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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강릉 앞 바다는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더위를 피해 물놀이를 하러 온 관광객들로 바다는 밤늦은 시간에도 쉴 틈이 없다. 말 그대로 ‘불야성’인 강릉의 여름이다. 그러나 겨울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누군가는 우스개소리로 이 시기에 강릉 해변을 걷는 사람은 실연남(녀) 혹은 예술가일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고독한 사람이 찾아와서 어색하지 않을 만큼 한적하다는 얘기다. 파도 소리마저도 고요하게 들리는 강릉의 어느 겨울날, 이곳을 열기로 덮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로 강원FC 선수단이다.

 

바다와 축구는 비치사커라는 연결고리가 있다지만, 바다와 프로축구선수 사이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통분모가 단박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바닷가에 나타난 강원FC 선수들이 그저 신기하게만 보였다.

선수들은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한 뒤 그룹별로 나눠 5-2 볼돌리기 게임을 했다. 모래에 발이 빠지는 바람에 볼을 놓치는 일도 중간 중간 발생했다. 그때마다 선수들은 아이처럼 웃어댔다. 그런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아빠 미소를 짓고 있던 김학범 감독님과 이하 코치님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웃으면서 공을 주고받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했었지. 김학범 감독님이야말로 반전있는 남자라고.

30분가량 볼 돌리기를 하고 나니 어느새 머리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몸은 충분히 풀린 상태였다. “준비됐지? 저기까지 달리고 오면 되는 거다.”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김학범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강문해수욕장 끝에 있던 선수들이 가야할 곳은 안목해수욕장 끝지점. 매 경기 10km 이상을 뛰는 선수들에게 왕복 6km는 크게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바닥이 잔디도, 평지도 아니라는 것. 힘을 줄 때마다 푹푹 꺼지는 모래밭 위에서 달린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강원FC 선수들은 굳이 모래 위를 달려야만 했을까?


정확한 킥과 패스의 기본은 발목 힘이다. 튼튼한 발목은 부상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모래밭 달리기는 발목강화에 가장 도움이 되는 운동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부연하자면 우리가 걷거나 달릴 때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나가는데 이것이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반작용의 원리다. 즉 지면을 강하게 찰수록 반작용에 의해 몸은 더 빠르고 멀리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래밭은 바닥이 단단하지 않아 차는 힘을 그대로 흡수해버리는 등 반작용이 약해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근육이 쉽게 지치고 호흡이 가빠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래에 덜 빠지기 위해 발바닥 전체를 이용해 바닥을 딛고 더 강하게 차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발목은 조금씩 강화된다. 김학범 감독님이 모래밭 달리기를 훈련 프로그램에 넣은 이유 또한 원리를 이해하니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선수들은 조를 나눠 약 40초가량 텀을 두며 조별로 차례차례 뛰게 시작했다. 얼굴에선 진지함이 가득 찼다. 그러나 30~40분 후 다시 만난 선수들의 표정에선 뭉크의 절규가 오버랩 됐다. 도착해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신인선수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마지막 결승점에서 저승사자를 만났어요.”

마지막 결승점에서 김학범 감독은 수고했다며 박수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그들이 말한 저승사자가 누구였는지는 앞으로의 순탄한 프로생활을 위해... 더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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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전훈의 전훈일기 1회

강원FC 선수단은 2월 1일부터 2월 21일까지 약 3주간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전지훈련을 갖습니다. 상지대를 졸업하고 이번 2013드래프트를 통해 강원FC를 입단한 전훈 선수가 미국 전지훈련 이야기를 앞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전훈의 전훈일기> 많이 사랑해주세요. ^^

2월 1일
오늘은 전지훈련 첫날. 미국까지 날아왔다. 오랜시간 비행해서 그런지 몸이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 그래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전지훈련을 왔으니 많은 것을 배우고 맞춰가야한다. 그래서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바로 운동을 했다. 몸은 무겁고 힘들었지만 이상해서 첫날의 긴장감 때문에 정신은 확 깨어있어 즐겁게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가볍고 재밌게 첫 훈련을 마치고 모여서 미국에서 조직력도 잘 맞추고 좋은 기운도 많이 얻어가자는 의미로 다 같이 파이팅을 외쳤다. 파이팅을 외치는데 왠지 올해에는 좋은 성적을 낼 것 같은 확실한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팀적으로도 이번 전지훈련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게 되면 좋겠다.

2월 2일
미국에 온지 이틀째인데 아직도 시차적응이 덜 된 것인지 너무 피곤했다. 오후만 되면 잠이 막 쏟아진다. 오후 운동 나가기 전에 잠깐 잤다가 운동시간에 늦을 뻔했다. 아메리칸 라이프에 얼른 적응해야 할텐데!

그래도 운동시작하면 다들 엄청나게 집중해서 열심히 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정말 좋다. 신인선수들끼리도 계속 이대로 분위기 유지할 수 있도록 각자 나서서 하자고 이야기했는데 제대로 잘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부터 먼저 열심히 해봐야겠다. ^^

2월 3일
오늘도 역시 오전 오후 운동을 즐겁게 마쳤다. 저녁에는 쇼핑을 하러 호텔 근처 쇼핑센터에 들렀다. 미국에서 하는 첫 쇼핑이어서 기분이 설렜다. ^^

한국에서는 비쌌던 의류들이 여기선 많이 싸다가는 이야기를 들어서 미리 뭘 살지 정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것이 많지 않아 구경만 하다 온 것 같다. 그래도 재밌었고 덕분에 시간이 엄청 빨리 갔다! 우리는 1시간 쇼핑센터에 머물렀는데 그 와중에도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닌 선수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도 앞으로 남은 전지훈련 기간 동안 진행될 훈련과 연습경기를 생각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빨리 이곳에서 적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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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래서 우리는 처음을 서툼과 같은 연장선 위에 올려놓는가보다.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서툼이 익숙해질 때까지, 그래서 더 잘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노력하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9일 강원FC 신인선수들이 국내전지훈련을 마쳤다. 소감을 묻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듯이 축구가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김학범 감독님의 훈련량은 명성 그대로였다면서. 그러나 이내 강원의 젊은 피답게 매일 조금씩 발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꿈도 조금씩 커가고 있다며 웃었다. 신인선수들이 말하는 프로팀에서 보낸 첫 전지훈련 소감이 궁금한가. 애교 섞인 하소연부터 반짝이는 희망의 노래까지, 선수들의 말투가 살아있는 그 생생한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이곳에 공개한다.

 

 



신인 김봉진
순천에서 힘든 훈련을 하고 왔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치지만 이젠 학생 신분이 아니니 힘들다는 마인드보다는 즐기려 하고 있습니다. 팀 내 목표는 강등탈출이고요, 제 올 시즌 목표는 동계훈련 부상없이 잘 마무리해서 팀에 보탬이 되고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소망은 없어요.^.^

신인 유재원
신인으로서 프로 첫 전지훈련이라 그런지 너무 설렜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지훈련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올 시즌 꼭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팀이 강등 안 당하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많은 응원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인 박문호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K리그 입단 후 첫 동계. 대학교 때보다 운동이 더 힘든 거 같습니다. 괜히 프로가 아닌 거 같네요.^-^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지만 신인으로서의 패기와 강한 정신력으로 살아남아야겠습니다. 올 시즌 1부잔류에 꼭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강원FC 파이팅!

신인 임동선
힘들지만 이걸 이겨내면 좋아질 거라 확신합니다. 올 시즌 소망은? 데뷔요!

신인 김영윤
힘들어도 요번 시즌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고있고요, 요번 시즌 1부리그 잔류도 잔류지만 팀이 상위권에 계속 있는 게 소망이에요.

신인 김윤호
올 시즌 목표는 훌륭하신 김학범 감독님과 코치님들에게 지도받아 실력향상 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에요. 팀이 창단 이후 최고 성적을 냈으면 좋겠어요. 저는 팀이 잔류할 수 있도록 신인답게 패기있게 열심히 뛰겠습니다. 소망은? 작년보다 홈관중수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신인 강경묵
제가 태어나 축구를 하며 매년 동계훈련을 갔지만 이번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올 시즌 목표는 목표를 높게 잡지 않습니다.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봤어요. 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게 제 목표입니다. 소망은 운이 좋으면 좋겠다는 것?

신인 박지훈
순천전지훈련은 힘들었지만 올 시즌 강원FC가 좋은 성적을 위해 해야 하는 훈련이었던만큼 신인의 자세로 파이팅있게 마무리했습니다.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는 데뷔전을 치루는 것입니다.

신인 고기훈
첫 전지훈련이라 많이 힘들었지만 이 힘든 전지훈련을 견딘만큼 더욱 더 성장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신인 이창용
축구하면서 이렇게 힘든 동계훈련은 처음인 것 같은데, 무엇보다 부상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부상당하면 열심히 하고 힘들었던 게 무의미가 되니까요. 마무리 동계훈련도 부상없이 잘 마쳤으면 좋겠어요. 또 올 시즌은 내가 잘하기보다 팀이 잘해 이길 수 있도록 희생하는 정신으로 임하려고요. 20경기 이상 출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르샤가 좋아하는 선수가 될게요!

신인 이승현
이번 동계훈련은 정말 너무 너무 힘들었고 아직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해야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잘 준비해서 올해 꼭 데뷔전을 치렀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부상없는 한해가 되고 팀이 꼭 잔류할 수 있는 성적을 거두기를! 행쇼~^^

신인 박한빈
정말 죽을 듯이 힘들었지만 체력이 부족했던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훈련이었습니다! 체력훈련을 할 때 처음할 때와 달리 시간이 점점 줄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 스스로 조금씩 몸이 좋아지고 있구나 느꼈습니다! 이번 시즌 소망은 평소 잦은 부상이 많았는데 올 시즌은 부상없이 꼭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신인 전훈
일단 전지훈련 소감은요, 처음에 전지훈련 시작하기 전에 여기저기서 진짜 엄청나게 힘들다는 소문만 있어서 열심히 잘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컸어요. 막상 해보니깐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지 몸은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는 되게 편안했어요. 그래도 훈련은 엄청 힘들었어요.ㅜㅜ 여태 운동하면서 이렇게 많이 운동했던 적이 있었나 싶어요. 이제 동계훈련도 얼마 안 남았는데 더 열심히 노력하려고요! 올해 목표와 소망은요... 작년에 강원FC가 정말 힘들게 잔류했던 거를 지켜봤는데요, 올해는 동계부터 김학범 감독님과 같이 시작했으니깐 굉장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인 소망은 팀을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그러니까 예를 들면 게임에 들어가서 이겼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우리 강원FC가 잔류목표를 넘어 스플릿B가 아닌 A그룹에서 상위권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들고 싶은 목표도 있어요!

신인 김효진
다른 팀에도 전해질 만큼 훈련량이 많았어요. 축구하면서 지금처럼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네요. 그렇지만 올 시즌 팀도, 제 개인도 너무 간절한 상황입니다. 이런 간절함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힘든 훈련을 잘 견디고 있는 것 같아요. 올해 소망은 올 시즌 잔류 싸움에서 벗어나는 것에요. 일단 훈련량을 떠올리면 자신있습니다! 제 개인적 목표는 데뷔전을 치루는 것입니다. 감독님, 코치님들과 형님들 뒷받침 잘해 좋은 경기 보여드리겠습니다. 퐈이팅할테니까 많이 응원해주시고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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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13 신인드래프트가 끝난 지 얼마 안된 12월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들린 숙소 회의실에는 낯선 얼굴의 소년 열댓 명이 모여 있었다. 드래프트에서 뽑힌 신인선수들이라고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선수들이었지만 긴장된 표정에선 앳됨이 먼저 보였다.

그렇게 아직은 소년의 향기가 남아 있던 선수들에게 프로필을 작성해 달라고 종이를 돌렸다.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선수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중간고사 시험지와 마주한 학생들처럼. 회의실은 어느새 교실로 변해 있었고 단상 위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영락없는 선생님의 모양새였다. 자리를 돌아다니며 프로필 종이를 걷는 마지막 모습까지, 어쩜 그리 추억 속 담임 ‘쌤’의 모습과 닮아 있었던지.

드래프트 4순위로 온 유재원도 소집 첫날 밤 “다시 학교에 입학한 것 같다”고 했다. 문득 고등학교생이 되던 그날이 생각났다. 입학 첫날부터 사람들은 내게 말했었다. 얘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야지만 대학 문을 통과할 수 있단다. 그래야 네 인생이 잘 풀릴 수 있어. 신인선수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로 1년차 때 앞으로의 축구인생이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을테니, 열일곱의 나와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것만 같다.

 

올해 우리팀은 드래프트 현장에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무려 15명을 뽑았으니까. 여기에 추가지명까지 진행되니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선수들이 팀에 합류했다. 말은 안해도 신인선수들 각자는 적잖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했다. 축구는 11명의 선수들이 화합할 때 가장 빛나지만, 베스트일레븐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만큼은 경기보다 더 전쟁 같은 스포츠 아니던가. 선배 뿐 아니라 경쟁할 동기들 또한 차고 넘쳤으니, 프로는 역시 프로구나,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신인선수들은 뭐든 다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태백산에 올랐던 소집 첫날도 그랬다. 하산 후 고기집에 들려 회식자리를 가졌는데, 김학범 감독님은 풀어줄 땐 화끈하게 풀어주는 ‘상남자’ 스타일인지라 신인들끼리 편하게 먹으라며 방을 내주셨다. 그 방에 어린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넉넉하게 시켰다고 하지만 알다시피 20대 초중반이면 철도 씹어 먹을 나이 아니던가. 고기는 금세 떨어지고 말았다. 마침 이을용 코치님이 잘 먹고 있는 거냐며 방에 들어왔다가 빈 그릇을 보시곤 더 먹고 싶으면 시켜줄게,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신인선수들은 대답 대신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아아. 이 장면이 만화였다면 코치님 머리 위로 까마귀가 5마리는 지나갔을 것 같다. 머쓱해진 코치님이 나가는 것과 동시에 신인선수들의 눈빛에서 난 모든 생각을 읽고 말았다. 그래서 말했다. 여긴 프로니까 눈치 보지 말고 시켜먹어요, 라고. 그때 신인선수들은 알았을까. 서당개는 3년만에 천자문을 읊는다지만 구단 프론트는 한 시즌만에 선수단과 ‘이심전심’하는 경지에 오른다는 사실을.

그제야 선수들은 고기집 이모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 고기 4인분이요, 저희는 2인분만 주세요, 하는 그 애틋한 목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은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처럼 “저 고기가 내 고기라고, 내가 시켜 먹고 싶다고 왜 코치님께 말을 못하냐구!”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은 모든 것이 어렵기만 한 신인선수들인데.

쉽게 말 못하는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신인선수 A와 통화를 하게 됐는데, 마침 그날은 꿀 같은 외박이 주어진 날이었다. A는 내게 “통화 가능해요. 지금 서울에서 친구랑 저녁 먹고 다시 강릉 가는 길이거든요. 외박이긴 한데 숙소에서 자려고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가만… 친구와의 저녁식사를 위해 왕복 5시간 걸리는 영동고속도로를 넘나든다고? 나는 다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여자친구는 잘 만난 거냐고 물었다. 순간 깜짝 놀란 A는 “이거 선생님들이 아시면 안 되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자, 드디어 진짜 박신양 아니 파리의 연인 한기주처럼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저 여자가 내 사람이다. 저 여자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구!” 그제야 A는 “여긴 프로니까 여자친구 있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 없는 거죠?”라고 되묻더니 헤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걸 잊고 있었네요! 여자친구랑 오랜만에 만나서 밥도 먹고 위로도 받고 덕분에 마음의 힘 많이 얻고 헤어졌어요.”

반면 신인선수 B는 감독님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를 붙잡고 며칠 째 골머리를 썩고 있는 중이었다. 소집 첫날 감독님이 B를 보더니 “넌 머리가 그게 뭐야?”하셨단다. 아! 난 감독님께 첫날부터 찍혔구나. 결국 B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숙소에서 보낸 첫날 밤, 새신랑마냥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김학범 감독님과 내가 함께 한 시간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신인선수들에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 감독님은 바로 대장부 스타일의 지도자라는 것. 물론 가끔은 너무 시원하신 바람에 ‘화통’한 말씀이 ‘호통’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예를 들자면 이렇다. 오랜만에 내가 숙소에 나타나면 감독님은 대뜸 화부터 먼저 내신다. “여긴 왜 왔어!!!!” 이때 문장 끝에는 느낌표가 꼭 4개 정도는 붙어야한다. 그러나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야 아는 법. “홍보담당자가 숙소에 자주 와서 선수들 이야기도 많이 들어야지. 그래야 우리팀 홍보가 되지. 앞으론 자주 와요. 얼굴 잊기 전에.” 꼭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만 반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우리 감독님을 통해 배운다.

그래서 머리를 짧게 다듬어야겠다는 신인 B에게 말해줬다. “감독님이 우리팀 선수에게 한번은 ‘넌 얼굴이 그게 뭐야. 그래가지고 장가가겠어?’ 하신 적도 있고요, 다른 선수에게는 ‘넌 정신 안차려? 왜 숙소에서 티셔츠를 벗고 다녀!’ 하신 적도 있어요. 그렇게 툭툭 화나듯이 말씀을 던지시지만 돌아서서는 ‘우리 선수들이 내 새끼들이니까 그래도 제일 이뻐보이지’하면서 허허 웃으시는 분이에요.”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신인선수들도 나처럼 시나브로 학범슨님만의 스타일에 적응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게 아니라면? 길들어지겠지. 아마도 흐흐.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미국전지훈련에 참가하는 명단이 드디어 나왔다. 명단을 살펴보니 LA행 항공권을 손에 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강릉에 남아 따로 훈련을 하게 된 멤버도 눈에 띈다. 후자의 이름을 확인하니 한숨부터 먼저 나온다. 전지훈련에 동행하지 못한 신인선수들에게 2월의 밤은 또 얼마나 길고 외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것이 친동생을 염려할 때 같은 가족애인지, 아니면 나이먹고 늘기만 한 몹쓸 노파심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기는 힘들다. 남게 된 선수들 가운데 개막 전(前)부터 자책하며 시즌을 통째로 포기하는 이가 생길까봐, 나는 안스러운 눈빛으로 한참이나 잔류명단을 바라봤다.

만약 혹시라도 그런 생각으로 가슴을 칠 신인선수가 있다면, 그에게 이 말만큼은 꼭 해주고 싶다. 40경기 가까이 열리는 한 시즌동안 그라운드에선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고. 멋지게 골을 터뜨린 선수가 십여분 후 들 것에 실려 나가기도 하고 영원한 주전으로 여겼던 선수가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며 벤치에 앉은 일도 발생한다. 다시 말해 이곳 프로라는 무대는 ‘괜찮겠냐’는 감독의 물음에 ‘준비됐습니다’고 외치며 그라운드를 밟는, 그런 드라마 같은 일들이 펼쳐지는 마법의 공간이기도 한 셈이다.

요즈음의 나는 자주 봄을 꿈꾼다. 그 중에서도 바람과 볕이 아주 예쁜 리그의 어느 봄날에, 우리팀 신인선수들이 초원 위의 코뿔소처럼 마음껏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러니 우리 선수들만큼은 ‘늘 깨어있어라’는 말이 성경 속 구절이 아님을 명심하며 훈련에 임하였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지도자의 갑작스런 부름에도 침착하게 답할 줄 아는, 준비된 신예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를 소망한다.

강원의 젊은 그대들이여.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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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도의 대표적인 이미지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으뜸한 청정한 자연환경이 아닐까 싶다. 눈을 감고 강원도를 그려보면 높고 푸른 산과 바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매년 사람들은 ‘여름휴가는 강원도로!’를 외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중에서도 강릉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산과 바다와 호수가 동시에 있는 곳이다. 경포호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조금 더 걸어 나가면 펼쳐진 동해의 웅장함이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고, 강릉 외곽으로 가게 되면 시원한 소금강계곡이 있는 오대산이 기다리고 있다. 또 강릉 톨게이트를 지나 30분 정도 차를 몰고 달리면 강릉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대관령이 대기중이다.

그래서일까. 강원FC 선수단 훈련에는 지역색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이보다 더 강원스러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해 7월 김학범 감독이 새로 강원FC 지휘봉을 맡은 이후 선수단은 자주 산에 오른다. 선수들은 김학범 감독이 부임한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처음 등산에 나섰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릉시 연곡면에 위치한 오대산이었다. 한데 문제는 노인봉까지 가는 여러 길 중 가장 난코스를 택했다는 것. 그 때문이었는지 노인봉에 오르고 난 선수들의 얼굴은 한결 같이 10년 쯤은 나이 들어 보였다. 후에 선수들은 그래서 이곳을 노인봉이라고 부르나보다, 라며 웃었다고.

가을에 접어들자 선수단은 대관령으로 발길을 옮겼다. 낙엽이 예쁘게 지고 있던 10월의 마지막 날 그들은 대관령을 함께 찾았다. 마침 강릉시에서 주최하는 대관령 옛길 걷기대회 행사가 열릴 때였고 선수들에게는 꽤나 낭만적인 시간이었다. 그러나 늦가을에 다시 찾았을 때 상황은 달라져있었다. 빠르게 흐르는 대관령의 시계는 이미 겨울을 가리키고 있었고, 칼바람 속에 눈까지 내리기 시작해서 선수들은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고 한다.

해가 바뀌고 2013시즌 소집 첫날에도 강원FC는 훈련 대신 등산을 택했다. 선수들은 태백산 천제단에서 K리그 클래식에서의 선전을 외쳤다. 그리고 시작된 동계훈련. 더 이상의 산행을 없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역시 김학범 감독과 산은 뗄 수 없는 관계인가보다. 하기야. 지금도 성남시절 제자들은 “산을 사랑하던 학범슨”이라고 회상하지 않던가.

김학범 감독은 순천에서 진행된 2차 국내동계훈련 기간 중에도 선수들을 이끌고 산에 올랐다.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순천에 내려가는 짐을 싸면서 신인선수 박문호는 등산화를 챙겼다고 한다. 축구선수만 가질 수 있는 동물적 감각이랄까. 본능적으로 순천에서의 등산을 상상했다고 하니. 참 대단한 신인이 아닐 수 없겠다. 다른 선수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순천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구글앱으로 순천지도를 보며 그들은 또 한 번의 등산을 예상했다고. 지도 속 순천은 조계산과 지리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순천 전지훈련 종료 4일 전에 선수들은 지리산에 올랐다. 노고단까지 가는 길은 지리산 등산 중 가장 쉬운 코스라고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축구선수들에게 등산은 쉽지 않다. 산을 정복하려고 하다보면 외려 정복당하기 쉬운 법인데, 선수들은 정상에 빨리 올라가려고 서두르다보니 힘에 부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축구할 때 쓰는 근육과 다른 근육을 써야하니 여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등산 시간이 일반인보다 빠를 뿐 아니라 낙오자 또한 없는 건 아무래도 뛰어난 폐활량과 남다른 인내심 덕분이 아닐까.

 

 

노고단은 일명 길상봉으로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 중 하나다. 신라시대에는 화랑도의 심신수련장이었는데, 이곳에서 화랑들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를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제를 올렸다고 한다. 늙을로(老), 시어미고(姑), 늙은 할머니를 위한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란 뜻의 노고단(老姑壇). 그 이름에서 우리는 이곳이 민족신앙의 성지였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조상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곳에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팀과 자신의 안녕을 기원하는 시간만큼은 참으로 거룩하다. 자연과 역사가 주는 그 위대함과 깊이 앞에서 종교는 잠시 뒤로 하고서 말이다. 물론 하산 후 선수들은 노고단까지 오르느라 노고가 많았다며, 다시는 등산하고 싶지 않은 산이라며 울분을 토했지만.

지난 6개월 간 김학범 감독은 선수들이 지칠 때쯤이면 훈련 대신 산행을 택했다. 왜 오르냐고 굳이 묻지 않아도, 또 대답을 듣지 않아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산에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다시 훈련에 집중하자는 김 감독의 숨은 마음 말이다.

강원FC 선수들은 강도 높은 훈련으로 지친 마음을 산에서 치유했다. 정상에서 도착해선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새해 첫날 다짐했던, 그러나 이내 잠들어버린 그 처음의 마음을 다시 흔들어 깨웠다. 이보다 강원FC스러운게 또 있을까. 강원FC가 대표적인 산악지대인 강원도에 적을 두고 있는 팀이기에 등산을 통한 힐링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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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 팬들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 수 있을까. 지쿠가 돌아왔다!

지난해 7월 포항에서 임대선수 신분으로 온 지쿠는 이후 17경기 9골 4도움을 기록하며 후반기 강원의 상승을 견인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활약이었다. 사실 지쿠는 인터밀란(이탈리아) 디나모 부쿠레슈티(루마니아) CSKA소피아(불가리아) 등 유럽 명문클럽에서 활약한 루마니아 대표 출신의 특급 골잡이다. 포항에서 야심차게 영입한 선수였으나 포항의 팀컬러에 온전히 녹지 못했다. 전반기에 15경기 6골을 기록했지만 지쿠의 커리어와 영입비용을 생각한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기록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축구선수들과 다르게 지쿠는 선수답지 않게 포동포동한 이미지였고 실제로 팬들 사이에서는 포동스키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했다. 또 경기 중에 활동량이 많은 선수도 아닌지라 박지성 같은 미친 활동량에 눈높이가 맞춰진 팬들에게는 잘하는 선수가 맞나? 라는 의문을 줄 때도 많았다.

지난해 7월 김학범 감독이 취임 후 여름이적시장을 맞아 선수보강에 나섰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원한 선수가 있었다. 그가 바로 지쿠였다. 김학범 감독은 지쿠가 이미 유럽에 적을 두고 있던 당시부터 눈여겨봤다고 한다. CSKA소피아에서 뛰던 시절, 현지에서 지쿠의 플레이를 봤는데 김 감독은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김학범 감독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자면 “혼자서 다 해먹었지. 그런데 아무도 막지 못했어. 경기를 쥐락펴락 혼자 다했다니까.”

지쿠에게는 타고난 축구센스가 있었다. 시야가 넓었고 경기를 내다보는 수준 또한 깊었다. 동료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한 킬패스가 뛰어났고 위치선정과 이를 골로 연결시키는 결정력 또한 탁월했다.

7월 29일 홈에서 열린 광주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강원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지쿠. 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수비수 여러 명이 에워싸도 침착하게 볼을 살려내 동료에게 패스하는 모습은 탄성을 자아냈다. 그 짧은 수십 초에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지쿠가 가진 남다른 클래스를 느낄 수 있었다.

8월 26일 전남전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프리킥 골, 10월 7일 대전원정경기에서 터진 해트트릭과 이어 열린 10월 21일 대구전에서 해트트릭만큼 대단했던 2골 1도움 기록 등 지쿠가 보여줬던 뛰어난 플레이는 여전히 우리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혀있다. 늘 “우리팀이 살아남는다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을 거야!”라고 말했던 지쿠는 정말로 팀을 살려놓고, 후반기 강원FC 극장축구의 주인공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시즌 종료와 함께 홀연히 떠났다. 임대선수 지쿠와의 강렬했던 6개월이었다.

그랬던 지쿠가 다시 강원FC 유니폼을 입게 됐다. 강원FC로 완전이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를 물어보니 그 대답이 참으로 뭉클하다. “강원FC가 1부리그 잔류를 확정 지은 지난해 43R 성남전에서 김학범 감독님이 내게 주장 완장을 줬다. 감독님은 늘 나를 믿는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는데, 완장을 받으면서 나를 향한 감독님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날의 경기를 잊지 못한다.”

 


김학범 감독은 지쿠에게 “나는 네가 가진 능력을 믿는다. 네 플레이를 존중할테니 어디 한번 맘껏 뽐내보라”며 언제나 칭찬했고 격려했고 박수를 보냈다. 지쿠는 그런 스승의 믿음에 보답하는 경기력을 언제나 보여줬고 골이 터질 때마다 김학범 감독 앞으로 달려가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곤 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박지성과 히딩크 감독 못지않은 포옹 세레모니였다. 어찌나 애틋하던지 전생에 부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몹쓸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어쨌거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강원FC와 김학범 감독과 지쿠는 모두 궁합이 맞았다는 점이다. 이적 확정 후 지쿠는 “강원FC는 내가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의 각오를 되새길 수 있게 도와줬다. 강원FC에 있는 동안 정말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왔으니 나를 도와줬던 고마운 팀 강원FC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뛰고 싶다. 올 시즌에는 강원FC가 기필코 스플릿 A그룹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역량을 모두 쏟아 붓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다시 돌아온 지쿠는 동료 선수들을 위한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지난 시즌 주장 김은중과 올 시즌 뉴캡틴으로 뽑힌 전재호, 그리고 새로 만나게 될 선수들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먼저 전한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2013년이 우리 축구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즌이 될 수 있도록 멋진 경기를 함께 만들어보자.”

지쿠의 마지막 멘트처럼 2013년이 선수와 팀과 팬 모두에게 찬란한 시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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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K팝이 열풍이라는데, 이는 K리그에서도 그대로 통용되는 듯하다. 강원FC의 브라질 공격수 웨슬리의 노트북만 봐도 그렇다. 그의 노트북에는 K팝 MP3와 뮤직비디오가 한 가득이다. 그것도 모자라 가사까지 외워 부른다. 한국어를 배운 적 없는 브라질리언이지만 노래 가사 따라 부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닌가보다.

웨슬리는 올 초까지 태양과 현아의 노래에 푹 빠졌다. I need a girl과 트러블메이커를 흥얼흥얼, 그것도 한국어로 따라 부르더니 요즘은 씨스타의 러빙유가 좋다면서 아이폰에 저장된 그녀들의 노래를 들려준다. 태양은 랩과 스타일이, 현아는 남다른 댄스실력이 맘에 든단다. 씨스타의 노래는 운동 전에 들으면 힘이 난다나?

그런 웨슬리가 최근에 푹 빠진 노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웨슬리 역시 대세의 흐름에서 빗겨나갈 순 없었다. 지난 8월 18일 부산전을 앞두고 골 세레모니로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추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웨슬리에게 했었다. 역시나, K팝에 관심이 많던 웨슬리는 그러지 않아도 연습했었다며 벌떡 일어나더니 말춤을 추는 게 아닌가.

이날 제대로 ‘필’받은 웨슬리는 박자감 없던 나를 위해 하나 둘 셋 넷, 하는 호령과 함께 왼발과 오른발을 어떻게 딛는지 즉석에서 강의까지 해줬다. 친절한 웨슬리씨 덕분에 몸치에다 박치까지 덤으로 갖고 있던 난 어설프게나 말춤을 출 수 있게 되었고.


 

어쨌거나 신나게 말춤 세레모니를 이야기 하고 나서 딱 3일 뒤에 홈경기가 열렸다. 한데 말춤을 보여주고 싶던 웨슬리의 강한 ‘의지’ 덕분이었을까. 웨슬리는 부산전에서 추격골을 터뜨린 뒤 수비수 김오규와 함께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세레머니로 보여주며 모두를 즐겁게 만들었다,

당시 동료 선수들이 골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웨슬리에게 달려갔는데 웨슬리는 자꾸만 뒤로 도망가며 가까이 오지 말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단 한 사람, 강원의 댄싱머신 김오규에게만 얼른 오라고 손짓했고 강원FC는 두 사람의 제대로 된 말춤을 위해 현장에서 강남스타일 음악을 틀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조금 커졌다. 골 세레모니를 준비하기까지 재미났던 과정을 뮤직비디오로 제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강릉스타일’로 명명한 특별 뮤비에는 웨슬리의 경기 중 세레모니 뿐 아니라 집과 숙소를 오가며 말춤을 연습하던 모습, 웨슬리의 남다른 한국어 연기실력까지 볼 수 있게 신경 썼다.

이 뮤직비디오는 지난 8월 26일 전남과의 홈경기 시작 전에 경기장에서 공개됐다. 당시 현장 분위기는 대폭소의 도가니. 능청스러운, 그러면서도 조금은 느끼했던 웨슬리의 뮤직비디오 속 모습은 팬들에겐 즐거운 선물이었다.

K리그 최초로 선수가, 그것도 외국인 선수가 직접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한 뮤직비디오는 그 정성이 갸륵해서라도 팬들 사이에서 꽤나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강남스타일이 열풍은 열풍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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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벌써 4년이 지났다. 런던의 기쁨에 빠져있다보니 베이징에서의 추억은 어느새 흐릿해졌다. 그래도 강렬하게 기억되는 선수들이 있다.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던 순간 장미보다 아름답게 웃던 장미란이 그렇고, 하계올림픽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한 수영의 박태환이 그랬다.

그리고 또 한 선수가 있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아이처럼 펑펑 울던 최민호가 내게는 여전히 머리와 마음에 남는 선수다.

최민호의 별명은 한판승의 사나이. 별명처럼 최민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연이은 한판승으로 결승까지 진출했다. 최민호가 보여주던 그 시원스럽던 플레이와 한판으로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의 짜릿함은 내게 유도의 묘미를 알려주었다.

세레머니는 또 어땠던가. 한판승을 거둘 때마다 검지를 들고서 흔들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한판으로 이겼다는 걸 뜻했는데, 무심한 표정으로 한판승 세레모니를 하고 나서는 모습이 맘에 들어 그즈음 축구선수를 만날 때면 그 세레모니를 권유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투지와 자신감 넘쳐보이던 최민호가 금메달 확정 후에는 상대 선수였던 파이셔의 가슴에 안겨 펑펑 우는 게 아닌가. 그해 올림픽 기간 중 많은 선수들이 웃고 울었지만 나로 하여금 엄마의 마음으로 지켜보게 만들었던 순간은 그때가 유일했다. 내 안의 모성애를 건드렸던 선수였다.

최민호는 올림픽을 준비하며 체중조절이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감량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못 이겨 폭식을 하기도 했었단다. 배가 부른데도 계속 음식을 꾸역꾸역 먹다가 토한 적도 있었다고. 금메달을 따고 나서 그동안 못 먹었던 라면을 먹고 자야겠다고 웃었는데, 그 덕분에 귀국 후에는 라면CF를 찍기도 했었다.

그랬던 최민호의 소식을 다시 들은 건 올 초. 그러니까 런던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을 때였다. 60kg급이던 최민호가 체급을 올려 66kg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올림픽 도전에 실패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최민호는 대표선발전에서 조준호에게 2차례나 이겼으나 세계랭킹에서는 뒤진 상태였다. 체급변경 시간이 짧아 대회에 많이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치열한 토론 끝에 세계랭킹이 앞선 조준호가 올림픽 시드배정에서 더 유리할 것이라는 이유로 올림픽 티켓을 얻게 됐다.

4년 전 최민호가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올림픽 유도스타들이 차지했다. 노장투혼 송대남과 독한 야생마 김재범, 그리고 최민호를 대신해 출전했지만 판정번복의 희생양이 된 조준호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얼마 전 참석하게 된 런던올림픽 유도 국가대표 선수단 환영의 밤 행사장에서도 그랬다. 금메달을 딴 송대남과 김재범은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테이블에 있던 유도 관계자들은 연신 두 선수를 불러댔고 덕분에 기념촬영과 사인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좀처럼 송대남과 김재범 두 금메달리스트와의 인증샷 찍기 행렬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김재범은 밥 좀 먹고 하면 안 되냐며 사정을 하는데 보던 내가 다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마침 내가 있던 자리는 메달리스트들 좌석과 가까웠고 보던 내 정신도 놓을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없는 구석으로 자리를 이동했는데, 고개 숙인 채 저녁을 먹고 있던 한 남자의 실루엣이 참 낯익었다.

최민호였다. 단 한 번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 한 번에 딱 알아보았는지. 처음에는 신기했고 다음으론 반가웠다. 그러나 잠시의 감정이었다. 그의 자리는 메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알아보는 이도 드물었다. 영광의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는 침묵만 있는 듯했다. 그렇게 박수쳐주고 열광하던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저 중앙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송대남과 김재범에게만 꽂혀 있었다.

식사를 다 마쳤을 때 조심스레 다가가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앉아있던 최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생각보다 체구가 작아 깜짝 놀랐다. 내게는 거인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는 이 작은 체구로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구나. 보이지 않던 곳에서 흘렸던 땀의 무게가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그날 환영행사에서 최민호는 말이 없었다. 금세 저녁을 먹고 나선 행사장 밖 접이식 의자에 앉아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원희하고만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그러나 그 조용했던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나오자 따라 나온 사람들로 금세 행사장 밖은 시끄러워졌다. 그 혼란 속에서 최민호는 조용히 행사장을 떠났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묻고 싶었던 것도, 하고 싶었던 것도 참 많았는데. 사진 한 장 같이 찍자는 말이 전부였다. 최민호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고.

4년 전 흘렸던 눈물과 메달 획득 후 겪어야만 했던 방황과 혼돈, 좌절을 알고 있다고, 아쉽게 대표팀에 선발되지는 못했지만 막판 대표선발전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보며 은퇴 후 어떤 유도인으로 다시 나타날지 기대하게 됐다는 말을 건네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쉽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하고 싶다. 당신의 유도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그러니까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가 될 수 있기를 응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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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석 선수가 아주 특별한 금메달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강원도체육회에서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오재석 선수를 위해 강원도체육회가 특별 금메달을 목에 걸어줬습니다.

강원도체육회는 런던올림픽에서 강원FC 소속으로 투혼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찬사를 받은 오재석을 격려하고자 기념 메달을 제작, 선물로 전했습니다.

지난 22일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강원도를 빛낸 도출신 메달리스트 진종오(사격, 금메달 2관왕), 김현우(레슬링, 금메달), 한순철(복싱, 은메달), 정길옥(펜싱, 동메달)을 초청, 강원도청에서 환영행사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오재석은 대구와의 원정경기 일정으로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쉬웠죠. 꿈의 무대에서 꿈을 이룬 선수들과의 만남은 오재석 선수 본인에게도 뜻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번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카디프, 맨체스터, 런던 등을 오가며 경기를 뛰어야했고 선수촌 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타 종목 선수들과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다른 종목 선수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것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꿈을 이룬 사람이라면 만남 만으로도 배우는 것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저는 두고 두고 아쉽네요. 마치 제가 오재석 선수가 된 듯이 말이죠. ^^

강원도체육회 김덕래 사무처장은 강릉에 위치한 강원FC 오렌지하우스까지 방문, 오재석을 격려하며 특별제작한 금메달을 전했습니다. 태풍예보가 있던 날 춘천에서 강릉까지 2시간 가까이 운전하며 오셨다는데, 안전하게 금메달을 전하고픈 마음 앞에서 날씨는 아무 것도 아니었나봅니다.




오재석 선수는 런던올림픽 메달 모양의 순금메달을 목에 건 채 “런던에서의 기분을 다시 느끼는 것 같다”며 웃었는데요, 옆에서 지켜 보던 김학범 감독은 “순금이라니 반만 나누자”는 농담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김덕래 사무처장은 “대한민국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영광스런 순간에 오재석 선수가 강원FC 소속으로 뛴 모습은 도민들에게 큰 자긍심이 되었다”며 “앞으로 더 많이 성장하여 강원FC와 강원도를 빛내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건넸습니다.


 
오재석 선수 또한 “이번 올림픽에서 강원도민과 강원FC 팬들이 보내준 응원의 메시지는 감동이었고, 잊지 않기 위해 가슴에 고이 새겨두었다”며 “남은 스플릿라운드에서 나를 희생하고 팀을 먼저 생각하는 플레이로 꼭 보답하겠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동메달도 충분히 값졌는데, 이렇게 손수 금메달을 제작해 올림픽 기념선물로 주신 강원도체육회의 마음은 값으로 매길 수가 없더군요.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올림픽 메달은 이렇게 오재석 선수의 품 안으로 왔습니다. 런던올림픽은 또 이렇게 귀한 선물을 또 한번 오재석 선수에게 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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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얼마 전에 강원에서 만났는데 울 것 같은 표정이더라.”

제주 박경훈 감독이 언론사와의 인터뷰 중 한 이야기다. 박 감독이 지칭한 선수는 심영성이었다.

지난 8월 8일 강원FC 대 제주유나이티드 경기가 강릉에서 열렸다.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사실 제주에게는 승리와 다름없는 무승부였다. 1-0로 뒤지고 있던 중 종료 1분 전 극적으로 PK를 얻어냈고 이를 자일이 성공시키며 달콤한 승점 1을 챙겼다. 경기를 마친 후 박경훈 감독이 긴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심영성이 다가왔다.

박경훈 감독은 심영성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몸을 기울이더니 귓가에 대고 뭔가 깊은 이야기를 속삭였다. 그러더니 이내 목덜미를 잡고선 토닥토닥, 마치 심영성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안아주다 자리를 떴다.

 


심영성은 지난 6월 14일 임대 선수로 강원FC에 왔다. 불의의 교통사고 후 1년 넘게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던 심영성은 2011년 완벽하게 회복하며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일, 마르케스, 산토스 용병 트리오는 화려한 공격력을 자랑했고 2년 차 배일환과 이적생 서동현은 시즌 초반부터 득점포를 가동하며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침 제주 박경훈 감독과 강원 김상호 감독은 2007 U-17월드컵에서 감독과 수석코치로 한 배를 탄 깊은 인연이 있다. 김상호 감독은 젊고 감각있는 공격수를 원했고 박경훈 감독에게 심영성의 임대를 요청했다. 박 감독은 강원에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며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선수나 구단 모두에게 윈윈될 거라는 생각에 심영성의 임대를 허락했다.

심영성은 2004년 성남에서 데뷔하여 2012년 현재까지 8시즌동안 106경기 14골 6도움을 기록한, K리그에서 잔뼈 굵은 공격수다. 2006년 U-19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득점왕(5골)에 오르며 샛별로 떠올랐고 2007년 U-20월드컵에서는 이청용, 기성용 등과 함께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에 김상호 감독은 심영성을 향한 높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2006년 성남에서 제주로 이적한 뒤 주전 공격수로 날개를 폈으나 2009년 12월 교통사고로 1년 넘게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등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도 닥쳤으나 특유의 ‘뚝심’으로 인내하며 묵묵히 땀 흘렸다. 덕분에 2011년 6월 값진 복귀전을 치렀고 지난 5월 FA컵 32강전에는 선제골을 터뜨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심영성 스스로에게도 강원에서의 임대생활은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임대가 결정된 후 2주 후에 김상호 감독은 성적부임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사령탑에서 물러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자신을 불러준 감독이 떠난 자리에는 자신을 가르쳤던 감독이 들어왔다. 2004년 성남에서 데뷔한 심영성은 2006년 전반기까지 그곳에서 선수로 뛰었다. 당시 성남을 이끌던 지도자가 김학범 감독이다. 옛 은사를 강원에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이것은 운명일까.

김학범 감독은 귀국 후 이틀만에 감독 데뷔전을 치렀다. 7월 11일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 3-0으로 승리했고 나흘 후인 15일 춘천에서 홈경기 데뷔전을 맞이했다.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심영성은 후반 10분 정성민 대신 교체투입 되며 종횡무진 했으나 결정적인 찬스가 김영광에게 막히며 무위로 끝났다.

울산전 이후 심영성에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고 있다. 단 2경기에, 그것도 후반 35분 이후에 교체로 출전한 게 전부다. 뭔가 보여주기에 부족한 시간일 수 있다. 하나 팀은 냉정하다. 패하고 있는 경기에 교체투입한다는 것은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해내주길 바라는 벤치의 기대도 실려있다. 아쉽게도 심영성은 그 경기들에서 단 1개의 슈팅조차 기록하지 못했다.

연패에 빠져있는 강원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종결자다. 골을 터뜨리며 경기를 승리로 끝나게 만드는 사람이다. 심영성은 ‘조커’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앞으로 기회가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영성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자신의 축구인생이 그랬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후 수술을 반복했고 병원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때 다시 축구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늘은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고난만 주는 법이잖아요. 제가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서 이 팀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그런 심영성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강원FC에서 절실히 필요로 했던 만큼 주장 김은중 형님을 도와 멋진 결과물들을 내놓겠습니다. 강원FC에서 새롭게 심영성의 부활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라던 임대 확정 당시의 소감이 생각난다.

무릎뼈가 수십 조각 쪼개지며 모두가 선수생명은 이제 끝났다고 했지만 심영성은 보란듯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나는 7전8기 끝에 그라운드로 돌아온, 그렇기에 긍정의 힘을 믿고 있는 이 선수가 후반기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 감동의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게 후반기 펼쳐질 스플릿B를 맞이하는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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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이 경기에서 지는 팀은 16위로 3주를 있어야한다. 달아나려는 자와 추격자간의 혈전이었다. 팽팽한 줄다리기 같았지만 승리의 여신은 전남의 손을 들어주었다. 강원FC는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30라운드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3-4로 패했다.

전반 5분 지쿠가 그림같은 프리킥을 터뜨리며 먼저 달아난 뒤 주도권은 강원이 잡았다. 그러나 하석주 신임감독 부임 이후 한결 단단해진 전남은 전반 31분 플라비오가 헤딩으로 만회골을 넣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플라비오는 3분 후에는 페널티킥까지 성공하며 2-1로 달아났다.

 


그러나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강원의 의지는 강렬했다. 전반 38분 지쿠가 다시 한번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2-2로 따라붙었다. 지쿠는 마법 같은 왼발 프리킥으로 전반에만 2골을 쏘아올리며 꽤나 화려하게 강원에서의 임대 데뷔골을 신고했다. 게다 이날 지쿠의 골은 K리그 600호골로 기록되며 지쿠에게는 꽤나 경사스런 날로 마침표를 찍는 듯 했다.

아쉽게도 기쁨은 잠시였다. 3분 뒤 김영욱은 빨래줄 같은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3-2로 달아났고 후반 30분에는 김영욱의 프리킥을 코니가 헤딩으로 연결하며 이내 스코어는 4-2로 벌어졌다..

이쯤하면 패색이 짙을 법도 했지만 강원은 포기하지 않고 골문을 두드렸다. 후반 41분 교체로 들어온 데니스는 특급조커답게 골을 터뜨리며 추격의 불씨를 되살렸다. 강원 선수들은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계속해서 슈팅을 시도했다.

아쉽게도 3-4로 패했지만 7골이나 터진 화끈한 공격 축구는 강원 팬들에게 박수받기 충분했다. 또한 15위와 16위, 최하위권에 랭크된 두 클럽의 맞대결이었지만 빠른 공격전개 속에 진행된 경기는 성적과 상관없는 즐거움을 안겨줬다.

전남은 이날 승리로 7승8무15패(승점29)의 성적으로 단박에 12위로 껑충 뛰었으며 강원은 7승 4무 19패(승점25)를 기록하며 최하위로 스플릿 그룹B를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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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그간 K리그 선수들은 군입대를 앞둘 때 거의 대부분 상무 축구단의 문을 두드렸다. 정해진 수순과도 같았다. 그러나 김두현은 달랐다. 2010년 가을 경찰청 축구단에 원서를 내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K리그 MVP, 국가대표, 프리미어리거 등 화려한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잘나가던 K리그 김두현의 뒤를 이어 2010년 겨울에는 국가대표 출신의 염기훈과 2006년 염기훈과 함께 신인왕 경쟁에 나섰던 배기종, 그리고 2009년 K리그 신인왕 출신의 김영후가 경찰청에 입대했스타의 경찰청행은 파격이라는 단어 말고는 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상무팀은 K리그에 참가하기 때문에 비록 군팀이지만 꾸준히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한데 경찰청 축구단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R리그와 내셔널리그선수권대회 등에서만 뛰면서도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예전과 같은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까, 등의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두현은 잘해냈다. 김두현은 R리그의 메시라는 별명처럼 K리그 샛별들과의 대결에서 한차원 다른 플레이를 선보이며 모두를 놀라게 했고 다른 K리그 선수들에게는 경찰청에서 군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의 전환을 안겨줬다.

다.

덕분에 경찰청 축구단은 ‘레알 경찰청’이라는 새 별명을 얻게 됐다. 다행히 화려한 선수들의 기량은 꾸준했고, 지난 5월에는 김두현과 염기훈이 최강희호에 승선하며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다.

특히 5월 31일 열린 스페인과의 A매치에서 대한민국은 1-4로 패했지만 김두현만큼은 빛났다, 김두현은 호쾌한 중거리포를 성공시키며 존재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해보였다.

경찰청 입대 전 김두현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K리그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앞으로 많은 K리그 선수들이 내 뒤를 따라서 경찰청에 입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하며 웃은 적이 있다.

그의 말처럼 K리그를 빛내던 별들이 김두현을 따라 경찰청에 입대했고 올해도 각 클럽에서 주전으로 뛰던 선수들이 경찰청에 원서를 낼 것이라고 한다. 첫 테이프를 본인이 끊었다는 점에서 혼자서 뿌듯한 미소를 지었던 김두현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래서 따라 웃음이 나온다.

R리그에서 만난 김두현, 염기훈, 배기종, 그리고 김영후. K리그로 곧 컴백할 별들과 만난, 그날의 풍경이다.

배기종

 

여전히 16번을 사랑하는 남자. ^^

 

 

 

 

 

교체아웃되는 배기종. 교체아웃 될 때도 군인답게 거수경례를.

 

김두현.

 

왼발의 스페셜리스트 염기훈의 프리킥 찬스.

 

동료 선수들의 위치를 잡아주고.

 

아쉽게 프리킥은 성공하지 못했다.

 

 

R리그의 메시 김두현. ^^

 

경기가 끝나면 모든 선수는 이렇게 거수경례를.

 

 

9번은 강원 신인왕의 주인공 김영후!

 

수원맨 김두현과 염기훈.

 

고개숙인 김두현과 머쓱한 배기종.

 

강원팬들을 위해 포즈를 잡아준 아기아빠 김영후.

 

성남시절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었던 김학범 감독과 김두현이 경기 후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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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6경기째 승리가 없다. 그러나 최하위만은 면하겠다는게 강원FC의 각오다. (이렇게 쓰고 보니 슬프다는. ㅠㅠ)

 

강원FC은 25일 강릉종합경기장에서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30라운드에서 전남과 격돌한다. 29라운드를 마친 현재 강원FC는 승점25로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전남은 강원에 승점1이 앞선 15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경기에서 패한 팀은 스플릿 그룹B 진출을 앞두고 최하위를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플래시백 - 전남 0-0 강원(3/4 광양)
올시즌 개막경기에서 맞붙은 두 팀이었으나 0-0으로 비겨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홈 팀 입장이었던 전남이 의욕적이긴 했다. 전남은 전방에 사이먼을 포진했고 준족의 한재웅, 심동운 등에게 공격 지원의 역할을 맡겼다. 전남은 이날 15개의 슈팅을 상대 골문에 퍼부었다. 그러나 정교함이 떨어졌다. 유효슈팅이 단 2개에 그쳤다. 강원도 맞고만 있지 않았다. 대등한 볼 점유율을 보였으며 후반 교체투입된 웨슬리는 지속적인 슈팅으로 상대 수비를 위협했다. 특히 일본 J리그 출신 시마다가 경기를 잘 풀어주며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던 경기였다.

 

◎ '3연패' 강원, 계기가 필요하다
강원은 최근 6경기(2무 4패)에서 승리가 없고 3연패로 부진하다. 김학범 감독 부임 직후 밸런스가 잡히며 기대를 높였으나 다시 주춤하고 있는 모양새다. 0-2로 패했던 22일 대구전은 특히 아쉬웠다. 허리싸움에서 승리하며 볼 점유율을 높였으나 상대 역습에 말려 실점을 허용했다. 전후반 슈팅이 단 2회에 그칠 정도로 실속이 없었다. 앞서 열린 부산전(6회) 인천전(4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나치게 완벽한 기회를 잡으려고만 하지 말고 슈팅 가능지역에 접근하면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래서 설득력이 있다.

◎ 전남의 하석주 효과, 이번에는?
전남도 사령탑을 바꾸는 극약 처방을 쓸 정도로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석주 감독 데뷔전이었던 19일 경남 원정에서 극적인 1-0 승리를 거뒀으나 22일 서울과 홈경기에서는 0-3으로 크게 패했다. 하석주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2경기에서 수비진에 변화를 꾀했다. 골키퍼 이운재 대신 류원우를 투입했고 시즌 내내 전남 수비를 이끌었던 센터백 코니를 2경기 연속 선발 명단에서 제외했다. 지난 서울전에서는 상대의 완성된 공격 조직력과 수준급 개인기에 수비진이 속절없이 헝클어졌다. 강원이 최하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려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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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힐링캠프 속 기성용은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던 모습만큼이나 멋진 녀석이었다. 자신만만해보였지만 그 속에는 소신과 주체의식이 있었다. 또 한일전을 앞두고는 민족의 역사와 아픔을 생각했고 그 때문에 욱일승천기를 보고 욱했던 이 선수를 어찌 어여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눈웃음이 예쁜 기성용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올림픽대표팀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한국축구에서는 무수히 많은 대표팀이 나타났다 사라지겠지만 2012년 이번 런던올림픽대표팀을 능가하는 팀이 또 나올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선수들에게도 그랬고 지켜보는 이에게도 홍명보호는 참 특별한 팀이었다.

선수들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다. 그래서 기성용이 올림픽대표팀 합류 전부터 구자철은 이 팀은 뭔가 다르다며 팀에 대한 남다른 애착심을 보여준 것 같다. 물론 아무 것도 모르던 기성용은 그래봤자 팀은 팀, 이라고 응수했지만.

 


힐링캠프에서 기성용이 소개한 올림픽대표팀의 특별한 룰들. 우선 훈련복을 깔끔하게 바지 안으로 넣는 것. 기성용은 감독님이 안 볼 때 몰래 몰래 뺐다고 하지만 착한 오재석은 런던으로 출국하던 날에도 바지 안으로 티셔츠를 넣는 ‘배바지’ 패션으로 우리를 웃게 만들었었다.

 


깔끔하고 통일된 복장은 행동을 조심스럽게 만들고 이는 생각으로까지 연결된다. 섬세한 홍명보 감독님은 그 부분까지 신경쓴 듯하다. 홍 감독님은 그래서 소집일에 입고 오는 복장에도 신경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작년 가을 소집을 앞두고는 청바지에 운동화, 쟈켓을 드레스코드(?)로 정해주시도 했다. 그래서 오재석도 집에서 쟈켓을 챙겨가 파주에 입고 들어갔다.


지난 여름 올림픽대표팀 훈련을 보기 위해 파주NFC에 갔을 때 나 역시 기성용과 같은 생각을 했다. 훈련시간이 임박했는데도 훈련장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보통은 한두명 훈련장으로 걸어내려오는데 이 선수들은 로비 쇼파에 앉아 이야기만 나누고 있다니. 그러더니 한꺼번에 슝 나와서 한꺼번에 체조를 하고 가볍게 러닝을 한뒤 훈련에 돌입했다. 홍감독님이 강조하신 ‘일체감’은 그렇게 훈련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꿈의 올림픽에서 꿈의 동메달을 확정짓고 호텔에 돌아온 올림픽대표팀 선수들. 영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대로 보낼 순 없어 한명, 두명 모이기 시작했고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방에 모였다. 그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맥주도 손에 쥐고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는데, 홍감독님이 먼저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뗀 뒤 그간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작된 야자타임.

시작은 오재석이었다. 오재석은 그동안 홍명보 감독을 ‘인생 최고의 지도자’로 꼽으며 남다른 존경심을 드러내곤 했다. 또 할 땐 하는 사람이었던지라 “명보야, 너 쫌 멋있다?”라는 멘트를 날렸다고 한다. 야자타임을 할 때는 이제 막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라 술에 취했던 것도 아니고,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해도 감독님께 ‘X나’라는 욕을 쓸 정도로 예의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재석은. 어떻게 ‘쫌’이라는 단어가 ‘X나’가 됐는지. 이 부분은 좀 안타깝다.


어쨌거나, 오재석이 반말로 테이프를 끊었건만 그 다음 선수들은 하나 같이 존댓말을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흐흐흐. “감독님 사랑합니다!”하며 하트를 날리는 선수가 있었는가 하면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라고 말하는 선수도 있었고. “야, 니들이 이러면 반말한 나는 뭐가 되냐”하며 오재석은 볼멘소리를 했다고.

그래도 홍명보 감독은 사나이답게 오재석의 멘트에 주먹을 쥐어보이며 내밀었고 오재석 역시 주먹을 내밀어 감독님의 주먹에 대며, 주먹 대 주먹으로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그 자리에 없어도, 이렇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멋진 그림이 상상된다.

이미 김기희가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지만 오재석도 영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잊지 못했는지 당시 방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줬다. 그래서 사진을 보며 궁금했던 남자에 대해 물어봤다. 맨 왼쪽에 계신 분은 누구시냐고. 이번 올림픽대표팀 지원스태프의 얼굴은 모두 알고 있던 내게 이 분은 미스테리맨이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그분은 이번 런던올림픽에 함께 동행했던 조리장님이셨다. 한데 내가 신기했던 것은 어떻게 주방장님이 선수들과 마지막 밤을 같이 보냈냐는 것이다. 클럽이나, 대표팀이나 선수들이 생각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소중한 시간은 함께 뛴 동료들하고만 보내고 싶은게 바로 선수의 마음이다. 그 시간을 함께 보내고 공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힘들텐데. 마냥 신기했다. 도대체 왜?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 자축하고 있을 때, 홍명보 감독님은 조리장님을 앞으로 불러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메달을 딸 수 있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크게 고생하신 분이다. 이 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가 해주는 밥처럼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영국에서 먹고 힘내서 뛸 수 있었다. 자, 감사인사 드리자.”

이번 올림픽대표팀은 매 경기가 이동의 연속이었다. 뉴캐슬과 카디프, 런던, 맨체스터로 이어진 강행군이었는데 그때마다 조리장님은 항상 선수단보다 먼저 이동해 열심히 한국음식을 준비하고 선수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선수들이 호텔에 도착하면 마치 엄마처럼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해놓고 웃으면서 서계셨다고.

그러나 내가 이 팀을 대단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 선수들 중 그 어떤 누구도 대표팀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신경써줘야하는 게 아니냐고, 이건 대표팀이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조리장님이 주방에서 흘리는 땀에 감사하며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고 그래서 마지막 회포를 푸는 자리에까지 초대한 감독과 선수들이라니. 내가 최고라는 생각 따윈 없었고 우리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도와주신 분들이 최고라는 낮고 겸손한 자세가 참 뭉클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다니다보면 잊기 쉬운 생각인데,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낮음’을 잊지 않은 홍명보의 아이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했다.

사실 이 얼마나 하나가 됐는지 아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선수단을 뒤에서 보좌하는 지원스태프들의 마음도 같은지 확인하면 쉽게 알 수 있으니까. 영국에게 승부차기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4강행을 결정지었을 때 중계 카메라에 눈물을 흘리는 한국인이 잡혔다. 대표팀 경기분석관이었다. 나중에 선수들도 경기 영상을 보게 됐는데 그때 눈물 흘리는 분석관 형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홍명보 감독님은 분석관에게도 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심어주셨다. 그래서 영국에 가서도 팀에 필요한 분석영상들을 만들어주기 위해 매일같이 밤을 샜다고 한다. 분석관의 눈물은 모든 사람이 커다란 원안에서 손을 잡고 있는, 그렇게 굳게 뭉친 팀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 계기였다.

마지막 하나 더. 올림픽 조별예선 첫 상대였던 멕시코. 첫 경기라서 적잖게 긴장감이 들었는데 우리의 구자철 주장은 경기 시작 전 어깨에 어깨를 걸고 파이팅을 외치는 그 시간에, “아 런던이다~ 아 즐겁다~”라는 멘트를 남기고 그라운드로 뛰어갔다고 한다. 뭥미? 여긴 뉴캐슬인데? 하며 다들 웃었고 덕분에 긴장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니, 구 캡틴이 노린 고도의 심리전술이 아닌가 싶다. 구글거림으로 생각하고 싶진 않다. 이미 한번 들은 이야기였지만 방송을 통해 또 듣게 되도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이렇게나 멋진 팀을 우리 생애 직접 만났다는 사실에 대해, 두고 두고 감사해야할 듯하다. 언제 또 이런 팀을 만날 수 있겠는가. 한국축구의 새싹에서 기둥으로 자라고 있는 동안, 선수들이 보여줬던 성장스토리를 잊지 않겠다. 고마웠다. 홍명보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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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웨슬리는 기특하다. 역대 강원FC 외국인 선수 가운데 최초로 해트트릭을 터뜨린 기록은 대한했고 골을 넣을 때마다 팬들을 향해 달려가 늘 왼쪽 가슴에 달린 엠블럼에 키스하는 세레모니는 늘 박수받을만하다. 이렇게나 팀 사랑 넘치는 선수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강원FC의 강백호, 웨슬리를 만났다.


강원FC에 오게 된 계기는. (@ㅈㅎㅈ)
코린치아스 클럽에서 훈련 중에 갑작스런 제의를 받았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고 한 번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전남에 있을 때 강원FC가 리그 최하위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래서 더 돕고 싶었다. 강원FC를 도와 나의 이름을 K리그에 강하게 어필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강원FC에 와서 좋았던 점은. (@뀨잉)
선수들과 구단프론트들이 잘 챙겨주고 운동하기에 시설도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남종현 회장님이 나를 정말 생각하고 아껴주신다. 그게 가장 좋다.

경기 중 몸싸움도 열심히 하는데 부상은 없는지. (@clup3833)
난 승부욕이 강하다. 지기 싫어 열심히 태클하며 뛰어다니다보니 터프하게 보이는 거 같다. 다행히 부상은 없다. 대신 너무 열심히 뛰어서 온 몸이 아프다. 부딪히며 타박도 많이 입고 근육통도 있고. 하지만 선수라면 누구나 이 정도 아픔은 감수하니까.

골을 넣지 못해도 항상 세레머니를 즐겨하는데. (@홍순우)
장난치며 분위기 띄우는 걸 좋아한다. 항상 세레모니를 하는 이유다.

지난 7월 11일 대전전에서 K리그 데뷔 이래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신록예찬)
바로 전 라운드였던 성남전에서 한 골을 넣고 승리를 거둔 이후 나를 비롯한 선수들에게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대전전에서는 초반부터 경기가 잘 풀렸다. 김학범 감독님이 오시고 나서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했고 좋은 인상을 심어드린 것 같아 기뻤다. 또 K리그에 온지 2년 만에 첫 해트트릭을 기록해 행복했다.

사실 리그 초반에 골 소식이 없었다.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은데. (@tree)
낯선 팀에서 새롭게 적응을 해야하다보니 향수병도 왔고 날씨가 추워 원래 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 김상호 감독님을 여전히 존경하지만 당시 감독님은 나에게 수비를 많이 강조하셨다. 빠르고 공격적인 선수라는 것을 아셨지만 너무 수비를 시키다 보니 내 플레이를 하기가 힘들었다. 정작 나는 이 좋은 스피드를 공격에 이용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힘들었다.

강원FC에서 친한 선수는. (@윤민정)
김명중 선수. 전남에서부터 같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친하다. 자크미치와 김은중 선수와도 친하고. 최근에는 지쿠와도 친해졌다. 지쿠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요즘은 서로 장난치며 친하게 지낸다.

강원FC에 와서 가장 좋았을 때는. (@양지은)
바로 지금이 나는 제일 좋다. 김상호 감독님과 보낸 시간도 좋았지만 김학범 감독님이 새로 오신 이후 경기 스타일이 나와 잘 맞는 듯하다. 그래서 현재 나는 아주 행복하다는!

강원FC로 완전 이적하고 싶지는 않은지. (@박용호, @남기철, @윤준형, @탁명진, @shakeshake97)
나는 강원FC가 좋다. 팀만 괜찮다면 있고 싶다. 코린치안스와 계약은 돼있지만 결정은 내가 하는 거니까. (이적료가 있는데?) 앗! 이적료!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다(웃음).

팀 내에서 플레이 스타일이 잘 맞는 선수는? (@그리오토)
단연 주장! 김은중 선수는 상당히 똑똑한 스트라이커다. 나의 스타일을 잘 알고 맞춰줄 뿐 아니라 이용할 줄도 아는 지능적인 공격수다. 함께 뛰면 호흡이 잘 맞아 편하고 좋다.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원인환, @Jongmin Choi)
밥에 비벼먹는 된장찌개. 삼겹살과 초코하임도 좋아한다(웃음).

한국에 와서 좋은 점. (@장하영)
브라질보다 조용하고 사람들도 다정해서 살기 좋은 곳 같다.

제일 좋아하는 한국어는? (@박채린)
괜찮아, 좋아, 멋져.

머리를 늘 짧게 자르는 거 같은데. (@우상훈)
머릿결이 안 좋아서 기르면 안 된다(웃음).

패션에 남다른 센스가 있는 듯하다. 쇼핑은 주로 어디서 하는지. (@김택곤)
쇼핑은 서울에 놀러갈 때마다 한두 번씩 한다. 기본 아이템은 청바지와 티셔츠고 액세서리와 모자로 포인트를 주는 걸 좋아한다.

고정적으로 다니는 미장원이 있는지. (박창균)
아디 미용실! 서울의 아디가 나의 전속 미용사다. 나 뿐 아니라 수원의 에벨톤도 아디에게 머리를 맡긴다. 소문에 듣기론 서울 선수들도 아디 미용사에게 가끔 부탁한다던데(웃음). 아디는 자기 머리도 스스로 다듬는 능력자다. 아디는 나와 가장 친한 K리그 선수다. 그래서 쉴 때도 아디네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축구팬들이 즐겨가는 사이트에서 한때 웨슬리의 형님 외모, 일명 ‘노안’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주하)
한국 사람들은 확실히 피부에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다. 관리도 많이 받는 듯하고. 브라질은 더운 나라다보니 피부가 안 좋은 사람들이 많고 다들 특별히 피부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보다 들어 보이는 건가? 흑.

장난꾸러기처럼 보이는데 실제 성격은 어떤지. (@MachoMan)
즐겁고 재밌는 걸 좋아해서 장난을 자주 친다. 장난꾸러기처럼 보인다고? 맞게 봤다(웃음).

자신이 은근 귀여운 거 아는가? (@팽투트와)
못생긴 건 아니지만 잘생긴 얼굴도 아니다. 그렇지만 남들이 귀엽다고 해주면 고맙다(웃음).

자신이 생각하는 K리그 최고의 한국선수와 용병선수는? (@JeePa)
서울의 하대성 선수. 볼을 똑똑하고 예쁘게 차는 것 같다. 외국인 선수는 서울의 데얀. 외국인 선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 아닌가. 득점력은 정말 최고인 거 같다.

존경하는 축구선수는 누구인가. (@ㅈㅎㅈ)
호나우도. 코린치안스에서 같이 뛰었던 적이 있는데, 실력 뿐 아니라 성격까지 좋다. 브라질을 대표해서 뛰었던 그의 축구인생은 정말 멋있었고 부럽기까지 했다. 같은 브라질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존경한다.

2012런던올림픽 준결승전 대한민국 때 브라질과의 경기를 봤는가. (@dreamers)
새벽에 하는 바람에 다음날 하이라이트로 봤다. 우리팀의 오재석은 많이 뛰고 열심히 하는 선수다. 그렇지만 네이마르를 마크해서 말은 안 해도 힘들었을 것 같다. 한국은 팀 자체의 조직력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오재석의 동메달 획득을 축하한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gangwonfc)
경기장에 와서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응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특히 서포터스 나르샤가 나를 많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맙다. 강원FC가 현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으므로 남은 후반기에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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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에 있어 김은중은 특별한 남자다. 올 시즌을 앞두고 도전을 위해, 라는 전제 아래 강원FC로 이적한 김은중은 이적과 동시에 캡틴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홈 개막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첫 승을 안겨주었고 팀이 연패에 빠지며 고비와 만날 때마다 자신을 낮추고 동료를 존중하는 ‘낮은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이제 김은중 없는 강원FC를 논할 수 없는 2012년, ‘샤프’ 김은중을 만났다.

라운드 MVP 팀내 최다선정자다. 소감은?
혼자서 잘해 받은 게 아니다. 감독님, 코칭스태프들, 선수들, 구단이 다 같이 열심히 해서 받은 MVP다. 아직 경기가 꽤 남아있기 때문에 남은 경기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강원FC 이적 이후 2경기 만에 2골을 터뜨리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덕분에 부담감을 덜지 않았나.
솔직히 고백하자만 부담감이 없지만은 않았다. 강릉 시내에 나갈 때면 시민들이 내가 뛰면 우리팀이 골 넣고 이길 거라고 하나같이 같은 말씀만 하시더라(웃음). 만나는 사람들마다 같은 이야기를 해주시니 알게 모르게 부담감이 생겼다. 그래도 지난 겨울 동안 팀이 착실히 준비했던 것들을 초반부터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해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일단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는데, 다행히 첫 승을 빨리 한 덕분에 선수들이 잃었던 자신감을 많이 되찾았다.

팀이 전체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재 우리의 조직력은 아직 70% 수준밖에 오르지 않았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팀과 선수들을 믿는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골 찬스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선수들이 그런 나를 도와주기 위해 다 같이 열심히 뛰어줬다. 동료들에게 고맙다.

 


선수들과 직원들 모두 김은중이 오니 팀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칭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사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K리그에서 오랜기간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것 뿐이다. 그걸 좋게 받아들이는 선수단과 구단의 넓은 마음에 감사하다. 내가 팀에서 최고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선수들이 내 말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주장’으로서 나를 존경하고 믿어준 선수들 덕분에 팀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강원FC에 와보니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멋진 팀이더라. 그 매력이 K리그에 알려지고 빛날 수 있도록 선수들과 함께 헌신하고 싶다.

후배들을 잘 이끄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어떤 ‘비장의 무기’가 있나?
팀내 최고참이다보니 후배 선수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아 먼저 다가가는 편이다. 함께 차 한잔 마시면서 서로간의 벽을 허물고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만든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선수들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기가 쉬워진다. 일단 선수들의 성격을 알아야 그 선수가 개인적으로 슬럼프를 겪거나 자신감을 잃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이다.

올 시즌 강원FC는 8강 진입을 목표로 꼽았다. 고참 선수 입장에서 가능성은 얼마나 보고 있나?
우리가 시즌 준비하는 동안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정한 목표가 8위 안에 드는 것이었다. 큰 목표는 8강이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은 힘들다고 본다. 그러나 시즌 시작 전부터 선수들에게 말했다. 44경기가 아닌 1경기씩 준비하자고. 다음 한경기가 우리에게는 결승전처럼, 이 한경기밖에 없다는 생각만 할 것이다. 그 한경기 한경기에 집중하다보면 조금씩 성적을 올리고 우리가 세웠던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까.

올 시즌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60-60 클럽 가입이 목전에 있는데 다른 목표가 있나?
개인적인 목표는 정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기록은 팀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은 팀이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팀 안에서 잘하고 싶다.

‘샤프’를 지켜보고 있는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일단 홈에서만큼은 가능한 많은 승리로 보답하고 싶다. 코칭스태프들은 선수들이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도록 밤낮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선수들은 그 지도에 잘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강원FC는 늘 열혈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는 구단으로 유명한데, 팀이 항상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론 기대에 못 미치는 플레이를 할 때도 있겠지만 팬이기 때문에 더 안아주신다면 선수들은 크게 고마움을 느끼고 한걸음이라도 더 뛸 것이다. 변함없는 응원 보여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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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준결승에서 브라질에게 0-3으로 패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을 상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준결승까지 올라갔지만 잃은 것 역시 많은 경기였다. 선수들은 혈투로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조2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이동시간이 많았다. 카디프에서 맨체스터로 다시 카디프로. 이동경로가 짧았던 일본에 비해 불리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현지에서 전해들은 올림픽대표팀 소식. 체력이 이미 떨어져 몸이 많이 힘들다고 하였다. 걱정이 컸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몸이 힘들 새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기가 져서 마음이 아픈 것일까.

한데 선수들의 대답은 달랐다. 홍명보 감독님과 올림픽 대표팀 동료들과 뛰는 마지막 경기였기에 선수들은 몸이 힘들다는 것을 생각할 새도 없었다고 한다. 선수들은 자신들이 뛰는 올림픽 대표팀의 이야기는 한편의 영화와도 같았다고 했다. 이 영화가 런던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군면제. 그보다 더 중요하는 것은 홍명보 감독님과 올림픽팀을 위해서 자신들이 무언가 해줄 수 있는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군면제보다 중요한 것. 팀을 위한 희생. 선수들의 마음에는 그것 뿐이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것이 이 팀의 명제였는데, 다시 한번 그 명제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대회에 나가기 전에 강원FC의 불멸의 풀백 오재석이 그랬다. 준비된 사람이 기적을 일으키는 법이라고 배웠어요, 런던에서의 기적같은 결과 상상합니다, 그 생각을 하면 행복해져요, 라고.

올림픽팀과 함께한 4년 간의 시간.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에 이 팀에서 보답하고 싶었다고 한다. 선수 한명 한명이 흘린 땀들은 값졌다. 그리고 그들이 모인 팀은 위대했다.

군면제 타이틀이 걸린 아시안게임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봐 노심초사하며 강박감에 눈물 흘렸던 어린 소년들은 어느새 남자가 되었고 전사가 되었다. 축구 종주국인 영국을 상대로, 영국 홈에서 7만 관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뛰었다. 배운데로 플레이를 하며 팀을 생각하면 우리는 행복할 것이라고, 올림픽팀만의 행복한 축구만 생각하며 뛰었다.

언론과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식었다를 반복할 때 박주영은 선수들을 모아서 그랬다고 한다. 우리가 잘하면 박수보내고 우리가 못하면 쓴소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말들에 일희일비하면 안된다. 우리는 팀이다. 팀을 생각하며 우리가 얼마나 즐겁게 함께 훈련했는지만 생각하자고.

 

 

오늘 이 축구가 이 친구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이었다는 주장 구자철의 소감. 우리 올림픽대표팀은 마지막이라는 간절감을 가슴에 담고 싸웠고 결국은 간절함의 차이가 승패를 가로질렀다. 한일전 2-0승리라는 스코어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저희의 도전이 빛을 발할 시간입니다. 4년간 고생한 우리의 꿈이 꼭 이뤄어지도록 기도해주세요.”

런던으로 출국하기 전 오재석이 팬들에게 남긴 인사말. 그 도전의 끝이 해피엔딩이 되어, 축구공 하나로 온 국민이 함께 행복할 수 있어서 나도 행복했다. 그래서 이 태극전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시간이었다.

준결승에 올랐을 때, 아직 역사를 쓰지 못했다고 했던 선수들. 그러나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따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2002년 월드컵을 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운 이들이 10년 후 런던에서 기적을 썼듯이 이 선수들을 보며 꿈을 키울 키즈들이 새롭게 쓸 축구역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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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경기 종료 후 벤치에 앉아 눈물을 쏟는 선수가 보였다. 그 선수를 위로해주는 동료들의 모습도 잡혔다. 대한민국 여자핸드볼대표팀이었다. 올림픽 핸드볼 4강전에서 우리나라는 노르웨이에 25-31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실패라는 표현이 맞을까. 우리나라 여자핸드볼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 처음 출전해 은메달을 따낸 이후 지금까지 8회 연속 4강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 중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땄으며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과 금메달을 추가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제외하고 출전한 대회마다 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했던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다.

올림픽에선 효자종목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선 비인기종목 중 하나였다.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전이 펼쳐진 경기장은 관중들로 가득 찼는데, 만원관중이 적응되지 않았단다. 관중들의 열기로 집중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마음 아프게 들렸다.

노르웨이 여자대표 선수들에게서는 게르만족의 향기가 느껴졌다. 남성 못지않게 골격 좋고 체력이 뛰어난 그들을 상대로 우리대표팀은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우리 대표팀 전력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김온아와 정유라, 심해인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스쿼드를 구축하기에 어려움이 컸다. 오죽하면 우생순으로 유명한 임오경 해설위원이 더 다치면 안 된다고, 차라리 내가 다쳤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렸겠는가.

그러나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은 한국 여성들의 강한 투혼을 코트 뒤에서 입증해주었다. 결승실패가 아닌 동메달을 향한 도전으로, 관점을 달리해 바라보고 싶은 멋진 그녀들이었다.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여자 배구대표팀 또한 준결승에서 세계 최강 미국을 만나 세트 스코어 0-3(20-25, 22-25, 22-25)으로 패했다. 미국은 현재 국제배구연맹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세계 최강자다. 이번 런던올림픽 비치발리볼에서도 자국 선수가 금-은을 겨뤘을 정도니, 배구공으로 세계를 제압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의 배구강국이다.

 


그러나 여자 배구대표팀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죽음의 조에 묶여 언론에서는 8강 진출이 희박하다고 내다봤지만 조별예선 3차전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인 브라질(세계랭킹 2위)을 3-0으로 대파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8강에서는 강호 이탈리아(세계랭킹 4위)를 3-1로 잡으며 36년 만에 올림픽 준결승에 진출했다. 중국(세계랭킹 3위)과도 풀세트 접전을 벌이는 등 기적과 반전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우리 여자대표팀은 세계랭킹 1위(미국), 2위(브라질), 3위(중국), 4위(이탈리아)와 모두 만났지만 그녀들은 세계랭킹 앞에서 위축하지 않았다. 외려 당당했고 더 강인한 모습으로 싸웠다. 이번에도 결승진출 좌절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1976년 몬트리올에서 동메달을 땄던 우리 여자배구대표팀은 36년 만에 다시 한 번 메달을 따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그 사실만으로도 박수박기에 충분한 자랑스러운 여자대표팀이다.

그리고 마지막. 손연재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메달 가시권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 소녀를 향한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것을 좋게 볼 수 없었던 네티즌들의 악플도 대단했다. 그러나 매트 위에서 손연재는 귀여운 소녀가 아니었다. 불처럼 뜨거운 예술혼이 느껴졌다. 이는 고스란히 점수로 이어졌다. 리듬체조 예선 첫날 손연재는 후프와 볼 종목에서 합계 55900점(후프 28.075점, 볼 27.825점)을 받아 전체 24명 중 4위에 올랐다.


몽펠리에 세계선수권 11위가 그간 손연재에게는 최고성적이었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10명만 오를 수 있는 결선진출을 목표로 세웠는데, 카나예바, 차카시나, 드미트리예바 등 리듬체조계의 별들 아래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이다.

곤봉과 리본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체조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결선진출이라는 위업을 작성하게 된다. 작지만 강한 소녀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을 함께 지켜본다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이상은 하루동안 우리나라 여자대표 선수들이 써내려간 이야기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그녀들이 보여준 투혼은 귀감받기에 충분했다. 그 감동이 아름다운 결실로 마무리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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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결승전. 신나는 음악에 맞춰 늠름하게 나오는 선수들을 보고 있는 그 시간은 내 편, 네 편 없이 마음 편히 즐기는 유일한 순간이다. 그런데 헉, 하고 말았다. 김현우의 오른쪽 눈이 퉁퉁 부어올랐기 때문이다. 피멍이 들었고 심하게 부어버려 오른쪽 눈은 감겨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몰랐다.

 


종목을 떠나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시야’ 아니던가. 특히나 레슬링 같은 1-1 겨루기 종목 선수의 경우 한쪽 눈이 안 보이면 거리감을 확보하기 힘들어진다. 치고 빠지면서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를 잡아야하는데 제대로 할 수 나 있을지. 김현우의 부모 마음이 돼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기는 완승이었다. 패시브를 받았을 때도 김현우는 노련하게 빠져나오며 위기를 극복했고 헝가리의 타마스 로린츠를 2-0 완벽한 스코어로 물리쳤다. 대표적인 효자종목으로 불렸지만 내가 기억하는 금메달 레슬러는 빳데루 돌풍을 일으켰던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의 심권호와 MC몽 도플갱어로 알려진 2004아테네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0㎏급 정지현이 전부다. 그런데 이렇게 또 한명, 영광의 레슬러가 추가됐다.

왼쪽 눈으로만 싸운 슈퍼맨 김현우.

 

 


외눈으로 힘겹게 싸운 승리에 감격했는지 금메달이 확정되자 김현우는 감독과 코치가 있는 벤치로 달려가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고마운 마음에 김현우가 절을 하자 코칭스태프도 맞절을 한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 기쁨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즐거웠는데, 어느새 김현우는 태극기를 들고 매트를 한바퀴 돌더라.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본 태극기 세레모니. 대한민국이 밉고 싫을 때도 많았는데. 또 이렇게 한계를 이겨낸 국가대표 선수가 태극기를 흔들 때만큼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이곳에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조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선수의 모습을 보고 있다보면 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그게 우리의 힘이겠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선수들 가까이서 마음 고생하면서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봐서 그런지, 이번 올림픽에서 나는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나 같은 마음으로 지켜본 국민을 위해서, 김현우는 매트를 한참 돌다 중앙에 곱게 놓은 채 큰 절을 올렸다.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사진기로 담는 진지한 심판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김현우는 레슬링을 “내 삶의 전부”라고 정의했다. 유도선수였던 초등학생은 레슬러로 전향한 뒤 인생이 바뀔 것을 예감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체중감량에 실패해 다음 올림픽을 기약했지만, 그때의 아픔은 스스로를 정진시키는 채찍질이 되었다. 나보다 더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없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은 지난 4년 간 쏟은 고통의 시간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팀 선수들과 이번 올림픽을 지켜보며 나눴던 이야기 중 하나가 모든 선수들이 노력하겠지만 훈련량으로 따지면 레슬링을 이길 종목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지옥훈련 속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레슬러임에도 김현우는 어쩜 그렇게 해맑게 웃을까. 감독님 말씀대로 눈웃음이 예쁜 선수였다는. 어떻게 왼쪽 눈으로만 싸웠냐는 질문에도 “정신력으로 했다”며 웃던 미소천사.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든 김현우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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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한국체조역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양학선이 목에 걸었다.

양학선이 남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1,2차 평균 16.533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체조역사상 최초의 금이다. 유옥렬(1992년 동메달), 여홍철(1996년 은메달), 양태영(2004년 동메달) 등 체조 선배들이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양1. 이름부터 뭔가 있어보이게 들린다. 양학선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공중에서 3바퀴, 1080도를 도는 유일한 기술을 처음 선보였다. 국제체조연맹은 이 기술에 양학선의 이름을 붙여 규정집에 등재시켰다. 여홍철의 ‘여2’에서 반바퀴를 더 돌아 착지하는 이 기술에 국제체조연맹은 “도마 역사상 가장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결선 1차시기에 이 기술을 선보인 양학선은 착지에서 두 걸음 나가는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기술의 난이도를 인정받아 데니스 아블랴진을 0.134로 제치고 끝내 금메달을 따냈다.

사실 양학선의 금메달을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겐 이미 여홍철과 양태영이 흘린 분루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홍철도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때 이미 자신의 이름을 딴, 당시 최난이도 기술이었던 ‘여1’과 ‘여2’로 대회에 나섰다. 그러나 착지에서 실수하며 금메달을 아쉽게 내주고 말았다.

양학선의 키는 159cm. 대한민국 여자 평균키에 미치지 못한다. 작은 체구 때문에 열등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양학선은 이를 체조에 적합한 신체로 승화시켰다. 공중에서 3바퀴를 돌 때도 양한선의 팔고 다리는 곧고 단단함을 잃지 않았다. 작은 새의 비상은 뭉클했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에 이어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또 한번 심장이 두근했던 순간은 양학선의 경기종료 후의 모습이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을텐데, 함께 출전했던 선수들은 양학선의 활약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체조계에서의 양학선의 위치가 얼마나 빛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세계 선수들도 인정한 선수라니! 올림픽이라서 더 아름답게 보인 장면이기도 했다.

 

 


태릉선수촌 훈련비를 모아 매달 부모님께 드렸던 효자 양학선. 체조협회장인 포스코건설 측에서는 대회 전부터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는 포상금 1억원을 지급한다고 하였단다. 단칸방과 비닐하우스에서 먹고 자던 지난 날 드디어 보상받는 듯하다.

양학선은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들이 많고, 가질 수 없는 것 역시 즐비한 채 살고 있다. 양학선도 그랬다. 그러나 양학선이 우리와 달랐던 것은 관점을 바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고 환경에 대한 불만도 감사와 최선으로 잠재웠다는 점이다.

 

그것은 기본을 잃고 사는 우리에게 양학선의 금메달이 알려준 귀한 가르침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인지 알려줬기에 양학선의 비상은, 그래서 눈부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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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그녀가 역기를 들 때, 남들은 힘을 넣기 위한 호령쯤으로 생각했지만 그 신음소리를 나는 늘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그 역기를 들기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한계와 싸워야했다. 그 고통을 아는 나였기에 화면 속의 그녀와 쉽게 대면할 수 없었다.

마지막 3차 시기에서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러나 장미란은 170kg을 들지 못하였고 인상 125kg, 용상 164kg, 합계 289kg으로 4위에 오르며 이번 런던올림픽을 마감했다.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고 장미란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락처가 바뀌었단다. 그런데 뒷번호가 특이했다. 혹시 런던올림픽을 의미하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2012. 장미란의 핸드폰 뒷번호. 그녀는 베이징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다시 런던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녁에 가끔 통화를 할 때 장미란은 간식 먹을 시간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곤 했다. 그런데 장미란은 그게 정말 싫다고 하였다. 배가 부른데 종목 특성상 간식도 챙겨먹어야한다고. 부른 상태에서 또 먹는 게 자신은 힘들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장미란의 식사량이다. 장미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많이 먹지 않았다. 배가 부르면 바로 수저를 놓고 식사를 끝내곤 했는데, 그때도 수저를 놓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잘 먹는 내가 부럽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후식까지 또 시켜먹었는데 그때도 그녀는 먹지 않았다. 장미란과 만날 때마다, 혹은 우리의 만남 소식을 듣고 나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늘 나의 기분을 언짢게 하곤 했다. 몇몇 남자들이 웃으며 그녀의 외모와 관련해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분리수거조차 안 되는 것들이었다. 장미란은 꿈을 위해 자신의 여성성까지 희생하면서 자신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름까지 걸고 싸웠던 자랑스런 역도 선수였다. 그렇게 희화화할 대상은 아니었는데, 철없는 몇몇 사람들이 외모를 비하하며 내게 그녀와 관련된 농담을 할 때마다 내가 당한 것처럼 분이 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장미란은 천상 여자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넓고 포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고 있던 와중에도, 그 잠깐의 외출시간을 할애해 내 생일을 축하해줬고 직접 만든 카드를 줄 정도로 배려심이 넘쳤다.

운동을 하느라 꾸미지 못하던 그녀에게 가장 큰 사치는 네일아트였다. 살이 벗겨지고 굳은살이 새로 박여 늘 상해있던 장미란의 손이었지만 가끔 시간이 날 때면 네일아트를 받으러 가는 듯했다. 예쁘게 손톱을 다듬고 투명매니큐어를 바르는 게 가장 큰 사치였다.

대용량 수분크림을 하나 사고선 그것 하나만 바르고 운동했던 장미란. 나중에 시간이 되면 꼭 같이 메이크업 받아보러 가자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강릉에 도착했다고 맛있는 카페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런 것들에겐 ‘통’이 아니었던지라 잘 모르겠다고 했던 것도 마음에 남는다. 집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나를 설레게 하던 그 아이와 있었던 이야기를 했을 때, 소녀처럼 맞장구쳐주던 모습도 잊지 못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에 가려고 했지만 회사 일정 때문에 가지 못했었다. 그래서 4년 뒤 런던올림픽 때는 꼭 가겠다고, 마지막 대회일지도 모르는 그 역사의 현장에서 나도 아버님과 같이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이 돼버렸다. 그게 참 많이 슬프다.

장미란은 크고 튼튼한 차를 타고 다녔었다. 몸이 재산인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늘 조심하며 지냈다. 그런데 운이 나쁘면 이럴 수도 있구나, 했다. 어떻게 뒤차가 들이박는 접촉사고를 당한 것인지. 그 사고나 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을 참 많이 했던 지난 새벽이었다.

 


역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놓았을 때, 장미란은 4년 전 금메달을 땄던 그때처럼 무릎을 꿇은 채 짧게 기도를 하고, 바벨을 만지며 굿바이 키스를 보냈다. 국민들을 향한 큰절도 잊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작별인사인 것 같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이 헤어짐이 영원함이 아니기에,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장미란인 것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내 소중한 벗이었고, 내 큰 영웅이었던 장미란. 그녀 마음 속 평화를 위해, 바벨 앞에서의 그녀처럼, 오늘은 내가 장미란을 위해 아주 오래 기도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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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런던올림픽이 우리에게 준 또 하나의 감동을 고르라면 올림픽축구대표팀을 꼽고 싶다. 각 클럽에서 옥석들이 모여 꾸려진 팀이다. 그러니까 흔히 하는 말로 또래에서는 ‘내가 제일 잘나간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모였다는 건데, 이상하게 이 팀은 여느 대표팀과는 다르다. 홍명보 감독님을 중심으로 선수들은 서로를 위해 희생했고 존중했다. 그러면서 팀은 어느새 팀 이상의 팀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결국엔, 축구종가 영국을 상대로, 연장에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한국축구 역사 최초로 올림픽 4강이라는 역사를 쓰게 됐다.

 

런던으로 떠나기 전, ‘기적을 만들어 오겠다’고 다짐했던 올림픽대표팀의 부주장 오재석. 팬들이 물어보고 오재석이 답한 올림픽대표팀 이야기를 공개한다.

 

 
▶지난 겨울 윤석영 선수와 함께 런던을 여행하셨죠. 다녀온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또 어떤 것들을 느끼고 배우고 다짐했는지 궁금합니다! (정의주, seethe3)
영국은 프리미어리그와 올림픽 무대가 열리는 곳이기 때문에 이 두가지를 체험 하고자 방문 했었는데요. 티비에서만 보는 EPL경기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K리그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선수들은 어떤 점이 뛰어난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고요, 개인적으로 축구인생에 단 한번 뿐인 올림픽 무대를 꼭 서서 우리 팀과 제가 꿈꾸는 목표를 이루는 상상을 하며 특별한 에너지를 느끼고자 했었는데 저의 꿈을 움직이는 엔진이 되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재석에게 윤석영이란? 김보경 선수와는 여전히 어색한 사이인가요? (abuzz1msj)
저에게 석영이는 칫솔과 치약 같은 존재입니다.^-^ 이유는 윤석영 선수에게 물으시면 알 것같아요. 보경이와는 어색한 것은 아니고요. 친해요. 서로를 배려해서 1년에 한번 정도만 통화를 하지만, 친해요. 고등학교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만들어지는 웃음포인트나 개그코드에서 유독 둘이 공감대형성이 전혀 안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저와 보경이를 포함한 신갈 고교 동창들의 장점이 (이범영, 이승렬, 박준태 등등) 서로에게 단점이나 결함을 서슴 없이 폭로하고 지적하는데도 절대 상처받지 않는 점이 좋아요. 결론은 친해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자신만의 목표와 각오! (최종인, 하하호호후후히히)
개인적인 목표는 없고요. 올림픽대표팀은 처음 시작할 때 좋은 팀으로 평가 받았으니 마지막도 좋은 팀으로 평가 받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결과도 중요하겠죠.

▶부상당한 홍정호 선수에게 힘이 되는 한마디 부탁드려요. 또 새롭게 주장 자리를 맡게 됐는데, 오재석 선수에게 주장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완장이 주는 책임감도 궁금합니다. (kej2706, 양해수, 지용강시♡)
정호는 올림픽팀에서 아주 중요한 선수였고요. 사실 최종예선을 치르면서 정호가 가지고 있던 부담감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가 도와주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부상 소식을 듣고 그때가 가장 많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앞으로 한국 축구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활약할 선수이기 때문에, 이 순간을 잘 이겨내길 바라고 올림픽대표팀에 모든 선수들이 홀정호 선수의 몫까지 꿈을 꼭 이뤄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장직에 대해서는 사실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동안 주장을 해본 적도 없어서 특별한 의미는 개인적으로 없지만 올림픽 대표팀에서 주장 역할이 주어졌을 때 생각한 것은 자철이형이나 정호가 없을때 흔들림 없이 팀을 지켜내야 한다는 게 최우선적인 생각이었고요. 그 안에서 매일 같이 새로운 선수들이 팀에 합류하고 매번 선수들이 바뀌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선수들에게 모두가 팀을 위해 희생하고 솔선수범하는 올림픽 팀의 문화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이 자릴 빌어서 올림픽 팀이 선수구성에 어려움을 겪을때마다 팀을 지켜내기 위해 희생해준 모든 선수들에게 감사하고 특히나 헌신적으로 팀을 지켜준 종우, 태환이, 석영이, 범영이에게 특별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올림픽대표팀 다큐 <공간과 압박> 잘봤습니다. 공개되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신록예찬)
저희도 굉장히 즐겁게 봤는데요. 6개월간에 이야기를 담아내기에는 방송시간이 조금 짧더라고요.^^ PD님과 촬영 담당하신 두분이 너무 고생 많이 하셨고, 더 다양하고 재밌는 일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추가로 방송이 나갈 거라는 소식이 있어서 그때 보시면 더 재밌는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선수가 보는 홍명보 감독님은 어떤 지도자이신가요? (베르)
최고에요. 긴말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감동을 주시는 감독님이세요. 한국에 홍감독님 같은 분이 많아진다면 분명히 한국축구가 더 발전될 거라고 선수들끼리 늘 얘기해요.

▶이럴 때 축구선수하길 잘했다! (zzjin_sil)
홍명보 감독님과 함께했던 광저우 아시안게임 3,4위전. 저는 뛰지도 않았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경기입니다. 축구를 왜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또 축구가 팀이 하는 스포츠라는 것. 22살에 다시 깨닫게 해줬어요.

▶축구선수로서 가장 힘들었을 때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전다솜)
철이 없어서 98년 월드컵을 보고 2002년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축구를 시작했는데요, 축구시작하고 일주일만에 그게 진짜 철이 없던 생각이 였구나라는 걸 느꼈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저희 동네에선 제가 짱이었거든요. 가장 행복했던 때는 런던 올림픽이 되었으면 해요.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끈끈하게 뭉친 올림픽대표팀 자랑을 하신다면요. (명랑씩씩)
올림픽팀에서 저는 축구뿐만 아니라 인생을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올림픽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한편의 영화 같을 것 같아요.

오재석 선수의 말처럼 올림픽대표팀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감동의 영화를 찍고 있네요. 그의 말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두손모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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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이 열린 로즈크리켓 경기장. 단체전에 이어 또다시 금사냥에 나선 기보배와 한국 코치들이 무려 3명이나 있는 멕시코대표팀의 로만 아이다가 결승전에 나섰다. 이번 올림픽부터 세트제로 룰이 바뀌었고 5세트를 마친 스코어는 5-5.

쉽게 갈 줄 알았다. 1세트에서 기보배는 3발 모두 9점을 쏘며 27점을 기록한 반면 로만은 두 번째까지 19점을 쏜 뒤 마지막 발을 6점에 쏘고 말았다. 27-25로 기보배가 1세트를 먼저 챙겼다.

그러나 결승전답게 피말리는 접전이었다. 2세트는 26-26으로 비겼고 두 번 연속 10점을 쏜 로만이 26-29로 3세트를 가져갔다. 세트 스코어는 3-3 동점이 됐다.

4세트는 3연속 10점으로 30점을 기록한 기보배가 22점에 그친 로만을 압도했지만 이어 벌어진 5세트에서는 로만이 기보배를 1점 차로 꺾으며 금메달을 위한 슛오프에 돌입했다. 단 1발로 메달의 색이 달라지는데, 어찌 보면 러시안 룰렛 같기도, 그러다보니 축구에서의 승부차기와도 비슷한 룰인 듯싶었다. 보는 이의 심장마저 쫄깃해지는 느낌이랄까.

기보배가 화살을 날리는 순간, 바람이 불었다. 그녀의 머리가 날릴 정도의 바람. 과녁 앞에서는 그보다 더 심한 강풍이 불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인지 8점을 기록했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두려움은 직면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라고. 로만 역시 8점을 쐈고 기보배의 화살이 로만보다 중앙에 5mm 더 가까웠기에 승리의 여신은 기보배의 손을 잡았다.

과녁 앞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강심장으로 만들기 위해 양궁대표팀은 산으로, 바다로, 그도 모자라 야구장으로, 군부대로, 심지어 공동묘지까지 달려가며 훈련을 했다. 구렁이를 칭칭 감은 채 소리 지르며 화살을 쐈던 기보배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렇지만 이번 개인전에서 기보배는 유독 긴장한 모습이었다. 슈팅 타이밍이 평소보다 길었다. 제한시간에 임박해서 화살을 쏘는 경우가 많았고 원하던 점수가 나오지 않을 때는 얼굴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도 보였다. 심리적 압박감을 극복하지 못한 듯했다. 슛오프에서 8점을 쏘고 로만의 차례가 됐을 때는 고개를 돌린 채 보지 않았다.

영혼까지 증발시킨다는, 그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국내 대표선발전에서는 강한 기보배였지만 유독 메이저대회에서는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난해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32강에서 패했다. 세계랭킹 1위였던 그녀의 충격적인 탈락.

그 후 1년간 화살을 쏠 때마다 패배의 아픈 트라우마가 화살처럼 머리와 가슴을 건드렸을 것이다. 대표팀 내에서도 유독 마음이 여린 기보배였다고 하니. 그 어려움의 시간을 참고 견딘 뒤에 건진 메달이기에 더욱 값져보였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반달 눈웃음만큼이나.

 


그리고 같은 날 동메달을 딴 여자 펜싱 플뢰레 대표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길옥(강원도청) 전희숙(서울시청) 오하나(성남시청) 남현희(31·성남시청) 이 네 명의 여제들은 2009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아시아선수권 단체전 우승을 기록한 검객 중의 검객이다.
그 중에서도 남현희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대중이 기억하는 남현희는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그때의 남현희일 것이다. 올림픽 은메달의 스포트라이트가 워낙에 커서였지만 2006도하아시안게임에서 남현희는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땄고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개인과 단체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며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아시아선수권에서도 3년 연속 2관왕에 오른 명실 공히 아시아의 최강자였지만 세계무대에서는 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는 종료 4초 전 역전 유효타를 허용해 은메달에 머물렀고 이번 대회에서도 개인전 준결승과 3-4위전에서 연달아 막판 역전을 허용하는 바람에 노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단체전에서도 동메달을 딴 후에서야 남현희는 개인전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 죽을 지경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남현희에게는 마지막일 수도 있는 국제대회였다. 2006년 성형파동으로 대표팀에서도 쫓겨나며 자격정지 2년이라는 중징계도 받았지만 2008년 올림픽에서 보란 듯이 은메달을 따냈던, 그래서 더 기특했던 그녀.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 여자운동선수들에게 그럴 시간에 운동이나 더 하라며,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지도자나 팬들을 보는 경우가 그동안 많았다. 그 편견을 남현희가 깨준 것 같아 더 큰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155cm 밖에 되지 않은 키로 머리 하나 큰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기죽지 않은 플레이를 선보였던 남현희. 치고 빠지는 남현희 특유의 현란한 스텝을 이제는 볼 수 없을지 몰라도 대한민국 펜싱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한국 펜싱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 2개의 메달을 딴 땅콩검객 남현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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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유도 90kg이 끝나고 대한체육회에 올라온 글이다. 대한체육회도 송대남의 금메달을 예상하지 못했나보다. 사진이 없어 급하게 싸이월드에서 퍼온 사진으로 축하 포스팅을 작성했다. 이럴 때 사람들이 웃프다, 라는 말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메달 세레모니 때 찍은 사진. 사진을 보니 그제야 송대남의 나이와 연륜이 느껴진다. 보통의 국가대표 선수들과 다르게 웃으니 얼굴에 주름이 한가득이다. 바로 전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19살 김장미를 보다 송대남으로 시선을 돌려서인가. 프로필을 살펴보니 1979년생이다. 우리나이로 34살. 축구계에서는 노장으로 취급받는 나이인데, 유도계에서는 환갑으로 여겨지는 나이란다. 세계랭팅 17위의 ‘할아버지’ 선수의 금메달 획득은 대한체육회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진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체육회를 마음 놓고 탓할 수만은 없겠다.

 

 

 


연장전에서 11초 만에 기습적인 안뒤축 감아치기를 성공시키며 경기를 끝냈다. 둘째손가락으로 관중석도 가리키더니 엄지로 KOR가 박혀있는 자신의 백넘버를 우리에게 보여주던 송대남. 매트에 인사를 하고 멋지게 내려왔는데, 동서지간인 ^^정훈 감독을 만나고 나서부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메달 세레모니 중에도 그는 울먹울먹했다. 활짝 웃다가 명치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울음을 꾹꾹 눌러 참는 모습이 보였다. 관중석을 한 바퀴 돌며 인사할 때도 같은 모습이 반복됐다. 현장에서 중계하던 김정일 아나운서는 결국 그런 송대남의 모습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물론 나 역시 그랬다.  

송대남은 34살에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동안은 인연이 없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권영우,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김재범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는 한참 어렸던 후배 김재범에게 올림픽 티켓을 내줬다. 당시 김재범은 이원희를 제압한 왕기춘을 피해 체급을 81kg로 올렸고 같은 체급이었던 송대남에게 도미노처럼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그때 송대남의 나이가 서른이었고 10살 가까이 차이나는 어린 후배의 베이징올림픽 은메달 소식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은퇴를 생각했다.

 


그런 송대남에게 자신의 처제를 시켜주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준 사람이 유도대표팀 정훈감독이다. 그 뒤 81kg급에서 다시 정상을 달리게 됐지만 2010년 11월 무릎 수술로 매트 위를 떠나있어야했다. 끊어진 십자인대를 잇는 수술인데, 보통 축구선수들이 받는 수술과 비슷한 듯하다. 경기 중 손상된 인대를 재건하는 수술의 경우 재활까지 4-5개월이 걸린다. 강원FC의 배효성의 경우 인대만 부분적으로 파열됐는데 복귀까지 3달이 걸렸다. 수술을 하고나면 재활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데 송대남은 1달만에 재활훈련을 끝냈다고 한다. 배효성도 근육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어 회복이 빨랐는데 송대남도 비슷했다. 남다르게 발달한 근육세포 덕이라고 하나 여기에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첨가됐기에 복귀가 빨랐던 것 같다. 송대남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듬해인 2011년 3월 송대남은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90kg으로 체급을 변경하기로 한 것이다. 체급변경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최민호도 66kg으로 체급을 올렸다가 밀리며 이번 런던올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90kg으로 체급을 올리자 기존에 쉽게 사용했던 기술들이 근력과 파워에 밀리며 먹혀들지 않았다. 적응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만 올림픽까지는 딱 1년 남았고 국가대표선발전까지는 이보다 더 적은 시간이 주어졌다. 상상을 넘어선 훈련량 말고는 달리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34살 송대남은 유도 90kg급에 출전한 선수들 가운데 37세 영국의 윈스턴 고든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나이 뿐 아니다. 유도국가대표팀에는 용인대-마사회라는 성골출신 선수들이 즐비하다. 유도계에서는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청주대를 나와 시청 소속 선수로서 그 끈끈한 카르텔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주변에서 넌 안 될 거야, 라고 말하면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혹은 정말로 이루지 못할 것 같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부딪히고 도전하던 내 자신의 모습은 과거라는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고 만다. 슬픈 일이다.

태릉선수촌에서 띠동갑에 가까운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송대남은 나이 많고 체력 떨어진 34살 노장 선수가 무엇을 이룰 수 있겠냐는 주변의 안타까운 시선과 만났을 것이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이 사회에, 송대남의 금메달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 우리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한다. 그래야 송대남처럼 편견 속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고, 그처럼 꿈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오빠’ 송대남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 

 

김병지 선수도 송대남 선수를 이렇게 멋지게 축하해주셨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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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김재범이 유도 81kg 이하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효자종목으로 불리던 유도에서 따낸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4년 전 자신을 누르고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오른 독일의 비쇼프와의 한판대결에서 따낸 금메달이었기에 그 감격은 남달랐다.

4년 전 비쇼프의 안다리 걸기 기술에 유효를 내준 뒤 일방적으로 밀렸던 김재범이었지만 4년 후는 달랐다. 안다기 걸기로 선제점을 따내며 우위에 올랐고 2분 여 뒤에는 엎어치기 공격에 성공했다. 비쇼프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표정을 한 채 경기 내내 끌려 다녔다. 효과적인 공격과 안정적 전술이 빛나던 완벽한 경기였다.

 

 


금메달이 확정되고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데, 김재범의 마음이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같은 상대와 만나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4년 전 과거의 ‘나’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4년 간 단내 나는 훈련과 고통을 참았던 지금의 ‘나’가 오버랩되는 바람에 좀처럼 눈물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도복을 가다듬고 승부를 겨뤘던 두 선수가 인사를 나누는데, 김재범이 격정의 눈물을 터뜨리며 좀처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비쇼프에게 그만 안기고 말았다. 81kg급의 새 영웅도래를 인정한 것인가. 비쇼프는 그런 김재범을 수초간 다독거려주며 축하해주고 있었다.

 

 
유도는 예로 시작해 예로 끝나는 스포츠다. 예의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는데,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주던 비쇼프에게선 스포츠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시상대에 오르기 전 멋진 대결을 펼친 비쇼프를 향해 김재범이 손을 내밀었다. 사나이답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축하해주는 비쇼프의 모습 또한 선명하게 각인됐다. 어디 그 뿐이던가.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관중에게 인사를 할 때도 비쇼프는 금메달인 김재범에게 먼저 나가라며 손짓했고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도 가운데로 에스코트하며 금메달리스트 김재범을 우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키 커 보이려고 까치발한 건 정말 웃음이... ^^

 


메달의 색깔이 바뀌는 숨 막히는 순간 앞에서 규칙과 존중은 실종되기 쉽다. 선수들에게 올림픽의 기본정신을 강조하지만 경기 종료 후 자신의 패배가 확정됐을 때에도 스포츠맨쉽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믿고 싶지 않은 패배 앞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음을 알기에 비쇼프의 여유와 진심어린 축하는 유난히 더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마지막. 김재범이 보여준 투혼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금메달 확정 후 플래시인터뷰에서 김재범은 “4년 전에는 죽기 살기로 했다. 그러니 졌다. 지금은 죽기로 했다. 그래서 이겼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매트 위에서 죽을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의 몸 상태를 살펴보니 그럴 만 했다. 왼쪽 팔꿈치 인대는 늘어났고 왼쪽 손가락 인대는 1달 전에 끊어졌다. 움직일 때마다 덜렁거린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고장 난 왼쪽 무릎과 고질적인 왼쪽 어깨탈골이 김재범을 괴롭혔다. 결국 성한 곳 하나 없는 왼쪽을 포기한 채 오른쪽으로만 공격하며 버티며 결승까지 올랐던 것이다.


올 초 김재범은 방송사와의 인터뷰 도중 올림픽이 끝나면 쉴 날이 많기 때문에 내 몸이 참고 버텨줬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털어 논 적이 있다. 습관성 어깨 탈골은 수술 밖에 방법이 없다. 재활을 통해 치료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예기치 않은 충격으로 인해 다시 탈골되고 손으로 뼈를 맞추는 일을 반복한다. 축구선수들 중에도 수비와 태클을 반복하다 어깨를 다치고 습관성이 되는 선수들도 종종 있는데 결국엔 다들 수술대에 올라간다. 운동을 하는 동안 탈골을 막는 방법은 수술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끝난 후 수술대 위에 올라가서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올림픽 때까지만 버텨줬으면 좋겠다”던 김재범은 결승전 당일에는 “팔이 부러져도 좋으니 오늘까지만 버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 절박함이 지금의 김재범을 괴물로 만든 것일까. 김재범은 이번 런던올림픽 금메달로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작성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한계를 극복한 괴물 김재범의 이야기와 깨끗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비쇼프의 모습은, 연일 오심으로 우리 마음을 멍들게 했던 올림픽이 그래도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방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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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8년 대한민국 수영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메달을 안겨줬던 소년, 박태환. 수영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선수가, 아시아인이 아닌 전세계인과 경쟁을 치러야했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사실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박태환의 금메달 소식은 그저 반가운 스포츠 뉴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기본적으로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하나의 감동스토리로 연결되곤 하는데, 단지 금메달을 땄다는 이유만으로 박태환 스토리에 갑자기 감동을 받을 순 없었다. 사실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만큼의 땀을 흘리지 않던가.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기에 박태환 관련 뉴스는 내게 그저 배경지식을 보태는데 도움을 주는 일에 불과했다.

4년 뒤에 런던올림픽에서 다시 만난 박태환. 여전히 ‘마린보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아직도 청년보다는 소년이라는 단어를 써야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박태환은 분명 진화했다. 부정출발이라는 오심으로 400m 예선탈락이라는 충격적 사건이 터진 직후에야 깨달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을테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던 그 순간에도, 박태환은 미소를 잃지 않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쉽지 않았을 일이다. 결국 은메달을 따고 믹스트존에서 인터뷰를 하며 지옥에서 천국으로 간 시간을 복기할 때, 그제야 박태환은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을 내보였다. 그러나 그는 혼자 숙소 방에 앉아 오심이 번복되길 기다리며 괴로움과 싸워야했음에도 시합이 끝나기 전까지는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그 감정의 절제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어느새 박태환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경지에 올라와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자유형 200m에서 박태환은 또다시 은메달을 땄다. 400m 결승을 마치고 인터뷰 내일 하면 안 되냐며 눈물을 보였던 박태환이, 이번엔 진행요원들의 제지가 있을 때까지 기자들과 믹스트존에서 인터뷰를 했단다.

“아넬은 왜 그렇게 빨라요? 마지막 5m는 정말 못 가겠더라고요. 근데 저보다 신체가 크잖아요.”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싱글벙글 박태환의 모습이 그러졌다. 이럴 땐 또 소년 같은데 또 어른스럽게 은메달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아넬은 물론 쑨양과 같이 200m에서 레이스 같이 했다는 게 의미가 있어요. 색깔은 금이 아니지만 올림픽 은메달이 아니라 메달을 또 하나 걸 수 있다는 거 역시 큰 의미에요. 런던이라는 무대가 큰 의미가 있었어요. 금도 따고 싶었지만 전 그래도 은색이 더 멋있는 것 같아요.”

결승에서 쑨양과의 만남을 라이벌 구도로 보는 언론 앞에서 박태환은 “아시아선수 2명이 자유형 200m에서 함께 은메달을 딴 것은 큰 의미”라며 아시아수영의 발전으로 의미를 확대시켰다.

박태환은 진화했다. 이제는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박태환에게서 나는 레전드의 향기를 느낀다.

박태환은 이제 명실공히 한국 수영계의 살아있는 영웅이다. 그가 가르는 물살 위에서 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고 있다. 박태환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3관왕(자유형 200m, 400m, 1500m)과 대회 MVP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으며 이듬해에는 한국 수영 역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자유형 400m)이라는 위업을 작성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동양인 최초로 400m 금메달을 땄으며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3관왕에 오르며 아시안게임 2연속 3관왕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올렸다. 박태환은 이듬해인 201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다시 한 번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는 우리나라 남자선수들 가운데 최초로 2연속 2개 메달 획득이라는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

 


유난히 승부사기질이 강한 박태환이기에 금메달을 따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에너지까지 다 쏟아낸 박태환이기에 “후회는 없다”며 웃었다. 그 웃음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은메달이 더 예쁜 것 같다”는 박태환의 그 진심이 나는 더 예쁘다. 금만이 빛나는 존재이고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우리에게 색깔과 상관없이 모든 메달은 값지고 고귀하다는 것을 박태환은 말과 행동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박태환이라 쓰고 레전드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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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실격 후 가진 플래시 인터뷰. 실격처리가 어떻게 된 건지 아는가? 본인의 레이스에 문제가 있었냐고 생각하나? 결과를 기다려봐야지 알 수 있을까? 페이스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경기 후 중계사와 갖는 인터뷰이기 때문에 플래시 인터뷰는 실격과 상관없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어디서 부정출발을 했는지도 모르는, 요즘 말로 ‘멘붕’ 같은 상황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런데도 박태환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덤덤하게, 그리고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경기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을 때,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관계자에게 인터뷰를 하지 않게해달라고 부탁하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애써 기자들을 외면하고 가는 선수도 있다. 혹 인터뷰를 하게 되더라도 표정관리가 되지 않아 정신적으로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얼굴과 화법에서 드러내는 선수도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앞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려던 박태환을 보며 처음에는 놀랐고 이후에는 마음 아팠다.

“(실격 후) 계속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에 경기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 답답했다. 마냥 기다리는 상황이라 답답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에도 박태환은 예선에서 부정출발로 실격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때 중학생이던 박태환은 화장실에서 2시간 동안 혼자 울며 앉아있었다고. 꿈이 조각나는 것만큼 좌절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평행이론이 생각나는 상황이었다. 박태환은 숙소에서 기다리던 그 4시간이 참 길었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닥으로 떨어진 듯 한 그 순간, 기적처럼 결승행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박태환의 레이스를 보기 위해 지난 새벽을 지새웠다.

초반부터 박태환은 거세게 나갔다. 실격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작전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기세를 잡아 1위로 달리던 박태환은 350m 지점부터 역전을 당하며 3분40초14를 기록한 쑨양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말았다.

3분42초06. 2위. 만약 실격파동이 있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결과. 그럼에도 박태환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으며 플래시 인터뷰에 응했다. 시상대에 오르기 전 얼굴에서 아쉬움이 읽혀지지도 했으나 다시 웃으며 시상대에 올랐다.

“최선을 다해 후회는 없다. 나에게는 은메달도 값지다”던 박태환은 “내 자신을 이겨내고 쫓아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내 실력이 부족해 졌다. 그래도 아시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서 좋다”며 라이벌 쑨양에게 축하인사를 전했다.

여전히 청춘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고초와 만났던 박태환이다. 이를 극복하며 운동하면서 길러진 또 다른 것이 혜안이 아니었나 싶다. 그의 인터뷰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

“2009년 바닥으로 내려갔다 힘들게 다시 올라왔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모든 걸 하루 만에 다 한 것 같다. 롤러코스터라도 탄 것처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최초로 메달 2개를 목에 걸었던 박태환은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출전했던 자유형 200m, 400m, 1500m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그리고 2년 뒤 2010 팬퍼시픽 수영 선수권 대회에 자유형 400m와 200m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며 다시 재기에 성공했었다. 2년 간 고초와 극복을 반복하느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이번엔 하루 만에 극에서 극으로 달렸으니 마인드 컨트롤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울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라며 그냥 답답했다고 말했던 박태환. 마지막에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내일 인터뷰 하면 안 되겠냐며 자리를 떴지만 400m 레이스가 펼쳐졌던 7월 28일, 박태환이 보여준 모습은 한국 수영계의 ‘레전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실격 후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감정 노출을 자제했던 모습과 아시아 선수의 금메달 획득을 축하한다고 말하며 보여준 마음 씀씀이, 그리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응해준 태도에서 프로다움의 가치와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박태환이 보여준, 가장 빛나던 레이스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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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전 또 무실점 수비로 웃는다.
최근 포항 스틸러스만 만나면 기분 좋은 결과물을 냈던 강원 FC다. 이번에도 포항을 상대로 웃음을 되찾고자 한다. 강원은 13일 오후 7시 강릉종합경기장에서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 21라운드 포항과의 홈경기를 갖는다. 강원은 올 시즌 K리그 2/3를 마친 가운데 1승 3무 16패로 순위표 맨 아래에 머물러 있다. K리그 7경기 연속 패했다. 그러나 아직 시즌을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10경기나 남아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굳은 의지로 아름다운 갈무리를 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포항을 만나게 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2위 포항을 얕잡아 보는 건 아니다. 강원이 유독 포항과 겨룰 때마다 힘을 냈기 때문이다. 강원은 포항과의 역대 전적에서는 1승 1무 3패 3득점 7실점으로 뒤져있다. 그러나 최근 2차례 맞대결에서는 1승 1무로 앞서 있다.

지난해 11월 7일 K리그 마지막 라운드 홈경기에서 서동현과 안성남의 연속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리고 지난 4월 30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K리그 원정경기에서는 골키퍼 유현의 신들린 선방 속에 0-0 무승부를 거뒀다.

최근 맞대결에서 주목할 건 무패 행진이 아닌 무실점 행진이다. 포항은 K리그에서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이다. 올 시즌에도 39득점(경기당 평균 1.95득점)으로 전북 현대(44득점)에 이어 최다 득점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모따, 아사모아, 황진성, 노병준, 조찬호, 김재성 등 포항의 공격진은 화려할 뿐 아니라 실속도 있다. 무득점 경기는 2번 밖에 없으며 3득점 이상 경기도 5차례나 됐다. 그런 포항의 공격력을 무력화시켰던 강원 수비진이다.

강원은 올 시즌 포항과의 첫 맞대결에서 비기면서 시즌 첫 승점을 땄다. 연패 행진도 마감했다. 당시 연패가 7경기였는데 재밌게도 강원의 현 주소와 딱 맞아 떨어진다. 반면 포항은 K리그 7경기 연속 득점 행진을 마감하며 시즌 첫 무득점 경기로 마쳤다.

강원이 포항을 상대로 승점을 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수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전, 후반 시작 후 초반 10분 동안 집중력을 갖고 무실점 수비를 펼쳐야 한다. 강원은 최근 이른 시간에 실점하는 경향이 짙었다. 상대 선수들이 잘 한 것도 있으나 그 이전에 강원 선수들의 작은 실수가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면서 효율적인 역습 패턴으로 포항 수비를 흔들어야 한다. 포항은 23실점으로 경기당 평균 실점이 1골을 넘는다. 최근 K리그 7경기에서 12골이나 허용했으며 무실점 경기는 1번 뿐이었다.

강원은 정경호가 부상에서 회복돼 돌아와 전술 및 선수 운용의 폭이 넓어졌다. 징계가 풀린 김진용도 돌아오면서 김영후, 서동현, 윤준하, 이정운 등과 함께 날카로운 공격을 펼칠 수 있게 됐다. 권순형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도 강원의 주요한 득점 경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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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스페인과의 16강전을 앞두고 강원FC 골키퍼 양한빈은 트위터에다 무적함대, 라는 짧은 멘션을 남겼다. 스페인대표팀의 고유명사가 어느새 무적함대가 되어버렸다지만 맞수에게 무적이라는 단어를 붙이다니. 이 어린 선수들에게도 스페인이라는 이름은 쉽게 넘볼 수 없는 무거운 이름이 된 것만 같아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오늘, 한국시간으로 오전 7시에 2011 U-20월드컵 16강전이 열렸다. 사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콜롬비아전에서 선수들이 보여줬던 모습은 다소 기대 이하였다. 2차전이었던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0-3으로 패했지만 아트사커를 상대로 미드필드에서 차분하게 패스를 주고 받고 매섭게 골문을 노리던 모습이 강했던 탓일까. 조별리그 통과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나 언론과 팬들의 반응은 한편으론 매서웠고 또 다른 한편으론 차가웠다. 찜찜한 16강 진출이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쓴소리에는 약한 어린 선수들이었다. 열심히 한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도 보였다. 열심히 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서운하다는 선수들도 있었고 서럽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김경중은 트위터에다 다음과 같이 썼다. “받아드리고 받아드리자. 희망의 끈을 놓지말자”라고.

어쨌거나 가장 마지막 경기였던 콜롬비아전의 각인이 컸기에 큰 기대 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은 이가 많았을 거라 짐작된다.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던 스페인이었으니까. 조별리그 3전전승 11득점 2실점 기록. 창도 강했고 방패도 단단했던 그들. 이번 대표팀의 대다수는 대학선수들이었고 K리그 선수들 가운데에서도 프로경기 출장 경험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무대에서 놀아본 선수들은 전무했다.

멘탈에서부터 지고 들어가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시작된 경기. 그동안 측면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백성동이 섀도 스트라이커로 임명받았고 좌우 측면에는 윤일록 문상윤이 배치됐다. 스페인의 공격력을 봉쇄하기 위해 최성근와 김영욱이 수비형미드필더로 나섰다.

스페인의 날카로운 공격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상황도 많았다. 특히나 연장전에서 큰 실점위기가 찾아왔는데 장현수의 육탄방어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후반 10분 바스케스의 프리킥이 크로스바 오른쪽 상단을 강타했을 때도 그랬다.

그렇지만 어린 태극전사들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고 포기 대신 살기를 새긴 채 뛰었다. 지난 경기에서 노출됐던 단점들을 보완하고 조직력을 다시 잘 쌓았구나, 하는 대견스러움이 지배했던 경기였다.

그리고 승부차기. 스페인의 3번 키커코케의 슛이 크로스바를 넘어가 2002월드컵의 재현되나 싶었는데 다음 차례였던 이기제의 슈팅이 그만 골키퍼에 걸리고 말았다. 이후 8번째 키커까지 돌아가는 동안 PK를 실축한 선수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긴장을 뛰어넘은 놀라운 집중력에 감탄했던 순간, 8번 키커로 김경중이 나타났다.



양발을 몇 번 구른 뒤 힘차게 슈팅했으나 킥에 너무 힘을 쏟은 나머지 크로스바를 넘어가고 말았다. 120분을 넘기던 긴 혈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지난 대회 홍명보호가 쏘아올린 8강의 기적도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그때 잠시 뿐이었다.

얼굴을 감싸쥔 채 주저앉던 김경중. 그러나 김경중의 모습은 중계 카메라를 통해서 볼 수 없었다. 주저앉음과 동시에 벤치에서 어깨에 어깨걸고 간절하게 응원하던 선수들까지 김경중을 향해 달려갔으니까. 원을 만들고선 김경중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 다 괜찮다, 하는 어린 선수들의 모습이란.


대회를 마치며 이광종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번 대회 동안 그라운드 밖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열심히 뛰어주었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제의 관계를 뛰어넘은, 존경과 격려의 메시지가 담긴 이 감독의 멘트에선 이번 대회에 임하던 선수들의 각오과 자세가 느껴졌다.

언제까지 투혼이라는 단어를 써야겠냐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최선을 다한 그들의 얼굴에선 그 단어 말고는 딱히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후회는 없었겠지. 김경중을 둘러싼 선수들의 표정과 손짓에서 열심히 뛰어준 동료를 향한 고마운 마음이 위로보다 더 크게 느껴졌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백성동은 말했다. “PK를 실축했던 경중이는 이번 대회에서 우리팀 첫 골을 넣은 선수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배우는 것이라고 함께 말했다”라고.

김경중이 썼던 트위터 멘션도 떠오른다. “ALL FOR ONE, ONE FOR ALL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얘들아 오늘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경기를 하고 나오자!!.”

그렇다. 그들은 팀이었다. 슈퍼스타 한두명이 나서 리드하는 팀이 아니라 선수들 하나 하나가 모여 그보다 더 큰 하나를 만든 팀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했다. 축구란 그렇게 팀이 하나 되어 뛰는 스포츠라는 중요한 진리를, 그렇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 작은 별들이 언젠가는 나라를 대표해 세계선수들과 그라운드를 누빌 더 큰 별로 성장하겠지. 오늘의 경기는 그 과정 속에서 아주 작은 경기일 수도 있겠지만 성장을 위한 귀한 자양분이 될 그런 경기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마웠던, 작지만 강했던 22명 선수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양한빈(강원) 노동건(고려대) 김진영(건국대) 장현수(연세대) 임창우(울산) 김진수(경희대) 황도연(전남) 민상기(수원) 이주영(성균관대) 김경중(고려대) 남승우(연세대) 문상윤(아주대) 이기제(동국대) 백성동(연세대) 최성근(고려대) 김영욱(전남) 이민수(한남대) 윤일록(경남) 이용재(낭트) 이종호(전남) 정승용(경남)

이젠 한국축구의 희망이 될 그 이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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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부산아이파크와의 홈경기가 열린 지난 6월 11일 강릉종합경기장. 종료 5분 전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외쳤다. “이겼다! 이겼다!” 관중석에 앉아있던 2군 선수들은 ‘형’들이 보여준 투혼과 선전에 박수 보내며 눈시울을 붉혔다. 1군 선수들은 그런 ‘아우’들을 안아주며 “R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너희가 보내준 긍정적 에너지에 힘을 얻은 건 우리”라고 말했다.



이날 풀타임으로 활약했던 우측면 수비수 이상돈은 “아리랑을 부르고 ‘이겼다’를 외치다 얼싸안고 눈물 흘리는 팬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며 “끝까지 응원해준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함께 뛰었던 다른 선수들 역시 “같은 마음”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경기 종료 후 가진 공식기자회견에서 강원FC 김상호 감독은 “끝까지 성원해준 강원도민과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뛴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날의 경기는 강원FC에게 꽤나 특별했다. 14경기 연속 무승(4무 10패) 기록과 창단 이후 계속 됐던 부산전 무승(3무 2패) 징크스를 동시에 깬 감격스런 날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12경기 연속 무패(8승 4무)를 달리고 있던 부산은 가도행진을 멈춰야만 했던 뼈아픈 날이었다.

약속의 땅, 태백
사실 부산전을 앞두고 승리를 향한 선수단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강원FC 1군 선수단은 지난 6월 1일 평창에서 진행된 프로축구연맹 워크샵을 마친 후, 태백으로 이동하여 6월 7일까지 담금질을 가졌다.

태백은 한여름에도 평균기온이 20도 안팎을 유지할 뿐 아니라 고산지대라는 특성 상 체력을 다지는데도 안성맞춤인 지역. 강원FC와의 인연도 특별하다. 강원FC는 창단 첫해였던 2009년 태백에서 여름 전지훈련을 가진 뒤 3연승을 기록하며 부진에서 탈출했다. 태백은 강원에게, 한마디로 약속의 땅인 셈이다.

이곳에서 김상호 감독이 선수단에 주문한 것은 ‘체력 다지기’와 ‘자신감 회복’. 김 감독은 이번 A매치 휴식기 동안 피지컬 코치와 함께 선수들이 짧은 시간 동안 효과적으로 체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힘썼다.

또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정신력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개인별 면담을 통해 선수들이 패배로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찾는데 중점을 두는 등 태백전지훈련에서 알찬 시간을 보냈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고
사실 승리를 위한 노력은 예서 다가 아니었다. 김상호 감독은 초반 승수달성에 실패하자 선수단 내 개혁을 실시했다. 패배의식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자극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오늘의 1군 선수가 내일의 2군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서동현이 2군으로 내려갔고 R리그에서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던 이민규, 김은후, 정성민 등이 새롭게 1군에서 기회를 잡았다. 적당한 긴장감은 선수들의 마음 아래 잠들어있던 집중력과 능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1,2군간의 무한경쟁을 통해 승리를 향한 최적의 조합을 만들겠다는 김상호 감독의 복안은 성공적이었다.

한편, 서동현이 2군으로 내려가면서 이을용이 강원FC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2009년 초대주장이었던 이을용은 다시 한번 완장을 차게 됐다. 그는 “뛰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쓰러지면 안된다”고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필요한 것이 바로 백전노장의 지혜. 확실히 사전수전 다 겪은 ‘큰 형님’의 날이 선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선수들은 자발적으로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합숙에 들어갔고 포지션별로 모여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토론했다.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들도 선수들과 정기적으로 미팅을 가지며 ‘소통’에 힘쓰는 모습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선수단을 확실하게 하나로 모으는 응집력이 되어주었다.

이와 동시에 구단에서는 축구전문가들의 강연을 마련하는 등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동료를 믿고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부진탈출에 가장 필요한 것인 책망, 힐책이 아닌 우리가 함께 힘을 합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팬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이렇듯 강원FC는 어려운 시간을 걸어야만 했지만 그 와중에도 팬들이 보내준 성원은 한결 같았다. 창단 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강원FC를 응원하는 우추리 마을에서는 지난 4월 27일 선수들의 체력보강을 위해 특별보양식 ‘유황오리 백숙’을 준비하는 등 따뜻한 선수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다.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 또한 N석(홈)과 S석(원정)을 지키며 팀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승리였다. 이기려는 마음은 점점 강해졌고 결국엔 아름다운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김상호 감독은 “강원FC의 목표는 1승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남은 구단들을 상대로 1번씩 이기고 싶다. 당장 앞에 놓인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길게 멀리 보며 뛰어야할 것”이라고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기 보다는 더 좋은 성과를 만들기 위해 강원FC는 다시금 고삐를 바짝 죄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함께 하기에 남은 시즌 원하는 목표를 이뤄낼 강원FC의 모습을 상상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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