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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내셔널리그로 돌아온 K-리거 조세권, 황연석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조세권과 황연석이 긴 그림자와 함께 나타났다. 3월임에도 저녁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다. 황연석은 “몸 좀 녹이세요”라며 뜨거운 녹차를 건넸다. 종이컵을 타고 솟아오르는 따뜻한 김에 시선이 쏠릴 즈음, 옆에 있던 조세권이 “오래 우리면 써요”라며 손수 티백을 꺼내줬다. 실로 간만에 다시 만난 그들의 왼쪽 가슴엔 고양국민은행 엠블럼이 굳게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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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권(좌)과  황연석(우)

새로운 출발점 위에서
“프로에 있을 때보다 심적으로 여유로워진 상태입니다. 감독님께서 많이 배려해주시기 때문이죠. 편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운동 환경도 좋아 모든 점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황연석이 전해준 근황이다. 듣고 있던 조세권이 거들었다. “K리그와 비교했을 때 부족한 것은 딱히 없습니다. 선수 개인별 능력도 뛰어납니다. 주전 자리를 꿰차기가 쉽지만은 않겠더라고요.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죠.” 조세권은 짧게 숨을 내시며 말을 이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죠. 현재에 집중해야 앞으로 잘할 수 있습니다.”

조세권이 말한 과거에는 K리그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도 포함된다. 물론 황연석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황연석은 성남이 K리그 3연패를 이룰 당시 ‘슈퍼 조커’로 이름 날리며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2006년에는 30-30클럽(K리그 통산 328경기 출장, 64골 32도움)에도 가입했다. 조세권 역시 일치감치 엘리트 코스(1997U-20월드컵·1998아시안게임·2000올림픽대표)를 밟으며 2001년 드래프트 1순위로 울산에 입단했다. 이후 2005년 울산이 K리그 우승컵을 들기까지 중앙수비라인의 핵으로 활약했다.

“솔직히 아쉬운 마음도 조금 있죠. 대구에서 1년 더 뛰고 싶었거든요. 그렇지만 고양에서 새롭게 뛰게 됐으니 이젠 그런 생각 안하렵니다.” 황연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향후 2~3년 동안은 뛰는데 문제없지 않겠냐”고 묻자 조세권이 끼어든다. “3~4년도 문제없을 걸요.” 그렇다면 이에 대한 황연석의 대답은? “굳이 은퇴시기를 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부딪쳐봐야죠.”

이번에는 조세권에게 시선을 돌렸다. “작년 여름에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 됐습니다. 저는 구단, 감독님과 다 합의된 상태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의중을 모르겠더군요. 쉽게 말해 백수가 됐죠.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은 감당키 힘들었습니다. 어찌하다 이렇게 됐나 싶어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제가 만약 독신이었다면 정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즈음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우형 고양국민은행 감독님이 보자고 하신다고요. 처음엔 싫다며 거절했습니다. 자포자기 상태였기 때문에 축구를 그만 두려고 했거든요. 그때 와이프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충고하더군요.”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주도하던 조세권에게도 숨은 아픔이 있었다.

“다행히 이 감독님이 저를 믿고 받아주셨습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아직까지 이렇게 언론에서 관심 가져주는 것도 좋고요. 다들 기대감이 큰가 봅니다. 그 때문에 부담감도 살짝 드네요.” 이번에는 황연석이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모두가 기대하는 만큼 꼭 보답해드려야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뛰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까요.”

경험을 담은 조언
두 선수가 프로무대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무엇일까. “자기관리죠.”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답을 내놨다. 이어 두 사람 모두 “그러나 제대로 못해 후회가 남습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저는 자기관리를 잘 못하던 선수였습니다. 젊은 날 마음잡고 자기관리에 철저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겠죠.” 조세권의 대답이다.

이번엔 황연석이다. “프로에서 10년 넘게 뛰었다고 하면 다들 ‘자기관리를 잘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아쉬운 부분이 많은 걸요. 몸관리를 잘못했을 때 얼마만큼 힘든지 알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을 보면 항시 충고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도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는 후배들이 있더라고요. 나이가 어리면 그만큼 기회도 많이 찾아옵니다. 후배들이 이곳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다 더 좋은 곳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자기관리는 필수겠죠.”

이에 조세권은 “그렇지만 이곳 후배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아쉬움을 피력했다. “국민은행은 다른 내셔널리그 팀과 달리 운동 여건이 좋습니다. 선수들의 실력 역시 뛰어나고요. 그러다보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확률도, 또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아요. 그래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열심히 해서 높이 날자’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분명 많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K리그에 욕심내는 선수들이 거의 없더군요. 상당히 의외였고 또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안주하기보다는 도전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아직 젊은데 말입니다.”

조용히 경청하던 황연석도 공감한다며 운을 뗐다. “제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조)세권이가 다했네요. 저도 그 부분이 가장 아쉽죠. 젊은 선수들은 욕심을 가져도 될 법한데 그런 게 전혀 없어 보이니까요. 잘해서 인정받고 좋은 팀 가겠다는 욕심은 결코 사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목표가 생겼을 때 비로소 그것을 현실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또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합니다. 저는 후배들이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들이 가감 없이 던진 충고였다.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절실한 자는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마지막 동아줄을 놓는 순간 그대로 추락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조세권이 꺼냈다. “솔직히 저는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습니다. 여기서 못 뛴다면 집에 가야죠. 그런 생각만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잘해야겠죠. 또 아무래도 이젠 고참이다 보니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도 더 조심스러워야겠고요.” 언뜻 불안한 심기가 읽혀졌으나 다음 말에서 곧 기우임을 깨달았다. “내려갈 곳이 없다는 말은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뜻이겠지요. 경기에 나서기 위해서라도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꼭 이기겠습니다. 어려울 때 제게 손을 내밀어준 팀 아니던가요. 멋진 플레이로 천천히 은혜를 갚아가야죠.” 조세권이 새로이 고양국민은행 유니폼을 입으며 다진 각오다.

황연석의 다짐도 비슷했다. “항상 긴장 해야죠. 느슨해지면 힘들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벤치를 지키거나, 경기에 나가 지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겁니다. 외려 더 노력해야죠.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내기 위해서라도요.”

올 시즌 한 배를 타게 된 조세권 황연석, 이 두 사람이 세운 목표는 세 가지다. 첫째는 부상 없이 온전히 시즌을 보내는 것. 둘째는 K리그만을 향한 팬들의 시선을 내셔널리그로 돌리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두 사람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다.


“저희의 합류가 팀 전력에 많은 보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세운 가장 큰 목표요? 당연히 우승이죠. 자신있습니다. 저희 얼굴이 보고 싶다면 고양국민은행 경기가 열리는 날, 운동장으로 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