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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팬들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 수 있을까. 지쿠가 돌아왔다!

지난해 7월 포항에서 임대선수 신분으로 온 지쿠는 이후 17경기 9골 4도움을 기록하며 후반기 강원의 상승을 견인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활약이었다. 사실 지쿠는 인터밀란(이탈리아) 디나모 부쿠레슈티(루마니아) CSKA소피아(불가리아) 등 유럽 명문클럽에서 활약한 루마니아 대표 출신의 특급 골잡이다. 포항에서 야심차게 영입한 선수였으나 포항의 팀컬러에 온전히 녹지 못했다. 전반기에 15경기 6골을 기록했지만 지쿠의 커리어와 영입비용을 생각한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기록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축구선수들과 다르게 지쿠는 선수답지 않게 포동포동한 이미지였고 실제로 팬들 사이에서는 포동스키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했다. 또 경기 중에 활동량이 많은 선수도 아닌지라 박지성 같은 미친 활동량에 눈높이가 맞춰진 팬들에게는 잘하는 선수가 맞나? 라는 의문을 줄 때도 많았다.

지난해 7월 김학범 감독이 취임 후 여름이적시장을 맞아 선수보강에 나섰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원한 선수가 있었다. 그가 바로 지쿠였다. 김학범 감독은 지쿠가 이미 유럽에 적을 두고 있던 당시부터 눈여겨봤다고 한다. CSKA소피아에서 뛰던 시절, 현지에서 지쿠의 플레이를 봤는데 김 감독은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김학범 감독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자면 “혼자서 다 해먹었지. 그런데 아무도 막지 못했어. 경기를 쥐락펴락 혼자 다했다니까.”

지쿠에게는 타고난 축구센스가 있었다. 시야가 넓었고 경기를 내다보는 수준 또한 깊었다. 동료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한 킬패스가 뛰어났고 위치선정과 이를 골로 연결시키는 결정력 또한 탁월했다.

7월 29일 홈에서 열린 광주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강원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지쿠. 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수비수 여러 명이 에워싸도 침착하게 볼을 살려내 동료에게 패스하는 모습은 탄성을 자아냈다. 그 짧은 수십 초에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지쿠가 가진 남다른 클래스를 느낄 수 있었다.

8월 26일 전남전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프리킥 골, 10월 7일 대전원정경기에서 터진 해트트릭과 이어 열린 10월 21일 대구전에서 해트트릭만큼 대단했던 2골 1도움 기록 등 지쿠가 보여줬던 뛰어난 플레이는 여전히 우리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혀있다. 늘 “우리팀이 살아남는다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을 거야!”라고 말했던 지쿠는 정말로 팀을 살려놓고, 후반기 강원FC 극장축구의 주인공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시즌 종료와 함께 홀연히 떠났다. 임대선수 지쿠와의 강렬했던 6개월이었다.

그랬던 지쿠가 다시 강원FC 유니폼을 입게 됐다. 강원FC로 완전이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를 물어보니 그 대답이 참으로 뭉클하다. “강원FC가 1부리그 잔류를 확정 지은 지난해 43R 성남전에서 김학범 감독님이 내게 주장 완장을 줬다. 감독님은 늘 나를 믿는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는데, 완장을 받으면서 나를 향한 감독님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날의 경기를 잊지 못한다.”

 


김학범 감독은 지쿠에게 “나는 네가 가진 능력을 믿는다. 네 플레이를 존중할테니 어디 한번 맘껏 뽐내보라”며 언제나 칭찬했고 격려했고 박수를 보냈다. 지쿠는 그런 스승의 믿음에 보답하는 경기력을 언제나 보여줬고 골이 터질 때마다 김학범 감독 앞으로 달려가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곤 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박지성과 히딩크 감독 못지않은 포옹 세레모니였다. 어찌나 애틋하던지 전생에 부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몹쓸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어쨌거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강원FC와 김학범 감독과 지쿠는 모두 궁합이 맞았다는 점이다. 이적 확정 후 지쿠는 “강원FC는 내가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의 각오를 되새길 수 있게 도와줬다. 강원FC에 있는 동안 정말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왔으니 나를 도와줬던 고마운 팀 강원FC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뛰고 싶다. 올 시즌에는 강원FC가 기필코 스플릿 A그룹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역량을 모두 쏟아 붓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다시 돌아온 지쿠는 동료 선수들을 위한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지난 시즌 주장 김은중과 올 시즌 뉴캡틴으로 뽑힌 전재호, 그리고 새로 만나게 될 선수들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먼저 전한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2013년이 우리 축구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즌이 될 수 있도록 멋진 경기를 함께 만들어보자.”

지쿠의 마지막 멘트처럼 2013년이 선수와 팀과 팬 모두에게 찬란한 시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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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얼마 전에 강원에서 만났는데 울 것 같은 표정이더라.”

제주 박경훈 감독이 언론사와의 인터뷰 중 한 이야기다. 박 감독이 지칭한 선수는 심영성이었다.

지난 8월 8일 강원FC 대 제주유나이티드 경기가 강릉에서 열렸다.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사실 제주에게는 승리와 다름없는 무승부였다. 1-0로 뒤지고 있던 중 종료 1분 전 극적으로 PK를 얻어냈고 이를 자일이 성공시키며 달콤한 승점 1을 챙겼다. 경기를 마친 후 박경훈 감독이 긴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심영성이 다가왔다.

박경훈 감독은 심영성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몸을 기울이더니 귓가에 대고 뭔가 깊은 이야기를 속삭였다. 그러더니 이내 목덜미를 잡고선 토닥토닥, 마치 심영성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안아주다 자리를 떴다.

 


심영성은 지난 6월 14일 임대 선수로 강원FC에 왔다. 불의의 교통사고 후 1년 넘게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던 심영성은 2011년 완벽하게 회복하며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일, 마르케스, 산토스 용병 트리오는 화려한 공격력을 자랑했고 2년 차 배일환과 이적생 서동현은 시즌 초반부터 득점포를 가동하며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침 제주 박경훈 감독과 강원 김상호 감독은 2007 U-17월드컵에서 감독과 수석코치로 한 배를 탄 깊은 인연이 있다. 김상호 감독은 젊고 감각있는 공격수를 원했고 박경훈 감독에게 심영성의 임대를 요청했다. 박 감독은 강원에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며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선수나 구단 모두에게 윈윈될 거라는 생각에 심영성의 임대를 허락했다.

심영성은 2004년 성남에서 데뷔하여 2012년 현재까지 8시즌동안 106경기 14골 6도움을 기록한, K리그에서 잔뼈 굵은 공격수다. 2006년 U-19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득점왕(5골)에 오르며 샛별로 떠올랐고 2007년 U-20월드컵에서는 이청용, 기성용 등과 함께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에 김상호 감독은 심영성을 향한 높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2006년 성남에서 제주로 이적한 뒤 주전 공격수로 날개를 폈으나 2009년 12월 교통사고로 1년 넘게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등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도 닥쳤으나 특유의 ‘뚝심’으로 인내하며 묵묵히 땀 흘렸다. 덕분에 2011년 6월 값진 복귀전을 치렀고 지난 5월 FA컵 32강전에는 선제골을 터뜨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심영성 스스로에게도 강원에서의 임대생활은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임대가 결정된 후 2주 후에 김상호 감독은 성적부임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사령탑에서 물러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자신을 불러준 감독이 떠난 자리에는 자신을 가르쳤던 감독이 들어왔다. 2004년 성남에서 데뷔한 심영성은 2006년 전반기까지 그곳에서 선수로 뛰었다. 당시 성남을 이끌던 지도자가 김학범 감독이다. 옛 은사를 강원에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이것은 운명일까.

김학범 감독은 귀국 후 이틀만에 감독 데뷔전을 치렀다. 7월 11일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 3-0으로 승리했고 나흘 후인 15일 춘천에서 홈경기 데뷔전을 맞이했다.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심영성은 후반 10분 정성민 대신 교체투입 되며 종횡무진 했으나 결정적인 찬스가 김영광에게 막히며 무위로 끝났다.

울산전 이후 심영성에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고 있다. 단 2경기에, 그것도 후반 35분 이후에 교체로 출전한 게 전부다. 뭔가 보여주기에 부족한 시간일 수 있다. 하나 팀은 냉정하다. 패하고 있는 경기에 교체투입한다는 것은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해내주길 바라는 벤치의 기대도 실려있다. 아쉽게도 심영성은 그 경기들에서 단 1개의 슈팅조차 기록하지 못했다.

연패에 빠져있는 강원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종결자다. 골을 터뜨리며 경기를 승리로 끝나게 만드는 사람이다. 심영성은 ‘조커’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앞으로 기회가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영성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자신의 축구인생이 그랬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후 수술을 반복했고 병원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때 다시 축구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늘은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고난만 주는 법이잖아요. 제가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서 이 팀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그런 심영성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강원FC에서 절실히 필요로 했던 만큼 주장 김은중 형님을 도와 멋진 결과물들을 내놓겠습니다. 강원FC에서 새롭게 심영성의 부활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라던 임대 확정 당시의 소감이 생각난다.

무릎뼈가 수십 조각 쪼개지며 모두가 선수생명은 이제 끝났다고 했지만 심영성은 보란듯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나는 7전8기 끝에 그라운드로 돌아온, 그렇기에 긍정의 힘을 믿고 있는 이 선수가 후반기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 감동의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게 후반기 펼쳐질 스플릿B를 맞이하는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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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웨슬리는 기특하다. 역대 강원FC 외국인 선수 가운데 최초로 해트트릭을 터뜨린 기록은 대한했고 골을 넣을 때마다 팬들을 향해 달려가 늘 왼쪽 가슴에 달린 엠블럼에 키스하는 세레모니는 늘 박수받을만하다. 이렇게나 팀 사랑 넘치는 선수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강원FC의 강백호, 웨슬리를 만났다.


강원FC에 오게 된 계기는. (@ㅈㅎㅈ)
코린치아스 클럽에서 훈련 중에 갑작스런 제의를 받았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고 한 번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전남에 있을 때 강원FC가 리그 최하위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래서 더 돕고 싶었다. 강원FC를 도와 나의 이름을 K리그에 강하게 어필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강원FC에 와서 좋았던 점은. (@뀨잉)
선수들과 구단프론트들이 잘 챙겨주고 운동하기에 시설도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남종현 회장님이 나를 정말 생각하고 아껴주신다. 그게 가장 좋다.

경기 중 몸싸움도 열심히 하는데 부상은 없는지. (@clup3833)
난 승부욕이 강하다. 지기 싫어 열심히 태클하며 뛰어다니다보니 터프하게 보이는 거 같다. 다행히 부상은 없다. 대신 너무 열심히 뛰어서 온 몸이 아프다. 부딪히며 타박도 많이 입고 근육통도 있고. 하지만 선수라면 누구나 이 정도 아픔은 감수하니까.

골을 넣지 못해도 항상 세레머니를 즐겨하는데. (@홍순우)
장난치며 분위기 띄우는 걸 좋아한다. 항상 세레모니를 하는 이유다.

지난 7월 11일 대전전에서 K리그 데뷔 이래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신록예찬)
바로 전 라운드였던 성남전에서 한 골을 넣고 승리를 거둔 이후 나를 비롯한 선수들에게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대전전에서는 초반부터 경기가 잘 풀렸다. 김학범 감독님이 오시고 나서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했고 좋은 인상을 심어드린 것 같아 기뻤다. 또 K리그에 온지 2년 만에 첫 해트트릭을 기록해 행복했다.

사실 리그 초반에 골 소식이 없었다.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은데. (@tree)
낯선 팀에서 새롭게 적응을 해야하다보니 향수병도 왔고 날씨가 추워 원래 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 김상호 감독님을 여전히 존경하지만 당시 감독님은 나에게 수비를 많이 강조하셨다. 빠르고 공격적인 선수라는 것을 아셨지만 너무 수비를 시키다 보니 내 플레이를 하기가 힘들었다. 정작 나는 이 좋은 스피드를 공격에 이용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힘들었다.

강원FC에서 친한 선수는. (@윤민정)
김명중 선수. 전남에서부터 같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친하다. 자크미치와 김은중 선수와도 친하고. 최근에는 지쿠와도 친해졌다. 지쿠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요즘은 서로 장난치며 친하게 지낸다.

강원FC에 와서 가장 좋았을 때는. (@양지은)
바로 지금이 나는 제일 좋다. 김상호 감독님과 보낸 시간도 좋았지만 김학범 감독님이 새로 오신 이후 경기 스타일이 나와 잘 맞는 듯하다. 그래서 현재 나는 아주 행복하다는!

강원FC로 완전 이적하고 싶지는 않은지. (@박용호, @남기철, @윤준형, @탁명진, @shakeshake97)
나는 강원FC가 좋다. 팀만 괜찮다면 있고 싶다. 코린치안스와 계약은 돼있지만 결정은 내가 하는 거니까. (이적료가 있는데?) 앗! 이적료!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다(웃음).

팀 내에서 플레이 스타일이 잘 맞는 선수는? (@그리오토)
단연 주장! 김은중 선수는 상당히 똑똑한 스트라이커다. 나의 스타일을 잘 알고 맞춰줄 뿐 아니라 이용할 줄도 아는 지능적인 공격수다. 함께 뛰면 호흡이 잘 맞아 편하고 좋다.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원인환, @Jongmin Choi)
밥에 비벼먹는 된장찌개. 삼겹살과 초코하임도 좋아한다(웃음).

한국에 와서 좋은 점. (@장하영)
브라질보다 조용하고 사람들도 다정해서 살기 좋은 곳 같다.

제일 좋아하는 한국어는? (@박채린)
괜찮아, 좋아, 멋져.

머리를 늘 짧게 자르는 거 같은데. (@우상훈)
머릿결이 안 좋아서 기르면 안 된다(웃음).

패션에 남다른 센스가 있는 듯하다. 쇼핑은 주로 어디서 하는지. (@김택곤)
쇼핑은 서울에 놀러갈 때마다 한두 번씩 한다. 기본 아이템은 청바지와 티셔츠고 액세서리와 모자로 포인트를 주는 걸 좋아한다.

고정적으로 다니는 미장원이 있는지. (박창균)
아디 미용실! 서울의 아디가 나의 전속 미용사다. 나 뿐 아니라 수원의 에벨톤도 아디에게 머리를 맡긴다. 소문에 듣기론 서울 선수들도 아디 미용사에게 가끔 부탁한다던데(웃음). 아디는 자기 머리도 스스로 다듬는 능력자다. 아디는 나와 가장 친한 K리그 선수다. 그래서 쉴 때도 아디네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축구팬들이 즐겨가는 사이트에서 한때 웨슬리의 형님 외모, 일명 ‘노안’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주하)
한국 사람들은 확실히 피부에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다. 관리도 많이 받는 듯하고. 브라질은 더운 나라다보니 피부가 안 좋은 사람들이 많고 다들 특별히 피부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보다 들어 보이는 건가? 흑.

장난꾸러기처럼 보이는데 실제 성격은 어떤지. (@MachoMan)
즐겁고 재밌는 걸 좋아해서 장난을 자주 친다. 장난꾸러기처럼 보인다고? 맞게 봤다(웃음).

자신이 은근 귀여운 거 아는가? (@팽투트와)
못생긴 건 아니지만 잘생긴 얼굴도 아니다. 그렇지만 남들이 귀엽다고 해주면 고맙다(웃음).

자신이 생각하는 K리그 최고의 한국선수와 용병선수는? (@JeePa)
서울의 하대성 선수. 볼을 똑똑하고 예쁘게 차는 것 같다. 외국인 선수는 서울의 데얀. 외국인 선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 아닌가. 득점력은 정말 최고인 거 같다.

존경하는 축구선수는 누구인가. (@ㅈㅎㅈ)
호나우도. 코린치안스에서 같이 뛰었던 적이 있는데, 실력 뿐 아니라 성격까지 좋다. 브라질을 대표해서 뛰었던 그의 축구인생은 정말 멋있었고 부럽기까지 했다. 같은 브라질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존경한다.

2012런던올림픽 준결승전 대한민국 때 브라질과의 경기를 봤는가. (@dreamers)
새벽에 하는 바람에 다음날 하이라이트로 봤다. 우리팀의 오재석은 많이 뛰고 열심히 하는 선수다. 그렇지만 네이마르를 마크해서 말은 안 해도 힘들었을 것 같다. 한국은 팀 자체의 조직력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오재석의 동메달 획득을 축하한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gangwonfc)
경기장에 와서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응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특히 서포터스 나르샤가 나를 많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맙다. 강원FC가 현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으므로 남은 후반기에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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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에 있어 김은중은 특별한 남자다. 올 시즌을 앞두고 도전을 위해, 라는 전제 아래 강원FC로 이적한 김은중은 이적과 동시에 캡틴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홈 개막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첫 승을 안겨주었고 팀이 연패에 빠지며 고비와 만날 때마다 자신을 낮추고 동료를 존중하는 ‘낮은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이제 김은중 없는 강원FC를 논할 수 없는 2012년, ‘샤프’ 김은중을 만났다.

라운드 MVP 팀내 최다선정자다. 소감은?
혼자서 잘해 받은 게 아니다. 감독님, 코칭스태프들, 선수들, 구단이 다 같이 열심히 해서 받은 MVP다. 아직 경기가 꽤 남아있기 때문에 남은 경기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강원FC 이적 이후 2경기 만에 2골을 터뜨리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덕분에 부담감을 덜지 않았나.
솔직히 고백하자만 부담감이 없지만은 않았다. 강릉 시내에 나갈 때면 시민들이 내가 뛰면 우리팀이 골 넣고 이길 거라고 하나같이 같은 말씀만 하시더라(웃음). 만나는 사람들마다 같은 이야기를 해주시니 알게 모르게 부담감이 생겼다. 그래도 지난 겨울 동안 팀이 착실히 준비했던 것들을 초반부터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해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일단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는데, 다행히 첫 승을 빨리 한 덕분에 선수들이 잃었던 자신감을 많이 되찾았다.

팀이 전체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재 우리의 조직력은 아직 70% 수준밖에 오르지 않았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팀과 선수들을 믿는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골 찬스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선수들이 그런 나를 도와주기 위해 다 같이 열심히 뛰어줬다. 동료들에게 고맙다.

 


선수들과 직원들 모두 김은중이 오니 팀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칭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사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K리그에서 오랜기간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것 뿐이다. 그걸 좋게 받아들이는 선수단과 구단의 넓은 마음에 감사하다. 내가 팀에서 최고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선수들이 내 말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주장’으로서 나를 존경하고 믿어준 선수들 덕분에 팀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강원FC에 와보니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멋진 팀이더라. 그 매력이 K리그에 알려지고 빛날 수 있도록 선수들과 함께 헌신하고 싶다.

후배들을 잘 이끄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어떤 ‘비장의 무기’가 있나?
팀내 최고참이다보니 후배 선수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아 먼저 다가가는 편이다. 함께 차 한잔 마시면서 서로간의 벽을 허물고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만든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선수들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기가 쉬워진다. 일단 선수들의 성격을 알아야 그 선수가 개인적으로 슬럼프를 겪거나 자신감을 잃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이다.

올 시즌 강원FC는 8강 진입을 목표로 꼽았다. 고참 선수 입장에서 가능성은 얼마나 보고 있나?
우리가 시즌 준비하는 동안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정한 목표가 8위 안에 드는 것이었다. 큰 목표는 8강이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은 힘들다고 본다. 그러나 시즌 시작 전부터 선수들에게 말했다. 44경기가 아닌 1경기씩 준비하자고. 다음 한경기가 우리에게는 결승전처럼, 이 한경기밖에 없다는 생각만 할 것이다. 그 한경기 한경기에 집중하다보면 조금씩 성적을 올리고 우리가 세웠던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까.

올 시즌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60-60 클럽 가입이 목전에 있는데 다른 목표가 있나?
개인적인 목표는 정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기록은 팀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은 팀이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팀 안에서 잘하고 싶다.

‘샤프’를 지켜보고 있는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일단 홈에서만큼은 가능한 많은 승리로 보답하고 싶다. 코칭스태프들은 선수들이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도록 밤낮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선수들은 그 지도에 잘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강원FC는 늘 열혈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는 구단으로 유명한데, 팀이 항상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론 기대에 못 미치는 플레이를 할 때도 있겠지만 팬이기 때문에 더 안아주신다면 선수들은 크게 고마움을 느끼고 한걸음이라도 더 뛸 것이다. 변함없는 응원 보여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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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런던올림픽이 우리에게 준 또 하나의 감동을 고르라면 올림픽축구대표팀을 꼽고 싶다. 각 클럽에서 옥석들이 모여 꾸려진 팀이다. 그러니까 흔히 하는 말로 또래에서는 ‘내가 제일 잘나간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모였다는 건데, 이상하게 이 팀은 여느 대표팀과는 다르다. 홍명보 감독님을 중심으로 선수들은 서로를 위해 희생했고 존중했다. 그러면서 팀은 어느새 팀 이상의 팀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결국엔, 축구종가 영국을 상대로, 연장에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한국축구 역사 최초로 올림픽 4강이라는 역사를 쓰게 됐다.

 

런던으로 떠나기 전, ‘기적을 만들어 오겠다’고 다짐했던 올림픽대표팀의 부주장 오재석. 팬들이 물어보고 오재석이 답한 올림픽대표팀 이야기를 공개한다.

 

 
▶지난 겨울 윤석영 선수와 함께 런던을 여행하셨죠. 다녀온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또 어떤 것들을 느끼고 배우고 다짐했는지 궁금합니다! (정의주, seethe3)
영국은 프리미어리그와 올림픽 무대가 열리는 곳이기 때문에 이 두가지를 체험 하고자 방문 했었는데요. 티비에서만 보는 EPL경기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K리그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선수들은 어떤 점이 뛰어난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고요, 개인적으로 축구인생에 단 한번 뿐인 올림픽 무대를 꼭 서서 우리 팀과 제가 꿈꾸는 목표를 이루는 상상을 하며 특별한 에너지를 느끼고자 했었는데 저의 꿈을 움직이는 엔진이 되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재석에게 윤석영이란? 김보경 선수와는 여전히 어색한 사이인가요? (abuzz1msj)
저에게 석영이는 칫솔과 치약 같은 존재입니다.^-^ 이유는 윤석영 선수에게 물으시면 알 것같아요. 보경이와는 어색한 것은 아니고요. 친해요. 서로를 배려해서 1년에 한번 정도만 통화를 하지만, 친해요. 고등학교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만들어지는 웃음포인트나 개그코드에서 유독 둘이 공감대형성이 전혀 안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저와 보경이를 포함한 신갈 고교 동창들의 장점이 (이범영, 이승렬, 박준태 등등) 서로에게 단점이나 결함을 서슴 없이 폭로하고 지적하는데도 절대 상처받지 않는 점이 좋아요. 결론은 친해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자신만의 목표와 각오! (최종인, 하하호호후후히히)
개인적인 목표는 없고요. 올림픽대표팀은 처음 시작할 때 좋은 팀으로 평가 받았으니 마지막도 좋은 팀으로 평가 받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결과도 중요하겠죠.

▶부상당한 홍정호 선수에게 힘이 되는 한마디 부탁드려요. 또 새롭게 주장 자리를 맡게 됐는데, 오재석 선수에게 주장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완장이 주는 책임감도 궁금합니다. (kej2706, 양해수, 지용강시♡)
정호는 올림픽팀에서 아주 중요한 선수였고요. 사실 최종예선을 치르면서 정호가 가지고 있던 부담감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가 도와주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부상 소식을 듣고 그때가 가장 많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앞으로 한국 축구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활약할 선수이기 때문에, 이 순간을 잘 이겨내길 바라고 올림픽대표팀에 모든 선수들이 홀정호 선수의 몫까지 꿈을 꼭 이뤄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장직에 대해서는 사실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동안 주장을 해본 적도 없어서 특별한 의미는 개인적으로 없지만 올림픽 대표팀에서 주장 역할이 주어졌을 때 생각한 것은 자철이형이나 정호가 없을때 흔들림 없이 팀을 지켜내야 한다는 게 최우선적인 생각이었고요. 그 안에서 매일 같이 새로운 선수들이 팀에 합류하고 매번 선수들이 바뀌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선수들에게 모두가 팀을 위해 희생하고 솔선수범하는 올림픽 팀의 문화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이 자릴 빌어서 올림픽 팀이 선수구성에 어려움을 겪을때마다 팀을 지켜내기 위해 희생해준 모든 선수들에게 감사하고 특히나 헌신적으로 팀을 지켜준 종우, 태환이, 석영이, 범영이에게 특별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올림픽대표팀 다큐 <공간과 압박> 잘봤습니다. 공개되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신록예찬)
저희도 굉장히 즐겁게 봤는데요. 6개월간에 이야기를 담아내기에는 방송시간이 조금 짧더라고요.^^ PD님과 촬영 담당하신 두분이 너무 고생 많이 하셨고, 더 다양하고 재밌는 일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추가로 방송이 나갈 거라는 소식이 있어서 그때 보시면 더 재밌는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선수가 보는 홍명보 감독님은 어떤 지도자이신가요? (베르)
최고에요. 긴말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감동을 주시는 감독님이세요. 한국에 홍감독님 같은 분이 많아진다면 분명히 한국축구가 더 발전될 거라고 선수들끼리 늘 얘기해요.

▶이럴 때 축구선수하길 잘했다! (zzjin_sil)
홍명보 감독님과 함께했던 광저우 아시안게임 3,4위전. 저는 뛰지도 않았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경기입니다. 축구를 왜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또 축구가 팀이 하는 스포츠라는 것. 22살에 다시 깨닫게 해줬어요.

▶축구선수로서 가장 힘들었을 때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전다솜)
철이 없어서 98년 월드컵을 보고 2002년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축구를 시작했는데요, 축구시작하고 일주일만에 그게 진짜 철이 없던 생각이 였구나라는 걸 느꼈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저희 동네에선 제가 짱이었거든요. 가장 행복했던 때는 런던 올림픽이 되었으면 해요.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끈끈하게 뭉친 올림픽대표팀 자랑을 하신다면요. (명랑씩씩)
올림픽팀에서 저는 축구뿐만 아니라 인생을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올림픽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한편의 영화 같을 것 같아요.

오재석 선수의 말처럼 올림픽대표팀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감동의 영화를 찍고 있네요. 그의 말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두손모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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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10 K리그 시상식이 열린 그랜드힐튼 호텔. 일찍 도착하여 인터뷰 하기 위해 모인 선수들이 있던 대기실로 갔죠. 그곳에서 김영후 선수를 만나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구박하고 있는데, 선수 한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아닌 김영후 선수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는데요, 그 선수는 "오랜만이에요"하면서 김영후 선수의 어깨를 잡고선 웃음을 짓고 가더군요.

어찌나 여유가 넘치던지요. 저는 선배 선수인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김영후 선수에겐 약간 후배인 유병수 선수였습니다. 이 자리가 익숙하지 않아 불안해보이기만 했던 김영후 선수와는 다른 느낌의 유병수 선수. ^^



그런데 말이죠. 이번에도 유병수 선수는 최고 공격수 자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우승팀에서 배출한 데얀과 준우승팀에서 뛴 김은중이 받게 되었네요. 허정무 감독은 왜 4-4-2 포지션에 맞춰서 선수들에게 상을 주냐며 야속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였고요. 뭐, 당시 현장에 있던 저도 정말 충격을 받았거든요. 득점왕이 최고공격수로서 대우받지 못하다니, 하는 생각에 말이에요.

그러니 본인은 어떠하겠습니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많이 놀랐고 충격도 받았을테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병수는 참으로 멋지게 득점왕 수상 소감을 밝히고 내려왔습니다. 아래는 당시에 제가 현장에서 찍은 영상입니다.



그날 바로 1년 전 신인왕을 놓고 각축을 벌이다가 유병수를 누르고 하나 뿐인 신인왕을 수상했던 김영후가, 이번에는 득점왕을 타게 된 유병수에게 꽃다발을 주며 축하해주는, 아주 훈훈한 장면을 연출해주기도 했습니다.

김영후가 신인왕을 탔을 당시 유병수가 꽃을 건네며 축하해주는 당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거죠. 바로 1년 만에 상을 받는 사람과 축하해주는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그 훈훈한 장면이 참 좋아서 집에 가기 전 호텔복도에서 만난 유병수에게 말해주었죠. 영후선수가 작년에 너무 고마워서 꽃 드린 거래요, 라고.

득점왕이 최고공격수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선수의 능력과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에 상관없이 팀 성적에 의해 상복이 정해지는 이 더러운 세상... 이라고 외치고 싶었던 K리그 시상식도 끝나고 그렇게 2010년도 조용히 유병수에 잊혀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기쁜 소식입니까.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 참가할 예비 훈련명단이 나왔는데 그 속에 유병수도 들어갔지 뭐해요. 제주도에서의 경쟁을 끝으로 훈련이 끝났는데, 이번에는 공격수 박주영이 부상으로 아시안컵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자리에 비게 되었고 지동원과 유병수 둘 중 하나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상은 바뀌었고 공석 하나가 더 생긴 덕에 두 사람 모두 아시안컵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박주영의 부상으로 비게 된 한자리는 유병수가 어부지리로 잡은 듯한 모양세입니다.

바레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중앙공격수로는 지동원이 나섰고 교체선수도 손흥민이었고요. 유병수의 자리는 벤치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까요. 유병수는 K리그에서 원톱로 나선 적이 거의 없고요 측면이나 처진 공격수로서 그간 팀을 이끌었으니까요.

득점왕의 자존심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인가요.  

하지만 저는 유병수의 실력과 강한 정신력을 믿습니다. 아시안컵을 앞두고도 그는 경쟁을 하러 온 게 아니다. 나는 대회를 치르기 위해 왔다며,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그는 A매치 데뷔전이었던 지난해 홈에서 열린 한일정기전을 기억합니다. 교체로 들어가 단 9분을 뛰었고 서너번의 볼터치 후 경기는 끝이 났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그날의 아쉬움을 여전히 기억하고, 그 아쉬움을 승화시키기 위한 반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시안컵에서 부디 그간의 아쉬음을 훌훌 털고 K리그 득점왕답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리그 팬들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기를. 인천 호날두 유병수의 힘찬 날갯짓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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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년차 징크스를 깨며 K리그 대표공격수로 조명받는 김영후. 그런 김영후가 “올해에는 꼭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며 올 시즌 목표를 당차게 밝혔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신인왕 수상은 ‘어제 내린 눈’과 같다. 수상 다음날 마음 속에는 기쁨보다 책임감이 더 크게 다가 왔다”고 운을 뗀 김영후는 “신인왕 타이틀을 갖게 된 이후 스스로에게 더 채찍질을 가하며 뛰고 있다. ‘2년 차 징크스’나 ‘작년에만 반짝했던 선수’라는 말을 들을까봐 걱정했는데 슬기롭게 2년차를 보낸 것 같아 기쁘다”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김영후는 “올해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면 지난 2년간 땀 흘려 이뤄낸 것들의 의미가 퇴색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올해가 작년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그동안은 K-리그에 적응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는 열심히하는 것은 기본이다. 더 성장한 모습으로 잘해야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김영후는 “솔직히 대표팀에서 함께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련다. 최고령 신인왕 타이틀을 가진 선수지만 태극마크를 달기에는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다. 스트라이커로서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됐고 앞으로 내가 가진 역량을 발휘하며 뛸 수 있는 시간들은 많다”며 국가대표 발탁과 관련해서는 “천천히 길게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대표팀에 뽑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클럽에서의 꾸준한 활약도 중요할 터. 김영후는 “이제는 공격방향이나 움직임 등 나만의 패턴이 상대팀에 많이 읽힌 듯하다. 작년보다 더 많이 골을 넣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 수비수가 읽어내지 못하는 플레이가 필요하다. 따라서 올 시즌엔 스스로 골을 많이 만들어낼 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 골 찬스를 많이 만들어줄 수 있는 창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2011시즌에 임하는 자세를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영후는 “지난해 팬들에게 재미있는 축구를 선보이며 강한 첫인상을 남겼지만 성적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올해에는 재미있는 축구 뿐 아니라 이기는 축구까지 보여드리고 싶다. 또 꼭 대표팀에 발탁돼 ‘희망이 있는 한 실패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이고 싶다. 팬 여러분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시면 큰 힘을 얻을 것이라 생각하다”며 팬들에게 인사말을 남겼습니다.

시련속에 피어나는 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법이죠. 김영후가 올 시즌 얼마나 아름다운 향기를 뿜는 꽃이 될지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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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늦가을 황재원 선수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주소를 알려달라더군요. 그때 짐작했죠. 아, 이사람.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라고요.  

황재원 선수가 12월 12일 12시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잊지 않고 결혼식에 초대하여 주던 그 마음씨가 참 고마웠어요. 꼭 와서 축하해달라던 문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고요.



제가 황재원 선수를 처음 만난 건 2007년입니다. 파리야스 매직으로 끝났던 당시 홍대에서 포항 4인방을 인터뷰하기로 했죠. 황진성, 정성룡, 박원재, 황재원 이렇게 4명을 직접 만나 포항의 우승 4인방에게서 우승 뒷 이야기를 듣기로 하였죠.

한데 전날 황재원 선수에게서 전화가 오더군요.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셔서 병원에 계시는데 디스크 수술을 받아야할 것 같다고, 그래서 병실을 지켜야하겠다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인터뷰 장소에 못나갈 것 같다 하였고, 그가 빠짐으로서 인터뷰 기획부터 컨셉, 질문, 사진촬영 시안까지 다시 짜야했지만 저는 알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아프시다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제 휴가를 받아 겨우 효자 노릇하려고 하는데 무리하게 그것과 상관없이 기사를 쓰고 싶다며 제 직업적 욕심을 부릴 수는 없겠더군요. 어머니의 빠른 쾌유를 빌게요, 가 제 마지막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봄. 포항의 AFC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홈경기 때 취재 차 포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야간경기를 마치고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서울로 가려 했는데 마침 R리그 경기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송라에 있는 포항 클럽하우스 구경도 할 겸, 또 오랜만에 R리그 경기도 볼 겸 하여 클럽하우스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재원 선수를 만나게 되었죠. 가까이서 얼굴 보며 인사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인사를 하자마자 대뜸 물어봤지요. 제가 누군지 아냐고요. 모른다는 대답이 나올 건 분명했고요 그럼 확실하게 기억하게 만들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물어봤는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저를 알더군요.

“목소리 들으니까 딱 알겠는데요”하며 웃는 황재원 선수.

사실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가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포항 우승의 주역 중 하나였던 황재원 선수는 이듬해 1월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탑승하며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다는 영광까지 누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동아시아대회를 준비하던 중 사건이 터졌습니다. 헤어진 연인과의 문제였죠.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옛 연인이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성토의 글을 올렸고 이것이 뉴스가 되어 언론의 도마 위에 올라갔고 축구팬들의 비난이 이어졌고 그는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상 때문에 귀국한 것이라는 대표팀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선수들의 사생활에도 엄격한 잣대를 내리는 허정무 감독의 의중도 있었을 것이라는 ‘설’도 오갔죠.

그리고 옛 여자친구의 눈물의 기자회견.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진실은 아니었다는 거... 이것 역시 지금에 와서 쓸 수는 없었지만 황재원 선수가 짊어지고 가야할 책임도 있었으나 반대급부로 피해 역시 안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죠. 애정사는 연인들 본인만 아는 이야기라고요. 황재원 선수도 친한 기자들에게 해명하고 싶다고, 억울한 이야기를 조금은 들어달라고 연락을 해왔는데 이게 또 퍼져 각 언론사 기자들은 그날 만나기로 한 호텔에 다 모이고 말았습니다.

호텔에서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었건만 방송사 카메라까지 등장하였고요. 결국 카메라 없이 조용한 방에 기자들이 입회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으나 너무 많은 기자들이 왔던 관계로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라는 사죄의 멘트만 남기고 황재원 선수는 떠났습니다.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였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읊조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마음이 아프더군요.

황재원 선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남자가 되어버렸지만 내막을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저 사람이 저렇게 뉴스 속 범죄자처럼 고개를 숙인 채 있어야할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그날 저녁 황재원 선수와 전화로 오랜 시간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던 건 그는 저와 얼굴 한번 본적도 없는 사이였는데 전화로 깊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었고요 나중에 해명기사가 나와도 선수에게 좋을 것이 크게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가슴에다 묻어두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때 그 긴 통화 덕분에 황재원 선수는 제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포항은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였고 역시나 황재원 선수는 주장으로서 꽤나 멋진 플레이를 선보이며 우리 앞에 다시 멋진 선수로 나타나주었고 지난해에는 K리그 수비부분 베스트 플레이어로도 뽑혔죠.

작년 여름 버스에 내리자마자 저를 보며 물 좋은 곳에서 일하니 더 예뻐진 거 같다며 웃으며 인사해주던 그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정말 마음 고생 안하고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저도 웃으며 화답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작년 강원과 포항과의 리그 경기 중 윤준하 선수에게 넣은 태클로 PK를 내줬을 때도 최순호 감독님 잘하시라고 일부러 PK까지 준 건데, 하며 농담까지 할 정도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K리그 시상식을 앞두고 기자단에게 전달 된 투표용지에서 발견한 그의 이름. 올해에도 황재원 선수는 수비 부분 베스트플레이어로 이름을 올렸더군요. ^^ 제 눈을 사로잡았던 그 수비력이 여전히 빛나고 있음이 참으로 제 일처럼 흐뭇했고 또 기뻤습니다.

K리그에서 이름을 알린 선수라면, 더구나 팀의 중심 선수라면, 결혼소식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기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게 됩니다. 그러나 황재원 선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난 날의 아픈 과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자로서, 또 축구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빛나는 인생을 다시금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조광래호 아시안컵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국가대표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고요. 다음달에 열리게 될 아시안컵에 선발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신혼여행도 포기한 채 그는 어제부터 제주도에서 시작된 훈련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K리그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을만큼 멋진 플레이를 선보인 수비수들은 지극히 적습니다. 그래서 더 저는 황재원 선수에게 시선이 가고 관심을 쏟게 되고 그의 내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수비수니까 결혼식에 꼭 가서 축하해줄게요.

그의 결혼식 청첩을 받고 제가 했던 말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저는 그에게 앞선 말을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수비수니까, 라고요.

내년 아시안컵에서는 그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대표팀 울렁증도 날려버린 채, 리그에서 보여줬던 빛나는 모습을 온전히 그라운드에서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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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FC서울 김치우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훈련소에 입대했네요. 그래도 마음은 꽤나 뿌듯할 거 같아요. 생애 처음으로 K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으니까요. 무엇보다 팀을 우승시킨 일등공신 중 하나였으니 기쁨의 깊이는 남달랐겠죠.

지난 1일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제주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 후반 10분 교체되어 들어온 김치우는 종료 직전 오른발로 귀중한 동점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김치우의 1차전 동점골이 없었다면 1-2로 패했을 테고 2차전에서 2-1로 이겼다하지만 각각 1승을 나눠가졌기에 승부차기가까지 갈 상황이었죠.

그랬기에 김치우의 동점골은 역전 결승골과 다름 없는 귀중한 골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치우의 공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1월 7일 열린 K리그 정규리그 최종전에서도 김치우는 오른발로 극적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팀을 정규리그 1위로 올려놓았지요.


이번 2차전에서 김치우는 선발로 출장했습니다. 후반 25분 이승렬과 교체돼 나가기까지 왕성한 활동량을 선보였는데요, 전반 10분 데얀의 골도 시작은 김치우의 발끝에서였답니다. 김치우의 슈팅이 김호준에게 맞고 나온 걸 다시 데얀이 성공시켰으니까요. ^^

사실 김치우에게 2010년은 잊고 싶은 시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남아공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했기 때문이죠.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던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한때는 그들과 함께 뛰었던 김치우였지만 지난 여름에는 시청자의 입장으로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봐야했습니다.

많이 부러웠을테고 또 많이 아쉬웠을테고, 그래서 속이 쓰라렸을 겁니다.

이대로 시즌을 마감하며 훈련소에 들어갔다면 앞으로도 그의 축구인생에서 잊고 싶은 기억으로 남을 한해였겠죠. 그러나 김치우는 슬럼프를 극복했고 상처를 이겨냈습니다. ‘해결사’이자 ‘조력자’로서 묵묵히 제 몫 이상을 다해 뛰었고 우승이라는 두 글자를 팀에 안겨둔 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입대를 하게 됐습니다.

우승 다음날 입대를 하였으니 그는 지금 까까머리를 하고선 훈련소에서 잠 못 드는 첫날 밤을 보내겠죠. 트레이드 마크인 긴 머리, 그래서 팬들에게선 치우 언니로 불렸던 그 머리를 어떻게 잘라냈을까. 스포츠머리는 또 얼마나 어색할까. 궁금한 마음도 큽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김치우를 참 아꼈습니다. 그가 해줬던 내 마음을 울렸던 그 아름다웠던 말들 때문이었죠.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김치우가 제게 해줬던 말들은 지금도 별처럼 제 가슴 속에 박혀있습니다.

“축구는 저에게 학교 같은 존재죠. 축구를 통해 모든 걸 배웠으니까요. 그러면서 어엿한 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어요. 열여섯 이후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엄마가 돌아가셨거든요. 세상을 다 잃은 것만 같았죠.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내 옆에 있었던 건 축구공이었어요. 그래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건 바로 축구에요. 그리고 이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요. 네, 지금은 행복합니다.”

국가대표에 뽑히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장 좋아할 거라면서 옅게 웃던 소년가장 김치우.

“엄마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암이었어요”라며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제게 해줬다는 건, 그만큼 마음을 열고 저와의 인터뷰에 응해줬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 엄마가 많이 반대하셨어요. 어렸을 때 천식 때문에 몸이 약했거든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2년 동안이나 병원에 다녀야만 했어요. 항상 엄마가 돌봐주시며 신경 많이 써주셨죠. 중학교 입학 전에 비로소 천식이 나았어요. 그러면서 뛸 수 있게 됐죠. 뛸 때마다 숨이 찬다는 그 느낌이 정말로 좋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요즘도 C.A라고 하나요? 5학년 때 특별활동을 해야 했는데 뛰는 게 좋아서 축구부에 들어갔어요. 정식 축구부는 아니었지만 마침 담당하셨던 선생님이 축구선수 출신이셨어요. 선생님께서 ‘풍생중학교에서 축구부원을 모집한다고 하니 한번 지원해봐라. 내가 볼 땐 잘될 것 같다’ 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제 축구인생도 시작된 거죠. 물론 엄마는 계속 반대하셨어요. 그 때문에 ‘만약 몸이 힘들면 그만해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저도 제가 이렇게 끝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프로선수가 될 줄 몰랐고, 올스타전에 뽑히게 될 줄도 몰랐고요. 할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하늘나라에서 엄마가가 얼마나 좋아하겠냐면서요. 사실 엄마가 살아계실 때만해도 저는 게임 못 뛰는 선수였거든요. 어렵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거예요. 엄마도 그때는 모르셨겠죠. 제가 이렇게 될 줄은요.”

그때만 해도 김치우는 팀 대표로 올스타전에 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참 설레인다고 제게 말했죠. 그랬던 김치우는 어느새 국가대표에도 이름을 올렸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K리그 선수로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최고의 순간까지 맛보게 됐네요.

“보통 게임 뛰기 전에 국민의례를 하잖아요. 저는 그때마다 엄마를 생각하며 기도해요. 게임이 끝나면 다시 한 번 감사기도 드려요. 엄마 덕분에 무사히 게임 마쳤다고. 엄마는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신 분이자 지금도 저를 이끌어주시는 분이에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됐지만 제 마음 속에는 항상 엄마가 계시니까 같이 뛰는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도 보실 거예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뛰는 모습 말이에요. 그래서 아쉽다는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기분 좋을 뿐이에요. 지금도 날 지켜보고 계시니까요.”

하늘나라에게 계신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그 어머니의 평화를 빌던 기도의 힘으로 김치우는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군인 김치우로 뛰어야할 날들이 주어졌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에게 축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안겨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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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서동현 선수의 첫인상은 “아, 크다”였습니다. 프로필 상 키는 188cm로 나와있는데 실제론 더 커보이는 선수입니다. 복받은게지요. 저 같은 사람은 진짜 키를 이야기해도 속인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듣거든요. 아무래도 비율이 좋아야 키도 커보이는게 현실이니까요.

키가 크면 고공플레이에는 능하지만 순발력은 부족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 공중볼에도강하고 빠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이라는 상황에도 무척이나 쉽게 골을 넣곤 하죠. 그의 라보나 힐킥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서동현 선수가 뛸 때마다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합니다. 발레리노 같은 움직임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데, 최순호 감독님이 늘 강조하신 축구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그 말씀의 주인공 같다는 생각도 자주 했지요.

그랬던 서동현 선수가 지난 여름 강원FC로 이적했고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남의 선수에서 우리 선수가 되었으니까요. 이적 발표 전날 구단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쓰기 위해 준비를 했는데, 강원FC에서의 첫만남이었습니다.

그때 구단 사무실 순위표에 강원FC 이름은 14위에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순위가 좀 낮죠?” 서동현 선수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강원FC 이름표를 떼서 1위에 올려놓더라고요. “우리가 1위로 만들면 되죠.”

이때, 진심으로 참 멋진 선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몇 년간 수원담당 기자시절을 보냈기에 서동현 선수가 골을 넣고 세레모니하는 모습을 자주 (2008년이 대부분이었지만 ㅠㅠ) 봤죠. 그 중에서도 제 머릿속에는 티아라의 보핍보핍 댄스 세레모니였어요.

지금, 여기서 하라고요? ㅋ


그래서 홈관중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날에도 보핍보핍 댄스를 시켰고요, 뭐 틈만 나면 보여달라고 요청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때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지요.

이적 첫 골은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해 나르샤가 멤버로 있는 브아걸의 시건방춤을 추겠다고 하였는데, 정말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 골을 터뜨리며 약속을 지켜줬죠. 이 사람, 팬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기특한 선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봤습니다.

대전과의 원정경기를 마치고 다시 홈경기를 준비하던 그 주, 클럽하우스 주차장에서 만났는데 당시 후진하던 제게 안성남 선수와 함께 “아! 부딪힌다!”하면서 놀리더라고요. 아. 내가 운전 못하는게 이적 선수들에게까지 소문이 났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한데 (운전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에요 ㅠㅠ) 집에 가기 전에 갑자기 부르더라고요.

다음에 홈에서 골을 넣으면 티아라의 보핍보핍 세레모니를 할터이니 음악을 준비해달라고요. 그래서 바로 사무실에서 보핍보핍~하면서 시작되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강원FC~ 구호까지 리믹스해서 파일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는 마지막 홈경기를 단 하나만 남겨둘 때까지 원정에서만 4골을 넣는 슬픈 기록을 세우고 맙니다. 그래서 강원FC는 관중들에게 홈에서 한번도 골을 넣지 못한 축구천재의 이름을 문자로 보내달라는 퀴즈를 내기까지 했고요. ^^

그렇지만 결국엔 마지막 홈경기에서 멋진 선제골을 터뜨리며 홈에서 드디어 첫골을 신고했고요, 이적 후 강원에서 5골을 넣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때 강원FC 구단 직원들은 부랴부랴 CD를 준비해서 틀어줬는데요, 예상치 못한 순간이라 음악이 늦게 나왔지만 그래도 W석을 향해 아주 귀여운 댄스를 보여줬죠. ^^ 사실 서동현 선수가 보핍보핍 세레모니를 준비하고 있다고 팬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늘 굴뚝같았어요. 그의 남다른 팬사랑을 보여주는 좋은 예니까요. 그렇지만 미리 알고 나서 보게 되면 감동은 줄어들테고 그래서 늘 꾹꾹 참으며 골골골골, 서동현, 을 외쳤습니다. ^^ 

참. 여기서 골골골골~ 서동현은 그랑이 지어준 서동현 선수 응원곡인데 너무 좋아서 가끔 저도 기자석에서 흥얼흥얼 부르곤 해요. 그랑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던 날, 그 자리에 저도 있었는데 서동현 선수가 다음날 제게 말했지요. “내 응원곡 들었어요? 나 그런 사람이에요.”

개인적으로 전 평범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주변 사람들에게 4차원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4차원은 4차원을 알아보죠? 가끔씩 보여주는 서동현 선수의 엉뚱한 모습을 보며 “당신도 나와 같은 4차원으로 임명합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져요. ㅎㅎ

춘천에서 팬사인회를 하던 날 과거에 좋아했던 남자에 대해 무심결에 이야기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저만 보면 이야기를 해달라고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그 남자가 서동현 선수와 아주 짧게 나마 알던 사이였기에 궁금했나봐요. 그런데 이 선수, 호기심 천국에서 뛰다 왔는지 저만 보면 빨리 말하라고 했고요 나중에는 사장님께 이른다는 협박까지 했답니다. ^^

언젠가 클럽하우스에서 퇴근 하면서 “사장님~ 헬레나 누나가요~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하는데 사장님이 그 소리를 듣고 “쟤 너보고 무슨 소리 하는 거니?”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식은땀을 흘렸고요 정점은 다문화가정 농촌봉사활동하던 날이었던 거 같아요.

그날 배를 따는 모습을 찍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나타나자 서동현 선수는 또 말했습니다. “자꾸 사진 찍으면 사장님한테 다 말할 거예요!” 사장님이 듣고선 “뭔데? 말해봐!” 그랬더니 “사장님, 헬레나 누나가 잘못한 게 많아요. 제가 말이라도 하면 큰일나요”하더군요. 이날은 사장님이 제대로 들었거든요. 사장님은 계속 뭔데, 다 말해봐 했고, 급기야 나중에 저한테 물었습니다. 너 무슨 잘못한 거 걸렸니, 라고요.

그랬던 서동현 선수가 오늘도 클럽하우스 1층 홀에 사장님과 같이 있자 복화술을 구사하며 지나갑니다. “사장님~ 헬레나 누나가요~” 이제는 그걸로 노래 하나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요즈음입니다.

며칠 전 친한 후배와 대화 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서동현 선수 다 좋은데... 너무 말랐어... 내 허벅지가 더 튼실한 거 같아.” 네. 그렇습니다. 근래 들어 스트레스를 단 거로 풀었고 그 후유증으로 생애 최고의 몸무게가 나가는 요즈음, 서동현 선수의 이기적인 기럭지는 제게는 한여름밤의 꿈같은 존재입니다. 청바지에 쟈켓 하나만으로도 그림이 나오는 그 비율이 저는 늘 부럽지요.

그런데 후배가 그 이야기를 서동현 선수에게 한 거 있지요. 그런데 서동현 선수가 제게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아니 어떻게 선수한테 그런 말을... 이건 완전 성희롱이에요~ 사장님한테 다 말할 거야.”

전 그 말에 또 빵터지며 웃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서동현스러운 유머였거든요. 이 상황을 참 재치있게 역공한 서동현 선수. 참 매력적인 4차원이죠?

가끔은 친정팀 수원을 위한 깔맞춤 패션으로 나타나기도. ㅎ


그런 서동현 선수, 요즘은 제 세례명을 갖고 놀리고 있어요. 헬레나가 술 먹고 ‘헬렐레’ 할 때랑 발음이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맨날 술 먹고 다니면서 헬레레해서 이름도 헬렐레가 됐다고 한답니다. 수원전 다음날 춘천에서 팬사인회가 있었는데 그날 새벽까지 기자들과 술을 좀 마셨어요. 오!랜!만!에. ㅋ 그래서 완전 술에 지친 모양새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그게 발단이 된 거 같습니다. 제 블로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요즘 서동현씨는 술 좀 그만 먹으라고 헬렐레가 뭐냐고 하네요.

그렇지만 저는 서동현 선수가 강원FC에 있어서 좋습니다. 이렇게나 팬 충성도가 높은 선수를 본적이 없었거든요. 뼛속까지 수원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피속까지 강원이 되버린 이 사람. 팬들을 위해 오늘은 이 세레모니를 하겠다고 준비하면 골을 넣고 정신이 없는 순간에도 그 약속을 지킵니다. 팬들을 향한 마음이 보통이 아닌 거지요.

서동현 선수가 사준 갈비살 인증샷. ^^


그래서 저는 서동현 선수가 강원FC에 있어서 좋습니다. 맛있는 갈비살을 자주 사줘서 좋고요, 집에도 종종 초대해 와이프가 해주는 맛있는 집밥을 먹게 해주는 것도 너무 좋고요. 우리팀에 이적한 이후 멋진 골과 감동적인 승리를 안겨주어서 좋습니다. 또 기자들과의 인터뷰 때는 최선을 다해 집중해서 대답하는 것도 좋고요.

언제까지 강원FC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국가대표의 꿈을 다시 이뤘으면 좋겠고 최고의 위치에서 박수 받으며 자신의 진짜 꿈을 위해 더 큰 무대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내일도 저를 보면 사장님과 헬렐레를 반복하며 놀려대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품절남이지만 ㅎ 멋진 선수가 해주는 농담, 어찌보면 영광 아니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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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에서 광주상무를 제외한 14개 클럽 주전선수들을 대상으로 송년호 특별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인천유나이티드의 유병수가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인 선수로 뽑혔네요.

올 시즌 22골을 넣으면서 경기당 0.79골이라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인 유병수는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선수로 뽑혔는데요, 팀 성적이 11위로 좋지 않음에도 26.6%의 지지를 받았으니 정말 대단한 결과가 아닐 수 없겠네요.


2위는 올 시즌 공격포인트 1위를 기록하며 돌아온 '샤프' 김은중(17%)이 차지했습니다. 신기한건 강원FC의 '괴물' 김영후가 3위를 차지했다는 거예요. 6.7%의 지지를 받았는데요, 1,2위와 차이를 보이지만 그래도 3위를 차지했으니 동메달인 셈이죠. 그래서 참 흐뭇했답니다. ^^

문득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가 생각나더라고요. 작년에 베스트일레븐에서 선정한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신인’ 부분에서 김영후는 전체 점수 495점 중 211점을 차지하며 당당히 1위에 등극했기 때문이죠. 2위 유병수(137점)를 무려 74점이나 따돌리며 정상에 올랐는데, 백분율로 따지면 42.6%였죠. 유병수는 27.7%였고요.

어쨌거나 지난해 김영후는 공격포인트 1위에 올랐으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축구드라마도나오는 등 유병수보다 한발 앞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신인왕 역시 그의 것이었고요. 작년 드래프트 현장에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김영후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던 유병수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러고 보니 한일올스타전 전야제 때 유병수를 처음으로 가까이 봤던 기억이 나네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있던 유병수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어린 친구가 꽤나 조리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더라고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끝난 거 같아 기자들에게 김영후 인터뷰하러 가자고 그러고 김영후 쪽으로 이동했는데, 기억력이 좋았던 유병수는 그때 제 얼굴을 외웠나봐요.

올해 어린이날 강릉 홈에서 유병수를 다시 만났는데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제게 인사를 하더라고요. 반갑게 인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제게는 꽤나 인상적인 순간이었답니다. 예의 바른 축구선수를 좋아하는지라 유병수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죠.

어린이날에 격돌한 유병수와 김영후. 이날 경기는 유병수의 승리로 끝났답니다. 유병수가 1골 넣고 김영후가 1골 넣고 다시 유병수가 또 1골을 넣고 김영후가 PK를 차게 됐는데 실패함으로써 홈에서 김영후는 팀 패배라는 결과 앞에 눈물을 뿌려야했지요.

저돌적인 유병수의 움직임은 보는 내내 위협적이었고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왜 유병수인가, 라는 질문의 답이 바로 저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날의 유병수는 저로 하여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공격수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죠.

유병수와의 맞대결에 부담을 느끼고 PK를 실축한 김영후가 아쉽기도 했고요. 정신력 싸움에서 진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음의 부담이 크게 작용한 탓이겠지요.

그리고 나서 지난 10월 다시 만난 유병수는 지쳐 보이더군요. 움직임도 영민하지 못했고 라피치에게 꽁꽁 묶여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반면 김영후는 1골 1도움을 올리며 팀을 3-1 대승으로 이끌며 어린이날의 패배를 말끔히 씻어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지난해 김영후에게 신인왕을 내준 유병수는 공격수로서는 최고의 영광이라 할 수 있는 득점왕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것도 23살 어린 나이에 거둔 값진 성과이니까 더 대단하겠죠?

사실 김영후가 늘 제게 말했어요. 유병수의 젊은 재능이 부럽다고요. 그냥 재능도 아닌 젊은 재능. 그러니까 어린 나이에 저 정도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는 건,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여 축구시각이 더 크게 열렸을 땐, 지금보다 더 훌륭한 공격수가 될 수 있다는 걸 뜻한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보다 더 훌륭한 공격수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자신보다 젊은 유병수를 무척이나 부러워했지요.

사실 생애 한번 뿐인 신인왕을 놓쳤다는 건 유병수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한이 마음 속에 있다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답니다. 어린 나이에 모든 걸 다 가진 선수가 되는 것보다는 갖지 못한 것이 하나 남아 그 아쉬움을 달래며 매진하는 게 유병수의 성장에 보탬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거든요.

지난해 국가대표팀에 깜짝 발탁 됐을 때, 파주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친한 기자를 통해 살짝 들었지요. 갓 태극마크를 단 어린 선수가 뿌리내리기에는 기존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맺고 있던 결속력은 단단했지요. 혼자서 카트에 앉아 파주구경놀이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조금 짠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합류한 국가대표팀이었지만 교체인원이 많아 뛰었던 경기는 A매치로 인정되지 않아 결국 1년 뒤에 A매치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지만 지금의 유병수가 보여주는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그리고 성장한다면, 우리는 그가 태극무늬 유니폼을 입고 뛸 경기를 오래도록 볼 수 있겠죠.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다는 말처럼 유병수는 함께 뛰는 K리그 선수들이 뽑은 올 시즌 최고의 선수에 등극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그의 앞날을 기대하며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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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FIFA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겨준 자랑스러운 U-17여자월드컵 대표 선수들. 그 중에서 영광의 얼굴 이유나와 김유진 선수가 강원FC 홈경기장을 방문했습니다.

이유나, 김유진 선수는 현재 여자축구계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강릉시 강일여고 축구부에 재학 중입니다. 이중 이유나 선수는 멕시코와의 조별예선 2차전에 출전, 후반 막판 쐐기골로 팀을 4-1 대승으로 이끌었으며 당시 귀여운 외모로 U-17대표팀의 ‘김태희’로 화제를 모은바 있죠.

경기장에 도착해 선물로 준비한 강원FC 유니폼이 맞는지 탈의실에서 갈아입어봤는데... 그때 트레이닝복 안에 입고 온 대표팀 유니폼이 눈에 띄었어요. 국가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대표선수들은 유니폼을 대회에 끝날 때 반납해야한대요. 저도 몰랐는데... 그래도 우승하고 나서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이 소원을 말해봐라고 하셨는데... 어린 선수들은 소박하게도 이번에 입은 유니폼과 트레이닝복, 가방을 갖고 싶다고.

나라를 빛내준 영웅치고는 꽤나 소박하죠? 그 소박함 속에서 강인함이 갖춰있다고 생각하니 더 달리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보니 정말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그 국가대표 유니폼을 보면서 아 이게 회장님이 주신 그 유니폼이구나, 이거 입고 뛴 거에요? 라고 물어보니까 "네, 저희 우승했다고 선물로 주셨어요!"라며 활짝 웃는데, 너무 맑더라고요. 나라를 대표해서 뛰었지만 소녀는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여자선수들은 제 앞에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 이때 굉장히 뿌듯했어요. 사실 매번 선수들이 옷 갈아입는다고 하면 자리 피해야하고 선수들 옆을 지나갈 때면 여자라서 저 때문에 더워도 옷을 못벗는다고 굉장히 짜증내는 경우와 많았거든요. 그런데 여자 선수들이 제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옷을 갈아입었는데... 저는 왜 이 순간이 감동스러웠던 건지... ^^;;;

어쨌건 트레이닝복 안에 강원FC 유니폼을 입고 이유나, 김유진 선수는 그라운드에 등장했습니다. 강원FC는 경기 시작에 앞서 세계 무대에서 ‘강원도의 힘’을 보여준 이유나, 김유진 두 태극낭자들의 선전을 축하, 격려하는 의미로 꽃다발과 경기력 향상 지원금을 전달했고요.



시축 전에 두 선수들이 어떻게 시축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여민지, 지소연 선수가 이미 FC서울과의 경기에서 시축을 했기에 조언을 받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전화통화를 안해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예쁘게 차지 말고 제주의 골문 안에 골을 넣는다는 기분으로 힘차게 차라고요.

그랬더니... 모두들 ㅎㄷㄷ한 시축장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시축전에 사인볼이라 경기구보다 작다며 잘 찰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는데... 당시 현장에 있던 관중들은 깜짝 놀라며 탄성을 질렀고요. 그때 장면은 아래의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어쨌거나 개념축구로 우리에게 월드컵 우승이라는 기쁨을 안겨준데 이어 화끈한 개념시축으로 또 한번 즐거움을 준 이유나, 김유진 선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실제로 보니 아름다웠고 멋졌다는 말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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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소연을 만났습니다. 2년만의 만남이었어요. 2008년 8년 U-17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을 때 주장 완장을 차고 있던 꼬마 아가씨는 2년 만에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을 넘어 세계 여자축구계를 지배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앳된 느낌은 이제 없더군요. 그녀의 플레이가 성장한 것처럼 말이에요.



지소연은 2년 전 우리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 기억나요, 라며 라커룸으로 들어가는데 굉장히 밝아보였고 또 또랑또랑한 느낌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2년 전만에도 제가 던진 질문에 잘 대답하지 못하던 수줍던 소녀는 이제 없더라고요. 언론과의 인터뷰가 많았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저를 대하는 태도도 한결 자연스러워졌더군요. 부쩍 성장한 지소연의 모습에 제가 조금 압도되기도 했습니다.

통일대기 전국여자종별축구대회 결승전이 열린 강릉종합경기장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폭우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상당히 많은 비가 내렸고 선수들이 뛰기에는 열악한 날씨였습니다. 유니폼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유니폼은 비를 다 머금었고 꽤 무거웠습니다. 잔디는 미끄러웠고 몸은 무거웠고 비가 세차게 뿌려 시야는 좋지 않았고요.



그렇지만 지소연은 후반 23분과 36분에 연속골을 터뜨려 4-1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소속팀 한양여대에 우승트로피를 안겨주었죠. 악천후의 날씨 속에서도 단 한 번의 찬스를 놓지 않던 센스와 결정력.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날씨 속에서는 트래핑도 어렵고 볼이 예상을 빗나가며 튀기기 때문에 키핑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키더군요. 기본기가 너무나 좋았고 집중력도 뛰어났습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지소연은 반짝반짝 빛나더군요. 무엇보다 빗속에서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와준 몇 안 되는 관중들을 위한 세레모니도 빛났어요. 비로 젖은 잔디위로 미끄러지며 슬라이딩 세레모니를 보여주더니 관중석을 향해 박수를 치더군요. 학원축구에서는 보기 드문, 팬과 함께 하는 그녀의 세레모니에 이 선수, 참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감탄사를 연신 내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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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운명이었을까요. 1996년 K-리그 데뷔 이후 줄곧 수원에서만 뛰었던, 그리고 지금도 뛰고 있는 원클럽맨 이운재의 은퇴 경기는 수원의 홈구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이것 역시 운명이었을까요. 전반을 무실점으로 마감하며 슈퍼 세이브를 보고 싶었건만 전반 26분 나이지리아에 1골을 내주며 바로 정성룡과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전반 중반 교체되면 보통은 벤치에 앉아 경기를 보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운재는 곧바로 락커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웬지 눈물을 속으로 삭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맺히는 눈물을 보여주기가 싫어 락커룸으로 가고 있다고, 그의 뒷모습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축구를 보았던 제게, 이운재는 언제나 국가대표팀 골키퍼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서 정성룡이 주전자리를 꿰차고 나왔을 때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겠지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고요.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운재는 이번 나이지리아전까지 17년 간 붉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A매치 공식기록은 132경기 114실점. 홍명보 감독(136경기)에 이어 최다 A매치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국내 GK로서는 최초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며 화려하게 빛났었죠.

1994년 월드컵 독일전에서 하프타임에 교체 출전해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데 이어 2002년과 2006년, 2010년 이렇게 4번의 월드컵을 대한민국 대표선수로서 치렀습니다. 2000년과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대한민국을 3위로 이끌기도 했고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이운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 다들 같을 것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내고 씩 웃던 장면이요. 제가 기억하는, 이운재의 가장 섹시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는 이란과 8강전에서 마다비키아의 승부차기를 막아내 대한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고 3-4위전에서는 일본의 여섯 번째 키커 하뉴의 슛을 선방해 3위 트로피를 조국에 안겼죠.

위기의 순간마다 대한민국을 승리로 이끈 해결사 수문장이었지만 관심과 사랑이 컸던 만큼 비난과 구설수도 많았습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때아닌 몸무게 논란이 일어 ‘돼운재’라는 별명과 함께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 영웅이 되어 돌아왔지만 뒤늦게 음주사건이 터졌고 대표팀 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로서 서는 마지막 순간 이운재는 행복했다고 소회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뛰어서,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습니다”라고요.

이제 파주에 소집돼 훈련을 소화하는 것도, 대표팀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 것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겠죠. 파주 가는 길도 며칠 전 그 길이 마지막 길이 되었죠. 그는 애써 참았지만 우리는 보았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던 그 순간 이운재가 흘린 눈물을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7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대표로 뛴다는 건요.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했겠죠. 하지만 그 세월동안 늘 몸무게 논란이 꼬리표처럼 이운재를 따라 다녔고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라는 조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가 17년 간 대한민국 골문을 책임질 수는 없었겠죠. 그 중압감에 무리한 다이어트로 2년간 결핵을 앓아야만 했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건너 뛰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얼마 전 수원에서 함께 뛰고 있는 한 선수가 제게 그랬습니다.

“운재 형을 보면 정말 안스러워요. 워낙에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식사시간에도 마음 놓고 밥을 못드세요. 저희가 먹는 딱 절반만 식판에 올려놓고 먹는 거 보면 저렇게만 먹고 배가 찰까?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데, 그런데도 형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시는 거 있죠.”

국가대표 선수라는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았습니다. 물론 당분간은 K-리그에서 당신을 볼 수 있겠죠. 여전히 수원맨이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은 가져도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 먹고 싶은 음식들, 조금씩 드셔보세요. 여자 주먹만큼만 밥 먹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요.

마음껏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밥 먹는 이운재,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대한민국 골문을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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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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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에서 멋진 프리킥 골로 우리의 새벽을 뜨겁게 만들었던 박주영 선수가 프랑스로 출국했습니다. 8월부터 다시 시작되는 프랑스리그를 준비하기 위해 떠났는데요,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 생각했지만 현장에서 취소됐다는 소식만 전해졌습니다.

당초에는 출국 전 스탠딩인터뷰가 준비돼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건 최근 그를 둘러싼 뜨거운 감자, 다름 아닌 ‘결혼설’ 때문이었죠. 프리미어리그 빅클럽으로의 이적설에 이은 결혼설이라.

인터뷰 없이 굳은 표정으로 출국한 박주영 선수.

축구선수 박주영이 아닌 인간 박주영으로서, 그러니까 축구가 아닌 것들로 관심을 받는다든 사실에, 박주영 선수는 늘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늘 축구 이외의 것들에도 관심을 갖곤 하죠. 대중의 관심이 그렇다는 이유 아래서 말이죠. 그래서 그는 늘 미디어 앞에서 말을 아낍니다.

이번엔 참 갑작스럽게 결혼설이 터졌습니다. 서울 강남의 모 웨딩 전문 스튜디오에서 여자친구와 웨딩촬영을 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부터였죠. 마침 그때 즈음 치렁치렁,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한, 이마를 덮은 덥수룩한 머리가 예쁘게 다듬어졌고 살짝 펌도 들어갔더라고요. 기자들은 웨딩촬영용 머리라며 수군수군 댔죠.

결혼임박 기사가 나온 이후로 줄줄이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날 박주영의 에이전트는 핸드폰을 끄고 잠적했다는 사실이죠. 그런데도 출처도 없는, 또 박주영의 측근 혹은 지인이라는 내용으로 기사들이 쏟아졌는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측근 중 기자와 통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박주영 선수와 그의 여자친구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요. 박주영의 여자친구는 “나 결혼해?? 양가 엄마 아빠 나 쭈가 날짜도 모르고 장소도 모르는데.. 그들에 의하면 우리가 결혼하는구나”라는 글을 올려 황당한 심기를 드러냈고요.

사실 박주영 선수는 그날 정몽준 회장이 초청한 월드컵 16강 기념 만찬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었는데, 기자들과의 만남이 불편했던지 갑작스레 불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출국을 앞두고도 스탠딩인터뷰를 취소했고요.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이게 왜 기자들의 취재거리가 되야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도, 또 그의 대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에이전트도 노코멘트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전 이번 박주영 선수의 결혼설을 보면서 일단 제대로 된 취재 없이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받아쓰고 돌려쓰는 기자들의 모습에 적잖게 실망했습니다. 일단 쓰고 보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워낙에 팬들의 관심 역시 컸으니까요.

일련의 보도들에 지친 박주영 선수의 여자친구가 미니홈피를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 몇몇 사람들은 공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경솔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카더라 통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혼설과 관련해 마구잡이로 써내려간 기사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쨌거나 이렇게 사건은 이렇게 터져버렸고, 제가 만약 박주영 선수의 에이전트라면 핸드폰을 꺼버리는 대신 공식입장을 발표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세간의 관심은 박주영 선수의 결혼으로 향했고, 무작위로 써내려가는 기사를 막을 순 없을테니, 오히려 공식입장을 프레스에 전달해 정확한 이야기가 기사로 써내려가게 하는 거죠.

결혼을 한다면 지금의 여자친구와 하겠지만, 당장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등의 내용으로 말이죠. 추측성 기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박주영 선수 결혼설과 관련해 모두의 대처방식이 상당히 아쉬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개인사가 아닌 그의 축구사, 기왕이면 화려한 골들로 빛나는 축구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싶군요. 우리들의 축구천재, 박주영 선수의 새 시즌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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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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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요르단과의 A매치가 끝나고 믹스트존에서 만난 기성용 선수에게 넌지시 물어봤죠. 그날 그의 단짝 이청용 선수가 데뷔골을 기록했는데 부럽지 않냐고요. 멋적을 때면 늘 고개를 살짝 위로 올린 채 수줍게 웃던 그는, 역시나 그 질문에 대답할 때도 천장을 바라보며 웃더군요. "너무 부럽죠"라면서 말이죠.

데뷔전도, 데뷔골도 늘 청용이가 빠르다며 아쉬워했던 기성용 선수. 그런 그가 북한전에서 홍영조의 PK골로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23분 김두현의 패스를 그대로 오른발 발리슛으로 성공시키며 한국에 동점골을 안겼습니다. 본인에겐 A매치 데뷔골이었죠. 그것도 2경기 만에 얻은 성과니 실로 값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요르단전에 이어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던 북한전까지. 허정무 감독은 기성용 선수에게 '공격적'으로 뛸 것을 주문하는 듯 했습니다. 특히 요르단전 때는 후반 말미 기성용 선수가 뛰던 공간은 거의 스트라이커와 다름없는 위치에 있었죠. 결국은 그의 공격적 움직임이, 찬스를 놓치지 않던 집중력이 벼랑 끝에 있던 한국대표팀을 구해냈군요.

북한전이 끝난 후 지인들에게서 꽤 연락이 왔습니다. 동점골을 성공시킨 저 샤방한 선수는 누구냐면서요. 경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성용 선수는 축구선수(?) 답지 않게 고운 외모를 자랑합니다. 피부도 얼마나 좋은지 볼 때마다 저는 부럽습니다. 햇볕 아래서 뛰는 선수가 어떻게 여자인 나보다 피부가 더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죠.


그랬던 기성용 선수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도움을 2개나 기록하는 등 날카로운 킥력을 선보이며  대한민국의 원정 첫 16강 진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청용 선수 못지 않게 화제의 중심에 오른 기성용 선수. 모델보다 더 모델 같은 외모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엄친아로 등극한 그와 진행했던 화보사진을 살짝 공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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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 촬영은 이청용 선수와 함께 했는데, 촬영 내내 두 선수가 티격대격하더군요. 배고플까봐 준비한 김밥을 내왔을 때 '빵'만 좋아하는 이청용 선수가 극구 사양하자 성의를 생각하면 먹어야되는게 아니냐며 화를 버럭내던 기성용 선수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답니다. ㅋ

늘 예의바르고, 또 수줍음도 많지만, 할 말은 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는 기성용 선수. 그 모습을 지금처럼, 또 언제나처럼 간직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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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아르헨티나였던 스페인과 평가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0-1로 석패했습니다. 공-수에 걸쳐 노련하게 경기를 이끌던 캡틴 박지성의 부재 속에서도 유로2008의 챔피언 스페인을 상대로 잘 싸웠습니다.

이번 스페인전은 박지성이 없을 때의 대비책인 플랜B의 조합을 실험할 수 있었던 경기였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김정우의 재발견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김정우는 유난히 가늘고 마른 몸매 때문에 우리에게는 약골 이미지가 강합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그에게 뼈정우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지요.



하지만 갸날픈 체격과 달리 체력과 활동량 만큼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박지성 못지 않습니다. 패스와 중거리슈팅 역시 정확하고 남다르죠.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센스 하나만은 타고 났다”며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김정우입니다.

일찍이 그를 지도했던 임종헌 코치(부평고 시절) 조민국 감독(고려대 시절) 등은 “패싱력 수비력 슈팅력 3박자를 고루 갖춘 미드필더”라며 입을 모아 칭찬한 바 있습니다. 강원FC의 젊은 미드필더 권순형은 “대학시절 함께 훈련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너른 시야 속에서 나오는 한 박자 빠른 슈팅과 패스에 차원이 다른 선수라고 깨달았다”고 말한 적이 있고요.

스페인과의 평가전을 마친 후 대표팀 선수들은 입을 모아 수훈 선수로 김정우를 뽑았지요. 센터백 이정수는 “김정우가 많이 뛰어준 덕에 수비하기가 편했다”며 치켜세워줬으며 사실상 최종 수비벽이라 할 수 있는 정성룡도 김정우의 수비력에 엄지를 들어보였죠.

전반 14분 염기훈의 패스를 받은 김정우는 오밀조밀 스페인 선수들이 운집했던 문전을 향해 위협적인 중거리슛을 시도했습니다. 하기야, 2004아테나올림픽 조별예선 멕시코전 당시에도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성공하며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적이 있었죠.

김정우는 이날 풀타임을 소화했는데, 그 와중에도 이니에스타, 파브레가스, 사비, 알론소 등 세계 탑 레벨의 미드필더들과 맞서 싸우며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김정우의 재발견은 우리가 이날 경기에서 얻은 최대 수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날 한국대표팀은 4-2-3-1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는데요, 강원FC 역시 리그에서 같은 포메이션을 사용하는데요, 각각의 포지션이 다 중요하겠지만 경기의 승패를 가로지르는 시작은 두명의 수비형미드필더가 얼마나 제 역할을 해주었냐에서 나옵니다.

공수의 연결고리로서 삼선의 균형을 잡아주고 템포를 조절하는 것까지, 수비형미드필더는 공수 모든 부분에서 관여하며 살림꾼 역할을 해야합니다.

지난 유로2008에서 우승팀 스페인에겐 있었지만 탈락팀 이탈리아에겐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명장? 용병술? 우승컵? 여러 답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정답은 바로 세나 같은 ‘살림꾼’ 미드필더의 유무입니다. 실상 이탈리아가 조별예선에서 네덜란드에게 0-3으로 대패했던 요인 중 하나도 바로 미드필드 자원의 몰락 아니었던가요. 그만큼 현재 축구에서 허리싸움은 중요합니다.

“수비형MF가 공격수처럼 튀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비록 눈에 띄진 않지만 소리 없이 강한 자리죠. 제가 해야할 일은 공격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춰주고 수비 시엔 적극적으로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는 것뿐이에요. 조용히 제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싶습니다.”

언젠가 김정우가 제게 했던 말입니다. 그말처럼 김정우는 미드필드와 수비라인의 간격을 촘촘하게 유지하며 세계 수준의 스페인 미드필더들을 수비수들과 협력해 막아냈습니다. 사실 김정우의 수비력은 K-리그 시절부터 검증이 됐지요. 지난 2008북경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선발됐을 당시에도 그는 자신의 수비력 덕분에 승선할 수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죠.

“제가 다른 미드필더보다 아주 조금 나은 부분이 있다면 ‘수비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프로입단 후 수비형MF로 보직을 변경했고 덕분에 수비력 하나만은 제대로 기를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이번 올림픽에서 이탈리아나 카메룬 같은 강팀들과 한 조에 묶였잖아요. 그런 팀들을 이기기 위해선 중원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해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박성화 감독님께선 그 역할을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김정우는 “스페인 선수들의 기량이 너무 뛰어나 너무 힘든 경기였다. 축구인생에서 가장 힘이 들었던 경기가 아니었나 싶다”며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뛰었다는 얘기로 들려 역시 김정우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6월드컵에서 흘린 눈물을 4년 뒤에는 웃음으로 바꾸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던 김정우였으니까요. 덕분에 이제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목표 앞까지 성큼 다가왔네요.

“2004아테네올림픽 당시 말리전이 생각나요. 후반 10분까지 0-3으로 지고 있었죠. 그러나 저희에겐 메달을 따겠다는 강한 목표가 있었어요. 그 덕분에 3-3으로 따라붙으며 8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었죠. 목표가 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의지까지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의지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외유내강맨 김정우. 이번 월드컵에서의 성장과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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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머니, 아버지께서 많이 뿌듯해하셨어요. 주위에서 아버님한테 축하메시지 많이 가니까 약주 많이 하셨죠. 사실 국가대표에 발탁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부딪혀보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기회가 오면 잡으려고 했죠.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준비를 잘하고 있자, 그래서 꼭 기회를 잡자라고 생각하며 운동했죠. 지는 걸 싫어하는 악바리 근성이 있어요. 제가.”



2년 전, 허정무 감독 밑에서 또 다른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던 곽태휘 선수. 제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6개월간의 재활을 마치고 복귀한지 얼마 안됐을 때였습니다. 2007년 11월25일 포항과의 FA컵 결승 1차전에서 곽태휘 선수는 극적인 역전골을 터뜨리며 전남의 대회 2연패의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이듬해 1월에는 ‘생애 첫 국가대표 발탁’이라는 경사까지 누렸습니다. 한데 금상첨화라고 A매치 데뷔전과 데뷔골 기록이라는 겹경사도 맞았으니 웃음이 가실 길 없었죠. 특히 2010월드컵 3차예선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터진 A매치 데뷔골은 550분 간 이어졌던 대표팀 골가뭄을 해갈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3월8일 포항과의 개막전에서 왼쪽발목 인대파열로 교체아웃 된 이후 근 6개월동안 재활에 매진해야만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또다시 부상 때문에, 이제는 다 올라갔다고 생각한 월드컵이라는 고지에서 다시 내려와야만 합니다. 부상은 그렇게 또다시 그를 붙잡았군요.

“축구를 하면서 부상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눈을 다쳤고 대학교 때는 어깨도 다치고 프로와서는 발목에 무릎까지... 한번 다치면 부상이 심해 오래 쉬어야만 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 많이 다치면서 축구를 했던 거 같아요.”

아시겠지만 그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제는 익숙해졌다며 담담히 말했던 곽태휘 선수였습니다.

“눈은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적에 다쳤어요. 처음엔 다쳤을 땐 어머니가 많이 슬퍼하셨어요. 공에 맞았는데 그 순간에 공이 돌면서 망막이 찢어지고 말았어요. 수술을 했지만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죠. 하지만 요즘은 일부러 그런 얘기를 안하려고 하는데요, 운동하는 선수들은 다들 부상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운동해요. 저만 특별한 게 아니니까요. 처음엔 많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많이 적응했어요. 아직까지는 조명을 본다거나 햇볕이 비출 때는 거리가 안 맞고 글씨가 잘 안 보이는데, 한쪽으로만 생활하다보니 시력이 점점 나뻐지고 있어요. 나이를 좀 먹으면 그나마 보이던 눈이 더 나빠질까봐... 그게 걱정이에요. 눈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한번씩 그런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생각만 이레 하는데 답이 없으니까 막막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그는 참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산 듯했습니다. 17살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한 것도 그랬고,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보란 듯이 일어서서 프로에 입단했고 결국엔 태극마크까지 달았으니까요.

“운동은 어릴 때부터 많이 좋아했어요. 왜관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1학년 여름방학 때 대구공고에 가서 테스트를 받았어요. 그때 감독님께서 졸업할 때까지 한게임도 못 뛸 수도 있다. 지금와서 뭘하겠느냐, 라고 하셨던게 생각나요. 그래서 축구를 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하겠다고 했는데, 알겠다며 받아주시더라고요. 처음에 대구공고 축구부에 들어가서 다른 친구들이 훈련할 때 저는 뒤에서 기본기를 연습하곤 했어요. 늦게 들어왔으니까 당연히 그래야하니까 스트레스는 없었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했기 때문에 늘어가는 과정을 즐기면서 했어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제가 좋아서 시작한 축구니까 즐기면서 하려고 했죠. 처음엔 가족들 반대도 심했지만 제가 고집이 있어요. 한다고 하니까 결국 다들 허락해주셨죠. 그리고 나서 경기에는 1학년 말부터 투입이 됐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죠.”

. 17살 적 처음 축구부 문을 두드렸을 때, 그 나이에 축구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말에좌절했지만, 혹은 망막 부상 이후 “축구선수로 대성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세간의 목소리에 흔들렸다면, K리그와 대표팀을 누비는 곽태휘 선수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 제가 만난 곽태휘 선수는 참으로 단단했고, 역경에 굴하지 않던 ‘긍정’으로 똘똘 뭉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솔직히 인간인데 그런 거 한번씩 생각하죠. 안 다쳤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봤거든요 지금 안 다쳤으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고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가있을까, 하고요, 하지만 생각만 하면 가슴만 아프죠. 이미 다친 걸 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너무 급하게 올라가서 그런가 돌아보라고 그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지금부터 다시 또 올라가면 되요.”

하늘은 내게 월드컵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또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고 결코 세상에 지지 않겠다고, 지금도 곽태휘 선수는 생각하고 있겠지요.

“계속 발전하고 싶어요. 점점 더 발전해서 말했듯이 기회가 되면 다른데 가서 부딪혀보고 싶어요. 여기서 멈추는게 아니라 계속 업그레이드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사람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나쁜 일이 있어도 나중에 잘될 거니까 신경쓰지 말자, 하며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요. 시련이 와도 역경이 와도 다시 할 수 있다고 마음 먹고 준비하면 일어서다 보면 좋을 결과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인드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2년 전 제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계속 도전하고, 그 속에서 발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여전히 꾸고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다고 하여도 여전히, 곽태휘 당신은 우리들의 국가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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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한일전 2-0 통쾌한 승리로 모두의 관심은 박지성에게 쏠려있습니다. 경기 내내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처럼 지칠 줄 모르는 활동량을 선보이며 공수의 징검다리를 역할을 하던 모습은 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그가 필요한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 출전선수 명단을 알릴 때 울려퍼지던 일본 서포터들의 야유를 들으면서 한국 밖에서도 모두가 주목하는 키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고요,


박지성의 세레모니 또한 연일 화제였죠. 전반 선제골을 터뜨린 후 무심한 표정으로 관중석을 바라보던 박지성의 세레모니는 언론에서도 많이 궁금해했는데요, 저 역시 어떤 대답이 나올까 무척 궁금했답니다.


사실 그간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동료 선수들과 주로 얼싸안으며 세레모니를 하곤 했는데요, 가끔 손으로 심장을 두드리거나 아래에서 위로 올리면서 관중들을 ‘Cheer up’ 시키는 세레모니를 하기도 했지요. 예전에 A매치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손가락을 X자로 교차하는 세레모니를 했었는데, 그때 많은 기자들은 박지성을 기다리며 그 세레모니의 의미를 궁금해했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어떤 의미를 갖고 한 건 아니었는데...”였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의미가 있어보였어요. 그가 관중석을 물끄러미 쳐다봤을 때 경기장 내 일본 팬들은 침묵했으니까요. 그의 표정에서는 “봐라.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실력이고 투혼이고 저력이다”라는 뜻도 읽혀졌거든요.


이번에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대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보낸 야유에 답을 하고 싶었다는 박지성의 대답.

그 말 속에서 세계 무대 위에서도 담대하게 뛰던 모습이 떠올랐고,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게 성장한, 무거운 존재감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의 선수들은 그러한 야유를 들으면 부담을 갖거나 혹은 흥분하거나, 이렇게 극으로 갈리기 쉬운데 외려 침착한 모습으로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던 박지성의 모습에서는 냉철한 전략가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일전을 앞두고 가진 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 도중에는 “교토 퍼플상가에서 뛰던 10년 전보다 일본 대표팀은 확실히 약해졌다”는 발언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지요.

사실 1999U-20세계청소년축구대회 준우승, 2000시드니올림픽 8강, 2001아시안컵 우승을 거두며 2000대 초반 아시아의 축구강국은 일본이라는 여론이 지배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의 축구는 연일 진화하고 있지만 일본은 나카다 히데요시의 은퇴 이후 쇠퇴하고 있다는 게 대세입니다.

그런 가운데 박지성이 일본대표팀의 현 전력과 관련해 아주 냉정한 분석을 해줬네요. 알다시피 존경하고, 또 닮고 싶은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 또한 가져다주죠. 그런 점에서 박지성의 말은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됐을 거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한일전은 스포츠이기 전에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가 먼저 떠오르기에 국민들은 승리를 바라고,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선수들은 이겨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서 경기에 임합니다. 선수단 내 만연해있던 부담을 긍정의 힘으로 바꾼 박지성은 타고난 리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4강이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세운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일본만의 목표일 뿐 우리는 16강 진출이 목표라고 말했는데요, 그 간결한 대답에서 현실을 회피한 채 오리무중하고 있는 일본대표팀에 대한 나름의 비꼼(?)도 느껴져서 ㅎ 그 말을 들으며 혼자 지긋이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한데 박지성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일본대표팀의 수준이 10년 전보다 낮아졌다고 외신과의 인터뷰 도중 했던 말을 다시 하며 재확인해줬는데요,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항상 뭔가 민감한 질문에는 즉각적인 대답을 회피하던 박지성이었기에, 기자들도 “~ 때문에 ~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겠지, 하며 그의 대답을 늘 예상하곤 했거든요. 상대의 평가를 내리기에는 늘 조심스러워했고, 늘 잘한다고 칭찬했고, 정석에 가까운 말들만 하던 박지성이었죠. 할 말은 하되,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캡틴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난 한일전에서 전반 17분 이청용 혼다를 태클로 저지하자 심판이 휘슬을 불었죠. 그 다음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박지성이 주심에게 다가가 뭔가 이야기를 하며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이었죠. 주장은 선수를 대표해 심판에게 항의를 할 권리는 없다는 건, 피파 경기 규칙서에도 나오는 ‘룰’이지만 그래도 주장이라면 의도하지 않은 정당한 태클이었다며 심판에게 다가가 대표로 말하는게, 선수단 내의 암묵적인 또다른 ‘룰’이죠.

그간 경기장 내에서 늘 착했던 주장은, 2010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는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단순히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에 이청용 선수를 대신해 정당한 태클이었다며 얘기해준 것은 아니겠지요. 그간 다른 선수 뿐 아니라 본인이 반칙을 당해도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는 박지성이 지난 한일전에는 엔도의 백태클로 넘어지자 주심에게 왜 경고를 주지 않느냐는 제스처도 취해봤고요.

이뿐만이 아니죠. 박지성이 주장이 된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죠. 늘 정해진 시간에 다 같이 아침을 먹는 규칙도 자유롭게 먹는 걸로 바꿨구요, 당일 아침이 되야지만 통보되던 훈련 스케쥴도 전날 공지되는 걸로 바꿨죠. 선수들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위치에서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위치로 바꿨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혁신이었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가는 버스 안에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하는가하면 고개 숙인 채 끌려나가는 듯이 앉아 있던 라커룸 분위기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바꿔놓았습니다.

뭐든 즐기는 마음으로 해야 실력이 발휘될 수 있는 법이죠. 잘해야만한다는 생각이 중압감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양발을 묶는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작용하겠죠.


이번 월드컵은 사실상 그에게 마지막 월드컵입니다. 더 이상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다고 해서 그의 축구인생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박지성의 모습을 보며, 이번 남아공월드컵 이후 펼쳐질 박지성의 축구인생이, 저는 무척이나 궁금하고 또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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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3년 12월 7일 일본 사이타마 경기장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축구대회 중국과의 경기. 전반 종료 직전 이을용 선수의 도움을 받은 유상철 선수의 선제골로 한국이 1-0으로 앞서나가고 있었습니다. 사건은 후반 14분에 발생했습니다.

볼을 받은 이을용 선수가 바로 동료에게 패스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리이 선수가 오른쪽 발목을 뒤에서 걷어찬 거죠. 볼의 소유와 상관없이 거칠게 들어온 비신사적인 행위였죠.


한데 문제는 그 부위가 마침 오랫동안 부상으로 힘들어하다 막 회복된 부위였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부상악몽의 재현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부상의 위험까지 느꼈던, 다분히 의도성이 느껴졌던 중국 선수의 과격한 태클에 이을용 선수는 중국 선수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응징했죠.

당시 분노에 찬 이을용 선수의 모습과 머리를 잡고 쓰러져 있던 중국 선수의 사진이 연합뉴스를 통해 포털에 전송되었고 네티즌들은 다양한 패러디 사진으로 만든 다음 ‘을용타’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지금은 불의를 보면 바로 응징할 때 쓰는 신조어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연합뉴스 원본사진.

패러다. 책 읽는 을용타.

다스베이더로 변신한 을용타.

지난해 2월 쿤밍에서 진행됐던 강원FC 전지훈련 기간 중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안정환 선수의 소속팀으로 유명한 다롄스더와 연습경기가 있었는데요, 그때도 중국 선수들은 발목을 향해 태클이 들어오는 등 난폭할 뿐 아니라 비신사적인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했습니다. 중국 심판이 다롄스더 선수들에게 카드를 주며 누차 경고 멘트를 날렸지만 그들은 오히려 심판에게 항의했고 결국 화가 난 심판은 중국 선수들에게 이런 선수들이 뛰는 경기는 더 이상 심판을 볼 수가 없겠다며 경기장을 떠나는 사건까지 터지고 말았죠. 그래서 강원FC 코칭스태프들이 주심과 부심을 보게 됐는데, 역시나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중국 선수들의 플레이는 계속 되더군요. 결국 선수들의 부상위험을 염려한 코칭스태프는 경기를 중단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찍힌 한 장의 사진. 예전 을용타의 포스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역시 을용타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사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봐도 동생들의 부상을 걱정하는 강원FC 큰형님다운 포스가 느껴지죠?


여전히, 팬들이 보기에는 무뚝뚝하고 말도 없어 보이지만, 곁에서 보는 이을용 선수는 묵묵히 후배들을 챙기는, 참으로 속 깊은 사람입니다. 창단 첫해, 프로 경험이 없던 선수들이 강팀들과의 경기를 앞두고 잔뜩 긴장할 때면 “형이 뛰어봐서 하는데, 저 선수들이랑 너희랑 다를 거 하나도 없어. 볼에 대한 집중력과 근성만큼은 오히려 너희들이 더 나아. 그러니 끝까지 밀어붙이면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잘할 수 있지?”라며 큰 소리로 선수들의 사기를 올려주곤 했습니다.

언젠가 김영후 선수도 그랬어요. “을용이 형이 할 수 있다고 하면 정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요. 우리는 알고 있죠. 말 자체에서 힘이 느껴지고,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상대에게 전달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래서 이을용 선수의 리더십은 더욱 존경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후배들과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잘 웃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잘 모르는 사람들과 있을 때면 그 미소를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래도 20년 동안 축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운동만 했으니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기가  이을용 선수에게는 어려운 일이겠죠.


지난 토요일에도 그랬습니다. 제2회 율곡대기 리틀 K리그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 개최와 관련해 특별 인터뷰를 하게 됐을 때도 이을용 선수는 무뚝뚝한 사람, 그 자체였답니다. 아나운서들과 짧은 인사 뒤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했기 때문이죠. 바로 옆에 예쁜 여자 아나운서가 있었는데도 이을용 선수는 무심했습니다. 일부러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옆에 계신 아나운서 분 너무 예쁘지 않아요?”라고 말을 걸어봤더니, 돌아오던 이을용 선수의 대답은... “몰라.” 지극히 이을용 선수스러운 대답이었습니다. ^^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이을용 선수의 관심을 끄는 것도 있었으니...


바로 축구를 하던 유소년들이었죠. 큰아들과 둘째아들이 마침 딱 그 정도 또래였던터라 더 눈길이 갔나봅니다. 인터뷰 중간에도 삼남매 이야기가 나오자, 그때만큼은 참 사람 좋은 미소를 얼굴 한 가득 띄웠었죠.

문득 작년 일이 생각나더라고요. 작년 6월 홈경기가 끝나고 다음날 기자와의 인터뷰가 있다고 하자 이을용 선수는 인터뷰가 어렵겠다며 다른 날로 미뤄달라고 했죠. 한데 그 기자도 그날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하였고, 하여 저는 이을용 선수가 맞추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인터뷰를 그대로 진행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그 인터뷰는 취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 생일이라서 꼭 서울에 가야한다고 했거든요.

재활 중일 때면 꼭 닮은 아들들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오는데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서도 아들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전달되더군요.

아빠만큼 유명한 아들 태석이와.

참... 그날 인터뷰 때문에 이을용 선수의 차 열쇠와 핸드폰을 제가 잠시 보관했는데요, 막내 공주님의 사진이 들어있는 열쇠고리더라고요. 일상에서도 이을용 선수의 자식사랑이 참 깊이 느껴졌습니다.


1975년생으로 올해 나이 36세. 누군가는 이제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아니냐고 하지만 강원FC에게는 이을용 선수가 필요합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90분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할 체력과 경기력, 그리고 빛나는 리더십이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세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지배할 이을용 선수의 모습을 볼 것입니다. 그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일 뿐 아니라 자랑스러운 강원FC 선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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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는 5월 5일 오후 3시 강릉종합경기장에서 인천과 홈경기를 치릅니다.

어린이날 홈경기를 앞두고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은 올 시즌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유병수와의 맞대결에 쏠려 있습니다.

그러나 김영후는 “올해도 많은 분들이 김영후 vs 유병수 경쟁 구도로 몰아가는데, 제게는 과분한 이야기”라며 손사래를 치네요.


“요즘 리그에서 보여주는 유병수 선수의 활약이 정말 눈부시기 때문”이라고 운을 뗀 김영후는 “제가 지금 유병수 선수만한 나이였을 때, 전 그저 대학교에서 학업과 축구를 병행하고 있던 아마추어 선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유병수 선수는 K-리그 상위 레벨의 공격수잖아요. 후배지만 보고 배울 게 참으로 많은 선수”라고 낮춰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영후는 “선의의 경쟁은 노력을 낳고 이는 곧 좋은 성과로 연결될 수 있는 법”이라며 “정체가 아닌 정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병수 선수와의 경쟁 구도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라고 웃어 말했다.

또한 김영후는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제가 해트트릭을 하고 나선 유병수 선수가 4골을 넣었고, 유병수 선수가 1골을 넣고 나선 제가 2골을 넣었다며 이번에 유병수 선수가 2골을 넣었으니 저의 2번째 해트트릭을 기대한다는 글을 읽었어요”라며 “말씀대로 이뤄진다면 참으로 기쁘겠지만 골 욕심을 내기보단 팀플레이에 우선적으로 집중하고 싶어요”라는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김영후는 “강원FC에는 정경호 주장을 시작으로 입단 동기 윤준하, 안성남 뿐 아니라 지난 대구와의 원정 경기에서 데뷔골이자 멀티골을 기록한 하정헌 등 좋은 공격자원들이 많아요”라며 “나 혼자가 아닌, 이 선수들과 함께 화끈하고 시원한 강원FC만의 공격축구를 보여주고 싶어요”라는 바람을 드러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영후는 “모처럼 가족들이 경기장을 찾는 만큼 가족 및 친지들에게는 기쁨을, 어린이날을 맞이한 어린이 팬들에게는 행복을 줄 수 있도록 홈에서 꼭 승리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며 “인천과의 홈경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경기를 즐기다 보면 좋은 결과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습니다.

경쟁에 치여 스스로를 힘들게하고 승패에 허덕이기보단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있는 만큼 그 순간을 즐기며, 또 언제나 즐겁게 뛰겠다는 김영후의 그 마음이 참으로 예뻤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영후를 많은 사람들은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것이겠지요.

라이벌 유병수와의 맞대결을 펼쳐질 인천전이, 그래도 저는 더 기대가 됩니다. 온 마음으로 당신을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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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소중한 사람에게 우리는 말한다. 네가 없었더라면. 그래서일까. 강원FC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요즘 들어 부쩍 그에게 애정 어린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중이다. 유현, 네가 만약 강원FC에 없었더라면, 이라고. 물론 숫자에만 집착하는 이들에게 프로 2년차에 불과한 유현은 아직은 배울 것이 더 많은 K-리거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젠 유현이 없는 강원FC란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만큼 눈부시다. 근래 들어 보여준 유현의 놀라운 성장은 말이다.


4월 18일 부산과의 홈경기를 마치고 “강원의 골키퍼가 너무 잘했다”던 황선홍 감독의 이례적인 칭찬이 있었다. 그 경기로 맨 오브 더 매치에, 또 프로축구연맹이 선정한 주간 베스트 11에도 선정됐는데 기분이 어땠는가.

-기분 정말 좋았죠. 그간 저희 팀이 실점이 조금 많았잖아요. 그러다보니 심적으로 불안했고 또 힘들었어요.

일단 사람들은 골키퍼가 얼마나 좋은 내용으로 경기를 운영하느냐보다는 얼마나 많은 실점을 기록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보잖아요. 실점만으로 제 실력을 평가하는 시선이 많아 힘들었는데 그 경기를 시점으로 안정을 찾은 것 같아요.


4월 24일 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서 비록 1실점을 하긴 했지만,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광주와의 홈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그 다음 경기였던 수원전에 나서지 못했어요. 전경기 출장 기록이 깨져 조금 아쉽기도 했죠. 때문에 이번 수원 원정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죠.

그 경기에서 이겨야 연패 사슬을 끊고 반전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과 선수들 모두 간절히 승리를 원했어요. 그리고 바람대로 승리를 거둬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지난해 축구인생 중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묻자 ‘강원FC 입단 후 개막전에서 첫 승을 거뒀을 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여전히 그때가 가장 기뻤던 순간인가.

-프로 데뷔라는 꿈을 이룬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만원 관중 앞에서 치른 홈 데뷔전을 무실점을 마무리 지으며 첫 승을 거뒀죠. 그때가 여전히 제 축구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입니다.

특유의 성실함 또한 칭찬해주고 싶다. 언젠가 최순호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마추어 시절 다른 골키퍼보다 키가 작은 편이라 크로스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안 들게 하기 위해 일부러 크로스 캐치에 매진했고 항상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힘썼죠.

살아남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습니다. 그걸 좋게 봐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올 시즌 목표와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팀의 승리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국가대표라는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지금 저희가 많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나르샤를 비롯한 강원FC 팬들이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주신다면 앞으로 잘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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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강원의 리틀파파 6번 안성남!’

경기 시작 전 출전선수를 안내할 때, 강원FC 장내 아나운서는 안성남을 그렇게 소개했다. 첫 걸음은 비록 작고 약할지라도 마지막 걸음만큼은 크고 풍성할 것이라고. 돌이켜보면 그의 축구인생이 그랬던 것 같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내셔널리그에서 절치부심, 3년의 시간을 보낸 뒤 안성남은 꿈의 무대 K-리그에 안착했다.

하나 데뷔전에서의 안타까운 부상으로 오랫동안 재활에 임하여 했고 강원의 작은 거인 안성남의 데뷔시즌 첫 단추는 그렇게 꿰매졌다. 그러나 올 시즌은 현저하게 다른 모습이다. 6경기까지 치른 현재까지 안성남이 세운 기록은 3골 1도움. 어느새 공격포인트 6위와 득점 8위에 오르며 시나브로 강원의 중심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모두다 미약한 시작을 알기에 창대한 마무리를 떠올리며 달리고 또 달린 결과였다.

올 시즌 강원FC 첫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소감이 궁금하다.
기분은 좋았지만 팀이 이기지 못했고 또 내용도 만족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쉽네요. 제 골이 팀이 이기는데 도움이 됐어야했는데 말이죠. 사실 작년에 개막전에서 왼쪽 내측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고 나서부턴 오른쪽 발을 쓸 때마다 많이 두려웠어요. 그래도 올해 다치지 않고 동계훈련을 마쳤고 이렇게 골도 기록했으니 덕분에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벌써 6경기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2010시즌 득점 순위 Top10 안에 들었다. 아무래도 지난해 힘겨웠던 시간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난해 개막전에서 다치고 많은 시간 힘들어하며 재활에 임했어요. 5월 24일 울산과의 원정경기에서 복귀했는데 100% 회복된 컨디션은 아니었죠. 그렇지만 와이프와 (이)을용이형, (정)경호형 등 선배들과 친구들, 후배들이 많이 챙겨줘서 팀에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재활당시 무엇보다 가족의 격려가 큰 힘이 됐을 것 같다.
와이프가 당시 임신한 상태였지만 재활할 때 옆에 있어주며 제 뒷바라지를 잘해줬어요. 고맙죠. 아들 주완이도 재활하고 있을 때 태어났어요. 제가 탯줄도 직접 잘랐고요. 책임져야할 사람이 늘었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었죠. 지금도 힘들 때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나, 가족은 늘 옆에서 저를 챙겨주고 기쁘게 웃을 수 있게 만들어줘요. 운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도 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만큼은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집에 갈 때면 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져요.

동계훈련 때는 중앙MF에서도 뛰었다. 보직 변경을 조심스레 점쳐봐도 좋을까.
동계훈련 때 (권)순형이 자리에서 뛰었어요. (이)을용이형과 (권)순형이가 굉장히 존경스럽더군요. 저희 팀은 미드필더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많이 힘들죠. 아직까지는 윙포워드나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뛸 때가 편합니다.

강원FC 입단 후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면.
창단 첫 경기였던 제주유나이티드와의 개막전이죠. 다쳐서 아픈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았던 기억이 더 많아요. 축구선수로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었으니까요. 일단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응할 줄은 몰랐어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창단을 축하해주며 경기장을 가득 메웠는데, 베스트일레븐으로 선발돼 그라운드에서 관중을 보는 순간 소름이 확 끼쳤어요.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 정말 놀랐거든요.

강원FC에 입단하기 전까지는 울산현대미포조선에서 뛰었는데, 사실 미포조선이 내셔널리그 최상위권 팀이지만 관중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뛸 생각을 하니 너무나 행복했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해봐요. 저 뿐만 아니라 나머지 다른 선수들도 즐거워하며 뛰었고 덕분에 개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강원FC 와서 처음 느낀 게 바로 팬의 존재에요.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저희를 위해 응원해주고 계세요. 이렇게 많은 팬들 앞에서 뛸 수 있는 저희는 정말 행복한 선수들이라고 생각해요. 요즘도 ‘내가 축구를 하는 동안 언제 또 이런 순간, 이런 감정을 느껴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래서 늘 강원FC 팬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경기장 왔다가 웃으면서 돌아갈 수 있게 노력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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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김연아 선수를 보며 많은 힘과 의지를 얻었어요.”

지난 3월 28일 전남과의 홈경기에서 김영후는 5경기 만에 골 침묵을 깨고 괴물 공격수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김영후는 “사실 해트트릭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어요. 프로 데뷔 후 처음 거둔 기록인데다가 올 시즌 국내파들 중에서는 제가 처음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강원FC를 책임지고 있는 주전 공격수로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 무척이나 기뻤고 무엇보다 골 소식을 기다렸던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된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라고 해트트릭 소감을 밝혔지요.


“올 시즌에도 천천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골이 터지지 않자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저보다 더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이렇게 운을 뗀 김영후는 “‘2년 차 징크스’ 혹은 ‘신인왕 징크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 때문에 빨리 시즌 첫 골을 기록해야했다는 부담감이 컸지요”고 그간의 속내를 밝혔습니다.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느꼈을 고민이 제게도 조금은 느껴지더군요.

김영후는 김연아 선수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시즌을 준비하던 중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에서 연기를 마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TV를 통해 봤어요. 아름다운 점프 뒤에는 수없이 넘어지는 아픔과 빛나는 영광 아래에는 무수히 흘린 땀방울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 속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꿈을 이룬 김연아 선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경기 하나 하나에 집착하며, 결과에 실망하고 좌절해서는 결코 안 되겠다고 깨달았습니다.”

김영후는 김연아 선수가 부담을 떨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많은 힘과 의지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배울 점이 무척이나 많은 훌륭한 선수라고 칭찬했습니다.  

또한 김영후는 “최순호 감독님께 왜 아직도 김영후가 골을 넣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아요. 그때마다 믿고 기다린다던 감독님의 말씀 또한 큰 힘이 됐습니다”며 최순호 감독이 보내준 끝없는 신임과 기대에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김영후와 짧게 나마 대화를 나누면서 누군가는 그런 김영후를 보며 그가 김연아 선수에게 그랬듯이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원동력과 의지를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시련 속에서도 꺽이지 않고 자신의 꿈을 꽃피우는 김영후를 보며 저 역시 배울 게 많다고 항상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김영후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징크스라는 말과 함께 그를 옭죄기 보다는 꿈에 그리던 K-리거라는 꿈을 멋지게 펼칠 수 있도록, 조금은 여유를 갖고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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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라이언킹’이라는 멋진 별명도 있을텐데. ‘테리우스’같은 순정만화 주인공 이름도 괜찮을텐데. 많고 많은 별명 중에 하필이면 ‘괴물’이란다. 누군가 하니 바로 강원FC No.9 김영후의 이야기다. 어쨌거나, 덕분에 시즌 초부터 본의 아니게 외모에서 따온 별명이 아니냐는 오해도 적잖게 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괴물 공격수’라는 별명의 유래를 묻는 이들이 없을 듯하다. 2008년 내셔널리그 26경기에서 30골을 터뜨렸던 득점 괴물 김영후는 K-리그 데뷔시즌이던 2009년, 30경기 13골 8도움을 기록하며 공격포인트 1위라는 영광과 함께 꿈에 그리던 신인왕을 수상했다.


덕분에 내셔널리그와 K-리그 신인왕을 동시에 거머쥔 행운의 사나이로 등극하기도 했다. 그는, 작금의 활약을 예상이라도 했을까. 궁금한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만났다. 별명은 괴물이지만 마음만은 천사인 김영후를. 한손에는 팬들이 보내온 질문 꾸러미를 들고선.

지난해 모두의 바람대로 K-리그 신인왕을 수상했습니다. 예상하셨나요? (권영돈)
아니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처음 신인왕을 수상할 때만해도 머릿속이 멍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실감되더군요. 특히 제 이름 앞에 신인왕이라는 호칭이 붙을 때마다 ‘아, 내가 신인왕을 탔구나’하며 실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면요. (유혜진)
아무래도 데뷔골을 넣었던 4월 11일 전남전이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데뷔골을 PK로 넣었는데요, 원래 (이)을용이 형이나 (김)진일이가 PK를 차기로 돼 있었어요. 그런데 을용이 형이 저보고 차라고 하더라고요. 한창 골이 안 터질 때였는데 제가 찰 수 있도록 배려해준 동료 선수들에게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내셔널리그 출신 선수로서 내셔널리그와 K-리그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신장근)
일단 경기 템포가 빨라요. 힘과 스피드가 좋은 수비수들이 많아 압박도 심하고 체력적 부담도 큰 편이에요. 그래서 개인운동을 통해 스피드와 체력 등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포메이션에서 뛸 때 가장 편하고 또 자신있나요? (김경수)
센터포워드 자리가 제게 제일 잘 맞는 것 같아요. 울산미포조선에 있을 때 가끔 윙포워드로 뛴 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돌파력보다 위치선정이 좋은 스트라이커라 중앙공격수로 뛰었을 때 가장 즐겁고 또 자신있습니다.

축구선수로서 3가지 목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궁금합니다. 알려주세요. (이말출)
K-리그로 오는 게 첫 번째 목표였어요. 그 다음이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것이었고요. 마지막 목표는 국가대표가 되는 거죠. 아직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계단을 밝고 있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올 초 국가대표 발탁이 목표라고 하셨죠? (권민정)
작년부터 국가대표에 뽑히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지난해에는 신인이었고 일단 K-리그에 적응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리그 2년 차에 접어든 올해는 자신감도 부쩍 생긴만큼 목표를 크게 잡고 싶습니다. 많이 어렵겠지만 국가대표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싶어요.

강원FC에서 가장 ‘쿵짝’이 잘 맞는 선수들로는 누가 있나요? (손인환)
안성남 선수요. 울산미포조선에 있을 때부터 함께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윤)준하랑도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대화도 잘 통하고요. 저희는 같이 있을 때 주로 게임 이야기를 많이 해요. 아, 여기서 게임은 축구가 아닙니다. 오락이에요. 오락(웃음).

게임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피파온라인에서 저희 팀 부동의 원톱이 바로 김영후 선수입니다. 한데 게임에 나온 김영후 선수의 능력치가 너무 불만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진우)
그건 뭐 아무래도 제가 아직은 실력이 안 되니까 그런 거겠죠? 아니면 만든 사람이 저를 안 좋게 봐서 그런가? 아니면 싫어하나? (웃음) 게임은 게임일 뿐이잖아요. 괜찮습니다!

MBC 수목드라마 <맨땅에 헤딩>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졌는데요, 유노윤호가 아닌 다른 연예인이 김영후 선수 역할을 맡는다면… 누구였으면 좋겠나요? (배민수)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어요. 워낙 그런 거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거든요.

득점왕 욕심은 없나요? 또 K-리그에 라이벌이 있다면요.(이송현)
득점왕 욕심도 없고요, 라이벌도 없어요. 남을 의식하면 제 플레이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할 것만 하자고 생각하며 운동해요.

주소를 강원도로 옮겼다는데, 영원히 강원맨으로 남고 싶다는 의지로 봐도 좋을까요?(조인환)
앗. 주민등록상 주소는 여전히 부모님이 계신 서울이에요. 그렇지만 강원도는 고향인 서울 못지않게 특별한 곳입니다. 제 꿈을 이뤄준 곳이니까요.

10살 많은 누나팬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 (김재윤)
감사하게 생각하죠. 20살이 많든, 30살이 많든 저를 응원해주는 팬이 한분이라도 계시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래방 18번과 주량이 궁금해요. (정의근)
노래방은 거의 안 가요. 그래서 즐겨 부르는 18번은 없지만 어쩌다 한번씩 가게 되면 발라드를 주로 불러요. 그리고 술은 전혀 하지 않아 실제 주량은 알지 못합니다.

강원FC 최고의 골을 뽑아주신다면요. (박후연)
강원FC 최고의 골은 아무래도 지난해 5월 27일 울산전 때 (곽)광선이가 넣은 중거리슛 아닐까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쉬울 것 같지만 공이 그렇게 뜬 상태에서 바로 발리를 때려 성공시킨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50번 차도 1번 나올까 말까한 그런 훌륭한 슛입니다. 더구나 골 넣기가 쉽지 않은 수비수라는 포지션 특성까지 생각해본다면 큰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멋진 골입니다.

매 경기 상대팀 선수 분석은 어느 정도까지 하는지 궁금합니다. (유학관)
상대팀 수비를 잘 아는 동료들에게 장단점을 물어보며 준비하는 편이에요.

롤모델로 삼고 있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권현)
언제나 말하듯이 반니스텔루이요. 반니의 위치선정과 결정력을 닮고 싶어요.

김영후 선수에게 축구와 최순호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요? (김영진)
축구와 최순호 감독님 모두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소중한 존재죠. 감독님은 늘 아버지처럼 저를 이끌어주는 스승이십니다. 또 제가 넘어야할 산이기도 하고요. 언젠가는 감독님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가 되고 싶거든요.

최순호 감독님께서 ‘괴물’ 대신 ‘실크’라는 새 별명을 지어주셨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실크’라는 별명이 마음에 드시나요? (심연진)
‘괴물’보다는 좋은 것 같아요(웃음). 무엇보다 감독님이 지어주셔서 더 마음에 들어요. 일단 ‘괴물’하면 웬지 세보이고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들잖아요. ‘실크’는 아무래도 단어자체가 부드러운 느낌을 주니까 골도 매끄럽고 차분하게 넣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올해는 ‘실크’답게 (웃음) 부드럽고 여유있게 많이 골 넣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강원FC가 묻습니다. 강원FC 팬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팬들은 제 힘의 원천이에요. 열성적인 강원FC 팬들의 응원과 사랑이 있었기에 지난해 큰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가족처럼 저를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저와 강원FC 변함없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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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신인왕을 수상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강원FC의 괴물 공격수 김영후가 ‘2009 쏘나타 K-리그 대상’을 앞두고 신인왕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김영후는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에 오기 위해 시퍼런 칼날을 갈며 노력했다. K-리그에 입성한 이후엔 신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을 이룰 그날을 꿈꾸며 또다시 칼을 갈았다”며


“올 시즌 스스로의 점수를 매겨 본다면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이를 이겨냈고 꾸준함과 성실함, 그리고 팀을 위한 헌신적 플레이로 승부를 걸었다. 그 덕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데뷔시즌을 평했다.


김영후의 표현대로 ‘성실함’만으로 승부를 건 지난 1년이었다.

전반기를 마치고 최순호 감독은 김영후의 막판 집중력이 떨어지는 원인을 체력부족으로 보았다. 개인 면담시간에 최 감독은 김영후에게 ‘4kg을 줄일 것’과 ‘지구력을 기를 것’을 요구했다. 지난 6월 A매치로 K-리그는 3주간 휴식기를 맞았고 김영후는 최 감독의 조언대로 K-리그에 맞는 ‘몸만들기’에 돌입했다.

김영후는 식사량을 30% 줄임과 동시에 저녁마다 춘천 봉의산과 태백산을(1차 여름 전지훈련은 춘천에 베이스를 두고 화천, 양구 지방을 돌며 훈련 했으며 2차 훈련은 태백에서 진행됐습니다) 1시간가량 뛰기 시작했다. 전력으로 쉬지 않고 달리다 보면 구토 증세가 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김영후는 토한 뒤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윤준하는 “왜 형의 별명이 괴물인지 알겠다”며 “한번 목표를 설정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룬다고 하더라. 무시무시할 정도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약 3주간의 휴식기가 끝나고 6월 21일 다시 재개된 성남과의 경기에서 김영후는 1골 1도움을 올리며 승리를 견인했다. 이후 6월 27일 전북전 2골, 7월 4일 포항전 1골, 7월 12일 대전전 1골, 7월 19일 서울전 1골 등 5경기 연속골에 성공하며 올 시즌 최다연속골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였다. 이는 1984년 조영증 現NFC 센터장이 세운 6경기 연속골 이후 신인선수가 세운 최다연속골 기록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김영후의 기록이 눈부신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강팀들을 상대로 득점행진을 이어나갔다는 사실에 있다. 4월 11일 전남전 2골 1도움, 6월 21일 성남전 1골, 6월 27일 전북전 2골, 7월 4일 포항전 1골, 7월 19일 서울전 1골, 8월 2일 인천전 2골 등 득점의 70%(13골 중 9골)가 6강 플레이오프 진출팀을 상대로 이뤄졌다. 한마디로 강팀에 더욱 강한 ‘킬러’로서의 본능을 맘껏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유병수는 13골 중 단 4골(6월 21일 포항전 1골, 9월 12일 서울전 1골, 9월 19일 성남전 1골, 10월 4일 포항전 1골)만 성공시키는데 그쳤다. 득점의 30%에 불과한 수치니 김영후의 기록과 사뭇 대조된다.

13골 8도움. 공격포인트 1위. 김영후가 올 시즌 리그에서 보여준 기록만으로도 그는 이미 ‘최고’라는 칭호를 받기에 충분하다. 위치선정에 능할 뿐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조력자의 역할도 마다않던 김영후의 존재는 강원이 올 시즌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는데 가장 큰 일등공신이었다. 더구나 미드필드에서 공격력을 뒷받침해줄 선수들이 극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김영후는 올 시즌 활약은 더욱 박수받을만 하다.

동료선수들의 투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김영후는 국내 축구전문월간지 베스트일레븐이 12월호 특집으로 K-리그 14개구단(광주 제외) 165명의 선수를 상대로 조사한 ‘2009년 K-리그 최고의 플레이어’에서 선수들이 직접 뽑은 ‘최고의 신인’에 올랐다.

김영후는 ‘최고의 신인’ 부분에서 전체 점수 495점 중 211점을 차지하며 당당히 1위에 등극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2위 유병수(137점)를 무려 74점이나 따돌리며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백분율로 따지게 되면 더욱 대단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김영후가 K-리그 선수들에게 42.6%의 지지를 얻었는데 반해 유병수는 불과 27.7%만을 얻는데만 그쳤다. 소속팀의 6강PO 진출이라는 유병수의 프리미엄도 K-리그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다소 부족했다. 이렇듯 한 시즌 동안 직접적인 스킨십이 이뤄진 선수들의 표가 김영후에게 쏠렸다는 점은 올 한해 선수들도 인정할 만큼 최고의 활약을 보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김영후는 “다른 내셔널리그 출신 선수들에게 ‘내셔널리거도 K-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며 “앞으로도 계속 내셔널리그나 아마추어 무대에 있는 선수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증거로 남고 싶다. 이제 시작인만큼 더 땀 흘리며 노력하겠다”고 남다른 소회를 밝히기도 하였다.

김영후의 또 다른 별명은 ‘7전8기의 사나이’다. 혹자는 ‘오뚝이 인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K-리그 드래프트서 실패하며 내셔널리그에 입성했지만 김영후는 “K-리그를 향한 꿈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꿈을 잃는 순간 그대로 추락한다고 생각했다. 더 높이 날기 위해 더 큰 무대에서 뛰는 나를 꿈꿨다”고 회상했다.

또한 김영후는 “K-리거의 꿈을 이룬 뒤 목표는 10골이라고 밝히자 모두들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내셔널리그에서만 뛰었기 때문에 K-리그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웃었다. 하지만 모두가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결국 김영후는 10골을 넣고 싶다던 시즌 초에 세웠던 목표 이상의 결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사람은 믿는 만큼 자라는 법이다. ‘긍정의 힘’으로 이뤄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셔널리거로서 보낸 설움과 역경을 딛고 K-리그에 우뚝 선 김영후는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금도 “나의 실패가 내셔널리그 전체의 실패로 비춰질까봐 늘 어깨가 무겁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년 시즌 목표도 높이 잡았다. “올해는 신인왕을, 내년에는 득점왕을 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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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믹스트존에서 박지성은 날래다. 다른 선수들 틈에서 슬쩍 묻혀 가는데 그때마다 난 참 애탄 목소리로 그를 부르곤 했다. 한데 그냥 부르면 안된다. 진짜 애탄 목소리로 손까지 휘휘 저으며 이리로 오라고 해야한다. 예전엔 그냥 지나갔고 그런 그를 몇번 놓치곤 했다.

그 와중 나름 생긴 노하우라는게, 난 정말 당신과의 인터뷰가 필요해요, 라는 애절한 표정으로 오른팔로 아주 큰 동선을 그리며 그를 부르는 거다. 그게 통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르면 박지성은 오곤 했다. 고맙게도.


박지성을 처음 만난게 딱 9년 전 여름이었다. 2000년 8월의 어느 날 타워호텔. 당시 허정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운영하던 웹진 허스풋볼에 들어갈 선수 인터뷰 취재 차 호텔이 방문해 올림픽대표팀 선수 전원의 멘트를 땄었다. 그때 박지성도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호텔 로비에서 꽤 오랜 시간 서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당시 박지성은 두서없이 긴 이야기를 죽 늘어놨었다. 지금은 그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가 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무척이나 열심히 말해줬었다, 는 생각만 아련히, 또 어렴풋이 날 뿐이다.

그리고 기자 경력이 일년 이년 쌓여 이제는 웬만한 축구선수 인터뷰가 쉬워지기 시작했을 때, 그와는 반대로 박지성은 참으로 인터뷰 하기 어려운 선수가 됐었다. 그러던 중 한가지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국가대표를 꿈꾸며 공을 차던 그 시절, 박지성이 가장 즐겨보던 잡지가 다름 아닌 베스트일레븐이었다는 이야기를 지인을 통해 듣게 되었다. 정기구독까지 하며 매달 닳을 때까지 읽었을 정도였단다. 한데 더 재미났던 것은 말미였다. 올림픽대표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도 정기구독을 끊지 않았는데, 이제는 브로마이드로 내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로마이드 주인공이 되지 않아 은근 섭섭해했더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꼭 석달 뒤인 2008년 6월. 6월호 표지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지성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2010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파주NFC에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모여 훈련을 시작하게 됐는데, 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베스트일레븐 6월호를 들고 파주로 달려갔다. 훈련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선수들 틈에 있던 박지성을 불렀다. "박지성 선수!!!!" 역시나 다급한 내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려주시고. 난 긴장된 목소리로 "저희 잡지에 표지로 나오셨어요.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아주 멋지게 잡지를 내밀었다. 한데, 박지성 표정이 좀 이상하다. "네. 감사합니다"하며 받긴 받았는데 표정이...역시 이상하다.

돌아서면서 선배에게 "박지성 선수 표정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라고 묻자 선배 내게 말씀하시길. "이눔아. 표지가 나오게 줘야지, 축구공 광고가 실린 뒷면을 주면 어떡하냐." 뿔싸.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난 뒷면을 주면서 표지 운운하고 있었다. 그렇다. 박지성은 내겐 너무 어려운 선수였다. 때문에 그런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된 것이고. 그렇게 여느 선수와 다르게 날 긴장시키는 그런 어려운 선수. 그가 바로 박지성이었다.

보통 선수들은 자주 만나는 기자들에게는 눈인사나 농담을 하며 친분을 드러내곤 한다. 그럴 때면 기자 대 선수로 만나지만 어느 정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다는 느낌 때문에 편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는데 박지성은 유독 달랐다. 항상 정도의 대답만 할 뿐이고 때문에 기자 대 선수로 만났다는 인상을 깊이 받았다. 그 벽을 뛰어 넘기란... 역시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게 바로 프로 아니겠는가.

한데 MBC 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에서 만난 박지성은 경기장에서, 또는 믹스트존에서 만난 박지성과 달랐다. 언젠가 한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랬지. "인터뷰 때문에 박지성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와하하, 하며 누군가 크게 웃는 소리가 나더라고. 그게 누구였는지 알아? 박지성이었어. 정말 호탕하게 웃더라고." 그 얘기를 듣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우습게도 아, 박지성도 그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 였었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리 웃을 줄 알텐데도 박지성이? 하며 신기하게 생각하던 나라니. 참 우습지 않은가.

축구오락을 즐겨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제로 자신을 주인공 삼아 플레이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박지성!"을 외치며 골이 들어갔다며 입으로 중계하며 오락을 즐길 줄 또한 몰랐다. 20살 이후로 일본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까지, 줄곧 해외에서 뛰며 모든 일을 스스로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자신의 세탁물까지 직접 찾아 갈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린시절부터 국가대표를 꿈꾸며 열심히 축구일지를 작성하던 꿈많은 축구선수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모두가 존경하는 위치에 오른 지금까지 "여전히 축구를 잘하고 싶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 쓴 개구리즙을 먹으며, 결국엔 역겨워 게워낸 적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싫다는 소리 없이 마셨을 줄은, 역시 몰랐다.

올림픽대표팀에서도 히딩크 감독 밑에서 2002월드컵을 준비하던 대표팀 그 시절에도, "대표팀 퇴출명단 1호"에 꼽혔지만 그런 언론의 쓴소리와 잣대와 상관없이 "누구도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웠기에 상관하지 않았다"며 담대하게 생각하며 운동했을 줄은 몰랐다. 맨유 시절 미국까지 날아서 무릎 수술을 받고 모두가 예전과 같은 기량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음에도, 맨유 주치의들과 재활 트레이너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하게 재활에 매달렸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당시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며 덤덤히 말하는 사람일 줄도 몰랐다.

언젠가 화제가 됐던, 상처투성이의 그의 발. 그의 축구인생이 모두 담겨있는 소중한 그것.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그리고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던 장면은 박지성의 부모님이 흘린 눈물이었다. 2002월드컵 최종 엔트리 명단 발표를 앞두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언론에서는 탈락 선수들을 꼽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1순위로 뽑힌 선수는 다름 아닌 박지성이었다고. 그의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하며 채 말을 잇지 못하다 결국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160cm를 갓 넘은 키 작은 아들을 위해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돌아다니며 뱀과 개구릴 잡아 먹이던, 그래도 모자라 고기라도 많이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정육점 가게를 냈던, 맨유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을 때 무조건 가자며 결단력을 보여줬던 그의 아버지. 늘 기자들에게 웃으면서 인사하던 푸근하던 박지성의 아버지는 이제 7년도 더 된 옛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자에게는 박지성 퇴출 1순위라는 문장이, 수많은 기사 속에서 큰 의미 없는 한 줄의 문장에 불과했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에서는 오랫동안 깊은, 그리고 숨은 상처로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지켜 보던 내 마음 역시 아팠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마음 아팠던 건 박지성의 어머니가 눈물 흘리며 하던 말씀이었다. 남들은 화려하다 생각하며 부러워할지 모르겠지만 운동만 하며 살았던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어머니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 나이 또래면 누구나 다 할 것들을 하지 못하고 살아서, 추억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마음 아프다며 눈물 쏟던 모정을 지켜보며... 어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박지성의, 그러니까 맨유라는 최고의 팀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는 그 겉에만 너무 치중하며 바라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년 여름 월드컵 예선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박지성을 만났을 때, 한결 여유로워진 그의 모습에 기자들끼리 농담식으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박지성에게 여자친구라도 생긴 게 아닐까? 여전과 다른 여유로운 표정과 말투에서, 사랑 혹은 연애라도 하게 돼 사람이 달라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기자들 사이에서 오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최근에 느껴진 박지성의 여유란, 치열한 프로의 세계에서 다져진 가운데서 얻은 '성장'에서 나온게 아닐까, 였다. 

그렇다. 박지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뿌리를 뻗은 나무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가지들을 잘라 후배들을 위한 축구센터까지 준비 중인 기특한 청년이기까지 했다. 

아인트호벤에 적을 뒀던 시절, 무릎 부상으로 원하던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자 홈 팬들에게까지 야유를 받던 그때, 박지성은 공이 자신에게 오는 것이 두럽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축구를 하는게 즐겁다며 더 잘하고 싶다며 웃었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그가 흘린 눈물과 땀과 시련과 고난, 그리고 노력들을 미처 다 헤아리지는 못하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다만 이렇게 존경의 박수를 보낼 뿐이다.

기자였을 땐 미처 몰랐던 박지성을 만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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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혹시, 알고 계시나요? 현재 태백 정선 영월 등 강원 남부 지역 주민들이 극심한 식수난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요.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사상 초유의 가뭄 때문이라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부터는 하루 3시간 제한 급수를 실시하는 바람에 생활용수는 물론 먹을 물까지 부족해진 상황이라고 하네요. 관련해 어제 기상청은 “1973년 관측 이례 최저 강수량”이라며 “오는 5월까지 강원도 내 가뭄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내놓았습니다.


최악의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강원 남부 지역 주민들을 위해 현재 각계각층에서 구원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점심을 먹기 위해 멀리 나갔다가 강원도청 앞에 줄지어 선 트럭들을 발견했습니다. 태백 정선 지역으로 보낼 식수들이 실려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날 밤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국 쿤밍에서 전지훈련 중인 이을용 선수가 부친을 통해 가뭄난에 시달리고 있는 태백시에 성금을 전달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시즌을 앞둔 마지막 훈련, 그것도 쿤밍이라는 고지대에서 계속되는 극기 동계훈련인지라 자신의 몸상태만 신경쓰기에도 바쁘고 부족한 시간이건만 이 마음 착한 이을용 선수는 멀리 쿤밍에서 사랑의 손길을 보내왔네요.

이 이야기를 안 전할 수가 없겠죠. 실례를 무릅쓰고 쿤밍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좋은 일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하지 않겠냐고 하자 이을용 선수는 어쩔 줄 몰라하며, 또 무척이나 구수한 사투리로 “에이,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었는데...”라더군요. “작은 정성이지만 가뭄에 지친 도민들의 마음을 적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요.

이을용 선수는 “얼마 전 강원도민들이 가뭄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뉴스를 보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가뭄이 이토록 심각할 줄은 몰랐어요. 한데 쿤밍에서 인터넷으로 뉴스를 체크하던 중 가뭄이 더욱 심해져, 특히 고향 태백 주민들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태백 출신으로서 돕지 않을 수 없었죠”라며 운을 뗐습니다.

이을용 선수는 “쿤밍서 전진훈련 중이라 아버님을 통해 전했습니다. 직접 전달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네요”라며 덧붙이더군요. “작은 정성이지만 고향 주민들에게는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던 그의 말을 들으며 후배 선수들에게 참으로 귀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이을용 선수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잊어서는 안됩니다”며 “올 시즌부터 고향인 강원도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됐는데, 제 플레이가 강원도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습니다”는 바람 또한 함께 전했습니다.

짧은 통화였지만 이을용 선수의 따뜻한 마음씨에 반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모쪼록 그의 소망대로 하루 빨리 강원 남부 지역의 가뭄이 해갈되길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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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후반 35분까지 한국대표팀이 이란에 0-1로 밀리자 순간, 이대로 경기는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확실하다는 상념이 그렇게 머릿속을 덥고 있을 때, 캡틴 박지성의 동점골이 터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찬스를 노리는 박지성 특유의 집중력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이란 골키퍼가 펀칭으로 막아낸 공이 리바운딩돼자 박지성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껑충 뛰었던 박지성은 머리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다시 한번 '역시 박지성!'이라는 찬사를 온몸으로 끌어냈다. 



1-1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자, 함께 중계를 지켜보던 지인들은 박지성이 한국축구를 살렸다며 박수쳤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동점골이 터지기까지의 과정을 얘기하고 싶다. 동점골의 시작이 그의 오른발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결고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그는 과연 누구일까. 그렇다. 여기서 그란, 이제는 한국축구의 오늘이 된 젊은 재능, 기성용을 말한다.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기성용 특유의 정확한 프리킥이 없었다면 한국의 동점골은 꿈나라 이야기로만 남았을 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참 놀랍다. 요즘 기성용의 모습을 보면. 멈춤을 모르는 나무처럼 그렇게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그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불과 1년 전, "K리그에서 많이 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웃던 20살 소년은 어느새 리그의 흐름을 쥐락 펴락하는 중심 선수로 거듭났다. 그때 모습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나로서는, 지금의 기성용의 모습이 그저 신기하고 또 대견스럽기만 하다.

내가 아는 기성용은 예의는 지키되 할 말은 하는 선수다. 기성용 특유의 솔직함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그래서 좋다. 한번은 인터뷰를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그날이 우리의 첫만남이었다.)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됐다는 전화를 받게 됐었다. 그때 기성용이 했던 말은 기쁘다가 아닌, "꼭 대표팀 가야해요?"였다. 의외였다. 태극마크라면 누구나 달고 싶은 것 아닌가. 한데 기성용은 리그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고, 클럽에서 이제 인정받기 시작한만큼 좀 더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대표팀에 가면 잠시 동안 클럽을 떠나 있어야하니까 그 점이 못내 아쉽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팀은 클럽에서 더 실력을 키운 다음 가도 늦지 않다고, 일단은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는데, 그 솔직함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지난 봄 함께 화보촬영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기성용은 다 식어버린 김밥도 참 맛있게 먹어줬다. 허기진 그를 위해 준비했던 김밥이었는데, 그 정성을 생각해서 부러 맛있게 먹어준 것이었다. 그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얼마 전에는 그의 브로마이드가 실린 잡지를 믹스트존에서 건네줬는데, 며칠 후 경기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제 방문에다 붙여놨어요"라며 웃으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당연하게 생각하며 혹은 잊고 넘어갈 수 있는 것에도 이렇듯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해주는 사람이었다. 기성용은.

늘 예의바른 선수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런 기성용이 팬들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올림픽대표팀이 오랫동안 골가뭄에 허덕이고 있을 때, 그런 대표팀의 모습에 실망한 팬들이 미니홈피 방명록에 하나 둘씩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를 넘어선 글들이 꽤 있었나보다. 결국 이를 참지 못한 기성용은 홈피 메인에 "답답하면 너희들이 축구하던지~"라는 글을 쓰고 말았고, 팬들과 언론은 프로답지 못했다며 연일 기성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후에 그에게 물었다. 그럴 사람이 아닌 줄 알기 때문에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때 기성용은 내게 말했다. "제가 못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 한 사람에게만 뭐라 하면 되잖아요. 저한테만 욕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저희 아버지 어머니 욕까지 하는 건지, 전 정말 모르겠어요. 정말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욕들을 저희 아버지 어머니께 했어요. 그런데 슬픈 건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더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그러나 아무 죄 없는 우리 가족까지 욕하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도 기성용이 언론을 통해 반성한다, 잘못했다, 라며 사과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언론을 통해 먼저 "아들을 잘못 키운 내 잘못이다"라며 고개 숙였기 때문이다. 이미 세간에 알려졌다시피 그의 아버지는 금호고에서 김태영, 윤정환, 고종수 등을 키운 바 있는 '축구인' 기영옥씨다. 그에게 아버지는 인생과 축구를 가르쳐 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내 책임"라며 사과하는 모습을 본다는 사실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내가 경솔했던 탓이라며 기성용이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끝이 났다. 마음은 아팠지만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 배운 것이 더 많은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내가 아는 기성용은, 지독한 치열함을 가슴에 지닌 사람이다. 호주 유학 시절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도 오직 가족만 생각하며 볼을 찼던 아이였다. 이후 또래 친구들이 모두 FC서울 1군에서 뛰고 있던 시절 홀로 2군에서 뛰어야만 했음에도, 묵묵히 그 시간들을 버티고 이겨낸 소년이었다. K리그 데뷔 이후 데뷔골을 터뜨리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조급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던 선수였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홀로 운동장에 남아 슈팅연습을 가졌고 부족한 체력과 근력을 기르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을 늘렸다. 오늘날 클럽과 대표팀을 오가며 중추를 책임지는 '중심'에 있게된 것도,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터뜨리는 빛나는 결정력을 갖게 된 것도, 결국은 보이지 않던 기성용만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다. UAE와의 2010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2차전을 앞두고 기성용은 감기몸살 증세를 보이며 링거를 맞았다고 한다. 이처럼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기성용은 경기 내내 중원과 전방을 넓게 움직이며 끝임없이 찬스를 노렸고 동료 선수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아낌없이 보냈다. '링거투혼'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때 당시 그의 플레이에서 그 어떤 흠과이나 부족함 같은 것들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

젊음을 본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한데 그 젊음에게서 여느 사람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과 재능이 엿보인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기성용이 바로 그렇다. 그래서 이렇게나 매 순간 눈을 뗄 수가 없나보다. 무엇보다 그의 모습에서 한국축구의 희망을 읽을 수 있기에 이토록 오래 시선이 갈 수밖에 없나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젊은 보석, 기성용. 스무살 그의 앞날이 오늘처럼, 그리고 언제나처럼 빛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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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영원히 겁없는 아이, 앙팡테리블로만 남을 것 같던 고종수가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1998년 이동국, 안정환과 함께 K리그 르네상스를 열였던 그를, 우리는 이제 더이상 그라운드 위에서 보지 못한다.

2007년 여름 아버지 김호 감독과 함께 대전으로 둥지를 튼 그에게서 나는 부활의 날갯짓을 엿봤었다. 인터뷰를 이유로 가진 만남에서 고종수는, 이대로 선수생활이 끝날 것 같아 자살도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기는 싫었다, 며 다시 일어서겠다는 말을 계속해서 강조했었다. 허름한 대전시티즌 숙소에서 진행된 고종수와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그때문에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사진 출처: 스포탈코리아

앙팡테리블과의 재회

오후훈련 시작 전 조심스레 다가가서 물었다. “저녁 식사 후에 인터뷰하면 된다고 들었어요. 괜찮으시죠?”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고종수가 말했다. “나는 11시 반이라고 들었어요. 그때부터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전달과정에서 착오가 벌어진 듯 했다. 당황스런 기색을 애써 감춘 채 그에게 다시 물었다. “어쩜 그렇게 10년 전이랑 똑같으세요?” 그제야 고종수는 웃었다. “그때를 기억하세요?”라고 말하며.

저녁 식사가 끝난 후 고종수는 “잠깐 방에 좀 갔다 올게요”라고 말했다. 괜히 걱정스런 마음에 숙소 계단을 지키고 서 있었다. 5분 쯤 지났을까. 핸드폰을 들고 내려오는 고종수의 모습이 보였다.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자 고종수는 “아, 진짜 사람들은 왜 자꾸 마음대로 저에 대해 생각하죠?”라며 반문했다. 그것은 공백 기간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맺힌 응어리가 많았나 보다. 고종수는 자리에 앉아 마자 ‘리지니’ 이야기부터 꺼냈다.

“1999년 수원에 있을 때 선수들이 리니지를 많이 했어요. 저녁에 운동 끝나고 나면 남들처럼 통닭집에서 맥주를 먹겠어요. 뭘 하겠어요. 그래서 다들 당구장 아니면 PC방에 가곤 했죠. 그런데 당구를 치면 계속 서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몸이 쉽게 피곤해진다며 감독님께서 당구장에는 잘 못가게 하셨어요. 그래서 가끔씩 PC방에 가기 시작했는데 한번은 친구가 리니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옆에서 구경하다 자연스레 하게 됐죠. 그런데 이게 중독성이 정말 강해요. 한 한달 정도 했나봐요. 어느 날 인터뷰 중에 쉬는 시간엔 뭘 하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래서 PC방에 다닌다고 했죠. 그랬더니 주로 무슨 게임을 하냐고 다시 묻더라고요. 당시 제 대답이 ‘리니지요’였어요. 그때 딱 세 마디 한 게 지금까지 온 거예요. 그 뒤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성을 먹었다느니, 레벨이 높다느니, 밤낮으로 리니지만 하다가 축구를 안 하게 됐다느니… 사람이 잠도 안자고 리니지만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죽어요. 죽어. 어떻게 해서 소문이 그렇게까지 났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음식점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엔 울컥 했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아, 빨리 복귀해서 운동장에 있어야겠구나. 운동장에 없으니까 자꾸 이런 소리가 나오는구나’라고요.”

잠깐 침묵하나 싶었지만 이내 이야기는 계속 됐다.

“팬들이 그랬어요. ‘예전의 화려한 모습을 바라는 게 아니다. 푸른 그라운드에 서있는 그 모습만이라도 보고 싶다’라고요. 용기를 많이 냈죠. 여기서 그만뒀으면 ‘게임 중독에 빠져 연예인들과 술만 마시다가 축구를 망친’ 고종수로 밖에 기억이 안 될 거 아니에요. 안 좋은 선례의 대표적인 주인공이 되겠죠. 그렇다면 제 삶이 얼마나 불행할까요? 그동안 제가 프로무대에서 뛴 지도 어느새 횟수로 13년째에요. 그 시간동안 나름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그게 나만의 생각이 될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저 축구선수 고종수로만 기억되길 바라요. 그런데 꼭 앞에 수식어가 붙네요. 건방지다느니, 게으른 천재라니…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다시 운동장에 돌아오자.’ ‘10분이라도 뛰고 관두자.’ 그 마음으로 다시 재기하게 된 거예요.”

그렇지만 그 공백의 시간들을 온전히 메운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입단 당시 최윤겸 前감독님께서 참 잘해주셨어요. 무엇보다 저를 믿어주셨고요. 그런데 마음이 너무 앞선 게 화근이었어요. 전지훈련 가서 한달 만에 8kg를 뺐는데 그게 문제였죠. 단백질 섭취도 안하고 살만 급히 빼다보니 근력이 떨어지고 말았거든요. 결국 근육을 다 못쓰게 돼버렸어요. 감각만 끌어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거기서 끝난게 아니에요. 3월 중순엔 연습 중에 패스를 하다 왼쪽 사타구니 쪽 근육이 그만 파열되고 말았어요. 빨리 운동장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과욕을 부린 게 결국 전반기를 그냥 보내버리게 된 계기가 되고 말았죠.”

지난 봄 검정색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경기를 지켜보던 고종수의 모습이 생각난다. 모자가 갖고 있던 본디 색보다 더 어두운 빛을 하고 있던 그의 얼굴 역시 기억난다.

“정말 뛰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깨달았죠. 나는 어쩔 수 없는 축구 선수구나. 그러니 꼭 이 악물고 운동해서 복귀하자. 그렇게 다시 한 번 다짐했죠.”

부활의 서곡을 불러라
“함성소리를 듣는데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경기장을 돌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싶었어요.”

2007년 8월 1일. 부산과의 FA컵 16강전에서 고종수는 2년 1개월 만에 경기에 나섰다. 2005년 7월 10일 수원전 이후 처음이었다. 그 뒤 고종수는 10분(8월 12일 포항전), 22분(8월 19일 인천전), 27분(8월 26일 전북전), 40분(9월 2일) 이렇게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9월 15일 서울전에선 올 시즌 처음으로 선발 출장해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경기는 앞서 열린 성남전이었다. 그는 그날 ‘고종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증명했다.

“0-1로 지고 있을 때 반전을 바라면서 투입됐죠. 처음에는 잘 풀렸어요. 관중들이 환호해주니까 힘이 저절로 났거든요. 마지막에 역전할 수도 있었는데 좀 어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죠. 물론 그 심판은 못 봤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난 몰랐는데…’가 끝은 아니잖아요. 우리나라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선 서로가 발전해야죠. 그날 제가 심판 판정이 잘못됐다고 어필을 많이 했잖아요.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며 아직도 저를 싸가지 없는 놈으로 생각할 지 몰라요. 하지만 모든 선수들에겐 이기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다보니 감정이 자기도 모르게 올라가는 거예요. 게임 끝나면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경기 중엔 분이 안 삼켜져요. 그래서 성남전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시련의 고비를 이제 막 건넌 그는 후배 선수들을 위한 진심어린 충고 역시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 인생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최고의 자리에도 올라가봤고 최악의 자리까지도 가봤잖아요. 지금도 이 순간에도 과거의 저처럼 방황하는 선수들이 많이 있겠죠. 중요한 건 자기 스스로 잘못됐다는 사실을 느끼고 깨닫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주체하기가 힘들죠. 어디 가면 사람들이 알아봐주지, 젊고 혈기는 왕성하지, 여자들은 축구 선수라며 다 좋아해주지. 정말 귀신이 끌어당기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러니 옆에서 누가 이야기해도 그게 나쁜 건지 모르죠. 그러다 후회할 날이 올 거예요. 옛날에 김호 감독님도 저 불러놓고 많이 야단치고 그러셨거든요. 그래도 제가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리니까 결국엔 포기하고 마셨죠. 그렇지만 보세요. 결국엔 후회했잖아요. 그러니 저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말아요.” 그러나 이렇게 교훈적인 멘트로 끝낼 고종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 질문은 그냥 직설적으로 하세요. 뭘 그렇게 돌려 말하세요.” 역시나 그의 입심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오해에 대해 말하다
“나요, 기자들 별로 안 좋아해요. 많이 당했거든요. 가끔씩 기자들이 편하게 이야기나 하자며 만나자고 그랬어요. 그때마다 기사로 안 쓰겠다고 약속까지 하며 말하길래 그 말 믿고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얘기한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꼭 다음날 제가 한 이야기가 기사로 전부 나오더라고요. 그것 말고도 할 말은 정말 많아요. 대표팀에 있다가 무릎 수술하러 독일 갈 때도 그랬어요. 감독님과 이야기 한 뒤 간 거였는데 다음날 신문 1면에는 ‘고종수 국가대표 퇴출!’이라고 나오더라고요. 가판만 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쟤 또 무슨 사고 쳤나보다’ 하겠죠. 그냥 ‘수술차 독일행’ 이렇게 써도 되는 거잖아요. 왜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어내서 쓰고 그러냐고 항의라도 하면 그냥 미안하다는 말로 끝나더라고요. 늘 저에 대한 이야기는 자극적으로 쓰는 것 같아 항상 속상하고 마음이 안 좋았어요. 한번은 1면에 ‘고종수, 기자들 반말하지마!’ 라고 나왔더라고요. 그게 어떻게 된 건 줄 아세요? 어느 날 파주에서 훈련하고 있는데 어떤 기자가 다가와서 ‘내가 야구 담당하다 이번에 축구 쪽으로 다시 왔어. 야, 반갑다’라고 하더라고요. 딱 봤는데 나랑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 보였어요. 그래서 ‘저 아세요?’라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빨개진 얼굴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가더라고요. 거기서 저는 끝났나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요. 다음날 신문 1면에 ‘나한테 반말하지마!’라는 제목의 기사로 제 이야기가 실렸더라고요. 또 그냥 지나치며 1면만 본 사람들은 ‘고종수 또 또라이 짓 했네’ 이럴 거 아니겠어요. 억울할 때가 많았죠.”

물론 고종수가 말하는 ‘억울한 순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요즘도 운동 선수는 운동만 해야 하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럼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부만 하나요? 그럴 순 없잖아요. 솔직히 사람인데 어떻게 그래요. 물론 일단 축구 선수니까 축구를 잘해야겠죠. 그렇지만 운동장 밖에서 축구 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끼가 있다면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쉴 때 뮤직비디오 하나 찍었다고 ‘네가 연예인이라도 되냐?’ ‘그 시간에 축구나 하지 이 정신 나간 놈아’ ‘그냥 축구 그만두고 딴따라나 해’하는 반응들은 너무 아쉽고 억울했죠.”

그에게 요즘 젊은 선수들이 큰 제약 없이 광고나 패션화보를 찍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톡톡 뛰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리 다 욕먹으면서 ‘선빵’ 쳤잖아요. 그래서 편한 거죠. 군대 갔다 오셨어요? 지금 가는 애들은 선배들에게 이런 얘기 많이 듣잖아요. ‘지금처럼 군 생활하면 나는 5년도 할 수도 있겠다. 너넨 복에 겨운 거다’라고요. 그 말처럼 제가 운동할 때도 선배들이 참 운동 편하게 한다고 그랬어요. 그때마다 저는 그냥 웃었죠. 지금 후배들에게 ‘나 때문에 너네 편한 거다’라고 말한다면 후배들 역시 제가 그랬듯 그냥 웃기만 할 걸요.”

시련의 나날 속에 꺾인 청춘
“교토 퍼플상가에서 방출 당한 후 수원으로 복귀했을 때,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건방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분이 생각하는 축구와 제가 하고 싶은 축구는 너무 차이가 컸어요. 그때는 미드필드 플레이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만날 뻥뻥하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게 재밌겠어요? 무슨 만루 홈런 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하는 건 야구가 아니라 축구인데 말이에요. 흔히 프랑스 축구를 ‘아트사커’라고 부르잖아요. 저는 우리나라 선수들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왜 안하느냐 이거죠. 시합장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걸 연습장에서 혼자 남아서 해야 하나요? 프로 선수라면 하나의 상품이고 그걸 잘 포장해야지만 소비자인 팬들이 볼 때 ‘괜찮다’는 소리가 나오는 법이에요. 그런데 보통은 ‘그냥 그렇네’라는 반응이 나오잖아요. 그건 ‘안 좋네’보다 더 무서운 거예요. 그런 와중에 제 정신이 그냥 나가 버린 것 같아요. 일단 팀 스타일엔 안 맞지, 그 상황에서 2군 게임 뛰라고 하지, 자존심은 상할대로 상해버렸지, 그래도 열심히 뛰었는데 전반 끝나자마자 바로 교체 해버렸지. 그러면서 정신이 확 나가버렸어요. 쥐뿔로 없는 게 자존심만 센 거죠. 그래서 ‘축구 그만두겠습니다. 좋은 성적 거두십시오’라고 적힌 편지를 감독님 책상 위에 올려 놓고 그냥 팀을 나와 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호텔에 박혀있었죠.”

그가 자살을 생각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글쎄요. 그때는 내가 뭐에 쓰였는지 모르겠어요. 자존심도 많이 상했고 축구에 대한 회의도 느껴졌고요. 그래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죽으러 영동대교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지만… 그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네요.”

우여곡절 끝에 다시 팀으로 돌아왔지만 신은 여전히 그에게 평온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숙소생활을 안했는데 구단에서 훈련이 있건 없건 무조건 9시에 와서 6시까지 있으라 고 그랬어요. (길들이기 단계였나요?) 그 단계가 아니라니까요. 거진 완전 아웃된 단계에요. 보통 오전 훈련만 있는 날에도 저는 혼자서 저녁까지 숙소를 지키고 있어야만 했어요. 물론 처음엔 그럭저럭 괜찮았죠. 그런데 한 2주 쯤 지났을까. 짜증이 확 나버리더라고요. 그래서 구단가서 임의탈퇴 시켜달라고 했죠. 그때는 제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아시죠? 원래는 교토 퍼플상가에서 나오면서 FC서울에 가려고 했던 거. 그런데 수원 쪽에서 안 된다며 FIFA에 제소까지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갔잖아요. 그렇게 대우할 거면서 도대체 날 왜 데리고 갔는지… 그러다 임의탈퇴는 2대 1로 트레이드로 자연스레 풀렸어요.”

여기서 그가 말한 트레이드는 지난 2005년 1월 자신과 조병국을 묶어 전남에 내주는 조건으로 김남일을 영입한 것을 말한다.

“자존심 많이 상했죠. 그때 관뒀어야 했는데…(웃음). 그런데 사람 일이 다 그런 거잖아요. 위에 있을 때도 있지만 밑에 있을 때도 있는 거고… 그러니 크게 상관 안 해요. 축구 선수는 운동장에서 자기 실력을 보여줘야지 다니면서 ‘나는 누구보다 더 잘해’ ‘나는 어딜가도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거지 백날 혼자서 말만 하면 뭐해요. 전남에 있을 때도 선수로서 할 건 다했어요. 허정무 감독님이 워낙 스타일이 강하기 때문에 맞춰가는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감독이 원하는 걸 선수는 당연히 따라가는 거니까요. 전남에서 나오게 된 건 애당초 1년 계약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마침 가을 쯤에 발목에 자란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는 바람에 시즌이 일찍 마감된 것 뿐이고요.”

그렇다면 무적(無籍) 상태로 2006년을 보낸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연이 깁니다. 다른 팀으로 가려고 했는데 마지막에 틀어지는 바람에 못 가게 된 거예요. 마지막에 윗사람이 틀어서 안됐다고 들었어요. 저는 붕 떠버린 거죠. 그래서 2006년을 그렇게 보낸 거예요. 1년 동안 혼자 운동하며 있었어요. ‘이렇게 하면 뭐해’라며 운동 안하고 있다가 ‘아냐, 다시 해야 해’라며 마음 고쳐먹고 다시 운동하고. 그렇게 좀 운동하다 ‘아, 젠장. 하면 뭐하냐고’라며 다시 한탄하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죠.”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처음 고종수가 대전에 입단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시민구단 대전시티즌과 그간 그라운드의 반항아로만 표상되던 고종수와의 조합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는 대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 이곳에 왔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팀에 들어와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좋아요. 무엇보다 대전에서는 다른 팀에서 느끼지 못한 걸 많이 느낄 수 있어 좋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죠?) 따뜻함? 왠지 맑음? 왜 웃으세요? 진짜에요. 사람들이 다 맑아요. 순수하고 맑고 거리낌 없고. 솔직히 상위권 팀들은 ‘너를 잡아야 내가 산다’라는 인식이 서로들 강해 겉으로만 친한 척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대전은 그런 느낌을 좀처럼 받을 수 없어요. 선수들 간의 끈끈한 정을 이 팀에서 많이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단지 대전 유니폼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무한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준 대전 팬들의 존재였다.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냥 흘러 지나가듯 감사하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해요. 이 팀에 와서 아직까지 크게 도움은 안됐지만 팬들과 함께 다시 한 번 날고 싶어요. 올 시즌은 준비도 많이 부족했고 감독님도 바뀌는 등 정신 없었지만 앞으로 서로 힘을 더 합쳐야겠죠. 그래서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꼭 다시 날게요.”
동화 속 네버랜드의 피터팬은 동심을 잃어버린 순간 날지 못했다. 그러나 고종수는 스스로 어른이 되길 거부하며 날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추락하던 순간, 그 마지막 찰나에 그는 깨달았다. 다시 날자고. 마지막으로 꼭 다시 한 번.

물론 아쉽게 그의 비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변치 않는 믿음만이 그를 곧 날게 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아마도 그것은 지금 우리가 고종수의 부활을 믿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오센

이제 더이상 선수 고종수로선 만날 수 없겠지만 축구인 고종수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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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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