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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함께해요 K-리그

잔디논란? K-리그 아닌 공무원들 마인드 문제다.

이제는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또다시 잔디 논란이 터졌습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란과의 친선경기를 마치고 조광래 국가대표 감독이 기자회견 당시 한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아 패싱 게임을 풀어갈 수 없었다. 젊은 수비수들이 큰 위협 없이 잘 막아준 점은 괜찮았다.”

이청용도 출국 전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잔디 사정이 좋지 않아 패스를 주고받는 것이 힘들었다. 그렇지만 선수 입장에서 그런 문제로 핑계를 대고 싶진 않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실 경기를 보면서도 선수들의 태클을 시도할 때마다 잔디가 패이는게 눈에 보이더군요. 박지성이 전반 중반 골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이란 수비를 제치면서 슈팅을 시도할 때도 잔디가 쑥, 파였고 슈팅이 끝난 후 박지성이 패인 잔디를 다시 톡톡 두드려주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때 박지성의 새로운 별명을 잔디남이라고 지어줘야겠다, 하며 웃기도 했지요.


어쨌거나 지난 주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C서울과 광주상무의 경기가 열렸고 그로부터 채 3일이 되지 않은 날 또 A매치가 열렸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요. 양잔디는 30도를 넘나들면 성장을 멈춥니다. 성장을 멈추면 뿌리가 자리지 않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잔디가 패일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경기장을 관리하는 지자체의 노력과 관심만 있다면 사실, 이런 문제들은 최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강릉종합경기장의 잔디는 최고 수준입니다. 오죽했으면 지난 8월 28일 대구와의 홈경기를 마치고 박종규 경기기록관님이 “넘버 원”이라며 칭찬을 하시고 가셨을까요.


<박종규 경기감독관님의 강릉종합경기장 잔디 칭찬 영상>

사실 강릉종합경기장은 한지붕 두집안이 동거 중입니다. K-리그 클럽 강원FC와 내셔널리그 클럽 강릉시청이 동시에 홈으로 사용하고 있고요 요즘은 일주일에 2번씩 K-리그 경기와 내셔널리그 경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3일에 1번씩 경기가 치러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잔디가 잘 자랄 수 있을까요.


<강릉종합경기장의 파릇파릇한 잔디>

선수들도 일주일에 2번씩 뛰는 경기를 살인적인 일정이라며 힘들어하는데, 잔디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선수들의 스터드와 태클, 드리블 등으로 인해 많이 지쳐있고 상해있고 심한 경우 버티지 못한 채 그대로 말라 죽어버리고 맙니다.

강릉종합경기장의 최근 경기 일정을 볼까요. 8월 28일(토)에는 강원FC 홈경기가 열렸고 8월 31일(화)에는 강릉시청 홈경기가 열렸습니다. 9월 4일(토)에는 다시 강원FC 홈경기가 열렸고 9월 7일(화)에는 강릉시청 홈경기가 열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강릉종합경기장 잔디는 파릇파릇하게 잘 살아있습니다. 바로 잔디를 관리하고 있는 강릉시청 문체소 직원분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 덕분이죠.

2주동안 4번의 경기를 치르고 난 강릉종합경기장. 7일(화) 강릉시청 축구단과 창원시청 축구단과의 내셔널리그 경기를 마치고 난 바로 다음날인 수요일. 강릉종합경기장 내에 작업복을 입고 문체소 직원분들이 등장하였습니다.

파이고 죽은 잔디들을 드러내고 새 잔디를 심는 보식작업을 위해서였죠. 해충들이 발생하면 싱싱한 잔디들도 죽기 때문에 영양제와 소독약을 뿌리고 물도 주었습니다. 이제 당분간은 경기가 없기 때문에 좀 쉬엄쉬엄해도 되지 않겠냐고 여쭤보니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시더군요.


<경기 다음날 보식작업 중인 강릉시청 공무원분들>

“상한 잔디 대신 성한 잔디들을 심는 보식작업은 빨리 이뤄져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더 많은 잔디들을 드러내야할지도 모르니까요.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그 발생할 문제들을 막는게 중요합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잔디관리는 난을 기르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요. 조금만 관심을 주지 않으면 난은 쉽게 죽죠. 난이 시름시름 앓을 때 영양제를 주고 물을 준다고 그게 살아나겠어요? 그러니 한시라도 관리를 소홀히하면 안되겠죠.”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때 어이쿠야, 하면서 작업한다면, 초록 잔디 위에서 선수들이 뛸 수 있을까요? 평소에 조금씩만 신경써준다면 흙바닥에서 선수들이 축구를 럭비처럼 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매일 1만큼의 관심을 보여줬다면 나중에 100이라는 힘과 돈이 들지 않았겠죠. 문제가 생긴 다음에 민원이 성토하고 나서 그제야 해결하는 건 늑장대응입니다. 그리고 그런 늑장대응은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더 많은 시간과 돌을 들여야 해결됩니다.

사실 K-리그 잔디논란이요? 그건 구단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단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도 눈막고 귀막은 지자체의 문제에 있습니다. 월드컵 기간 중 대표팀 경기 단체관람을 위해 몇몇 도시에는 경기장을 시민들에게 개방한 바 있습니다. 그때 운동장까지 개방한 도시들이 굉장히 많았고요. 수많은 사람들의 발에 의해 짓밟힌 잔디들을 위한 보식작업이요? 제가 알기론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밖에 여러 시민행사 때마다 운동장을 개방해 잔디들이 힘없이 죽어가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했지만 역시나 사후관리는 없었고요. 시민을 위한 행사는 좋고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후의 관리까지 하는게 행사의 끝맺음 아닌가요? 부끄러운 K-리그가 아니라 부끄러운 공무원 세계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강릉시청 공무원분들은 시간과 돈이 남아서 그렇게 작업복 갈아입고 쪼그리고 앉아 잔디를 심고 계시는 것일까요? 내 고장, 우리 지역 사람들의 몇 안되는 즐거움 중 하나인 축구관람이 진정 즐거운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땀 흘리시는 것입니다.

공무원이라면 진정 주민들을 위해 작은 것까지 신경쓰며 일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지자체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며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강원FC는 참 축복받은 구단임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