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강릉종합운동장. 4-2-3-1 포메이션을 구사한 강원FC는 김영후를 원톱으로 내세우며 제주의 골문을 위협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에서 18경기 30득점이라는 경이로운 득점기록을 세우며 '괴물 공격수'로 불린 김영후의 프로데뷔전이었다. 페널리박스 안에서 보여주는 침착함과 정확함, 그리고 파워 넘치는 슈팅력과 순간판단력까지. 우리나라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잇는 대표 공격수 출신의 최순호 감독은 "공격수로서의 자질만큼은 최고다"며 "올시즌 강원FC에서 주목할 선수는 단연 김영후"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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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찬사와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김영후였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고 K리그 데뷔전이었던 만큼 긴장도 적잖았으리라. 그래서였을까. 몸은 생각보다 무거워보였다. 문전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불필요한 움직임이 너무 많았다. 슈팅 시에는 힘이 너무 들어간 까닭인지 골대 위로, 허공 속을 가르길 바빴다.
전반 28분 강원FC의 역사적인 첫 골이자 대망의 결승골이 터졌다. 프로 4순위로 강원FC에 입단한 신예 윤준하의 발끝에서 터졌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선수가 프로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렸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분명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건'이다. 한데 윤준하의 골은 더 나아가 강원FC의 창단 첫 경기 첫 골이었기에 더욱 깊은 의미가 깊은 골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골 뒤에는 김영후의 도움을 잊지 말아야하겠다.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에서 윤준하의 움직임을 읽은 김영후의 판단력과 볼을 건네주기 전까지의 돌파력과 스피드는 단연 일품이었다. 당시 난 축구관계자들과 강원FC 첫 골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로 내기를 걸었는데, 윤준하의 득점으로 1만원을 잃고 말았다. 그때 첫 골의 주인공으로 지목한 사람은 바로 김영후였다.
후에 농담삼아 영후 선수가 골을 못 넣어서 1만원 잃었어요, 라고 말하자 "도움했잖아요. 그럼 5000원은 가져가도 되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여유를 보여줬으나, 얼굴 한쪽을 덮고 있던 아쉬움은 채 감춰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순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개막전 4일 전 고생했던 김영후의 모습이 떠올랐던 까닭이다.
시계바늘을 뒤로 돌려 개막전이 열리기 4일 전. 오후 훈련을 마치고 저녁식사까지 끝낸 김영후는 짐 꾸러미를 들고 7층 숙소 엘레베이터 앞에 나타났다. 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K리그 미디어데이에 참석하고자 서울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각 팀별로 감독과 대표 선수 1명이 가야했는데 강원FC 대표선수로는 김영후가 뽑혔다. 주장 이을용과 프랜차이즈 스타 정경호는 훈련 중 경미한 부상을 입어 일단 개막전까지 재활에만 집중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감독님도, 이을용도 앞으로 인터뷰 할 기회가 많을텐데, 빨리 적응해야한다며 모두 김영후를 추천했다.
그렇게 하여 저녁 7시 반 김영후와 함께 강릉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차도 면허도 없는 나는 김영후의 차에 동승했다. 그리고 김영후는 꼬박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운전을 해야만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리긴 했지만 커피 한잔 뽑고 바로 탔으니 쉬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렇게 운전하느라 지치고 피곤했을 법도 한데, 김영후는 친히 우리집 근처까지 바래다준다음 자신의 스위트홈으로 돌아갔다. 운전만 4시간 넘게 한 김영후씨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홍제역에서 만나 기자회견이 열리는 그랜드힐튼호텔로 이동했다. 오늘 기자회경장에서 행여나 말실수라도 할까봐 김영후는 새벽 2시에 겨우 잠이 들었단다. 그리고 나와의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6시에 일어났단다. 눈밑에서는 다크써클이 내려앉아 있고. 급하게 차 안에서 정장 마이를 갈아입은 다음 함께 호텔 내부로 들어갔다. 감독님은 벌써 도착했다는 이야기에 초긴장하며.
박항서 감독님, 최강희 감독님과 담소 중이시길래 가볍게 인사만 한뒤 2층 회견장으로 이동했다. 김형범과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길래 자리를 피해줬는데 잠시 후 돌아왔더니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최효진에게 김영후를 못봤냐고 묻자 자기 선수를 왜 나한테서 찾아, 하면서 웃는다. 흐음. 어디간거지. 열심히 홀을 돌아다니다 회견장 한쪽 구석 화분 옆에 조용히 서있는 김영후의 모습이 보였다. 아는 사람도,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어 그냥 서있었단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구석에 서있다니. ㅠㅠ
그런데 멀리 신태용 감독님이 보이길래 잠깐 인사하러 오겠다고 하니 김영후는 아는 사람이 없어 혼자 있기 그렇다고 말했다. 결국 초간단 인사만 드린 뒤 다시 김영후 옆에 서서 함께 기자회견 준비를 했다. 미리 준비된 질문지를 보니 첫 경기 상대 제주에게 하고 싶은 말, 이라고 써있다. 고민하던 김영후 "일단 제주가 좋은 팀인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도 그에 못지 않게 열심히 노력했고, 강원도에 프로팀이 생겨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관중들이 경기장에 많이 찾아올텐데 그 분들을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재미있고, 또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치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떠겠냐고 물었다. 난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면 된다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김영후의 표정은 점점 새하얗게 질려가고 우황청심환을 먹을 것 그랬다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울렁증이 생기는데 실수 없이 잘 얘기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난 그저 괜찮다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격려의 말만 들려줄 수 있을 뿐.
다행히도 미리 준비한 자리에 앉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막전 상대 제주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김영후는 참 자연스럽게, 또 조리있게 대답을 잘하여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그래도 김영후는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며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서 옆에 준비된 뷔페를 먹으러 갔는데 호텔 뷔페 오랜만에 먹는다며 5그릇도 먹을 수 있다던 김영후씨는 긴장이 컸던 까닭인지 딱 2접시만 먹고 차로 돌아갔다.
문제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초긴장을 했던 터라 피곤이 극렬하게 몰렸다는 사실에 있었다. 오후 2시에 출발했는데, 그 시간은 나른함이 가장 몰린 시간이기도 했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점점 잠이 쏟아진다며 계속 눈꺼풀을 비비기 시작했는데, 면허가 없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끊임없이 말을 시키며 잠을 쫓아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시간을 쉬지 않고 운전을 해야했으니, 아무리 체력 좋은 축구선수라 해도 피곤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초피곤에 젖어있던 당시 모습... ㅠㅠ
숙소에 도착했을 때 김영후의 얼굴은 이미 피로에 절을 데로 절은 상태였다. 워낙에 잘 웃는 사람이었지만 웃지도 않고 고생하셨습니다, 라는 인사만 꾸벅 한채 방으로 돌아갔다. 이런. 정작 고생한 사람은 김영후였는데, 고생했다는 인사를 받다니. 그간 단 한번도 면허의 중요성을 느껴보지 못했는데 이번만큼 면허가 절실했던 순간도 또 없었다. 그런데도 김영후는 숙소에 들어가 혼자 개인운동을 1시간 가량 한 다음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강릉으로 내려가기 전 오전, 오후 훈련을 빠졌으니 혼자 런닝이라도 꼭 해야한다던 감독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날 M본부와 생방송 인터뷰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M본부와의 인터뷰 날짜가 급작스럽게 바뀌는 바람에 시합 2일 전에 김영후는 40분 가량 찬바람이 부는 운동장에서 인터뷰를 해야만했다. 어디 그 뿐인가. 연맹 가이드북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어야한다며 또 운동장으로 불러내 볼 트래빙, 헤딩, 드리블링 등 다양한 포즈를 시키고 또 시켰다. 그리고 나서 김영후에게 돌아온 것은 감기였다. ㅠㅠㅠ
연방 코를 훌쩍대고 기침을 콜록콜록하는데 꼭 내 책임듯한 기분이 들어 미안했다. K리그 데뷔전.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전의 그 날을 앞두고 감기에 걸렸으니, 컨디션 조절이 제대로 될리 만무했다. 그러니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겠지. 집중력이 예전처럼 날카롭기는 힘들었을테지. 강릉에서 서울을 오가던 그 긴 시간동안 내가 대신 운전을 했더라면... 인터뷰 시간 날짜가 방송국 사정으로 변경됐다면 그냥 취소시켰어야했는데... 가이드북 사진 촬영 역시 다른 선수로 대체할 수도 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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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모든 게 다 내 책임 같아서 "내 탓이요"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난 김영후가 데뷔전 골사냥에 실패한 이유 중에는 제대로 care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는 것 같아 여전히 미안하다.
오늘 김영후는 K리그 2번 째 경기에 나서게 된다. 상대는 올 시즌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FC서울.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서울을 상대로 김영후가 마법을 부릴 수 있을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는 법이고, 덕분에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 입성의 꿈도 이루지 않았던가. 게다 미안한 마음만큼 열심히 기도해주고 있으니 혹 시간이 다소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골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지금의 미안함을 한순간에 잊게 만드는, 그런 강렬한 아름다움을 지닌 김영후의 K리그 데뷔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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