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를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요한다. 일요일 밤 11시에 모든 기사를 털었지만 아직까지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10일 내내 모든 사람들이 가이드북 작업에 달려들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에 과부하가 걸린 듯하다. 더구나 이번 마감에도 디자이너는 홀로 모든 걸 다 맡아서 해야 했다. 벌써 2달 째 혼자서 모든 디자인을 책임진거다. 게다가 이번엔 가이드북까지 맡아서 해야 했으니 체력이 바닥날 법도 하다.


기자들 역시 가이드북 작업에 매달리느라 기사 마감이 다들 늦었다. 그로 인해 디자인 작업도 늦게 끝났고. 그래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던 새벽 1시 반 기사 수정도 끝났고 해서 모든게 끝난 줄로만 알았다. 하여 룰루랄라 노래 부르며 드디어 마감이 끝났다고 포스팅까지 했건만... 아아, 마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들 고생하는데 혼자만 잘 수 없어 힘들게 버텼다. 자면 안돼, 자면 안돼, 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그런데 이번 달 마감을 치르며 느낀 소감을 A4 용지 2장 가득 채운 다음부터 는 정신이 점점 아득한 나라로 도망가더라. 몰려드는 잠을 찾기 위해 음악도 들어보고 팔짱도 껴보고 체조도 해봤지만 결국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처음엔 턱을 괸 채 졸다 나중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엎드린 채 잠이 들고 말았다. 그 와중에 선배들은 애써 졸린 잠을 참으며 열심히 교정작업 중이었고.

아침 7시 쯤 눈이 번쩍 뜨였는데 얼마나 피곤했는지 침까지 흘리면서 잤더라. ㅠㅠ 그 이후에도 꾸벅 졸다 다시 번쩍 정신이 들었다가를 반복했다. 9시 쯤 조금 넘었을 때 차장님께서 아무래도 사우나 가서 한숨 자고 오후에 다시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남자들은 사우나에 갔고 집이 멀었던 난 디자이너 집까지 따라갔다. 사진기자는 함께 밤을 샌 게 아니라 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우리를 차로 데려다줬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조수석에 앉아 디자이너 집까지 가는 동안 창문 너머로 3월 햇볕이 따사로이 내리쬐며 나를 감싸는데, 뭐랄까. 순간 참 편안했고 또 평온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 그러니까 내 남자친구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3월의 아침햇살과 따뜻했던 분위기, 그리고 나를 감싸던 편안함이 좋았다. 그리고 내 옆에 그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1시 반부터 전화가 왔는데 진동으로 했던 탓에 받지 못했다. 5번 쯤 울렸을 때 겨우 진동 울림을 느끼고 일어났다. 옆방으로 건너가 디자이너 깨우고 간단히 양치만 한 뒤 돌아갔다.

택시에 내리는 순간 아, 이제 정말로 봄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봄이라. 3월이면 기억나는 장면이 참 많다. 3월 초면 늘 담임 선생님은 누굴까. 짝은 어떤 아이일까. 반장선거는 또 어떻게 넘어가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다 덜컥 반장이라도 되는 날이면 3월 말까지 매주 주말은 '환경미화'를 위해 저당잡혀야했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6년 동안 환경미화와 관련해서 상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네. 경비 아저씨 구박 받으면서, 나오기 싫다는 친구들 달래면서 용돈으로 떡볶이까지 사주며 주말 내내 준비했는데.

중학교 1학년 어느 봄날, 교복입고 터덜터덜 집으로 가다 유니온베이에서 팔던 티셔츠가 너무 예뻐 샀던 것도 생각나고, (그 옷을 난 10년 동안 입었다. 그말은 곧 중학교 1학년 때 성장판이 닫혔다는 걸 의미한다. ㅠㅠ) 내 방 바닥에 그대로 누운 채 창 밖 너머 하늘을 바라보며 봄을 느꼈던 중학교 2학년 어느 날도 생각나고, 또 4월이면 엄마가 늘 챙겨주던 딸기도 생각나고.

그렇지만 대학시절 추억 중 3월과 관련된 것들을 떠올려볼라치면 역시 술 밖에 없는 듯하다. 아직도 귓가에는 막갈리 찬가가 웅웅댄다. 학생회관은 여전히 사발식 때문에 웃고 울고 괴로워하고 떠드는 새내기들과 선배들로 가득하겠지. 아, 학교도 보고 싶구나. 3월 봄바람을 느끼며 친구들과 걸었던 중앙도서관 앞, 요기를 해결해주던 사대 앞 깡통, 나뭇잎 사이로 비치던 햇볕이 예뻤던 다람쥐길, 학생들로 늘 북적대던 민주광장, 3년 간 학보 만든다고 들락날락했던 홍보관까지.

옆에 앉은 서 선배는 지난 새벽에 이어 오늘 저녁에도 음악을 들으며 교정작업 중이시다. 일일DJ라며 노래신청도 받았는데 내가 부탁한 이소은의 서방님은 단박에 거절하셨다. 임 선배는 얘 또 첫사랑 생각나서 이런다고 놀린다. 얼마 전 지하철 역까지 가면서 내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런가보다. 그 다음부터는 헬레나 첫사랑 이야기 들었냐면서 놀리시고.

참, 이 글을 쓰는 도중 집에 가신 차장님이 다시 와서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주고 가셨다. 아이스크림을 먹던 선배는 지하철 끊기 전에 가라고 하시네. ^^ 그리고 내일은 회식이 있으니 약속 잡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리하여 내일 대전-전북 경기는 못가게 되는구나.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는 선배의 허밍이 좋고
이제 곧 책이 나온다는 사실이 좋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좋다.

그러나 입술은 부르텄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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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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