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우연이었습니다. 이호진 선수를 인터뷰 하고 돌아오던 길, 눈으로 덮인 문학경기장에서 낯선 얼굴과 만났습니다. 인천에 입단한 신인선수냐고 묻자 고등학생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죠. U-15대표팀 순조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하여 시작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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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리나라에서 U-17 월드컵이 열렸잖아요. 형들이 16강 진출에 실패해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지난 해 못다 이룬 꿈을 제가 꼭 이뤄볼려고요. 큰 무대에 나가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습니다.”
사실 그간 한국 축구, 그중에서 16세 이하 대표팀은 유난히 세계 대회와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간 세계 대회 진출에 성공한 것은 단 세 차례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한 차례는 2007년 개최국 자격으로 한 자동 출전뿐이죠. 그 이유를 묻자 한참 동안 고민한 뒤 답하더군요.
“아무래도 중앙아시아 선수들이 저희보다 성장이 빠른 것 같아요. 탄력이나 유연성도 좋고요. 신체에서 오는 열세를 한 번에 따라잡기는 힘들죠. 하지만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189cm라는 큰 키답게 포부 역시 시원했습니다. 물론 아직 근력과 유연성이 부족하다며 애써 자신을 낮췄지만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어요. 그냥 축구가 재밌어 보였어요. 제가 다니던 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기 때문에 분당에서 서울로 전학을 갔답니다.”
처음 순조에게 주어진 포지션은 최전방 공격수. 그러나 중학교 시절 부상으로 탈락한 수비수 대신 뛰게 되며 그의 수비수 외길 인생도 시작됐습니다.
“무엇보다 성실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이런 저런 유혹들 잘 이겨내 왔거든요. 힘들 때마다 묵묵히 뒷바라지 해주던 부모님과 부산에 혼자 계신 할머니를 생각해요.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할래요.”
프로축구연맹은 올해부터 K-리그 클럽 산하의 고교 축구부들이 리그전 형식으로 맞붙는 U-18 클럽 리그를 창설했습니다. 순조 또한 그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죠.
“인천 홈경기가 열리기 2시간 전에 시범경기 식으로 시합이 시작해요. 형들이랑 똑같은 스케줄로 경기를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인천과 부산과 경기를 하게 되면 저희도 부산 산하의 고교팀과 붙는 형식이죠. 그것도 형들이 뛰는 경기장에서 말이에요. 고등학생인 제가 프로경기가 열리는 곳에서 뛰다니요. 그것도 제가 정말 들어가고 싶은 인천의 경기장이라니. 상상만 해도 신나요.”
인터뷰가 끝날 즈음 멈췄던 눈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문학경기장역까지 함께 걸어가던 그 길엔 눈이 내렸습니다. 그의 꿈처럼 하얗고 환한 눈이 있었죠.
그리고 그날로부터 3개월 후,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순조를 다시 만났습니다. 인천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선수입장 전 인천 엠블럼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그라운드로 나서는 일을 한다고 하더군요.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깃발을 들고 연습에 열중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관중들은 선수들의 플레이에만 집중하겠죠.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고등학생을 어느 누가 신경 쓸까요. 그렇지만 순조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연습 때문에 저녁식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경기 시작 40분 전에야 급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는데도 뭐가 좋은지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더군요. “인천 형들이 뛰는 모습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신나요”가 바로 그 이유였습니다.
깃발 드는 역할만 하는 줄 알았는데 킥오프 휘슬이 울리면 코너에 앉아 볼을 던져주는 일도 한다고 합니다. 이름 하여 ‘볼보이’죠. 가까이서 거칠게 호흡하며 뛰는 인천 형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역시 순조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열심히 운동하다 보면 언젠가는 저 형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겠지’라는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어린만큼 꿈도, 포부도, 희망도 모두 크고, 당차고, 또 밝습니다. 조금씩 계단을 밝고 걷다보면 언젠가는 지성이 형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역시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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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정말로 꿈을 이루게 됐을 때,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쳤던 동영상 속 어린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며 웃어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 말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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