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리그 신인왕의 주인공. MBC 축구드라마 <맨땅의 헤딩> 실제모델인 남자. 내셔널리그에서 3년간 절치부심하다 K-리그를 접수한, 인생역전의 사나이. 2009년 공격포인트 1위라는 기록에 걸맞은 괴물 공격수.

이제 겨우 K-리그 2년차에 접어든 아직은 신출내기이지만 김영후 선수를 수식하는 말들은,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의 존재가 그만큼 특별해졌다는 뜻이겠고 무게감이 점점 생겼다는 증거겠지요.

올 시즌에도 김영후 선수는 신인왕 징크스, 혹은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준수한 활약을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전남전에는 K-리그 데뷔 이후 첫 해트트릭에 성공했고 4월 수원전에서는 멀티골을 터뜨렸습니다. 유병수, 이동국에 이어 K-리그 국내 선수 득점 3위에 오르며 차근차근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K-리그 후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는데요, 김영후 선수를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솔직담백한 인터뷰를 원했고, 김영후 선수도 꽤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어요. 그래서 이번 인터뷰 컨셉은 "무릎팍도사"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더라고요.

인터뷰 중간 작년 한해 신인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한 유병수 선수에 대해 질문을 던졌더니 영후 선수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고요.

"솔직히 마지막까지 정말 확신을 못했고. 일단은 그때 유병수 선수가 막판에 정말 활약이 좋은 상태였고. 저는 막판에 좀 부진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이렇게 확정을 지을 수 없었고. 그런데 마지막에 플레이오프때 성남이랑 인천이랑 햇을 때 유병수 선수가 골을 못넣고 질 때. 그때는 조금 희망을 갖고 있었죠. 그때 만약 유병수 선수가 골을 넣거나 인천이 승리했거나 그랬으으면 저는 거의 포기를 했었을거 같아요."

"유병수 선수 보면 네 어색하죠. 솔직히 신인상 타기 전까지는. 조모컵 올스타전 갔을 때나 이럴때는 말도 많이하고 그래도 어느정도 좀 친하게 지냈었는데. 제가 신인왕을 타고나서부터 좀. 저도 좀 유병수 선수를 어색하게 대했던 것 같아요. 그 선수도 저를 그렇게 대했던거 같아요. 조모컵 때 거의 유병수 선수랑 제일 많이 얘기했던거 같은데. 다른선수들보다. (축구얘기만 했어요?) 할게 축구 얘기 밖에 없잖아요. 그냥 저희 강원FC랑 경기한거 그런 내용들을 얘기하고. 그래도 그런 경쟁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발전할 수 있는 것 같고. 그 선수는 어리잖아요. 전 나이가 많고. 유병수 선수랑 저랑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대요. 닮았으면 뭐. 유병수 선수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요?"

이건 2%에 불과하고요 나머지 98%는 아래의 영상을 클릭해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중간 중간 들리는 제 목소리는 애교로 넘어가주세요. ^^ 김영후 선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려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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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는 창단할 때부터 도민구단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도민을 위한 구단이 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매달 지역민들을 위해 선수단이 나서 봉사활동을 갖습니다. 년간 50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의무화하겠다고 최순호 감독님은 늘 말씀하시죠.

사실 지도자의 입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나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축구도, 봉사도, 소홀히할 수 없는게 바로 프로선수다, 라는 게 감독님이 내건 기치죠. 언젠가는 제게 나중에 내가 강원FC를 떠나더라도 이게 잘 정착되 매달 봉사활동하는 것이 '습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더군요.

겉치레 혹은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실천이라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전 강원FC 선수들과 중증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늘푸른마을>을 방문할 때였습니다. 그때 감독님은 팔을 걷어부치고 선수드과 같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시설을 청소하시더라고요. 이후 식사 시간에는 장애인의 식사 보조 도우미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중 하이라이트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노래자랑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생활 중인 장애인들은 노래방 기계에 맞춰 춤추고 노래부르는 걸 상당히 좋아하더라고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선수들은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뒤에서 쭈볏쭈볏 서있기만 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와서 손을 잡고 같이 추자고 해도 같이 어울리지 못하더라고요.

한데 최순호 감독님께서 나서서 장애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같이 노래를 부르시고 춤을 추시더라고요. 진심에서 우러나온 그 모습에 저는 정말 놀랐고 감동받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비록 팀 성적은 좋지 못하지만 이런 진정성을 가진 감독님이 이끄는 팀이라면 곧 부활할 것이고 모두의 귀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희망도 얻었고요.

이런 감독님, 여러분들은 혹시 보셨나요? 제게는 너무나 뜻깊은 시간을 안겨준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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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가 중국 국가대표 미드필더 리춘유(Lee Chunyu, 李春郁, 1986년 10월 9일 생, 만 23세)를 영입했습니다.

강원FC에는 벌써 크로아티아 수비수 라피치, 마케도니아 공격수 바제, 브라질 미드필더 헤나토가 있습니다. K-리그 규정상 외국인 선수는 단 3명만 허용됩니다. 한데 어떻게 중국 선수를 또 영입하게 됐을까요? 바로 아시아쿼터제 덕분인데요, 선수의 국적이 아시아축구연맹 산하 국가 중 하나라면 1명 더 영입할 수 있는게 바로 아시아쿼터제입니다. 수원이 중국 수비수 리웨이펑을 둘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죠.

리춘유는 중국축구협회에서 2008베이징올림픽을 대비해 계획적으로 육성한 축구 영재로서, 2002년 U-17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돼 이듬해 열린 U-17월드컵에서 중국대표팀으로 뛰었습니다. 이후 2004년 U-19대표팀까지, 연령별 대표팀을 단계별로 거친 축구 엘리트죠. 2007년에는 당시 올림픽대표팀을 이끌던 라토미르 쥬코비치 감독의 눈에 띄여 U-23대표팀에 발탁됐으며 지난 6월 11일에는 가오홍보 감독이 이끄는 2011아시안컵국가대표팀에 승선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2004년 중국 슈퍼리그 산하 창사팀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한 리춘유는 2009년까지 창사에서 85경기 3골 15도움을 기록하며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습니다. 2010시즌 후반기에는 지난 시즌 세르비아 1부리그에서 3위에 랭크된 FC RAD로 이적하였으며 드디어 7월 21일 강원FC에 입단하게 됐습니다.

178cm 70kg의 리춘유는 ‘중국의 리켈메’라는 별명답게 정확한 패스와 너른 시야로 공격의 활로를 탁월하게 뚫어주는 플레이메이커입니다. 양발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킥력 또한 빼어나 그간 클럽에서 프리킥과 코너킥 전담 키커로서 활약했습니다. 앞으로 강원FC에서 공수의 연결고리로 중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전망입니다.

리춘유와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호흡을 맞춰본 강원FC 선수들은 킥과 패스가 남다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중입니다. 패스와 킥가 상당히 정확해, 특히나 코너킥에서 올려주는 볼의 정확성을 칭찬하더군요. 라피치 선수는 영입 전 테스트 기간 내내 제게 중국 미드필더 최고라며 온갖 미사어구로 칭찬을 했었는데, 이제 같이 뛰게 됐으니 꽤나 기대가 큰 모습입니다.

“K-리그에서 성공시대를 쓰고 싶다”고 운을 뗀 리춘유는 “원래 포기나 좌절 따윈 모르는 성격이다. 즐겁고 재미난 강원FC만의 축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겠다”고 당찬 각오를 밝혔습니다. 특히나, 수원의 리웨이펑처럼 좋은 모습으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네요. 여자친구는 지금 타이완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년 쯤에나 한국에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지금은 외국계 IT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좋은 직장이라서 직장을 포기하고 한국에 오기엔 너무 리스크가 크다고 합니다. 아직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가계에 보탬이 되야해서야 이유라네요. 그래도 구단에서 아파트를 구해주면 커피 마시러 오라며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이 너무 순박했습니다. 사실 구단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어야해서 얼른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니 머뭇머뭇하면서 제 앞에서 티셔츠를 벗더라고요. 내가 누난데 뭐 어때, 했지만 꽤나 어색해했고 또 괴로운 모습이었어요. 미안. -.ㅜ

한편 지난해 크로아티아 수비수 라피치를 영입하여 K-리그 구단 중 최초로 연봉을 밝혔던 강원FC는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 영입한 바제와 헤나토의 연봉 또한 공개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강원FC는 구단 경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기치를 이어나가기 위해 이번에도 리춘유의 계약과 관련한 세부사항을 모두 공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리춘유와의 계약기간은 2010년 7월 21일부터 2011년 12월 31일까지며 연봉은 12만불(월 1만불, 세금포함)입니다. 자유계약 선수이기에 이적료는 없습니다.

강원FC 김원동 대표이사는 “선진구단으로 가기 위한 초석은 투명하고 건전한 구단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도 강원FC는 외국인 선수 영입시 연봉 공개라는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도민구단의 생명은 팬들이며 팬들의 알 권리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참 멋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투명한 공개는 정말 칭찬받아야만 할 거 같아요.

어쨌거나 리춘유의 영입으로 노장 이을용의 공백을 어찌 메울까, 하던 강원FC의 고민이 해갈되는 듯합니다. 중원에서 공격의 활로만 제대로 열린다면 지난해 보여줬던 화끈한 공격축구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중국의 리켈메 리춘유의 역할이 꽤나 중요하네요. 그는 과연 K-리그에서 성공한 대륙남이 될 수 있을까요? 기대하며 후반기를 지켜보렵니다.

이건 B컷. 어색하게 웃는 바람에 실패한 사진입니다. 뒤에서 백용선 선수가 스마일이라고 열심히 외쳤건만...ㅎ

한데 저랑 찍을 땐 더 어색하게 있었다는... 이 표정 좀 보세요.. ㅠㅠㅠㅠ 다음엔 좀더 친해지길 바랍니다.

옷을 갈아입기 전 어색하며 웃던... ㅎㅎ 리춘유.

자, 우리 한번 같이 사진 찍어볼까? 형. 난 지금 상태 멜롱이라 찍기 시른데. 흑흑.

잘생긴 리춘유와 용병 담당인 백용선 선수. 원래 백용선군은 잘생겼었는데.. 요즘 더운 여름날 훈련이 힘들다보니 오늘 사진이 잘 못나왔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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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새로운 선수들과 후반기 대반격을!
강원FC는 이번 여름휴식기 동안 2명의 외국인 선수를 새로이 영입했다. 마케도니아 국가대표 공격수 바제(BLAZHE ILIJOSKI)와 브라질 출신 미드필더 헤나토(RENATO MEDEIROS DE ALMEIDA)가 바로 그 주인공.

바제는 최전방에서부터 좌우날개, 쉐도우 스트라이커까지 소화가 가능한 멀티 공격수로, U-15대표팀을 시작으로 U-17, U-19, U-21대표팀까지 연령별 대표팀을 단계별로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꾸준히 밟아왔다.

2005년 11월 마케도니아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며 A매치에 데뷔했으며 최근에는 6월 2일 열린 루마니아와의 A매치에도 출장했다. 현재 마케도니아 성인대표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며 4경기 1골을 기록 중이다.

강력한 오른발 캐논슛이 위협적인 바제는 공간침투능력과 스피드가 탁월한 만큼 후반기 김영후의 파트너로 활약하며 기존 강원FC의 공격에 화력을 더해줄 전망이다. 한편 바제와 함께 영입한 헤나토는 드리블, 패스, 킥 3박자를 갖춘 공격형 미드필더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륜을 바탕으로 중원에서 안정되게 경기 템포를 조율하며 강원FC의 새로운 플레이메이커로 소임을 다할 예정이다.

바제(좌) 헤나토(우)

김원동 대표이사는 “본래 2011시즌에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계획을 수정하여 팬들에게 조금 앞당겨 선보이게 됐다”며 “바제와 헤나토 두 선수의 실력이 출중할 뿐 아니라 의욕 또한 강하기에 빠르게 팀플레이에 녹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두 외국인 선수의 합류로 후반기에는 빠르고 힘있는 강원FC만의 신명나는 축구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이번 외국인 선수 영입에 대해 평했다.

돌아온 축구천재 서동현
강원도 홍천 출신의 서동현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박종진과 1-1 트레이드 조건으로 강원으로 이적한 서동현은 양평중-청평공고-건국대를 거쳐 2006년 수원에 입단,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전반기까지 최근 5시즌 동안 100경기 21득점 6도움의 기록을 올렸다.

장신을 이용한 포스트플레이와 제공권에 강점을 보이는 서동현은 결정력과 활동량 또한 뛰어나 강원FC의 새로운 ‘해결사’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줄 전망이다. 서동현은 “강원도 홍천 태생인 만큼 강원도는 나의 ‘고향’이자 나에게 축구를 알려준 특별한 곳”이라며 “고향 팀인 강원FC에서 뛰게 된 만큼 마음이 설렐 뿐 아니라 기대도 크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서동현은 또 “강원FC 팬들의 사랑이 남다르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며 “강원FC의 공격에 방점을 찍고 싶다. 또 팀의 승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헌신적인 선수가 되겠다”며 남다른 각오를 드러냈다.

서동현(좌) 이상돈(우)

한편 강원FC는 이상돈을 수원에서 추가 영입했다. 밀성중-서울체고-울산대를 거친 이상돈은 2008년 울산에서 데뷔한 뒤 2010년 수원으로 이적, 3시즌 동안 21경기 1득점 1도움을 기록했다. 이상돈은 “최순호 감독님 밑에서 새로운 축구를 배우게 돼서 설렌다”며 “강원FC 팬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오버래핑 시 정확한 크로스가 일품인 오른쪽 풀백 이상돈의 영입으로 강원FC는 수비진에도 힘이 실렸다.

수비라인 재정비
강원FC는 후반기 도약을 위해 수비라인에 대대적인 전력보강을 가했다. 이정운(MF, 前강릉시청) 강선규(DF, 前대전시티즌) 백종환(DF, 前제주유나이티드) 김동민(DF, 前울산현대)이 새롭게 강원FC 유니폼을 입었다.

경수중-언남고-건국대를 거친 강선규는 2006년 러시아프리미어리그 루빈카잔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해외파’다. 2년 간 루빈카잔에서 뛰다 2008년 귀국, 대전시티즌에서 K-리거로 테이프를 끊었으며 당해 시즌 17경기 1도움을 기록했다. 수비형MF, 풀백, 센터백 모두 가능한 멀티형 수비자원이다.

백종환은 부평동중-부평고-인천대를 거쳐 2008년 제주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전반기까지 3시즌동안 12경기에 나섰다.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크로스가 인상적인 오른쪽 풀백이다.

강릉농공고 출신의 김동민은 2009년 울산현대에서 프로데뷔를 한 중앙수비수다. 서전트점프가 뛰어나 공중볼에 강하며 빠른 스피드를 이용, 효과적으로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지능형 수비수다.

이정운(좌) 백종환(우)

강릉시청에서 이적한 이정운은 황지중-강릉농공고-성균관대를 거쳐 2003년 전남에서 데뷔해 2005년까지 3시즌 동안 31경기 6득점을 올렸다. 주 포지션은 풀백이나 양발을 고루 잘 쓰기 때문에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윙포워드와 측면미드필더로도 활용이 가능해 앞으로 강원FC의 공수 양면에 있어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FC 김원동 대표이사는 “공수양면에 걸친 고른 영입으로 강원FC의 전력이 탄탄해졌다. 후반기 강원FC의 무한비상을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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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요즘 K-리그를 뜨겁게 만드는 겁없는 신인들이 있습니다. K-리그 출범 26년 만에 신인 최초로 개막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서상민(경남)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비한 성남에서 주전 자리를 꿰찬 조동건(성남) 안영학 백지훈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장신 미드필더 박현범(수원) 개막한지 채 2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1골3도움을 기록한 조용태(수원).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고교졸업 후 바로 프로행을 선택한 선수가 아닌, 대학을 거친 뒤 프로로 적을 옮긴 선수라는 사실입니다.

이 선수들은 대학에서 프로로 오게 되며 가장 기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관중 앞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 우선 이유로 꼽았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겠죠. 대학 시절, 매년 많은 전국대회에 출전했지만 늘 지방 어느 종합운동장에서 관중 없이 치르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요. 기실 선수로 뛰었을 때 가장 기쁜 순간이란 바로 아낌없이 박수 쳐주고 응원해주는 관중, 혹은 팬들 앞에서 뛸 때 아니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대한축구협회에서는 대학축구의 발전을 위해 U리그가 창설했습니다. 올해는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건국대, 광운대, 성균관대, 명지대, 중앙대, 아주대, 경희대, 이렇게 수도권 10개 대학이 참가하는 시범리그입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대학 캠퍼스 내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를 치룹니다.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오는 10월까지 총 18경기를 치루며 승점이 높은 팀이 우승을 하게 되지요. 가장 좋은 점은 아무래도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우들의 응원을 받으며 뛸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뿐 만 아니라 학교에서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수업과 경기를 병행할 수 있다는 큰 장점도 있답니다. 그들 역시 선수이자 학생이기 때문에 '수업권'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궁국적으로는 '대학축구의 발전'에도 일조할 수 있으니 향후 U리그는 한국축구의 든든한 초석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봅니다. 이제 막 U리그와 함께 출항에 나선 선수들 역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프로에 뛰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선수가 있었는가 하면, 관중들 앞에서 뛴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냐며 마냥 기뻐하던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관심이 대학축구가 성장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기특한 이야기를 꺼낸 선수들도 있었고요.



U리그가 대학선수들에게 뭔가 대단한 화두라도 던진 듯 해서, 누구보다도 대학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괜히 기쁘고 흐뭇했습니다. 이 선수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앞으로 K리그를 빛낼 또다른 샛별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래도 U리그를 잘 모르겠다고요?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개막전 풍경을 보여드립니다. K-리그 못지 않은 열기가 느껴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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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오랜만에 학교 행사에 놀러갔습니다. 여전했죠. 바람엔 잊고 있던 옛 향기가 실려 왔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그리고 그 시절 나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던 후배들을 바라보며 그 옛날, 그러니까 스무살이라는 아주 예쁜 나이를 하고 있던 나를 떠올려봤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해마다 가을이면 자매 결연을 맺고 있던 다른 대학과 친선경기를 치르곤 합니다. 학교 운동부 선수들끼리의 시합이었는데, 그 시합을 하는 날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잠실주경기장을 찾아가 응원을 했습니다. 물론 꼭 경기장을 가야만 한다는 지침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공식적으로 수업이 없는 날입니다. 그 때문에 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나완 상관 없는 이야기’라 말하며 도서관에 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때론 집에서 뒹굴 대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요.

스무 살 가을, 저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대다수 학생들처럼 경기장에 있었답니다. 그곳에서 2만 학우들을 바라보며 열심히 응원했지요. ‘Young Tigers’-우리 말로는 새끼 호랑이 쯤으로 해석될 수 있는-라는 단어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서요.

'Young Tigers'는 제가 다니던 학교의 응원단 기수부 이름이었습니다. 기수부는 깃발을 가지고 응원하는 사람들로 모인 단체입니다. 그리고 오직 새내기만 할 수 있다는, 조금은 특별한 규칙이 있는 모임이기도 합니다. 대학에 입학한지 채 한 달도 안됐을 때 처음 그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생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라는 전제 조건은 이내 제 마음을 흔들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잖아. 그 마음 하나로 원서를 냈고 얼마 후 2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억세게 운 좋은 아이들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마냥 좋았을 뿐이죠. 그 뒤에 펼쳐질 험난한 날들을 예상하지 못한 채로요.

기수부 훈련은 8월에 시작됐습니다. 아침 9시. 정확히 40명의 새내기 기수부원들은 모두 아침 9시까지 와야합니다. 1명이라도 오지 않으면 우리는 그 친구가 올 때까지 엎드려 뻗쳐를 해야만 합니다. 어느 날은 한 친구가 1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아 팔과 다리가 달달달 떨릴 때까지 기합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무릎을 땅에라도 대는 순간이면 “거기 너 뭐야!”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지요. 

응원동작을 배우면 신이라도 날 줄 알았건만 그것 역시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4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응원만 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즐거울 것 같죠? 국민체조 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월한 동작도 뙤약볕 아래서 4시간 동안 반복해서 한다면, 제대로 버틸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듯 합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합은 선착순 달리기입니다. 그 벌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400m운동장을 전력으로 달린 다음 먼저 도착한 5명만이 엎드려 뻗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5명에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전력 달리기를 합니다. 다시 다섯 순위에 안에 든 사람들은 엎드려 뻗쳐를 합니다. 나머지는 계속 달립니다. 어떤 기합인지 아시겠죠? 그런데 혹시 전력을 다해 400m를 반복해서 뛰다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결국엔 수돗가로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절로 구토가 나오기 때문이죠. 그것은 운동량이 부족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빡세기 때문에’ 감수해야만 하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그날, 그 기합을 받던 도중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하자. 집에 돌아갈래. 그 생각에 점점 속도를 늦췄고 곧 대열에서 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운동장 한 켠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럭비부 선수들이 제게 달려와 “조금만 더 힘내요. 아셨죠? 파이팅!”라며 박수를 쳐주더군요. “할 수 있어요. 나중에 저희 시합할 때 열심히 응원해주셔야죠. 저희도 힘들게 운동하면서 이겨내고 있잖아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요”라면서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모래 바람이 털썩이던 운동장 위로 눈물을 쏟으며 다시 달렸습니다. 힘든 기합을 모두 이겨내며 버틴 오기 때문이라도, 지금까지 쏟은 노력을 알아주는 럭비부 선수들 때문이라도,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끝까지 버티기로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물론 극한의 고통과 싸울 때마다, 제 마음 속에서는 ‘참자’와 ‘그만하자’. 이 두 마음 사이의 장렬한 전투가 벌이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 뒤에 남은 것은 피로와 굳은 살, 그리고 뭉친 근육들 뿐이었습니다. 그 해 8월과 9월은 그 기억들만 가득합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흘러 기다리던 행사날이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희에게 주어진 공간은 아주 작은 하얀 단상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응원단 현단원들에게는 저희와 달리 크고 멋진 중앙 무대가 주어졌지요. 그 뿐만 아닙니다. 응원복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현단원들은 화려한 디자인의 개량한복을 입을 수 있었지만 저희에게 주어진 옷은 빨간색 후드 티셔츠와 검은색 반바지 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학생들의 시선은 당연히 중앙 단상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밑 작은 단상에서 응원하던 저희 모습을 보던 학생들은 거의 없었죠. 그래도 뭐가 좋았는지 참 즐겁게, 시종일관 웃으면서 응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그간 최선을 다해 노력한 제 자신에게 주어진 성과의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러니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었죠.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경기 종료 후에는 승리한 선수들이 운동장을 지나 단상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야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깃발을 든 채 서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지요. 바로 깃발 무게였습니다. 깃발을 든지 10분 쯤 지났을까요. 팔 근육은 어느새 경련을 일으키며 떨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이곳 저곳에서는 신음소리가 조금씩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만큼 힘들다, 라는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또 힘들었으니 이젠 칭찬해달라며 제 자신을 내세우고 싶다는 마음 역시 없습니다. 저는 그저 아무 탈 없이 행사가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그러기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입니다.

행사가 끝난 후 제 얼굴을 덮은 것은 땀과 눈물이었습니다. 그간 흘렸던 땀방울에게 고마워, 마지막까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스스로에게 감사해, 저는 아무 말도 못한 채 펑펑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이 그리워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때 처음 알게된 것 같습니다. 주목받는 것보다 뒤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과 그 순간을 참고 이겨냈을 때 비로소 빛이 난다는 진리, 그리고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교훈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스무살의 내가 깨달았던 그 모든 것들을 스무살의 후배들이 배운 듯 합니다. 그들은 그 옛날 제가 그랬듯 같은 순간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으니까요. 물론 언젠가는 그 후배들 역시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자신들의 후배들을 바라볼테지만요. 나도 너처럼 울었단다, 라면서요.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인생은 아름답다'는 말을 하나 봅니다. 그런가봅니다.

잊지 말아요.
오늘 당신이 흘린 눈물을.
눈물은 최선을 다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니까요.
모두가 당신의 노고를 모른다 하여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아름다이 빛나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우리, 잊지 말아요.
당신의 얼굴을 덮은 눈물 방울 방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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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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