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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맨유 호나우도, 2008년 가장 빛나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가장 위험한 무기이다.” 포르투갈과 체코와의 유로2008 A조 예선경기가 열린 스타드 드 제네브 스타디움. 결과는 3-1 포르투갈의 완승으로 끝났다. 체코의 패장 카렐 부뤼크너 감독은 경기 종료 후 ‘그’를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바로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도다. 유로2008 조별리그까지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도가 세운 기록은 1골1도움. 수치상으로는 미약한 느낌이나 내용적으로는 영글었다는 평이 벌써부터 자자하다.




자국에서 열린 유로2004에서는 포르투갈의 기대주에 불과했던 호나우도가 불과 4년 만에 세계 축구의 흐름을 지배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거대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유럽의 진정한 별이 되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

유럽을 손안에
2007-08시즌 맨체스터Utd.는 행복했다.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tm리그 우승컵을 모두 품에 안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행복했던 ‘레드 데블’은 단연 호나우도였다. 그는 맨체스터 Utd.가 리그 2연패를 달성하고 ‘꿈의 무대’를 제패하는데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자리매김 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31골, 챔피언스리그에서 8골을 터뜨리며 두 대회 공히 득점왕에 올랐는데 주 포지션이 오른쪽 윙어란 점을 감안한다면 가히 경이롭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기록이었다. 퍼거슨 감독 또한 루니와 테베즈가 부상 등의 이유로 전방에서 이탈할 시에는 호나우도를 톱으로 기용하며 그의 공격력에 신뢰를 보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스카이스포츠 해설자 제이미 레드넵은 “공격 전 지역 소화가 가능하다. 그만큼 경기를 장악하고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그의 왕성한 움직임을 높게 평가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호평 역시 인상 깊다. 최근 그는 호나우도를 페르난도 토레스와 함께 2007-08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로 지목했다. 이렇듯 축구인생 최대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호나우도에게 유로2008이 찾아왔다. 축구가 흐름의 영향을 받는 스포츠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호나우도를 향한 기대감은 실로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카이스포츠 해설가 제프 스텔링은 “잉글랜드에서 보여 준 득점력을 세계무대에서도 보여주게 될 것”이라 말했고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인 매트 르 티지어도 “리그에서 얻은 자신감은 유로2008에서도 이어질 것이다. 포르투갈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찬스를 만들어 주느냐가 문제일 뿐”이라며 낙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출신 앨런 맥키널리 역시 “호나우도는 이번 대회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폭발시킬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시련을 이겨낸 성장사
기실 유럽선수권은 호나우도에게 각별한 무대다. 안방에서 열린 지난 유로2004를 통해 비로소 ‘입신양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호나우도는 그리스와의 개막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며 신성의 신호탄을 쐈다. 개막전골에 이어 네덜란드와의 4강전에서도 선제골을 기록한 그는 단 2번의 골로 이 대회 ‘Team Of the Tournament’ Best11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덕분에 호나우도가 누린 인기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고, 대회 기간 중 리스본 거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호나우도 마킹 유니폼이었다. 때문에 그리스와의 결승전 패배 직후 주저앉아 흐느끼던 호나우도 모습에 눈시울을 적신 축구팬들 또한 적잖았다.

유로2004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활약에 힘입어 호나우도는 그해 ‘올해의 U-21유럽선수상’을 수상했고, 덕분에 10대의 마지막 순간을 화려하게 마칠 수 있었으니 유로2004는 여러모로 특별할 수밖에 없던 대회였다. 이후 호나우도는 피구, 후이 코스타, 파울레타 등으로 대표되는 ‘골든제너레이션’의 뒤를 이을 ‘넥스트 골든제너레이션’의 대표 기수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2006월드컵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다소 부진한 감이 없지 않았다. 포르투갈은 2002월드컵 예선탈락의 트라우마를 씻어내고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그는 6경기에서 단 1골을 기록했을 뿐이다. 더구나 8강전에서는 루니의 퇴장을 부추겼다는 비난까지 한 몸에 받았다. 월드컵 이후에도 연이어진 언론과 팬들로부터의 뭇매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사실상 프리미어리그를 떠날 결심을 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채비를 하던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계약기간을 2010년까지 연장하고 주급을 4배 가까이 인상하는 등 퍼거슨 감독의 끈질긴 회유 끝에 호나우도는 결국 맨체스터에 남기로 마음을 돌렸다. 팬들은 그가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와 악담을 보냈지만 시련 속에 성장한 ‘프로’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2005-06시즌을 9골로 마감했던 호나우도는 2006-07시즌 그 곱절인 17골을 터뜨리며 프로데뷔 최고 기록을 세웠다. 물론 이 기록은 다음 시즌 31골로 다시 깨졌지만 말이다.

충고를 새겨듣다
이렇듯 발전의 발전을 거듭한 호나우도지만 그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우선 패스보다는 돌파를 즐겨하는 독단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문제였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수비수를 따돌리는 현란한 드리블은 그를 세계 정상급 스타로 만들어 줬지만 때론 무리한 돌파가 팀 공격의 흐름을 끊는 ‘악재’로 작용했다. 한때 라이언 긱스는 스카이스포츠와 가진 인터뷰에서 “호나우도의 지나친 개인 플레이가 팀 조직력을 흐트러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참을성 부족한 성격도 문제였다. 경기 도중 종종 상대에게 ‘보복성 태클’을 가하는 일이 발생했고 급기야 2007년 8월 포츠머스와의 리그 경기 중에는 ‘박치기’까지 선보였다. 후반 40분 코너킥 상황에서 자리싸움 중 자신을 마크하던 리차드 휴즈의 거친 수비를 참지 못하며 ‘보복성 박치기’를 가하고 만 것이다. 그간 ‘호나우도 감싸기’로 일관하던 퍼거슨 감독도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며 따끔하게 충고했다. 다행히 호나우도는 일련의 충고들을 새겨듣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는 곧 단순히 ‘스타’가 아닌 ‘월드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계기가 됐다.

2003년 맨체스터Utd.입단 이후 줄 곳 한 자릿수 득점(2003-04시즌 4골/2004-05시즌 5골/2005-06시즌 9골)만 올린 호나우도에게, 맨체스터Utd.의 전설 에릭 칸토나가 “골 결정력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충고하자 이후 2시즌 연속 두 자릿수 골을 터뜨리며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호나우도는 유로2008에서 누차 지적되던 단점의 껍질들을 완전히 벗어 던지며 비로소 ‘환골탈태’했다.

다시 태어나다
일단 정신적으로 성숙된 모습이 눈에 띈다. 포르투갈은 유로2008 조별리그에서 2연승을 거두며 가장 먼저 8강행을 확정지었지만 “경기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크로아티아가 독일을 꺾는 이변이 있지 않았던가. 우리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며 혹시라도 엄습할 자만을 경계했다. 그는 또 “축구는 팀 스포츠다. 우리는 한 팀으로 움직였고 팀을 위해 희생했다”며 오로지 조직력에 기반한 플레이를 선보였음을 강조했다. 앞선 발언대로 이번 유로2008에서 호나우도가 보여준 모습은 철저히 팀 중심적이었다.

통계치가 이를 설명해준다. 조별리그 2경기 동안 호나우도는 데코에게 11개의 패스를 보냈고 17번의 패스를 받았다. 여기서 데코를 향한 11개의 패스는 페레이라에게 보낸 패스(14개) 다음으로 많다. 이는 곧 플레이메이커로 나선 데코가 적극적으로 경기를 운영할 수 있도록 ‘조력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풀백으로 나선 페레이라에게 가장 많은 패스를 했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윙어라면 윙백에게 잘 패스할 줄 알아야 한다”던 소속팀 선배 긱스의 충고를 받아들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골 욕심도 버렸다.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터키전에서 호나우도는 활발히 움직이며 수비수를 몰고 다녔고 이는 곧 동료들에게 빈 공간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진가가 더욱 돋보였던 경기는 예선 2차전 체코전이다. 이날 포르투갈이 기록한 3골은 모두 호나우도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전반 8분 문전 앞을 파고들다 골키퍼 체흐에 걸려 넘어졌지만 이때 흐른 공을 달려들던 데코가 선제골로 연결시켰다. 어시스트로 잡히진 않았지만 전적으로 호나우도의 공이 컸다. 이후 호나우도는 1-1로 팽팽하게 줄다리기하던 후반 18분 데코의 패스를 받아 극적인 역전골을 터뜨렸고 후반 인저리타임에는 콰레스마의 쐐기골을 도왔다. 체흐와 1-1로 맞서는 상황이었지만 욕심내지 않고 반대편에 달려오던 콰레스마에게 패스를 내준 장면은 ‘호나우도가 진정 달라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패스의 질 또한 뛰어났다. 예선 2경기에서 호나우도가 보여준 패스 성공률은 68%. 팀 평균 성공률인 75%보다는 다소 낮은 수치지만 주전급 활약을 한 공격진들 사이에서 데코(69%) 다음으로 높은 성공률이다. 특히 터키전(59%)보다 다음 경기인 체코전(75%)에서 성공률이 높아졌다는 점은 그가 경기를 거듭할수록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황금 세대의 부활을 위하여
지난 체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주장 누노 고메스가 교체 아웃되되며 어깨에 차고 있던 완장을 호나우도에게 직접 채워준 것이다. 스콜라리 감독은 “동기부여를 위한 결정이었다. 그 결과 그는 더 많은 드리블과 더 많은 패스를 했고, 결국 팀의 득점으로 이어졌다”며 ‘작전’으로서의 의미를 부각시켰지만 이는 앞으로 그가 포르투갈 축구를 이끌어갈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만큼 막중한 책임이 점점 호나우도에게 부가되고 있다.

덧붙이자면 호나우도가 클럽에서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이며 활약한 기간과 맨체스터Utd.가 2002-03시즌 이후 지속된 ‘무관의 한’을 극복하며 리그 2연패를 제패한 시기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는 충분히 포르투갈 대표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만큼 모두가 호나우도에게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본디 영웅은 위기에 강한 법이다. 화려함으로 모두를 매료시킨 이 젊은 용사가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늘 마지막 문지방을 넘지 못한 과거를 딛고, 난관들 속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해야만 한다. 발롱도르 수상은 그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