 중에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면 분명 인대 파열이라고 말해서 그제서야 큰 병원으로 선수를 보냈어요. 결국 그 선수는 감독님 말씀대로 인대 파열 판정을 받았는데, 부상 정도가 심해 독일에서 수술해야한대요.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앞으로 경기장 내 의료시설이 좀 더 확충되고 전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진 촌각을 다투는 위험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김윤환/광운대)

지금의 U리그는 너무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요. 입장할 때 선수들은 FIFA 페어플레이기와 함께 에스코트 어린이 손을 잡고 운동장에 들어서요. 형식은 그럴싸하죠. 그렇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실상 그렇지만도 않아요. 잔디구장이 없어 비 온 뒤 질퍽거리는 흙바닥에서 시합을 치르는가 하면, 볼보이도 부족해 공이 바깥으로 나갈 때마다 골키퍼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여요. 겉 보다는 속이 꽉 찬 U리그가 됐으면 좋겠어요. (성현재/한양대)

그러나 장점도 있었다
그런 반면에 좋은 점들도 분명 있죠. 일단 감독님들은 매주 경기가 열리다 보니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씀 하세요. 선수들을 다양한 포지션에 돌려가며 기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여러 전술을 사용할 수도 있어 좋은 기회가 된다고 하세요. (김윤환/광운대)

보통 전국대회에서는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고학년 위주로 경기에 나서잖아요. 그런데 U리그에서만은 달라요. 각 학교 감독님들 대부분이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고루 경기에 내보내세요. 선수들에게는 감독님 눈도장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죠. 그 덕분에 주전으로 발돋움하는 선수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죠. (최태환/명지대)

한 대회가 끝나면 다음 대회가 있기까지 한두 달 시간이 있잖아요. 그때 선수들이 자칫 몸관리에 소홀해지기 쉬운데, 올해 U리그에 참가한 선수들은 그럴 수 없었대요. 아무래도 매주 경기를 치러야하다 보니 순간의 나태함이 곧 경기력 저하로 나타나기 쉽잖아요. 선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U리그를 통해 1년을 내다보며 체력관리하는 법을 배웠대요. 또 리그제를 미리 경험함으로써 예비 프로리거로서의 자세 또한 기를 수 있어 좋았다고 하네요. (이해령/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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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4년 전, 그러니까 정성룡 선수가 스무살 때 처음 만났습니다. 2004아시아청소년대회 결승전 취재 때 알게된 정 선수는 그때만해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존재감 없는 선수에 불과했습니다. 짐을 찾으러 가던 중에 이야기를 나누는데, 말수는 적었지만 참 속깊은 청년 같았고 그 뒤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게 됐지요. 지금은 후보 골키퍼이지만 언젠가는 주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아니나다를까 어느새 올림픽대표팀을 거쳐 국가대표팀에 입성한 그는 이운재 선수의 뒤를 이을 국가대표팀의 수문장으로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정성룡 선수가 결혼한다는 소식과 함께 제가 청첩장을 보냈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축하하러 간 축하자리. 어떤 사람들이 와서 함께 축하해줬는지 살펴볼까요?
글/헬레나 사진/플라이뭉치맨

선의의 경쟁자 김영광 선수의 축하인사. ^^

러시아의 한류스타 김동진 선수입니다.

떠오르는 스타 이근호 선수입니다.

오장은, 김진규, 이호 선수군요.

이근호 선수 옆에 무심한 표정의 이 분은 박주영 선수!

개그맨 장동민씨가 사회를 봤죠. 너무 재밌게 잘 보시더라고요.

정성룡 선수와 임미정 신부. 미스코리아 우정상 출신이더군요. ^^

신부 나이가 22살이었어요 ㅠㅠ 부러워라.

닥터피쉬의 열창.

두 사람이 왜 웃는지 아시나요? ㅋ

치마 안으로 들어가 "여기가 천국이네!"를 외쳐야했거든요. ㅋ

닥터피쉬가 마빡이도 시켰답니다. ㅋ 골키퍼답게 손도 크고 팔도 기네요. ^^

심은진씨의 축가도 있었습니다.

신랑 신부 퇴장... ^^

마무리는 역시 사랑의 키스~

김영광, 오범석, 정조국, 백지훈, 김진규 선수가 보이네요.

선수들이 너무 많아서 두번에 나눠서 찍었습니다.

단체촬영 전 포즈잡는 선수들입니다.

예쁘게 머리를 다듬고 온 박주영 선수.

프랑스 진출 이후로 박주영 선수 표정이 많이 밝아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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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이제 막 수염이 거뭇거뭇 돋기 시작한 열여섯 남짓 소년들은 잔디 위에 엎드린 채 엉엉 울었다. 2007년 8월21일 수원종합운동장. U-17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한국은 코스타리카에 0-2로 패했다. 페루전(0-1)에 이은 2연패로 16강 진출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이날의 실패가 선수들에게는 스스로 깨뜨려야할 껍질로 남았고, 유소년축구 행정 관계자들에게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를 안겼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 중등축구연맹은 과연 어떤 비전을 제시할까. 김석한 중등축구연맹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도
2004년 대한축구협회는 중고축구연맹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중‧고교 축구팀의 증가 및 리그제 도입으로 연령별 특성에 맞는 운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2월 김석한 회장(인성하이텍 CEO)은 만장일치로 초대 중등축구연맹 회장에 선임됐다. 중등축구연맹(이하 중등연맹)의 출범은 곧 중등축구의 질적인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 중심엔 김 석한 회장이 있었다. 김 회장은 우선 중등연맹이 주관하는 춘‧추계연맹전 운영방식을 대폭 수정했다.

“매 대회마다 약 140여 개 팀이 출전합니다. 그렇지만 트로피는 우승팀과 준우승팀만 들 수 있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겐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대회를 양육강식의 장이 아닌 흥겨운 축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룹을 5개로 나눈 뒤 각 그룹별로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우승팀만 자그마치 다섯이나 나오더군요. 개인시상 영역도 크게 늘렸습니다. 미드필더상, 수비상, GK상을 신설했습니다. 대회 참가를 통해 선수들이 꿈과 희망을 얻게 됐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결승전을 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르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간 월드컵경기장은 프로와 대표 선수들만 뛸 수 있다고 인식됐습니다. 어린 선수들이 그런 큰 무대를 밟는 기회를 잡는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지요. 목표의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중등연맹이 유치할 수 있는 대회는 춘‧추계연맹전이 전부다. 김 회장은 이 부분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매년 열리는 전국대회의 절반 이상을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합니다. 반면 초등연맹과 대학연맹은 모든 대회를 자체적으로 유치합니다. 사실 중등연맹도 대회를 유치, 주관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반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관을 안 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협회가 중등연맹을 믿고 일을 맡기면 좋겠습니다.”

이같은 요구의 우선적 이유는 한국축구의 자양분을 만들기 위함이다. 중등연맹이 ‘1학년 축구대회’를 신설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중학교 1학년 선수 대다수는 심부름만 하다 입학 첫해를 보내기 일쑤입니다. 일명 ‘주전자’로 불리는 아이들에게도 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1학년 축구대회’는 그리하여 탄생된 거죠. 춘계연맹전의 경우 정규규격보다 작은 경기장에서 7대7로 경기를 치르게 합니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이라 정규규격 운동장은 다소 벅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공을 빨리 패스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죠.” 그렇다면 이 대회가 남긴 성과는? “1학년 선수들이 자신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 되길 위하여
푸른빛은 쪽에서 만들어지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 하나 쪽이 없다면 푸른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학원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무릇 좋은 선수란 좋은 지도자를 통해 길러지는 법이다. 김 회장이 해마다 지도자들을 네덜란드로 보내 선진축구를 접하게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네덜란드 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연수 프로그램입니다. 선발된 지도자들은 현지의 각 클럽, 학교 등을 돌며 유소년 코칭론을 배웁니다. 벌써 4년째 진행 중입니다. 반응이 좋아 금년에는 별도로 네덜란드 현지 유소년 강사를 초청, 국내 연수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김 회장은 ‘교육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현장에서 지도자들을 만날 때도 늘 이같은 덕목을 강조한다. “중등연맹은 ‘공부하는 축구선수’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선수들에게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일선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야겠죠. 어린 학생들은 스승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법이니까요. 노력없이는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연구하는 지도자가 되십시오.”

그 다음은 바로 ‘정직’이다. “정직은 인생의 기본과도 같습니다. 또한 인간됨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정직하지 못한 지도자에겐 경종을 두드려야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등연맹이 지향하는 지도자상입니다.”

선수를 위한 길
인터뷰 도중 ‘공부하는 축구선수’라는 이야기가 언급된 김에 짚어 보기로 했다. 사실 선수들은 ‘학생선수’이기 전에 ‘선수학생’이다. 그러나 대부분 축구와 공부가 주객전도된 상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결과적으로 이는 운동 중 조기 탈락한, 또는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선수들에게 고통을 줬다. 물론 그간 축구협회에서도 이 문제를 충분히 통감하고 있었다. 협회는 클럽시스템 도입 및 주말리그제 정착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모든 선수들이 축구로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축구를 그만둔 선수들은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할까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좌절하거나 스스로를 낙오자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교육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선수들은 일반학생들과 학업성취도가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교육을 받아야합니다. 해답은 결국 ‘맞춤형 교육’에 있습니다. 물론 각 학교의 노력이 있어야겠죠.”

김 회장은 선수보호를 위해 ‘칼’을 뽑는 일도 망설이지 않는다. 중등연맹은 올해 초 ‘고의적으로 유급한 선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이는 2008춘계연맹전부터 적용된다.

“협회에서 먼저 방향을 제시했지만 저 역시 예전부터 공감하고 있던 문제였습니다. 중등연맹은 U-15연맹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종종 16세 선수가 시합에 뛰는 일이 발생합니다. 1년 유급한 선수들이 스쿼드의 절반을 차지한 팀을 실제로 본 적도 있습니다. 알다시피 성장기 선수들은 나이에 따라 기량차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이를 몇몇 지도자들이 악용하는 것이죠. 결국 성적지상주의 아래 선수만 피해자가 됩니다. 그래선 안 되죠. 제도를 손봤으니 앞으론 일부러 유급하는 선수들이 안 나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등연맹을 총괄하는 수장으로 선수 및 지도자들을 향한 당부의 말을 청했다.

“허허. 선수들에게 당부할 말이 뭐 있겠습니까. 어린 선수들은 도화지와 같습니다. 도화지에 첫 스케치를 어떻게 하느냐, 어떤 색을 입히느냐에 따라 그림은 달라지는 법입니다. 대신 지도자들에게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선수들은 여러분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늘 관심을 갖고 애정 어린 지도를 부탁합니다. 중등연맹에서는 선수별 맞춤지도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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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1. 봉주르, 박주영
박주영이 프랑스 리그1 AS모나코에 진출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서정원(前스트라스부르), 이상윤(前로리앙) 안정환(前FC메스)에 이은 4번째 리그1 도전이다. 9월13일 로리앙과의 데뷔전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하며 화끈한 신고식을 치른 박주영은 히카르도 감독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붙박이 공격수로 꾸준히 출전기회를 잡고 있다. 11월2일 르하브르전에서는 50일 만에 시즌 2호골을 기록했다. 박주영의 프랑스 진출은 팬들이 선정한 ‘2008년 축구계 최대 이슈’로도 뽑히며 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2. 수원의 2008년은 화려했네
컵대회 정상에 오른 수원이 정규리그에서도 1위에 오르며 2004년 이후 4년 만에 리그 정상에 올랐다. 2005년 A3챔피언스컵과 슈퍼컵 우승 이후 한동안 ‘무관의 한’에 시달렸던 수원이다. 하나 올 시즌 차범근 감독은 ‘경쟁을 통한 발전’이란 기치 아래 철저히 실력 위주로 선수단을 운용했고 결국 정상탈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수원은 성적 뿐 아니라 흥행 면에서도 최고 인기구단에 올랐다. 올 시즌 수원은 모두 30만9623명의 관중을 불러 들여 2006년 이래 3년 연속 최다 관중 구단의 영예를 차지했다.

3. 또다시 눈물 흘린 올림픽대표팀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이 본선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2008올림픽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올림픽대표팀은 온두라스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1-0으로 승리했지만, 앞선 2경기에서 부진을 면치 못해 조 3위(1승1무1패로)로 쓴잔을 마셨다. 이후 한동안 ‘금의환향’ 야구대표팀과 비교, 팬들의 질타가 이어지기도 했다.

4. K리그에 꽃 핀 15번째 구단
강원FC가 11월11일 프로축구연맹이사회에서 창단승인을 받아 2009시즌 참가를 확정지었다. 초대 사장 겸 단장에 김원동 前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이 선임됐으며 사령탑으로는 최순호 前울산현대미포조선 감독이 낙점됐다. K리그는 15번째 구단 강원FC의 출범으로 ‘전국구리그’로 거듭나는 초석을 마련했다.

5. 한일 올스타전 첫 개최
최초의 한일 올스타전이 8월2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렸다. 우승컵은 최성국과 에두의 연속골에 힘입어 3-1로 승리한 K리그 올스타의 차지였다. ‘리틀 마라도나’ 최성국은 1골1도움을 기록하며 MVP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첫 대회에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한일올스타전은 내년 여름 한국에서 리턴매치를 갖는다.

6. 스페인, 44년 만에 웃다
유럽을 뜨겁게 달구었던 유로2008이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덕장 아라고네스의 온화한 카리스마와 새 주장 카시야스의 리더십, 숨은 살림꾼 세나의 묵묵함, 위기 때마다 빛난 비야와 토레스의 화력 등이 고루 더해져, 1964년 홈에서 열린 대회 이후 44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스페인은 조별예선 첫 경기였던 러시아전을 시작으로 독일과의 결승전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무적함대의 위용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대회 MVP는 사비가 수상했다.

7. 맨체스터Utd, ‘더블’ 역사 쓰다
맨체스터Utd.가 2007-08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동시에 석권하며 ‘더블’의 역사를 썼다. 맨체스터Utd.는 2위 첼시를 승점 2점차로 따돌리며 프리미어리그 2연패에 성공했으며, 꿈의 무대 결승전에서도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역시 첼시를 꺾고 주인공에 올랐다. 17번째 잉글랜드 1부리그 우승이자 3번째 챔스 제패였다. 다만 FA컵 8강에서 포츠머스에 덜미(0-1)를 잡히는 바람에 1998-99시즌 일궈냈던 ‘트레블 영광’ 재현에는 실패했다.
8. 지금은 호나우도 시대
독단적 플레이에서 헌신적 플레이로 변신한 이래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맨체스터 입성 6시즌 만에 리그(31골) 챔스(8골) 득점왕에 올랐고, 최근에는 맨유 통산 100호 골까지 쐈다. ‘치명적인 킬러’라는 수식어답게 작금 그를 능가할 윙어가 전세계적으로 없다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고 2008년 발롱도르와 FIFA올해의 선수상 2관왕이 유력하다.

9. 아르헨티나, 베이징올림픽 접수하다
아르헨티나가 2008올림픽 남자축구 결승에서 디 마리아(벤피카)의 결승골을 앞세워 나이지리아를 1-0으로 물리쳤다. 아르헨티나 올림픽대표팀은 메시, 아게로, 마스체라노, 라베치, 리켈메 등 A대표팀을 방불케 하는 멤버들로 대회에 나섰고, 이들의 고른 활약에 힘입어 아르헨티나는 2004올림픽에 이어 2연패에 성공했다.

10. 제니트, UEFA컵 우승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제니트가 레인저스를 2-0로 물리치고 2007-08시즌 UEFA컵 우승 감격을 누렸다. 1931년 창단 이래 첫 우승이다. 김동진은 후반 45분 투입 돼 3분 간 그라운드를 누볐고 레버쿠젠을 1987-88시즌 UEFA컵 우승으로 이끈 차범근 수원 감독 이후 20년 만에 결승전 무대를 밟은 한국 선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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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3미국월드컵 출전 이후 한국여자축구는 2004올림픽 본선탈락, 2006아시안게임 노메달, 2008올림픽 본선탈락, 2008동아시아연맹선수권 3전전패 등 국제대회에서 거푸 쓴잔을 들이키며 한동안 정체기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2008아시안컵에서의 선전을 발판삼아 여자축구는 다시금 새로운 반전을 꿈꾸고 있다. 물론 한국의 여자축구는 여전히 척박한 땅 위에 놓여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비옥한 대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 있기에 ‘그래도 발전과 희망를 엿볼 수 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바로 여자축구 실업팀 ‘대교 캥거루스’의 이야기다.


최강의 전력
여자축구계에 최근 불어오는 대교 캥거루스의 바람이 매섭다. 대교 캥거루스는 올 시즌 첫 대회였던 춘계연맹전에서 3전 전승으로 우승한데 이어 지난 8월 강릉에서 열린 통일대기전국대회에서도 또다시 우승컵을 차지하며 2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미 지난해에도 대교 캥거루스는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통일대기, 전국선수권, 추계연맹전에서 내리 우승컵을 품에 안은 바 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강 실업팀으로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대교 캥거루스가 여자축구에서 차지하는 입지는 국가대표 명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소집한 피스퀸컵 참가명단(20명)을 살펴보면 무려 9명의 선수들이 대교 캥거루스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차세대 골잡이로 떠오른 박희영을 비롯해 차연희, 이장미, 홍경숙, 김유미 등이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대교 출신의 이들 모두는 올 한해 여자대표팀이 선전하는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한 주춧돌이었다.

그렇다면 어느덧 한국 여자축구의 ‘대세’로 자리 잡은 대교 캥거루스의 저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무엇보다 튼튼한 스쿼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교 캥거루스에는 앞서 언급한 국가대표 선수들 이외에도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일단 공격진용에는 지난 2006아시안컵 태국전에서 무려 6골을 폭발시킨 153cm의 단신 ‘슈퍼 땅콩’ 정정숙과 2006년 처음 실시된 여자축구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바 있는 청소년대표 출신 박은정이 있다. 미드필드에는 여자실업축구사상 최초로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왕언니’ 유영실(前충남일화)과 최미진, 이은혜, 송유나 등 청소년대표 출신의 젊은 선수들이 절묘한 신구조화를 이루고 있다. 노장 김유미가 주축인 수비진에는 황보람, 박현희 등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으며 주전 골리 전민경은 대표팀 내에서 동갑내기 장신 골키퍼 김정미(현대제철)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성장 중이다.

최강의 지원
대교 캥거루스가 정상에 오르기까지에는 무엇보다 모기업 대교의 아낌없는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대교그룹은 지난 2008년 4월 배드민턴팀과 여자축구단을 통합해 ‘대교 스포츠단’을 발족시켰다. 아마추어 스포츠 사상 최초의 종합 스포츠단 창단으로,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비인기 스포츠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기치 아래 진행된 터라 더욱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남이 안하는 종목, 비인기 종목을 적극 지원해 인기종목을 만들고 최정상의 팀으로 만들어보자는 그룹차원의 분명한 목표와 의지”라던 서명원 단장의 말에선 팀 창단의 굳건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스포츠단 창단 이전에도 모기업의 지원은 파격적이었다. 대교는 이미 2007년 10월 여자 실업팀들 가운데 최초로 클럽하우스를 건립한 바 있다. 경기도 시흥 대교 연수원 옆에 위치한 클럽하우스에는 전용 잔디축구장과 함께 숙소, 훈련장, 샤워실, 마사지실, 식당 등 각종 부대시설이 마련돼 있는데, K리그에서도 전용 클럽하우스를 갖추지 못한 팀들이 수두룩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실로 파격적인 지원이 아닐 수 없다.

게다 올 1월에는 여자 실업축구 역사상 최초로 신의손 골키퍼 코치를 영입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알다시피 골키퍼는 포지션 특성 상 필드 플레이어와는 별개로 개인별 맞춤 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간 여자실업팀들은 넉넉지 못한 재정 을 이유로 골키퍼 코치를 별도로 두지 못한 상태였다. 기실 여자실업축구팀은 여자대표팀 선수수급의 바로미터다. 따라서 소속팀에서 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면 이는 선수 뿐 아니라 대표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간 한국여자축구의 취약점으로 늘 골키퍼 문제가 거론됐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같은 현실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대교 캥거루스의 골키퍼 코치 선임은 골키퍼 육성문제를 해갈시켜줄 ‘단비’같은 해결책이다. 실제로 이는 곧 경기력으로 증명됐는데, 지난 8월 열린 통일대기전국대회에서 대교 캥거루스 주전 골키퍼 전민경은 ‘무실점 선방’의 활약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더 높은 도약을 위해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팀은 리그의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역할까지 도맡는 경우가 많다. 그간 대교 캥거루스는 여자축구의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왔다. 무엇보다 지난해까지 대교 캥거루스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안익수 現국가대표팀 감독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겠다. K리그(성남일화)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은 안 감독은 그간 여자축구계에 쉽게 시도된 적이 없던 4백을 도입, 전술적 측면에서 대교 캥거루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호평을 받았다. 선수들에게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그중 여자축구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 가장 돋보였다.

그간 안익수 감독은 선수들에게는 “남자친구를 만날 때도 떳떳하게 축구선수라고 말할 수 있는 직업적 자부심을 가져야한다”고, 지도자들에게는 “선수들이 뛰는 동안 결코 ‘여성성’이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을 강조해왔다. 그간 여자축구 지도자들은 선수들에게 ‘경기력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화장기 없는 얼굴, 짧은 단발머리,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암암리에 강요해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같은 현실은 곧 여자축구선수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안 감독은 달랐다. 부임 이후 안 감독은 대교 캥거루스 선수단에 일대 개혁을 단행했는데, 화장, 헤어 스타일, 액세서리 착용을 전적으로 선수들의 자유의사에 맡긴 것이 주 골자였다. 실제로 그해 대교 캥거루스 선수단은 시즌 3관왕을 휩쓸며 외모를 향한 관심과 경기력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입증해보였다.

대교 캥거루스는 2002년 창단 이래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과 감독의 지도력, 그리고 이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선수단의 노고라는 ‘삼위일체’ 아래서 성장했다. 알다시피 본디 성장이란, 지원과 배려 그리고 믿음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이뤄지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대교 캥거루스의 선전은 ‘헝그리 정신’과 ‘투혼’만 강요하던 여자축구계의 풍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쪼록 이 같은 대교 캥거루스의 활약에 고무돼 여자축구계에 앞으로 제2, 제3의 대교 캥거루스 같은 팀들이 계속해서 창단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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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여자축구연맹이 주관한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중간에 WK리그 홍보 영상이 소개됐는데 그때 찍은 영상입니다. 재밌답니다. ^^
도약. 2008년 이 땅의 여자축구를 한 단어로 표현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각급 대표팀의 선전, 신생 실업팀의 창단, 여기에 ‘예쁘고 똑똑한 선수 만들기’를 통한 저변 확대의 노력까지. 도약을 위한 노력들로 점철됐던 2008년을 뒤로 하고, 2009년 한국 여자축구에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시범 리그 형식으로 진행됐던 ‘WK리그’가 드디어 공식 출범하게 된 것이다.



체계를 갖추다
여자축구 발전 세미나와 여자축구연맹대의원총회가 지난 12월27일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 후 열린 총회에서는 두 가지 중대한 사안이 발표됐는데, 하나는 오규상(現 울산미포조선축구단장)의 신임 여자축구연맹 회장 부임이었고 또 한 가지는 2009년 ‘WK-리그’의 공식 출범이었다.

지난해 ‘WK-리그’는 전국대회 실업부 성적을 합산해 종합 순위를 정하는 형식의 시범 리그 형태로 진행됐었다. 그 결과 7승2무1패(승점23)를 기록한 대교가 2위 현대제철(승점19)을 따돌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리그’라고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은 서울시청과 상무, 수원시설관리공단은 1~2개의 대회에만 참가하는데 그쳤고, 그 결과 6개 팀이 한 대회에 출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지난해 11월에 열린 여자축구 드래프트에서 각 구단들은 대폭적인 선수 보강을 했고 (수원시설관리공단 5명, 상무와 서울시청 각 8명) 이를 통해 리그 참여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새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연중 리그제를 도입하게 된다. 4월13일 개막할 예정인 WK리그는 전, 후기 10라운드씩 총 20라운드의 풀리그 경기로 진행된다. 6개 팀이 팀당 20경기를 진행해 한 시즌동안 60경기가 열리게 된다. 각 구단의 경기장 사용 문제를 감안해 일단은 연고지 없이 수도권 경기장(아직 미정)에서 경기가 치러질 예정이다. 정규 리그 이외에도 7월 중에는 선수권대회가, 8월3일에는 올스타전이 계획돼 있으며 11월 말 상위 1, 2위 팀이 맞붙는 챔피언결정전을 끝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경기는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게 된다. K리그, 내셔널리그 경기 일정을 피해 팬들과 언론의 관심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조만간 케이블 스포츠채널과 독점 중계권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참가 클럽 수는 적지만 리그의 틀은 남자 축구의 그것 못지않게 체계적인 모양새를 갖춰나가고 있는 중이다.

실패를 본받아라
일단 힘찬 첫 걸음을 떼고 있는 WK리그를 향해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줘야하는 것이 우선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냥 박수만 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여성스포츠, 특히 그 중에서도 여자축구의 리그제 운영이 정착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스포츠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이지만 현재 활성화 되고 있는 여성 프로스포츠는 농구, 골프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WUSA(Women's United Soccer Association)의 실패는 아주 대표적인 경우다. 1999여자월드컵 우승과 함께 출범한 세계 최초의 여자축구 빅리그 ‘WUSA’는 미아 햄, 크리스틴 릴리 등 미국의 국가대표급 선수들뿐만 아니라 쑨 원(중국) 비르기트 프린츠(독일) 헤게 리세(노르웨이) 시시, 카이타(이상 브라질) 등 전세계 뛰어난 여자축구 스타들을 영입해출항과 동시에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예상을 밑도는 저조한 TV시청률과 미국여자축구협회의 과다 지출 등 수익 구조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WUSA는 3시즌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프로스포츠의 강국’ 미국답게 무너진 성을 쌓는 작업은 침착하고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리그가 문을 닫은 2003년 9월 WUSA 재조직 위원회가 구성됐고 이 위원회는 2004년 11월 WSII(Women's Soccer Initiative, Inc.)라는 비영리조직을 창설했다. “미국 내 모든 여자 축구를 발전시키고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WSII의 임무 중에는 WUSA의 빈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프로리그를 구상하는 일 또한 포함되었다.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WSII는 2006년 6월 “새로운 리그를 창설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해 12월 시카고, 댈러스, LA, 세인트루이스, 워싱턴DC, 뉴욕/뉴저지 등 6개의 프랜차이즈가 발표됐다. 이후 필라델피아, 센디에고가 추가되었다. 당초 새로운 리그는 2008년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2007여자월드컵, 2008베이징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들을 피함과 동시에 구단들에게 충분한 준비의 시간을 주고자 2009년으로 개막 시기를 늦췄다. 그리고 2008년 1월 WPS(Women's Professional Soccer)라는 새로운 이름과 로고가 발표되면서 미국 여자프로축구는 부활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새로 시작되는 WPS는 지난 날 1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남긴 WUSA의 실패를 거울삼아 철저히 지역 연고에 기반한 ‘풀뿌리 중심의 프로리그’를 추구한다. 여기에 느리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과거보다 소규모를 추구하며 더욱 더 내실 있는 리그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남자프로축구(MLS)와의 연계 시도도 그 사례 중 하나이다. 구장, 구단 인력, 마케팅을 공유함으로써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프랜차이즈로 필라델피아를 지목한 것도 2010년 같은 프랜차이즈로 창단 예정인 MLS구단과 연계를 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축구를 위하여
시행착오를 먼저 거친 스포츠 선진국의 사례는 WK-리그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WPS의 사례를 WK-리그에 적용해본다면 ▲지역 연고의 정착 ▲K-리그와의 연계성 강화 등을 리그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9년 출범하는 WK-리그는 일단 위의 방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다.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을 지향하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수도권 3개 구장에서 경기가 개최된다. 6팀 모두 연고지를 가지고 있지만-부산(상무) 경남(대교) 인천(현대제철) 서울(서울시청) 수원(수원시설관리공단) 충남(일화)-이 연고지는 사실상 전국체전 출전을 위한 연고지에 불과하다. 따라서 홈구장을 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설령 6개 구단들이 모두 연고지 내에 경기장을 확보하고 홈경기를 치르게 됐다고 해도 각 팀들이 전국에 분산돼있기에 비용 증가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K리그와의 연계성 강화는 두 리그가 운영하는 주체가 다른 이상 실현되기 어려운 문제다. 때문에 WK리그는 K리그와의 ‘연계’를 강조하기보단 ‘차별화’에 더 큰 무게를 실은 모습이다. 경기 시간도 K리그 경기가 열리지 않는 월요일 저녁이며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일단 K리그 경기가 열리지 않는 수도권 도시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25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K리그는 실로 풍족한 리그 운영 노하우를 축적한 상태다. 요일에 차별화를 두는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시설, 인력, 마케팅 전략 등에 있어서 K리그와 어느 정도 공조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이후 한국 여자축구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뛰고 있는 ‘아름다운 축구’가 그라운드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 태어난 축구팬들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축구를 보고 즐길 권리가 있다. WK리그는 그런 팬들을 위한 권리대장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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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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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4년 6월 광양에서. 전국대학축구선수 대회 중 박주영의 모습>




 누군가 내게 물었다.


 "도대체 축구의 매력이 뭐야? 도대체 왜 축구를 좋아하는건데?"


 도대체, 
 왜...?


 나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치열함.

 그렇다. 난 그저 잔디 위의 그 치열함이 좋다.


얼마 전 조원희 선수를 만났는데 그가 그러더라. "어떻게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는거죠?" 그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어떻게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거죠?"


2004년 11월 쯤으로 기억하낟. 추계대학연맹전 취재 때문에 남해에 내려갔다. 그날 나비연습구장은 각 대학 축구선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 100여명 쯤 있었으려나. 남해의 햇볕을 받으며, 따뜻해서 참 좋다, 라고 생각하며 웃고 있을 때, 고대 축구부 골키퍼 후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누나, 축구선수들 참 많지? 안 보이는 곳에서는 더 많은 선수들이 있을거야. 그 많은 선수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예전에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누군가는 어떻게 공부가 가장 쉬웠냐며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그 책 제목처럼 공부가 가장 쉬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선수가 모두에게 주목받는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인공, 마르코가 떠나는 그 험난 여정과도 비슷하다. 부모들은 없는 살림에 아들 뒷바라지를 해야한다. "축구화 사달라", "합숙비 내야한다", 말할 때마다 더 많이 해주지 못함에 당신들의 가슴은 찢어진다.


 지방을 돌아다니며 시합을 할 때마다 어머니들은 경기장 가까운 모텔을 전전하며 아들이 뛰는 경기를 보러간다. 승부차기 순간에 관중들은 '저 선수가 과연 넣을 수 있을까?'가 궁금할 뿐이지만, 경기를 보는 부모님들은 숨도 못 쉰 채 기도만 할 뿐이다. 그 순간 침이 마르다 못해 피까지 마르는 부모 마음을 아는지.


 선수들의 합숙소 생활은 또 어떤가. 선배가 야단칠 때 말대꾸란 존재할 수 없다. 토라도 다는 날이면 방 한 구석에 머리를 박은 채 몇 시간이고 있어야한다. 매일 해도 끝이 없는 청소와 빨래. 호텔 메이드라도 된 냥 선배의 잠자리까지 챙기고 이불까지 깔아줘야한다. 게다가 선배가 있는 방에서 마음 놓고 통화하기도 힘들다. 숙소 복도 끝에 숨어 사랑하는 그녀와 통화하는 순간의 씁쓸함이란.


 그렇다면 경기장에서는? 한 번의 실수가 축구 인생을 마치는 날까지 따라다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실수 하나 때문에 게임이라도 지는 날이면, 경기장을 나서 버스에 앉는 순간까지도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눈물이 턱을 타고 땀과 함께 뚝뚝 떨어진다. 모든 영광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으며, 그날을 위해 지금도 선수들은 땀 흘리고 있다.


 경기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을 때면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가끔은 욕도 하고, 태클에 넘어져 구를 때도 있다. 공 하나를 향해 뛰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잊었던 내 꿈을 떠올려본다. 자주 포기하고 주저 앉곤하는 나에 비해, 그들은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심장이 터질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 공 하나만을 향해 뛴다. 꼭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뛸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저 작은 공이 그들이 품는 꿈. 그리고 키워내는 꿈.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치열함' 이라는 단어의 뜻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다시 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가끔 축구선수들을 인터뷰할 때, communication gap 때문에 혼자 상처받고 마음 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아니, 이해해야만한다. 그들 역시 현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니던가.


 수업도 빠진 채 공을 차고 시합에 나가야하는 선수들. 이렇게 어린시절부터 그들은 축구만 하며, 축구하는 사람들만 만난다. 이런 그들에게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의 사회성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그래서 내 아이는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내 아이를 축구선수로 키울거냐고? 그건 모르는 일이니, 앞으로 태어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라고 해두자.


 그러니 꼭 열심히 공부하리라. 상업주의에 물든 월드컵을 위해서라도. 공인구를 만들기 위해 밥도 못 먹은 채, 어두운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제3세계의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나라 축구 꿈나무들을 위해서라도.


 축구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은 분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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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제 경기에서 제가 한 일은 팬여러분에게 보이지 말았어야 할 그런 행동이었습니다. 어제 게임 끝나고 후회도 많이 했고 혼자 무척 괴로웠습니다…

저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시고 응원해주시는 많은 축구 팬들에게 실망을 드린 것 같아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골도 내주고 상대 선수들이 거칠게 나오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랬던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하고 더 성숙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축구 실력, 성숙한 매너를 갖춘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부족한 면이 많지만 팬 여러분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이청용이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번 일로 실망하셨을 팬 여러분께 죄송한 말씀 드리며 경기장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FC서울 홈페이지에 이청용의 공식 사과문이 떴다. 이청용에게는 참으로 길고 괴로웠던 하루였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 부산아이콘스와 FC서울과의 경기 도중 부산 수비수 김태영을 향해 보여준 이청용의 날라차기 태클이 어제 오늘 넷심을 뒤흔들었다. 이날은 마침 2010월드컵 최종예선 대표팀 명단이 발표된 날이었고, 이청용의 대표팀 소집과 관련해 비난과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축구팬들 또한 많았다.

분명 이청용의 태클은 다분히 고의성 짙게 느껴졌고, 페어플레이 정신이나 동업자 정신을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쓴소리를 들을만한, 또 레드카드를 받을만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청용의 선수자격정지를 원한다, 대표팀에 탈락해야한다, 추가징계를 원한다 등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마음 한켠이 씁쓸해졌다.

이청용의 징계는 추후 연맹에서 회의 후 내려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보다 더 심한 징계로 마음 고생 중이다. 인터넷을 도배한 자신을 향한, 도통 끝이 없는 비난이 바로 그것이다. 어차피 스스로 자초한 일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실수를 하지 않냐고. 누군가는 이에 대해 이청용의 경우 이번 사건이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기에 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추후 징계로 다스려질 몫이라고 생각한다.

정선희씨의 방송 중 발언으로 수많은 네티즌들이 정선희-안재환씨가 함께 팔던 화장품 불매운동을 했던 당시가 생각난다. 이청용의 대표팀 탈락과 관련해 아고라 청원까지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프게도 당시 그 모습이 오버랩됐다.

결자해지라고, 자신이 저지른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잔뜩 엉켜진 실타래들을 풀고 매듭을 지을 사람은 스스로 뿐이다. 이미 이청용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잃었고, 그동안 쌓은 이미지와 커리어에 상처를 입었다. 거기에 연맹의 중징계까지 기다리고 있다.

이 세상에 하늘과 땅이 함께 분노해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일이라는 없다. 잘못을 한 이청용에게 반성할 시간을 주며 행동을 개선, 교화할 기회를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입장을 바꾸어 살인태클에 피해자인 김태영 선수의 입장을 생각해봤냐고 묻는다면, 나는 역지사지의 정신을 발휘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난당하며 ‘공공의 적’ 처지에 놓인 이청용의 지금 심정을 생각해보라고 묻고 싶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말미에 박 할머니(김지영)는 자신의 딸을 죽인 윤수(강동원)의 얼굴을 감싸 쥐며 이제 그만 너를 용서하겠다고 말하며 꺽꺽 우는 장면이 나온다. 윤수는 박 할머니의 용서를 통해 구원 받았고, 그 용서를 통해 그들 모두는 숭고해질 수 있었고,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또 변화될 수 있었다.

용서를 했다고 윤수의 살인죄가 감형되는 것이 아니듯 이청용을 용서했다고 그의 징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그를 향한 처벌의 공은 이제 징계를 내릴 연맹에게 넘기며 이제 그만 그를 용서하려고 한다. 그리고 모쪼록 이 용서가 지난날과는 다른, 성숙된 이청용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사건이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를 용서해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또 앞으로 건강하게 발전한 K리그를 위해서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될테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보며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학력과 인성을 문제 삼으며 쏟아지는 인신공격들이었다. 그러한 공격적인 비난과 악플은 이청용에게 가한 또 다른 ‘태클’이 아닐까. 그의 태클은 문제였지만, 그를 향한 우리의 태클은 과연 아무 문제 없던 것일까.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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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누구나 마음 속에는 히어로는 있는 법입니다. 어린 시절, 저를 축구의 세계로 이끌었던 선수들은 모두 제 마음속의 히어로였습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그들을 다시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게 됐지만, 정지된 시간처럼 그들의 선수시절 모습들은 늘 마음과 머릿속에 자리잡아 있었죠.

한데 이번 가을, 저는 거짓말처럼 그들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창립75주년을 맞아 한일OB축구스타들을 불러 친선경기를 갖는 행사를 가졌기 때문이죠.

하석주-유상철-홍명보-신홍기 선수로 이뤄진 포백라인과 고정운-윤정환-노정윤-정재권 선수가 포진한 미드필드 라인, 그리고 98프랑스월드컵 이후 10년만에 다시 선보인 최용수-서정원 선수의 투톱까지. 보는 내내 옛 시절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후반에는  4-2-1-3 포메이션으로 진용이 바꿨습니다. 최용수 선수가 중앙에, 좌우에는 이상윤, 서정원 선수가 위치했고 컴퓨터 링커 윤정환 선수가 공격형미드필더로 나섰습니다. 수비형미드필더로는 이병근, 박남열 선수가 뛰었고요. 플랫4는 변함없이 하석주-유상철-홍명보-신홍기 선수가 맡았습니다.

후반 중반 서정원 선수가 전반 말미 일본선수와 충돌한 후 계속해서 어지럼증을 호소하자 서정원 선수 대신 강철 선수가 들어갔고 윤정환 선수 대신 김도근 선수가 교체됐습니다. 하여 서정원 선수가 있던 오른쪽 날개 자리엔 왼쪽에 있던 이상윤 선수가, 기존 왼쪽날개엔 멀티 플레이어 유상철 선수가 맡았습니다. 김도근-박남열-이병근 선수가 중앙미드필드에 포진했고 포백은 하석주-강철-홍명보-신홍기 선수가 책임졌죠.
 
이날 승리는 역대 한일전에서 늘 우세인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귀중한 1승을 챙겼습니다. 박남열 선수의 선제골을 소중히 지킨 결과였죠. 유상철 선수와 정재권 선수가 이후 왼쪽에서 끊임없이 공격적인 움직임을 선보였지만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참. 경기 말미에 정재권 선수가 드리블 도중 다리가 그만 풀려버려 풀썩 넘어지는 장면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동시에 터졌답니다. ^^;;; 바르셀로나 올림픽 영웅 중 하나였던 정재권 선수도 이제 40대니까요. ㅠㅠ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에서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꽤 오랫동안 나오지 않더군요. 알고보니 선수들끼리 공에 각자의 싸인을 담느라 늦었더라구요.

윤정환 선수는 언제 또 이렇게 다 모일 지 몰라 공에 싸인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던 중 괜히 제 마음도 쨘해지더군요.

우리가 언제 추억의 선수들을 그라운드에서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하여 경기 내내 열심히 담았던 영상들을 편집해 올려봅니다. 함께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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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실로 아쉬운 결말이었다. 2008여자아시안컵에서 안익수 감독이 이끈 한국 여자대표팀은 일본과 호주에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5년 만에 일본을 상대로 낚은 짜릿한 역전승과 신흥 강호 호주와의 대등한 경기에서 알 수 있듯 나쁘지 않은 내용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희망이라는 뒷맛이 더 컸기에 여자대표팀의 내일 날씨는 현재, ‘맑음’이다.


세대교체의 절정
이번 여자아시안컵에 나선 안익수 사단의 평균 연령은 22세로, 선수단의 약 80%가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젊은 피’로 이뤄졌다. 대표팀에서 1970년대 생은 1979년에 태어난 주장 김유미(대교)가 유일하다. 물론 지난 2월 동아시아축구대회 당시까지만 해도 안익수 감독은 ‘맏언니’ 삼총사 유영실 송주희 김유미를 대표팀에 남겨두며 잠시 세대교체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3월 아시안컵 예선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대표팀 리빌딩 작업에 착수했고 이 과정에서 심서연(1989년생/장호원고) 김윤지(1989년생/울산과학대) 이은미(1988년생/강원도립대) 김도연(1988년생/위덕대) 전가을(1988년생/여주대) 권하늘(1988년생/위덕대) 김수연(1989년생/강일여고) 조소현(1988년생/여주대) 등 고교 및 대학 선수들이 ‘새 얼굴’로 대거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 중 21살 동갑내기 권하늘과 조소현, 여고생 김수연은 금번 아시안컵 조별예선 3경기에 모두 출장하며 세대교체 중심에 우뚝 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꼭짓점에 박희영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08동아시아대회 중국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이는 당시 여자대표팀의 유일한 득점이었다-주목을 끌기 시작한 박희영은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일본을 상대로 2골을 퍼부으며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박은선 이후 공격의 방점을 찍어줄 확실한 스트라이커를 찾지 못했던 여자대표팀은 박희영의 등장으로 한숨 돌린 상태다. 이에 안익수 감독은 “그간 박은선이라는 메이저급 선수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다른 선수들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박은선의 부재는 다른 재능있는 젊은 선수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안익수 감독은 덧붙여 “축구는 팀 스포츠이지 않나.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은 ‘스타’에 의존하기 보단 모든 선수가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쳤다”고 말했다.

무엇을 얻었나
이렇듯 젊은 피 수혈은 대표팀 심장에 자신감을 심어줬다. 2008올림픽 지역예선을 앞두고 강팀과 만나지 않기 위해 ‘전략적 패배’를 감행하던 2007년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 1차예선에서 인도 홍콩 등과 한조가 된 여자대표팀은 최종예선에서 북한 호주와의 대결을 피하고자 의도적으로 홍콩에 패하며 ‘조2위’를 택한 바 있다. 이에 안익수 감독은 아시안컵 일본전을 예로 들며 2007년과 달라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전에서 전반 9분 만에 자책골을 기록했다. 순간 ‘졌다’는 생각에 급격히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이후 선수들은 3골을 몰아넣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지난 동아시아대회 북한전을 생각해봐라. 후반에 북한에게 골을 허락하고 나서 연이어 3골을 더 허용하지 않았나. 그러나 이제는 다들 ‘내줬으면 그보다 더 넣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강해졌다.”

전술적 변화 또한 눈에 띈다. 안익수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과감히 4-4-2 포메이션을 도입했다. 물론 안종관 감독 역시 2년 전 여자대표팀에 포백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결국 3-5-2 포메이션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안익수 감독은 고심했고 세대교체의 바람 속에 김유미(1979년생/A매치 56경기) 홍경숙(1984년생/A매치 41경기) 류지은(1983년생/A매치 25경기) 등 수비진만은 그간 대표팀에 꾸준히 부름 받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했다. 물론 안익수 감독은 “맨투맨 수비에 익숙했던 선수들이라 가르치던 나도, 배우는 선수들도 모두 힘들었다”며 그동안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포백 도입 6개월 만에 아시안컵에서 이 정도 경기력을 선보였다는 사실은 칭찬할 만하다”며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여자대표팀은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자책골을 허용했지만 더 이상 실점하지 않았으며 난적 호주에게 내준 2실점도 선전에 가깝다. 호주에게 4골을 허용했던 2006아시아여자선수권이나 일본에게 6골을 내주며 급격히 무너졌던 2008올림픽 아시아최종예선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모습은 분명 ‘성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안익수 감독은 “동아시아대회에서 보여준 포백 완성도는 20%에 불과하다. 물론 이번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모습 역시 40%에 지나지 않는다”며 수비라인의 성장은 여전히 ‘진행형’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아시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이번 아시안컵에서 여자대표팀이 올린 성과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간 아시아무대에서 중국 북한 일본 등에 밀려나 있던 한국 여자축구의 현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2003년 아시아여자선수권에서 일본을 따돌리며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진출 티켓을 얻은 바 있지만, 당시 월드컵 무대에서 얻은 성과는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는 정도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한국을 제한 다른 국가들의 성장은 계속됐다. 상비군체제를 강화하는 등 여자대표팀에 지원을 아끼지 않던 일본은 2006아시안게임 2008올림픽최종예선 2008동아시아대회에서 연거푸 한국을 격파했다 북한은 2007여자월드컵에서 미국과 비기며 이변을 연출한데 이어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우승컵까지 거머줬다. 중국 역시 쑨원의 은퇴 이후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아시안컵 결승에 오르며 아시아 여자축구의 여전한 강자임을 입증했다.

이 같은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안익수 감독은 “5년 만에 일본을 이겼다고 아시아의 강자가 된 것은 아니다. 지금의 관심과 환호에 빠져 자만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때”라는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여기서 노력이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흘리는 ‘땀’과 함께 축구협회나 여자축구연맹 측에서의 ‘지원’ 모두를 포함한다. 다행히 과거에 비해 지원의 폭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동아시아대회에서 “우리도 일본처럼 합숙을 오래하면 잘할 수 있다”던 대표팀 15년차 유영실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그간 선수들이 가장 아쉬워하던 것은 부족한 훈련일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축구협회가 2008년 1차 이사회를 통해 “여자 각급 대표팀은 대회출전 여부와 관계없이 국내대회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 50일 이내의 훈련 보강기간을 가질 수 있다”는 규정을 추가한 것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다.

이와 동시에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친선경기를 통해 국제경험을 늘려야한다”는 안익수 감독의 주장에도 점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여자대표팀은 지난 4월 중국 진황도에서 중국대표팀과 2번에 걸쳐 친선경기를 가졌는데, 최근 안익수 감독은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A매치 횟수를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자축구연맹 또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드래프트제 시행을 통해 실업팀 간의 전력평준화를 유도, 경쟁을 통한 성장발판을 마련한데 이어 내년에는 연중리그를 통해 여자선수들의 경기력을 꾸준히 유지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워 놨다.



아직은 조금씩이지만, 여자대표팀은 성장의 과정 속에 있다. 물론 그로 인한 아픔 역시 적잖지만 본디 성장통이라함은 오직 위를 향해 자랄 때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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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8슈퍼모델들과 여자축구선수들이 함께 뷰티 클래스와 미니패션쇼를 갖는 시간을 보냈답니다. 헤어와 메이크업 및 스타일링 특강을 받는데 이어 패션쇼도 가졌죠.

그런데 화장과 머리를 막 끝낸 선수들의 모습, 정말 너무 예쁘더군요. 처음엔 누가 모델이고 선수인지 잘 분간을 하지 못해 “선수세요?”라고 직접 물어보고 다녔죠.



그런데 제가 분간해낼 수 있었던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조금 어색하게 걷는 모양새로 모델과 선수를 구별해냈던 거죠. ^^ 하이힐이 익숙하지 않은 터라 다들 똑바로 걷지 못했기 때문이죠. 축구화와 운동화만 신던 선수들이라 더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죠? 우리 여자 선수들, 처음엔 다소 쩔뚝거리며 걸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져 제법 맵시나게 걸었답니다. 그리고 다들 멋지게, 또 당당한 워킹을 선보이며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마쳤죠.

무대에서 내려온 선수들은 변신한 자신들의 모습이, 또 색다른 체험이 꽤나 인상적이었던지 좋은 시간이었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그 마지막 모습까지 참 예뻤던, 또 아름다웠던 우리 여자축구선수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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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모델이고 누가 선수인지 잘 분간이 안가죠?
다들 너무 예뻤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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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3월22일 ‘풀뿌리 축구’의 서막을 알리는 2008K3리그 개막전이 8개 구장에서 일제히 개막했다. 그중 가장 많은 관중과 관심이 쏠린 곳은 시범리그로 치러진 지난 시즌 챔피언 서울Utd.의 경기가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이었다. 신생팀 광주광산FC를 만난 서울Utd.는 제용삼 정재권 우제원 등 K리그 출신 선수들을 앞세워 수차례 골문을 위협했지만, 의외로 후반 중반이 넘어갈 때까지 골은 터지지 않았다.


이대로 무득점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겠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새겨질 찰나, 대반전이 일어났다. 후반39분과 45분, 오히려 광주광산FC의 연속골이 터진 것이다. 2-0 승리를 거두며 ‘파란’을 연출한 광주광산FC는 이렇듯 강렬한 신고식으로 K3리그에 첫인사를 올렸다.

광주광산FC, 모두의 꿈을 이뤄주다
지난해 시범리그 형태로 운영하던 K3리그가 예상을 뛰어넘는 관심과 애정을 등에 업고 올 시즌 정식 출범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6개 팀이 늘어난, 총 16개 팀이 리그에 참가한다. 그중 광주광산FC는 올해 처음으로 K3리그에 참가한 ‘새내기’다. ‘구(區)’를 연고로 한 최초의 K3팀으로, 김태진 호남대 축구부 코치의 지휘 아래 호남대 축구학과 소속 선수학생 40명과 심사를 거쳐 뽑힌 광주 광산구 생활체육인 10명이 선수로 있다. 생활체육인도 함께 뛰지만 본래는 “4년 내내 대학경기를 뛰지 못하는 ‘선수학생’들에게 기회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 아래 탄생한 팀이다.

호남대 축구학과에는 해마다 약 50여명의 학생들이 축구특기생으로 입학한다. 이를 4개 학년으로 합쳐 생각해보면 무려 200여 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군대 및 개인사정으로 학교를 떠나게 돼 매년 결원이 발생하지만 그래도 평균 1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축구학과에 남아있다. 문제는 이들이 호남대 축구부 정원(35명)을 훨씬 초과한다는 사실에 있다. 결국 좁은 문에 낀 선수학생들은 시나브로 소외됐고 운동 중 조기탈락 하는 이들 또한 늘어갔다. 그런 점에서 올 초 창단한 광주광산FC는 그동안 뛰고 싶었지만 뛸 수 없었던 선수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그 꿈을 이뤄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에 뛰기 위해선 한 가지 원칙을 지켜야한다. 바로 ‘강의는절대 빠지지 말 것’이라는 약속이다. 앞서 ‘선수학생’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모두 호남대 축구학과 소속 학생이기에 학업보다 축구가 우선시 될 수 없다. 때문에 일주일에 4번 이뤄지는 훈련은 모두 강의가 모두 끝난 저녁 8시부터 약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된다. 훈련량이 부족하지 않냐고 묻자 김태진 감독은 고개를 저으며 “효율의 문제다. 선수들이 집중력만 갖춘다면 훈련 시간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의 호언처럼 이는 곧 성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현재(6월20일 기준) 광주광산FC는 화성신우전자(11승1무1패)의 뒤를 이어 리그 2위(9승1무3패)를 달리고 있다. 이 기세라면 “5위 안에 들어 FA컵 진출권을 따고 싶다”던 애초 목표는 가뿐히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김 감독은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는 “봐라. 눈동자가 살아 있지 않은가. 그간 목적의식 없던 선수학생들이 경기를 치를 때마다 희망의 눈을 떠가고 있다. ‘다시 뛸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참으로 흐뭇하다”며 꿈을 접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비난의 목소리는 있지만
그러나 광주광산FC에게도 근심은 있다. ‘K3리그를 엘리트 대학선수들의 연습무대로 만드느냐’는 비난의 목소리 때문이다. 광주광산FC 수비수 김명선은 “개막전 때 경기장에 들어서는데 ‘대학 축구나 뛰지 왜 K3리그에 나오냐’는 소리를 들었다. 나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선수들 대부분이 속상해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사람들이 우리 아픔을 잘 모르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며 우리끼리 위로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여기서 아픔이란, 경쟁에 밀려 경기에 나서지 못한 지난날을 뜻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광주광산FC 장재훈 부장은 “실제로 광주광산FC에서 뛰고 있는 선수학생들은 학원스포츠 아래 성장한 선수들이 맞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혹은 부상이나 슬럼프 때문에 팀에서 인정받지 못해 탈락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런 선수들이 이곳에 모여 학업을 병행하며 ‘제2의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그런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장 부장은 이어 “K3리그 개막 전(前)부터 호남대 축구부에 소속된 선수들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2중 등록’된 선수들이 어떻게 K3리그에서 뛸 수 있겠는가. 잘못된 정보만으로 우리 팀을 성급히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엘리트시스템 아래 육성된 대학선수들의 참가는 ‘풀뿌리 축구의 발전’이라는 K3리그의 기본 취지를 저해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태진 감독은 “풀뿌리 축구의 발전이란, 대도시가 아닌 소규모 지역에서도 누구나 축구를 즐길 수 있게 그 저변을 확대하는 과정 속에 이뤄지는 것 아닌가. 우리는 밑바닥에서부터 그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자부한다”고 반박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광주광산FC 서포터 또한 “그동안 광주에는 ‘군 팀’만 존재할 뿐 ‘내 팀’이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출범한 광주광산FC는 지역 주민들에게 ‘진짜 우리 팀이 생겼다’는 기쁨을 안겨줬다. 이것이 풀뿌리 축구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풀뿌리 축구인가?”고 말하며 일련의 의견들에 힘을 실어주었다.

즐거움과 기회를 얻다
다행히 현장에서 만난 광주광산FC 선수학생들에게선 패기만 느껴질 뿐이었다. 김태진 감독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리그제’아닌가. 게다가 대부분 전국대회를 뛰어본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에 1번 씩 경기에 나선다는 사실은 이들에겐 대단한 즐거움이다. 게다가 기량 또한 발전하고 있으니 동기 유발이 절로 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리그 참가로 선수학생들이 얻은 것은 실로 많았다. 수비수 김명선은 “일단 자신감을 가장 크게 얻었다. 다른 팀에는 K리그 출신 선수들이 많지 않나. 나이가 들어 은퇴했다고 하지만 경기 운영 능력이나 노련미 부분에서는 따라가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얻게 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승부에 집착하지 않은 자세도 배웠다. 실제로 학원축구 시스템 아래서 운동을 했던 이들 대부분은 토너먼트 제도에만 익숙했다. 그러나 이렇게 리그제를 경험하게 됨으로써, 선수학생들은 1경기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리그 전체를 조망하는 눈과 다음을 준비하는 여유를 키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를 통해 또 다른 ‘기회’를 잡은 이도 있었다. 지난 5월 한국대표로 AFC 풋살선수권 참가한 장석근이 그 주인공이다.

장석근은 “워낙에 축구학과 인원이 많은 탓에 베스트11으로 뛰기란 쉽지 않았다. 4년 내내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내 발로 광산FC를 찾아갔다. 그 덕분에 눈에 띄어 풋살대표에도 뽑혔으니 대단한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학부모 강명지씨가 던진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그늘에 가려졌던 아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건 여러모로 기쁜 일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진 능력을 보여주는 것만큼 뿌듯한 순간도 없지 않은가. 그동안 막연한 꿈으로만 치부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고 덕분에 아이들은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 짧은 말에 광주광산FC가 존재하는 모든 이유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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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최윤겸 감독님께서 멀리, 터키로 떠나셨습니다. 터키 2부리그에 있는 “카이크루 리제스포르”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클럽에서, 앞으로 코치로 계실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부터 외국에 떠날 채비를 하신다길래 저는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으로 떠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먼 나라로 가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작년 이맘 때 쯤, 대전 숙소를 방문했던 그날 저녁이 생각나는군요. 저녁 식사 후 감독님은 저를 숙소 뒤편으로 데려 가셨죠. 숙소 뒷편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는 찰나에 선생님의 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감독님께서는 이걸 보여주시기 위해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가신 거였더군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감독님을 올려다보며 웃었습니다.

“저게 그 비바 K-리그에 나왔던 그 토끼들이군요.”
“그렇죠. 참 예쁘죠?”
“네. 감독님께서 직접 먹이 주시면서 키우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렇죠. 얘네들이 어느덧 새끼까지 낳고 이렇게 늘었네요.”
“자식처럼 잘 키우셨어요.”
“그런데 내 자식 같은 우리 대전시티즌 아이들은 한 번도 토끼를 보러 안 오네요.”
“정말요? 한 번도 안와요? 그래도 한번은 올 수 있을텐데… 아쉽네요.”
“원래 그때는 하나만 보게 돼있어요. 당장 경기 나가서 이기는 게 중요하니까. 나 역시 그게 아쉽죠. 조금만 여유를 갖고 주위를 둘러보면 좋으련만. 삶의 여유를 갖는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을텐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 그걸 모르네요. 물론 하나에만 모든 걸 바치면서 뛰고 있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요.”
“언제까지 그렇게 사는 거죠? 영원히 안 바뀌나요?”
“바뀌죠. 선수 생활이 끝나면 다들 바꿔요. 그런데 그때 바뀌는 건 너무 늦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떴으면 좋으련만.”
“저도 가끔 그런 생각 하는데. 감독님도 그런 생각하셨군요.”
“감독님이 우리 애들 많이 도와주세요. 하나만 아는 녀석들이니까. 옆에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요. 부탁해요.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니까.”
“감독님이 부탁 안하셔도 감독님 밑에서 자라는 선수들이니까 분명 감독님 마음 다 알 거예요. 제가 아는 대전시티즌은 그런 팀이에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요.”
“그런데요, 저 오늘 숙소 처음 와봤는데 주위 풍경들이 참 좋아요. 선수들은 다들 피 끓는 청춘이니까 시골 구석에 있다고 투덜댈 수도 있겠지만, 음… 뭐랄까? 시골에서 살던 어린시절이 생각나요. 무척 아늑하고 편안해요. 나중에 결혼하면 신랑한테 국곡리에서 살자 그럴까봐요. ^^”
“가끔 오면 좋지 만날 있어봐요. 젊은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요.”
“아닌데요. 풀 냄새, 나무 냄새, 꽃 냄새… 너무 좋은데요. 여기 온지 겨우 1시간 밖에 안됐는데 벌써 정들었어요.”
“허허허.”

그날, 저녁바람은 참 따뜻했어요.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고 주홍빛으로 물든 햇볕은 은은하게 감독님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죠. 우리 아빠 같던 감독님의 그 인자한 웃음이 좋았고 바람에 실려 오던 자연 냄새가 좋았어요. 기분 좋게 마른 나무 냄새 또한요. 그렇게 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그 바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날의 기억을 모두 담고 있는 그 바람을 어찌 잊을까요.

인터뷰를 마친 뒤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에 찾아갔을 때 감독님은 홀로 누운 채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어요. “기자님,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며 언제나처럼 존댓말로 제게 먼저 인사해주시던 감독님의 그 인자함에 저는 또 한 번 감동 받았죠.

그날 밤, 숙소를 나오던 제 머리 위로는 수많은 별들이 은가루를 뿌리며 떨어지고 있었고 제 마음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국곡리의 밤하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속삭였죠. 아주 오랫동안 말이에요. 그 순간, 개골개골 우렁차게 울어대던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는 어찌나 씩씩하던지요.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던, 최신 인기 가요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던 어느 선수의 흥겨운 목소리는 또 어떻고요.

그날 이후로 다시는 감독님을 볼 수 없게 됐지만 지금도 그날 저녁의 기억은 여전히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드렸을 때 감독님께서는 “우리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죠. 잘하면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늘 따뜻한 시선으로 봐달라고 말이죠. 무엇보다 격려가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마지막까지 말씀하셨죠.

작년 이맘 때 쯤 감독님의 둘째 아드님이 SM에서 가수 준비 중인 ‘연습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팬들은 제게 “우리 감독님을 닮아 너무 멋지다”고 제게 말했죠. 늘 말로만 듣던 둘째 아드님이 이제 샤이니의 ‘민호’로 모두에게 알려지고 있군요.

터키로 떠나시기 전, 아들들에게 좋은 또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다던 감독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감독님은 대전을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언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늘 멋진 아버지라는 사실, 부디 잊지 마세요. 제게도 감독님은 존경하는 또 다른 아버지이시니까요.

이제는 가요프로그램을 보는 순간에도 감독님이 생각날 듯합니다. 모쪼록 건강히 그곳에서 또 다른 축구인생을 펼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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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그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 인천문학경기장 보조구장에 다녀왔습니다. 인천 코레일과 울산 현대미포조선과의 경기였죠. 미포조선 주전공격수 김영후 선수의 선제골에 힘입어 이날 미포조선은 3-1 대승을 거뒀습니다. 또한 ‘전기리그 무패 행진’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함과 동시에 우승컵을 거머쥐는 영광까지 누렸죠.



처음 가본 내셔널리그 경기장은 ‘적막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썰렁하고 또 휑했습니다. 관중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또 보조구장에서 치른 경기였기에 전광판조차 없었습니다. 때문에 골이 들어갈 때면 관계자들이 손수 숫자판을 바꿔 가는 ‘수고’를 들여야 했죠. 뿐만 아니라 경기장을 통제하는 안전요원조차 없어 동네꼬마들이 트랙 위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바로 옆에서 선수들이 뛰고 있었음에도 말이죠.

미포조선이 우승이 확정지어지는 순간 반대편 좌석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몇몇 분들이 보였습니다. 팬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선수들 부모님들이더군요. 선수들은 그렇게 부모님들 앞에서 우승컵을 들어 보이며 기쁨의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비록 시상대조차 없어 트랙 위에서 약식으로 치러졌지만요.

시상식 후 전기리그 MVP 미포조선 유현 선수와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유현 선수는 전기리그 13경기 모두 출장하였을 뿐 아니라 경기 당 0.46골만 허용하는 철벽 수비로 완벽하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죠. 인터뷰 중 모 기자가 그에게 MVP의 영광을 누구와 함께 누리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수줍게 웃으며 “여자친구”라고 답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놀랐던 것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옆에서 인터뷰를 듣고 있던 미포조선 전성우 국장님께서 여자친구를 부르시더군요. 감동을 같이 누려야하지 않겠냐며 기념사진을 찍게 하신 거죠. 보통의 축구 현장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기자들 역시 처음엔 다소 놀랐지만 이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유현 선수와 그의 여자친구의 모습을 빠르게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처럼 내셔널리그는 말로만 ‘가족 같은’을 강조하는 형식적인 분위기가 아닌, 정말로 서로를 가족처럼 챙겨주고 헤아려주는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마감하더군요. 그 ‘정’이 정겨워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자주 경기장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돌아왔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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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선배, 저 대학원 또 떨어졌어요.”

오랜만에 후배에게서 걸려온 전화. 수화기 너머 속 후배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또 떨어졌다고. 작년만 해도 “괜찮아요. 내년이 있잖아요”라며 웃던 후배였는데. 그런데 후배는 “그거 알아요?”라며 이내 말을 이었다.

“주영이는 붙었더라고요.”



주영이? 그 말에 “설마, 축구선수 박주영?”하며 되묻자 “네, 박주영이요”라고 대답한다. 누군가에서 ‘주영이’라고 친근하게 듣기는 오랜만이라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후배는 여전히 그를 ‘박주영’이 아닌 ‘주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비록 축구부에서 1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만 함께 생활했지만 그래도 후배는 후배니까, 그에게 ‘주영이’는 여전히 ‘주영이’였다.

월요일 오후, 정기 브리핑을 듣고자 오랜만에 협회 건물을 방문했다. 그러다 부장님이 라면을 쏜다기에 스포츠조선 선배와 라면을 먹던 중 자연스레 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우리 셋 모두 같은 대학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박주영 이야기까지 나왔다. 스포츠조선 선배의 이야기-박주영이 최근 언론 대하는 태도가 달려졌다고, 요즘은 기자들 앞에서 자기 생각도 참 잘 말하는 것 같다는-를 듣던 중 박주영이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화제에 올렸다. 그런데 당시엔 특별한 뉴스거리라고 생각치 않던 그 이야기가 바로 다음날 뉴스로 등장하고, 다른 언론사에서 기사를 받아쓰는 것을 보며 신기했고 놀라웠고 또 무섭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왜 박주영은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학문을 향한 박주영의 욕심을 잘 알지만서도 말이다.

FC서울에 입단한 이후에도 학기 초면 교수님을 찾아가 수업에 자주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알리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모자라 훈련이 없는 날이면 수업을 듣고자 꼬박꼬박 학교를 찾던 박주영이다. 이는 분명 기존 축구선수들과 궤를 달리했다. 사실 대부분 선수들은 학교에서 알아서 학점관리를 해주는 상황을 이용해 훈련이 없는 날이면 수업을 듣는 대신 휴식이나 개인시간으로 자신의 빈 시간을 활용하곤 한다. 애석하게도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훈련 외 시간을 쪼개 수업을 듣던 박주영의 모습은 분명 귀감이 될 만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 1학년 시절부터 개인 영어교사와 회화 공부에 몰두했던 것도,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일화였다. 축구선수로서의 인생은 짧지만 축구지도자로서의 인생은 길기에, 그는 은퇴 후 다가올 삶을 대비하고자 이렇게 일찍부터 ‘배움’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 그가 ‘학문’에 큰 뜻을 품었다면 지금 대학원에 입학해서는 안됐다. 알다시피 대학원은 학부와 수업 수준과 질에서부터 차원을 달리한다. 수업에 한번 빠지는 것은 그만큼 한 계단 뒤쳐지는 것을 뜻한다. 대학시절처럼 친구의 노트를 복사하는 것만으로 뒤쳐진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더욱이 박주영은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경기를 치르고 훈련에 매진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런 그가 과연 꾸준히 대학원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 기실 학부 과정도 ‘나름’ 열심히 이수했다고 하지만 실지로는 ‘제대로’ 마치지 못한 박주영이다. 교육대학원 수업이 일주일에 두세 번, 그것도 야간에 있다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박주영에게는 무리라고 본다. 그리고 수업을 빠진 후에 오는 공백을 그는 과연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외국 대학원처럼 ‘튜터제’를 운영하지 않는 학교인데, 뒤쳐진 진도를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가 두 가지 삶을 능히 병행할 수 있는 ‘슈퍼맨’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진정 배움에 열망이 있었다면, 선수생활을 은퇴한 이후에나 석사과정을 밟았어야했다. 그때야말로 자신의 선수시절 경험을 실제 수업과 논문에 응용하며  수업에 참여하고 공부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것이 바른 수순이었다. 지금은 그저 ‘군 입대를 피하고자 대학원에 입학한’ 선수의 모양새만 갖출 뿐이다. 그래서 아쉽다. 그것도 무척이나.

서두에 언급한 후배가 박주영 때문에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1명은 박주영 때문에 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가 지원하지 않았다면 그 합격증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됐을테니까. 이름도 모르는 ‘그’는, 지금 이 순간 좋은 지도자가, 혹은 체육 선생님이 되기 위해 원서를 냈다가 눈물을 흘리며 내년을 기약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때문에 1년이 늦어졌고, 어쩌면 1년을 그냥 통째로 날려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바란다. 문 앞에서 바로 문이 닫히는 모습을 봐야만 했던, 그로 인해 좌절의 쓴잔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던 탈락생들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학업에 정진하는 학생 박주영이기를. 또 그래야만 대학원에 진학한 의미에 진정 부합할 수 있으니, 부디 똑부러진 학생 박주영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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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2월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연맹선수권에서 한국여자대표팀은 ‘3전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귀국했다. 그러나 이어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서는 ‘3경기 22골’의 막강 화력을 과시하며 본선진출에 성공, 다시금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투혼을 불사르고 있는 그녀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5월28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2008아시안컵과 6월14일 킥오프하는 2008피스퀸컵 수원국제여자축구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아픈 기억들
오는 5월과 6월 말레이시아와 한국에서 각각 열리는 아시안컵과 피스퀸컵은 2년전 여자대표팀에 아픔을 남겼던 대회다. 2006아시안컵에서 호주 북한 미얀마 태국과 한조에 속한 한국은 미얀마(3-1)와 태국(14-0)을 이겼지만 호주(0-4)와 북한(0-2)에 패하며 조3위로 내려 앉아 4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해 11월 여자대표팀은 피스퀸컵을 앞두고 지소연 정혜인 등 젊은 피를 대거 수혈, 분위기 쇄신에 성공했다. 그 기세를 몰아 피스퀸컵에서 강호 브라질 이탈리아 캐나다와 승부를 겨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태극낭자들에게 세계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여자대표팀은 상파울루주 선발 선수로 팀을 꾸린 브라질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1골도 넣지 못한 채 0-1로 패하고 말았다. 이어 캐나다와 이탈리아에게도 각각 1-3, 1-2로 석패했다. 거듭되는 부진 속에서도 여자대표팀을 향한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까닭은 그간 강팀들을 상대로 보여준 그녀들의 ‘투혼’ 때문이다. 2006아시안게임에서 여자대표팀은 북한 중국 일본에 밀려 노메달에 그쳤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8올림픽 지역예선을 앞두고 여자대표팀은 ‘전략적 패배’를 감행했다. 1차예선에서 인도 홍콩 등과 한조가 된 한국은 최종예선에서 북한 호주와의 대결을 피하고자 전략적으로 ‘조2위’행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한국은 유리한 조편성을 위해 홍콩과 홈에서 비기고(2-2) 원정에서 지는(0-1) 것으로 1차예선을 마무리하며 일본 태국 베트남과 최종예선에서 한조를 이루게 됐다. 하나 전략적인 선택 뒤에 돌아온 결과는 예상 외로 참담했다. 태국에 0-1로 충격의 패배를 당한 게 결정타였다. 이후 반드시 잡아야만 했던 일본과의 원정경기에서도 1-6으로 참패하며 결국 2008올림픽을 향한 꿈은 물거품으로 끝났다.

변화의 바람
2007년 6월 여자대표팀을 이끌던 안종관 감독은 2008올림픽 본선진출 실패 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변화의 요구에 직면한 여자대표팀은 2007년 12월 임시사령탑으로 있던 안익수 대교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본격적으로 여자대표팀을 지휘하게 된 안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정신력이 부족한 선수는 대표팀에 들어올 수 없다”며 “태극마크를 향한 선수들의 안이한 의식을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국내여자축구 실업팀은 도합 6팀. 안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선수층이 얇은 탓에 적당히 해도 대표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문제였다.

안 감독은 소프트웨어를 뜯어 고치자마자 바로 하드웨어 교체에 들어갔다. 한동안 대표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맏언니 유영실이 이때 재발탁됐다. U-17대표팀과 U-20대표팀, 그리고 A대표팀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여고생 스타 지소연은 혹사를 막는다는 이유로 청소년대표팀에만 집중하게 했다. 동아시아대회를 앞두고는 심서연 전가을 이은미 등 신진 젊은 피들을 발굴했다. 이렇듯 안 감독은 급격한 세대교체 대신 완벽한 신구조화를 택해 짜임새 있는 내실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대회 성적표는 가히 실망스러웠다. 한국은 중국과 접전 끝에 아쉽게 2-3으로 패한 뒤 일본(0-2)과 북한(0-4)에 연달아 패하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3년 전과는 사뭇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박희영이라는 신성(晨星)을 찾았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번 2008아시안컵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호주 대만 태국 북한 일본 베트남 등 8개국이 참가한다. 지난 대회 우승팀인 중국을 위시로 호주(준우승) 북한(3위) 일본(4위)은 시드 배정을 받고 본선에 직행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세운 한국의 목표는 4강 진출. 일단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지난 3월 아시안컵 예선에서 보여준 안익수 사단의 행보는 꽤나 경쾌했다. 한국은 필리핀에 4-0, 말레이시아에 14-0으로 대승을 거뒀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2008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뼈아픈 패배를 안겨줬던 태국을 상대로 4골을 퍼부으며 당시 받은 아픔까지 톡톡히 되갚아줬다. 비록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약체를 상대로 거둔 승리지만 이를 통해 주전 공격수들이 자신감을 얻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성과로 남았다.

여자대표팀의 다음 일정은 6월14일 개막하는 2008피스퀸컵 수원국제여자축구대회다. 아시안컵을 마친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한국은 북한 캐나다 아르헨티나와 한 조가 됐다. 최근 월드컵과 올림픽 본선진출에 연달아 실패하며 해외 강팀들과 대결할 기회를 놓친 여자대표팀에게 이번 피스퀸컵은 실로 좋은 경험이 아닐 수 없겠다. 안익수 감독 이하 선수단의 기대가 큰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안 감독은 “날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피스퀸컵에서 우리 대표팀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호언했다.


이렇듯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간, 여자대표팀은 다시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2년 전과 같은 결과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단점 보완을 위한 선수들 스스로의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이와 비례하여 대표팀을 향한 지속적인 투자 역시 필요하겠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축구협회가 2008년 1차 이사회에서 남자대표팀과 동일하게 적용하던 여자대표팀의 소집기간을 “남자대표팀과 분리·확대”하기로 결정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이로써 앞으로 여자대표팀은 아시안컵 본선 개막일 25일전(개정전 14일전), U-16·19아시아선수권 본선 개막일 30일전(개정전 14일전) 등 대폭 확대된 운영 규정을 적용받는다. 이와 함께 “여자 각급 대표팀은 대회출전여부와 관계없이 국내대회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 50일 이내의 훈련 보강기간을 가질 수 있다”는 조항도 추가됐다. 이번 개정안은 여자대표팀이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 차원에서 마련됐으니 실로 괄목할만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올 시즌 여자축구 실업팀은 6개로 늘어났다. 연중리그도 시범 운영된다. 또한 2006년 대학생여자축구클럽리그가 창설돼 매년 가을 큰 호응 속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는 여자축구를 향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났다는 방증이다. 이같은 관심에 여자대표팀이 화답해 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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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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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시작은 우연이었습니다.

이호진 선수를 인터뷰 하고 돌아오던 길, 눈으로 덮인 문학경기장에서 낯선 얼굴과 만났습니다.

인천에 입단한 신인선수냐고 묻자 고등학생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죠. U-15대표팀 순조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하여 시작됐습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U-17 월드컵이 열렸잖아요. 형들이 16강 진출에 실패해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지난 해 못다 이룬 꿈을 제가 꼭 이뤄볼려고요. 큰 무대에 나가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습니다.”

사실 그간 한국 축구, 그중에서 16세 이하 대표팀은 유난히 세계 대회와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간 세계 대회 진출에 성공한 것은 단 세 차례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한 차례는 2007년 개최국 자격으로 한 자동 출전뿐이죠. 그 이유를 묻자 한참 동안 고민한 뒤 답하더군요.

“아무래도 중앙아시아 선수들이 저희보다 성장이 빠른 것 같아요. 탄력이나 유연성도 좋고요. 신체에서 오는 열세를 한 번에 따라잡기는 힘들죠. 하지만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189cm라는 큰 키답게 포부 역시 시원했습니다. 물론 아직 근력과 유연성이 부족하다며 애써 자신을 낮췄지만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어요. 그냥 축구가 재밌어 보였어요. 제가 다니던 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기 때문에 분당에서 서울로 전학을 갔답니다.”

처음 순조에게 주어진 포지션은 최전방 공격수. 그러나 중학교 시절 부상으로 탈락한 수비수 대신 뛰게 되며 그의 수비수 외길 인생도 시작됐습니다.

“무엇보다 성실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이런 저런 유혹들 잘 이겨내 왔거든요. 힘들 때마다 묵묵히 뒷바라지 해주던 부모님과 부산에 혼자 계신 할머니를 생각해요.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할래요.”

프로축구연맹은 올해부터 K-리그 클럽 산하의 고교 축구부들이 리그전 형식으로 맞붙는 U-18 클럽 리그를 창설했습니다. 순조 또한 그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죠.

“인천 홈경기가 열리기 2시간 전에 시범경기 식으로 시합이 시작해요. 형들이랑 똑같은 스케줄로 경기를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인천과 부산과 경기를 하게 되면 저희도 부산 산하의 고교팀과 붙는 형식이죠. 그것도 형들이 뛰는 경기장에서 말이에요. 고등학생인 제가 프로경기가 열리는 곳에서 뛰다니요. 그것도 제가 정말 들어가고 싶은 인천의 경기장이라니. 상상만 해도 신나요.”

인터뷰가 끝날 즈음 멈췄던 눈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문학경기장역까지 함께 걸어가던 그 길엔 눈이 내렸습니다. 그의 꿈처럼 하얗고 환한 눈이 있었죠.

그리고 그날로부터 3개월 후,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순조를 다시 만났습니다. 인천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선수입장 전 인천 엠블럼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그라운드로 나서는 일을 한다고 하더군요.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깃발을 들고 연습에 열중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관중들은 선수들의 플레이에만 집중하겠죠.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고등학생을 어느 누가 신경 쓸까요. 그렇지만 순조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연습 때문에 저녁식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경기 시작 40분 전에야 급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는데도 뭐가 좋은지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더군요. “인천 형들이 뛰는 모습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신나요”가 바로 그 이유였습니다.

깃발 드는 역할만 하는 줄 알았는데 킥오프 휘슬이 울리면 코너에 앉아 볼을 던져주는 일도 한다고 합니다. 이름 하여 ‘볼보이’죠. 가까이서 거칠게 호흡하며 뛰는 인천 형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역시 순조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열심히 운동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 형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겠지’라는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어린만큼 꿈도, 포부도, 희망도 모두 크고, 당차고, 또 밝습니다. 조금씩 계단을 밝고 걷다보면 언젠가는 지성이 형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역시 있습니다.


그때마다 순조는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지요. 하여 그 말을 듣던 저는 카메라를 보며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쳐보라고 부탁했죠.

10년 뒤, 정말로 꿈을 이루게 됐을 때,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쳤던 동영상 속 어린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며 웃어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 말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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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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