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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여자대표팀, 희망을 향해 쏴라.

지난 2월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연맹선수권에서 한국여자대표팀은 ‘3전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귀국했다. 그러나 이어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서는 ‘3경기 22골’의 막강 화력을 과시하며 본선진출에 성공, 다시금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투혼을 불사르고 있는 그녀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5월28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2008아시안컵과 6월14일 킥오프하는 2008피스퀸컵 수원국제여자축구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아픈 기억들
오는 5월과 6월 말레이시아와 한국에서 각각 열리는 아시안컵과 피스퀸컵은 2년전 여자대표팀에 아픔을 남겼던 대회다. 2006아시안컵에서 호주 북한 미얀마 태국과 한조에 속한 한국은 미얀마(3-1)와 태국(14-0)을 이겼지만 호주(0-4)와 북한(0-2)에 패하며 조3위로 내려 앉아 4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해 11월 여자대표팀은 피스퀸컵을 앞두고 지소연 정혜인 등 젊은 피를 대거 수혈, 분위기 쇄신에 성공했다. 그 기세를 몰아 피스퀸컵에서 강호 브라질 이탈리아 캐나다와 승부를 겨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태극낭자들에게 세계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여자대표팀은 상파울루주 선발 선수로 팀을 꾸린 브라질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1골도 넣지 못한 채 0-1로 패하고 말았다. 이어 캐나다와 이탈리아에게도 각각 1-3, 1-2로 석패했다. 거듭되는 부진 속에서도 여자대표팀을 향한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까닭은 그간 강팀들을 상대로 보여준 그녀들의 ‘투혼’ 때문이다. 2006아시안게임에서 여자대표팀은 북한 중국 일본에 밀려 노메달에 그쳤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8올림픽 지역예선을 앞두고 여자대표팀은 ‘전략적 패배’를 감행했다. 1차예선에서 인도 홍콩 등과 한조가 된 한국은 최종예선에서 북한 호주와의 대결을 피하고자 전략적으로 ‘조2위’행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한국은 유리한 조편성을 위해 홍콩과 홈에서 비기고(2-2) 원정에서 지는(0-1) 것으로 1차예선을 마무리하며 일본 태국 베트남과 최종예선에서 한조를 이루게 됐다. 하나 전략적인 선택 뒤에 돌아온 결과는 예상 외로 참담했다. 태국에 0-1로 충격의 패배를 당한 게 결정타였다. 이후 반드시 잡아야만 했던 일본과의 원정경기에서도 1-6으로 참패하며 결국 2008올림픽을 향한 꿈은 물거품으로 끝났다.

변화의 바람
2007년 6월 여자대표팀을 이끌던 안종관 감독은 2008올림픽 본선진출 실패 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변화의 요구에 직면한 여자대표팀은 2007년 12월 임시사령탑으로 있던 안익수 대교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본격적으로 여자대표팀을 지휘하게 된 안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정신력이 부족한 선수는 대표팀에 들어올 수 없다”며 “태극마크를 향한 선수들의 안이한 의식을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국내여자축구 실업팀은 도합 6팀. 안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선수층이 얇은 탓에 적당히 해도 대표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문제였다.

안 감독은 소프트웨어를 뜯어 고치자마자 바로 하드웨어 교체에 들어갔다. 한동안 대표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맏언니 유영실이 이때 재발탁됐다. U-17대표팀과 U-20대표팀, 그리고 A대표팀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여고생 스타 지소연은 혹사를 막는다는 이유로 청소년대표팀에만 집중하게 했다. 동아시아대회를 앞두고는 심서연 전가을 이은미 등 신진 젊은 피들을 발굴했다. 이렇듯 안 감독은 급격한 세대교체 대신 완벽한 신구조화를 택해 짜임새 있는 내실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대회 성적표는 가히 실망스러웠다. 한국은 중국과 접전 끝에 아쉽게 2-3으로 패한 뒤 일본(0-2)과 북한(0-4)에 연달아 패하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3년 전과는 사뭇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박희영이라는 신성(晨星)을 찾았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번 2008아시안컵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호주 대만 태국 북한 일본 베트남 등 8개국이 참가한다. 지난 대회 우승팀인 중국을 위시로 호주(준우승) 북한(3위) 일본(4위)은 시드 배정을 받고 본선에 직행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세운 한국의 목표는 4강 진출. 일단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지난 3월 아시안컵 예선에서 보여준 안익수 사단의 행보는 꽤나 경쾌했다. 한국은 필리핀에 4-0, 말레이시아에 14-0으로 대승을 거뒀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2008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뼈아픈 패배를 안겨줬던 태국을 상대로 4골을 퍼부으며 당시 받은 아픔까지 톡톡히 되갚아줬다. 비록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약체를 상대로 거둔 승리지만 이를 통해 주전 공격수들이 자신감을 얻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성과로 남았다.

여자대표팀의 다음 일정은 6월14일 개막하는 2008피스퀸컵 수원국제여자축구대회다. 아시안컵을 마친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한국은 북한 캐나다 아르헨티나와 한 조가 됐다. 최근 월드컵과 올림픽 본선진출에 연달아 실패하며 해외 강팀들과 대결할 기회를 놓친 여자대표팀에게 이번 피스퀸컵은 실로 좋은 경험이 아닐 수 없겠다. 안익수 감독 이하 선수단의 기대가 큰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안 감독은 “날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피스퀸컵에서 우리 대표팀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호언했다.


이렇듯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간, 여자대표팀은 다시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2년 전과 같은 결과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단점 보완을 위한 선수들 스스로의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이와 비례하여 대표팀을 향한 지속적인 투자 역시 필요하겠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축구협회가 2008년 1차 이사회에서 남자대표팀과 동일하게 적용하던 여자대표팀의 소집기간을 “남자대표팀과 분리·확대”하기로 결정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이로써 앞으로 여자대표팀은 아시안컵 본선 개막일 25일전(개정전 14일전), U-16·19아시아선수권 본선 개막일 30일전(개정전 14일전) 등 대폭 확대된 운영 규정을 적용받는다. 이와 함께 “여자 각급 대표팀은 대회출전여부와 관계없이 국내대회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 50일 이내의 훈련 보강기간을 가질 수 있다”는 조항도 추가됐다. 이번 개정안은 여자대표팀이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 차원에서 마련됐으니 실로 괄목할만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올 시즌 여자축구 실업팀은 6개로 늘어났다. 연중리그도 시범 운영된다. 또한 2006년 대학생여자축구클럽리그가 창설돼 매년 가을 큰 호응 속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는 여자축구를 향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났다는 방증이다. 이같은 관심에 여자대표팀이 화답해 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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