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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광주광산FC가 쏘아올린 작은 꿈

지난 3월22일 ‘풀뿌리 축구’의 서막을 알리는 2008K3리그 개막전이 8개 구장에서 일제히 개막했다. 그중 가장 많은 관중과 관심이 쏠린 곳은 시범리그로 치러진 지난 시즌 챔피언 서울Utd.의 경기가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이었다. 신생팀 광주광산FC를 만난 서울Utd.는 제용삼 정재권 우제원 등 K리그 출신 선수들을 앞세워 수차례 골문을 위협했지만, 의외로 후반 중반이 넘어갈 때까지 골은 터지지 않았다.


이대로 무득점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겠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새겨질 찰나, 대반전이 일어났다. 후반39분과 45분, 오히려 광주광산FC의 연속골이 터진 것이다. 2-0 승리를 거두며 ‘파란’을 연출한 광주광산FC는 이렇듯 강렬한 신고식으로 K3리그에 첫인사를 올렸다.

광주광산FC, 모두의 꿈을 이뤄주다
지난해 시범리그 형태로 운영하던 K3리그가 예상을 뛰어넘는 관심과 애정을 등에 업고 올 시즌 정식 출범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6개 팀이 늘어난, 총 16개 팀이 리그에 참가한다. 그중 광주광산FC는 올해 처음으로 K3리그에 참가한 ‘새내기’다. ‘구(區)’를 연고로 한 최초의 K3팀으로, 김태진 호남대 축구부 코치의 지휘 아래 호남대 축구학과 소속 선수학생 40명과 심사를 거쳐 뽑힌 광주 광산구 생활체육인 10명이 선수로 있다. 생활체육인도 함께 뛰지만 본래는 “4년 내내 대학경기를 뛰지 못하는 ‘선수학생’들에게 기회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 아래 탄생한 팀이다.

호남대 축구학과에는 해마다 약 50여명의 학생들이 축구특기생으로 입학한다. 이를 4개 학년으로 합쳐 생각해보면 무려 200여 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군대 및 개인사정으로 학교를 떠나게 돼 매년 결원이 발생하지만 그래도 평균 1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축구학과에 남아있다. 문제는 이들이 호남대 축구부 정원(35명)을 훨씬 초과한다는 사실에 있다. 결국 좁은 문에 낀 선수학생들은 시나브로 소외됐고 운동 중 조기탈락 하는 이들 또한 늘어갔다. 그런 점에서 올 초 창단한 광주광산FC는 그동안 뛰고 싶었지만 뛸 수 없었던 선수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그 꿈을 이뤄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에 뛰기 위해선 한 가지 원칙을 지켜야한다. 바로 ‘강의는절대 빠지지 말 것’이라는 약속이다. 앞서 ‘선수학생’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모두 호남대 축구학과 소속 학생이기에 학업보다 축구가 우선시 될 수 없다. 때문에 일주일에 4번 이뤄지는 훈련은 모두 강의가 모두 끝난 저녁 8시부터 약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된다. 훈련량이 부족하지 않냐고 묻자 김태진 감독은 고개를 저으며 “효율의 문제다. 선수들이 집중력만 갖춘다면 훈련 시간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의 호언처럼 이는 곧 성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현재(6월20일 기준) 광주광산FC는 화성신우전자(11승1무1패)의 뒤를 이어 리그 2위(9승1무3패)를 달리고 있다. 이 기세라면 “5위 안에 들어 FA컵 진출권을 따고 싶다”던 애초 목표는 가뿐히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김 감독은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는 “봐라. 눈동자가 살아 있지 않은가. 그간 목적의식 없던 선수학생들이 경기를 치를 때마다 희망의 눈을 떠가고 있다. ‘다시 뛸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참으로 흐뭇하다”며 꿈을 접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비난의 목소리는 있지만
그러나 광주광산FC에게도 근심은 있다. ‘K3리그를 엘리트 대학선수들의 연습무대로 만드느냐’는 비난의 목소리 때문이다. 광주광산FC 수비수 김명선은 “개막전 때 경기장에 들어서는데 ‘대학 축구나 뛰지 왜 K3리그에 나오냐’는 소리를 들었다. 나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선수들 대부분이 속상해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사람들이 우리 아픔을 잘 모르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며 우리끼리 위로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여기서 아픔이란, 경쟁에 밀려 경기에 나서지 못한 지난날을 뜻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광주광산FC 장재훈 부장은 “실제로 광주광산FC에서 뛰고 있는 선수학생들은 학원스포츠 아래 성장한 선수들이 맞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혹은 부상이나 슬럼프 때문에 팀에서 인정받지 못해 탈락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런 선수들이 이곳에 모여 학업을 병행하며 ‘제2의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그런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장 부장은 이어 “K3리그 개막 전(前)부터 호남대 축구부에 소속된 선수들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2중 등록’된 선수들이 어떻게 K3리그에서 뛸 수 있겠는가. 잘못된 정보만으로 우리 팀을 성급히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엘리트시스템 아래 육성된 대학선수들의 참가는 ‘풀뿌리 축구의 발전’이라는 K3리그의 기본 취지를 저해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태진 감독은 “풀뿌리 축구의 발전이란, 대도시가 아닌 소규모 지역에서도 누구나 축구를 즐길 수 있게 그 저변을 확대하는 과정 속에 이뤄지는 것 아닌가. 우리는 밑바닥에서부터 그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자부한다”고 반박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광주광산FC 서포터 또한 “그동안 광주에는 ‘군 팀’만 존재할 뿐 ‘내 팀’이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출범한 광주광산FC는 지역 주민들에게 ‘진짜 우리 팀이 생겼다’는 기쁨을 안겨줬다. 이것이 풀뿌리 축구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풀뿌리 축구인가?”고 말하며 일련의 의견들에 힘을 실어주었다.

즐거움과 기회를 얻다
다행히 현장에서 만난 광주광산FC 선수학생들에게선 패기만 느껴질 뿐이었다. 김태진 감독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리그제’아닌가. 게다가 대부분 전국대회를 뛰어본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에 1번 씩 경기에 나선다는 사실은 이들에겐 대단한 즐거움이다. 게다가 기량 또한 발전하고 있으니 동기 유발이 절로 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리그 참가로 선수학생들이 얻은 것은 실로 많았다. 수비수 김명선은 “일단 자신감을 가장 크게 얻었다. 다른 팀에는 K리그 출신 선수들이 많지 않나. 나이가 들어 은퇴했다고 하지만 경기 운영 능력이나 노련미 부분에서는 따라가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얻게 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승부에 집착하지 않은 자세도 배웠다. 실제로 학원축구 시스템 아래서 운동을 했던 이들 대부분은 토너먼트 제도에만 익숙했다. 그러나 이렇게 리그제를 경험하게 됨으로써, 선수학생들은 1경기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리그 전체를 조망하는 눈과 다음을 준비하는 여유를 키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를 통해 또 다른 ‘기회’를 잡은 이도 있었다. 지난 5월 한국대표로 AFC 풋살선수권 참가한 장석근이 그 주인공이다.

장석근은 “워낙에 축구학과 인원이 많은 탓에 베스트11으로 뛰기란 쉽지 않았다. 4년 내내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내 발로 광산FC를 찾아갔다. 그 덕분에 눈에 띄어 풋살대표에도 뽑혔으니 대단한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학부모 강명지씨가 던진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그늘에 가려졌던 아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건 여러모로 기쁜 일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진 능력을 보여주는 것만큼 뿌듯한 순간도 없지 않은가. 그동안 막연한 꿈으로만 치부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고 덕분에 아이들은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 짧은 말에 광주광산FC가 존재하는 모든 이유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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