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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최윤겸 감독님 아들은 샤이니 민호

최윤겸 감독님께서 멀리, 터키로 떠나셨습니다. 터키 2부리그에 있는 “카이크루 리제스포르”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클럽에서, 앞으로 코치로 계실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부터 외국에 떠날 채비를 하신다길래 저는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으로 떠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먼 나라로 가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작년 이맘 때 쯤, 대전 숙소를 방문했던 그날 저녁이 생각나는군요. 저녁 식사 후 감독님은 저를 숙소 뒤편으로 데려 가셨죠. 숙소 뒷편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는 찰나에 선생님의 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감독님께서는 이걸 보여주시기 위해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가신 거였더군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감독님을 올려다보며 웃었습니다.

“저게 그 비바 K-리그에 나왔던 그 토끼들이군요.”
“그렇죠. 참 예쁘죠?”
“네. 감독님께서 직접 먹이 주시면서 키우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렇죠. 얘네들이 어느덧 새끼까지 낳고 이렇게 늘었네요.”
“자식처럼 잘 키우셨어요.”
“그런데 내 자식 같은 우리 대전시티즌 아이들은 한 번도 토끼를 보러 안 오네요.”
“정말요? 한 번도 안와요? 그래도 한번은 올 수 있을텐데… 아쉽네요.”
“원래 그때는 하나만 보게 돼있어요. 당장 경기 나가서 이기는 게 중요하니까. 나 역시 그게 아쉽죠. 조금만 여유를 갖고 주위를 둘러보면 좋으련만. 삶의 여유를 갖는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을텐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 그걸 모르네요. 물론 하나에만 모든 걸 바치면서 뛰고 있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요.”
“언제까지 그렇게 사는 거죠? 영원히 안 바뀌나요?”
“바뀌죠. 선수 생활이 끝나면 다들 바꿔요. 그런데 그때 바뀌는 건 너무 늦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떴으면 좋으련만.”
“저도 가끔 그런 생각 하는데. 감독님도 그런 생각하셨군요.”
“감독님이 우리 애들 많이 도와주세요. 하나만 아는 녀석들이니까. 옆에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요. 부탁해요.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니까.”
“감독님이 부탁 안하셔도 감독님 밑에서 자라는 선수들이니까 분명 감독님 마음 다 알 거예요. 제가 아는 대전시티즌은 그런 팀이에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요.”
“그런데요, 저 오늘 숙소 처음 와봤는데 주위 풍경들이 참 좋아요. 선수들은 다들 피 끓는 청춘이니까 시골 구석에 있다고 투덜댈 수도 있겠지만, 음… 뭐랄까? 시골에서 살던 어린시절이 생각나요. 무척 아늑하고 편안해요. 나중에 결혼하면 신랑한테 국곡리에서 살자 그럴까봐요. ^^”
“가끔 오면 좋지 만날 있어봐요. 젊은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요.”
“아닌데요. 풀 냄새, 나무 냄새, 꽃 냄새… 너무 좋은데요. 여기 온지 겨우 1시간 밖에 안됐는데 벌써 정들었어요.”
“허허허.”

그날, 저녁바람은 참 따뜻했어요.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고 주홍빛으로 물든 햇볕은 은은하게 감독님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죠. 우리 아빠 같던 감독님의 그 인자한 웃음이 좋았고 바람에 실려 오던 자연 냄새가 좋았어요. 기분 좋게 마른 나무 냄새 또한요. 그렇게 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그 바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날의 기억을 모두 담고 있는 그 바람을 어찌 잊을까요.

인터뷰를 마친 뒤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에 찾아갔을 때 감독님은 홀로 누운 채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어요. “기자님,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며 언제나처럼 존댓말로 제게 먼저 인사해주시던 감독님의 그 인자함에 저는 또 한 번 감동 받았죠.

그날 밤, 숙소를 나오던 제 머리 위로는 수많은 별들이 은가루를 뿌리며 떨어지고 있었고 제 마음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국곡리의 밤하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속삭였죠. 아주 오랫동안 말이에요. 그 순간, 개골개골 우렁차게 울어대던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는 어찌나 씩씩하던지요.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던, 최신 인기 가요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던 어느 선수의 흥겨운 목소리는 또 어떻고요.

그날 이후로 다시는 감독님을 볼 수 없게 됐지만 지금도 그날 저녁의 기억은 여전히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드렸을 때 감독님께서는 “우리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죠. 잘하면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늘 따뜻한 시선으로 봐달라고 말이죠. 무엇보다 격려가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마지막까지 말씀하셨죠.

작년 이맘 때 쯤 감독님의 둘째 아드님이 SM에서 가수 준비 중인 ‘연습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팬들은 제게 “우리 감독님을 닮아 너무 멋지다”고 제게 말했죠. 늘 말로만 듣던 둘째 아드님이 이제 샤이니의 ‘민호’로 모두에게 알려지고 있군요.

터키로 떠나시기 전, 아들들에게 좋은 또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다던 감독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감독님은 대전을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언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늘 멋진 아버지라는 사실, 부디 잊지 마세요. 제게도 감독님은 존경하는 또 다른 아버지이시니까요.

이제는 가요프로그램을 보는 순간에도 감독님이 생각날 듯합니다. 모쪼록 건강히 그곳에서 또 다른 축구인생을 펼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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