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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돌아온 ‘쌕쌕이’ 정재권의 이중생활

그는 다시 돌아오겠노라는 약속 없이 훌쩍 떠난 사람이다. 기약조차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1992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를 거쳐 8년간 K리그에서 뛰었지만 그 마지막은 고요했고 또 쓸쓸했다. 정재권, 그는 그렇게 은퇴식조차 없이 조용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로부터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의 시작을 알린 벚꽃과 함께 ‘쌕쌕이’ 정재권의 귀환 소식이 들려왔다.

평일에는 한양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주말에는 K3리그 서울Utd. 선수로 뛰며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정재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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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Utd. No.24 정재권
한양대학교 코치실에 들어서자 너른 창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 아래 정재권이 서 있었다. “전혀 안 변한 듯하다”고 첫인사를 건네자 정재권은 “아이고, 주름이 많이 늘었는걸요. 안보이세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요즘 기자들에게서 전화가 많이 와요. 많은 분들이 관심 갖는 것 같아 기분 좋네요.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어요.”

1997년 부산의 3관왕을 이끌었던 정재권이 서울Utd.에 합류했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화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에게 합류과정을 묻자 “지금은 ‘인연’이라 말하지만 시작은 ‘우연’이었다”는 말로 시작했다. “동계훈련 중 대신고와 연습경기가 있었어요. 그때 팀에 부상자가 많아 제가 잠깐 들어가 뛰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임근재 감독(대신고&서울Utd.)이 당장 현역으로 복귀해도 좋겠다며 서울Utd.에서 뛰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하셨습니다.”

정재권의 데뷔전은 3월2일 2008하나은행 FA컵 예선 2라운드 전주EM코리아와의 경기였다. 정재권은 이날 데뷔골을 기록하며 팀 승리(3-0)에 일조했다. 당시의 소감을 묻자 그는 “(안)정환이 덕분”이라며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날 정환이 얼굴 좀 보러 부산에 내려갔어요. 그런데 마침 임 감독이 FA컵 예선경기를 뛰러 김천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아무 것도 준비 안됐다고 하자 축구화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급한 마음에 정환이가 신고 있던 축구화를 갖고 갔죠(웃음). 나중에 정환이에게 “네가 준 축구화를 신고 골을 넣었으니 너도 이 축구화로 골을 넣을 거다”라는 덕담과 함께 돌려줬어요. 그랬더니 정말로 그 다음 경기(3월19일 인천전)에서 골을 넣더군요.”

하지만 정재권은 골을 넣은 기쁨보다 ‘다시 뛴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제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팬들 앞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해요. 예전에는 매경기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스트레스 받을 때가 많았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마음이 편해요.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해 뛸 뿐입니다. 판단은 팬들이 하는 것이니까요.”

서울Utd.의 꽃은 바로 팬
“K리그에서 선수생활을 갓 시작하던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서포터스 문화가 지금처럼 정착이 안 돼 있었습니다. 그러다 1998년 안정환, 고종수, 이동국이 등장하며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죠. 서포터스 문화도 그즈음부터 탄력을 받았습니다. 팬들의 관심이 정말 뜨거웠죠. 당시 부산 평균 관중이 약 3만명 정도 됐으니까요. 그때 부산이 완성된 그림을 갖고 시작했다면 지금의 서울Utd.는 도화지 위에 새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될 거에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현재 K3리그에 뿌리내린 서포터스 문화는 1990년대말 K리그에 서포터스 문화가 막 태동하던 그 시절보다 기초만큼은 더 탄탄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재권은 그 이유를 팬들의 ‘순수한 열정’에서 꼽았다. “혹자는 서울Utd.팬들을 보며 미쳤다고들 그래요. 하지만 저는 그것을 열정으로 해석합니다. 서울Utd.를 향한 팬들의 아낌없는 관심과 대단한 사랑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앞으로 서울Utd. 서포터스 문화가 좋은 역할모델이 되길 바랍니다. 상호간의 신뢰를 통해 서로 발전할 수 있다면 K3리그 활성에도 도움이 될 테고 결국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지요.”

그로 인해 정재권은 전에 없던 꿈도 꾸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팬들과 함께하는 은퇴식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퇴 아닌 은퇴를 했어요. 그 때문에 은퇴식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늘 가슴 한편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죠. 그러다 ‘서울Utd.에서 이제 그 한(恨)을 풀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욕심일지는 모르겠지만 서울Utd.를 헌신적으로 아끼는 서포터스와 함께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은퇴식을 치르고 싶어요. 그렇다고 벌써부터 은퇴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요(웃음). 체력이 허락하는 한 오래도록 뛸 생각입니다.”

이어 정재권이 밝힌 고백 하나 더. “큰 아들 수창(12)이와 막내 선경(10)이가 제가 뛰는 모습을 보는 걸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 싶은 욕심도 크기에 가능한 오래 뛰고 싶습니다.”

K리그 출신이 말하는 서울Utd.
“서울Utd.는 희망으로 뭉친 팀입니다. 팀내 잘하는 선수를 시기하지도, 또 못하는 이를 욕하지도 않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고 협력할 뿐입니다. 이는 곧 K3리그가 지향하는 가치와도 일치하죠.” 정재권에게 팀 자랑을 부탁하자 미리 준비라도 한 듯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 내려갔다.

“신구조화가 잘됐어요. 저처럼 노장이지만 경험 많은 선수들과 젊고 패기 넘치는 선수들의 조합이 잘 이뤄졌습니다. 특히 미드필드에서부터 시작되는 아기자기한 패스와 윙어들의 빠르고 강한 돌파가 인상적이죠.”

이렇듯 이제 막 서울Utd.에 발을 담군 새내기지만 팀을 꿰뚫어보는 시각만큼은 여느 감독 못지않았다. 그에게 K3리그 2연패를 기대해도 좋겠냐고 묻자 껄껄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우승은 누구나 하고 싶지만 또 함부로 자신있게 말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반기가 지나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겠죠.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가을 쯤 되면 결과로 말하지 않을까요?”

여유있게 말하는 그 모습에서 정재권 특유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성품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서울Utd.에서 선수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된 사실에서 그 모든 이유를 찾았다. 정재권은 또한 다시 선수로 뛰게 된 덕분에 현재 지도 중인 한양대축구부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직접 뛰었을 때와 지도했을 때의 차이를 몸소 체득할 수 있어 좋습니다. 선수(제자)들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되고요.”

다음은 정재권이 귀띔해준 이야기. 한양대축구부 선수들 중 몇몇은 선수로 뛰는 스승을 보기 위해 잠실주경기장을 몇 번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직도 저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Utd. 서포터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들의 열광적인 성원이 있기 때문에 서울Utd.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으로 저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열정에 진정 보답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뛸 테니 늘 관심 갖고 격려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인사말을 남기며 정재권은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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