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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박주영 대학원 입학, 과연 '군입대 연기' 아닌 '학업' 때문인가?

“선배, 저 대학원 또 떨어졌어요.”

오랜만에 후배에게서 걸려온 전화. 수화기 너머 속 후배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또 떨어졌다고. 작년만 해도 “괜찮아요. 내년이 있잖아요”라며 웃던 후배였는데. 그런데 후배는 “그거 알아요?”라며 이내 말을 이었다.

“주영이는 붙었더라고요.”



주영이? 그 말에 “설마, 축구선수 박주영?”하며 되묻자 “네, 박주영이요”라고 대답한다. 누군가에서 ‘주영이’라고 친근하게 듣기는 오랜만이라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후배는 여전히 그를 ‘박주영’이 아닌 ‘주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비록 축구부에서 1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만 함께 생활했지만 그래도 후배는 후배니까, 그에게 ‘주영이’는 여전히 ‘주영이’였다.

월요일 오후, 정기 브리핑을 듣고자 오랜만에 협회 건물을 방문했다. 그러다 부장님이 라면을 쏜다기에 스포츠조선 선배와 라면을 먹던 중 자연스레 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우리 셋 모두 같은 대학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박주영 이야기까지 나왔다. 스포츠조선 선배의 이야기-박주영이 최근 언론 대하는 태도가 달려졌다고, 요즘은 기자들 앞에서 자기 생각도 참 잘 말하는 것 같다는-를 듣던 중 박주영이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화제에 올렸다. 그런데 당시엔 특별한 뉴스거리라고 생각치 않던 그 이야기가 바로 다음날 뉴스로 등장하고, 다른 언론사에서 기사를 받아쓰는 것을 보며 신기했고 놀라웠고 또 무섭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왜 박주영은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학문을 향한 박주영의 욕심을 잘 알지만서도 말이다.

FC서울에 입단한 이후에도 학기 초면 교수님을 찾아가 수업에 자주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알리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모자라 훈련이 없는 날이면 수업을 듣고자 꼬박꼬박 학교를 찾던 박주영이다. 이는 분명 기존 축구선수들과 궤를 달리했다. 사실 대부분 선수들은 학교에서 알아서 학점관리를 해주는 상황을 이용해 훈련이 없는 날이면 수업을 듣는 대신 휴식이나 개인시간으로 자신의 빈 시간을 활용하곤 한다. 애석하게도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훈련 외 시간을 쪼개 수업을 듣던 박주영의 모습은 분명 귀감이 될 만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 1학년 시절부터 개인 영어교사와 회화 공부에 몰두했던 것도,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일화였다. 축구선수로서의 인생은 짧지만 축구지도자로서의 인생은 길기에, 그는 은퇴 후 다가올 삶을 대비하고자 이렇게 일찍부터 ‘배움’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 그가 ‘학문’에 큰 뜻을 품었다면 지금 대학원에 입학해서는 안됐다. 알다시피 대학원은 학부와 수업 수준과 질에서부터 차원을 달리한다. 수업에 한번 빠지는 것은 그만큼 한 계단 뒤쳐지는 것을 뜻한다. 대학시절처럼 친구의 노트를 복사하는 것만으로 뒤쳐진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더욱이 박주영은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경기를 치르고 훈련에 매진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런 그가 과연 꾸준히 대학원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 기실 학부 과정도 ‘나름’ 열심히 이수했다고 하지만 실지로는 ‘제대로’ 마치지 못한 박주영이다. 교육대학원 수업이 일주일에 두세 번, 그것도 야간에 있다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박주영에게는 무리라고 본다. 그리고 수업을 빠진 후에 오는 공백을 그는 과연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외국 대학원처럼 ‘튜터제’를 운영하지 않는 학교인데, 뒤쳐진 진도를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가 두 가지 삶을 능히 병행할 수 있는 ‘슈퍼맨’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진정 배움에 열망이 있었다면, 선수생활을 은퇴한 이후에나 석사과정을 밟았어야했다. 그때야말로 자신의 선수시절 경험을 실제 수업과 논문에 응용하며  수업에 참여하고 공부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것이 바른 수순이었다. 지금은 그저 ‘군 입대를 피하고자 대학원에 입학한’ 선수의 모양새만 갖출 뿐이다. 그래서 아쉽다. 그것도 무척이나.

서두에 언급한 후배가 박주영 때문에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1명은 박주영 때문에 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가 지원하지 않았다면 그 합격증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됐을테니까. 이름도 모르는 ‘그’는, 지금 이 순간 좋은 지도자가, 혹은 체육 선생님이 되기 위해 원서를 냈다가 눈물을 흘리며 내년을 기약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때문에 1년이 늦어졌고, 어쩌면 1년을 그냥 통째로 날려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바란다. 문 앞에서 바로 문이 닫히는 모습을 봐야만 했던, 그로 인해 좌절의 쓴잔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던 탈락생들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학업에 정진하는 학생 박주영이기를. 또 그래야만 대학원에 진학한 의미에 진정 부합할 수 있으니, 부디 똑부러진 학생 박주영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