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무래도 화성에서 온 여자인 것 같습니다. ㅠㅠ
금성에서 온 남자분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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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대학시절 저는 사진기자로 현장을 누볐습니다. 가장 바쁘게 지냈던 때는 아마도 2005년 여름인 것 같습니다. 매일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살았으니까요. 그해 8월 15일 광복절 당일에도 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취재 중이었죠. 마침 그날 저녁에는 숭례문 앞에서 광복 6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렸고 저는 그 현장을 취재해야만 했습니다.

어렵사리 숭례문 근처에 있던 건물을 섭외했고 옥상에 올라가 광복 60주년 기념 음악회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았던 지라 화각을 위해선 몸 절반을 옥상 밖으로 뻗은 채 사진을 찍어야했답니다. 그때 건너편에서 제 모습을 보고 있던 선배는 걱정이 됐던지 전화로 "그러다 떨어지겠다! 좀 조심하면서 찍어!"라며 야단을 쳤죠.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날 저녁은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명이 바뀔 때마다 아름답게 바뀌던 숭례문, 음악회 내내 제 귓가로 조용히 울려퍼지던 선율들, 마지막으로 선선히 불던 바람 덕분에 말이죠. 아직도 그 순간을 저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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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파트파임으로 6개월 가량 일하게 됐을 때 저는 아침, 점심, 저녁마다 숭례문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상공회의소는 숭례문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거든요. 숭례문과 마주칠 때마다 기분 좋은 웃음이 절로 나왔죠. 다른 이들은 몰라도 숭례문만은 치열했던 20대 초반, 제가 보냈던 그 나날들의 기억을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뒤 상공회의소 파트타임직을 끝내면서 안타깝게도 숭례문 근처로 갈 일이 없게 돼버렸습니다. 결국 그게 제가 숭례문과 만난 마지막 순간이 돼버렸군요. 그게 2006년 10월의 일이니 벌써 2년 전이네요.

숭례문이 불에 타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치열했던 제 삶의 한 순간이 타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결국 전소돼 버리고 말았다는 보도에선 제 마음도 함께 다 타버린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어느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국민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새벽,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2005년 여름 제가 찍었던 숭례문 사진을 찾아봅니다. 조명빛에 따라 반짝반짝거리던, 이제는 과거 속에만 남아있는 숭례문의 모습입니다.


music by 콩자반님의 Free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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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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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아시나요? 헐리우드 아역스타 출신 브래드 렌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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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렌프로는 1996년 8월 우리를 눈물바다에 빠뜨렸던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에 주인공으로 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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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렌프로가 열연한 주인공 에릭에게는 하나 뿐인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에이즈에 걸린 옆진 소년 덱스터죠. 굿바이 마이 프렌드는 바로 이 둘의 우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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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Cure(치료, 치료약)'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덱스터는 어린시절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소년입니다. 이 둘이 찾으려는 치료약을 과연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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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과 덱스터, 참 친해보이죠? 하지만 에릭 역시 다른 친구들처럼 덱스터를 피했답니다. 둘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바로 그 담장 너머로  대화를 시작하며 서로를 알게 됩니다. "내가 놀 때는 너가 들어가." "왜?" "옮을 수도 있으니까" "공기로 전염되는 병 아니야."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갔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둘은 친구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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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다른 사람들이 안 먹는 음식이 약이 될지도 모른다며 에릭은 덱스터에게 초코바를 잔뜩 먹입니다. 슈퍼에 가는 날이면 에릭은 수레에 덱스터를 태운 다음 쌩쌩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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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날은 집 근처 산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풀을 먹이기도 하고요. 풀을 끓여 재운 물을 먹이고 에릭은 노트에다 보고서 비스무레하게 적기도 합니다. 그러나 후에 독풀을 먹고 난리가 나기도 한답니다. 새벽에 독풀로 인한 중독증세로 덱스터가 병원에 가자 덱스터 어머니는 어떤 풀을 먹였냐며 덱스터를 깨우죠. 풀 이름을 모르던 덱스터가 풀과 잎사귀를 붙인 노트를 통째로 주며 "이거에요!"라고 외쳤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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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에릭은 하나 뿐인 덱스터가 에이즈에 나을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던 도중 뉴올리언스에 사는 의사가 에이즈 치료약을 개발했다는 기사를 신문을 통해 읽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그 의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떠나죠. 직접 만든 배를 타고 뉴올리스언스까지의 먼 여정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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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힘듭니다. 돈도 떨어지고 덱스터는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깡패들을 만나기도 하지요. 나이도 어리고 힘도 없던 그들이 위기를 모면하는 방법은 무척이나 슬픕니다. 덱스터가 자신의 손목을 그어 피를 내게 만들거든요. 그리고 에이즈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가방에 있던 약통을 본 깡패들은 정말로 에이즈에 걸린 것 같다며 결국 도망가지요. "내 피는 독이야."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덱스터의 얼굴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말 역시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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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결국 이 둘은 의사를 만나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옵니다. 덱스터가 너무 많이 아팠거든요. 에릭은 매일 자신을 손찌검하는 자신의 싱글맘 곁으로 갑니다. 그리고 덱스터는 결국 병원에 입원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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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에릭은 덱스터를 만나러 병원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둘은 장난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죠. 둘이 주로 치던 장난은 다음과 같습니다. 갑자기 덱스터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간호사들에게 달려가는 것이지요. 그날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장난이 그만 현실이 되고 만 것입니다. 덱스터를 살피기 위해 의사들이 달려왔을 때 덱스터는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거든요. 그리고 에릭은 덱스터 엄마 가슴에 안긴 채 울며 말합니다. 치료약을 찾기 위해 내가 더 노력했어야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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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덱스터의 엄마는 에릭을 달래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덱스터의 삶은 온통 슬픔과 고독 뿐이었지만 네가 그걸 사라지게 해줬단다. 덱스터는 너를 만나서 행복해 했어. 그애가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너도 알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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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의 엄마도 기억나에요. 그는 참 강인한 여성이었습니다. 에이즈로 고통받던 아들 앞에서는 늘 밝고 씩씩한 엄마였습니다. 자신보다 더 고통받을 아들을 생각해 절대 자신의 고통은 드러내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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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가 세상을 떠난 날, 에릭의 엄마가 또 에릭에게 손찌검을 하려고 하자 그녀의 목을 움켜쥔 채 말합니다. "두 가지만 말할게요. 첫번째는 오늘 에릭의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어요. 에릭은 그 장례식에 가야해요. 두번째는 에릭에게 또 다시 손대면 가만 안두겠어요.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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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의 운동화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한 운동화이기도 하고요. 뉴올리언스를 향한 여정 중 덱스터는 악몽을 꿉니다.

"잠에서 깼는데 어두울 때 말야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180억 광년에 걸쳐있다고 했잖아.계속해서 180억 광년을 더 간다고 가정해봐. 거기에 아무 것도 없으면 어떡하지? 가끔 잠에서 깼는데 깜깜하면 난 정말 무서워. 거기에 혼자 남겨진 채로 영원히 못 돌아올 것 같아."

그때 에릭은 덱스터에게 운동화 한짝을 주며 말하죠.  

"자는 동안 이걸 꼭 잡고 있어. 만약 잠에서 깼는데 무서울 때 이렇게 생각해봐. 잠깐, 난 에릭의 신발을 잡고 있어. 대체 내가 왜 이 더러운 농구화를 들고 있는 거지? 1조 광년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야. 난 지구에 있는게 틀림없어. 침낭속에서 안전하게 자고 있다고. 그리고 에릭은 바로 내 옆에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란 말야."

"음. 괜찮은 방법 같다."
 
그리고 덱스터가 가는 마지막 길, 운동화 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생각하라고, 그래서 그 길이 무섭거나 외로운 길이 아님을 깨닫으라고 에릭은 자신의 운동화를 덱스터 손에 쥐어 준 채 집으로 갑니다.

터덜터덜. 장례식장을 나온 에릭은 그렇게 한쪽 운동화 없이 걸어가죠. 한손에는 덱스터의 신발을 든 채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둘이 함께 놀던 강가에 가 조용히 신발을 띄우며 영화는 끝납니다. 그 둘이 함께 보트 위에서 떠내려가며 놀던 그 강 위엔 주인 잃은 덱스터의 신발이 그렇게 조용히 내려갑니다.

사춘기 시절, 저를 지배했던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저는 아직도 영화 속 장면 하나 하나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만큼 제게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였기에 가능한 것이겠죠.

그런데 그가 덱스터처럼 세상을 떠나고 말았네요. 현지시각으로 지난 15일 LA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합니다. 아직 정확한 사인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놀다 돌연사한 것으로 보아 약물과다 복용에 의한 사망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이 나돌 뿐입니다.


영화 '의뢰인'의 꼬마 주인공 브래드 렌프로는 '굿바이 마이 프렌드'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아역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거기까지 였습니다. 그 영화 이후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거든요.

대다수 헐리웃 아역스타들은 늘 한계와 만나곤 합니다. 어린시절 자신을 알린 영화 캐릭터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압박이 때론 그들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일찍 술과 마약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그 옛날 ET에서 귀여운 거티로 열연했던 드류 베리모어가 그랬으며 터미네이터를 통해 스타 반열에 오른 에드워드 펄렁이 그랬죠. 맥컬리 컬킨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겠죠?

물론 그중에는 성공적으로 그 시기를 이겨내 진짜 배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디 포스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나탈리 포트만이 그 예겠죠. 그들은 영화 밖에서도 다양한 자선활동과 선행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브래드 렌프로는 결국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네요. 그동안 무엇이 그를 그토록 힘들게 만든 것일까요. 어린나이에 너무 일찍 부와 명예, 그리고 인기를 맛보았기 때문일까요. 찬란했던 그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서,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두려움 때문에 그는 혼자서 힘들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추측하고 그의 심정을 헤아려볼 수 밖에 없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친구의 치료약을 찾기 위해 뛰어 다니던 브래드 렌프로.  어쩜 정말로 치료약이 필요했던 사람은 그가 아니었는지요.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영화는 오래도록 우리 가슴에 남아 '브래드 렌프로'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겠지요. 그것을 위안 삼으며 이 글을 마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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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재밌는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꼭 해야 할 50가지 일’ 이라는 제목의 기사였죠.

그 기사를 읽다 보니 제 대학시절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필’ 제대로 받은 김에 이제 막 대학생이 되려는 인생의 후배님들을 위해 ‘요것만은 꼭 해봐라!’ 목록을 작성해봤답니다.



추려서 23개만 소개하는데요,
다른 분들도 추천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트랙백 걸어주세요.
이제 대학생이 되는 저희 집 막내둥이에게도 유익할 것 같네요. 그럼! ^^


1. 철학수업을 수강하라. 모든 학문의 기초 아니던가. 졸리더라도 들어보자. 남는 게 크다. 2. 선거운동에 참여하라. 사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후보로 나가는 것. 그것이 어렵다면 후보를 도와주는 선거운동원이 돼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것도 어렵다고? 그럼 투표만이라도 해라.
3.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먹고 마지막엔 나 자신을 위한 꽃을 사서 선물하자. 무언가를 혼자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막상 해보면 왜 그렇게 무서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부모님과 술을 마셔보자. 10대에는 어렵고 힘들어서 하지 못했던 가슴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어쩜 그분들께서 들려주실 지도 모른다. 
5. 자원봉사. 다른 사람을 도와봐야 세상을 조금 알 수 있는 법. 시간 없다는 것은 핑계다. 그럼 기부금으로 돕는 방법도 있으니까. 대학시절 난 내 용돈의 10%를 매달 자선단체에다 기부했다. 돈 없어서 못하겠다는 것 역시 핑계다. 술 값, 커피 값 아끼면 보내줄 돈 다 생긴다.
6. 한번 쯤의 일탈. 대학생 때 아니면 점점 일탈하기 힘들어진다. 부모님 몰래 애인과 여행가보는 건 어떨까? 뭐라고? 그건 일탈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
7. 배낭여행. 취업하면 안다. 배낭여행 간다고 2달 씩 해외를 돈다는 것은 꿈에서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연휴 때 월차 붙여서 일주일 자리 비우는 것도 눈치를 보는 현실에선.
8. 도서관에서 밤 새보기. 공부 안하고 책상 위에서 퍼질러 자도 좋다. 그 시간에도 초롱초롱 빛난 눈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만 안다면.
9. 종교 동아리 학생과의 토론.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가? 혹은 믿어도 좋다. 종교만큼 견해를 좁히기 힘든 주제도 없으니까. 당신의 포용력과 사고의 한계를 시험하는 생각보다 괜찮은 시간이 될지도?
10.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술 마셔보기. 그리고 끊긴 친구 챙겨보기. 그렇다면 술은 적당히 마셔야만 한다는 결론을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을 거다.
11. 수업 땡땡이 치고 애인과 동물원 가보기. 한 두 번은 그렇게 놀아보는 것도 꽤 즐겁지. 유년시절 소풍의 기억을 떠올리며 하루 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때 아니면 못한다.
12. 동아리에 가입하라. 졸업 후에도 학교 놀러갈 구석이 생긴다. 하하하.
13. 일기 열심히 쓰기. 사람의 기억창고는 무한대지만 무엇이 들어있는지 찾아내는데엔 아직 한계가 있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자. 즐거운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뭘해도 예쁜 나이 아닌가.
14. 악기 혹은 운동 배우기. 악기나 운동, 하나는 제대로 할 줄 알아야 사회에서도 인정받는다. 뭐 때론 음치민정이 사랑받기도 하지만. ^^
15. 사랑 하되 후회 없이 않기. 그래서 그 사랑이 끝나더라도 조금만 슬퍼하기. 이건 더 설명안해도 알지?
16. 고백하기. 차일 것 두려워말라. 나중에 왜 말하지 않았을까, 라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다. 자로고 훌륭한 감독은 많이 져보면서 성장하는법이다. 그건 사랑도 마찬가지다.
17. 외국어 배우기. 토익 공부도 좋지만 회화 공부도 신경 쓰자. 언제 어디서든 빛을 발할지 모를 소중한 능력이니까. 참, 인사말과 고맙다는 말을 나라별로 외우는 것도 추천!
18. 삭발. 여자라서 삭발을 못한다면 삭발을 할 때의 마음을 상상하며 굳은 결심을 해봐라. 그렇지만 진짜 독한 마음이라면 삭발도 가능하다. 실제로 난 했으니까. 덕분에 학교와 집이 뒤집어졌지만. ^^;
19. 마라톤. 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서를 내보자. 그리고 매일 밤 달리며 준비해보자. 힘들어도 참는 법 배우는 데엔 마라톤만큼 좋은 것도 없다. 
20. 연애? 좋다. 대신 피임은 확실히 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울지도 말고.
21. 한 달에 제발 한권만이라도 책, 책, 책을 읽자. 이건 정말 하기 힘들다. 그러나 했을 때 남는 것은 정말 많다. 너무 많다.
22. 돈을 벌어보자.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길 것이다. 또한 절제와 보람을 동시에 배우는 기적을 경험할 것이다. 물론 치사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간간히 있겠지만 그래도.
23.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부어보자. 펀드도 좋고 적금도 좋다. 꾸준히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데 써보자.

그리고 요건 서비스입니다. 언젠가 '다시 스무살이 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쓴 글입니다.
재밌게 읽어보세요. ^^ http://blog.daum.net/dreamdiary/6706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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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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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글즈 중에서)


영화 ‘싱글즈’에서 동미(엄정화)는 소꿉친구 정준(이범수)와의 하룻밤으로 인해 아이를 임신하고 맙니다. 자, 과연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길은 세 가지로 나뉩니다.


1. 정준에게 고백한 뒤 아이를 키우며 같이 살기로 한다. 2. 정준에게 고백한 뒤 함께 병원에 가 중절수술을 받는다. 3. 나난(장진영) 손잡고서 수술하러 병원에 간다. 물론 정준에겐 비밀로.


그러나 동미의 선택은 모두를 ‘뜨아’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바로 싱글맘이 되기로 한 것이지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엄마’가 돼서 잘 살겠다는 결심까지. 동미는 이 모든 과정을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맡깁니다. 그 가운데 뱃속 아이 아빠인 정준의 개입(?)은 전혀 있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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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허수경 씨가 지난 12월 31일 낮 12시 경에 건강한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출산사실이 알려지자 각 포탈싸이트에는 그녀와 관련된 뉴스, 그리고 그에 관련된 네티즌들의 설전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허수경 씨의 임신은 애초부터 세간의 화제를 낳았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지난 7월 임신 사실을 공개할 당시 그녀는 ‘돌아온 싱글’이었으니까요. 그 때문에 사람들은 ‘도대체 아이 아빠는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그녀를 바라봤죠.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증 받은 정자로 두 번의 실패 끝에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아이 아빠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아침방송에서 임부복을 입고 나온 그녀는 “지난 3월 시험관 아이 시술을 통해 임신했다”라며 ‘싱글맘’으로서의 시작을 당당히 ‘커밍아웃’했죠.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발언은 내내 모든 사람들을 놀래게 만들었습니다.


“혼자 아이를 갖는 일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할 계획은 없지만 아이는 혼자서 잘 키우겠다.”
“생물학적 아버지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다.”
“100% 나를 닮은 아이가 태어났으면 좋겠다.”


파급은 꽤나 셌습니다. 이 역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그 어떤 여성이 하지 못한, 그리고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허수경 씨 입에서 나왔으니까요. 어쩜 그녀의 모습을 보던 이 땅의 수많은 싱글맘들은 그 옛날 잔다르크가 지금 한국에 다시 태어났다며 감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방송이 끝나고 몰아칠 후폭풍이 염려돼 저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확실히 그녀가 쏟은 말들은 ‘너무 시대를 앞서나간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으니까요.


그리고 역시 예상대로 그녀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극에서 극으로 갈렸습니다.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지요.


“당신의 선택으로 인해 평생 불행할 아이 미래를 떠올려봤는가?”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편견과 싸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줄 것인가?”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될 아이에 대해 생각해봤는가?” 


하지만 전 혼자서 아이를 낳고 기르겠다는 그녀의 선택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여자 혼자서 무엇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간 여자들은 수많은 편견과 차별 속에서 전쟁 같은 나날들을 보내야만했습니다. 특히 이혼녀와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들은 더욱 그러해야만 했지요. 그 속에서 키운 것은 8할이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 시련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길러야만했지요.


그런 가운데 허수경 씨의 선택과 발언은 여러모로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해왔던 가족의 범위를 확장시켰다는 점입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나’ 이것이 그간 우리가 ‘가족’이라 여겼던 구성원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손녀도 가족입니다. 아빠와 딸로 이뤄진 가족도 결국엔 가족입니다. 그것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증받은 정자로 임신, 출산까지 한 허수경 씨와 이제 갓 세상과 만난 그녀의 딸 역시 마찬가지겠죠.


양부모 가족만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고는 어쩜 처음부터 ‘비정상’적인 사고일지도 모릅니다. 가족에 있어 정상적인 범주란 애초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 땅의 수많은 편부모 가족들은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부’, 혹은 ‘모’ 입장에 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양육해야만 하는 고통 위에 있었습니다. 단지 전통적으로 이어진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는 이유, 그 하나 때문에 말이죠.


그런 와중에 허수경 씨가 싱글맘으로서의 커밍아웃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만큼 또 대단한 이슈를 낳았지요. 그렇지만 그녀의 바람몰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가족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녀에게 지지의 한 표를 보내고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싱글맘의 재해석입니다. 그간 ‘싱글맘’은 이혼이나 사별로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된 여성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허수경 씨 때문이라도 우리는 싱글맘을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 허수경 씨처럼 배우자 없이 스스로 아이 낳기를 선택한 여성들도 이젠 당당한 싱글맘인 것이겠죠.


혹자는 이를 가리켜 ‘미스맘’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미스맘’은 미스인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엄마가 되길 선택한 여성을 가리키는 신조어입니다. 무엇보다 여성의 ‘의지’를 깊이 담고 있는 단어인 거죠. 어쨌거나 싱글맘이든, 미스맘이든 그 안에는 결국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 허수경 씨의 임신과 출산은 앞으로 홀로 아이를 키워야할, 혹은 지금도 키우고 있는 여성들에게 분명 많은 용기가 됐을 것입니다. 그녀는 공인으로서 안정되고 명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힘든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마도 많은 여성들은 그 모습에 자신의 현실을 투영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실로 많은 힘을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허수경 씨를 비롯한 자발적 싱글맘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선들이 많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랄 아이의 행복’과 ‘제대로 된 훈육의 유무’에 대해 사람들은 걱정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혹시 당신들은 아시나요? 그 우려 속에는 우리들의 편견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일요.


아이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닙니다. 먼저 태어나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지금과 같은 편견 속에서 자라지 않도록 해주는 것뿐입니다.


허수경 씨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출산 전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는 고백을 인터뷰를 통해 넌지시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출산 마지막 전, 그녀는 웃었지요. 자신의 모성애를 믿는다면서 말입니다. 이 땅의 모든 엄마가 그렇듯 강한 생명의 힘으로 모든 세파를 이겨낼 것이라 했지요.


그러니 우리 모두 ‘애비 없이 자랄 애가 제대로 크겠어?’라는 조소 대신 힘든 선택을 기꺼이 한 그녀에게 축하의 인사와 믿음의 시선을 던져줍시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허수경 씨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의 선택이든, 혹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인한 결과든, ‘싱글맘’이 된 모든 여성들이 그녀처럼 당당해질 수 있도록,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엄마가 됐다는 사실만으로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녀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줍시다.


생각해봐요. 이 글을 쓰는 저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머니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던가요. 그러니 부디 당신이 그녀들을 자신의 어머니라 생각한다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2008년에는 부디 허수경 씨처럼 당당한 싱글맘들의 세상이 도래하길 기원합니다. 진심으로 두 손 모아 이렇게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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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해 겨울 구세군 냄비 모금이 처음으로 목표액에 이르지 못했다는 뉴스를 기억하시나요? 


구세군 자선냄비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1928년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80여 년간 매년 12월이면 딸랑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빛나던 빨간 자선냄비를 보게 됐지요. 그것은 해마다 12월이면 늘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 중 하나입니다.



올해 구세군이 세운 자선냄비 목표 모금액은 31억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모금 마감일이던 24일까지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다는군요. 특히 지난 1일부터 20일까지 집계한 모금액은 그 절반을 조금 넘는 16억 5천만 원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구세군이 약속된 날짜까지 목표액에 이루지 못해 모금기간을 연장한 적은 무척 이례적인 일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이십 몇 년간 살아왔던 저로선,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소식이었죠. 그러나 다행히도 모금 실적이 저조해 연장하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모금액이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25일까지 모인 금액은 약 31억 2백만 원 정도 되었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아쉬운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모금액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몇몇 지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거든요. 냄비에 넣는 모금액에는 소득공제 혜택이 없다. 그것이 그들이 기부하지 않는 이유였죠. 오히려 다른 단체에 계좌이체로 기부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나요. 그러고 보니 12월 초, 제가 후원하고 있는 세 단체에서 소득공제 영수증이 왔던 게 기억납니다. 요즘은 기부를 해도 그렇게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진다네요.


어쨌거나 소득공제 혜택도 없는데 왜 내냐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요즘 세태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또 한편으론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요. 그런데 얼마 전 일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그날 잠실역내에는 인근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모처럼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혹은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경쾌했지만 바빴고 그 때문에 자선냄비 앞을 무심히 지나치게 만들었죠.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조심스레 다가가 모금을 한 뒤 시민들의 반응 때문에 속상하지 않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구세군 자선냄비 앞에 서 계시던 그 분께서는 웃으면서 제게 말했지요.


“사랑하는 마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전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만 있다면 그걸로 괜찮습니다. 서운한 생각보단 마음은 있어도 형편이 안돼서 못 내시는 분도 계시고 그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담고 가시는 분들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내지 않는다고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기 보단 여럿이 나누는 그 마음이 널리 퍼져, 언젠가는 함께 도울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갖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구세군에 따르면 올해 모금액은 결국 지난해보다 2천만 원 정도 늘어났다고 하네요. 그리고 태안 기름유출 피해지역 복구를 위한 추가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오는 31일까지 서울 일부지역에서 모금활동을 더 하겠다고 합니다.


12월 한 달 동안 구세군 자선냄비 앞에서 종을 흔들며 자원봉사 하셨던 분들, 그리고 주머니 푼돈을 꺼내 이웃사랑에 동참하셨던 시민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있기에 올 12월은 더욱 따뜻했던게 아닌지요. 다시 한 번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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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집에 가는 길, 오늘도 별 생각 없이 버스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제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멋진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2007 빛의 축제 루체비스타였죠.

루체비스타(lucevista)는 빛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루체(luce)와 풍경, 전망을 뜻하는 비스타(vista)가 합쳐져 사랑과 나눔, 빛의 축제를 상징하는 루미나리에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루미나리에의 본 고장은 이탈리아입니다. 지난 해 동계올림픽 취재를 위해 토리노에 갔던 당시 제 눈을 사로잡았던 루미나리에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거리 전체가 루미나리에로 뒤덮여 있었거든요. 아름답게 반짝반짝 거렸던 토리노의 밤거리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때의 기분에 사로잡혀 캠코터로 정신없이 찍고 있을 때 이곳저곳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NGO ‘기아대책’에서 파견된 자원봉사자들이었지요.

그곳에서 만난 기아대책 김희정 팀장은 이번 루체비스타 행사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루체비스타는 나눔을 통해 사랑을, 그리고 더 나아가 희망의 빛을 전해주기 위해 기획된 행사합니다. 이곳에서 모금된 기금은 굶주린 아이들과 결속 아이들의 난방비로 쓰입니다. 축제를 통해 나눔을 활성화하고 사랑을 널리기 알리기 위해 앞으로 한 달 동안 청계광장에서 진행됩니다.”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작은 정성들이 희망의 빛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제가 본 풍경은 분명 그렇다는 확신을 안겨줬습니다. 그래서 저도 작지만 정성이 담긴 기부금을 낸 뒤 촛불과 러브볼을 샀답니다.

기부금을 내면 동영상 속 시민들처럼 희망 메시지를 적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희망 나무에 메시지를 달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1000원을 내면 아이들이 갖고 놀기 좋은 러브볼을 구입할 수 있고요 어린이 키에 맞춘 농구대도 있습니다. 짧은 시간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장소 같네요.

자원봉사자들은 매일 오후 5시에 나와 자정까지 봉사를 하다 간다고 합니다. 그저 봉사가 좋다는 그 마음 하나로 추운 날씨와 싸우며 청계천 광장을 지키고 있지요. 한 자원봉사자는 추위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이렇게 돕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대학생 황정윤 씨였죠.

“처음 봉사를 해봤는데요, 하다 보니 많은 보람이 느껴져요. 춥지만 정성이 모이면 큰 힘이 될 수 있잖아요. 무엇보다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지만 사실 생각보다 반응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엄마 손 잡고 와서 모금 해주시는 모습 보니까 기쁘고 좋아요.”

아직 입소문이 나지 않아 반응이 크지는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울광장이나 청계천광장을 찾은 많은 시민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시민들의 기부금은 결속아동들의 난방비로 쓰입니다. 아이들이 부디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많이들 도와주세요.

2007 빛의 축제 루체비스타는,

일정:12월 6일~ 1월 6일.
시간: 매일 저녁 6시~ 11시.
장소: 서울광장, 청계천 광장~모전교~광릉교~광교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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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말로만 듣던 연예인 비공개 결혼식에 가봤습니다.
정선희 씨와 안재환 씨의 결혼식이었죠.

결혼식이 열렸던 호텔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보인 사람들은
다름 아닌 기자들이었습니다.
그 추운 날씨에 아침 일찍 모여 결혼식에 참석하는 연예인들을 기다리더군요.
차에서 연예인들이 내릴 때마다 정신없이 몰려들어 축하 멘트를 따기 위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비공개 결혼식임에도 수많은 언론사에서 결혼식장을 찾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대중의 인기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의 결혼식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찾았고 어떻게 식이 진행됐는지 다들 궁금해할 것입니다.
언론사는 그런 대중의 관심과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겠고요.
포탈싸이트나 연예정보프로그램에서 쉽게 보던 결혼 축하 메시지 영상들은

다 이런 고생 끝에 탄생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저도 늦게 도착한 터라 자리가 없어 구석에서 서서 지켜봤는데
무한도전 멤버들이나 손호영 씨, 데니안 씨, 길건 씨,

박정아 씨, 김민선 씨 등도 늦게 도착해 어쩔 수 없이 서서 지켜봐야했답니다.
아, 그리고 김제동 씨는 잠바에 모자를 푹 쓰고 오셔서 깜짝 놀랐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결혼식인데 왜 정장을 안 입고 오셨어요?”라고 했다는. ^^;

식이 끝난 후에는 받은 쿠폰으로 식사를 한 뒤 집에 가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 기자 및 리포터 분들은 집에 가지 못한 채 못 다한 인터뷰를 하고 있더군요.
밖에서 다들 족히 4시간은 떨면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합니다.
한 기자 분께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자 “인터넷 매체에서는 이런 기사에 네티즌 접속률이 높다. 그런 구미에 맞춰가기 위해서는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더군요.

요즘 ‘인터넷 찌라시’라는 말들을 사람들은 쉽게 하지만
비공개 결혼식 취재를 위해 반나절 동안 밖에서 떨면서 고생하며 인터뷰를 하는
그들 모습을 보며 인터넷 언론사들 입장에서도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선희 씨, 안재환 씨 결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백년해로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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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오랜만에 학교 행사에 놀러갔습니다. 여전했죠. 바람엔 잊고 있던 옛 향기가 실려 왔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그리고 그 시절 나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던 후배들을 바라보며 그 옛날, 그러니까 스무살이라는 아주 예쁜 나이를 하고 있던 나를 떠올려봤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해마다 가을이면 자매 결연을 맺고 있던 다른 대학과 친선경기를 치르곤 합니다. 학교 운동부 선수들끼리의 시합이었는데, 그 시합을 하는 날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잠실주경기장을 찾아가 응원을 했습니다. 물론 꼭 경기장을 가야만 한다는 지침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공식적으로 수업이 없는 날입니다. 그 때문에 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나완 상관 없는 이야기’라 말하며 도서관에 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때론 집에서 뒹굴 대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요.

스무 살 가을, 저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대다수 학생들처럼 경기장에 있었답니다. 그곳에서 2만 학우들을 바라보며 열심히 응원했지요. ‘Young Tigers’-우리 말로는 새끼 호랑이 쯤으로 해석될 수 있는-라는 단어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서요.

'Young Tigers'는 제가 다니던 학교의 응원단 기수부 이름이었습니다. 기수부는 깃발을 가지고 응원하는 사람들로 모인 단체입니다. 그리고 오직 새내기만 할 수 있다는, 조금은 특별한 규칙이 있는 모임이기도 합니다. 대학에 입학한지 채 한 달도 안됐을 때 처음 그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생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라는 전제 조건은 이내 제 마음을 흔들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잖아. 그 마음 하나로 원서를 냈고 얼마 후 2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억세게 운 좋은 아이들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마냥 좋았을 뿐이죠. 그 뒤에 펼쳐질 험난한 날들을 예상하지 못한 채로요.

기수부 훈련은 8월에 시작됐습니다. 아침 9시. 정확히 40명의 새내기 기수부원들은 모두 아침 9시까지 와야합니다. 1명이라도 오지 않으면 우리는 그 친구가 올 때까지 엎드려 뻗쳐를 해야만 합니다. 어느 날은 한 친구가 1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아 팔과 다리가 달달달 떨릴 때까지 기합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무릎을 땅에라도 대는 순간이면 “거기 너 뭐야!”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지요. 

응원동작을 배우면 신이라도 날 줄 알았건만 그것 역시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4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응원만 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즐거울 것 같죠? 국민체조 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월한 동작도 뙤약볕 아래서 4시간 동안 반복해서 한다면, 제대로 버틸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듯 합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합은 선착순 달리기입니다. 그 벌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400m운동장을 전력으로 달린 다음 먼저 도착한 5명만이 엎드려 뻗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5명에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전력 달리기를 합니다. 다시 다섯 순위에 안에 든 사람들은 엎드려 뻗쳐를 합니다. 나머지는 계속 달립니다. 어떤 기합인지 아시겠죠? 그런데 혹시 전력을 다해 400m를 반복해서 뛰다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결국엔 수돗가로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절로 구토가 나오기 때문이죠. 그것은 운동량이 부족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빡세기 때문에’ 감수해야만 하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그날, 그 기합을 받던 도중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하자. 집에 돌아갈래. 그 생각에 점점 속도를 늦췄고 곧 대열에서 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운동장 한 켠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럭비부 선수들이 제게 달려와 “조금만 더 힘내요. 아셨죠? 파이팅!”라며 박수를 쳐주더군요. “할 수 있어요. 나중에 저희 시합할 때 열심히 응원해주셔야죠. 저희도 힘들게 운동하면서 이겨내고 있잖아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요”라면서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모래 바람이 털썩이던 운동장 위로 눈물을 쏟으며 다시 달렸습니다. 힘든 기합을 모두 이겨내며 버틴 오기 때문이라도, 지금까지 쏟은 노력을 알아주는 럭비부 선수들 때문이라도,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끝까지 버티기로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물론 극한의 고통과 싸울 때마다, 제 마음 속에서는 ‘참자’와 ‘그만하자’. 이 두 마음 사이의 장렬한 전투가 벌이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 뒤에 남은 것은 피로와 굳은 살, 그리고 뭉친 근육들 뿐이었습니다. 그 해 8월과 9월은 그 기억들만 가득합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흘러 기다리던 행사날이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희에게 주어진 공간은 아주 작은 하얀 단상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응원단 현단원들에게는 저희와 달리 크고 멋진 중앙 무대가 주어졌지요. 그 뿐만 아닙니다. 응원복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현단원들은 화려한 디자인의 개량한복을 입을 수 있었지만 저희에게 주어진 옷은 빨간색 후드 티셔츠와 검은색 반바지 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학생들의 시선은 당연히 중앙 단상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밑 작은 단상에서 응원하던 저희 모습을 보던 학생들은 거의 없었죠. 그래도 뭐가 좋았는지 참 즐겁게, 시종일관 웃으면서 응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그간 최선을 다해 노력한 제 자신에게 주어진 성과의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러니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었죠.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경기 종료 후에는 승리한 선수들이 운동장을 지나 단상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야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깃발을 든 채 서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지요. 바로 깃발 무게였습니다. 깃발을 든지 10분 쯤 지났을까요. 팔 근육은 어느새 경련을 일으키며 떨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이곳 저곳에서는 신음소리가 조금씩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만큼 힘들다, 라는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또 힘들었으니 이젠 칭찬해달라며 제 자신을 내세우고 싶다는 마음 역시 없습니다. 저는 그저 아무 탈 없이 행사가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그러기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입니다.

행사가 끝난 후 제 얼굴을 덮은 것은 땀과 눈물이었습니다. 그간 흘렸던 땀방울에게 고마워, 마지막까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스스로에게 감사해, 저는 아무 말도 못한 채 펑펑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이 그리워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때 처음 알게된 것 같습니다. 주목받는 것보다 뒤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과 그 순간을 참고 이겨냈을 때 비로소 빛이 난다는 진리, 그리고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교훈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스무살의 내가 깨달았던 그 모든 것들을 스무살의 후배들이 배운 듯 합니다. 그들은 그 옛날 제가 그랬듯 같은 순간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으니까요. 물론 언젠가는 그 후배들 역시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자신들의 후배들을 바라볼테지만요. 나도 너처럼 울었단다, 라면서요.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인생은 아름답다'는 말을 하나 봅니다. 그런가봅니다.

잊지 말아요.
오늘 당신이 흘린 눈물을.
눈물은 최선을 다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니까요.
모두가 당신의 노고를 모른다 하여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아름다이 빛나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우리, 잊지 말아요.
당신의 얼굴을 덮은 눈물 방울 방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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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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