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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World Football

프리미어리그 '빅4'가 깨져야만 하는 이유


“프리미어리그 4위 안에 드는 것은 유럽무대에서 4위 안에 드는 것과 같다.” 올 시즌 리버풀의 리그 성적 부진에 대한 베니테스 감독의 변이다. 프리미어리그의 ‘빅4’라 불리는 클럽들의 전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인데, 2007-08시즌 UEFA챔피언스리그를 주의깊게 지켜본 이들이라면 단순히 넋두리로 여기지 않을 듯하다.

별들의 전쟁이 끝난 자리, 무수한 영웅담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이야기 속 ‘슈퍼 히어로즈’는 단연 프리미어리그發 클럽들이다. 그들은 강했기에 살아남았고 끝까지 살아남았기에 진정 강했다.



천상천하 프리미어리그
2007-08시즌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의 저력은 계속 됐다. 4강 진출팀(첼시 리버풀 맨체스터Utd. 바르셀로나) 가운데 무려 3팀이 프리미어리그 클럽이었다. 첼시는 갑작스런 감독 교체로 내홍에 시달렸지만 올림피아코스(16강) 페네르바체(8강) 등 이변의 주인공들을 잠재운 뒤 리버풀(4강)에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리버풀 역시 미국 자본에 인수된 후 구단주 톰 힉스와 경영책임자 리 페리의 갈등으로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지만 막판 4강까지 올라가는 뒷심을 발휘했다. 두 팀 공히 내부적인 불안요소가 있었음에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뜻이다.

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맨체스터Utd.는 조별예선에서 5승1무의 일방적인 성적을 거뒀고 이후에도 마찬가지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적어도 올 시즌은 상대를 ‘압도’했던 맨체스터Utd.다. 세리에A 챔프 인터밀란과 프리메라리가 왕자 레알 마드리드, 르 상피오나 우승팀 리용이 나란히 16강에서 탈락하며 체면을 구긴 것과는 대조적이다. 비록 4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아스날이 보여준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앙리가 떠난 이후 그에 준하는 주포 영입을 뒤로 미룬 탓에 ‘빅4’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지만 결국 16강에서 디펜딩 챔프 AC밀란을 잠재우며 저력을 뽐냈다. 투박한 챔피언이 ‘실력’보다 ‘요령’으로 버티려 했으나 젊은 포병부대의 화력에 백기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은 시즌 내내 화려한 빛을 발했다. 경쟁리그와의 대결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점도 눈에 띈다. 프리메라리가 클럽을 상대로는 ‘3승2무1패’ 세리에A 클럽들에게는 무려 ‘6승2무’의 기록을 세우며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기실 이 같은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강세는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2004-05시즌 2팀(첼시 리버풀) 2005-06시즌 1팀(아스날) 2006-07시즌 3팀(리버풀 첼시 맨체스터Utd.)이 4강에 진출했다는 사실이 근래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같은 기간 결승전의 최소 한 자리는 잉글랜드 몫이었다. 덕분에 프리미어리그는 프리메라리가를 누르고 자그마치 23년 만에 유럽국가프로리그 랭킹 1위에 재등극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녹아웃 토너먼트에서 프리미어리그 클럽의 길을 막은 팀은 같은 땅 동료들 뿐이었다는 점이다.

8강에서 아스날과 리버풀이 만난 것을 시작으로 4강에서는 리버풀과 첼시, 마지막으로 결승전에서는 맨체스터Utd.와 첼시가 대결하며 ‘챔피언들의 리그’라는 대회 명칭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이는 곧 프리미어리그 클럽의 아성에 도전할만한 타 리그 팀들의 ‘부재’를 뜻하는 결과이기도 했다.

대체 잉글랜드에서는 무슨 일이?
잉글랜드 클럽의 대륙지배 원동력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그들의 ‘막강 자금력’을 우선 이유로 꼽는다. 지난 몇 년 간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미국의 스포츠 재벌 말콤 글레이저가 맨체스터Utd.를, 미국의 투자가 조지 질레트와 탐 힉스가 리버풀을 인수했다. 아스날 또한 현재 미국 스포츠재벌 스탄 크론케에게 곧 소유권이 넘어갈 것이란 소문이 왕왕하다. 이미 지난 여름 거대한 오일달러에 힘입어 알함힙이 맨시티를 소유,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수 수집에 열중했는가하면 웨스트햄Utd. 풀햄 아스톤빌라 포츠머스 등 중상위권 클럽들 역시 해외 자본가들에 의해 인수됐다.

프리미어리그 20개 클럽 중 벌써 9개나 해외 자본가 손에 쥐어졌고 인수 소문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아스날과 토튼햄을 더한다면 그 수치는 절반을 훌쩍 넘게 된다. 거대 자본가들이 프리미어리그를 향해 손을 뻗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수요(자본)와 공급(선수)의 법칙이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유럽축구 ‘월척’들의 프리미어리그行이 눈에 띄게 이어지고 있다. 2007-08시즌 이적료 Top 10을 살펴보면 프리미어리그 클럽으로의 이적만 5건(프리메라리가 4건 분데스리가 1건)이다. 빅 클럽들을 위시한 거대 자본이 선수들의 실력에 걸맞은, 때론 그 이상의 대우를 해주고 있으니 실력과 명성을 이력서로 제출한 A급 선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독점의 고착화’도 자연스레 진행됐다. 

지난 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 1위부터 4위는 빅4로 분류되는 맨체스터Utd. 첼시 아스날 리버풀이 나눠 가졌다. 3시즌 연속이고 2005년 리버풀이 5위로 이탈한 것을 제하면 6시즌 째 같은 결과다. 이는 곧 기존 빅4의 챔피언스리그 진출 독점을 의미한다. 과거 뉴캐슬 리즈Utd. 블랙번 아스톤빌라 등이 4위 안에 들며 챔피언스리그 문을 두드렸지만 2003-04시즌 이후론 오로지 빅4만이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나서고 있다. 2004-05시즌 에버튼이 리버풀을 제치고 리그 4위에 오르며 그 판도가 깨지는 듯 보였지만 리버풀은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권을 얻은 덕분에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번 시즌 역시 ‘고정 4팀’이 챔피언스리그에 출격한다.

독점을 막아라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클럽에 명예 뿐 아니라 경기대전료와 중계권료, 입장료 등의 엄청난 상업적 이익을 안겨준다. 챔피언스리그 참가가 수익으로 이어지고 그 수익이 다시 성공을 위한 투자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볼 때, 빅4의 탄탄대로가 이상할 것도 없다. 이에 대해 타 클럽 관계자들은 “리그 4강 경쟁에 끼어들 수 있는 클럽은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포츠머스 래드납 감독) “내년에도 4강은 똑같다. 내가 뉴캐슬 팬들에게 말할 수 있는 건 5위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잘하면 프리미어리그의 2부리그(빅4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을 일컫는 말)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뉴캐슬 캐빈 키건 감독) “내년에 빅4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가? 우리는 두 답을 알고 있다. 이런 건 축구가 아니다”(위건의 휠런 구단주) 등의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비단 프리미어리그만의 내부적 고민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프리미어리그 빅4의 ‘초강세’가 이어지는 상태라 ‘꿈의 무대’가 곧 프리미어리그化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굳이 잉글랜드 빅4가 아니더라도, 챔피언스리그가 몇몇 매머드 클럽들만의 잔치로 전락해 역동성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분분하다. “프리미어리그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리그가 될 위기에 놓였다"던 키건 감독 말을 인용한다면 챔피언스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지루한 대회가 될 위기에 놓인 상태다. 제프 블래터 회장 역시 “챔피언스리그가 재정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국가 간 불평등을 초래하는데 악영향을 미쳤다”며 “6+5플랜(자국선수 6명과 외국인 선수 5명으로 팀을 꾸려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통해 특정 클럽과 리그의 독점에 맞서 싸울 것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응이 거세지자 결국 유럽축구연맹은 지금의 체제에 메스를 들이대기로 결정했다. 2009-10시즌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 예고된 가운데 ▲유럽 축구 변방국들의 챔피언스리그 할당 티켓 증가 ▲UEFA컵 조별라운드의 확대 실행 ▲인터토토컵 폐지 등 포괄적인 개혁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전까지 3차례의 예선을 통과해야만 본선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중하위권 국가(유럽국가프로리그 13위~53위) 클럽에게 독자적인 예선라운드를 할당해 총 5장의 본선행 티켓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보다 다양한 클럽들이 32강에서 각축을 벌일 수 있는 틀이 마련된 셈이다. 약소국들에게 5장의 확실한 조별 라운드 진출 티켓을 배정함으로써 32개 출전팀 중 17개 팀을 각국 리그 챔피언으로 채워 명실상부 진정한 ‘챔피언스’ 리그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존재하는 삼엄한 프로의 세계이다. 따라올테면 따라오라는 것이 승부의 논리다. 실제로 지난 시즌 UEFA컵 패자 제니트처럼 따라잡는 일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UEFA컵과 챔피언스리그는 다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팽팽한 긴장이 전체적으로 유지되는 모습이다. 월드컵이나 유럽선수권보다도 수준이 높다고 자부하는 챔피언스리그인데 자칫 특권층의 페스티벌로 전락할 수도 있겠다. 독과점의 선두주자이자 공공의 적인 프리미어리그 4인방이 제법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매사 지나치면 탈이 생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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