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어."
"나에게는 순간이었어요."

"당신, 나의 어떤 점이 좋았어요?"
"그 춤 실력."

"왜 나를 사랑했지?"
"춤을 잘 춰서요."


 그 후 래널프와 아델은 다시 춤을 추게 되었지.


베가번스의 전설을 봤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골프라는 조금 지루한 소재로 참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 좋은 영화라. 내가 감히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영화 속 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마음에 깊이 다가오므로 좋은 영화다.


다시 사랑을 하게 되었다, 는 문장 대신 다시 춤을 추게 되었다는 문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참 멋진 표현 아닌가.

깊은 밤, 나는 별빛의 음악을 들으며 너에게 편지를 쓴다.

너는 그곳에 서있고, 나는 다만 사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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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영혼이 바뀌는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 <너의 이름은>

다시 태어나면 도쿄의 남자가 되고 싶다고 산사에서 소리치던 시골 소녀 미츠하. 소녀의 꿈은 자고 일어나니 기적처럼 이루어진다. 도쿄 소년 타키와 영혼이 바뀌게 된 것! 

아파트 복도 앞에 펼쳐진 도쿄의 아침 풍경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는, 타키의 몸을 한 미츠하를 보고 있자니 문득 선샤인호텔에 나와 이케부쿠로와 시부야 거리를 거닐며 두 눈 반짝이던 13년 전 내가 떠올랐다. 

황혼, 그 기적의 시간에 미츠하와 타키가 만나던 순간에는 내 심장은 그야말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미츠야가 살던 마을 정경을 보니 몇년 전 J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빅스완을 향해 걸어가던, 니이가타 그 시골길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하게 일본의 자연을 담아낸 감독의 서정이 참 좋았다. 꼬이고 얽혀도 결국엔 이어진다는, 인연과 운명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두번이나 보게 된 영화다. 여운이 참 오래 남는다.




ps.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와도 어찌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보며, 또 그냥 있어보라는 대사까지 보고 있자니 세월호가 떠올랐다. 일본 사람들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떠올렸다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마음을 다해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진짜 의미가 생기는 법이다. 도서관 자료실에 있던 미츠하의 이름은 타키가 부르는 순간 내가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현실세계를 애니에 담던 감독의 성향을 알기에 꼭 배경이 된 일본 내 지역들을 방문해 인증샷을 찍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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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영화 컨택트.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라고 하여 조디포스터가 과학자로 나왔던 90년대 작의 리메이크인 줄 알았으나 제목이 다르다. 조디포스터 출연 영화는 콘택트. 그리고 오늘 본 영화는 컨택트. :) 

영화 보는 내내 사운드가 압도당할 정도로 기괴하였는데, 끝나고 지하주차장을 걸어갈 때까지 그 음악이 연간 귓속을 맴돌았다. 실로 대단한 영향력이었다.

어느 날 전 세계 12곳에서 낯선 우주선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 우주선 속 외계인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언어학자인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안이 합류한다.

물론 언어체계가 다르기에 대화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곳에 왜 왔는지 물어봐도 웅웅 거리는 의성어만 들릴 뿐 해석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화가 되지 않자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컨택트는 내게 소통이란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말해 마주보고 귀를 기울이며 뜻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귀한 메시지를 전해줬다. 알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에서의 중요성 또한 함께.


영화 속 여주인공 루이스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녀는 지금의 이 선택으로 인해 먼 훗날 슬픔을 맞이할 것을 알면서도 어떤 특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생의 매 순간, 그 찰나가 주는 행복이 더 크고 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선택한 그녀의 행보는 꽤나 큰 울림이기도 했다.

참, 그 과정에서 눈이 맞은 물리학자 이안은 “평생 하늘의 별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그보다 당신을 만난게 더 중요하다”며 손발 오글거리는 대사를 날리기도 한다. 그걸 들으며 나는 더 애틋한 멘트를 쓰는 연애작가가 되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

ps.
-물리학자 이안을 연기한 제레미 레너를 보면서 나는 계속 호크아이 생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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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엠마스톤과 라이언고슬링이 이렇게나 춤추고 노래 잘하는 배우였다니! 스파이더맨의 그녀와 순애보 노아의 만남은 새로웠다.

샤갈의 그림을 보는듯한 색감. 물랑루즈스러운 카메라 워크, 그리고 깜짝 출연 존 레전드 덕분에 눈과 귀가 호강했던 시간.

영화 중간에 세바스찬과 미아가 LA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엠마스톤의 데이트룩은 정말 예뻤다. 홀터넥 드레스가 이렇게나 잘 어울리다니. 이번 영화를 위해 다이어트까지 했다는데. 역시 옷빨은 혹독한 다이어트 뒤에 나오는 법.



to do list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과 탭과 왈츠를 추는 건데, 라라랜드에서도 이 장면이 나와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LA 야경을 바라보며 함께 탭을 추는 세바스찬과 미아. 밀당이 시작되는 장면이라서 두근두근했고, 첫 키스를 나누기 전에는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무려 소녀감성 벅차오르게 별과 구름이 강처럼 흐르는 하늘까지 날아주셨다.

지극히 현실적인 엔딩까지 난 그냥 좋았다는. 슈팅도 타이밍인 것처럼 사랑도 타이밍이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로맨스보단 현실이다.

나이가 들면 꿈도 변한다며 울먹이는 미아의 대사가 눈에 밟힌다. 탭댄스를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라이언고슬링은 찌질한 순애보 역할이 딱인듯. 넌 영원한 노트북의 노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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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핵소 고지.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했던 오키나와 전투에서 무기 하나 없이 75명의 생명을 구한 데스몬드 도스의 실화를 그린 영화다.

앤드류 가필드는 내게 엠마스톤의 전 남친으로만 기억되는 배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핵소 고지에서는 순박한, 그러나 자신의 신념 앞에서만큼은 단단한 버지니아 시골 청년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수혈하고 나서 다음날 수혈이 잘못 된 것 같다고, 심장이 너무 뛴다며 간호사한테 고백하는 남자라니!

사상은 약간 돌아이나 영화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만드는 멜 깁슨은 이번 영화에서도 실감나게 전쟁씬을 구현한다. 사지가 잘려나가고, 머리가 날아가고, 파편으로 힘줄까지 보이는 다리를 붙잡고 울부짖는 병사들의 모습이 처절하게 화면에 잡힌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이후로 내게 제대로 임팩트 준 전쟁씬이었다. 덕분에 영화 보는 내내 심장이 아팠다.

Please, Lord, help me get one more.

영화 말미에 부상 당한 전우들을 구해내기 위한 도스의 눈물겨운 투혼이 시작된다

이 영화는 크리스천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종교영화일 수도 있다. 성경을 가슴에 지닌 채 병사를 구하며, 주님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합니까, 한 사람만 더 구하게 하소서, 라며 기도하는 도스의 모습을 보면 말이다.

 When you are convinced of something, that's no joke. That's what you are.

그러나 내게 이 영화는 믿음을 넘은 신념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 영화였다. 그 신념이 있기에 도스는 약혼녀의 눈물에도, 동료들의 집단구타에도, 일본군의 공격으로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도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지키며 전우 곁에 있었으니 말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철학과 신념이다. 그래야지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나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ps.

-군대 다녀오신 분들에게는 더 큰 임팩트를 줄 것 같아서 한동안 군필자들에게 열심히 추천했었다.

-이 영화로 앤드류 가필드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더라는.

-앤드류 가필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전 여친 엠마스톤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자 가장 먼저 일어나서 가장 열심히 또 가장 환하게 웃으면서 박수쳤다는. 이 남자에게 입구만 있을 뿐 출구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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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a walk to remember.
추억으로의 산책.

4년이 흘렀지만 내게 걸어오던 그녀의 모습은 내속에 살아있다


 이제는 현실 속에서는 결코 만나볼 수 없는 그녀, 제이미를 생각하기 위해서 그,  랜든은 추억으로 걸어갈 수 밖에 없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기 때문에 제이미와 랜든은 초등학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왔다. 서로를 알지만 둘은 한번도  제대로된 이야기, 마음이 통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이미는 촌스러운 스웨터에 촌스러운 앞머리에, 보통 아이들이 볼 때는 다소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의 소녀이다. 그러니 랜든같은  날라리가 상대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멋진 사랑을 하는 선배에게 언젠가 물은 적이 있다. 어떻게 저 사람을 알고 사랑까지 하게 됐냐고. 그때 선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이 갑자기 찾아왔노라는 대답을 해줬다. 아마 영화 속 랜든과 제이미에게 물어봐도 그들은 그 선배처럼 대답할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사랑이 찾아왔노라고.



제이미의 꿈은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랜든은 그런 그녀를 위해 기적을 보여주려고 한다. 랜든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목표리스트를 이뤄주기 위해 노력한다. 
 
우울한 날, 누군가가 와서 달빛 아래서 함께 춤을 추자고 했으면. 천문학자들이 관측하지 못한 별을 발견해 내 이름을 붙여줬으면. 함께 별을  관측하기 위해 내가 기댈 어깨를 마련해줬으면.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교회에서 나와 결혼해줬으면. 
 
랜든이 제이미에게 해줬던 일들. 그녀가 그를 통해 체험한 기적들. 빛나던 사랑의 기적으로 가득차 아름다웠던 영화.

ps.
-맨디 무어 목소리가 너무 예뻐 only hope를 백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여름방학 당시 그 아이와 같이 보러 가고 싶었던 추억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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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썸원 라이크 유는 로맨틱 코메디 영화다. 로맨틱 코메디물은 언제나 그렇듯, 상처받고 실연당한 주인공이 나온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애슐리 주드가 연기한 제인 굿웰 역시 그렇다. 한 지역 방송국 섭외담당인 그녀는 새로 들어온 PD에게 첫눈에 반한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 중 하나다. 겉모양에 혹하다 보면 그 내면이 어떤지 찬찬히 살펴볼 시간을 놓치기 때문이다.

같이 공원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햄버거를 먹던 제인과 레이. 어느새 레이는 제인의 집에 앉아 함께 TV를 보며 시리얼을 먹다 키스를 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 관계는 더 발전해 침대로 이어진다. 침대 위에서 그녀를 안은 채 키스를 하는 레이. 러브 앤 워에서 함께 춤을 추던 어니스트와 아그네스를 볼 때처럼, 혹은 물랑루즈의 크리스티앙과 샤틴을 볼 때처럼, 레이와 제인, 그 둘을 보는 내 마음은 어느새 행복해진다.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살과 살이 맞닿은 채 서로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주며 한참을 바라보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어머니가 아이의 눈과 코와 입술을 만지며 웃을 때처럼. 그 순간만은 서로 한없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한결같은 믿음으로 이어진다. 사랑하여라. 사랑하노라. 그리하여 사랑한다. 당신을.

 

길거리에서 사랑하는 이의 셔츠를 골라준다. 파란 하늘이 보이는 어느 거리에서 골라준 파란셔츠. 햇빛을 맞으며 나누던 긴 입맞춤. 옷장게 걸린 그 사람의 양복, 그 양복에서 맡을 수 있는 그 사람의 내음. 눈을 감은 채 깊이 깊이 맡아본다. 그 내음은 곧 그 사람으로 바뀌고 그녀는 다시 행복해진다. 그 사람이 내 앞에 있는 듯한 기분은, 언제나.



그러나 레이에게는 3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D라는 이름의. 그리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레이는 멀어지고 마니.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을 사랑한 죄일까? 차임. 실연. 상처. 그와 함께 살 집으로 이사를 하려고 집을 판 그녀는 이제 갈 곳이 없다. 그녀의 마음 역시 이제 갈 곳이 없다. 잔인하지만, 잔인하게도 그녀를 받아줄 곳은 아무데도 없다. 세.상.그.어.느.곳.에.도.

"에디. 저번에 룸메이트 구한다고 했죠? 아직 안 구했어요? 집 좀 봐도 될까요?"
그렇게 해서 인생의 모든 것을 sex와 연관짓는 바람둥이 PD 에디의 집에 들어가서 살게된다. 매일 매일 바뀌는 여자들. 화장실을 가다 그 여자들과 마주질 때 놀라던 제인은 어느새 그 생활에 익숙해져 그녀들에게 커피까지 타주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다. 실연이 상처가 컸던 그녀는 자신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온갖 잡지와 서적을 살펴보며 닥치는데로 쓴다. 그녀가 만든 젖소이론은 꽤 그럴듯하다. 숫소는 한번 만난 암소와는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는 이론. 재미다 본 숫소는 새롭게 재미볼 새 암소를 찾으러 떠나고 버림받은 암소는 '헌 암소' 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레이가 그녀를 떠난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숫소의 특성에 따른 어쩔 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젖소이론은 실연을 당한 여자들에게는 참 그럴듯하게 들리는, 자신에게 매력이 없는지도 모른다며 좌절하는 그네들에게는 참으로 멋진 이론이 아닐 수 없다.

실연은 그녀에게 글을 쓰게 하고, 실연을 잊기 위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은 또 다른 그녀를 만들어준다. 잡지사에서 일하던 친구 리즈의 제안으로 칼럼을 쓰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론을 설득력있게 만들고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연고친척이 없는 사망자의 사진을 이용해 65세의 동물학 박사인 마리 찰스라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만든다.



실연을 당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잊는 것이다. 잊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슴 속에 타오르는 불을 끄기 위해서는 재를 덮거나 물을 뿌려야한다. 그도 아니면 맞불을 부치며, 그럴 힘마저 없다면 다 타 없어질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 뿐이다.

그녀는 자기합리화로 불을 끄려고했다. 합리화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냈고 그녀는 잘 이겨내는 듯했다. 하지만 12월 31일에 만나자는 레이 말에 흔들리다니. 다시 상처받으려고? 그렇다. 결국 그녀는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 오지 않는 레이를 기다리다 깨닫는다. 그는 앞으로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심심하면 놀러오라는 에디의 말이 생각나 가르쳐 준 주소로 그를 보러 가지만 하필이면 카운트 다운할 때 갈게 뭐람. 5,4,3,2,1 Happy New Year! 그리고 키스하는 연인들. 서로를 안아주며 덕담을 나누는 친구들. 그속에 혼자 서 있는 제인. 울며 나오는데 구두 뒷굽까지 부러지고 만다. 참 되는 일 없는 여자다. 차이고 상처받고 또 바람 맞고, 울며 나가는데 구두 뒷굽까지 부러져? 도대체 얼마나 더 비참해져야할까? 절뚝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 그 구두 뒷굽을 발견하고 쫒아가는 왕자님은 동화책에만 존재할 뿐이다. 에디는 그녀를 끝까지 쫓아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에디의 표정은 어딘가 이상하다. 뭔가를 감춘듯한 표정이란. 하긴,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고 물을 마시러 나온 어느날 새벽에도 치어리더 동작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모습역시 뭔가 이상했다. 이 남자, 점점 이상하다.


레이가 사랑하던 D라는 여자는 자신이 일하고 있던 방송국 토크쇼 진행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에도 퉁퉁 부운 눈으로 우는 그녀에게 넌 충분히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니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위로해준다. 밤새 손을 꼭 잡아준 채. 아침녘에 눈을 떴을 때 꼭 잡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는 에디. 뭔가 있긴 있나보다. 그녀를 향한 마음에 뭔가 알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이런 와중에 그녀에게 지령이 내려진다. 젖소이론의 창시자 닥터 마샬과의 만남을 성사시키라는 불가능한 작전. 처음에는 전화 인터뷰를 하려던 그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수화기를 내려놓고 방송국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요. 내가 만든 이론을 더 설득력있게 보이려고 그런 인물을 만들게 됐죠, 라며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는 제인.

실연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이에요. 글을 쓰다 알게됐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레이가 아니라 밤새 내 손을 꼭 잡고서 넌 충분히 아름다운 여자라고 말하는 사람... 그래, 에디!

그렇다. 그 사람은 에디였다. 택시를 타고 가려는 그를 붙잡아 세운다. 하지만 불과 두달 전 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키스를 했던 그녀. 이제 에디와 평생토록 키스하며 살 수 있을까? 또 헌 암소가 되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그녀가 말하듯, 모든 사람이 헌 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숫소가 떠나는 것은 아니다. 평생토록 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그녀가 유산을 했더라도 옆에서 지켜주며 또다른 탄생을 기다리는, 한없는 마음으로 사랑해줄 숫소는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숫소가 떠난들 어떠랴.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 미처 깨닫지 못한 소들은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소들인걸.

중요한 건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암소라는 사실 뿐이니까.

ps.
-젊은 애슐리 쥬드와 휴잭맨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휴잭맨은 그때도 몸매가 엑스맨 못지 않게 좋았음.
-이 영화에 반해서 DVD까지 샀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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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Someday when I'am awfully low
When the world is cold
I feel a glow just thinking of you
And the way you look tonight
oh, but you're lovely with your smile so warm
And your cheek so soft
There is nothing for me to love you
And the way you look tonight
With each world your tenderness grows
Tearing my fear apart
And that laugh that wrinkles your nose
touches my foolish heart
Lovely, never ever change
Keep that breathless charr
Won't you please arrange it?
'Cause I love you
Just the way you look tonight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에 나왔던 노래, The Way You Look Tonight이다. 함께 유람선을 타고 가던 오후, 마이클이 줄리안에게 이 노래를 불러준다. And your cheek so soft, 라는 가사에 맞게 볼과 볼이 맞닿은 채로 선상에서 춤을 추는 그들.

만약 잠깐 그늘을 마련해줬던 그 다리가 조금 더 길었더라면. 마이클과 줄리안은 입을 맞추고 마음을 확인하고 다른 길에 들어섰을까.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을 볼 때면 가장 마음 아픈 장면 중 하나.



너를 생각하는 마음은 이토록 한결같고 뜨거우나 알아주지 않고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 그 처연한 현실 앞에서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그것만큼 잔인한 것은 또 없으리라.

영화 속 남자사람 친구의 결혼 상대자로 나온 카메론 디아즈는 세상 아무 것도 모르는듯이 웃고 떠드는 아가씨로 나온다. 모름지기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저 정도 쯤의 해맑은 매력을 갖고 있어야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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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야, 진짜 제목처럼 순정만화다. 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만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냐?”

영화가 끝나자마자 함께 영화를 봤던 지인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저런 어눌한, 좋다 싫다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기 딱 좋은, 거기에 다 구겨진 바지와 어벙벙한 쟈켓을 입고 다니는 최악의 패션감각까지. 꽉 찬 서른 ‘동사무소맨’ 연우(유지태)를 과연 누가 좋아하겠냐가 지인의 생각이었다.

물론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를 묻지도 않는 무심한 ‘경제’ 대통령 아래서 모두가 헉헉 대고 있는 요즘, 연우는 나름 정년이 보장된 동사무소에 적을 두고 있다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남자란다.

“차라리 선생님을 만나는게 낫겠다. 동사무소는 무슨 동사무소. 나중에 결혼해서 우리 남편은 동사무소에서 일해, 라고 말할 수 있겠어? 쪽팔려.”

수영(이연희)이 연우를 좋아하는 것도 결국 아무 것도 모르는, 한마디로 철모르는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지인은 말했다.

“야, 대학 나오고 사회 나오면 그런 남자 눈에 들어오겠니? 만날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기나 사주고 500원 짜리 넣고 뽑기하다가 동전 다 떨어졌다고 학생한테 돈 있냐고 하는 남자를 어떻게 만나? 게다가 차도 없잖아.”


하지만 지인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두 주인공 수영 학생과 연우 아저씨는 한없이 맑았고, 따뜻했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그래서 보는 내내 혼자 그렇게 웃을 수밖에 없었고,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내 얼굴에선 좀처럼 웃음이 떠날 줄은 몰랐다. 그런 사랑도 있는 거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화로 또 다시 영화로 재생되는 것이라 내게 말했다.

순정만화를 연출한 류장하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조감독이었으며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입봉했다. 순정만화 역시 그간의 연작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두 주인공이 만나서 감정을 키우고 연애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직설적으로 보여주기 보단 한걸음 물러서 담담히 비춰내길 택한다. 여기에 역광을 적절히 활용해 봄날의 어느 오후 같은, 그런 따뜻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연출해낸다.

<순정만화>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불가항력에 의한 가슴 아픈 이별도, <봄날은 간다>처럼 변해가는 사랑 따윈 없다. 10대 고등학생과 30대 직장인의 만났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그저 좋아 이 사람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하는 아름다운 마음만 있을 뿐이다.



수영은 혼자 비를 맞고 끙끙 앓고 있던 연우를 위해 손수 죽을 끓여주고 다시는 비를 맞지 말라며 우산을 선물로 건넨다. 그런 수영을 위해 연우는 “너무 더워 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던 수영의 말을 기억하며 깊은 밤 눈을-비록 눈 스프레이였지만 ^^- 선물로 주는가 하면 자율학습이 끝난 수영의 밤길을 지켜주는 전도사 역할까지 자처한다.

상대가 이만큼 해줬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내가 상대를 위해 이렇게 해주고 싶다만 있는 세상, 바로 연우와 수영이 사랑하는 세상이다.

“우리 보는 사람도 없는데 저 모퉁이까지 손잡고 걸어갈래요?”라는 말과 함께 손잡고 걷던 그 모습이 그래서 그렇게나 아름답게 보였나 보다.

사는 곳과 졸업한 학교와 직장이 무엇이냐에 따라 상대를 판단하고 파악하고 재단하는 참 매정한 세상에서, <순정만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동화 같은 세상을 그려낸다. 조건이 아닌 마음의 그릇을 사랑하던 <순정만화>의 두 주인공 모습은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는 당신은 마음의 눈으로 상대를 바라봤습니까? 라는 질문과 함께 성찰의 시간을 툭, 안겨준다.

그간 연작들에선 사랑 앞에서 다소 나약한 모습을 보였던 유지태는 <순정만화>에서도 여전히 순박한 표정과 미소는 그대로지만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 나이로 돌아온 이연희는 <순정만화>에서도 여전히 연기가 부족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나 감정이입 되기엔 충분할 정도로 ‘수영’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다. 이제 막 사랑에 눈 뜬 설레는, 그래서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여고생 수영이 바로 이연희였다.


그리고 마지막. 영화를 보는 내내 지난 봄 성공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나의 곁을 떠났던, 6살 어린 그 아이가 참 많이 생각났었다. 제주도의 바람 아래서 자란 덕분이었을까. 그 아이는 내가 알고 지낸 그 어떤 사람들보다 맑고 선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였다. 택시운전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장남으로서 어려운 형편에 보탬이 되고자 했지만, 매정하게도 사회는 돈도, 빽도, 줄 서는 방법도 모르는 그 아이에게 참으로 어렵고 힘든 곳이었다. 그래도 그 아이는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쪼개 부모님께 드리고 적금까지 하던 꽤 알뜰한 근로청년이었다. 무엇보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나를 위해 김밥을 사주고 가끔 큰돈이 생기면 삼겹살까지 쏘던 로맨티스트였다.

그렇게 8개월을 만나는 동안 우리는 손만 잡고 다녔다. 물론 6살 많던 누나는 이마 위의 입맞춤을 꿈꿨지만, 아직 열여섯 소년 같던 그 아이는 영화 속 연우와 참 비슷하였다. 손을 잡을 때면 척척하게 땀이 배어나왔으니까. 처음엔 쑥스러워서, 나중엔 그저 좋아서. 그게 이유였다. 그리고 나는 그 손을 놓기가 싫어 헤어질 때면 버스에 올라타는 그 걸음이 무거워짐을 느끼곤 했다.

데이트 때마다 매일 고등학생들 틈에서 김밥을 주워 먹고 있어도 무척이나 행복해하던 나였다. 그때마다 지인들은 그게 반복되는 현실이라도 넌 평생 웃을 수 있겠냐고 했지만, 사실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지 않았던가. 영화를 보고 돌아오던 길, 이제는 과거가 돼 버린 잊고 있었던 <순정만화> 같던 시절이 생각나 잔잔히 웃었다.

어찌하여 옛날을 추억하며 마음 아파하는 대신 웃을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 그 이유를 내게 묻는다면 다시 순수한 감정으로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날이 다시 올 것만 같다는 막연한 믿음과 희망을 <순정만화>를 통해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 늦은 새벽까지 잠 못 이루지 못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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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학생시절, 박문성 SBS축구해설위원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신기한 연 덕분에 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박문성 위원은 축구계에 먼저 몸 담은 선배로서 이런저런 조언을 내게 해줬는데, 갑자기 이야기 중 “아내가 결혼했다, 라는 책 봤어요?”라는 질문을 내게 툭 던졌다. 아내가 결혼했다고? 워낙 책과는 담 쌓으며 살았던 지라 소설책의 제목인지도 몰랐다. 책 중간 중간 축구 이야기가 참 맛깔스럽게 녹아있다며 내게 권해줬는데, 제목 때문인지 기분 참 이상했다. 아니 묘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하다.


다음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봤는데 하루 만에 독파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덮기엔 다음 내용이 궁금해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었는데, 그러다보니 금새 맨 끝장이 나오더라. 그리고 2년 뒤 이제는 진짜 축구기자가 돼서 아내가 결혼했다를 다시 봤다. 이번엔 영화로.

소설 속 주인공, 그러니까 두 번 결혼한 아내 인아는 요목조목 자기 생각을 참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당찬 여자였다.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편 덕훈은 결국엔 사랑으로 너를 이해하노라, 였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리버리 남자는 아니었다. 한데 영화 속 인아(손예진)은 생글생글 눈웃음 ‘작렬’인, “자기야~ 응응?”하는 애교 덩어리이자 그야 말로 머리 끝부터발끝까지 사랑스러운 여자로 나온다. 그리고 그 남자 덕훈은 그간 김주혁이 영화(싱글즈, 광식이 동생 광태 등)에서 보여줬던 캐릭터 그대로, 약간 소심한, 그래서 그 귀여움에 큭큭 웃음이 절로 나오게 만다는 그런 남편으로 나온다.



밍숭맹숭했던 인아와 덕훈의 만남은 바르셀로나가 마드리드의 ‘클래식 더비’이야기를 시작으로 불붙는다. 바르셀로나가 마드리드에게 지는 바람에 잠을 못잤다며, 시무룩해 있는 인아. 그리고 당연한 거 아니냐며 껄껄 웃는 덕훈.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바르셀로나가 잘났네, 마드리드가 최고네, 하는 갑론을박으로 밤을 새는 두 사람. 도대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는 어떤 사이이길래. 눈이 살짝 풀린 채 인아는 “카탈루냐 지방의 상징이자 정신인 바르셀로나” 운운하는데, 도대체 카탈루냐는 뭔말이며 그것이 바르셀로나와는 무슨 상관이길래.

그러기 위해서는 ‘더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겠다. 더비는 크게 로컬 더비와 라이벌 더비로 나뉜다. 로컬 더비는 말 그대로 같은 연고지에 기반을 두는 팀 간의 다툼이며 라이벌 더비는 연고지는 다르더라도 정치 또는 종교 문제 등 여러 이유로 숙명의 대립 관계에 놓인 명문클럽 간의 자존심 싸움이다.

스페인 양대 거목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양보 없는 한판 대결을 일러 엘 클라시코, 영어로는 클래식 더비라고 한다. 엘 클라시코는 스토리가 있는 매치업이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가 위치해 있는 카스티야와 바르셀로나가 속해있는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하다. 15세기 말 통일을 이룬 스페인의 정치 행정 중심지는 카스티야다. 카스티야어는 공영어로도 채택됐고 라틴 아메리카로 전해진 근대 스페인 문화의 핵심 역시 카스티야의 그것이다. 중세 시대에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독립적 지위를 누린 스페인의 여타 지방들은 카스티야의 정치 패권에 강한 반감을 보였다.

17세기에 접어들어 카스티야와 반목하여 분리 운동까지 전개한 카탈루냐의 반발은 특히 심했다. 이때부터 카탈루냐는 잃어버린 언어와 자치권을 얻으려 200년 넘게 투쟁했다. 20세기 초 카탈루냐는 희망의 빛을 찾았으나 독재자 프리모 데 리베라의 억압에 뜻을 이루지 못했고 뒤이어 출현한 새로운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공세에 크게 억눌렀다. 스페인 민주공화국을 정복하고 정권을 거머쥔 프랑코는 내전 때 최후까지 저항한 카탈루냐인들을 집권 후 심하게 탄압했다. 그러나 카탈루냐의 민족주의운동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고 프랑코가 사망한지 4년 만인 1979년 결국 자치권을 획득했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심장인 카스티야의 마드리드는 당연히 카탈루냐의, 또 바르셀로나의 적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근대사의 명암은 축구판에도 예외없이 적용됐다. 왕실과 프랑코 정권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 레알 마드리드와 달리 바르셀로사는 온갖 고초 속에서 힘겹게 생존해왔다. 20세기에 나타난 2명의 독재자 리베라와 프랑코는 바르셀로나 내부 일에도 사사건건 참견했다. 프랑코는 ‘FC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식 표기라며 팀명을 ‘CF바르셀로나’로 바꾸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바르셀로나는 프랑코가 죽는 날까지 어이없게도 ‘CF바르셀로나’로 활동했다.

반면 권력자 프랑코를 팬으로 둔 덕분에 레알 마드리드의 항해는 더없이 수월했다. 자연히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는 날로 냉각됐다. 더욱이 바르셀로나는 프랑크와 중앙정부에 대놓고 저항하는 카탈루냐인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고단한 삶의 탈출구였다. 고유의 언어도 맘놓고 사용하지 못하는 등 갖은 구속과 속박에 짓눌려 살던 카탈루냐인들이 쌓인 울분을 속 시원히 토해낼 공간은 축구장 밖에 없었다. 프랑코 정권에 지배당한 카탈루냐인들은 바르셀로나를 독립군 삼아 정부권 격인 레알 마드리드에 항거했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아직도 엘 클라시코를 정치의 대리전이라고 말한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2명의 대 스타가 엘 클라시코를 극도의 흥분 상태로 이끈 사건이 있다. 주인공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루이스 피구. 레알 마드리의 위대한 레전드 디 스테파노가 원래는 바르셀로나와 계약하기로 돼 있다는 사실을 혹시 아는가. 프랑코 정권이 배후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져 이후로도 이 일은 뜨거운 논쟁거리가 됐다. 힘의 논리에 밀려 억울하게 디 스테파노를 원수에게 빼앗긴 바르셀로나 팬들의 레알 마드리드를 향한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리고 2000년. 바르셀로나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던 루이스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는, 카탈루냐 팬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피구는 요한 크루이프 이래 바르셀로나 팬들이 가장 좋아하던 선수였고 팀의 기둥이자 전술의 핵이어서 그 파장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카탈루냐인들이 특히 상처받은 이유는 그해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기 전 피구가 제 입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가는 일은 절대 업을 것”이라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결말은 뻔하다. ‘유다 이상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피구는 바르셀로나 팬들이 가장 사랑하던 선수에서 가장 저주하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피구가 첫 바르셀로나 원정, 즉 엘 클라시코에 참가했을 때 그라운드는 아수라장이 됐다. 피구가 코너 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관중석에서 온갖 물건이 쏟아진 탓. 바르셀로나 팬들은 심지어 피구에게 돼지 머리와 위스키 병을 던지기도. 참고로 2002년 월드컵 이후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당시 포르투갈 피구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있던 내게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마구 욕을 했었다. 왜 피구 유니폼을 입고 있냐면서. 피구와 상관없는 내게도 온갖 심한 욕을 했을 정도로 지금까지 피구를 향한 그들의 악감정은 실로 엄청나다.

황실로부터 ‘레알’이라는 호칭까지 얻은 레알 마드리드와 달리 오랫동안 정권에 항거하며 까탈루냐의 정신을 상징한 바르셀로나. 인아는 바르셀로나의 자유와 저항 정신, 그 뜨거운 피와 열정을 사랑한다. 결국엔 바르셀로나를 좋아한다는 설정은 특유의 자유로운 정신으로 결국엔 기존 가족체제-사랑한다면 또 결혼할 수 있다는-에 반기를 든다는 인아의 캐릭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를 보다보면 엄마가 된 인아가 자신의 아이에게 ‘지원’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지단 넘버원’의 약자로 레알 마드리드의 팬 덕훈을 위한 이름이다. 영화 중간 덕훈은 2002월드컵 당시 포르투갈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맥주와 통닭, 그리고 친구와 함께 본다. 박지성의 골이 터지고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던 순간 덕훈과 덕훈의 친구 역시 얼싸 안는데 그때 냉장고가 살짝 잡힌다. 냉장고에 붙어 있던 브로마이드 속 주인공이 바로 지단이다. 1998프랑스월드컵과 유로2000에서 프랑스에 우승컵을 안겨준 불멸의 플레이메이커. 2006월드컵 결승전에서 마테라치의 언어폭력을 참지 못하고 박치기를 날리며 퇴장과 동시에 쓸쓸히 그라운드를 떠나야만 했던 아픔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 프랑스 아트사커는 지단의 은퇴와 동시에 제 빛을 잃고 말았다. 그만큼 대표팀 내 지단의 비중은 실로 컸으며 아직까지 그의 빈자리를 메울 선수들이 나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겠다.



그러나 덕훈이 진정한 레알 마드리드 팬이라면 칸과 보르도(이상 프랑스) 유벤투스(이탈리아)를 거쳐 레알 마드리드에 온 프랑스인 지단을 좋아했을까? 난 아니라도 본다. 지단의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부러 설정했다고밖에 볼 수 없겠다. 진정 레알 팬이라면 라울에 푹 빠져있을터. 스페인에서 나고 자란,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데뷔전을 치른, 입때껏 레알 마드리그가 아닌 다른 클럽의 유니폼은 단 한번도 입지 않은 원클럽맨 라울 말이다. 우리에겐 안정환의 골 세레모니로 알려진 반지 세레모니의 원조가 바로 라울이다. 뿐만 아니라 라울은 챔피언스리그 최다출장 및 최다골의 기록을 갖고 있는, 이제는 어느새 ‘전설’의 경지에 오른 선수이다. 덕분에 팀 내에서도 입지가 꽤나 세, 라울의 눈밖에 나면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딸의 이름은 어떡하냐고? 흠. ‘라울 넘버원’의 약자인 ‘라원’이가 어색하다면 ‘미소가 아름다운 라울’의 약자인 ‘미라’ 어떨까. ^^

참, 영화 중간 중간 덕훈의 자동차도 눈길을 끈다. 왜냐고? 승용차 번호가 2002이기 때문이다. 축구가 너무 좋은 이 남자, 승용차 번호도 2002로 하고 만다. 홍명보가 승부차기 상황에서 4강행을 결정짓는 마지막 슛을 성공시키던 그 순간, 프로포즈에 성공했던 그에게 2002라는 숫자는 분명 특별할 수밖에 없다.

영화 말미에는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누캄프가 등장한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지난 5월11일 프리메라리가 37라운드 마요르카와의 홈경기에서 직접 촬영했다. 9만8600명이 수용 가능한 경기장인데, 이날 경기에는 6만5142명이 입장했다. 한때 아스날의 ‘킹’으로 군림했던 앙리(전반17분)와 흑표범 에투(후반12분)가 분전했으나 2-3으로 패하고 말았다. 후에 손예진은 바르셀로나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때라 환호하는 관중들의 모습을 잡기가 어렵다고 회고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인 즉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는 3위로 밀려나며 레알 마드리드가 리그 우승하는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봐야만 했기 때문이다. 게다 촬영이 있기 바로 전 경기 상대가 레알 마드리드였는데, 역사적인 클래식 더비에서 1-4로 대패하는 ‘수치’까지 겪고 말았다. 당시 후반 41분 앙리의 골이 터졌는데, 그 골마저 없었으면 무득점으로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하는 ‘오욕’을 맛봐야만 했을지도.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레알 마드리드 열혈팬임을 자칭했던 덕훈이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축구팬에게 유니폼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개체다. 그런 덕훈이 라이벌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었다는 사실은 그간 고수했던 정체성을 포기했다는 걸 뜻한다. 결국 이 모습은 인아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더 나아가 동화됐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참,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살펴보면 가슴에 유니세프(국제아동기구) 로고가 크게 새겨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간 바르셀로나는 그 어떤 기업의 유니폼 스폰을 받지 않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06년 9월 창단 106년만에 처음으로 자신들의 가슴을 내어준다. 유니폼을 통해 얻는 수입 중 일정 부분을 유니세프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있는데, 그 덕분에 2007년 피파로부터 페어플레이상을 받기도 했다. ‘클럽 이상의 클럽’(more than a club)이라는 바르셀로나의 슬로건 다운 행보가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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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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