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1일 안산 와~스타디움.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6차전 바레인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둠으로써 올림픽행 티켓을 땄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은 " 해냈다 " 는 기쁨에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약간의 실랑이가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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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 직원 한명이 그라운드로 내려와 박주영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려한 것이다. 박주영이 안가겠다며 뒷걸음질을 치자 이번에는 직원 한명이 더 내려와 뒤에서 그를 밀어 기자단이 있는 쪽으로 데리고 갔다. 알고 보니 박주영은 바레인전 최우수 선수(Man of the Match)로 뽑혔던 것. 시상을 하기 위해서라도 꼭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난 8월 3일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은 올스타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당시 박주영은 다른 선수들과 함께 구세군 서울 후생원을 방문, 그곳 어린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특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어린이를 위해 직접 음료수 캔을 따주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때문에 옆에 있던 이근호, 김치곤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 오늘 이렇게 아이들 만나보니까 어떠세요? " 내심 기분 좋다는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 인터뷰 하기 싫어요. " 옆에 있던 다른 기자가 다시 한 번 물었다. " 그래도 오늘은 즐거운 날이잖아요. 아이들이랑 재밌게 노시던데 짧게라도 소감 말씀해주시면 안되나요? " " 전 원래 인터뷰 안해요. " 그러나 무뚝뚝한 표정도 잠시, 옆에 있던 아이들이 " 형, 공 차러 가요 " 라고 말하자 박주영은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 그래. 빨리 가자. "
박주영은 올스타전이라는 즐거운 행사 앞에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것은 경기 최우수 선수로 뽑혔던 바레인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꼭 그날만 그랬던가. 어느 날은 골을 넣고도 바로 라커룸에 들어가는 바람에 소속팀 홍보 관계자들의 발목을 동동 구르게 만들기도 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와 관련해 박주영은 언젠가 지인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 축구 선수니까 축구로 말하고 싶어요. "
그렇다. 모든 해답은 그 안에 들어 있다. 그동안 박주영은 그라운드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유무에도 세인들은 지나친 관심을 드러냈으며 부상 역시 대단한 뉴스인양 보도가 돼왔다. 그 와중에 박주영은 지쳐갔고, 결국 우리가 만난 건 기자들을 피한 채 시무룩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지금의 박주영 뿐이다.
2005년 데뷔 첫해 30경기 출장, 18득점 4도움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던 박주영은 이듬해에는 30경기 출장 8득점 1도움이라는 다소 저조한 기록으로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것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14경기 출장 5득점'이라는 축구천재와는 거리가 먼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3일)은 박주영이 2005년 3월 9일 대구전에 교체로 출장, 프로 무대를 밟은 지 꼭 1000일 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그의 데뷔 1000일은 가는 곳마다 돌풍을 일으켰던 데뷔 첫해와 비교해보면 조용하다 못해 쓸쓸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그를 향한 기대와 희망을 저버릴 시간은 아직 아니다. 박주영의 나이는 이제 겨우 23살. 그는 지금의 3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빛날 선수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옛말의 주인공이 바로 박주영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