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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K리그만 있냐, WK리그도 있다!


















여자축구연맹이 주관한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중간에 WK리그 홍보 영상이 소개됐는데 그때 찍은 영상입니다. 재밌답니다. ^^
도약. 2008년 이 땅의 여자축구를 한 단어로 표현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각급 대표팀의 선전, 신생 실업팀의 창단, 여기에 ‘예쁘고 똑똑한 선수 만들기’를 통한 저변 확대의 노력까지. 도약을 위한 노력들로 점철됐던 2008년을 뒤로 하고, 2009년 한국 여자축구에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시범 리그 형식으로 진행됐던 ‘WK리그’가 드디어 공식 출범하게 된 것이다.



체계를 갖추다
여자축구 발전 세미나와 여자축구연맹대의원총회가 지난 12월27일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 후 열린 총회에서는 두 가지 중대한 사안이 발표됐는데, 하나는 오규상(現 울산미포조선축구단장)의 신임 여자축구연맹 회장 부임이었고 또 한 가지는 2009년 ‘WK-리그’의 공식 출범이었다.

지난해 ‘WK-리그’는 전국대회 실업부 성적을 합산해 종합 순위를 정하는 형식의 시범 리그 형태로 진행됐었다. 그 결과 7승2무1패(승점23)를 기록한 대교가 2위 현대제철(승점19)을 따돌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리그’라고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은 서울시청과 상무, 수원시설관리공단은 1~2개의 대회에만 참가하는데 그쳤고, 그 결과 6개 팀이 한 대회에 출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지난해 11월에 열린 여자축구 드래프트에서 각 구단들은 대폭적인 선수 보강을 했고 (수원시설관리공단 5명, 상무와 서울시청 각 8명) 이를 통해 리그 참여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새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연중 리그제를 도입하게 된다. 4월13일 개막할 예정인 WK리그는 전, 후기 10라운드씩 총 20라운드의 풀리그 경기로 진행된다. 6개 팀이 팀당 20경기를 진행해 한 시즌동안 60경기가 열리게 된다. 각 구단의 경기장 사용 문제를 감안해 일단은 연고지 없이 수도권 경기장(아직 미정)에서 경기가 치러질 예정이다. 정규 리그 이외에도 7월 중에는 선수권대회가, 8월3일에는 올스타전이 계획돼 있으며 11월 말 상위 1, 2위 팀이 맞붙는 챔피언결정전을 끝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경기는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게 된다. K리그, 내셔널리그 경기 일정을 피해 팬들과 언론의 관심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조만간 케이블 스포츠채널과 독점 중계권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참가 클럽 수는 적지만 리그의 틀은 남자 축구의 그것 못지않게 체계적인 모양새를 갖춰나가고 있는 중이다.

실패를 본받아라
일단 힘찬 첫 걸음을 떼고 있는 WK리그를 향해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줘야하는 것이 우선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냥 박수만 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여성스포츠, 특히 그 중에서도 여자축구의 리그제 운영이 정착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스포츠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이지만 현재 활성화 되고 있는 여성 프로스포츠는 농구, 골프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WUSA(Women's United Soccer Association)의 실패는 아주 대표적인 경우다. 1999여자월드컵 우승과 함께 출범한 세계 최초의 여자축구 빅리그 ‘WUSA’는 미아 햄, 크리스틴 릴리 등 미국의 국가대표급 선수들뿐만 아니라 쑨 원(중국) 비르기트 프린츠(독일) 헤게 리세(노르웨이) 시시, 카이타(이상 브라질) 등 전세계 뛰어난 여자축구 스타들을 영입해출항과 동시에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예상을 밑도는 저조한 TV시청률과 미국여자축구협회의 과다 지출 등 수익 구조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WUSA는 3시즌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프로스포츠의 강국’ 미국답게 무너진 성을 쌓는 작업은 침착하고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리그가 문을 닫은 2003년 9월 WUSA 재조직 위원회가 구성됐고 이 위원회는 2004년 11월 WSII(Women's Soccer Initiative, Inc.)라는 비영리조직을 창설했다. “미국 내 모든 여자 축구를 발전시키고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WSII의 임무 중에는 WUSA의 빈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프로리그를 구상하는 일 또한 포함되었다.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WSII는 2006년 6월 “새로운 리그를 창설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해 12월 시카고, 댈러스, LA, 세인트루이스, 워싱턴DC, 뉴욕/뉴저지 등 6개의 프랜차이즈가 발표됐다. 이후 필라델피아, 센디에고가 추가되었다. 당초 새로운 리그는 2008년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2007여자월드컵, 2008베이징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들을 피함과 동시에 구단들에게 충분한 준비의 시간을 주고자 2009년으로 개막 시기를 늦췄다. 그리고 2008년 1월 WPS(Women's Professional Soccer)라는 새로운 이름과 로고가 발표되면서 미국 여자프로축구는 부활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새로 시작되는 WPS는 지난 날 1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남긴 WUSA의 실패를 거울삼아 철저히 지역 연고에 기반한 ‘풀뿌리 중심의 프로리그’를 추구한다. 여기에 느리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과거보다 소규모를 추구하며 더욱 더 내실 있는 리그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남자프로축구(MLS)와의 연계 시도도 그 사례 중 하나이다. 구장, 구단 인력, 마케팅을 공유함으로써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프랜차이즈로 필라델피아를 지목한 것도 2010년 같은 프랜차이즈로 창단 예정인 MLS구단과 연계를 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축구를 위하여
시행착오를 먼저 거친 스포츠 선진국의 사례는 WK-리그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WPS의 사례를 WK-리그에 적용해본다면 ▲지역 연고의 정착 ▲K-리그와의 연계성 강화 등을 리그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9년 출범하는 WK-리그는 일단 위의 방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다.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을 지향하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수도권 3개 구장에서 경기가 개최된다. 6팀 모두 연고지를 가지고 있지만-부산(상무) 경남(대교) 인천(현대제철) 서울(서울시청) 수원(수원시설관리공단) 충남(일화)-이 연고지는 사실상 전국체전 출전을 위한 연고지에 불과하다. 따라서 홈구장을 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설령 6개 구단들이 모두 연고지 내에 경기장을 확보하고 홈경기를 치르게 됐다고 해도 각 팀들이 전국에 분산돼있기에 비용 증가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K리그와의 연계성 강화는 두 리그가 운영하는 주체가 다른 이상 실현되기 어려운 문제다. 때문에 WK리그는 K리그와의 ‘연계’를 강조하기보단 ‘차별화’에 더 큰 무게를 실은 모습이다. 경기 시간도 K리그 경기가 열리지 않는 월요일 저녁이며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일단 K리그 경기가 열리지 않는 수도권 도시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25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K리그는 실로 풍족한 리그 운영 노하우를 축적한 상태다. 요일에 차별화를 두는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시설, 인력, 마케팅 전략 등에 있어서 K리그와 어느 정도 공조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이후 한국 여자축구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뛰고 있는 ‘아름다운 축구’가 그라운드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 태어난 축구팬들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축구를 보고 즐길 권리가 있다. WK리그는 그런 팬들을 위한 권리대장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