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었을까요. 1996년 K-리그 데뷔 이후 줄곧 수원에서만 뛰었던, 그리고 지금도 뛰고 있는 원클럽맨 이운재의 은퇴 경기는 수원의 홈구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이것 역시 운명이었을까요. 전반을 무실점으로 마감하며 슈퍼 세이브를 보고 싶었건만 전반 26분 나이지리아에 1골을 내주며 바로 정성룡과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전반 중반 교체되면 보통은 벤치에 앉아 경기를 보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운재는 곧바로 락커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웬지 눈물을 속으로 삭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맺히는 눈물을 보여주기가 싫어 락커룸으로 가고 있다고, 그의 뒷모습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축구를 보았던 제게, 이운재는 언제나 국가대표팀 골키퍼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서 정성룡이 주전자리를 꿰차고 나왔을 때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겠지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고요.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운재는 이번 나이지리아전까지 17년 간 붉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A매치 공식기록은 132경기 114실점. 홍명보 감독(136경기)에 이어 최다 A매치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국내 GK로서는 최초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며 화려하게 빛났었죠.

1994년 월드컵 독일전에서 하프타임에 교체 출전해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데 이어 2002년과 2006년, 2010년 이렇게 4번의 월드컵을 대한민국 대표선수로서 치렀습니다. 2000년과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대한민국을 3위로 이끌기도 했고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이운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 다들 같을 것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내고 씩 웃던 장면이요. 제가 기억하는, 이운재의 가장 섹시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는 이란과 8강전에서 마다비키아의 승부차기를 막아내 대한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고 3-4위전에서는 일본의 여섯 번째 키커 하뉴의 슛을 선방해 3위 트로피를 조국에 안겼죠.

위기의 순간마다 대한민국을 승리로 이끈 해결사 수문장이었지만 관심과 사랑이 컸던 만큼 비난과 구설수도 많았습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때아닌 몸무게 논란이 일어 ‘돼운재’라는 별명과 함께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 영웅이 되어 돌아왔지만 뒤늦게 음주사건이 터졌고 대표팀 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로서 서는 마지막 순간 이운재는 행복했다고 소회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뛰어서,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습니다”라고요.

이제 파주에 소집돼 훈련을 소화하는 것도, 대표팀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 것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겠죠. 파주 가는 길도 며칠 전 그 길이 마지막 길이 되었죠. 그는 애써 참았지만 우리는 보았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던 그 순간 이운재가 흘린 눈물을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7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대표로 뛴다는 건요.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했겠죠. 하지만 그 세월동안 늘 몸무게 논란이 꼬리표처럼 이운재를 따라 다녔고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라는 조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가 17년 간 대한민국 골문을 책임질 수는 없었겠죠. 그 중압감에 무리한 다이어트로 2년간 결핵을 앓아야만 했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건너 뛰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얼마 전 수원에서 함께 뛰고 있는 한 선수가 제게 그랬습니다.

“운재 형을 보면 정말 안스러워요. 워낙에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식사시간에도 마음 놓고 밥을 못드세요. 저희가 먹는 딱 절반만 식판에 올려놓고 먹는 거 보면 저렇게만 먹고 배가 찰까?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데, 그런데도 형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시는 거 있죠.”

국가대표 선수라는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았습니다. 물론 당분간은 K-리그에서 당신을 볼 수 있겠죠. 여전히 수원맨이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은 가져도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 먹고 싶은 음식들, 조금씩 드셔보세요. 여자 주먹만큼만 밥 먹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요.

마음껏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밥 먹는 이운재,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대한민국 골문을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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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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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세상에 바뀌었다는 건 날이 가고 해가 갈 때마다 느낍니다. 트윗 상에서 내가 작성한 단문메시지가 나를 팔로우한 사람들의 핸드폰으로 전달되는 것도 신기하고 핸드폰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영상통화를 하는 것도, 제게는 참 신기한 세상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막연히 과학글짓기 대회 때, 수상을 목적으로 상상하여 적었던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 살게 됐으니까요.

몇년 전 커밍아웃을 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던 홍석천을 보며 왜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으며 눈물을 흘려야했을까, 했는데 이제는 다시 공중파에서 볼 수 있게 됐고 또 동성애가 주말 드라마 소재로도 나오니, 조금은 세상의 인식도 과학 못지 않게 바뀌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축구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나 세상 모든 스포츠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나 축구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지는 -축구를 하다 답답해도 그 공을 들고 뛰며 럭비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럭비에도 관심이 많아요. 6년 전 럭비월드컵을 취재하러 갔을 때 영국 럭비대표팀 선수에게 이번 대회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의 플레이를 보고 반했다며 흥분하자 그 선수는 한쪽 입술을 올리며, 그러니까 썩소를 지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호주랑 뉴질랜드? 걔네 절반 이상이 게이야. 그래서 난 그쪽 나라 팀이랑 경기하는 게 정말 싫어. 럭비는 종목 특성 상 뒤엉키며 싸워야하는데, 게이랑 뒹굴면서 뛰어야하다니! 너무 더러운 거 아니야?"

단순히 라이벌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되는 억지논리를 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2008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동성애자 선수에 대한 뉴스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죠. 당시 로이터통신이 동성애자 웹사이트 조사를 통해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1만 여명의 선수 중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선수는 15명이라고 발표했지요. 그중에 9명이 여성이었고 남성은 단 1명, 호주 대표팀의 다이빙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실제 동성애자 선수는 1천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맺음 때문이었죠. 그 기사를 읽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포츠 선수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기란, 쉽지 않겠죠. 동성끼리 경쟁해야하는데, 동성을 사랑하는 선수라면. 개인 스포츠가 아닌 단체 스포츠라면, 함께 뛰는 선수들이 과연 그 선수를 팀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선수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앞서 언급한 호주 대표팀의 다이빙 선수는 매튜 미참 선수입니다. 그는 당시 베이징올림픽에서 다이빙 남자 10m 플랫폼에서 호주에 금메달을 안겨주었죠.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며 했던 말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호주의 다이빙 선수로 알려지길 원한다. 내 삶에서 동성애와 다이빙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라고요. 동성애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성적 취향이고 이것과 스포츠선수로서 임하는 태도는 별개의 문제라고 세간의 관심에 딱 잘라 말했죠.

최근에 다시 한번 스포츠와 동성애가 이슈에 올랐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불의의 부상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한 발락의 에이전트가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 독일 대표팀을 'bunch of gays'라고 말했거든요. 해석하자면 게이소굴 쯤 되는데, 이 같은 발언을 한 미하엘 베커는 1999년부터 발락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으니, 독일에서는 나름 슈퍼 에이전트로 분류되는 사람이죠.

미하엘 베커는 이번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독일 대표팀 중 일부 선수들이 동성애자라는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전 독일대표팀 선수는 이 같은 사실을 밝히려고 했는데 문제의 그 선수는 바이(양성애자)였다고 하네요. 뭐, 사실 중년도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며 훈남 감독 대열에 오른 요아힘 뢰브 감독도 월드컵 기간 중 동성애 소문이 돌았는데요 -남다른 패션 센스도 그의 게이설을 뒷받침한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 그 때문인지 부인과 찍은 사진을 몇 장 공개하기도 했죠. 사진 속 뢰브 감독 와이프는 약간 후덕한 중년의 독일 아줌마 포스를 마구 뿜아내고 있어, 저도 그 사진을 보며 이 아주머니는 전생에 도이칠란드를 구했나, 하는 생각도 했더랬죠.
사랑에 있어 신분과 국경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평소 생각하며 살아온터라 성별 역시 전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 역시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성애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동성애를 버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하지만 난 동성애자인걸, 이라고 인정하기까지 쉽진 않았겠죠. 그래서 저는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더럽다며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만, 종교적 관점에서 생각하더라도 그 역시 조물주가 만든 소중한 생명체이고, 존중받을 권리는 당연히 있습니다. 돌은, 그렇게 쉽게 던지라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가끔 국내 프로축구 선수는 모두가 이성애자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있어도 부정하고 말 못하는 게 아닐까,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감추고 이성애자의 가면을 쓴 채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아주 가끔 품어본 적도 있고요.

몇년 전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선수였고, 그래서 인터뷰를 꽤 여러번 했기에 안면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조금은 편하게 축구가 아닌 다른 이야기도 하는 사이였거든요. 기자 대 선수가 아니라 다른 국적을 지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요. 그때 그 선수가 해준 이야기가 자신의 팀에 있던 코치가 양성애자였다는 겁니다.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양성애자였기에 동성에 대해 남다른 사랑의 감정도 꽤나 깊게 느꼈나봐요. 그걸 선수들도 조금씩 눈치챘는데 어느 날 락커룸에 앉았는데, 새로 들어온 이적선수 옆에 꼭 붙어 앉자마자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무릎과 허벅지를 만졌다지 뭐에요. 축구는 몸으로 부딪히며 하는 스포츠일 뿐 아니라 심장박동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흥분도, 열기도 대단한 스포츠고 또 무엇보다 팀 스포츠다보니 선수들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역시 남다르죠. 동료 선수가 골을 터뜨릴 때마다 얼싸안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곤 하는데, 때론 이게 남다른 애정표현처럼 보여 관련 사진들을 모아서 커플로 엮어 글을 쓰는 블로거들도 있죠.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는 기청용(기성용-이청용의 합성어, 브란젤리나 같은 합성어로 생각하면 되겠죠) 커플이 가장 유명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

어쨌거나, 그게 좀 파급이 셌나봅니다. 코치의 동성애적 기질을 선수들도 느꼈는데, 새로운 선수가 오자마자 직접적인 터치가 오가는 모습을 선수들이 목격했으니, 팀이 어수선할 수밖에요. 그래서 결국엔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고 하네요. 외국에선 동성애가 국내보다 관대한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스포츠계에서는 더 보수적인 것 같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선수들은 K-리그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잔다르크가 아닌 이상 성정체성 증명보다는 스포츠인으로서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선수들이 대부분, 아니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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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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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에서 멋진 프리킥 골로 우리의 새벽을 뜨겁게 만들었던 박주영 선수가 프랑스로 출국했습니다. 8월부터 다시 시작되는 프랑스리그를 준비하기 위해 떠났는데요,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 생각했지만 현장에서 취소됐다는 소식만 전해졌습니다.

당초에는 출국 전 스탠딩인터뷰가 준비돼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건 최근 그를 둘러싼 뜨거운 감자, 다름 아닌 ‘결혼설’ 때문이었죠. 프리미어리그 빅클럽으로의 이적설에 이은 결혼설이라.

인터뷰 없이 굳은 표정으로 출국한 박주영 선수.

축구선수 박주영이 아닌 인간 박주영으로서, 그러니까 축구가 아닌 것들로 관심을 받는다든 사실에, 박주영 선수는 늘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늘 축구 이외의 것들에도 관심을 갖곤 하죠. 대중의 관심이 그렇다는 이유 아래서 말이죠. 그래서 그는 늘 미디어 앞에서 말을 아낍니다.

이번엔 참 갑작스럽게 결혼설이 터졌습니다. 서울 강남의 모 웨딩 전문 스튜디오에서 여자친구와 웨딩촬영을 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부터였죠. 마침 그때 즈음 치렁치렁,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한, 이마를 덮은 덥수룩한 머리가 예쁘게 다듬어졌고 살짝 펌도 들어갔더라고요. 기자들은 웨딩촬영용 머리라며 수군수군 댔죠.

결혼임박 기사가 나온 이후로 줄줄이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날 박주영의 에이전트는 핸드폰을 끄고 잠적했다는 사실이죠. 그런데도 출처도 없는, 또 박주영의 측근 혹은 지인이라는 내용으로 기사들이 쏟아졌는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측근 중 기자와 통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박주영 선수와 그의 여자친구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요. 박주영의 여자친구는 “나 결혼해?? 양가 엄마 아빠 나 쭈가 날짜도 모르고 장소도 모르는데.. 그들에 의하면 우리가 결혼하는구나”라는 글을 올려 황당한 심기를 드러냈고요.

사실 박주영 선수는 그날 정몽준 회장이 초청한 월드컵 16강 기념 만찬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었는데, 기자들과의 만남이 불편했던지 갑작스레 불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출국을 앞두고도 스탠딩인터뷰를 취소했고요.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이게 왜 기자들의 취재거리가 되야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도, 또 그의 대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에이전트도 노코멘트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전 이번 박주영 선수의 결혼설을 보면서 일단 제대로 된 취재 없이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받아쓰고 돌려쓰는 기자들의 모습에 적잖게 실망했습니다. 일단 쓰고 보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워낙에 팬들의 관심 역시 컸으니까요.

일련의 보도들에 지친 박주영 선수의 여자친구가 미니홈피를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 몇몇 사람들은 공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경솔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카더라 통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혼설과 관련해 마구잡이로 써내려간 기사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쨌거나 이렇게 사건은 이렇게 터져버렸고, 제가 만약 박주영 선수의 에이전트라면 핸드폰을 꺼버리는 대신 공식입장을 발표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세간의 관심은 박주영 선수의 결혼으로 향했고, 무작위로 써내려가는 기사를 막을 순 없을테니, 오히려 공식입장을 프레스에 전달해 정확한 이야기가 기사로 써내려가게 하는 거죠.

결혼을 한다면 지금의 여자친구와 하겠지만, 당장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등의 내용으로 말이죠. 추측성 기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박주영 선수 결혼설과 관련해 모두의 대처방식이 상당히 아쉬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개인사가 아닌 그의 축구사, 기왕이면 화려한 골들로 빛나는 축구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싶군요. 우리들의 축구천재, 박주영 선수의 새 시즌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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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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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지인들에게 그래도 월드컵 우승팀을 알겠지, 라는 생각에 이번 월드컵 우승팀을 물어보니 역시나, 정답을 빗겨난 대답들뿐이었습니다. 유로2008 당시 앙리 들로네컵에 이어 이번에는 월드컵까지 거푸 들어 올린 무적함대 스페인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먼나라 이야기였죠.

하나 우승팀 스페인은 몰라도 파울은 알더군요. 반칙의 영어 표현 Foul이 아니라 점쟁이 문어 Paul의 이야기입니다. 축구에 관심 없던 지인들도 파울이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경기 승패를 모두 맞힌 게 참 신통하다며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군요.

독일에서 살고 있는 2살 반의 문어 파울은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의 7경기와 스페인-네덜란드의 결승전까지 맞추며, 무려 8경기의 승리팀을 정확하게 예측한 덕분에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큰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사실 승패를 고르는 건 2분의 1의 확률이지만 8경기를 연속으로 적중시키는 확률은 256분의 1로 확 떨어집니다. 프로토의 달인이라도 8경기 연속은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문어 파울은 참으로 신통하게도 해냈습니다.

무엇보다 파울이 더욱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건 금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점친 펠레의 예언을 이겨냈다는 것이었죠. 알다시피 펠레는 늘 16강 진출팀을 시작으로 우승팀까지 매번 월드컵에서 열심히 지목하고 ‘설’을 풀어내지만 ‘펠레의 저주’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가 지목한 팀은 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경기에 패하며 서둘러 고국행 비행기를 타야했거든요.

그런데 파울도 스페인을 우승국으로 지목했고 펠레도 지목했습니다. 결국 파울의 예지력이 펠레의 저주를 이겨낸 셈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더 열광했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며,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편으론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선수가 스타가 아닌 동물이 스타가 된 월드컵이라뇨.

별들의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별보다 빛났던 스타의 쓸쓸한 뒷모습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신예의 비상에 박수쳤습니다.

그러나 유독 이번 월드컵만은 조용하네요. 남아공월드컵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거 예상했던 메시와 호날두는 침묵했으며 카카 역시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수아레즈의 신의 손 사건은 마라도나만 못했죠. 비야와 스네이더는 유로2008만 못했고요 외질과 뮐러, 수아레즈 역시 스타성에서는 2%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앙리와 오언이 외려 더 강렬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최다골 2위에 오른 클로제도 호나우도의 아성을 이겨내진 못했고요 근래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월드컵 스타 지단과 칸나바로만큼 빛을 발한 선수 또한 없었고요.

어쩜 빅클럽들간의 대항전, 챔피언스리그의 바쁜 일정 속에서 지칠 데로 지친 스타들에게 이번 월드컵은 고난의 행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쉴 틈 없이 바로 월드컵이 이어졌으니 팬들의 기대만큼 기량을 보여주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 언젠가 마라도나가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 중에 했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축구를 했다, 라고요.

오늘날의 축구판은 빅클럽들의 선수영입 경쟁으로 뜨겁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계적인 선수들의 몸값은 자신들이 가진 기량을 넘어서 이미 천문학적으로 올라만 가고 있고요. 빅클럽들은 그 싸움에 이기기 위해 더 크게 옵션을 걸고 베팅을 합니다. 뷰티풀게임에서 머니게임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축구란... 본질은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는 것만 같아 서글퍼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네요.

바라옵건대, 4년 뒤에는 진짜 축구를 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월드컵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마라도나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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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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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요르단과의 A매치가 끝나고 믹스트존에서 만난 기성용 선수에게 넌지시 물어봤죠. 그날 그의 단짝 이청용 선수가 데뷔골을 기록했는데 부럽지 않냐고요. 멋적을 때면 늘 고개를 살짝 위로 올린 채 수줍게 웃던 그는, 역시나 그 질문에 대답할 때도 천장을 바라보며 웃더군요. "너무 부럽죠"라면서 말이죠.

데뷔전도, 데뷔골도 늘 청용이가 빠르다며 아쉬워했던 기성용 선수. 그런 그가 북한전에서 홍영조의 PK골로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23분 김두현의 패스를 그대로 오른발 발리슛으로 성공시키며 한국에 동점골을 안겼습니다. 본인에겐 A매치 데뷔골이었죠. 그것도 2경기 만에 얻은 성과니 실로 값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요르단전에 이어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던 북한전까지. 허정무 감독은 기성용 선수에게 '공격적'으로 뛸 것을 주문하는 듯 했습니다. 특히 요르단전 때는 후반 말미 기성용 선수가 뛰던 공간은 거의 스트라이커와 다름없는 위치에 있었죠. 결국은 그의 공격적 움직임이, 찬스를 놓치지 않던 집중력이 벼랑 끝에 있던 한국대표팀을 구해냈군요.

북한전이 끝난 후 지인들에게서 꽤 연락이 왔습니다. 동점골을 성공시킨 저 샤방한 선수는 누구냐면서요. 경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성용 선수는 축구선수(?) 답지 않게 고운 외모를 자랑합니다. 피부도 얼마나 좋은지 볼 때마다 저는 부럽습니다. 햇볕 아래서 뛰는 선수가 어떻게 여자인 나보다 피부가 더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죠.


그랬던 기성용 선수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도움을 2개나 기록하는 등 날카로운 킥력을 선보이며  대한민국의 원정 첫 16강 진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청용 선수 못지 않게 화제의 중심에 오른 기성용 선수. 모델보다 더 모델 같은 외모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엄친아로 등극한 그와 진행했던 화보사진을 살짝 공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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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 촬영은 이청용 선수와 함께 했는데, 촬영 내내 두 선수가 티격대격하더군요. 배고플까봐 준비한 김밥을 내왔을 때 '빵'만 좋아하는 이청용 선수가 극구 사양하자 성의를 생각하면 먹어야되는게 아니냐며 화를 버럭내던 기성용 선수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답니다. ㅋ

늘 예의바르고, 또 수줍음도 많지만, 할 말은 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는 기성용 선수. 그 모습을 지금처럼, 또 언제나처럼 간직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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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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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3일. 올림픽대표팀이 일본과의 친선경기를 하루 앞뒀던 그날, 훈련장에서 정성룡 선수를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정성룡은 포항에 적을 두고 있었고, 플레이오프에서 수원에게 아쉽게 패한 뒤였죠.

“괜찮아요. 언제까지 그 게임만 생각할 수 없잖아요. 수원에게 진 건 마음 아프지만 이제 다음을 준비해야죠. 물론 아쉬운 마음은 조금 있지만요. 아직까지 한 번도 우승이란 걸 해보지 못해서 욕심은 있었어요. 작년 2군리그에서도 4강에서 떨어졌거든요. 그렇지만 올해 처음 1군에서 뛴 거잖아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에요.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제 막 시작했다, 며 예의 변함없던, 그 느릿느릿한 말투로 담담히 속 이야기를 털어놨던 정성룡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포항에 왔을 때만해도 2군에서 게임 뛰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김)병지 형이랑 (조)준호 형도 있었고, 저까지 합해 골키퍼가 5명이나 있었거든요. 전 그저 형들 게임하는 거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건요, 그가 결국엔 꼭 4년 전 제게 말했던 그 꿈을 이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제가 원래는 스위퍼였는데 중2 때부터 골키퍼로 뛰었거든요. 그때가 마침 프랑스월드컵 기간이었는데, 네덜란드전에서 보여줬던 병지 형 모습에 반했어요. 우리나라가 5-0으로 졌지만 형의 움직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때부터 좋아하게 됐어요. 그 후 제주도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제주도에서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가 열렸어요. 그때 볼보이한다고 골키퍼 뒤에 있었는데 그 골키퍼가 병지 형이었어요. 평소 존경하던 선수가 바로 제 옆에서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다고 다짐했죠. 열심히 해서 꼭 형처럼 국가대표 골키퍼가 되겠다고 제 자신과 약속했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형이랑 같은 팀에서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그게 더 운동에만 전념하게 된 계기가 됐고요.”

그날 정성룡이 해줬던 이야기 중에는 가슴 아픈 가족사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체구는 크지만 눈이 참 슬퍼 보인다고, 눈물이 많은 사람 같다고 말이죠.

“눈물이요? 원래는 많았어요. 음… 많았는데…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그날 다 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눈물이 안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서귀포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요. 저 혼자 제주도로 갔어요. 부모님은 분당에 계셨고요. 그런데 제주도 간지 얼마 안돼서, 그러니까 막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께서 저희 집에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따라 갔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하시더니 저를 장례식장으로 데려가시더라고요.”

“음… 원래 몸이 안 좋으셨는데… 갑작스럽게… 그러니까 참으로 갑작스럽게 그렇게 떠나셨어요. 그날 병원 뒷길에서 엉엉 울었어요. 한참 울다 이제 내가 가장이니까 강해져야겠다. 성공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프로 갈 때만해도 계약금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계약금 받은 걸로 어머니께 집도 사드리고, 빚도 갚았어요. 음… 그렇지만 그걸로 효도했다 생각하진 않아요.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죄송한 마음뿐이거든요. 늘 제 뒷바라지만 하셨어요. 그런데도 전 항상 제 생각만 했고요. 용돈 달라고 떼도 많이 쓰고.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는 참 강한 분이세요.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렇겠지만요.”

어떻게 보면 청소년대표팀을 거쳐 올림픽대표팀, 그리고 이제는 국가대표팀까지. 이 정도만 듣다보면 엘리트코스만 밟은 신의 아들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004년과 2005년 박주영의 유명세 때문에 유독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청소년대표팀에 몸을 담고 있었을 때는 차기석의 그늘에 가린 2인자였습니다. 프로 데뷔전도 입단 3년 만에 치러야 했으니 꽤 늦은 셈이었죠.

“항상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기회는 오니까. 그런데 자주 오지 않는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매일 준비하며 기다렸어요. 기분이요? 그냥 덤덤했어요. 아직 더 많이 경험을 쌓아야 하잖아요. 좋아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K-리그 데뷔전을 마친 소감이었는데요, 이번에 월드컵을 치르며 느낀 소감과 참 비슷하지요? 이때 정성룡은 A매치 데뷔전도 어서 빨리 치르고 싶다며 간절한 소망도 드러냈었죠.

“저도 A매치 뛰고 싶죠. 진짜. 뛰어보고는 싶지만 무슨 일이든 쉬운 건 없잖아요. 조금 더 노력하고 기다려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에 대표팀에 있으면서 쟁쟁한 선배들 밑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언젠가는 제게도 기회가 오겠죠. 어떻게 보면 아주 큰 경쟁의 장이잖아요. 그 경쟁 속에서 좋은 날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어야죠.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또 과감하게.”

지난 십년간 이운재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수문장 자리. 이번 월드컵에서 그는 그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결과에 상관없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그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두었겠지요. 어쩌면 은퇴하는 그날까지 그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연습에는 장사없다던 미니홈피 속다짐처럼 땀 흘리며 준비했겠죠.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정성룡 활약 영상>

“나이지리아전이 끝나고 16강을 확정짓던 순간 아버지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4년 전 꿈을 이룬 지금, 이제는 4년 후의 더 큰 꿈을 떠올립니다.

“열심히 했어요. 경기 내용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아쉽긴 하지만 아쉽다고 그 경기만 생각할 순 없잖아요. 이제 또 다음을 준비해야하죠.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다시 인사드릴게요.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17살의 봄, 엄마를 지켜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아직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소년은 그렇게 껍질을 벗고 채 자라지 않은 생살을 드러내며 세상과 싸웠고요. 그래서 꿈을 이룬 지금 이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럽게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지낸 세월의 굴곡만큼, 앞으로는 그의 말처럼 웃는 일들만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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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Tag 16강 진출 병역면제, 16강 진출 병역혜택, 1966 월드컵, 2010월드컵, 4.25팀, FC서울, WBC, 가와사키, 경계인, 곤잘레스 이과인, 국방부, 기라드, 기성용, 기성용 프리킥, 김남일, 김남일 반칙, 김영후, 김정우, 김정훈 감독, 나이지리아, 남아공 월드컵,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병역논란, 대표팀 병역혜택, 대한축구협회, 디디에 드록바, 라이언킹, 리정금, 마라도나, 마라도나 사위, 마르체라노,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메시, 바르셀로나, 박주영, 박주영 골, 박주영 자책골, 박주영 프리킥, 박지성, 박지성 정대세 박카스 CF, 북한, 북한국가대표팀, 북한대표팀, 수와레즈, 수원삼성, 시망, 아게로, 아르헨티나 패배, 아르헨티나전, 아르헨티나전 패배, 에우제비오, 염기훈, 염기훈 노골, 오범석, 우루과이, 우루과이전 패배, 월드컵, 월드컵 16강, 을용타, 이과인, 이과인 해트트릭, 이근호, 이동국, 이동국 MVP, 이동국 득점왕, 이동국 월드컵, 이동국 월드컵 12년, 이동국 월드컵 한, 이동국 프랑스월드컵, 이영표, 이영표 눈물, 이운재 충고, 이을용, 이정수, 이정수 골, 이청용, 이청용 골, 자이니치, 정경호, 정대세, 정대세 어머니, 정성룡, 정성룡 눈물, 정성룡 득남, 정성룡 선방, 정이세, 정해성, 조국통일 세레모니, 조선학교, 조용형, 조중연 회장, 주장 박지성, 지윤남, 차두리, 차두리 눈물, 차미네이터, 차바타, 차범근, 차정혁, 천리마, 최순호, 최진철, 카르발뉴, 코카콜라 원정대, 테베즈, 티티아나, 한민족, 한반도, 호나우도, 호나우두, 호날두, 홍영조, 황선홍 밴드, 흑표범
박지성 선수가 2006 독일월드컵을 마치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팀의 결과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정말 축구를 사랑한다면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그들이 걸어온 여정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볼 수도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박지성은 바로 그런 점에서 당시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거 같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대한민국은 사상 처음으로 원정에서 16강 진출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조금 더 맛보아도 좋으련만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의 열기가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정상에서 박수칠 때 떠나자가 이유였지만, 퇴임 기자회견 중 나온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했습니다.

“잘못해서 비판받는 건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인식공격성 댓글이 지나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힘들다. 조금은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허정무 감독은 인터넷 댓글을 안 본지 10년이 넘었다고 덧붙였죠. 10년 전 허정무 감독의 부친이 돌아가신 그때, 관련 기사에 달린 고인을 향한 악의적인 댓글을 읽고 허 감독은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전혀 댓글을 보지 않는다고 하니 당시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그랬기에 허 감독은 가족들이 더 이상 축구인인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는 일도, 아파하는 일도, 또 힘들어하는 일도 없기를 바랬겠죠. 영광의 순간을 더 만끽하고 싶은 마음도 컸겠지만 가족의 평화 역시 바라는 마음 역시 컸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퇴임을 결정하는데 또 다른 영향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허정무 감독의 부인 최미나씨도 최근 “가족들이 그동안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친분이 두터웠던 기자에게 속내를 비추기도 했으니까요.

아마도, 대다수 축구인들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겁니다. 몇 년 전 터진 기성용 선수의 미니홈피 사건이 문득 떠오릅니다. 당시 기성용 선수는 올림픽대표팀이 연일 졸전을 펼치자 급기야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악플을 다는 네티즌들을 향해 “답답하면 너희들이 축구하던지”라는 글을 메인화면에 쓴 적이 있었죠.

당시 언론과 팬들은 기성용 선수의 이러한 행동이 경솔했다며 몰아세웠습니다. 그때 전 기성용 선수가 K-리거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무명이었을 때 인터뷰를 한 덕분에 나름 안면이 있었습니다. 워낙에 애어른 같던 선수였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왜 그랬냐며 이것 또한 곧 지나갈 거니까 힘내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워낙에 안팎으로 부침이 심해 답장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침 답장이 왔더군요. 하고 싶은 말을 문자에 다 담기에는 부족했나봅니다. 그가 보낸 멀티메일 속 이야기를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축구를 못한다면, 저 하나만 몰아세우고 욕하고 비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왜 그들은 저희 아버지, 어머니를 거론하며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족들이 악플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들었어요. 제가 경기에 나서 기대에 못 미친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못했다고 제 가족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한 네티즌들도 어느 정도는 잘못하지 않은가요? 축구를 못해서 제가 마음에 안 든다면 저한테만 욕했으면 좋겠어요. 축구를 하면서 못해서 욕먹는 건 감당할 수 있어도 제 가족들이 저로 인해 상처받는 모습은 볼 수가 없어요.”

악플과의 싸움. 언제부턴가 축구선수들 역시 이름이 알려지고, 누구나 알만한 공인이 되면 언제고는 한번쯤은 치러야할 통과의례고 연례행사인 듯합니다. 인터넷의 시대는 그렇게 축구선수들에게 피하고 싶은 ‘태클’을 안겨주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 한일전에서 모 선수가 자살골을 넣었던 적이 있죠. 그때 그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가장 먼저 했던 게 뭔지 아시나요? 버스에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호텔 방까지 달려가 미니홈피 방명록을 닫았던 일이라고, 누군가가 웃으면서 해줬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그 선수의 나이는 겨우 스물셋. 어린 나이였지만, 감당하기 힘든 말들이 쏟아질 것을 알았던 거죠. 어떤 이들에게는 코믹한 상황으로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그 선수에게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 악담들을, 어린 마음에는 감당하기 힘들었기에 그는 스스로 방명록을 닫는 것을 택한 거죠.

차범근 감독도 얼마 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마이크로블로그에서 한 네티즌이 무릎팍 도사에는 출연할 계획이 없냐고 물었죠. 최근 팬들의 질문에 진솔하고 재치있는 답변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던 만큼, 무릎팍 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간 차범근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겠죠.

“우리 식구들이 남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맘 놓고 하기에는 아직 가슴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아... 아직도 우리식구들은 98년을 기억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화제에 올리질 않거던…

그때 배운 게 무고한 일로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지. 지난번 우리 범석이 일을 지켜보면서도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거던… 이런 일에 휩싸이면 우선 본인이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팀이 망가져버려.

98년 내가 할 때도, 최용수가 불교라서 안뛰게하고 기독교인 김도훈이가 대신 뛰어서 졌다고 우기는데 돌아버리겠더라고…… 사실 김도훈은 염주를 손목에 차고 다니는 불교신자고, 최용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는데 말이야… 황선홍 선수도 마지막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난감해 죽겠는데, 내가 황선홍을 시기해서 안 뛰게 한다는 거야.

문제는 이럴 때 기자들이 알면서도 입을 닫는다는 거야.

그때 한국축구가 좀 될려면 바로 이럴 때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구나 생각하기도 했어… 그 후 나한테 늘 미안해하던 최용수는 2002년 월드컵팀 고참으로서 팀 막내 두리한테 아주 잘해줘서 고마웠지.

팬들은 그럴 수 있어. 그러나 대표팀에 해가되는 오해나 억지는 적극 풀어줘야 팀이 건강하게 꾸려지는 거야. 나나 우리가족은 그때 받은 상처 때문에 여성지나 토크쇼에 단 한 번도 출연을 안 하고 있어

두리가 반박자 늦어서 골 찬스를 줬을 때 나는 숨이 멎는 거 같더라고. 온몸의 피가 쏵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물론 두리 , 이럴 때는 차두리 선수라고 불러야겠다. 차두리 선수 개인의 문제도 아버지 입장에서 걱정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리마저 주저앉으면 오른쪽이 없다는 거야.

우리 범석이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생각해 봤어? 어린 나이에 그런 중압감을 이겨내기가 쉽겠냐고!!!! 통화할 때마다 범석이 좀 잘 다독거리고 위로하라고 이르기는 하는데 핵폭탄을 맞은 상처가 쉽게 회복되겠냐고!!! 두리가 실수 이후에 그냥 주저앉아 버리지 않고 경기에 집중을 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은 했지

우리선수들도 다 여러분들의 동생이나 친구 같은 나이야. 아버지나 선생님한테 야단맞아도 슬프고 화나고 그러잖아. 그런데 융단처럼 쏟아지는 비난을 그 어리고 작은 가슴으로 받는다고 생각해봐. 나는 마음이 너무 아퍼.

두리더러 한번 안아주라고 하면 분명 지 힘자랑 하느라 헤드락을 걸어버릴테니 범석이가 더 힘들 거고....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미안해하자고. 오케이?”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의 요지는 허정무 감독의 사퇴 뒤에 악플이 직접적인 원인이었기에 반성하자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축구선수들이,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근거 없는 비난과 악플 때문에 힘든지를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최선을 다하더라도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넘어질 때도 있고요. 2등도 아닌 정상에 멀리 떨어진 채 서 있는 자신을 볼 때도 있습니다. 자신은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지요.

다시 시계를 돌려봅시다. 학창시절로요.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던데, 중간고사 성적 하나만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고 가치가 매겨지고 1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쓸 모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그런 경험을 다들 한번쯤은 해봤을 거라고 봅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우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단지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부적격자 취급을 받았고 부모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경우와도 만나야만 했습니다. 특히나, 너희 부모님이 너를 그렇게 가르치시던, 너희 어머니는 이런 너를 낳고 미역국을 드셨을까? 식의 발언을 들을 때면 정체감이 상실되다 못해 모멸감까지 느꼈을 것입니다.

많은 축구인들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10대 말에서부터 20대 중후반까지, 사회 초년생에 해당되는 어린 나이에 그들은 참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였으니까요. 단 한 번의 패스미스로 골을 헌납했으니까요. 무수히 많은 찬스를 허공에 날려보냈으니까요. 바보같이 자책골을 기록했으니까요. 쓸데없는 반칙으로 상대팀의 선제골을 도왔으니까요.

팀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크고 깊은 만큼, 선수들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팬들의 실망감 역시 큽니다. 그래서 더 비판하게 되고 쓴소리를 하게 됩니다. 압니다. 저 역시 그런 순간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남편이고 혹은 남자친구입니다. 그 소중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욕지거리를 듣게 되고 비난을 받는다면, 그들의 가족은 어떤 마음으로 그 선수를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카테고리에 묶여 함께 비난을 받을 때 그 선수의 마음은 또 어떨까요. 그 자괴감과, 상실감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진정 축구를 사랑한다면 경기력으로만 판단하고 애정 어린 비판을 할 수 있는 우리이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축구를 축구로만 생각하는 우리 모습을 그려봅니다. 다음 월드컵에서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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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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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진짜로 34살!!”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이 끝난 후 이영표 선수의 나이를 확인 한 후 저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축구의 신이 있다면, 저 선수가 정말 34살이 맞습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죠.

그러나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실린 프로필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1977년생. 우리나이로 34살. 초롱이 이영표 선수도 어느새 노장의 대열에 들어섰더군요.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이영표는 이번 월드컵에서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뒤적였던 거죠. 34살이 24살처럼 뛸 수는 없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현장에서 직접 본 아르헨티나전. 현란한 개인기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이것이 최순호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선수들의 플레이구나, 라며 정신없이 지켜보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가 너무 대단해 저는 우리가 대패하고 있다는 생각도 잠시 잊었습니다- 또 한 선수가 저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영표 선수였습니다.

아무도 메시를 막지 못하고 있을 때, 그때마다 이영표 선수는 로이스 기자를 구하던 슈퍼맨처럼 쨘, 하고 나타나 메시를 봉쇄했습니다. 이영표의 밀착마크에 막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패스를 할 수밖에 없던 메시의 모습을 저는 꽤 여러 번 봤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이영표 활약상>


허정무 감독 역시 아르헨티나전를 마치고 메시 봉쇄법의 열쇠를 이영표가 갖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물론 전담 마크맨은 아니었지만 메시가 측면에서 문전을 향해 적극적으로 드리블할 때마다 이영표의 수비가담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메시에게 공간도, 슈팅도 내주지 않던 이영표의 맨마킹은 칭찬 받을만 했습니다.

이영표 역시 “(내가 마크할 때면) 메시가 슈팅을 많이 하지 못했다. (나는) 쉽게 공간을 주지 않았고 돌파를 허용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찬스 역시 많이 가지지 못했다”며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스러운 평을 내렸죠.

오버래핑 후 복귀 시간도 20대 전성기 시절 못지않게 빨랐으며 크로스 역시 꽤 정확했습니다. 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전에서 이정수 선수가 터뜨린 팀 첫 번째 골 역시 시작은 이영표 선수였다는 거, 이제는 다들 아시죠? 기성용 선수의 정확한 프리킥과 이정수 선수의 위치선정도 훌륭했지만 이영표 선수가 파울을 얻어내지 못했다면 이 모든 것들은 꿈속의 장면으로만 끝날 수도 있었죠. 그것을 현실로 나타날 수 있도록 첫 스케치를 그린 사람이 바로 이영표 선수입니다.

나이지리아와 2-2 동점으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같은 시간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2-0으로 이긴 덕분에 조 2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 이영표 선수는 울었습니다.

월드컵 4강에 오르던 그 순간에도 초롱초롱한 눈에는 그저 함박웃음만 가득했는데, 늘 웃기만 하던 이영표 선수가 울었습니다.

원정에서 치른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16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맛봤기에, 그 감동이 커서 그랬던 것인가. 나름의 추측을 했습니다. 후에 저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됐죠.

“축구를 하는 동안 2가지 기적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2002년 월드컵 당시 이룬 4강 진출이었고 다른 하나가 원정 16강 진출이었습니다. 오늘 그 소원을 다 이뤘습니다. 한국 축구가 저에게 요구한 사명을 오늘 경기를 통해 완수했다는 기쁨에 눈물이 났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이룬 2002 황금세대 중 하나로서 책임감을 느낀 듯 했습니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그는 16강 진출을 위해 뛰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받은 부름이었고 한국 축구가 그에게 맡긴 임무였습니다.

처음 축구화를 신었던 그날부터 꿈꿨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그 중심에 동거동락했던 23명의 선수들이 있었다고 말했죠.

나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감동은 바로 다음 멘트에서 이어졌죠.

“오늘은 모든 걸 잊고, 마음껏 즐기며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오늘만큼은 우리 선수 중 어느 누구도 비판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비판한다면 단호하게 오늘만큼은 그 비판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페널티에어리어에서 불필요한 반칙으로 PK골을 내준 김남일 선수를 두둔하여 한 말 같았습니다. 누군들 김남일 선수들 두둔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경기를 하다보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의욕이 불러낸 안타까운 실수라고 선수들은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나 십자가를 메고 막아줄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대신 김남일 선수를 위해 방패막이 돼 주는 말을 할 수 있다면, 박지성 선수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다들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가 많아도 첫 번째 월드컵이었던 선수들이 많았으니 김남일 선수를 두둔하니까 참으로 애매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박주영, 염기훈 선수가 그를 두둔하기엔 이미 지쳤기에 -지난 예선 2경기 동안 이미 축구팬들의 비난에 심히 시달린 선수들이었으니까요- 그들은 라커룸에서 조용히 “형,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 가운데 오늘만큼은 비판을 거부하겠다고 당당히 말했던 이영표 선수의 마음이 저는 참으로 멋졌고 감동이었습니다.

팀 내 캡틴은 박지성 선수이지만 뒤에서 그 캡틴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나무 같은 사람. 그가 바로 이영표 선수였습니다.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우리는 16강 진출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16강 진출은 대표팀 선수들이 함께 이룬 기적이지만,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그 길이 조금 더 험난했을지 모릅니다.

대표팀의 포백을 책임졌던 이정수, 조용형, 차두리, 오범석 선수 모두 수비수로 나선 첫 번째 월드컵입니다. 만약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조직력과 호흡으로 승부를 걸어야하는 우리 대표팀의 플랫 4는 금이 가다 못해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3번의 월드컵과 네덜란드를 거쳐 잉글랜드, 독일 등 유럽리그를 거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그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번 월드컵에서 쏟아냈고 토해냈고 전수했습니다.

만약 저에게 대표팀 선수들 중 MVP를 주라고 한다면 저는 이영표 선수 앞으로 달려가 FIFA컵보다 더 밝게 빛날 트로피를 건네고 싶습니다.  그 모든 골 뒤에는 이영표, 당신이 있었고 화려하게 스스로 빛나기 보단 팀을 위해 마지막 하나까지 아낌없이 태우는 그런 당신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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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Tag 16강 진출 병역면제, 16강 진출 병역혜택, 1966 월드컵, 2010월드컵, 4.25팀, FC서울, WBC, 가와사키, 경계인, 곤잘레스 이과인, 국방부, 기라드, 기성용, 기성용 프리킥, 김남일, 김남일 반칙, 김영후, 김정우, 김정훈 감독, 나이지리아, 남아공 월드컵,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병역논란, 대표팀 병역혜택, 대한축구협회, 디디에 드록바, 라이언킹, 리정금, 마라도나, 마라도나 사위, 마르체라노,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메시, 바르셀로나, 박주영, 박주영 골, 박주영 자책골, 박주영 프리킥, 박지성, 박지성 정대세 박카스 CF, 북한, 북한국가대표팀, 북한대표팀, 수와레즈, 수원삼성, 시망, 아게로, 아르헨티나 패배, 아르헨티나전, 아르헨티나전 패배, 에우제비오, 염기훈, 염기훈 노골, 오범석, 우루과이, 우루과이전 패배, 월드컵, 월드컵 16강, 을용타, 이과인, 이과인 해트트릭, 이근호, 이동국, 이동국 MVP, 이동국 득점왕, 이동국 월드컵, 이동국 월드컵 12년, 이동국 월드컵 한, 이동국 프랑스월드컵, 이영표, 이영표 눈물, 이을용, 이정수, 이정수 골, 이청용, 이청용 골, 자이니치, 정경호, 정대세, 정대세 어머니, 정성룡, 정성룡 득남, 정성룡 선방, 정이세, 정해성, 조국통일 세레모니, 조선학교, 조용형, 조중연 회장, 주장 박지성, 지윤남, 차두리, 차두리 눈물, 차미네이터, 차바타, 차범근, 차정혁, 천리마, 최순호, 최진철, 카르발뉴, 코카콜라 원정대, 테베즈, 티티아나, 한민족, 한반도, 호나우도, 호나우두, 호날두, 홍영조, 황선홍 밴드, 흑표범
우루과이와의 16강전. 후반 들어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아공에서 뛰던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던 한국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를 맞으며 선수들은 뛰었고 넘어졌고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섰고 그들을 보며 지구 반대편에 있던 우리는, 그들이 온몸으로 맞고 있던 그 비를 맞으며 응원했습니다.

경기는 졌지만 그들 가슴에 새긴 투혼, 이란 두 글자가 어울리던 경기였습니다. 뭐 비단 16강전만 그랬던가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보여줬던 경기는 투혼과 끈기가 어울렸고, 그들은 90분 내내 포기하지 않았으며 실로 아름다운 축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예전과 달리 빠른 패스로 공격의 주도를 잡았고, 문전을 향한 저돌적 플레이는 결국 동점골을 낳았습니다. 당황하는 대신 짧고 긴 패스를 혼용하며 기선을 잡으려는 침착함과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 무엇보다 돋보였습니다.

얼마 전 최진철 코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가 열렸던 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을 보고 있자니 그대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고요. 관중 대다수가 홈팬인 우리 국민들었음에도, 나서 자란 대한민국에서 열린 월드컵이었지만 그래도 긴장은 컸다고 합니다. 그 거대한 긴장과 두려움이 주는 무게에 눌려 빨리 경기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경기 시작 전부터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이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달랐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득점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롱패스를 보여줬던 과거 ‘뻥축구’는 볼 수 없었습니다. 넓은 시야와 패싱력이 돋보이는 조용형을 시발점으로 해서 후반 들어 계속 됐던 정확한 전진패스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졌지만 이긴 것과 다름 없는 경기였다는 호평도 많았습니다. 이렇듯 우루과이전에서 우리는 희망을 봤습니다. 그러나 풀어야할 숙제도 있었죠.

수아레즈에서 선제골을 허용할 당시 정성룡의 판단 미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돌아 들어가던 수아레즈가 노마크 상황에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도 그랬습니다. 3번째 골 상황이 오프사이드였기에 오심에 피해를 입은 결과가 됐지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당시 이과인을 마크하던 수비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 특히나 자주 보였던 장면은 메시에게 볼이 갈 때마다 2명, 3명의 선수들이 그를 마크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빈공간을 향해 달려들어가던 선수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자주 연출했다는 것입니다. 위험지역에서 너무나 쉽게 상대공격수를 놓쳐버리곤 말았죠.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누차 지적되던 수비불안은 여전히 대한민국 대표팀이 해결해야할 숙제입니다.

우루과이전에서 박주영은 의욕을 갖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만들어가는 과정일 얼마나 좋았던지 간에 공격수는 골로 말합니다. 많은 찬스를 만들었지만 그 찬스는 모두 크로스바를 맞고 나가거나 허공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AS모나코에서 주전 공격수로서 유럽무대를 휘젓고 있다는 박주영지만 그는 2% 부족했습니다. 대한민국대표팀의 다른 공격수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아레즈는 찬스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켰죠. 결정력과 집중력의 수준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상대가 극단적으로 전원수비를 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속에서 골을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실력의 척도입니다. 우리가 운이 없었기에 동점골을 터뜨리지 못했다고 하지만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처럼 유명한 말이 운도 실력이라는 말 아니던가요.

최순호 감독은 수비숲을 뚫고 골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기술이 좋아야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희망적인 것은 예전과 달리 축구지능과 테크닉이 뛰어난 이청용, 기성용에서 알 수 있듯 대표팀 내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입니다. 다행히 입때껏 누차 지적되던 골 결정력 부족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많이 희석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축구계를 쥐락 펴락하는 축구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창을 더 날카롭게 보완해야겠지요.

우루과이전 후반 이청용의 동점골이 터진 이후 우리 대표팀은 공격과 수비의 전환이 빨랐고 강한 압박과 짧고 정확한 패스웍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3선의 균형도 제법 잘 맞았습니다. 때문에 우루과이 선수들은 적잖게 당황했죠.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경기를 월드컵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요. 아마 손에 꼽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전 희망을 봤습니다. 그리고 풀어야할 숙제 또한 함께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보완을 통해 성장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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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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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들을 자주 만나다보면 그들의 고민의 늘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군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알다시피 축구선수들은 보통 30대 초반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물론 몸관리를 잘한 선수들의 경우 -강원의 이을용, 경남의 김병지, 포항의 김기동 등이 대표적이겠지요-30대 중반을 넘어 40을 바라보는 나이에게도 현역에서 선수생활을 하지만 실제 K-리그 대다수 선수들의 이야기는 아니죠. 최근에는 오히려 선수단 평균 연령이 점점 젊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 말은 곧 30살을 넘은 ‘준노장’ 선수들의 은퇴가 많아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로선수들은 꽤 많은 돈을 손에 쥡니다. 그래도 그들은 늘 불안합니다. 축구단은 그들에게 평생직장이 아니니까요. 또 군대를 가야하기 때문에 2년이나 돈을 벌지 못하니까요. 그들에게 2년은 꽤 큰 시간입니다. 대학 졸업 후 24살에 프로에 왔다고 봤을 때, 만약 32살에 은퇴를 한다고 한다면, 그는 프로에서 8년을 뛴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서 군대에서 보내는 2년의 시간을 빼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6년 동안 프로선수 생활을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만약 결혼을 일찍 한 선수라면 아내와 아이를 두고 군대를 가게 됩니다. 그 동안 가계수입은 ‘0’이고 그전에 저금해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아내와 아이는 축구선수인 남편을 기다리겠죠.

여기까지는 보통의 K-리그 선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나이대별 대표팀을 두루 역임하며 국가대표까지 입성한 엘리트 선수들의 경우에는 군대와 관련해 조금 다른 고민을 합니다. 군대 문제 때문에 자유롭게 해외진출을 하기가 힘들다는 게 그들의 고민인 거죠. K-리그와 국가대표를 오가며 얻은 명성으로 해외팀에서 오퍼가 들어오는데, 만약 그의 나이가 27세라면 축구선수로서는 딱 좋은 전성기의 나이대지만 이 나이는 이제 슬슬 군대 문제를 생각해야할 나이입니다. 28세에는 적어도 상무나 경찰청에서 군 생활을 해야 하는데, 해외 유명 클럽에서 딱 1년만 데리고 있을 선수를 위해 그 많은 이적료와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기는 힘듭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비슷한 레벨이지만 군대 문제에서 자유로운 선수를 영입하겠죠.

그래서 많은 축구선수들을 말합니다. 분단국가의 특성상 병역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국방의 의무는 국민이 지켜야할 기본 의무 중 하나다. 우리는 군대에 가기 싫은 게 아니다. 우리의 꿈을 해외에서도 펼칠 수 있도록 적어도 축구선수로 활동할 기간만은 군대문제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28세까지 미룰 수 있는 현 제도에서 35세 후 혹은 은퇴 후에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좋겠다. 등등의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들의 병역문제가 요즘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나이지리아전 종료 후 락커룸을 찾은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저는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왜 지금?’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는 겁니다. 회사에서 중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동안 야근에 지친 직원들에게 “고생 많았지? 오늘은 내가 쏜다!” 혹은 “직원들에게 각자 포상을 내리겠다”고 말하는 사장님 같아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군대문제와 관련해 축구선수들의 고민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바로 너무나 즉흥적인 협회의 태도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2007년 병역볍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병역특례 대상자를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제한했습니다. 기존의 월드컵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라는 조항을 없앤 거죠.

그런데 그때 협회는 당시 아주 조용하게 넘어갔습니다. 월드컵 16강의 경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했을 때만큼의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의 효과가 있으니 선수들에게도 병역혜택을 줘야한다는 문제제기 조차 없었습니다. 월드컵에 진출했을 때 나라가 얻을 수 있는 이익과 16강 진출 시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보고서라도 준비해 월드컵에 나서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군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그래서 지금의 박지성처럼 유럽리그를 휘젓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다져줄 수 있도록, 최소한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했던 거 아닐까요?

당시 많은 언론에서 월드컵 16강 진출에도 선수들은 군대를 가야한다는 등의 뉴스가 나왔지만 협회가 이를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병역혜택이라는 당근이 16강에 진출했으니 이제 할 일은 다했다며 다소 느슨해질 선수들을 채찍할 가능성은 큽니다. 8강을 넘어 4강진출까지 다시 한 번 노려볼 생각에 병역혜택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요?

이런 즉흥적인 모습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병역법 개정을 위해 이전부터 노력을 했더라면, 그래서 삭제된 조항이 다시 들어가거나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라는 조항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갑론을박은 나오지도 않았겠죠.

이미 다른 종목 선수들이 월드컵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 같은 자신들의 종목에서 유치하는 국제대회도 추가적으로 특례 조항을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정부는 2007년 병역특례 범위를 종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로 한정지은 바 있습니다.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의례적으로 병역면제를 받았을 때 이제는 다른 종목 선수들이 이번 대표팀의 예를 들며 병역면제를 요구할지 모릅니다. 만약 다음 WBC 대회에서 야구대표팀이 4강안에 들어갔다면 축구대표팀의 예를 들며 병역면제를 요청할 지도 모르죠. 이미 축구대표팀에 허한 ‘예’가 있기 때문에 월드컵과 WBC대회는 규모나 수준면에서 비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4강에 진출했다고 해도 병역혜택을 줄 수 없다고 과연 국방부에서 말할 수 있을까요? 그들로서는 선례가 있기 때문에 바로 ‘노’라고 말할 수 없겠죠. 그래서 이번에 그러한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WBC 준우승 시에도 병역혜택을 주지 않았다며 선례를 남기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 역시 현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받아 더 넓은 무대에서 자유롭게 뛰며 꿈을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말하고 행동하려는 협회의 모습을 보니 참 안타깝고 슬픕니다. 병역혜택을 줘야한다, 말아야한다고 서로들 싸우기 전에 문제의 본질과 발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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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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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오후 8시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가대표와 세네갈 국가대표와의 친선경기는 이청용, 오범석의 연속골을 앞세운 대한민국의 2-0 승리로 끝났습니다.

평일(수) 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는 3만 명이 넘은 관중들이 운집해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요, 선수들은 시원한 플레이로 주중에 어려운 시간을 마련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화답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이청용, 박지성, 박주영, 그리고 돌아온 차두리의 플레이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이들 모두는 볼튼, 맨체스터Utd, AS모나코, 크라이부르크에 적을 두고 있는 ‘해외파’들입니다.


이날 이근호와 함께 투톱으로 나선 박주영은 비록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힘과 높이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던 가나 수비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더군요. 예전 바람에 불면 날아갈 것만 같던 본 프레레 감독이 이를 보면 어찌 생각할까, 하는 재미난 궁금증도 들었습니다. 확실히 프랑스 리그 앙에서의 경험은 그를 한층 더 강한 공격수로 키워준 듯 했습니다. 프리킥 감각은 여전했고요. 전반 27분 아깝게 골포스트를 맞았지만 명실 공히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전담프리키커로서 자리를 꿰찬 모양세였습니다.

세네갈전 MVP에 뽑힌 이청용은 볼튼의 신성으로 떠오른 최근의 상승세가 대표팀에서도 그대로 이어진 듯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대표팀의 부동의 오른쪽 날개로 ‘굳히기’한 이청용은 이날도 활발하게 움직이며 공격의 물꼬를 텄는데요, 세네갈의 수비수들이 겹겹이 붙어도 빠르게 치고 달리며 볼을 살려내는데, 이청용 특유의 드리블과 키핑력은 대한민국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전반 내내 단짝 기성용에게 골 찬스를 만들어줬는데, 초반에는 최근 심적으로 겪은 부침이 컸던 까닭인지 기성용의 몸은 무거웠고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전반 42분 오른쪽 측면을 가뿐히 돌파하던 이청용이 왼쪽에서 따라 달려오던 기성용에게 패스했고 기성용은 그 짧은 순간에 정확하게 볼을 잡은 뒤 왼발로 슈팅,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늘 청용이와는 눈빛만 봐도 통한다던 기성용의 말처럼, 완벽한 호흡이 만들어낸 선제골이었습니다.

그리고 차두리. 근 3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언제나 차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로서는 이번 평가전이 꽤나 걱정스러웠을 법도 합니다. 대표팀 복귀전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여야 재차 부름을 받을 수 있을테니까요. 결론은 차두리의 복귀는 기대 이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스피드 말고는 볼 것이 없다던 냉혹한 비판에서도 자유로워진 모습이었고 공격 일선까지 올라갔다 재빠르게 수비에 가담하는 오버래핑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후반에 오범석 대신 교체되어 나갈 때 관중들은 차두리를 연호하며 기립박수를 쳤는데요, 그런 관중들에게 더 많은 박수를 유도하며 인사하며 나가는 차두리의 모습을 보며 모두들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답니다.

마지막으로 박지성. 공격포인트 없이 세네갈전을 마감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박지성의 헌신적 플레이는 여전히 현 대표팀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전반에는 왼쪽 날개로, 후반에는 중앙MF로 변신하였는데요, 박지성을 비롯한 세네갈전에 출장한 해외파들은 끝까지 볼을 살려내는 집중력과 키핑력의 수준이 상당해 한층 높아진 대한민국의 축구 수준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장에 오지 못한 분들을 위하여 현장의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세요. ^^


기성용의 첫골이 터지고 난 후...


경기 중 허정무 감독의 모습.


박주영이 나가고 염기훈이 들어갑니다.


오범석이 들어가고 차두리가 교체로 나갈 때,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쳐줬답니다. 차두리 역시 이에 화답하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박수를 치며 인사드렸죠.


이청용의 도움을 받은 오범석의 팀 2번째 골이 터지고...


FC서울 시절 절친이었던 고요한-이청용 라인. 이청용 대신 투입된 고요한은 이날 A매치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경기 종료 후 모습. MVP 탄 이청용. 관중들에게 공인구를 던져주는 선수들 등... 흥겨웠던 A매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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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누구나 마음 속에는 히어로는 있는 법입니다. 어린 시절, 저를 축구의 세계로 이끌었던 선수들은 모두 제 마음속의 히어로였습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그들을 다시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게 됐지만, 정지된 시간처럼 그들의 선수시절 모습들은 늘 마음과 머릿속에 자리잡아 있었죠.

한데 이번 가을, 저는 거짓말처럼 그들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창립75주년을 맞아 한일OB축구스타들을 불러 친선경기를 갖는 행사를 가졌기 때문이죠.

하석주-유상철-홍명보-신홍기 선수로 이뤄진 포백라인과 고정운-윤정환-노정윤-정재권 선수가 포진한 미드필드 라인, 그리고 98프랑스월드컵 이후 10년만에 다시 선보인 최용수-서정원 선수의 투톱까지. 보는 내내 옛 시절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후반에는  4-2-1-3 포메이션으로 진용이 바꿨습니다. 최용수 선수가 중앙에, 좌우에는 이상윤, 서정원 선수가 위치했고 컴퓨터 링커 윤정환 선수가 공격형미드필더로 나섰습니다. 수비형미드필더로는 이병근, 박남열 선수가 뛰었고요. 플랫4는 변함없이 하석주-유상철-홍명보-신홍기 선수가 맡았습니다.

후반 중반 서정원 선수가 전반 말미 일본선수와 충돌한 후 계속해서 어지럼증을 호소하자 서정원 선수 대신 강철 선수가 들어갔고 윤정환 선수 대신 김도근 선수가 교체됐습니다. 하여 서정원 선수가 있던 오른쪽 날개 자리엔 왼쪽에 있던 이상윤 선수가, 기존 왼쪽날개엔 멀티 플레이어 유상철 선수가 맡았습니다. 김도근-박남열-이병근 선수가 중앙미드필드에 포진했고 포백은 하석주-강철-홍명보-신홍기 선수가 책임졌죠.
 
이날 승리는 역대 한일전에서 늘 우세인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귀중한 1승을 챙겼습니다. 박남열 선수의 선제골을 소중히 지킨 결과였죠. 유상철 선수와 정재권 선수가 이후 왼쪽에서 끊임없이 공격적인 움직임을 선보였지만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참. 경기 말미에 정재권 선수가 드리블 도중 다리가 그만 풀려버려 풀썩 넘어지는 장면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동시에 터졌답니다. ^^;;; 바르셀로나 올림픽 영웅 중 하나였던 정재권 선수도 이제 40대니까요. ㅠㅠ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에서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꽤 오랫동안 나오지 않더군요. 알고보니 선수들끼리 공에 각자의 싸인을 담느라 늦었더라구요.

윤정환 선수는 언제 또 이렇게 다 모일 지 몰라 공에 싸인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던 중 괜히 제 마음도 쨘해지더군요.

우리가 언제 추억의 선수들을 그라운드에서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하여 경기 내내 열심히 담았던 영상들을 편집해 올려봅니다. 함께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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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10월드컵 3차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북한전은 0-0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한국과 북한은 나란히 조 1,2위를 기록하며 최종예선에 동반진출하게 됐죠. 경기가 끝난 후 믹스트존에서 북한 선수들을 기다리는데, 솔직히 긴장도 되고 또 기대도 컸습니다. 저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북한 선수들이었으니까요.



첫 테이프는 정대세 선수가 끊었습니다. 정대세 선수는 역시나 소문대로 한국 취재진들이 던진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죠. “플레이가 단조롭지 않나”는 질문에 “단조롭다”는 말의 뜻을 몰라 갸우뚱 거리기도 했고 “생명 걸고 시합하려고 했는데”라는 2% 어색한 한국어로 모두를 웃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한국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고 싶다”는 엉뚱한 말에 이번에는 취재진이 갸우뚱 거리며 되묻자 “한국은 같은 민족, 내 민족이니까 내 존재를 알리고 싶다”고 이유를 말해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죠.



정대세 선수가 지나간 뒤 북한 선수들이 우르르 나왔는데, 역시나 그들은 취재진들을 향해 미소만 살짝 짓더군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끄덕. 다음으로 북한의 실질적 키플레이어라 할 수 있는 홍영조 선수(정대세 선수의 말에 따르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북한 내에서도 기대 큰 유망주라고 합니다)가 나타났습니다. 몰려드는 취재진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지 “남과 북 모두 월드컵에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버스에 올라탔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난 선수는 바로 안영학 선수. 안영학 선수 역시 수원삼성에 뛰고 있는 터라 취재진들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죠. 그런데 너무 늦게 나타난 바람에 다른 모든 선수들이 버스에 올라와있었고 북한 쪽 관계자 분께서 “안 동무! 얼른 오시오!”하는 바람에 결국 취재진들에게 작별을 고해야했답니다. 동영상 마지막 부분에 “안 동무!”라고 애타게 부르는 북한 분의 목소리가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동무”라는 말을 듣기는 처음이라 어색한 웃음을 짓던 기자들이 몇몇 있었죠.


제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북한 선수들을 바라보며 ‘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들과 제대로 된 이야기 하나 나누지 못했음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스포츠에서만큼은 이념의 장벽을 조금 낮출 수는 없는 것일까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낳게 했던 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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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얼마 전 자료조사 중 무척 재미있는 사진을 찾았습니다. 1974년에 발간된 월간축구를 뒤적이던 중 당시 대표팀에서 뛰던 선수들의 사진을 보게 됐죠. 그런데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뉴하트의 ‘은성’이 사진 속에 있었거든요. 배우 지성을 닮은 어느 선수의 모습에서 은성의 향기가 물씬 풍기더군요. 낯선 선수에게서 은성의 향기를 맡게 될 줄이랴. 그것도 약 35여 년 전 사진에서 말이죠. 아래 사진을 보세요. 어느 선수를 말하는지 아시겠죠? ^^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 선수의 이름을 맞출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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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십니다. 김호곤 전무는 대전시티즌 김호 감독, 울산현대 김정남 감독과 함께 1970년대 한국축구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입니다. 80년대 이후 출생한 축구팬들에게는 2004아테네올림픽 8강신화를 쓴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지요. 2005년 11월에는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발탁되어 축구행정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이 사진이 실린 다음 페이지에는 김 전무의 일문일답도 함께 실렸는데요, ‘큰 영향을 준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김 전무께서는 “상업은행팀에 있을 때 김호 선수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라고 답했답니다.


또 앞으로는 “개인기 개발에 역점을 두고 싶다”며 “갑자기 운동량이 많아 몸이 무겁다. 박스컵도 중요하지만 북괴와의 대결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아시아 경기를 생각하면 부담을 느낀다. 개인기 개발을 연마하며 극복하겠다”고 설명했죠. ‘박스컵’과 ‘북괴’라는 단어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죠? ^^ 부가 설명 드리자면 박스컵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대회였는데요, 지금의 아시안컵처럼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해 우승을 다투는 대회였습니다. 대회가 열릴 때면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경기장을 찾아 관람했고 시상까지 직접했다고 하네요. 


그나저나 그 다음 대답도 재미납니다. “졸업반(연세대)도 되었고 틈있는대로 수업에 충실하겠다.” 당시 김호곤 전무의 소속은 연세대학교 축구부. 대학생다운 대답이 아닐 수 없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묻자 김 전무는 “심판들은 제발 재미있는 게임운영이 되록 연구했으면”이라는 대답을 남겼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심판의 경기운영능력은 선수들에게 아쉽게 다가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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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슬럼프에서 페이스 업! 하고 계신다네요.



김호곤 전무는 국가대표팀을 ‘청룡’이라 부르던 1970년대 그 시절 우리나라를 빛낸 태극전사 중 하나였습니다. 1971년부터 1978년까지 자그마치 8년 간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했지요. 대표팀 부동의 풀백이었던 김 전무는 1973년 체육기자단이 뽑은 베스트 11에도 뽑혔답니다. 어떤가요? 재밌게 보셨나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밤, 우리를 즐겁게 해줬던 뉴하트 종영에 맞춰 보여드리는 사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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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