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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FC 10번 공격수 바제가 유로2012 예선전에 나서기 위해 마케도니아 국가대표팀에 합류했습니다.

마케도니아는 이번 유로2012 조별예선에서 러시아, 슬로바키아, 아르메니아, 아일랜드공화국과 힘께 B조에 묶였습니다. 바제는 오는 9월 3일 슬로바키아와, 9월 7일에는 알메니아와 조별예선 통과를 위한 맞대결을 펼칩니다.

바제는 2005년 11월 마케도니아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며 A매치에 데뷔했습니다. U-21대표팀에서 활약할 당시 사령탑을 맡고 있던 미르사드 요누즈 감독이 2009년 마케도니아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로는 꾸준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가장 최근에 나선 경기는 지난 6월 2일 루마니아와의 A매치며 현재까지 마케도니아 성인대표팀에서 5경기 1골을 기록 중입니다.


바제는 “마케도니아 대표팀 선수들이 K-리그에 관심이 많다”며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강원FC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K-리그에는 동유럽 출신 선수들이 좋은활약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원에서 활약했던 마토가 대표적인 예이겠고요 라돈치치, 스테보, 로브렉 등 많은 동유럽권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선보였고 많은 연봉과 인기를 누렸고, 또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라피치도 휴가를 받아 크로아티아에 돌아갔을 때면 아는 축구선수들이 K-리그 환경, 시스템, 대우, 조건 등 이것 저것 많이 물어봐서 대답하느라 꽤나 머리가 아팠대요. ^^

지난 7월 강원FC에 입단한 바제는 입단 3경기 만인 지난 8월 7일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강원FC에서 데뷔골을 신고했고 지난 8월 28일 대구와의 홈경기에서는 종료 2분 전 김영후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완벽하게 K-리그에 적응한 모습입니다.



강원FC에게 이번 바제의 국가대표팀 발탁은 꽤나 의미가 깊습니다. 창단 이후 지금까지 강원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나온 적은 한번도 없거든요. 작년 초 골키퍼 정산 U-20대표팀에 잠깐 있었고, 양한빈이 현 U-20대표팀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어디까지 청소년대표팀입니다. 지난해 신인왕 출신의 김영후가 올 시즌 10골을 터뜨리며 2년차 징크스를 깨고, 득점 4위에 올랐지만 아직까지도 대표팀과 연이 없습니다. 훈련멤버로 합류해도 좋을 법 한데, 예비명단에도 이름을 찾을 수가 없네요.

그런 가운데 바제가 비록 외국인 선수이지만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것은 강원FC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제 국가대표팀을 배출한 클럽, 이라는 생각에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요.

벌써부터 강원FC 응원곡을 흥얼흥얼 따라부르는 등 K-리그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인 바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강원FC를 대표하는 공격수가 마케도니아도 대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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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해 첫 원정경기에서 서울을 2-1로 누르며 파란을 일으킨데 이어, 울산을 4-3 성남을 4-1 전북을 5-2로 이기며 3경기 연속 4득점 이상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는 등 K-리그에 돌풍을 일으켰던 강원FC.

2년차에는 훨씬 더 안정적인 모습으로 태풍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현재 강원FC의 순위는 15개 팀들 중 13위로 사실상 하위권입니다. 강원FC의 전반기 부진 원인은 무엇일까요. 최순호 감독님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최순호 감독은 우선 ‘신인선수들의 K-리그 적응 실패’를 꼽았습니다.

“기존 프로팀에서 선수들을 이적, 영입하기는 어려웠고 드래프트에서도 추첨을 통해 뽑았기 때문에 원하는 선수들을 데리고 오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결국 내셔널리그에 눈을 돌렸고 그 선수들을 많이 활용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잘 적응을 하지 못했고 성공하지 못했던 전반기였어요.”

두 번째 이유로 ‘부상선수로 인한 어려움’을 지적했습니다.
“주전 수비수였던 김봉겸 등 장기 부상자들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는 이을용 등 새로운 부상자들이 생기면서 제가 원하는 데로 팀을 이끌어가지 못했던 게 어려웠어요.”

최순호 감독은 마지막 이유로 ‘3월과 4월 강릉지역에 내린 폭설’을 언급했습니다.
“봄이 다가오기 전에 강릉에 폭설이 많이 온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3월과 4월에 굉장히 눈이 많이 내렸어요. 일주일에 1, 2번만 밖에서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체육관이나 인조잔디에서 운동하며 컨디션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죠. 저와 선수들은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도 그런 경험이 있을 수 있는데 잘 감안해서 그 가운데 컨디션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방법을 선택해야할 거 같아요.”

최순호 감독이 꼽은 전반기 베스트 경기는 4월 24일 수원원정경기였습니다. 김영후가 2골을 넣으며 2-1로 이겼는데요 최순호 감독은 “그 경기가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어요. 더 어려움에 빠질 수 있었는데 우리 선수들은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고 행운도 찾아왔고 밖에서 지시하는대로 선수들이 잘 따라준 덕분에 좋은 경기내용으로 승리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습니다.

전반기 워스트 경기는 5월 5일 홈에서 열린 인천전을 꼽았습니다. 당시 강원FC는 아쉽게 2-1로 패하고 말았는데요 김영후가 1골 유병수가 2골을 넣으며 라이벌대결로서의 즐거움을 팬들에게 주었죠.

“선수들의 정신무장도 좋았고 홈경기라서 하고자하는 의지도 높았어요. 미안한 감정을 느낀게 하나 있다면 그때 김영후와 유병수의 경쟁이 관심의 대상이었죠. 마침 2-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하나 얻었는데 경기 시작 전 김영후가 이미 킥커로 선정됐지 그날 여러 상황으로 봐서 그 순간에 잠깐 고민했던 부분은 킥커를 교체할 것인가였어요. 많은 팬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만큼 좀 더 모험을 하자고 생각하고 안 바꾼 것이 감독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데 실패 하지 않았나. 그런 아쉬움이 많아요.”

최순호 감독이 뽑은 전반기 베스트 플레이어는 골키퍼 유현입니다. 지난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도 25개의 유효슈팅 중 23개를 선방하며 경이적인 선방율을 보여줬죠.

“유현는 작년보다 훨씬 더 안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작년보다 우리팀이 올해 더 어려움을 겪지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다른 팀의 골키퍼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최순호 감독이 후반기 신경써서 보완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공격적으로 가는데 있어 힘과 스피드. 수비조직력이 필요하기에 이것을 보완하는데 신경쓰며 훈련했어요. 작년 같은 경우는 코너킥 프리킥 상황에서 수비수들이 공격에 가담해서 득점했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해요. 첫째, 키커의 부재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데 중점을 뒀고 후기부터는 그런 부분도 보완이 됐다고 생각해요.

득점기회에서 득점을 하지 못하다 보니 그게 실점으로 이어졌는데 이렇게 경기를 하다가는 선수들이 너무 정신적으로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에요. 그래서 공격적으로 하기 보다는 안정적으로 하자. 그렇게 하니 실점이 줄어들었어요 전력이 강하면 도전적으로 해도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못할 때는 안정있게 팀을 운용하는 것도 필요해요. 수비에 대한 부분은 최진철 코치가 조직적인 훈련을 하기 때문에 전에 했던 것을 견고하게 하는 것으로 방법을 택했어요.

어떤 날은 경기 내용이 좋으면서 득점을 하지 못해서 지고 어려운 경기를 하면서도 득점을 해서 쉽게 풀어나는 것이 축구인데 늘 안정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여러가지를 해야하고 내년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너무 전력이 왔다갔다 하는 굴곡의 차이가 없게 하는 경기를 하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면 되겠어요.”

마지막으로 최순호 감독은 “우리는 다른 어떠한 팀보다도 훨씬 더 많은 팬을 갖고 있고 그들은 큰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큰 힘을 얻고 있는데 우리가 어려움을 겪어도 독려해주고 격려해주면 내년에는 더 좋은 팀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려울 때 같이 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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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여러분들은 김진규 선수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부터 떠오르세요? 제게 있어 김진규 선수는 수비수로서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정확하고 파워있는 킥이 인상깊은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끔은 그 모든 장점들을 희석시켜버리고 마는 다혈질의 소유자이기도 했고요. 

박주영과 함께 청소년대표팀을 이끌던 어린 캡틴은 어느새 올림픽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거쳐 홍명보 감독의 뒤를 이끄는 차세대 수비수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K-리그에서 김진규는 이따금씩 불같은 성격을 참지 못하고 심판에게 과하게 항의하다 퇴장 당하는 등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언론, 팬들 할 것 없이 김진규 선수를 코너에 몰아세우곤 했고요.

물론 저는 김진규 선수가 퇴장당하는 경기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퇴장 관련 기사와 그에 달린 팬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김진규 선수가 과했구나, 잘못했네, 라고 생각하곤 했답니다. 그러면서 김진규 선수를 바라보는 제 시선도 자연스럽게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삐뚤어진 채로 바라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 대 강원FC와의 경기를 보면서, 후반 34분 김영후 선수가 근육경련으로 쓰러졌을 때, 가장 먼저 김진규가 달려오는 장면을 보며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선수가 왜 다가오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무슨 행동을 할지 궁금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비디오카메라를 꺼내 들었죠.


가장 먼저 달려왔던 김진규 선수는 누워있던 김영후 선수의 스타킹을 내리고선 꾹꾹 눌러줬습니다. 강원FC의무 트레이너가 왔을 땐 트레이너를 도와 김영후 선수의 왼쪽 다리를 같이 눌러주었고요 김영후 선수가 오른쪽 다리의 고통을 호소하자 다시 오른쪽 다리를 들고 눌러주었습니다. 그 와중에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심판에게 건넸고요 그걸 받아 마시려다 마시지 못하고 강원FC 이창훈 선수에게 주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또 마시려나 싶었는데 뚜껑만 열어서 아디에게 주더군요. 아디가 마신 물을 다시 심판에게 줬던 김진규 선수는 가장 나중에 마셨습니다. 그때 김영후 선수는 전동카에 실려 그라운드를 막 빠져나가려고 할 때였고요.

김진규 선수가 그때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아세요? 더 마시고 싶었을텐데 그 물을, 떠나는 김영후 선수의 다리에 뿌려주더군요. 마지막까지 김영후 선수를 위해 김진규 선수가 했던 행동들은 지난 10년 간 K-리그에서 봤던 그 수많았던 경기들 중 가장 감동어린 장면이었습니다.

같은 팀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1-2로 이기고 있었지만 1골이면 따라갈 수 있기에 아직은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그리고 폭염 속에 치러진 경기였기에 무척이나 지쳐 누군가를 신경써줄 여유가 없었음에도, 김진규 선수는 마지막까지 김영후 선수를 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성적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프로스포츠의 세계. 그 속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은 사전 속의 단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상대 선수를 함께 K-리그 발전을 위해 뛰는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의식은 없는 것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김진규 선수는 그동안의 생각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고마웠고 또 미안했습니다. 저 역시 김진규 선수를 고정관념이라는 틀 안에서 지켜봤으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제 지인 역시 제가 찍은 영상 속 김진규 선수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쪽지를 보냈나봐요. 김진규 선수가 답쪽지를 보내줬는데 그것 역시 감동이라며, 그리고 혼자만 읽기엔 너무 아쉽다며 제게 보내줬어요.



김진규 선수의 쪽지 내용 중 '같은 선수들'이라는 표현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제 지인은 강원 화이팅!으로 마무리짓는 센스가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고요. ^^ ) 그의 말처럼, 비록 소속팀이 다르고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같은 선수들이라는 동료애가 있는 한, K-리그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혹시 다른 프로스포츠에서 이와 같은 감동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드라마틱한 경기를 볼 때마다 감동은 매 순간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경기 중에 펼쳐지는 건, K-리그가 유일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자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진규 선수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K-리그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린다고요. 앞으로 K-리그와 함께 성장할 당신의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하겠습니다. 그 말을 꼭 그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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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박지성의 단짝 누군지 아십니까. 이제는 많이들 아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바로 강원FC의 주장 정경호입니다. 2000시드니올림픽부터 2006독일월드컵까지, 함께 대표 생활을 하며 동갑내기 두 선수는 절친이 되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박지성이 대표팀 주장이 되었을 때, 정경호도 강원의 주장이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단짝 아니랄까봐 주장완장도 같은 시기에 차고. 역시 궁합이 맞는 친구인듯합니다.

박지성이 소통과 낮춤의 리더십으로 대표팀을 이끌 때 정경호는 강원 선수들을 어떻게 끌었을까요? 저는 정경호의 리더십을 격려의 리더십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정경호가 생각하는 주장으로서의 역할. 과연 어떤 것인지 함께 들어보시죠.


2010시즌 초, 아직도 많은 팬들에게 강원FC의 주장은 이을용이었다. 극진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깊은 사랑을 받았던 지난해, 이을용이 주장으로서 보여줬던 이미지가 워낙에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장 이을용을 떠올리던 시간은 지극히 짧았고, 찬란했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지금, 우리는 정경호를 가리키며 말한다. 노란완장이 어울리는 남자, 그가 강원FC의 주장이라고.

지난 8월 14일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 2-1 값진 승리를 거뒀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전반기 때는 2년차 징크스라는 말 그대로 꽤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아요. 많이 힘들었지만 월드컵 휴식기 동안 경기 중 노출됐던 문제점들을 보완하며 노력했죠. 후반기 첫 상대는 제주였는데 아쉽게 졌지만 이후 전북, 울산 등 좋은 팀들을 상대로 선제골도 넣고 지고 있던 상황에서 역전도 시키는 등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어요. 덕분에 선수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죠. 대전전 승리를 기점으로 앞으로 더 많은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그간 주장으로서 선수들은 어떻게 독려했는지 궁금하다.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경기장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칭찬을 통해 자신감을 끌어주었죠. 지난해 갓 프로에 데뷔했던 선수들도 프로 2년차에 접어들면서 프로의식이 부쩍 성장했어요. 이제는 팀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스스로 잘 알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해요.

강원FC가 추구하는 축구철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최순호 감독님은 뚜렷한 축구철학을 갖고 계세요. 페어플레이와 팀의 균형을 많이 강조하세요. 특히 보복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시죠. 승리는 다른 팀과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처음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어요. 알다시피 강원FC는 창단 당시 기존에 프로에서 뛰던 선수들 보다 대학 선수들을 많이 뽑아 팀을 꾸렸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제는 선수들이 잘 따라가고 있는 등 최순호 감독님이 추구하는 틀이 멋지게 짜여진 것 같아요. 내년에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강원FC만의 축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강원FC 팬들과 서포터스 나르샤에게 싶은 말이 있다면.
홈에서 경기할 때면 많은 관중이 오시기 때문에 힘이 나요. 그래서 홈에서만큼은 이기고 싶은 욕망이 정말 강해요. 제가 바라는 건 팀이 힘들고 어려울 때, 선수들이 원하는 경기력을 펼치지 못할 때에도 박수치며 격려해주셨으면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원정경기 때도 찾아와서 응원해주시는 나르샤분들께 참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경기에 나서는 선수 뿐 아니라 뛰지 못하는 선수들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셨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경기 때마다 ‘힘내라 정경호’라는 문구를 들을 때마다 오늘 꼭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저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까지 오신 분들과 강원FC를 아끼는 모든 분들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강원FC 주장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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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해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김진일, 윤준하의 연속골로 우승후보 서울을 눌렀던 신생 강원FC. 그날의 감동을 재연하고 싶었던 마음은 컸지만 서울은 강원을 2-1로 이기며 홈 11연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서울의 유효슈팅은 무려 14개나 됐습니다. 그 중에서 골로 연결된 것은 단 2골. 강원의 골키퍼 유현신의 눈부신 선방도 한몫했지만 서울 선수들의 2% 부족한 결정력도 그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반면 강원의 유효슈팅은 단 3개 뿐. 이날 공격수로 나선 김영후는 2개, 바제는 1개의 슈팅을, 공격형미드필더로 나선 안성남 역시 2개의 슈팅을 시도했죠.

상당히 아쉬운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효슈팅이 14 대 3으로 약 5배 차이가 나는데요, 슈팅은 이보다 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25대 4로 약 6배 차이를 보이고 있죠. 점유율 역시 61대 39로 서울의 우세였습니다. 홈 2연전을 앞두고 있는 만큼 서울전 승리로 홈 연승행진을 이어나가겠다는 강원FC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죠. 그래서 저는 지난 대전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출장정지를 당한 서동현이 더욱 생각났습니다.

서울전에서 보여준 바제 + 김영후 투톱 보다는 지난 대전전에서 보여준 서동현 + 김영후 투톱 조합이 더욱 위협적이더군요. 활동량 많은 서동현이 전방에서 수비진을 흔들어주면 남다른 결정력을 갖고 있는 김영후가 공격의 마침표를 찍는다. 김영후 혼자 고군분투하던 모습이 아쉬웠던 강원FC 팬들에게는 정말 꿈에 그리던 장면이 아닐 수 없죠. 그래서 이번에도 홀로 동분서주하던 김영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동현이 더욱 생각났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김영후는 후반 34분 결국 근육경련을 일으키며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서동현이 있었다면 김영후를 대체해 그가 나올 수 있었겠죠. 서동현의 출장정지로 강원FC의 중앙공격수 카드는 김영후, 바제 둘 뿐이었고 바제는 후반 18분 이창훈과 교체된 상태라 강원으로서는 더이상 공격을 책임질 선수가 없던 막막한 상황이었죠. 결국 권순형이 들어갔는데요, 그래서 더 서동현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던 서울전이었습니다.

전반 32분 터진 곽광선의 동점골.

기뻐하는 바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바제도 노력했지만...

그보다는 김영후의 투혼이 더 빛났던 경기였죠.

김용대의 선방에 결정적 득점기회가 무산되자 아쉬워하는 김영후.

힘이 들었던지 특유의 메롱하는 표정을... 남들은 괴물이라고 하지만 전 김영후 굉장히 귀엽다고 생각해요! ^^

한때 서울의 캡틴이었던 을용 형님. 이제는 적으로 만났죠.

산신령의 출동. 수원전에도 이미 출몰한바 있는. ㅎ

중국 선수 리춘유.

결국 김영후는 후반 34분 교체되고 맙니다.

열심히 응원했던 나르샤.

탈의까지 하는 열정... ^^;;

바제의 골이 터졌다면... 하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정경호 주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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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FC서울과 강원FC와의 K-리그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무더위 속에 경기장을 찾은 FC서울 팬들에게는 축제와도 같은 날이었습니다.

FC서울은 강원FC에 2-1로 이기며 홈 11연승이라는 신기록을 작성했거든요. 시작은 전반 29분 정조국의 발에서 시작됐습니다. 정조국의 크로스를 받은 최태욱은 왼발슈팅으로 선제골을 성공시켰는데, 그 골로 최태욱은 30-30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지난 7월 전북에서 서울로 이적하며 최태욱은 등번호 33번을 달았습니다. 30-30클럽에 가입하겠다는 목표를 등번호에 담은 거죠. 그 목표를 서울 이적 2경기만에 이뤘으니 참으로 대단하네요.

결승골은 최태욱의 선제골을 도운 정조국에게서 터졌습니다. 선제골을 터뜨리고 선수들은 아기 아빠가 된 정조국을 위해 요람 세레모니를 했는데요, 자신의 발로 결승골을 터뜨린 최태욱은 엄지손가락을 빨며 정조국 주니어를 위한 멋진 세레모니를 보여줬답니다.

최태욱, 정조국의 골마다 참으로 특별한 의미가 깃들어있었고, 그 골들 덕분에 홈 11연승이라는 신기록을 작성했고 서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죠.

강원FC도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기 위해 3-5-2로 전술을 바꿨지만 한 번의 미스로 서울에 골을 허용하며 지고 말았으니까요. 이날 경기를 이기면 2연승 행진을 기록하며 다음주에 열리는 대구와의 홈경기 승리사냥이 좀더 탄력을 받았을텐데. 먼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응원하러 온 팬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도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서울 선수들에게 고마웠던 건, 경기를 이기고 있었음에도 시간 지연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볼을 돌리지 않고 패스하며 공격 위주로 마지막까지 경기에 임해준 것,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후반 말미 김영후가 쥐가 났을 때, 김영후를 마크하던 두 수비수가 한참동안 쥐가 난 다리를 눌러주며 도와주더군요. 김진규와 아디. 승부를 떠나 스포츠맨십을 발휘해주셔서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축구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몸소 보여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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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는 이번 여름이적시장을 맞아 중국선수 리춘유를 영입했습니다. 이미 바제(마케도니아) 라피치(크로아티아) 헤나토(브라질)을 보유하고 있던 강원FC가 또 한명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던 건 아시아쿼터제 덕분이었죠. 아시아축구연맹 소속 국가의 선수는 한명 더 영입이 가능한 3+1제가 바로 아시아쿼터제입니다.

리춘유는 중국이 2008년 자국에서 열리는 베이징올림픽을 대비해 유소년 시절부터 국가의 특별관리를 받던 엘리트 선수였습니다.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며 올림픽대표팀에 선발돼 훈련을 받았지만 아쉽게 올림픽 본선무대에는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6월 아시안컵을 대비한 국가대표에 발탁되며 오성기를 가슴에 달게 됐죠.

사실 중국선수를 가까이서 보게 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J리그 출신 일본선수들은 자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중국은 가까이 있음에도 그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이서 보게 된 중국선수 리춘유는 굉장히 성실하고 팀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 기특합니다. 다행히 같은 아시아권국가라 한국음식을 좋아하고요, 한류의 영향을 받은 덕에 한국영화, 한국음악, 한국 TV쇼 프로그램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한국음악이 좋다며 제 차에 탔을 땐 흥얼흥얼 따라부르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첫인상들로 가득했는데, 그런 리춘유가 저를 감동시키고 말았습니다. 바로 얼마전 1급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 <정다운 마을>을 방문했을 때였죠.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느낀 건, 그들의 영혼이 참 맑다는 것입니다. 맑기 때문에 낯선 이들을 봐도 그들에게 두려움과 경계란 없습니다. 그저 반가운 마음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저희를 보면 늘 먼저 달려와 반갑다며 손을 잡고 인사하고 팔짱을 끼고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강원FC 선수들에게 이런 시설 자원봉사는 처음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익숙하게 장애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리춘유는 이곳이 처음이었기에 다소 당황스러웠을 것 같아요. 더구나 말도 안통하니 더 그랬겠죠. 그래서 저는 리춘유를 따라다니며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지켜보았습니다.

한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요 리춘유는 자신을 잘 따르던 장애인의 손을 꼭 잡고 같이 걸어다니고 텔레비전을 시청했습니다. 채널을 바꿔달라며 손짓하자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에 통했던 덕에 열심히 채널도 바꿔주고 같이 비빔밥도 먹고 그날 하루 장애인의 좋은 친구가 되어줬답니다.

봉사활동 내내 장애인의 손을 놓지 않던 리춘유의 모습은 참 감동이었어요.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나와 다른 사람일 뿐 틀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제게도 느껴졌거든요. 그 따뜻한 마음을 K-리그 팬들도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리춘유를 만나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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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해 신인왕 수상자 김영후. 그간 K-리그에서는 신인왕 수상자들이 이듬해 부진한다하여 2년차 징크스 혹은 신인왕 징크스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김영후에게는 예외인가 봅니다. 벌써 10골을 넣으며 득점 4위를 달리고 있거든요. 강원FC가 리그 13위로 부진하지만 김영후만은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팀이 살아났다면, 그의 득점행진은 더 가속되지 않았을까 해서요. 그래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말하는 그는 정말 K-리그에 내려온 천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 주말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은 일제히 있을 수 없는 골이라며 놀랐습니다. 김영후의 역전 프리킥 골 때문이었는데요, 당시 현장에서 제가 찍은 영상을 한번 보실까요?



사실 그 자리에서 프리킥이 났을 때 저와 지인들은 "영후존이다!"하며 골이 터질 것 같다는 예상을 조금은 해봤어요. 바로 2경기 전이었던 7월 24일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비슷한 위치에서 김영후는 프리킥 골을 성공시켰거든요.

김영후는 올 시즌 3번의 프리킥을 차 3번 모두 성공시키며 100%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의 1번째 프리킥은 지난 5월 26일 전북과의 컵대회에서 터졌죠. 사실 지난해까지 김영후가 프리킥을 찬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킥력이 정확했던 일본 선수 마사 또는 중앙미들자원인 권순형 또는 이창훈이 번갈아가며 찼거든요.

한데 전북과의 컵대회에서 갑자기 김영후가 프리킥을 차게 됐어요. 그때만해도 강원FC에서 득점감각이 가장 좋았던 선수였기에 킥의 정확성보다는 김영후가 그간 보여줬던 '한방'에 더 무게를 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넣으면 좋은 거고 못 넣어도 뭐라 할 순 없겠지, 했는데. 세상에나.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크게 휘어지며 골키퍼 손이 닿지 않던 골망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가지 뭐에요.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찍지 못한게 두고 두고 아쉽습니다. 다행히 N석에 있던 어느 서포터 분이 찍으셔서 그때 GIF 파일을 올려드릴게요.




컵대회라서 중계카메라도 없었고, 이건 정말 이날 현장에 있던 몇 안되는 팬들의 머릿속에만 남을 듯합니다. 그래서 그 현장에 있던 제가 참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런 훌륭한 골을 직접 봤으니까요.

지난해 유병수와 신인왕 경쟁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유병수는 무회전 프리킥을 잘 넣는다고 하여 은근슬쩍 김영후에게 이제는 무회전 프리킥을 좀 연마해보자고 농담을 건넨 적이 있는데, 부러 연습을 한 건 아니었음에도 올 시즌 김영후도 무회전 프리킥을 잘 성공시키고 있네요.

그래서 그에게 프리킥 성공 비결을 물어봤어요. 과연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김영후는 수비벽을 생각하며 얼마큼 휘어감아차야겠다, 식으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골문을 향해 정확하고, 세게 차야겠다. 딱  그 생각만 한대요. 머리가 복잡하면 슈팅을 하는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고 그러면 골의 정확성도 함께 떨어지게 되죠. 오히려 간단하게 생각하는게 프리킥을 성공시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런 프리킥을 차기 위해서는 킥력이 꽤나 강력하게 합니다. 그래서 발목강화훈련도 하고 따로 중거리슈팅 연습도 자주 하곤 하는데, 그게 드디어 빛을 발하는 것 같아 지켜보는 저도 참 흐뭇합니다.

K-리그가 재미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김영후 프리킥 동영상을 추천으로 날려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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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8월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 전반 35분 리춘유의 프리킥을 골로 성공시키며 서동현은 강원FC 이적 후 첫번째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한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골 세레모니. 그간 강원FC 선수들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데 우선이었는데 서동현은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 쪽으로 달려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엉덩이가 씰룩씰룩. ^^ 알고보니 강원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한 나르샤 세레모니였어요. 브아걸에서 활약 중인 나르샤가 추는 시건방춤을 따라춘 건데, 이적 후 첫골을 성공시킨 기쁨 속에서도 그 세레모니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은 그 자세가 참 맘에 들더라고요. 골 넣으면 무조건 팬들 위한 세레모니를 하겠다고 상당히 많이 생각했나봐요. 잊지 않고 바로 팬들 앞으로 달려가 할 정도였으면 말 다한 거겠죠? ^^



그런데 후반 11분 서동현은 경고를 받았고 4분 뒤에 또 추가로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강원FC 창단 이래 퇴장 받은 선수는 한명도 없었는데 서동현이 강원FC 퇴장 1호 선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데 두번째 경고가 좀 석연찮았죠. 서동현도 이해할 수 없었던지 심판에게 항의했습니다. 물론 다른 팀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강원FC에서는 처음 보는 장면이었답니다.



강원FC는 지난해 페어플레이상을 받은 구단입니다. 훈련용 유니폼 뒤에는 피파 페어플레이 마크를 새겨놓았어요. 연습 때도 페어플레이 정신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하여 올 시즌에도 최소 파울 및 최소 경고를 받고 있었죠. 그간 퇴장 당한 선수도 없었고 심판 판정에 항의 하는 선수들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하다보면 때론 심판 판정에 억울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순호 감독은 심판의 서로 간에 시합을 해석하는 기준이 다소 다를지라도 그라운드의 포청천이니만큼 심판 판정에 수용하라고 선수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판에게 억울함을 표하는 서동현의 모습은 다소 생경했습니다.



하지만 서동현의 퇴장이 숫적으로는 열세를 불러왔을지는 몰라도 강원FC 선수들에게는 이 경기만큼은 꼭 이겨야한다는 의지를 불태운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골키퍼 유현이 쥐가 나는 바람에 교체당했고 센터백 김봉겸 역시 쥐가 나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교체카드가 없어 뛰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악전고투 속에서 선수들은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뛰었는데요 선수들은 경기 후 동료 서동현의 퇴장이 투지를 불러일으켰다면서 언론과 팬들이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를 다독거렸습니다. 팬들 역시 그런 선수들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심판 판정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선수가 이제는 한두명은 있어야하지 않냐며 서동현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서동현은 그의 별명 '레인메이커'처럼 현재 이적 이후 강원FC에게 득점 '단비'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원톱 김영후에게만 집중되던 압박이 서동현의 이적 이후로는 분산이 되었거든요. 상대 수비진들은 골 결정력이 남다른 두 장신공격수를 분산하여 막을 수 밖에 없고 이것이 두 선수 모두에게 좀 더 넓고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엔 이것이 득점으로 연결돼 김영후는 서동현 이적 후 3게임 연속골을 성공시켰고 서동현 역시 오랜만에 골을 터뜨리며 '축구천재'의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강원FC에서 서동현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마치 베르바토프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활동량은 남다르지만 쓸데없는 움직임은 적습니다. 볼을 향한 집중력은 강하며 슈팅 동작부터 패스하는 순간까지 보여주는 모습은 흡싸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 같습니다. 그의 동작이 발레리노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스트라이커의 계보 중 하나인 최순호 감독은 그런 서동현을 가리키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역시 그를 향한 기대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강원FC로의 이적 후 첫 홈경기였던 지난 7월 24일. 전북전을 마치고 서동현을 우연히 음식점에서 만났습니다. 그의 첫 홈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먼 강릉까지 팬클럽 '레인메이커'가 나들이를 왔더라고요. 상당히 피곤하였을텐데도 서동현은 멀리서 온 팬클럽과 저녁식사를 가졌는데, 밝고 소탈한 모습에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데 그 순간 서동현의 양쪽 종아리가 눈에 띄더라고요. 잔뜩 테이핑을 한 다리로 식사를 하고 있더군요. 그러고보니 전북전 당시 교체 된 후 바로 스타킹을 벗었는데, 그때도 발목과 종아리를 꽁꽁 감아싼 테이핑이 한눈에 들어왔죠. 그런데도 경기 결과가 걱정되었는지 아이싱을 한 채 경기장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2-0으로 앞서다 2골을 내주고 또 다시 1골을 내주며 2-3으로 아쉽게 역전패하는 순간에는 맨발로 일어선 채 그라운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더라고요. 금세 강원FC를 내 팀처럼 생각하는 충성스런 마음이 느껴져서 보물 같은 선수가 강원FC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제 카메라는 오래도록 그를 향해 있었습니다.





김영후에 의존된 강원FC의 공격력에 서동현은 새로운 해결사로 등장하여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골룸이 그랬듯 '마이 프레셔스(My precious)'라고 끝없이 외치고 싶습니다. 경기 중 보여주는 플레이도, 팬들과 동료 선수, 그리고 팀을 생각하는 마음도 너무 예쁘니까요.



참... 이적 후 첫 홈경기 때 단상 위에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때 사회자 분이 티아라의 보삐보삐 춤을 시키셨죠. 수원 선수 시절 이 춤을 추는 세레모니가 기억에 나서 시켰는데, 그 이후로 너무 자주 시키게 됐고... 그래서 서동현은 골 넣고 자기도 모르게 티아라 춤을 추면 어떡하냐면서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걱정을 한 이유는?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한 나르샤 댄스를 춰야하는데 그러지 못할까봐라고 하니 팬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확실히 느껴지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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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대전월드컵에서 열린 대전시티즌 대 강원FC와의 K-리그 경기. 14위와 15위의 싸움이었습니다. 이 경기로 꼴찌가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팀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ㅠㅠ 강원과 대전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경기였답니다. 전반 35분 리춘유의 프리킥을 서동현이 골 에어리어에서 받아 그대로 오른발 슈팅에 성공, 팀 1번째 골을 기록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의미가 깊은 골이었어요. 수원에서 강원으로 이적 후 처음으로 기록한 골이었거든요. 한데 상당히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다음 장면에 일어났습니다.

보통 강원FC 선수들은 선수들끼리 기뻐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서동현은 골을 넣자마자 바로 N석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 쪽으로 달려가 춤을 추더라고요. 엉덩이를 오른쪽-왼쪽으로 왔다갔다 하는데... 무슨 춤이냐고요? 바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시건방춤이었답니다.

누군가는 한물 간 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그 세레모니에도 깊은 뜻이 숨어있었답니다. 강원 서포터스인 나르샤를 위해 나르샤가 활동 중인 브아걸의 춤을 춘 거거든요. 나르샤를 위해 나르샤의 춤을 춘다. 이 뜻이었죠. 첫번째 골은 꼭 나르샤에게 바치겠다는 깊은 의미가 숨어있던 특별한 골 세레모니였습니다.

그렇지만 전반 44분, 그러니까 종료 1분 전 대전의 한재웅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전반을 어렵게 마감하고 말았죠.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후반 시작하고 나서였습니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11분에 서동현이 경고를 받았고 4분 후에 또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10명이서 경기를 풀어나가야하는데 아직 후반 초반이었으니 어려움이 예상됐죠. 여기에 후반 21분에는 유현이 양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안성남과 권순형이 교체대기 중 권순형 카드를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현 대신 김근배 골키퍼가 들어갔는데 김근배는 팀 내 No.2 골키퍼. 강원에서 부동의 골키퍼는 언제나 유현이었고 작년 9월 유현이 부상당했을 때 김근배가 대신 1경기를 나선 적이있었죠. 리그 출장은 이번이 2번째. 경험이 부족한 골키퍼의 출장으로 다시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데 더 어려웠던 건 센터백 김봉겸 또한 쥐를 호소한 거죠. 더이상 교체 카드는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의무 트레이너가 달려가 침을 놓아 피를 내는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쥐는 계속 났고 통증을 참아가며 김봉겸을 뛰어야했습니다.

그리고 후반 42분. 미드필드 정면에서 살짝 왼쪽으로 빗겨간 자리에서 프리킥 찬스가 났습니다. 지난 전북전에 이미 그 자리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킨바 있던 김영후였기에 우리는 영후존이라며 골이 터질 것이라 믿었죠.

한데 정말 마법같은 기적의 드라마가 펼쳐졌습니다. 골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그대로 골망을 향해 출렁. 강원의 역전골이 터지고 만 것이죠. 늘 자리에 앉아 기도세레머니를 펼치던 김영후도 이날만큼은 벤치에 있던 동료들에게 달려가 격한 포옹을 하며 기쁨을 나눴죠.

경기 내내 힘든 고비가 많아 승점 3점을 손에 쥔다는 게 이렇게나 어렵구나, 했는데, 강원 선수들은 결국엔 그 난관은 이겨내고 11경기만에 승리를 하며 꼴찌에서 탈출했습니다.

퍼플아레나에서.

서동현이 보여준 시건방춤 세레모니.

김영후, 정경호와 함께 기쁨을 나누는 서동현.

형님들, 저만 믿으세요~

김영후의 프리킥골.

역전골이 터지고 기도도 잊고 어딘가로 달려가는 김영후.

벤치에 있던 선수들과 가쁨을 나누기 위해.

룸메이트 권순형과 격한 기쁨을 나누고 있는 김영후.

경기 종료 후 무실점으로 선방한데 감사드리고 있는 김근배 골키퍼. 왼쪽에 초점이 안맞은 사람은 김영후 입니다.^^

선수들을 격려 중인 김원동 대표이사.

나르사에게 감사 인사 드리고 있는 강원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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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운명이었을까요. 1996년 K-리그 데뷔 이후 줄곧 수원에서만 뛰었던, 그리고 지금도 뛰고 있는 원클럽맨 이운재의 은퇴 경기는 수원의 홈구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이것 역시 운명이었을까요. 전반을 무실점으로 마감하며 슈퍼 세이브를 보고 싶었건만 전반 26분 나이지리아에 1골을 내주며 바로 정성룡과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전반 중반 교체되면 보통은 벤치에 앉아 경기를 보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운재는 곧바로 락커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웬지 눈물을 속으로 삭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맺히는 눈물을 보여주기가 싫어 락커룸으로 가고 있다고, 그의 뒷모습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축구를 보았던 제게, 이운재는 언제나 국가대표팀 골키퍼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서 정성룡이 주전자리를 꿰차고 나왔을 때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겠지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고요.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이운재는 이번 나이지리아전까지 17년 간 붉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A매치 공식기록은 132경기 114실점. 홍명보 감독(136경기)에 이어 최다 A매치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국내 GK로서는 최초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며 화려하게 빛났었죠.

1994년 월드컵 독일전에서 하프타임에 교체 출전해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데 이어 2002년과 2006년, 2010년 이렇게 4번의 월드컵을 대한민국 대표선수로서 치렀습니다. 2000년과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대한민국을 3위로 이끌기도 했고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이운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 다들 같을 것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내고 씩 웃던 장면이요. 제가 기억하는, 이운재의 가장 섹시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는 이란과 8강전에서 마다비키아의 승부차기를 막아내 대한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고 3-4위전에서는 일본의 여섯 번째 키커 하뉴의 슛을 선방해 3위 트로피를 조국에 안겼죠.

위기의 순간마다 대한민국을 승리로 이끈 해결사 수문장이었지만 관심과 사랑이 컸던 만큼 비난과 구설수도 많았습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때아닌 몸무게 논란이 일어 ‘돼운재’라는 별명과 함께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2007년에는 아시안컵에서 영웅이 되어 돌아왔지만 뒤늦게 음주사건이 터졌고 대표팀 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로서 서는 마지막 순간 이운재는 행복했다고 소회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뛰어서,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습니다”라고요.

이제 파주에 소집돼 훈련을 소화하는 것도, 대표팀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 것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겠죠. 파주 가는 길도 며칠 전 그 길이 마지막 길이 되었죠. 그는 애써 참았지만 우리는 보았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던 그 순간 이운재가 흘린 눈물을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7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대표로 뛴다는 건요.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했겠죠. 하지만 그 세월동안 늘 몸무게 논란이 꼬리표처럼 이운재를 따라 다녔고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라는 조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관리가 부족한 선수가 17년 간 대한민국 골문을 책임질 수는 없었겠죠. 그 중압감에 무리한 다이어트로 2년간 결핵을 앓아야만 했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건너 뛰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얼마 전 수원에서 함께 뛰고 있는 한 선수가 제게 그랬습니다.

“운재 형을 보면 정말 안스러워요. 워낙에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식사시간에도 마음 놓고 밥을 못드세요. 저희가 먹는 딱 절반만 식판에 올려놓고 먹는 거 보면 저렇게만 먹고 배가 찰까?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데, 그런데도 형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시는 거 있죠.”

국가대표 선수라는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았습니다. 물론 당분간은 K-리그에서 당신을 볼 수 있겠죠. 여전히 수원맨이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은 가져도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 먹고 싶은 음식들, 조금씩 드셔보세요. 여자 주먹만큼만 밥 먹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요.

마음껏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밥 먹는 이운재,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대한민국 골문을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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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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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강원FC와 전남드래곤즈가 전지훈련 중이던 중국 쿤밍을 취재 차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그날은 전남 선수들이 쉬는 날이라 친하게 지내던 대학 후배를 만나기 위해 전남 선수들이 숙소로 쓰고 있던 호텔에 갔죠. 호텔 야외 벤치에 앉아 한국서 공수해온 커피믹스를 타서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질 시간이 됐습니다. 택시를 잡기 위해 나오는데 외출 나갔던 전남 선수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라고요.

여러명의 선수 중 제가 아는 선수는 왼쪽 풀백 젊은 피 윤석영 뿐 죄다 모르는 얼굴이라서 후배에게 전남 신인들이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후배는 저 키 큰 선수 모르냐며 슈퍼신인 지동원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호들갑을 떨더군요. 후배의 마지막 말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지금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곧 주목할 수 밖에 없을 거야. 후배는 제게 그렇게 말했죠.


지동원을 다시 만난 건 3월 28일 강원 대 전남 경기에서였습니다. 당시 지동원은 전반 1분만에 골을 기록했는데요, 그때 뭐 저런 신인이 다 있나 했습니다. 3-1로 앞서고 있던 후반 26분에는 도움도 기록했습니다. 아크 오른쪽에서 올려준 볼을 인디오가 잡아 팀 2번째 골을 성공했습니다. 3-2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아쉽게도 5-2로 패하면서 K-리그 데뷔골과 데뷔 도움 기록은 빛이 바랬죠. 그렇지만 19살 소년이, K-리그 5경기만에 순도높은 기록을 세운 건 정말 주목할만 했습니다.

이후 그를 다시 만난 건 6월 2일 컵대회에서였습니다. 이번에는 광양에서 열린 전남 대 강원의 컵대회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지동원은 또 골을 기록했지요. 후반 8분 정윤성의 크로스를 받아 팀 3번째 골을 성공했습니다. 2달 만에 만난 지동원은 어느새 K-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이었습니다. 187cm의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고 기본기도 탄탄했습니다. 보통의 장신 선수들은 보폭은 넓지만 스피드는 느리고, 발란스가 맞지 않아 키핑력이 부족하고 유연하지 못하여 수비수들의 부딪힐 때마다 쉽게 넘어지곤 하는데요, 지동원은 그렇지 않더군요.

몸싸움에도 능했고, 볼을 받고 돌아서는 움직임도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보는 내내 K-리그에 물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전남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경남과의 FA컵 16강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득점 날개까지 달았으니, 올 시즌 가장 주목할 만한 신인임은 틀림없습니다. 이쯤하면 신인왕도 탈 수 있겠지 싶습니다.

여기에 신인왕 도전장을 내민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조광래 유치원의 우등생 윤빛가람입니다. 올 초 K-리그의 이슈메이커는 경남FC였습니다. 탄탄한 수비 뒤에 정확한 패스웤을 바탕으로 경남은 역습에 능했고 무엇보다 루시오라는 결정력 높은 외국인 공격수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리그 1위까지 오르는 등 화제의 중심에 있었죠. 조광래 감독이 A대표팀에 승선한 이후 파괴력이 조금은 잠잠해진 듯 하지만 여전히 상위권(리그 3위)에 랭크돼있습니다.

지난해 K-리그 드래프트 현장에서 조광래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꽤 많이 받아야만 했습니다. 2순위에서 윤빛가람을 지명했거든요. 잊혀진 천재를 뽑은 이유에 대해 기자들은 굉장히 궁금해했죠. 당시 조광래 감독은 “빠른 패스워크 위주로 전개되는 경남의 플레이스타일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선수”라고 지명 이유를 밝혔습니다.


사실 윤빛가람은 2007년 U-17월드컵에서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대표팀이 소집할 때마다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윤빛가람에게만 쏠렸죠. 비가 내려 실내에서 진행됐던 포토데이 당일날, K-리그는 중계를 많이 해주지 않아 프리미어리그를 자주 보게 된다라고 말했는데, 기자들이 ‘중계를 많이 해주지 않아’라는 말은 쏙 빼고 “K-리그보다는 프리미어리그를 즐겨봐”라고 기사를 전송했지 뭡니까. 덕분에 ‘악플만 백만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등 대표적인 ‘밉상’선수로 낙인 찍히고 말았죠.

U-17월드컵 조별리그 토고전에서 역전골을 터뜨렸지만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었고 이후 블랙번으로 진출하겠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마저도 흐지부지 된 듯합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유럽 중소클럽들을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가 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나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서 조광래 감독과의 만남은 그에게 제2의 축구인생을 열어준 ‘전환점’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는 빠르고 정확한 패스워크 아래 이뤄집니다. 공격축구를 구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수비축구입니다. 수비를 탄탄히 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흐름대로 경기를 끌어가며 공격을 감행합니다. 무엇보다 수비안정이 중요하고 미드필더, 공격수에게도 수비가담을 요구하죠.

조광래 감독 밑에서 뛰는 동안 윤빛가람은 ‘예쁘게 공을 차던 아이’에서 정확한 패스로 게임을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로서 성장 중입니다. 19경기에서 벌써 5골 4도움을 기록하며 골과 도움 모두 고르게 관여하며 어엿하게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재밌는 건 지동원도 19경기 출장 6골 3도움을 기록하며 윤빛가람과 똑같은 공격포인트(9)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스트라이커와 미드필더를 비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죠. 특히나 지동원 같은 파괴력 있는 스트라이커의 경우 더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 없이 강한,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살림꾼 미드필더인 윤빛가람의 경우 조광래 감독의 축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선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표팀에서만큼은 지동원보다 더 밝게 빛날지도 모릅니다.

K-리그에서 시작된 신인왕 경쟁이 국가대표팀에서는 어떻게 진행될지, 앞으로가 상당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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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컵대회 포함 8연패 중이었던 강원FC. 울산과의 홈경기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죠. 울산에게도 진다면 9연패인데, 그렇다면 올 시즌 최다연패라는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울산은 명가 중 하나였고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한 팀 중 하나였지만 그래도 강원FC는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갖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외국인 공격수 없이 올 봄 울산과 치렀던 강원FC는 후반 교체 투입된 장신 공격수 김신욱에게 1골을 내주며 아깝게 패한바 있었거든요. 더구나 이제는 마케도니아와 중국 국가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바제와 리춘유도 영입한 만큼, 또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기존 선수들과 호흡도 어느 정도 잘 맞춰진만큼 자신감을 갖고 임했습니다.

전반 13분 이적생 고창현이 선제골을 넣었고, 대전에 있을 적부터 루니처럼 거칠게 달려드는 이 공격수를 강원의 수비진들은 막기가 힘든 것일까, 이 선수에게만 벌써 몇번 째 골을 허용하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선제골을 허용한 것이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강원 선수들의 집중력은 더 강해졌고 강원의 공격은 계속됐습니다. 결국 후반 9분 왼쪽 풀백 강선규가 길게 올려준 공을 바제가 받고 그대로 골. 강원 이적 후 첫번째 골을 기록한 바제는 그대로 A보드를 넘고 서포터스 나르샤 쪽으로 달려가 기쁨을 함께 했습니다. 그간 강원 선수들은 크리스천이 많아 기도하기에 바빴는데 팬들과 함께 하는 세레모니를 오랜만에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후반 1분. 김봉겸이 미드필드 오른쪽 진영에서 올려준 공을 김영후가 골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받고 오른발 슈팅. 역전골이 터졌습니다. 올 시즌 김영후의 8번째 골. 마침 이날은 유병수도 골을 넣었는데요, 재밌는 건 김영후가 골을 넣을 때마다 유병수도, 또 유병수가 골을 넣을 때마다 김영후도 골을 넣는다는 사실입니다. 저희끼린 전생이 둘이 아주 많이 사랑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연인이 아니었을까, 이야기하곤 한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앞서니 뒷서거니 하며 원투펀치 할 이유가 없을텐데, 지난해 신인왕 경쟁 이후로 또 다시 득점 경쟁에 둔 두 사람. 이로써 김영후는 올 시즌 득점 4위로 껑충 올라갔고 유병수에 이어 국내 공격수 중 득점 2위에 오른 기쁨을 맛봤습니다.

이렇게 2-1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다만 후반 39분 노병준의 도움으로 오르티고사아가 동점골을 터뜨리며 경기는 2-2로 마감했습니다. 후반 골키퍼 김영광이 위치선정 미스로 골문을 비우고 앞으로 달려나왔는데 이때 바제가 골을 터뜨릴 수 있었지만 기회를 날려보냈습니다. 그게 두고 두고 아쉽더군요. 그래서 동점으로 끝났지만 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우울했지만 그래도 8연패의 사슬을 끊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팀 순위는 여전히 15위, 꼴찌를 달리고 있지만 경기력이 완벽히 살아남았기 때문에 남은 경기 동안 충분히 순위를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에 동점으로 끝난 울산전에 아쉽다는 표현을 더이상은 하지 않겠습니다.


에스코트 어린이들과의 기념촬영.

수원에서 이적 후 환벽하게 주전자리를 꿰찬 이상돈

슈팅 중인 바제.

노장 이을용의 투혼.

오른쪽 날개로 뛰며 활발한 공격력을 보여준 이창훈.

바제를 마크하기 위해 울산 수비진이 꽤나 힘들어했죠.

이렇게 바지까지 당기면서... 더 내려갔으면 큰일났을 듯.

강원 서포터스 나르샤.

김영후의 역전골이 터지고 나서.

을용 형님과도 뜨거운 포옹을.

바제가 너무 격하게 껴안아서 영후가 정신을 못차렸답니다. ㅋ

아이쿠야. 좋을씨구.

바제의 첫번째 골은 이렇게 들어갔죠.

A보드를 넘고.

관중에게도 기쁨을 표하고.

강원에서 터진 나의 첫번째 골!

브라질(헤나토) 크로아티아(라피치) 마케도니아(바제) 중국(리춘유)의 국기와 대한민국 국기. 다국적 선수들의 모임이 된 강원F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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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세상에 바뀌었다는 건 날이 가고 해가 갈 때마다 느낍니다. 트윗 상에서 내가 작성한 단문메시지가 나를 팔로우한 사람들의 핸드폰으로 전달되는 것도 신기하고 핸드폰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영상통화를 하는 것도, 제게는 참 신기한 세상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막연히 과학글짓기 대회 때, 수상을 목적으로 상상하여 적었던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 살게 됐으니까요.

몇년 전 커밍아웃을 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던 홍석천을 보며 왜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으며 눈물을 흘려야했을까, 했는데 이제는 다시 공중파에서 볼 수 있게 됐고 또 동성애가 주말 드라마 소재로도 나오니, 조금은 세상의 인식도 과학 못지 않게 바뀌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축구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나 세상 모든 스포츠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나 축구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지는 -축구를 하다 답답해도 그 공을 들고 뛰며 럭비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럭비에도 관심이 많아요. 6년 전 럭비월드컵을 취재하러 갔을 때 영국 럭비대표팀 선수에게 이번 대회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의 플레이를 보고 반했다며 흥분하자 그 선수는 한쪽 입술을 올리며, 그러니까 썩소를 지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호주랑 뉴질랜드? 걔네 절반 이상이 게이야. 그래서 난 그쪽 나라 팀이랑 경기하는 게 정말 싫어. 럭비는 종목 특성 상 뒤엉키며 싸워야하는데, 게이랑 뒹굴면서 뛰어야하다니! 너무 더러운 거 아니야?"

단순히 라이벌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되는 억지논리를 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2008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동성애자 선수에 대한 뉴스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죠. 당시 로이터통신이 동성애자 웹사이트 조사를 통해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1만 여명의 선수 중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선수는 15명이라고 발표했지요. 그중에 9명이 여성이었고 남성은 단 1명, 호주 대표팀의 다이빙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실제 동성애자 선수는 1천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맺음 때문이었죠. 그 기사를 읽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포츠 선수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기란, 쉽지 않겠죠. 동성끼리 경쟁해야하는데, 동성을 사랑하는 선수라면. 개인 스포츠가 아닌 단체 스포츠라면, 함께 뛰는 선수들이 과연 그 선수를 팀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선수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앞서 언급한 호주 대표팀의 다이빙 선수는 매튜 미참 선수입니다. 그는 당시 베이징올림픽에서 다이빙 남자 10m 플랫폼에서 호주에 금메달을 안겨주었죠.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며 했던 말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호주의 다이빙 선수로 알려지길 원한다. 내 삶에서 동성애와 다이빙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라고요. 동성애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성적 취향이고 이것과 스포츠선수로서 임하는 태도는 별개의 문제라고 세간의 관심에 딱 잘라 말했죠.

최근에 다시 한번 스포츠와 동성애가 이슈에 올랐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불의의 부상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한 발락의 에이전트가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 독일 대표팀을 'bunch of gays'라고 말했거든요. 해석하자면 게이소굴 쯤 되는데, 이 같은 발언을 한 미하엘 베커는 1999년부터 발락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으니, 독일에서는 나름 슈퍼 에이전트로 분류되는 사람이죠.

미하엘 베커는 이번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독일 대표팀 중 일부 선수들이 동성애자라는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전 독일대표팀 선수는 이 같은 사실을 밝히려고 했는데 문제의 그 선수는 바이(양성애자)였다고 하네요. 뭐, 사실 중년도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며 훈남 감독 대열에 오른 요아힘 뢰브 감독도 월드컵 기간 중 동성애 소문이 돌았는데요 -남다른 패션 센스도 그의 게이설을 뒷받침한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 그 때문인지 부인과 찍은 사진을 몇 장 공개하기도 했죠. 사진 속 뢰브 감독 와이프는 약간 후덕한 중년의 독일 아줌마 포스를 마구 뿜아내고 있어, 저도 그 사진을 보며 이 아주머니는 전생에 도이칠란드를 구했나, 하는 생각도 했더랬죠.
사랑에 있어 신분과 국경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평소 생각하며 살아온터라 성별 역시 전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 역시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성애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동성애를 버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하지만 난 동성애자인걸, 이라고 인정하기까지 쉽진 않았겠죠. 그래서 저는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더럽다며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만, 종교적 관점에서 생각하더라도 그 역시 조물주가 만든 소중한 생명체이고, 존중받을 권리는 당연히 있습니다. 돌은, 그렇게 쉽게 던지라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가끔 국내 프로축구 선수는 모두가 이성애자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있어도 부정하고 말 못하는 게 아닐까,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감추고 이성애자의 가면을 쓴 채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아주 가끔 품어본 적도 있고요.

몇년 전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선수였고, 그래서 인터뷰를 꽤 여러번 했기에 안면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조금은 편하게 축구가 아닌 다른 이야기도 하는 사이였거든요. 기자 대 선수가 아니라 다른 국적을 지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요. 그때 그 선수가 해준 이야기가 자신의 팀에 있던 코치가 양성애자였다는 겁니다.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양성애자였기에 동성에 대해 남다른 사랑의 감정도 꽤나 깊게 느꼈나봐요. 그걸 선수들도 조금씩 눈치챘는데 어느 날 락커룸에 앉았는데, 새로 들어온 이적선수 옆에 꼭 붙어 앉자마자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무릎과 허벅지를 만졌다지 뭐에요. 축구는 몸으로 부딪히며 하는 스포츠일 뿐 아니라 심장박동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흥분도, 열기도 대단한 스포츠고 또 무엇보다 팀 스포츠다보니 선수들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역시 남다르죠. 동료 선수가 골을 터뜨릴 때마다 얼싸안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곤 하는데, 때론 이게 남다른 애정표현처럼 보여 관련 사진들을 모아서 커플로 엮어 글을 쓰는 블로거들도 있죠.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는 기청용(기성용-이청용의 합성어, 브란젤리나 같은 합성어로 생각하면 되겠죠) 커플이 가장 유명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

어쨌거나, 그게 좀 파급이 셌나봅니다. 코치의 동성애적 기질을 선수들도 느꼈는데, 새로운 선수가 오자마자 직접적인 터치가 오가는 모습을 선수들이 목격했으니, 팀이 어수선할 수밖에요. 그래서 결국엔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고 하네요. 외국에선 동성애가 국내보다 관대한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스포츠계에서는 더 보수적인 것 같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선수들은 K-리그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잔다르크가 아닌 이상 성정체성 증명보다는 스포츠인으로서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선수들이 대부분, 아니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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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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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에서 멋진 프리킥 골로 우리의 새벽을 뜨겁게 만들었던 박주영 선수가 프랑스로 출국했습니다. 8월부터 다시 시작되는 프랑스리그를 준비하기 위해 떠났는데요,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 생각했지만 현장에서 취소됐다는 소식만 전해졌습니다.

당초에는 출국 전 스탠딩인터뷰가 준비돼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건 최근 그를 둘러싼 뜨거운 감자, 다름 아닌 ‘결혼설’ 때문이었죠. 프리미어리그 빅클럽으로의 이적설에 이은 결혼설이라.

인터뷰 없이 굳은 표정으로 출국한 박주영 선수.

축구선수 박주영이 아닌 인간 박주영으로서, 그러니까 축구가 아닌 것들로 관심을 받는다든 사실에, 박주영 선수는 늘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늘 축구 이외의 것들에도 관심을 갖곤 하죠. 대중의 관심이 그렇다는 이유 아래서 말이죠. 그래서 그는 늘 미디어 앞에서 말을 아낍니다.

이번엔 참 갑작스럽게 결혼설이 터졌습니다. 서울 강남의 모 웨딩 전문 스튜디오에서 여자친구와 웨딩촬영을 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부터였죠. 마침 그때 즈음 치렁치렁,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한, 이마를 덮은 덥수룩한 머리가 예쁘게 다듬어졌고 살짝 펌도 들어갔더라고요. 기자들은 웨딩촬영용 머리라며 수군수군 댔죠.

결혼임박 기사가 나온 이후로 줄줄이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날 박주영의 에이전트는 핸드폰을 끄고 잠적했다는 사실이죠. 그런데도 출처도 없는, 또 박주영의 측근 혹은 지인이라는 내용으로 기사들이 쏟아졌는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측근 중 기자와 통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박주영 선수와 그의 여자친구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요. 박주영의 여자친구는 “나 결혼해?? 양가 엄마 아빠 나 쭈가 날짜도 모르고 장소도 모르는데.. 그들에 의하면 우리가 결혼하는구나”라는 글을 올려 황당한 심기를 드러냈고요.

사실 박주영 선수는 그날 정몽준 회장이 초청한 월드컵 16강 기념 만찬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었는데, 기자들과의 만남이 불편했던지 갑작스레 불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출국을 앞두고도 스탠딩인터뷰를 취소했고요.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이게 왜 기자들의 취재거리가 되야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도, 또 그의 대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에이전트도 노코멘트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전 이번 박주영 선수의 결혼설을 보면서 일단 제대로 된 취재 없이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받아쓰고 돌려쓰는 기자들의 모습에 적잖게 실망했습니다. 일단 쓰고 보자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워낙에 팬들의 관심 역시 컸으니까요.

일련의 보도들에 지친 박주영 선수의 여자친구가 미니홈피를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 몇몇 사람들은 공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경솔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카더라 통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혼설과 관련해 마구잡이로 써내려간 기사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쨌거나 이렇게 사건은 이렇게 터져버렸고, 제가 만약 박주영 선수의 에이전트라면 핸드폰을 꺼버리는 대신 공식입장을 발표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세간의 관심은 박주영 선수의 결혼으로 향했고, 무작위로 써내려가는 기사를 막을 순 없을테니, 오히려 공식입장을 프레스에 전달해 정확한 이야기가 기사로 써내려가게 하는 거죠.

결혼을 한다면 지금의 여자친구와 하겠지만, 당장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등의 내용으로 말이죠. 추측성 기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박주영 선수 결혼설과 관련해 모두의 대처방식이 상당히 아쉬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개인사가 아닌 그의 축구사, 기왕이면 화려한 골들로 빛나는 축구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싶군요. 우리들의 축구천재, 박주영 선수의 새 시즌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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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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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지인들에게 그래도 월드컵 우승팀을 알겠지, 라는 생각에 이번 월드컵 우승팀을 물어보니 역시나, 정답을 빗겨난 대답들뿐이었습니다. 유로2008 당시 앙리 들로네컵에 이어 이번에는 월드컵까지 거푸 들어 올린 무적함대 스페인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먼나라 이야기였죠.

하나 우승팀 스페인은 몰라도 파울은 알더군요. 반칙의 영어 표현 Foul이 아니라 점쟁이 문어 Paul의 이야기입니다. 축구에 관심 없던 지인들도 파울이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경기 승패를 모두 맞힌 게 참 신통하다며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군요.

독일에서 살고 있는 2살 반의 문어 파울은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의 7경기와 스페인-네덜란드의 결승전까지 맞추며, 무려 8경기의 승리팀을 정확하게 예측한 덕분에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큰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사실 승패를 고르는 건 2분의 1의 확률이지만 8경기를 연속으로 적중시키는 확률은 256분의 1로 확 떨어집니다. 프로토의 달인이라도 8경기 연속은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문어 파울은 참으로 신통하게도 해냈습니다.

무엇보다 파울이 더욱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건 금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점친 펠레의 예언을 이겨냈다는 것이었죠. 알다시피 펠레는 늘 16강 진출팀을 시작으로 우승팀까지 매번 월드컵에서 열심히 지목하고 ‘설’을 풀어내지만 ‘펠레의 저주’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가 지목한 팀은 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경기에 패하며 서둘러 고국행 비행기를 타야했거든요.

그런데 파울도 스페인을 우승국으로 지목했고 펠레도 지목했습니다. 결국 파울의 예지력이 펠레의 저주를 이겨낸 셈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더 열광했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며,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편으론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선수가 스타가 아닌 동물이 스타가 된 월드컵이라뇨.

별들의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별보다 빛났던 스타의 쓸쓸한 뒷모습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신예의 비상에 박수쳤습니다.

그러나 유독 이번 월드컵만은 조용하네요. 남아공월드컵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거 예상했던 메시와 호날두는 침묵했으며 카카 역시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수아레즈의 신의 손 사건은 마라도나만 못했죠. 비야와 스네이더는 유로2008만 못했고요 외질과 뮐러, 수아레즈 역시 스타성에서는 2%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앙리와 오언이 외려 더 강렬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최다골 2위에 오른 클로제도 호나우도의 아성을 이겨내진 못했고요 근래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월드컵 스타 지단과 칸나바로만큼 빛을 발한 선수 또한 없었고요.

어쩜 빅클럽들간의 대항전, 챔피언스리그의 바쁜 일정 속에서 지칠 데로 지친 스타들에게 이번 월드컵은 고난의 행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쉴 틈 없이 바로 월드컵이 이어졌으니 팬들의 기대만큼 기량을 보여주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 언젠가 마라도나가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 중에 했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축구를 했다, 라고요.

오늘날의 축구판은 빅클럽들의 선수영입 경쟁으로 뜨겁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계적인 선수들의 몸값은 자신들이 가진 기량을 넘어서 이미 천문학적으로 올라만 가고 있고요. 빅클럽들은 그 싸움에 이기기 위해 더 크게 옵션을 걸고 베팅을 합니다. 뷰티풀게임에서 머니게임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축구란... 본질은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는 것만 같아 서글퍼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네요.

바라옵건대, 4년 뒤에는 진짜 축구를 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월드컵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마라도나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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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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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요르단과의 A매치가 끝나고 믹스트존에서 만난 기성용 선수에게 넌지시 물어봤죠. 그날 그의 단짝 이청용 선수가 데뷔골을 기록했는데 부럽지 않냐고요. 멋적을 때면 늘 고개를 살짝 위로 올린 채 수줍게 웃던 그는, 역시나 그 질문에 대답할 때도 천장을 바라보며 웃더군요. "너무 부럽죠"라면서 말이죠.

데뷔전도, 데뷔골도 늘 청용이가 빠르다며 아쉬워했던 기성용 선수. 그런 그가 북한전에서 홍영조의 PK골로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23분 김두현의 패스를 그대로 오른발 발리슛으로 성공시키며 한국에 동점골을 안겼습니다. 본인에겐 A매치 데뷔골이었죠. 그것도 2경기 만에 얻은 성과니 실로 값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요르단전에 이어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던 북한전까지. 허정무 감독은 기성용 선수에게 '공격적'으로 뛸 것을 주문하는 듯 했습니다. 특히 요르단전 때는 후반 말미 기성용 선수가 뛰던 공간은 거의 스트라이커와 다름없는 위치에 있었죠. 결국은 그의 공격적 움직임이, 찬스를 놓치지 않던 집중력이 벼랑 끝에 있던 한국대표팀을 구해냈군요.

북한전이 끝난 후 지인들에게서 꽤 연락이 왔습니다. 동점골을 성공시킨 저 샤방한 선수는 누구냐면서요. 경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성용 선수는 축구선수(?) 답지 않게 고운 외모를 자랑합니다. 피부도 얼마나 좋은지 볼 때마다 저는 부럽습니다. 햇볕 아래서 뛰는 선수가 어떻게 여자인 나보다 피부가 더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죠.


그랬던 기성용 선수가 이번 월드컵에서는 도움을 2개나 기록하는 등 날카로운 킥력을 선보이며  대한민국의 원정 첫 16강 진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청용 선수 못지 않게 화제의 중심에 오른 기성용 선수. 모델보다 더 모델 같은 외모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엄친아로 등극한 그와 진행했던 화보사진을 살짝 공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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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 촬영은 이청용 선수와 함께 했는데, 촬영 내내 두 선수가 티격대격하더군요. 배고플까봐 준비한 김밥을 내왔을 때 '빵'만 좋아하는 이청용 선수가 극구 사양하자 성의를 생각하면 먹어야되는게 아니냐며 화를 버럭내던 기성용 선수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답니다. ㅋ

늘 예의바르고, 또 수줍음도 많지만, 할 말은 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는 기성용 선수. 그 모습을 지금처럼, 또 언제나처럼 간직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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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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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3일. 올림픽대표팀이 일본과의 친선경기를 하루 앞뒀던 그날, 훈련장에서 정성룡 선수를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정성룡은 포항에 적을 두고 있었고, 플레이오프에서 수원에게 아쉽게 패한 뒤였죠.

“괜찮아요. 언제까지 그 게임만 생각할 수 없잖아요. 수원에게 진 건 마음 아프지만 이제 다음을 준비해야죠. 물론 아쉬운 마음은 조금 있지만요. 아직까지 한 번도 우승이란 걸 해보지 못해서 욕심은 있었어요. 작년 2군리그에서도 4강에서 떨어졌거든요. 그렇지만 올해 처음 1군에서 뛴 거잖아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에요.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제 막 시작했다, 며 예의 변함없던, 그 느릿느릿한 말투로 담담히 속 이야기를 털어놨던 정성룡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포항에 왔을 때만해도 2군에서 게임 뛰는 것조차 쉽지 않았어요. (김)병지 형이랑 (조)준호 형도 있었고, 저까지 합해 골키퍼가 5명이나 있었거든요. 전 그저 형들 게임하는 거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건요, 그가 결국엔 꼭 4년 전 제게 말했던 그 꿈을 이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제가 원래는 스위퍼였는데 중2 때부터 골키퍼로 뛰었거든요. 그때가 마침 프랑스월드컵 기간이었는데, 네덜란드전에서 보여줬던 병지 형 모습에 반했어요. 우리나라가 5-0으로 졌지만 형의 움직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때부터 좋아하게 됐어요. 그 후 제주도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제주도에서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가 열렸어요. 그때 볼보이한다고 골키퍼 뒤에 있었는데 그 골키퍼가 병지 형이었어요. 평소 존경하던 선수가 바로 제 옆에서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다고 다짐했죠. 열심히 해서 꼭 형처럼 국가대표 골키퍼가 되겠다고 제 자신과 약속했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형이랑 같은 팀에서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그게 더 운동에만 전념하게 된 계기가 됐고요.”

그날 정성룡이 해줬던 이야기 중에는 가슴 아픈 가족사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체구는 크지만 눈이 참 슬퍼 보인다고, 눈물이 많은 사람 같다고 말이죠.

“눈물이요? 원래는 많았어요. 음… 많았는데…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그날 다 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눈물이 안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서귀포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요. 저 혼자 제주도로 갔어요. 부모님은 분당에 계셨고요. 그런데 제주도 간지 얼마 안돼서, 그러니까 막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께서 저희 집에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따라 갔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하시더니 저를 장례식장으로 데려가시더라고요.”

“음… 원래 몸이 안 좋으셨는데… 갑작스럽게… 그러니까 참으로 갑작스럽게 그렇게 떠나셨어요. 그날 병원 뒷길에서 엉엉 울었어요. 한참 울다 이제 내가 가장이니까 강해져야겠다. 성공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프로 갈 때만해도 계약금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계약금 받은 걸로 어머니께 집도 사드리고, 빚도 갚았어요. 음… 그렇지만 그걸로 효도했다 생각하진 않아요.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죄송한 마음뿐이거든요. 늘 제 뒷바라지만 하셨어요. 그런데도 전 항상 제 생각만 했고요. 용돈 달라고 떼도 많이 쓰고.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는 참 강한 분이세요.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렇겠지만요.”

어떻게 보면 청소년대표팀을 거쳐 올림픽대표팀, 그리고 이제는 국가대표팀까지. 이 정도만 듣다보면 엘리트코스만 밟은 신의 아들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004년과 2005년 박주영의 유명세 때문에 유독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청소년대표팀에 몸을 담고 있었을 때는 차기석의 그늘에 가린 2인자였습니다. 프로 데뷔전도 입단 3년 만에 치러야 했으니 꽤 늦은 셈이었죠.

“항상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기회는 오니까. 그런데 자주 오지 않는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매일 준비하며 기다렸어요. 기분이요? 그냥 덤덤했어요. 아직 더 많이 경험을 쌓아야 하잖아요. 좋아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K-리그 데뷔전을 마친 소감이었는데요, 이번에 월드컵을 치르며 느낀 소감과 참 비슷하지요? 이때 정성룡은 A매치 데뷔전도 어서 빨리 치르고 싶다며 간절한 소망도 드러냈었죠.

“저도 A매치 뛰고 싶죠. 진짜. 뛰어보고는 싶지만 무슨 일이든 쉬운 건 없잖아요. 조금 더 노력하고 기다려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에 대표팀에 있으면서 쟁쟁한 선배들 밑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언젠가는 제게도 기회가 오겠죠. 어떻게 보면 아주 큰 경쟁의 장이잖아요. 그 경쟁 속에서 좋은 날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어야죠.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또 과감하게.”

지난 십년간 이운재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수문장 자리. 이번 월드컵에서 그는 그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결과에 상관없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그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두었겠지요. 어쩌면 은퇴하는 그날까지 그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연습에는 장사없다던 미니홈피 속다짐처럼 땀 흘리며 준비했겠죠.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정성룡 활약 영상>

“나이지리아전이 끝나고 16강을 확정짓던 순간 아버지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4년 전 꿈을 이룬 지금, 이제는 4년 후의 더 큰 꿈을 떠올립니다.

“열심히 했어요. 경기 내용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아쉽긴 하지만 아쉽다고 그 경기만 생각할 순 없잖아요. 이제 또 다음을 준비해야하죠.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다시 인사드릴게요.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17살의 봄, 엄마를 지켜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아직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소년은 그렇게 껍질을 벗고 채 자라지 않은 생살을 드러내며 세상과 싸웠고요. 그래서 꿈을 이룬 지금 이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럽게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지낸 세월의 굴곡만큼, 앞으로는 그의 말처럼 웃는 일들만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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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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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선수가 2006 독일월드컵을 마치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팀의 결과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정말 축구를 사랑한다면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그들이 걸어온 여정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볼 수도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박지성은 바로 그런 점에서 당시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거 같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대한민국은 사상 처음으로 원정에서 16강 진출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조금 더 맛보아도 좋으련만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의 열기가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정상에서 박수칠 때 떠나자가 이유였지만, 퇴임 기자회견 중 나온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했습니다.

“잘못해서 비판받는 건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인식공격성 댓글이 지나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힘들다. 조금은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허정무 감독은 인터넷 댓글을 안 본지 10년이 넘었다고 덧붙였죠. 10년 전 허정무 감독의 부친이 돌아가신 그때, 관련 기사에 달린 고인을 향한 악의적인 댓글을 읽고 허 감독은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전혀 댓글을 보지 않는다고 하니 당시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그랬기에 허 감독은 가족들이 더 이상 축구인인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는 일도, 아파하는 일도, 또 힘들어하는 일도 없기를 바랬겠죠. 영광의 순간을 더 만끽하고 싶은 마음도 컸겠지만 가족의 평화 역시 바라는 마음 역시 컸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퇴임을 결정하는데 또 다른 영향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허정무 감독의 부인 최미나씨도 최근 “가족들이 그동안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친분이 두터웠던 기자에게 속내를 비추기도 했으니까요.

아마도, 대다수 축구인들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겁니다. 몇 년 전 터진 기성용 선수의 미니홈피 사건이 문득 떠오릅니다. 당시 기성용 선수는 올림픽대표팀이 연일 졸전을 펼치자 급기야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악플을 다는 네티즌들을 향해 “답답하면 너희들이 축구하던지”라는 글을 메인화면에 쓴 적이 있었죠.

당시 언론과 팬들은 기성용 선수의 이러한 행동이 경솔했다며 몰아세웠습니다. 그때 전 기성용 선수가 K-리거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무명이었을 때 인터뷰를 한 덕분에 나름 안면이 있었습니다. 워낙에 애어른 같던 선수였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왜 그랬냐며 이것 또한 곧 지나갈 거니까 힘내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워낙에 안팎으로 부침이 심해 답장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침 답장이 왔더군요. 하고 싶은 말을 문자에 다 담기에는 부족했나봅니다. 그가 보낸 멀티메일 속 이야기를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축구를 못한다면, 저 하나만 몰아세우고 욕하고 비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왜 그들은 저희 아버지, 어머니를 거론하며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족들이 악플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들었어요. 제가 경기에 나서 기대에 못 미친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못했다고 제 가족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한 네티즌들도 어느 정도는 잘못하지 않은가요? 축구를 못해서 제가 마음에 안 든다면 저한테만 욕했으면 좋겠어요. 축구를 하면서 못해서 욕먹는 건 감당할 수 있어도 제 가족들이 저로 인해 상처받는 모습은 볼 수가 없어요.”

악플과의 싸움. 언제부턴가 축구선수들 역시 이름이 알려지고, 누구나 알만한 공인이 되면 언제고는 한번쯤은 치러야할 통과의례고 연례행사인 듯합니다. 인터넷의 시대는 그렇게 축구선수들에게 피하고 싶은 ‘태클’을 안겨주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 한일전에서 모 선수가 자살골을 넣었던 적이 있죠. 그때 그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가장 먼저 했던 게 뭔지 아시나요? 버스에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호텔 방까지 달려가 미니홈피 방명록을 닫았던 일이라고, 누군가가 웃으면서 해줬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그 선수의 나이는 겨우 스물셋. 어린 나이였지만, 감당하기 힘든 말들이 쏟아질 것을 알았던 거죠. 어떤 이들에게는 코믹한 상황으로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그 선수에게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 악담들을, 어린 마음에는 감당하기 힘들었기에 그는 스스로 방명록을 닫는 것을 택한 거죠.

차범근 감독도 얼마 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마이크로블로그에서 한 네티즌이 무릎팍 도사에는 출연할 계획이 없냐고 물었죠. 최근 팬들의 질문에 진솔하고 재치있는 답변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던 만큼, 무릎팍 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간 차범근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겠죠.

“우리 식구들이 남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맘 놓고 하기에는 아직 가슴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아... 아직도 우리식구들은 98년을 기억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화제에 올리질 않거던…

그때 배운 게 무고한 일로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지. 지난번 우리 범석이 일을 지켜보면서도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거던… 이런 일에 휩싸이면 우선 본인이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팀이 망가져버려.

98년 내가 할 때도, 최용수가 불교라서 안뛰게하고 기독교인 김도훈이가 대신 뛰어서 졌다고 우기는데 돌아버리겠더라고…… 사실 김도훈은 염주를 손목에 차고 다니는 불교신자고, 최용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는데 말이야… 황선홍 선수도 마지막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난감해 죽겠는데, 내가 황선홍을 시기해서 안 뛰게 한다는 거야.

문제는 이럴 때 기자들이 알면서도 입을 닫는다는 거야.

그때 한국축구가 좀 될려면 바로 이럴 때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구나 생각하기도 했어… 그 후 나한테 늘 미안해하던 최용수는 2002년 월드컵팀 고참으로서 팀 막내 두리한테 아주 잘해줘서 고마웠지.

팬들은 그럴 수 있어. 그러나 대표팀에 해가되는 오해나 억지는 적극 풀어줘야 팀이 건강하게 꾸려지는 거야. 나나 우리가족은 그때 받은 상처 때문에 여성지나 토크쇼에 단 한 번도 출연을 안 하고 있어

두리가 반박자 늦어서 골 찬스를 줬을 때 나는 숨이 멎는 거 같더라고. 온몸의 피가 쏵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물론 두리 , 이럴 때는 차두리 선수라고 불러야겠다. 차두리 선수 개인의 문제도 아버지 입장에서 걱정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리마저 주저앉으면 오른쪽이 없다는 거야.

우리 범석이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생각해 봤어? 어린 나이에 그런 중압감을 이겨내기가 쉽겠냐고!!!! 통화할 때마다 범석이 좀 잘 다독거리고 위로하라고 이르기는 하는데 핵폭탄을 맞은 상처가 쉽게 회복되겠냐고!!! 두리가 실수 이후에 그냥 주저앉아 버리지 않고 경기에 집중을 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은 했지

우리선수들도 다 여러분들의 동생이나 친구 같은 나이야. 아버지나 선생님한테 야단맞아도 슬프고 화나고 그러잖아. 그런데 융단처럼 쏟아지는 비난을 그 어리고 작은 가슴으로 받는다고 생각해봐. 나는 마음이 너무 아퍼.

두리더러 한번 안아주라고 하면 분명 지 힘자랑 하느라 헤드락을 걸어버릴테니 범석이가 더 힘들 거고....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미안해하자고. 오케이?”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의 요지는 허정무 감독의 사퇴 뒤에 악플이 직접적인 원인이었기에 반성하자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축구선수들이,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근거 없는 비난과 악플 때문에 힘든지를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최선을 다하더라도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넘어질 때도 있고요. 2등도 아닌 정상에 멀리 떨어진 채 서 있는 자신을 볼 때도 있습니다. 자신은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지요.

다시 시계를 돌려봅시다. 학창시절로요.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던데, 중간고사 성적 하나만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고 가치가 매겨지고 1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쓸 모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그런 경험을 다들 한번쯤은 해봤을 거라고 봅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우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단지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부적격자 취급을 받았고 부모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경우와도 만나야만 했습니다. 특히나, 너희 부모님이 너를 그렇게 가르치시던, 너희 어머니는 이런 너를 낳고 미역국을 드셨을까? 식의 발언을 들을 때면 정체감이 상실되다 못해 모멸감까지 느꼈을 것입니다.

많은 축구인들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10대 말에서부터 20대 중후반까지, 사회 초년생에 해당되는 어린 나이에 그들은 참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였으니까요. 단 한 번의 패스미스로 골을 헌납했으니까요. 무수히 많은 찬스를 허공에 날려보냈으니까요. 바보같이 자책골을 기록했으니까요. 쓸데없는 반칙으로 상대팀의 선제골을 도왔으니까요.

팀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크고 깊은 만큼, 선수들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팬들의 실망감 역시 큽니다. 그래서 더 비판하게 되고 쓴소리를 하게 됩니다. 압니다. 저 역시 그런 순간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남편이고 혹은 남자친구입니다. 그 소중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욕지거리를 듣게 되고 비난을 받는다면, 그들의 가족은 어떤 마음으로 그 선수를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카테고리에 묶여 함께 비난을 받을 때 그 선수의 마음은 또 어떨까요. 그 자괴감과, 상실감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진정 축구를 사랑한다면 경기력으로만 판단하고 애정 어린 비판을 할 수 있는 우리이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축구를 축구로만 생각하는 우리 모습을 그려봅니다. 다음 월드컵에서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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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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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진짜로 34살!!”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이 끝난 후 이영표 선수의 나이를 확인 한 후 저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축구의 신이 있다면, 저 선수가 정말 34살이 맞습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죠.

그러나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실린 프로필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1977년생. 우리나이로 34살. 초롱이 이영표 선수도 어느새 노장의 대열에 들어섰더군요.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이영표는 이번 월드컵에서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뒤적였던 거죠. 34살이 24살처럼 뛸 수는 없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현장에서 직접 본 아르헨티나전. 현란한 개인기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이것이 최순호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선수들의 플레이구나, 라며 정신없이 지켜보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가 너무 대단해 저는 우리가 대패하고 있다는 생각도 잠시 잊었습니다- 또 한 선수가 저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영표 선수였습니다.

아무도 메시를 막지 못하고 있을 때, 그때마다 이영표 선수는 로이스 기자를 구하던 슈퍼맨처럼 쨘, 하고 나타나 메시를 봉쇄했습니다. 이영표의 밀착마크에 막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패스를 할 수밖에 없던 메시의 모습을 저는 꽤 여러 번 봤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이영표 활약상>


허정무 감독 역시 아르헨티나전를 마치고 메시 봉쇄법의 열쇠를 이영표가 갖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물론 전담 마크맨은 아니었지만 메시가 측면에서 문전을 향해 적극적으로 드리블할 때마다 이영표의 수비가담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메시에게 공간도, 슈팅도 내주지 않던 이영표의 맨마킹은 칭찬 받을만 했습니다.

이영표 역시 “(내가 마크할 때면) 메시가 슈팅을 많이 하지 못했다. (나는) 쉽게 공간을 주지 않았고 돌파를 허용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찬스 역시 많이 가지지 못했다”며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스러운 평을 내렸죠.

오버래핑 후 복귀 시간도 20대 전성기 시절 못지않게 빨랐으며 크로스 역시 꽤 정확했습니다. 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전에서 이정수 선수가 터뜨린 팀 첫 번째 골 역시 시작은 이영표 선수였다는 거, 이제는 다들 아시죠? 기성용 선수의 정확한 프리킥과 이정수 선수의 위치선정도 훌륭했지만 이영표 선수가 파울을 얻어내지 못했다면 이 모든 것들은 꿈속의 장면으로만 끝날 수도 있었죠. 그것을 현실로 나타날 수 있도록 첫 스케치를 그린 사람이 바로 이영표 선수입니다.

나이지리아와 2-2 동점으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같은 시간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2-0으로 이긴 덕분에 조 2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 이영표 선수는 울었습니다.

월드컵 4강에 오르던 그 순간에도 초롱초롱한 눈에는 그저 함박웃음만 가득했는데, 늘 웃기만 하던 이영표 선수가 울었습니다.

원정에서 치른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16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맛봤기에, 그 감동이 커서 그랬던 것인가. 나름의 추측을 했습니다. 후에 저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됐죠.

“축구를 하는 동안 2가지 기적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2002년 월드컵 당시 이룬 4강 진출이었고 다른 하나가 원정 16강 진출이었습니다. 오늘 그 소원을 다 이뤘습니다. 한국 축구가 저에게 요구한 사명을 오늘 경기를 통해 완수했다는 기쁨에 눈물이 났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이룬 2002 황금세대 중 하나로서 책임감을 느낀 듯 했습니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그는 16강 진출을 위해 뛰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받은 부름이었고 한국 축구가 그에게 맡긴 임무였습니다.

처음 축구화를 신었던 그날부터 꿈꿨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그 중심에 동거동락했던 23명의 선수들이 있었다고 말했죠.

나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감동은 바로 다음 멘트에서 이어졌죠.

“오늘은 모든 걸 잊고, 마음껏 즐기며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오늘만큼은 우리 선수 중 어느 누구도 비판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비판한다면 단호하게 오늘만큼은 그 비판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페널티에어리어에서 불필요한 반칙으로 PK골을 내준 김남일 선수를 두둔하여 한 말 같았습니다. 누군들 김남일 선수들 두둔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경기를 하다보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의욕이 불러낸 안타까운 실수라고 선수들은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나 십자가를 메고 막아줄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대신 김남일 선수를 위해 방패막이 돼 주는 말을 할 수 있다면, 박지성 선수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다들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가 많아도 첫 번째 월드컵이었던 선수들이 많았으니 김남일 선수를 두둔하니까 참으로 애매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박주영, 염기훈 선수가 그를 두둔하기엔 이미 지쳤기에 -지난 예선 2경기 동안 이미 축구팬들의 비난에 심히 시달린 선수들이었으니까요- 그들은 라커룸에서 조용히 “형,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 가운데 오늘만큼은 비판을 거부하겠다고 당당히 말했던 이영표 선수의 마음이 저는 참으로 멋졌고 감동이었습니다.

팀 내 캡틴은 박지성 선수이지만 뒤에서 그 캡틴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나무 같은 사람. 그가 바로 이영표 선수였습니다.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우리는 16강 진출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16강 진출은 대표팀 선수들이 함께 이룬 기적이지만,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그 길이 조금 더 험난했을지 모릅니다.

대표팀의 포백을 책임졌던 이정수, 조용형, 차두리, 오범석 선수 모두 수비수로 나선 첫 번째 월드컵입니다. 만약 이영표 선수가 없었다면 조직력과 호흡으로 승부를 걸어야하는 우리 대표팀의 플랫 4는 금이 가다 못해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3번의 월드컵과 네덜란드를 거쳐 잉글랜드, 독일 등 유럽리그를 거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그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번 월드컵에서 쏟아냈고 토해냈고 전수했습니다.

만약 저에게 대표팀 선수들 중 MVP를 주라고 한다면 저는 이영표 선수 앞으로 달려가 FIFA컵보다 더 밝게 빛날 트로피를 건네고 싶습니다.  그 모든 골 뒤에는 이영표, 당신이 있었고 화려하게 스스로 빛나기 보단 팀을 위해 마지막 하나까지 아낌없이 태우는 그런 당신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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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Tag 16강 진출 병역면제, 16강 진출 병역혜택, 1966 월드컵, 2010월드컵, 4.25팀, FC서울, WBC, 가와사키, 경계인, 곤잘레스 이과인, 국방부, 기라드, 기성용, 기성용 프리킥, 김남일, 김남일 반칙, 김영후, 김정우, 김정훈 감독, 나이지리아, 남아공 월드컵,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병역논란, 대표팀 병역혜택, 대한축구협회, 디디에 드록바, 라이언킹, 리정금, 마라도나, 마라도나 사위, 마르체라노,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메시, 바르셀로나, 박주영, 박주영 골, 박주영 자책골, 박주영 프리킥, 박지성, 박지성 정대세 박카스 CF, 북한, 북한국가대표팀, 북한대표팀, 수와레즈, 수원삼성, 시망, 아게로, 아르헨티나 패배, 아르헨티나전, 아르헨티나전 패배, 에우제비오, 염기훈, 염기훈 노골, 오범석, 우루과이, 우루과이전 패배, 월드컵, 월드컵 16강, 을용타, 이과인, 이과인 해트트릭, 이근호, 이동국, 이동국 MVP, 이동국 득점왕, 이동국 월드컵, 이동국 월드컵 12년, 이동국 월드컵 한, 이동국 프랑스월드컵, 이영표, 이영표 눈물, 이을용, 이정수, 이정수 골, 이청용, 이청용 골, 자이니치, 정경호, 정대세, 정대세 어머니, 정성룡, 정성룡 득남, 정성룡 선방, 정이세, 정해성, 조국통일 세레모니, 조선학교, 조용형, 조중연 회장, 주장 박지성, 지윤남, 차두리, 차두리 눈물, 차미네이터, 차바타, 차범근, 차정혁, 천리마, 최순호, 최진철, 카르발뉴, 코카콜라 원정대, 테베즈, 티티아나, 한민족, 한반도, 호나우도, 호나우두, 호날두, 홍영조, 황선홍 밴드, 흑표범
우루과이와의 16강전. 후반 들어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아공에서 뛰던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던 한국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를 맞으며 선수들은 뛰었고 넘어졌고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섰고 그들을 보며 지구 반대편에 있던 우리는, 그들이 온몸으로 맞고 있던 그 비를 맞으며 응원했습니다.

경기는 졌지만 그들 가슴에 새긴 투혼, 이란 두 글자가 어울리던 경기였습니다. 뭐 비단 16강전만 그랬던가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보여줬던 경기는 투혼과 끈기가 어울렸고, 그들은 90분 내내 포기하지 않았으며 실로 아름다운 축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예전과 달리 빠른 패스로 공격의 주도를 잡았고, 문전을 향한 저돌적 플레이는 결국 동점골을 낳았습니다. 당황하는 대신 짧고 긴 패스를 혼용하며 기선을 잡으려는 침착함과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 무엇보다 돋보였습니다.

얼마 전 최진철 코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가 열렸던 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을 보고 있자니 그대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고요. 관중 대다수가 홈팬인 우리 국민들었음에도, 나서 자란 대한민국에서 열린 월드컵이었지만 그래도 긴장은 컸다고 합니다. 그 거대한 긴장과 두려움이 주는 무게에 눌려 빨리 경기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경기 시작 전부터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이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달랐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득점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롱패스를 보여줬던 과거 ‘뻥축구’는 볼 수 없었습니다. 넓은 시야와 패싱력이 돋보이는 조용형을 시발점으로 해서 후반 들어 계속 됐던 정확한 전진패스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졌지만 이긴 것과 다름 없는 경기였다는 호평도 많았습니다. 이렇듯 우루과이전에서 우리는 희망을 봤습니다. 그러나 풀어야할 숙제도 있었죠.

수아레즈에서 선제골을 허용할 당시 정성룡의 판단 미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돌아 들어가던 수아레즈가 노마크 상황에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도 그랬습니다. 3번째 골 상황이 오프사이드였기에 오심에 피해를 입은 결과가 됐지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당시 이과인을 마크하던 수비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르헨티나전에서 특히나 자주 보였던 장면은 메시에게 볼이 갈 때마다 2명, 3명의 선수들이 그를 마크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빈공간을 향해 달려들어가던 선수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자주 연출했다는 것입니다. 위험지역에서 너무나 쉽게 상대공격수를 놓쳐버리곤 말았죠.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누차 지적되던 수비불안은 여전히 대한민국 대표팀이 해결해야할 숙제입니다.

우루과이전에서 박주영은 의욕을 갖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만들어가는 과정일 얼마나 좋았던지 간에 공격수는 골로 말합니다. 많은 찬스를 만들었지만 그 찬스는 모두 크로스바를 맞고 나가거나 허공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AS모나코에서 주전 공격수로서 유럽무대를 휘젓고 있다는 박주영지만 그는 2% 부족했습니다. 대한민국대표팀의 다른 공격수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아레즈는 찬스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켰죠. 결정력과 집중력의 수준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상대가 극단적으로 전원수비를 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속에서 골을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실력의 척도입니다. 우리가 운이 없었기에 동점골을 터뜨리지 못했다고 하지만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처럼 유명한 말이 운도 실력이라는 말 아니던가요.

최순호 감독은 수비숲을 뚫고 골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기술이 좋아야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희망적인 것은 예전과 달리 축구지능과 테크닉이 뛰어난 이청용, 기성용에서 알 수 있듯 대표팀 내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입니다. 다행히 입때껏 누차 지적되던 골 결정력 부족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많이 희석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축구계를 쥐락 펴락하는 축구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창을 더 날카롭게 보완해야겠지요.

우루과이전 후반 이청용의 동점골이 터진 이후 우리 대표팀은 공격과 수비의 전환이 빨랐고 강한 압박과 짧고 정확한 패스웍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3선의 균형도 제법 잘 맞았습니다. 때문에 우루과이 선수들은 적잖게 당황했죠.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경기를 월드컵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요. 아마 손에 꼽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전 희망을 봤습니다. 그리고 풀어야할 숙제 또한 함께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보완을 통해 성장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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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Tag 16강 진출 병역면제, 16강 진출 병역혜택, 1966 월드컵, 2010월드컵, 4.25팀, FC서울, WBC, 가와사키, 경계인, 곤잘레스 이과인, 국방부, 기라드, 기성용, 기성용 프리킥, 김남일, 김남일 반칙, 김영후, 김정우, 김정훈 감독, 나이지리아, 남아공 월드컵,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병역논란, 대표팀 병역혜택, 대한축구협회, 디디에 드록바, 라이언킹, 리정금, 마라도나, 마라도나 사위, 마르체라노,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메시, 바르셀로나, 박주영, 박주영 골, 박주영 자책골, 박주영 프리킥, 박지성, 박지성 정대세 박카스 CF, 북한, 북한국가대표팀, 북한대표팀, 수와레즈, 수원삼성, 시망, 아게로, 아르헨티나 패배, 아르헨티나전, 아르헨티나전 패배, 에우제비오, 염기훈, 염기훈 노골, 오범석, 우루과이, 우루과이전 패배, 월드컵, 월드컵 16강, 을용타, 이과인, 이과인 해트트릭, 이근호, 이동국, 이동국 MVP, 이동국 득점왕, 이동국 월드컵, 이동국 월드컵 12년, 이동국 월드컵 한, 이동국 프랑스월드컵, 이영표, 이영표 눈물, 이을용, 이정수, 이정수 골, 이청용, 이청용 골, 자이니치, 정경호, 정대세, 정대세 어머니, 정성룡, 정성룡 득남, 정성룡 선방, 정이세, 정해성, 조국통일 세레모니, 조선학교, 조용형, 조중연 회장, 주장 박지성, 지윤남, 차두리, 차두리 눈물, 차미네이터, 차바타, 차범근, 차정혁, 천리마, 최순호, 최진철, 카르발뉴, 코카콜라 원정대, 테베즈, 티티아나, 한민족, 한반도, 호나우도, 호나우두, 호날두, 홍영조, 황선홍 밴드, 흑표범
축구선수들을 자주 만나다보면 그들의 고민의 늘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군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알다시피 축구선수들은 보통 30대 초반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물론 몸관리를 잘한 선수들의 경우 -강원의 이을용, 경남의 김병지, 포항의 김기동 등이 대표적이겠지요-30대 중반을 넘어 40을 바라보는 나이에게도 현역에서 선수생활을 하지만 실제 K-리그 대다수 선수들의 이야기는 아니죠. 최근에는 오히려 선수단 평균 연령이 점점 젊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 말은 곧 30살을 넘은 ‘준노장’ 선수들의 은퇴가 많아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로선수들은 꽤 많은 돈을 손에 쥡니다. 그래도 그들은 늘 불안합니다. 축구단은 그들에게 평생직장이 아니니까요. 또 군대를 가야하기 때문에 2년이나 돈을 벌지 못하니까요. 그들에게 2년은 꽤 큰 시간입니다. 대학 졸업 후 24살에 프로에 왔다고 봤을 때, 만약 32살에 은퇴를 한다고 한다면, 그는 프로에서 8년을 뛴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서 군대에서 보내는 2년의 시간을 빼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6년 동안 프로선수 생활을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만약 결혼을 일찍 한 선수라면 아내와 아이를 두고 군대를 가게 됩니다. 그 동안 가계수입은 ‘0’이고 그전에 저금해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아내와 아이는 축구선수인 남편을 기다리겠죠.

여기까지는 보통의 K-리그 선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나이대별 대표팀을 두루 역임하며 국가대표까지 입성한 엘리트 선수들의 경우에는 군대와 관련해 조금 다른 고민을 합니다. 군대 문제 때문에 자유롭게 해외진출을 하기가 힘들다는 게 그들의 고민인 거죠. K-리그와 국가대표를 오가며 얻은 명성으로 해외팀에서 오퍼가 들어오는데, 만약 그의 나이가 27세라면 축구선수로서는 딱 좋은 전성기의 나이대지만 이 나이는 이제 슬슬 군대 문제를 생각해야할 나이입니다. 28세에는 적어도 상무나 경찰청에서 군 생활을 해야 하는데, 해외 유명 클럽에서 딱 1년만 데리고 있을 선수를 위해 그 많은 이적료와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기는 힘듭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비슷한 레벨이지만 군대 문제에서 자유로운 선수를 영입하겠죠.

그래서 많은 축구선수들을 말합니다. 분단국가의 특성상 병역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국방의 의무는 국민이 지켜야할 기본 의무 중 하나다. 우리는 군대에 가기 싫은 게 아니다. 우리의 꿈을 해외에서도 펼칠 수 있도록 적어도 축구선수로 활동할 기간만은 군대문제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28세까지 미룰 수 있는 현 제도에서 35세 후 혹은 은퇴 후에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좋겠다. 등등의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들의 병역문제가 요즘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나이지리아전 종료 후 락커룸을 찾은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저는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왜 지금?’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는 겁니다. 회사에서 중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동안 야근에 지친 직원들에게 “고생 많았지? 오늘은 내가 쏜다!” 혹은 “직원들에게 각자 포상을 내리겠다”고 말하는 사장님 같아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군대문제와 관련해 축구선수들의 고민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바로 너무나 즉흥적인 협회의 태도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2007년 병역볍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병역특례 대상자를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제한했습니다. 기존의 월드컵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라는 조항을 없앤 거죠.

그런데 그때 협회는 당시 아주 조용하게 넘어갔습니다. 월드컵 16강의 경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했을 때만큼의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의 효과가 있으니 선수들에게도 병역혜택을 줘야한다는 문제제기 조차 없었습니다. 월드컵에 진출했을 때 나라가 얻을 수 있는 이익과 16강 진출 시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보고서라도 준비해 월드컵에 나서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군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그래서 지금의 박지성처럼 유럽리그를 휘젓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다져줄 수 있도록, 최소한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했던 거 아닐까요?

당시 많은 언론에서 월드컵 16강 진출에도 선수들은 군대를 가야한다는 등의 뉴스가 나왔지만 협회가 이를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병역혜택이라는 당근이 16강에 진출했으니 이제 할 일은 다했다며 다소 느슨해질 선수들을 채찍할 가능성은 큽니다. 8강을 넘어 4강진출까지 다시 한 번 노려볼 생각에 병역혜택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요?

이런 즉흥적인 모습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병역법 개정을 위해 이전부터 노력을 했더라면, 그래서 삭제된 조항이 다시 들어가거나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라는 조항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갑론을박은 나오지도 않았겠죠.

이미 다른 종목 선수들이 월드컵 16강 진출 시 병역면제 같은 자신들의 종목에서 유치하는 국제대회도 추가적으로 특례 조항을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정부는 2007년 병역특례 범위를 종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로 한정지은 바 있습니다.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의례적으로 병역면제를 받았을 때 이제는 다른 종목 선수들이 이번 대표팀의 예를 들며 병역면제를 요구할지 모릅니다. 만약 다음 WBC 대회에서 야구대표팀이 4강안에 들어갔다면 축구대표팀의 예를 들며 병역면제를 요청할 지도 모르죠. 이미 축구대표팀에 허한 ‘예’가 있기 때문에 월드컵과 WBC대회는 규모나 수준면에서 비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4강에 진출했다고 해도 병역혜택을 줄 수 없다고 과연 국방부에서 말할 수 있을까요? 그들로서는 선례가 있기 때문에 바로 ‘노’라고 말할 수 없겠죠. 그래서 이번에 그러한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WBC 준우승 시에도 병역혜택을 주지 않았다며 선례를 남기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 역시 현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받아 더 넓은 무대에서 자유롭게 뛰며 꿈을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말하고 행동하려는 협회의 모습을 보니 참 안타깝고 슬픕니다. 병역혜택을 줘야한다, 말아야한다고 서로들 싸우기 전에 문제의 본질과 발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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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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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하루종일 월드컵 16강 진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행복하하셨죠? 축구가 우리모두의 삶을 이렇게나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웃던 하루였습니다.

그 가운데 지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며 뛰었던 선배 선수들이 현 대표팀 선수들에게 감동어린 격려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을용의 편지>
다들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가슴 졸이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우리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며, 나이지리아에 선제골을 헌납했을 때 마치 현장에서 뛰던 선수들처럼 마음 안타까워하며 중계를 시청했고 또 응원했습니다.

국민들에게는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이자 내게는 참으로 멋진, 그래서 아낄 수 밖에 없는 후배들은 기어코 해내고 말았습니다.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삼 2002년과 2006년, 태극마크가 박힌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뛰던 그 시절의 열정넘치던 제가 떠올라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당시 한솥밥을 먹으며 대표팀에 있었던 후배 이영표가 눈물 흘리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습니다.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기쁘고 감격스러워하는 그 마음이 제게도 전달돼 저 역시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며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이 한국 축구를 위해 떠나기 전에 해야할 일들 중 하나가 바로 16강 진출이었습니다. 현 대표팀에 남아있는 2002세대들에게는 어쩌면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주어진 시간은 짧았으나 후배들과 함께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멋지게 썼다는 점에서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만해도 세계의 벽은 높았습니다. 빅리그의 선수들과 즐비한 다른 국가들과의 대결에서 한국이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컸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2002년을 기점으로 한국 축구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이제는 세계 선수들과도 해볼만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우리 가슴과 머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금 선수들은 분명 그때의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투혼도, 열정도, 실력도, 자신감도, 모든 점에서 저보다 뛰어나는 생각을 하며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성적을 거둬 국민들의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안고 돌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끝은 아니겠지요. 우리에게는 가야할 길, 개척할 길이 더 많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기쁨이 우리의 6월을 환희로 물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태극전사들이여, 승리의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뜁시다.


<최순호 감독의 편지>
제가 월드컵에서 뛰던 시절 대표팀의 수준이 6점이었다면 지금 대표팀의 수준은 8점 이상 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을 희망적으로 보았습니다. 축구 인프라가 발전하게 되면서 선수들 개인 기량과 조직력도 좋아졌고 내심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허정무 감독의 승부사 기질도 남달랐기에 승리를 향한 대표팀의 열망으로 이어져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긴장하기 보다는 경기 자체를, 또 축구라는 본질 자체를 즐기는 선수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축구는 이기기 위해서만 하면 안되고. 즐기는 마음으로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믿습니다. 그간 허정무 감독이 항상 강조했던 ‘즐기는 축구’가 결실을 맺게 된 것 같습니다. ‘유쾌한 도전’이 드디어 현실이 됐습니다. 16강 이후에도 선수들이 지금처럼 즐기는 축구를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최진철 코치의 편지>
용형아. 내가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나갔을 때, 그때 내 나이는 32살이었다. 서른을 넘기고 늦깍이 태극전사가 됐을 때, 기쁨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에서, 부산아시아드경기장에서 폴란드와 첫 경기를 치르게 됐을 때, 그라운드로 나서는 순간 관중석을 가득 메운 붉은악마의 물결을 보면서도 역시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이대로 이기지 못했을 때 이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텐데,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던 것도,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만 사실이다.

공격수는 단 한골만 성공시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수비수는 단 한골만 허용해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있을 지 모를 패배를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기 보단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냐는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싸워주길 바란다. 유럽 선수들과 많이 맞서봤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 대표 선수들도 이제는 그에 뒤지지 않는 실력들을 갖추고 있지 않더냐. 우리는 강하다. 가장 두려운 적은 우리 자신일 뿐. 그것을 잊지 말아라.


<정경호의 편지>
지성아!

2002년과 2006년과 달리 이번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의 주장으로 부임하며 선수들을 이끌어야했지. 네가 가진 모든 것을 그라운드에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캡틴’이라는 수식어도 너에게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 이제는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대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이곳 강원FC에서 2010년 새 시즌 주장으로 뛰게 되면서 모름지기 주장이란, 단순히 오른발에 차는 완장 이상의 책임과 가치를 알고 지켜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어. 네가 그렇지. 그간 대표팀 주장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그 어려운 고비들 앞에서도 너는 흔들리지 않았고 행동으로 실천하며 선수들을 격려했지. 주장인 네가 그렇게 중심이 잡혔기에 모든 선수들이 한마음이 되어 국민들의 염원을 이뤄냈다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나는 너를 ‘국민 주장’으로 부르고 싶다.

16강까지 정말 힘들었다며 이제야 속내를 털어놨지만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이겨내는 사람. 그게 바로 너라고 생각해. 일본 교토퍼플상가 시절에도 그랬고, 이어진 네덜란드와 영국생활에서도 너는 항상 당면한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너의 길을 걸어 갔잖아.

고교시절 너희 학교가 강릉으로 전지훈련을 오면서부터 알고 지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구나. 2006년 월드컵때는 대표팀에서 동거동락하며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는데….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전화로 늘 나와 가족의 안부를 물어보고 우리 딸 예진이의 돌 선물까지 챙겨주고. 참 속정 깊은 친구다. 너라는 사람은.

남아공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너의 플레이를 보며 달래고 있다. 내 몫까지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 한번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쓰는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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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대한민국 대표팀이 또 하나의 역사를 썼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원정에서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한 것이죠. 나이지리아와 2-2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은 같은 시간 그리스를 2-0으로 이긴 아르헨티나에 이어 2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그 역사의 순간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기쁘네요.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은 얼싸 안으며 기쁨을 표했고 이청용, 김동진, 이영표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다 천국에 있는 기분으로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듯 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이정수, 박주영, 김남일, 기성용 이 4인방의 기분이 더욱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전과 비슷한 위치에서 이정수는 기성용의 킥을 받아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마치 데자뷔와도 같았는데요, 수비수로서 팀 내 최다골(2)을 터뜨렸다는 점에서 새롭게 대표팀 내 골 넣는 수비수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마음고생은 적잖게 많이 했지요. 곽태휘의 부상으로 백업멤버였던 이정수는 소위 말하는 ‘대타’로 그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잘하면 본전이요 못하면 곽태휘가 있어야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 테니 얼마나 부담이 컸을까요.

그런 가운데 2경기에서 팀 첫번째 골을 넣어주며 16강 진출의 초석을 만들어줬으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특히나 아르헨티나전에서 4골이나 내주며 대패했기에 주전 센터백으로서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다시 한 번 선제골을 넣어줬으니 아르헨티나전 대패 아픔을 털고 천국에 갈 수 있었죠.

그리고 박주영. 아르헨티나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며 대패의 시발점이 됐다는 지적과 함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무득점이라는 수모를 함께 겪어야만 했습니다. 4년 전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스위스전에서 자신의 파울로 얻은 프리킥이 스위스의 득점으로 연결되는 바람에 16강 진출의 좌초가 됐다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멋지게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그간의 아픔을 한 번에 털어냈습니다. 평소보다 기도가 짧았고 포효가 꽤나 길었습니다. 동료 선수들이 얼싸 안은 순간에도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하늘을 향해 소리 쳤죠. 마치 그간의 가슴앓이를 포효로 풀어내는 것 같아 새삼 가슴이 짠해졌습니다.

김남일. 그에게는 이번 대회가 마지막 월드컵이 될 듯합니다. 각오가 남다를테지요. 그러나 기성용-김정우 두 중앙MF 조합에 밀려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김남일은 교체멤버로 밀려나고 말았죠. 오늘 나이지리아전이 이번 월드컵 마지막 경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김남일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의욕이 과했던 탓일까요.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의 깊은 태클로 결국 PK를 내주고 말았고 이는 나이지리아의 2번째 골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이겨주었고 덕분에 무승부만 기록해도 조2위로 16강에 진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남은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겠죠. 만약 졌다면 그의 축구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경기로 남았을 것이고 16강 진출 실패의 역적으로 몰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경기에서 천국에 와있는 듯 한 기분을 가장 강하게 느낀 사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성용. 스코틀랜드리그로 이적 이후 기성용의 경기력이 예전만 못하는 지적이 연일 계속됐습니다. 경기에 꽤 오래 나서지 못했고 그 때문에 경기를 읽던 그만의 너른 시야, 송곳 같던 패싱력, 정확했던 프리킥력들이 빛을 잃은 듯했고 급기야는 기성용 교체설까지 팬들 사이에서 흘러나왔죠. 그러나 기성용은 월드컵 본선무대에 가까워짐과 동시에 예전의 기량을 함께 회복했고 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전의 선제골을 모두 그의 킥으로 도왔습니다. 이정수의 머리를 향해 정확하게 올려준 기성용의 프리킥은 기라드라는 별명 대신 기긱스라고 불리기도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그간 절친 이청용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표현은 못했겠지만 많이 부러웠을 것입니다. 왜 자신에게는 그런 순간이 오지 않는지 자책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목표의식이 뚜렷한 기성용이니까요. 그러나 그는 골보다 멋진 프리킥으로 팀을 도우며 누구보다도 밝게 빛났습니다. 그간의 우려도 한순간에 불식했고요.

90분이 900분처럼 느껴졌다며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던 주장 박지성의 말처럼, 쉽지 않은 길이었지요. 16강으로 가는 길은요, 하지만 16강이 이 길의 끝은 아니기에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하며 뒤에서 지켜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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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44년만의 꿈은 그렇게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갔습니다.

21일 케이프타운 그린포티인트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G조 2차전에서 북한은 포르투갈에 0-7로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2002년 월드컵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독일에 0-8로 패한 이후 근래 들어 가장 큰 점수 차로 패한 경기로 남게 됐습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은 아시아국가 중 최초로 8강에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포르투갈을 3-0으로 앞서 나가며 4강 신화를 우리나라보다 먼저 쓸 뻔 했지만 국제 경기 경험이 부족했던 북한은 리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후 흑표범 에우제비우에게만 4골을 내주며 3-5로 역전패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이 보여준 모습은 호평을 받기도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44년 만에 다시 세계무대에 나선 북한. 지난 브라질전에서 보여준 경기 역시 1-2로 패했지만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벽은 44년보다 높았습니다. 44년 전 4골을 넣으며 북한 선수들의 선전을 8강에서 멈추게 만들었던 에우제비우는 자신의 후계자 호날두가 팀의 6번째 골이자 이번 월드컵 첫 골을 뽑아내자 엄지손가락을 들며 기쁨을 표했습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대세의 민족통일 염원 세레모니를 보지 못해 아쉬웠고 전반까지 밀어붙이던 기세가 후반 들어 급격히 무너지며 연속골을 내리 헌납하는 북한 선수들의 모습 역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북한대표팀의 김정훈 감독의 경기 후 기자회견이 참으로 인상적이더군요. 김정훈 감독은 0-7 대패를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며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국제대회에서, 그것도 가장 큰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월드컵에서 감독 자신의 잘못이라며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김정훈 감독의 경기 후 소감은 참으로 덕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감독의 전술이 완벽하지 못했기에 많은 실점을 한 것 같다”며 상황에 맞는 전술을 제때 구사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또 “실점 후 득점으로 만회하려고 하는 욕심이 강하다보니 공수의 조화가 맞지 않았다”며 “선수들이 흥분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이를 조절하지 못했다”며 다시 한 번 감독의 능력 부족으로 담담히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연달아 골을 허용하다 보면 선수들은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입니다. 미드필더까지 공격을 위해 전방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패스미스가 발생하다보면 단 한 번의 미스가 또 다시 실점으로 허용되기 쉽습니다. 대량실점은 이렇게 일어나게 되는 거죠. 오늘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준 북한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전반까지도 견고했던 북한의 수비가 후반 8분 시망에 2번째 골을 허용하고 난 후 급격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비가 많이 내렸고 국제무대 경험이 미천한 북한 선수들은 이러한 악천후 속에서 전반 체력을 이미 너무 써버린 듯 했습니다. 90분 동안 체력을 안배하며 뛰어야했음에도 조국에 1승을 안겨주겠다는 마음이 컸던 탓인지 전반에 그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쓰고 말았단 것이죠.

북한의 돌풍을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그래도 휴전선만 있을 뿐 본디 한민족이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의 대패는 많이 아쉽습니다. 홍영조, 정대세 등 북한의 젊은 피들이 이번 대회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패배의 아픔 속에서도, 감독으로서 오히려 더 많이 힘들어하고 아파할 선수들을 다독거리고 감싸주는 북한대표팀 김정훈 감독의 모습을 보며 저는 크나 큰 아쉬움 속에서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감독의 격려 아래 다시 명태 먹고 ^^ 마지막 경기 코트니부아르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며 다음 대회를 기약할 것이라 믿습니다. 아름답게 마무리할 북한대표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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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항에서 우연히 정대세 선수의 어머니 리정금씨를 만났습니다. 지인들과 함께 앉아 담소 중이었는데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드린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얼마 전 정대세 선수 어머니가 북한과 브라질과의 조별예선을 경기장에서 관람한 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하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죠.


당시 '이겨라! 천리마'라고 쓴 두건을 쓰고 아들의 한글이름이 새겨진 담요를 덮은 채로 -지금 남아공은 무척 춥답니다. 저는 겨울 패딩 점퍼를 입고 응원을 해야 했답니다. ㅠㅠ- 응원을 했던 어머니는 “대단히 잘 싸웠다고 생각한다. 오늘 경기로 북한에 대한 이미지도 변했다고 생각한다”며 “아들은 내 자랑”이라며 감격스러워 했죠. 


브라질전만 보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던 정대세 선수 어머니는 북한의 경기를 보지 못한 한국 축구팬이 정대세 선수가 못 넣어서 아쉬웠다며 홍영조 선수가 골을 넣었냐고 묻자 “지윤남 선수”라고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들 정대세 선수가 한국에서 정말 유명하다고 얘기해주자 정 선수 어머니는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압니다”라고 하셨죠. 옆에 계시던 한 아저씨께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만큼 좋아한다고 첨언하자 “아 그래요? 그것은 몰랐는데...”라며 굉장히 놀라는 모습이었고 또 그만큼 아들을 향한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마음에 감동받은 모습이더라고요.


박지성 선수와 찍은 광고 이야기도 물었는데 그 광고 때문에 여기저기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덕분에 추억도 많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박지성 선수 잘 압니다. 팬입니다”라며 아들 정대세 선수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알다시피 정대세 선수도 박지성 선수를 존경한다며 팬이라고 인터뷰 때마다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으니까요.


정대세 선수 어머니는 “아들과 북한 선수들이 잘해줄 거라고 믿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남과 북이 16강에 동시에 출전하길 바란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되는 걸 원합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척이나 확신에 차 있었고 말씀에서 힘이 느껴졌습니다. 정대세 선수가 강건한 것도 다 어머니 덕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브라질전 당시 북한 국가를 들으며 정대세 선수가 눈물을 정말 많이 흘렸죠? 아들이 눈물이 많은 건 막내라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막내라서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정이 많고 감성적이고 또 낙천적이라네요. 애교도 많다고 하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참으로 예쁜 막내 아들인 듯 싶었습니다.


이제 오늘 정대세 선수는 포르투갈과 조별예선 2차전을 치릅니다. 경기 시작 전 조국통일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혹은 통일 조국의 지도가 그려진 옷을 유니폼 아래 입은 뒤 골을 넣으면 벗어 보이겠다고 말했다고 하지요.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북한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일본에서 태어나 입때껏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언제나 경계인으로만 살아야했던 정대세 선수. 2008년 월드컵 예선 당시에도 북한 국가를 들으며 그는 펑펑 울었죠. 그때 “조국 통일이 가까워진 것 같았다”고 말했던 정대세 선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날 더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남과 북, 분단이라는 현실 아래 호위를 받으며 재빨리 버스에 올라타야만 했던 당시 풍경도 생각나네요.


통일 조국을 꿈꾸는 열혈남아 정대세 선수. 같은 민족이니까,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할 때처럼 뜨겁게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대세 선수 어머니. 어머니의 교육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멋진 선수를 우리는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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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1-4 대패에 가려졌지만 아르헨티나전은 이동국 선수에게는 참으로 의미 깊었던 경기였습니다. 1998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 이후 12년만에 월드컵 경기에 나선 뜻깊었던 날이었으니까요.


후반 35분 경, 몸을 풀고 있던 이동국 선수를 벤치에서 부르더군요. 교체로 투입되는 듯 했습니다. 중계 카메라에는 그 모습이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제 카메라는 계속해서 이동국 선수를 따라갔습니다. 얼굴에서는 약간의 긴장도 느껴졌어요. 안정환 선수가 쓱 오더니 잘하라는 의미로 엉덩이를 툭툭 치더군요.


그리고 대기심 옆에 서서 교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럴 수가. 또 골을 허용했습니다. 이과인의 해트트릭. 1-4로 스코어는 더 벌어졌습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이동국 선수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출전 시간은 짧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밀리고 있었고요. 그런 상황에서 원톱으로 뛰었던 이동국이 내밀 수 있던 반전카드는 없었습니다. 잘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이동국에서 볼은 오지 않았고 이청용의 패스는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아 받지 못했고요. 그 패스를 받았다면, 이라는 아쉬움도 컸고요.


오른쪽 허벅지 부상 때문에 월드컵 최종멤버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지배적이었지만 운명은 결국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20살 겁없던 나이에 월드컵을 잠깐 맛봤던  청년은 어느새 30대가 되어 인생의 마지막일지 모르기에 몸이 부서져라 뛰겠다며 월드컵에 임합니다.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트로이카 3인방 중에 하나였던 이동국 선수. 90년대 말이었던 시절, 처음으로 K-리그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선수가 바로 그이기에 저는 메시의 화려한 플레이 속에서도 저의 카메라는 이동국 선수의 움직임을 좇았습니다.


아프리카 밀림의 왕인 사자. 라이언킹이라는 별명처럼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진정 왕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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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아르헨티나와의 조별예선 2차전의 패배의 충격은 아직 가시지 않습니다. 1-4패. 1998프랑스월드컵 당시 네덜란드에 0-5로 패한 이후, 근래 들어 국제대회에서 가장 큰 스코어차로 진 경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이청용의 만회골로 1-2로 전반을 마칠 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는데 말이죠.

많은 분들이 우리 선수들의 경기력에 질책하고 쓴소리를 하시는 걸로 압니다. 현장에서 직접 본 저는 참으로 처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메시와 이과인, 테베즈의 빛나는 플레이에 우리 선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했으니까요. 답답하기도 했고 상심도 컸습니다. 대한민국을 응원하러 왔는데 빛나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넋 놓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슬펐고 가슴아팠습니다.

현장에 있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제 카메라에 담긴 영상들을 포스팅했습니다. 나이지리아전에서는 그리스전에서 보여줬던 자신감과 활기찬 플레이가 부활하기를 바랍니다.


경기장은 아르헨티나 서포터들로 가득찼습니다. 정말 많이 왔더라고요.


첫번째 골 상황. 박주영 선수의 자책골로 판정이 나 마음 아팠습니다.


이과인의 헤딩골이 터지는 순간입니다.


이청용의 골은 워낙 기습적으로 터졌던지라 세레모니 장면만 찍었습니다.








기뻐하던 아르헨 팬들.


몸을 풀고 있던 김보경 선수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죠.


90분 내내 질주하던 메시도 휘슬이 울리자 지쳐 쉽게 못 일어날 정도로 힘든 경기였습니다. 무엇보다 패배의 아픔 속에서도 대한민국 팬들에게 인사하던 선수들의 모습을 보니 참 마음이 아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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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전반 7분. 코너 근처에서 이영표가 그리수 선수의 파울을 얻어 낸 뒤 기성용이 프리킥을 차올렸습니다. 문전에서 올라오는 볼을 보던 이정수가 그리스 수비수들 사이로 뛰어 올리며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2002년 월드컵 3-4위전 터키전에서 이을용이 터뜨렸던 우리나라 대표팀 월드컵 최단시간 골을 2분이나 단축시킨, 시원한 선제골이었습니다.

이정수. 그는 사실 대한민국 대표팀의 베스트 11은 아니었습니다. 허정무 감독의 애제자 조용형 - 곽태휘 두 센터백 콤비의 그늘에 가려진 제 3의 수비수였죠. 처음부터 선발을 장담하던 멤버는 아니었으나 곽태휘의 부상과 조용형의 대상포진 증세로 이정수는 그 공백을 메울 대안이었고, 덕분에 월드컵 출전이라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죠.

이정수는 기회란 노력한 자만 붙잡을 수 있다는 축구계의 정설을 실력으로 입증했습니다. 선수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보통 유럽 수비수들은 세트 피스 상황에서 골대를 향해 올라오는 볼에만 시선을 두고 주전 스트라이커의 움직임에만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말은 곧 뒤에서 뒷공간을 노리며 달려 들어오는 수비수는 열외로 둔다는 이야기와도 같죠. 덕분에 이정수는 그리스의 장대숲같은 수비수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선제골은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정수에게 있어 그리스전은 참으로 특별했을 듯합니다. 비주전으로 분류됐던 자신이 부상선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전으로 투입됐을 때, 스스로 많은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선제골을 터뜨려 승리의 초석을 다졌고, 무엇보다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감하며 승리로 이끌었기에 주전 센터백으로 느꼈을 마음의 짐들을 한 번에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던 경기였을 것입니다.

“제가 대표팀 수비수들 중에선 나이도, K리그 경험도 제일 많아요. 어느 정도 리드해야한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어요. 그렇지만 전 이제 막 대표팀에 들어왔잖아요. 그 때문에 A매치 경험이 제일 적죠. 대표팀 경험이 풍부하지 못하다보니 위축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요. 좀 더 경험도 쌓고 자신감도 붙으면 선수들한테 이렇게 하자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글쎄요. 아직은......”

2008년 막 대표팀에 승선했을 때 이정수가 제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만약 단 한번의 패스미스로, 또는 상대 공격수의 돌아들어가는 움직임을 놓치거나 수비 뒷공간을 내주며 골을 허용했다면, 다른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스스로 ‘내가 들어가서 골을 허용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하는 지레짐작으로 마음이 위축됐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마음이 위축될 때 플레이도 함께 위축된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포백라인에서의 센터백은 기존의 홍명보 감독의 경우처럼, 리더로서 당당하게 수비수들을 이끌어야하는 법인데, 마음이 불안하거나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면 최후의 보루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죠. 수비불안은 심리적인 요인에서도 나오기 쉬운 법인데, 그런 점에서 이정수가 보여준 120% 활약은 남은 2경기의 선전도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이정수가 허정무호에 처음 승선한 때는 2008년 봄입니다. 2010월드컵 3차예선 북한과의 1차전에 나설 24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태극마크와 인연을 맺었죠. 무려 3년 만에 달게 된 태극마크였습니다. 사실 2005년 7월 동아시아선수권을 앞두고 대표팀에 전격 발탁된 바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으로 중도하차했지만 말입니다.

당시 이정수는 제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쉬운 전적이 있기에 마음을 비운 채 대표팀에 들어갔어요. 그저 뽑혔다는 사실에만 의의를 뒀죠. 당연히 곽태휘 선수가 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발목 통증을 호소하며 못 뛰겠다고 하더군요. 그로 인해 제게 기회가 주어졌고 다행히도 ‘제 것’으로 만들며 잘 잡은 것 같습니다.”

당시 이정수는 북한전에 출장하며 ‘정대세를 잡아라’는 허 감독의 숙제를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허심’을 잡은 것도 그때부터였죠.

사실 이정수는 2002년 경희대를 나와 안양LG에서 프로에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공격수였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당시 조광래 안양 감독이 수비수로의 보직 변경을 제안했습니다. 팀에 용병 공격수들이 포화상태였던 것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스피드가 좋으며 제공권에도 강하기 때문에 수비수로서 성장하기에 좋은 DNA를 가지고 있었기에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 컸다고 본 것이죠.

물론 이정수 본인도 저와의 인터뷰 당시 이를 인정했습니다.

“공격수 출신 수비수로서 말씀드리자면, 저 같은 ‘보직변경’이 수비수로 살아가는데 있어 더 도움이 되는 순간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읽는 것도 수월하거니와 패싱력이나 기동력 또한 전문수비수 출신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정수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죠. 2004년 인천으로 이적해 2005년 인천에 K-리그 준우승컵을 안겼고 그때의 활약으로 2006년 수원으로 이적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장외룡 감독은 내게 대표팀 감독이라면 이정수를 발탁할 것이다, 그는 K-리그 최고의 수비수이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수원에서 그는 날개를 단 듯 거침없이 질주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를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닥쳤죠. 그러나 워낙에 긍정적인 사람인지라 빅버드에 앉아 손수 수원선수단의 전력분석을 위한 경기 촬영 장면을 찍겠다며 일일 경기분석관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으며, 관중석에 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홈경기를 관람하다 중계 카메라에 잡힌 적도 있었죠. 팬들은 그에게 ‘계란정수’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는데, 지금도 그는 그 별명을 얘기할 때마다 쑥스러운지 어쩔 줄 몰라합니다. ^^

2008년 한일올스타전에서는 K-리그 대표팀으로 나갔던 그가 2009년에는 교토로 이적, J리그 올스타에 뽑혔고 대회 최우수 선수에도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J리그 진출 전에 밥 한번 꼭 먹자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때만해도 저는 으레 하는 인사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한데 전화가 왔더라고요. 밥 약속을 지키겠다면서요. 그런데 당시 제가 마감 중이라 제가, 감히, 그와의 밥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거절했습니다. 제 지인들은 월드컵 스타의 밥 약속을 거절했냐며 요즘 놀리고 있네요.

그때 일이 떠오르는 건, 그의 성품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흘리는 말이 아니라 꼭 할 말만 하고, 그 말은 꼭 지키는 것. 한 마디로 됨됨이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래서 결국엔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에서 드디어 축구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언젠가 그가 “10번 잘해도 1번 못하면 욕먹을 수밖에 없는 게 수비수의 숙명 아니겠냐”며 웃으며 해줬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참으로 씁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지요. 그래서 적어도 저를 비롯한 이 글을 읽는 사람들만큼은 단 1번의 실수로 인해 1골을 허용하더라도 2골을 막으면 되지 않겠냐며 박수치고 격려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은 2경기에서도 지금처럼만 뛰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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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에는 월드컵을 빛낸 스타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순호 감독이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터뜨린 동점골은 영국 일간지 타임스가 선정한 역대 월드컵 베스트골 50위 중 29에 뽑힌 바 있죠.

최진철 코치는 2002년과 2006년 대한민국 대표팀의 수비의 핵으로 활약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대표 선수가 됐지만, 이렇게 훌륭한 선수를 왜 이제야 발견했냐며 모두의 박수를 받았고 2006년 스위스전에서 보여준 붕대 투혼은 모두를 눈물흘리게 만들었죠.

이을용 선수는 또 어떤가요. 2002년 미국전에서 PK를 실축했지만 3-4위전에서 보란듯이 프리킥골을 터뜨리며 든든한 ‘믿을필더’로 활약했죠.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경기 그리스전을 앞두고 최순호 감독님, 최진철 코치, 이을용 선수 등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월드컵을 먼저 치른 국가대표 선배로서 우리 대한민국 대표팀이 어떤 경기를 치렀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더니 세 분 모두 “꼭 이겨야한다”고 강조하더군요. 승리를 바라는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죠.

한데 세 분은 단순히 이겼으면 좋겠다가 아니었어요. 첫 단추를 어렵게 뀄을 때 2번째, 3번째 경기를 풀어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뛰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중요한 경기를 수없이 많이 뛰었더라도 월드컵 무대는 다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긴장과 부담이 선수들의 마음을 지배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고 하네요.

최진철 코치는 말씀하셨습니다. 축구 인프라가 발전하고 훌륭한 축구 유전자를 가진 선수들이 일찍부터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예전과 달리 우리나라 선수들의 실력도 급성장했다고요. 따라서 유럽팀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문제는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 잘해야할텐데, 하는 부담, 그리고 그로 인한 긴장에서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 선수들은 약속된 플레이도 잘 나오지 않고 자기 자리를 못찾고 헤매거나, 수동적인 플레이를 하기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최진철 코치도 첫 번째 폴란드전이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 그러니까 ‘홈’에서 열린 경기였음에도, 경기장 가득 붉은악마로 가득 차 응원 속에서 뛰었음에도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의 선수들은 W세대인지라 이기고 지는 것보다 경기 자체를 즐기는 마음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월드컵은 선수라면 모두가 생각하는 ‘꿈의 무대’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중압감은 강심장이라 할지라도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 적어도 첫 번째 경기에서만큼은 그렇다는 것. 그것이 월드컵을 먼저 치른 ‘선배’들의 중론이었습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늘 첫 경기를 어렵게 풀었고 그래서 늘 ‘경우의 수’를 생각하게 만들었죠. 사실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컵에서 -비록 2006년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1승 1무 1패라는 어웨이에서 열린 월드컵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었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선 첫경기에서 거둔 승점 3점은 그 이상의 값어치를 갖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씀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2번째 3번째 경기를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 있고 그로 인해 다른 팀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최순호 감독, 최진철 코치, 이을용 선수가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단순히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제게, 세 분과의 대화는 선수들이 첫경기를 앞두고 어떤 상태인지 한번 더 선수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그저 막연히 짐작만 했는데 말이죠.

다음 포스팅에서는 최진철 코치가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당시를 회고하며 제가 이야기해주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월드컵편”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처음에 코치님이 해주신 월드컵 이야기를 듣고 저는 정말 놀랬답니다. 기대되시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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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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