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 썸네일형 리스트형 폭우속에서도 지소연은 빛났다 지소연을 만났습니다. 2년만의 만남이었어요. 2008년 8년 U-17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을 때 주장 완장을 차고 있던 꼬마 아가씨는 2년 만에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을 넘어 세계 여자축구계를 지배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앳된 느낌은 이제 없더군요. 그녀의 플레이가 성장한 것처럼 말이에요. 지소연은 2년 전 우리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 기억나요, 라며 라커룸으로 들어가는데 굉장히 밝아보였고 또 또랑또랑한 느낌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2년 전만에도 제가 던진 질문에 잘 대답하지 못하던 수줍던 소녀는 이제 없더라고요. 언론과의 인터뷰가 많았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저를 대하는 태도도 한결 자연스러워졌더군요. 부쩍 성장한 지소연의 모습에 제가 조금 압도되기도 했습니다. 통일대기 전국여자종별축구대회 결승전.. 더보기 대통령과 셀카발언 지소연 악플은 가혹하다 지난달 독일에서 U-20여자월드컵에서 여자청소년대표팀은 3위에 오르며 남녀 축구를 통들어 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중에서 팀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지소연은 FIFA 주관대회에서 첫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고 6경기 8골을 터뜨리며 실버부트와 실버볼을 동시에 차지했습니다. 남자축구 같은 지원도 대우도 받지 못하여 운동선수로서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은 처우가 좋은 여자배구나 여자농구를 선택하고 있을 때, 그래도 축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공을 차던 몇 안되는 소녀들은 눈물 나는 결과를 이뤄냈습니다. 헝그리정신이니, 투혼이니, 그런 말들을 쓰고 싶지 않지만 작금의 여자축구 환경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소연을 더 대견하고.. 더보기 지소연의 눈물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U-20여자월드컵에서 3위에 오르며, 여자청소년대표팀은 남녀 축구를 통틀어 FIF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초청 K-리그 올스타전이 이런저런 잡음들로 시끄러웠고 그 때문에 다수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기도 했으나 U-20여자대표팀의 금위환향을 넘어갈 수는 없겠죠. 최인철 감독이 이끈 U-20여자대표팀은 조별예선에서 스위스(4-0)와 가나(4-2)를 대파하고 조 2위로 8강에 진출해 멕시코(3-1)를 꺾고 준결승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고지 하나만 넘으면 결승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지만 개최국 독일에 1-5로 패하며 4강진출에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3-4위전에서 콜롬비아(1-0)를 꺾으며 언니, 오빠 선수들이 해내지 못했던 3.. 더보기 여자축구 선전보니 몰락한 박은선이 안타깝다 2006년 10월에는 마산에서 열린 피스퀸컵 브라질전. 15세 8개월만에 A매치에 데뷔한 그녀 때문에 한국 축구 최연소 A매치 기록이 깨졌습니다. 그녀는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지소연. 종전 기록은 16세 6개월에 A매치에 출전했던 박은선이 세웠죠. 한국여자축구 사상 최초로 AFC 올해의 선수상 후보에 오른 것은 박은선(2004년). 후에 지소연이 그 뒤를 이어졌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은 박은선 뿐이었습니다. 4강에 오른 U-20여자축구대표팀의 선전에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있을 때, 박은선이 소속팀 서울시청을 무단으로 이탈한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서호정 서울시청 감독의 말에 따르면 박은선이 전반기를 마치고 준 휴가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20일에 돌아오지 않.. 더보기 오늘보다 내일 더 빛날 여자축구대표팀 실로 아쉬운 결말이었다. 2008여자아시안컵에서 안익수 감독이 이끈 한국 여자대표팀은 일본과 호주에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5년 만에 일본을 상대로 낚은 짜릿한 역전승과 신흥 강호 호주와의 대등한 경기에서 알 수 있듯 나쁘지 않은 내용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희망이라는 뒷맛이 더 컸기에 여자대표팀의 내일 날씨는 현재, ‘맑음’이다. 세대교체의 절정 이번 여자아시안컵에 나선 안익수 사단의 평균 연령은 22세로, 선수단의 약 80%가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젊은 피’로 이뤄졌다. 대표팀에서 1970년대 생은 1979년에 태어난 주장 김유미(대교)가 유일하다. 물론 지난 2월 동아시아축구대회 당시까지만 해도 안익수 감독은 ‘맏언니’ 삼총사 유영실 송주희.. 더보기 '여자 박주영' 박은선의 부활을 기다리며 2003년 10월15일 전국체전 여고부 축구 결승전이 열린 정읍공설운동장. 사람들의 눈동자는 한곳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실점의 끝에는 박은선이 있었다. 열일곱 어린 나이로 아시아선수권과 여자월드컵을 접수한 여고생 골잡이의 움직임에 사람들은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5동아시아선수권. 박은선은 감각적인 힐킥으로 단 한 번도 넘지 못했던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며 원년대회 우승 트로피를 한국에 안겼다. 박은선이 가장 화려하게 빛나던 시절이었다. 당시 세상은 그녀에게 ‘천재’, ‘여자 박주영’이라는 호칭을 쉬이 허락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우리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던 박은선과 만난 순간은.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까 박은선의 A매치 출전이 또 무산됐다..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