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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방/TV상자

K리그 팬이 본 존박의 애국가 논란

슈퍼스타K 2 Top4가 사직구장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역시 대세는 야구, 그것은 진리,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축구보단 야구가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죠. 가슴 아프게도.

그래서 슈퍼스타K 2 제작진도 축구보다는 야구로 가자고 생각했겠죠. 재밌게도 슈퍼스타K 2는 현재 Top4이 남았고 프로야구 역시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남은 팀이 4명입니다. 더구나 지난 일요일에는 롯데와 두산의 경기가 열렸고요.

부산 갈매기 롯데, 하면 사직구장의 뜨거운 열기가 떠오르죠. 프로야구 팀들 가운데 열혈 팬들이 가장 많이 운집하는 곳이 바로 사직구장 아니던가요. 게다 프로야구 경기에서는 경기 시작 전 늘 애국가 제창 순서가 있습니다. K-리그에서는 성남을 제하곤 애국가 제창 순서가 없죠. 사라진 지 오래됐습니다.

야구장 슈퍼스타K 2 Top4이 애국가를 부르며 미션을 수행한다는 것. 여러모로 이야기가 되는 그림이 나옵니다. 축구팬으로서 저는 그저 부럽다, 만 연발하며 슈퍼스타K 2 4인방의 사직구장 방문 소식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4명이 부르는 애국가 하모니는 어떨까, 하는 마음에 관련 동영상이 뜨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각종 포탈싸이트에 관련 영상이 업데이트가 됐는데, 영상보다 기자들의 실시간 사진전송이 더 빨랐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터지고 말았죠. 기자들이 전송한 사진 중에 존박이 왼쪽 주머니 쪽에 손을 넣고 있던 장면이 보였거든요.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애국가를 부른 존박의 자세에 대한 드립이 시작됐죠. 미국국적인 존박이 애국가 정신을 훼손했다며 네티즌들의 성토도 있었고요.

하여 현장에 있었던 사진기자들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궁금한 마음이 컸거든요. 그런데 그 장면을 주의깊게 본 기자들은 왼쪽 주머니에 뭔가를 잡고 있었다, 고 이야기를 했어요. 공통적으로요.

그 중에 한 기자분은 그걸 주의깊게 봤다고 합니다. 4인방 중 한 명이 뭔가를 오른손에 잡고 있었다가 왼쪽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그걸 다시 빼서 다른 멤버들에게 보여줬다가 다시 넣었다를 반복했다네요. 저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하는 생각에 사진을 찍었답니다.

일단 엠넷미디어에서는 논란이 커지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애국가를 부른게 아니라 너무 긴장해 주머니 속 피치파이프를 잡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손을 빼고 애국가 제창에 집중하겠다는 해명 자료를 보내줬지요.


그 기자분의 사진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엠넷의 ‘물타기’정도로 봤는데요, 사진을 보니 정황 상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아마 금요일 생방송에 관련 장면과 존박의 인터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존박이 너무 긴장해 주머니에 있던 피치파이브(아카펠라 등 여러 명이 모여 노래를 부를 때 음을 조율하기 위한 작은 피리모양의 도구)를 잡고 있었다고 엠넷 측은 밝혔는데요, 아무리 긴장해도 그렇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저는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시간을 잠깐 뒤로 돌려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작년 3월 8일 강릉종합경기장. 강원FC는 제주유나이티드와 역사적인 창단 첫 경기를 가졌습니다. 당시 관중은 2만 2000명 가까이 왔고요 티켓은 전량 매진이었습니다. 관중들로 가득 찬 경기장에서 울려퍼치는 함성 소리는 심장까지 울리게 만들더라고요. 스피커 음량을 크게 키워놓고 있으면 몸도 같이 울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잖아요. 그때가 딱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날 김영후 선수의 모습이 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얼굴엔 핏기 하나 없는, 잔뜩 경직된 표정을 한 채로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에 대답도 없이 계속 왔다갔다 하더라고요. 화장실을 10번도 넘게 간 거 같아요. 대답이 없었던 건 후에 들어보니 옆에서 하는 이야기가 잘 들리지도 않았고 집중도 안돼 자신에게 말을 걸었는지조차 몰라서 그랬던 거라네요.

그날 결승골을 터뜨린 윤준하 선수도 프로 데뷔 첫경기였어요. 교체로 투입이 됐는데, 들어가는 순간 딱 공만 보였대요. 공을 제외한 나머지 풍경들은 모두 흑백처리가 됐다고. ㅎㅎ 강백호가 처음 경기에 투입됐을 때 공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다 검게 보이던 장면 기억하세요? 그때는 만화적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윤준하 선수도 만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프로 짬이 가장 높은 주장 이을용 선수가 “정신차려!”하면서 소리를 지르셨대요. 그 순간 갑자기 시야가 확 넓어졌다고. 주장님 말씀대로 정신차리고 뛰었고 결승골도 그 덕분에 성공한 게 아닌가 싶어요.

경기장은 그 구조상 그라운드에 선수가 있게 되면 자신을 중심으로 둘러쌓인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좌석 하나하나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면요? 그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고 있다면요? 그 소리가 그대로 아래쪽에 있는 선수들에게 전달이 되는데 그때 받는 에너지와 열기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느끼기 힘든 수준입니다.

2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다녀갔던 작년 강원FC 개막전 당시 저도 그라운드에 있었는데요, 그때 저도 정신줄 놓는다는게 이런거구나, 하며 넋을 놓고 관중들을 봤던 기억이 나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선수들도 마찬가지였고요.

롯데와 두산과의 경기가 열렸던 지난 일요일. 사직구장에는 만원관중이 들어찼고 수용인원이 2만8,500명이라고 들었으니 거의 3만명에 가까운 관중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그런 수많은 사람 앞에서 서 본적이 없었던 존박의 긴장이 저는 십분 이해가 됩니다. 라이브로, 그것도 애국가를 불러야했는데 옆에 있는 사람 목소리도 잘 안들리는 그곳에서 실수 없이 화음을 맞춰야만 했으니. 압박이 꽤나 심했겠죠.

존박에게 애국가를 부르는 순간은 무척이나 특별했을 거예요. 어머니의 나라에서, 자신이 모국어로 -존은 아메리칸 아이돌 출연 당시 영어는 제2외국어라고 했답니다- 생중계로 애국가를 부르다니요.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을테고, 그래서 더 부담감도 컸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화음을 잘 맞춰야한다는 생각에 빠졌고 버릇처럼 자신도 모르고 주머니 속 피치파이프를 잡았던 것이고 허각이 애국가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정자세로 애국가를 부르게 된 거죠.


선수들도 경기를 앞두고 긴장을 하면 자주 나오는 습관, 버릇들이 자연스레 나오게 되요. 예를 들어 오른쪽 축구화 끈을 먼저 묶고 나온다거나 이승렬 선수처럼 그라운드에 한자로 자신의 이름 ‘승’을 손가락으로 쓴다거나하는 식으로요.

아무래도 만원관중이 주는 그 거센 기운에 눌려, 그로 인한 긴장 때문에 으레 나오던 습관이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그를 너무 몰아세울 수 없지 않겠어요. 일단 존박은 미디어와 격리된 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고 이와 관련된 사과를 어떤 경로를 통해서 과연 할 수 있을까요. 엠넷 제작진과 슈퍼스타K2 프로그램이 전부일 것입니다, 따라서 금요일 생방송 무대 도중 영상을 통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금요일 방송 전에 엠넷이 존박 논란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한 것은 이것이 애국심 문제로까지 뜨겁게 퍼지고 있어 나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만원관중들로 가득찬 경기장에서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저는 왜 존박이 그런 실수를 하고 말았는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물론 비록 실수일지리도 일단 애국가를 부르는 중요한 순간에 더 집중하지 못했던 것을 본다면 존박도 어느정도 잘못이 있지만요. 하지만 진심으로 사과하고 뉘우친다면, 그 진심이 우리에게도 느껴진다면, 그때는 알겠다며 용서해줘야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