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헬레나의 꿈의 구장/강원도의 힘, 강원FC

등산으로 힐링하는 특별한 팀 강원FC



강원도의 대표적인 이미지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으뜸한 청정한 자연환경이 아닐까 싶다. 눈을 감고 강원도를 그려보면 높고 푸른 산과 바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매년 사람들은 ‘여름휴가는 강원도로!’를 외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중에서도 강릉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산과 바다와 호수가 동시에 있는 곳이다. 경포호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조금 더 걸어 나가면 펼쳐진 동해의 웅장함이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고, 강릉 외곽으로 가게 되면 시원한 소금강계곡이 있는 오대산이 기다리고 있다. 또 강릉 톨게이트를 지나 30분 정도 차를 몰고 달리면 강릉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대관령이 대기중이다.

그래서일까. 강원FC 선수단 훈련에는 지역색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이보다 더 강원스러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해 7월 김학범 감독이 새로 강원FC 지휘봉을 맡은 이후 선수단은 자주 산에 오른다. 선수들은 김학범 감독이 부임한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처음 등산에 나섰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릉시 연곡면에 위치한 오대산이었다. 한데 문제는 노인봉까지 가는 여러 길 중 가장 난코스를 택했다는 것. 그 때문이었는지 노인봉에 오르고 난 선수들의 얼굴은 한결 같이 10년 쯤은 나이 들어 보였다. 후에 선수들은 그래서 이곳을 노인봉이라고 부르나보다, 라며 웃었다고.

가을에 접어들자 선수단은 대관령으로 발길을 옮겼다. 낙엽이 예쁘게 지고 있던 10월의 마지막 날 그들은 대관령을 함께 찾았다. 마침 강릉시에서 주최하는 대관령 옛길 걷기대회 행사가 열릴 때였고 선수들에게는 꽤나 낭만적인 시간이었다. 그러나 늦가을에 다시 찾았을 때 상황은 달라져있었다. 빠르게 흐르는 대관령의 시계는 이미 겨울을 가리키고 있었고, 칼바람 속에 눈까지 내리기 시작해서 선수들은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고 한다.

해가 바뀌고 2013시즌 소집 첫날에도 강원FC는 훈련 대신 등산을 택했다. 선수들은 태백산 천제단에서 K리그 클래식에서의 선전을 외쳤다. 그리고 시작된 동계훈련. 더 이상의 산행을 없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역시 김학범 감독과 산은 뗄 수 없는 관계인가보다. 하기야. 지금도 성남시절 제자들은 “산을 사랑하던 학범슨”이라고 회상하지 않던가.

김학범 감독은 순천에서 진행된 2차 국내동계훈련 기간 중에도 선수들을 이끌고 산에 올랐다.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순천에 내려가는 짐을 싸면서 신인선수 박문호는 등산화를 챙겼다고 한다. 축구선수만 가질 수 있는 동물적 감각이랄까. 본능적으로 순천에서의 등산을 상상했다고 하니. 참 대단한 신인이 아닐 수 없겠다. 다른 선수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순천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구글앱으로 순천지도를 보며 그들은 또 한 번의 등산을 예상했다고. 지도 속 순천은 조계산과 지리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순천 전지훈련 종료 4일 전에 선수들은 지리산에 올랐다. 노고단까지 가는 길은 지리산 등산 중 가장 쉬운 코스라고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축구선수들에게 등산은 쉽지 않다. 산을 정복하려고 하다보면 외려 정복당하기 쉬운 법인데, 선수들은 정상에 빨리 올라가려고 서두르다보니 힘에 부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축구할 때 쓰는 근육과 다른 근육을 써야하니 여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등산 시간이 일반인보다 빠를 뿐 아니라 낙오자 또한 없는 건 아무래도 뛰어난 폐활량과 남다른 인내심 덕분이 아닐까.

 

 

노고단은 일명 길상봉으로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 중 하나다. 신라시대에는 화랑도의 심신수련장이었는데, 이곳에서 화랑들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를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제를 올렸다고 한다. 늙을로(老), 시어미고(姑), 늙은 할머니를 위한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란 뜻의 노고단(老姑壇). 그 이름에서 우리는 이곳이 민족신앙의 성지였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조상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곳에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팀과 자신의 안녕을 기원하는 시간만큼은 참으로 거룩하다. 자연과 역사가 주는 그 위대함과 깊이 앞에서 종교는 잠시 뒤로 하고서 말이다. 물론 하산 후 선수들은 노고단까지 오르느라 노고가 많았다며, 다시는 등산하고 싶지 않은 산이라며 울분을 토했지만.

지난 6개월 간 김학범 감독은 선수들이 지칠 때쯤이면 훈련 대신 산행을 택했다. 왜 오르냐고 굳이 묻지 않아도, 또 대답을 듣지 않아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산에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다시 훈련에 집중하자는 김 감독의 숨은 마음 말이다.

강원FC 선수들은 강도 높은 훈련으로 지친 마음을 산에서 치유했다. 정상에서 도착해선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새해 첫날 다짐했던, 그러나 이내 잠들어버린 그 처음의 마음을 다시 흔들어 깨웠다. 이보다 강원FC스러운게 또 있을까. 강원FC가 대표적인 산악지대인 강원도에 적을 두고 있는 팀이기에 등산을 통한 힐링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