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원 라이크 유는 로맨틱 코메디 영화다. 로맨틱 코메디물은 언제나 그렇듯, 상처받고 실연당한 주인공이 나온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애슐리 주드가 연기한 제인 굿웰 역시 그렇다. 한 지역 방송국 섭외담당인 그녀는 새로 들어온 PD에게 첫눈에 반한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 중 하나다. 겉모양에 혹하다 보면 그 내면이 어떤지 찬찬히 살펴볼 시간을 놓치기 때문이다.

같이 공원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햄버거를 먹던 제인과 레이. 어느새 레이는 제인의 집에 앉아 함께 TV를 보며 시리얼을 먹다 키스를 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 관계는 더 발전해 침대로 이어진다. 침대 위에서 그녀를 안은 채 키스를 하는 레이. 러브 앤 워에서 함께 춤을 추던 어니스트와 아그네스를 볼 때처럼, 혹은 물랑루즈의 크리스티앙과 샤틴을 볼 때처럼, 레이와 제인, 그 둘을 보는 내 마음은 어느새 행복해진다.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살과 살이 맞닿은 채 서로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주며 한참을 바라보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어머니가 아이의 눈과 코와 입술을 만지며 웃을 때처럼. 그 순간만은 서로 한없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한결같은 믿음으로 이어진다. 사랑하여라. 사랑하노라. 그리하여 사랑한다. 당신을.

 

길거리에서 사랑하는 이의 셔츠를 골라준다. 파란 하늘이 보이는 어느 거리에서 골라준 파란셔츠. 햇빛을 맞으며 나누던 긴 입맞춤. 옷장게 걸린 그 사람의 양복, 그 양복에서 맡을 수 있는 그 사람의 내음. 눈을 감은 채 깊이 깊이 맡아본다. 그 내음은 곧 그 사람으로 바뀌고 그녀는 다시 행복해진다. 그 사람이 내 앞에 있는 듯한 기분은, 언제나.



그러나 레이에게는 3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D라는 이름의. 그리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레이는 멀어지고 마니.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을 사랑한 죄일까? 차임. 실연. 상처. 그와 함께 살 집으로 이사를 하려고 집을 판 그녀는 이제 갈 곳이 없다. 그녀의 마음 역시 이제 갈 곳이 없다. 잔인하지만, 잔인하게도 그녀를 받아줄 곳은 아무데도 없다. 세.상.그.어.느.곳.에.도.

"에디. 저번에 룸메이트 구한다고 했죠? 아직 안 구했어요? 집 좀 봐도 될까요?"
그렇게 해서 인생의 모든 것을 sex와 연관짓는 바람둥이 PD 에디의 집에 들어가서 살게된다. 매일 매일 바뀌는 여자들. 화장실을 가다 그 여자들과 마주질 때 놀라던 제인은 어느새 그 생활에 익숙해져 그녀들에게 커피까지 타주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다. 실연이 상처가 컸던 그녀는 자신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온갖 잡지와 서적을 살펴보며 닥치는데로 쓴다. 그녀가 만든 젖소이론은 꽤 그럴듯하다. 숫소는 한번 만난 암소와는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는 이론. 재미다 본 숫소는 새롭게 재미볼 새 암소를 찾으러 떠나고 버림받은 암소는 '헌 암소' 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레이가 그녀를 떠난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숫소의 특성에 따른 어쩔 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젖소이론은 실연을 당한 여자들에게는 참 그럴듯하게 들리는, 자신에게 매력이 없는지도 모른다며 좌절하는 그네들에게는 참으로 멋진 이론이 아닐 수 없다.

실연은 그녀에게 글을 쓰게 하고, 실연을 잊기 위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은 또 다른 그녀를 만들어준다. 잡지사에서 일하던 친구 리즈의 제안으로 칼럼을 쓰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론을 설득력있게 만들고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연고친척이 없는 사망자의 사진을 이용해 65세의 동물학 박사인 마리 찰스라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만든다.



실연을 당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잊는 것이다. 잊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슴 속에 타오르는 불을 끄기 위해서는 재를 덮거나 물을 뿌려야한다. 그도 아니면 맞불을 부치며, 그럴 힘마저 없다면 다 타 없어질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 뿐이다.

그녀는 자기합리화로 불을 끄려고했다. 합리화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냈고 그녀는 잘 이겨내는 듯했다. 하지만 12월 31일에 만나자는 레이 말에 흔들리다니. 다시 상처받으려고? 그렇다. 결국 그녀는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 오지 않는 레이를 기다리다 깨닫는다. 그는 앞으로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심심하면 놀러오라는 에디의 말이 생각나 가르쳐 준 주소로 그를 보러 가지만 하필이면 카운트 다운할 때 갈게 뭐람. 5,4,3,2,1 Happy New Year! 그리고 키스하는 연인들. 서로를 안아주며 덕담을 나누는 친구들. 그속에 혼자 서 있는 제인. 울며 나오는데 구두 뒷굽까지 부러지고 만다. 참 되는 일 없는 여자다. 차이고 상처받고 또 바람 맞고, 울며 나가는데 구두 뒷굽까지 부러져? 도대체 얼마나 더 비참해져야할까? 절뚝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 그 구두 뒷굽을 발견하고 쫒아가는 왕자님은 동화책에만 존재할 뿐이다. 에디는 그녀를 끝까지 쫓아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에디의 표정은 어딘가 이상하다. 뭔가를 감춘듯한 표정이란. 하긴,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고 물을 마시러 나온 어느날 새벽에도 치어리더 동작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모습역시 뭔가 이상했다. 이 남자, 점점 이상하다.


레이가 사랑하던 D라는 여자는 자신이 일하고 있던 방송국 토크쇼 진행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에도 퉁퉁 부운 눈으로 우는 그녀에게 넌 충분히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니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위로해준다. 밤새 손을 꼭 잡아준 채. 아침녘에 눈을 떴을 때 꼭 잡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는 에디. 뭔가 있긴 있나보다. 그녀를 향한 마음에 뭔가 알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이런 와중에 그녀에게 지령이 내려진다. 젖소이론의 창시자 닥터 마샬과의 만남을 성사시키라는 불가능한 작전. 처음에는 전화 인터뷰를 하려던 그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수화기를 내려놓고 방송국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요. 내가 만든 이론을 더 설득력있게 보이려고 그런 인물을 만들게 됐죠, 라며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는 제인.

실연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이에요. 글을 쓰다 알게됐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레이가 아니라 밤새 내 손을 꼭 잡고서 넌 충분히 아름다운 여자라고 말하는 사람... 그래, 에디!

그렇다. 그 사람은 에디였다. 택시를 타고 가려는 그를 붙잡아 세운다. 하지만 불과 두달 전 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키스를 했던 그녀. 이제 에디와 평생토록 키스하며 살 수 있을까? 또 헌 암소가 되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그녀가 말하듯, 모든 사람이 헌 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숫소가 떠나는 것은 아니다. 평생토록 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그녀가 유산을 했더라도 옆에서 지켜주며 또다른 탄생을 기다리는, 한없는 마음으로 사랑해줄 숫소는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숫소가 떠난들 어떠랴.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 미처 깨닫지 못한 소들은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소들인걸.

중요한 건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암소라는 사실 뿐이니까.

ps.
-젊은 애슐리 쥬드와 휴잭맨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휴잭맨은 그때도 몸매가 엑스맨 못지 않게 좋았음.
-이 영화에 반해서 DVD까지 샀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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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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