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현은 지난 9월 10일 전북과의 원정경기에서 김영후의 도움으로 이적 후 2호골을 터뜨리며 완벽하게 강원FC에 녹아내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투톱으로 함께 뛰던 김영후와의 조합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사실 그날은 비가 계속해서 내렸고 '레인메이커'라는 서동현의 별명이 생각났던 밤이었습니다. 특히나 비가 오면 특히 더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기에 내심 서동현의 골을 기대하기도 했어요. 역시나, 강원의 레인메이커는 비만 만들지 않았죠. 멋진 골도 만들어냈습니다. ^^


3-1로 이겼던 아름다운 밤. 골을 터뜨린 서동현에게는 더욱 특별했던 밤이었겠죠. 그리고 2호골을 터뜨리도록 도와준 김영후에게 고마움을 표한 밤이기도 했고요. 팀 동료로 함께 뛰는 이상 항상 김영후에게 고마워할 서동현이겠지만 그래도 딱 한번 얄미웠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서동현과의 인터뷰 도중 알게 된 재미난 사실을 공개해드릴게요.

인터뷰 도중 서동현은 “지난 8월 14일 대전전에서 이적 후 첫 골을 터뜨렸어요. 굉장히 기뻤는데 슬프게도 1호 퇴장이 그보다 더 이슈가 되었네요”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죠. 서동현은“당시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 뿐 아니라 팬들에게까지 미안했습니다. 락커룸에서도 안절부절 못했는데 (김)영후 형의 프리킥 결승골 덕분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갈 수 있었어요. 페어플레이를 중요시하는 강원의 선수로 뛰는 만큼 앞으로는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라고 다짐했지요.

한데 서동현의 재미난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서동현은 인터뷰 도중 투톱 파트너로 활약 중인 김영후에게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는데요,“퇴장 당할 당시 영상을 보니 영후 형은 옆에서 물만 먹고 있던데요?”라며 “다음날 다들 나를 위해, 심지어 코치님까지 나서 변호해주고 있었는데 ‘형은 그 상황에서 물이 먹히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너 몫까지 뛸 생각에 힘이 들어 물을 마셨다’며 째려보더라고요”라며 웃었습니다.

이어 서동현은 “이적 후 첫 골을 넣고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해 나르샤가 멤버로 활동 중인 브아걸의 시건방춤을 추었는데, 다들 예쁘게 봐줘서 고마웠어요”라며 “팬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홈에서는 2호 세레모니를 보여줄 예정이에요. 제 세레모니를 통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즐겁게 돌아갔으면 좋겠어요”라는 바람도 드러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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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와 전북현대와의 K-리그 21라운드 경기가 열렸던 전주월드컵경기장. 많은 분들은 전북의 홈에서의 가뿐한 승리를 예상했죠. 6강 플레이오프 진입이 사실상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전북과 아직 중하위권에 링크된 2살박이 강원과의 대결이었기 때문이죠.


경기 시작 전 배포된 출전선수 명단에는 조금 놀라웠습니다. 지금까지 리그경기마다 선발로 선발됐던 유현 골키퍼 대신 리그 출장기록이 고작 2경기에 불과한 초보 골키퍼 김근배가 나왔습니다. 미드필더에서는 중국 국가대표 리춘유 대신 권순형이 나왔고요. 이을용은 부상에서 회복한 복귀전이었습니다.


에닝요, 루이스, 이동국, 김형범, 로브렉 등 쟁쟁한 선수들로 가득찬 전북은 아무래도 골리앗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강원FC 선수들은 다윗 같은 강건함이 있었습니다. 전반 15분 김영후의 패스를 받은 정경호가 친정팀을 상대로 첫골을 뽑아냈고 전반 41분 다시 한번 김영후의 패스를 받은 서동현이 팀 2번째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서동현의 경우 이적 후 2호골이었고 성공적으로 강원FC에 녹아내린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강원FC의 공격은 후반들어서도 매섭게 계속됐고 후반 13분 김영후가 다시한번 정경호를 도왔고 정경호는 팀 3번째 골을 성공시킴과 동시에 멀티골을 올리며 친정팀에 뼈아픈 패배의 맛을 보게 했죠. 후반 42분 이요한의 만회골이 터졌으나 3-1. 전북에게는 시간이 부족했고 강원FC는 지난해 7월 이곳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5-2로 이겼던 기쁨을 다시 한번 재연했습니다.


무승부와 패배의 갈림길 속에서 오랜만에 원정에서 강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기에 참으로 달콤했던, 그리고 아름다웠던 밤이었습니다. 그래서 축구는 공이 굴러갈 때까지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가 봅니다. 


입장하는 선수들.

정경호의 첫번째 골.

기뻐하는 주장.

동료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패스의 달인 권순형.

이날 경기의 수훈갑 정경호.

도움을 준 김영후와의 포옹.

라피치와도 함께.

이을용의 지시를 받으며.

나르샤의 열띤 응원.

멋졌던 나르샤.

정경호와 김영후의 시너지 효과!

이날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된 정경호.

이렇게 좋아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 ^^

팬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첫번째 골이 들어가던 순간의 장면.

질주본능 김영후.

김영후의 포효.

서동현의 팀 2번째 골.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르샤. ^^

영후, 동현 모두 수고했어!

이을용에게도 수고했다고 말씀하신 김원동 사장.

팬들에게 감사인사 중인 강원FC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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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김수녕 대한양궁협회 이사가 강원FC 선수단을 위한 특별강연회에 나섰습니다. 김수녕 대한양궁협회 이사는 1989년과 199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2연속 개인전과 단체전 우승,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단체전 3연속 금메달 등 올림픽에서만 6개의 메달을 따내, 타 종목 선수들조차 넘볼 수 없는 기록을 가진 신궁이기도 합니다.

양궁은 고도의 심리적 요인이 변수로 작용하는 스포츠 중 하나입니다. 심리적 압박을 이겨내며 수차례 세계 정상에 올랐던 김수녕 이사의 경험을 통해 강원FC 선수단은 프로선수로서 겪게 되는 심리적 부담을 떨쳐내며 승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 김수녕은 양궁 천재일까요?”

김 이사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는데, 선수들 중 선뜻 나서 대답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양궁을 시작하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천재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뗀 김수녕 이사는 “스스로 타고 났다고 생각하며 노력했고 성실함이 뒷받침되면서 다른 사람들도 나를 천재라고 생각하고 믿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이사는 ”운동을 잘하는 시기는 선수마다 다르게 오는 법“이라며 ”스스로 천재라고 믿으며 축구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개인스포츠 양궁과 단체스포츠 축구라는, 종목은 달랐으나 먼저 운동을 시작해 세계 챔피언까지 올랐던 ‘선배’ 선수로서 김수녕 이사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습니다. “스스로 천재라 믿으며 노력하라”던 강연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내가 천재라고 믿지 않고 천재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양궁을 시작하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저는 천재가 됐다고 생각해요. 양궁을 하기 전에는 학생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어요. 그러다 양궁을 시작했고 완벽하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국가대표가 되고 국제대회 챔피언이 되고 금메달을 땄지만... ‘천재일까?’ 생각하면 남이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늘 천재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천재일지도 몰라라고요. ‘양궁을 잘해야지. 잘하려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는 게 천재가 되는 길이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천재가 될 수 없겠죠.

잘할 수 있는 시기가 조금 늦을 뿐이지 지금부터 축구천재라고 생각하면 되요. 물론 생각만 하면 안되죠. 실제로 해야하죠. 축구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노력해야죠. 제가 양궁의 천재라고 생각한 건, 어지럽기도 하고 빈혈도 좀 있고 A형이고 하지만... 지금은 여자 양궁선수들이 키가 커졌지만 당시만 해도 제가 딱 표준사이즈였어요. 양궁화살을 위한 기본 신체 사이즈가 있었는데 제가 그 표준사이즈 안에 들었던 거죠. 그래서 ‘아, 난 정말 양궁을 위해 타고난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누가 그렇게 얘기해주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타고 났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나는 프로선수다. 나는 축구천재다’라고 생각해보세요.“

김수녕 이사는 이미지 트레이닝의 중요성도 역설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양궁대표팀은 매주 주말마다 태릉선수촌 뒤 불암산에서 크로스컨트리 훈련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을 회상하며 김 이사는 “어지럼증이 자주 일던 내게는 힘든 훈련이었지만 올림픽을 2달 앞두고서는 마음을 바꿨다”며 “과녁을 향해 쏜 화살이 10점에 맞는 상상을 하며 산을 탔다”고 말했습니다.

덕분에 올림픽 무대에서는 연습하던 것처럼 편하게 임할 수 있었고 금메달의 영광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하네요. 김수녕 이사는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땀을 흘려야하고, 그것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며 “자신이 갖춘 장점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뒤 잘할 수 있다는 생각만 갖고 뛰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원FC 김영후 선수는 “팀에서 주전 공격수로서 뛰며 페널티킥을 전담으로 찰 때가 많다. 그때마다 실패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빠르고 정확하게 해야 할 것들만 생각하며 경기에 임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많은 도움이 된 강연이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렇듯 축구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 유익한 강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수녕 대한양궁협회 이사는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강원FC 선수들도 김수녕 이사가 선수로 뛰었던 전성기 시절처럼 심리적 불안요소를 걷어내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위닝 멘털리티(winning mentality)로 중무장한다면, 후반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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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가 드디어 셋방살이 신세를 면했습니다. 강릉시 강남축구공원에 근사한 클럽하우스를 지었거든요. ^^
2008년 12월 18일 성공적으로 K-리그에 첫발을 뗀 강원FC는 출범과 동시에 강릉시청(시장 최명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클럽하우스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그리하여 강릉시 노암동 산35번지 강남축구공원 내에 대지면적 2,731.11m2(717.26평)에 연면적 1,939.56m2(568.71평)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클럽하우스가 드디어 문을 열게 됐습니다.

또한 사계절 천연잔디구장 1면과 2면의 인조연습구장을 보유하게 됐고요. 특히 2면의 연습구장은 시민들에게도 개방하여 뜨거운 축구열기를 가진 강릉시민들이 일상에서도 축구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강원FC는 주유니폼 색에서 클럽하우스 이름을 따 ‘오렌지하우스’라 명명했으며, 현재 홈구장 중 하나인 강릉종합경기장 외관에 달린 엠블럼을 오렌지하우스에도 달았습니다. 덕분에 오렌지하우스는 벌써부터 강릉시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해 강원FC 선수단은 클럽하우스가 없어 약 1년가량 관동대학교와 경포대에 마련된 숙소에서 생활하며 불편을 감수해야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오렌지하우스 완공으로 시설 인프라가 완벽하게 구축돼 강원FC는 ‘경기력 향상’과 약 5억원의 ‘예산 절감’이라는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창단 2년차에 접어든 강원FC가 이렇게나 빨리 클럽하우스를 얻을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강릉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K-리그 데뷔시즌이었던 지난해 강원FC는 지자체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통해 기존 프로스포츠단과 차별되는 ‘지역밀착형 마케팅’을 선보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지역민과의 일체감 형성 및 지역연고 정착 발전에 성공하며 국내 프로스포츠계에 많은 반향을 일으켰죠. 덕분에 ‘지역발전 극대화 경영모델’로서 구단운영의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했다는 호평 속에서 제5회 대한민국 스포츠산업대상 시상식에서 프로스포츠 부분 최우수 마케팅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지상 3층·지하 1층 규모로 지어진 오렌지하우스에는 선수단 숙소 및 회의실, 식당·의무실·샤워실 등 최신 시설을 갖췄습니다. 아시아축구연맹 직원들과 클럽하우스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때 찍은 영상을 보여드립니다.

모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는 기업구단이 아닌, 시도민구단 중에는 최초로 짓게 돼 더욱 의미가 깊은 강원FC 클럽하우스 내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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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는 지난 주말 종료 10분 전에 무려 3골을 헌납하며 전북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경기로 8연패를 기록하게 됐고요 리그에서 꼴찌로 내려 앉았습니다. 뼈에 사무치는, 정말 안타까운 경기였죠. 한데 그 경기를 마치고 강원FC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봉사활동이었습니다.

강원FC 선수단은 양양군 서면 논화리 183-1번지에 위치한 중증장애인 시설 <정다운마을>을 방문했는데요. 강원FC 구단은 매 시즌 50시간 이상 지역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선수들에게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홈경기를 마치고 분위기는 다소 침체돼있었으나 또 다시 어려운 이웃을 찾아 구슬땀을 흘렸죠.

강원FC가 방문한 <정다운마을>에는 자폐 및 뇌성마비 등 1급 장애인들 100여명이 생활 중인 시설입니다. 이곳에서 강원FC 선수단은 장애인들을 위해 ▲시설 청소 ▲식사보조 도우미 ▲여가활동 등을 하며 새롭게 ‘희망’을 얻은 귀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뇌성마비 진단으로 거동이 불편한 한 장애인이 쓴 그동안 쓴 시를 모아 놓은 파일을 볼 때 더욱 그랬습니다. 다들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고요.

첫번째 희망. 없습니다. 왜냐구요? 우리 자신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 두번째 희망. 희망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구요? 우리가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 세번째 희망. 희망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남몰래 태어나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우리가 태어날 때 희망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세가지 희망>

그 분이 쓴 시입니다. 참 아름답죠? 그 뿐 아니라 “초능력이 있다면 성한 다리로 운동장을 달리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잠깐이라도 나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구절을 읽으며 수비수 정철운은 “주어진 삶과 환경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강원FC의 막내 김정주는 “건강하게 태어나 축구선수의 꿈을 이룬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고요.

강원FC 선수들에게는 나눔의 땀을 흘린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으나, 희망이라는 보물까지 얻어 가슴에 새길 수 있었던 참으로 특별했던 7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들을 제게 보여주셨던 분.

세가지 희망이라는 자작시가 참 감동적이었어요.

서보성 선수를 참 좋아했던 아저씨.

이분은 이정운 선수를 좋아했고요.

사실 이 아저씨는 서보성 선수보다 이상돈 선수를 더 좋아해서 계속 손잡고 다녔어요. ^^

다정했던 라피치 선수.

라피치 선수와 바제의 환한 미소가 너무 아름답죠?

그 뒤에 의자에 앉아계신 분은 최순호 감독님!

즐거워보이는 라피치 선수,

얼마나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요. ^^

헤어지기 전 찍은 단체사진.

일하시는 직원분들이 선수들과 찍고 싶어해서 이렇게 같이 찍었어요.

이분은 검정고시로 대구대 사회복지학과까지 가셨대요.

선수들과 참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이때의 인연으로 저와도 일촌이 되셨답니다. ^^

그리고 저를 좋아해주셨던, 저와 결혼하겠다고 신이 나셨던 분... 저도 무지 신나보이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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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때론 스포츠가 영화보다 더 극적이라고 하죠. 강원FC와 전북현대와의 K-리그가 그랬습니다. 7연패를 달리고 있던 강원FC에게 전북현대는 꼭 잡아야할 산이었죠. 그리고 거의 잡은 듯이 보였습니다. 전반 35분 김영후 선수가 미드필더 왼쪽에서 너무나 멋지게 프리킥 골을 성공시켰고 - 올 시즌 2번째 프리킥이었죠- 후반 3분에는 이창훈 선수가 페널리에어리어 왼쪽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2번째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이후에도 강원FC는 공격의 끈을 놓치지 않았고 리드를 잡는 듯이 보였습니다. 후반 30분까지 그랬죠. 문제는 오른쪽 수비수였던 이상돈 선수가 머리 부상으로 이정운 선수와 교체되어 나가면서 강원FC의 수비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돈 선수가 교체아웃되기 바로 직전 로브렉 선수에게 골을 허용했고 7분 뒤인 후반 37분 이번에는 에닝요 선수에게 동점골을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추가시간이 3분 주어졌고 전북의 공격은 계속됐습니다. 후반 46분 로브렉이 역전골을 터뜨리며 축구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3-2 펠레스코어로 경기를 마감했습니다. 0-2로 지고 있다 2-3으로 역전하고 만 전북. 이쯤하면 전북극장이라 불러도 좋았고 전북팬들에게는 올 시즌 회자될 최고의 원정경기로 남겠더군요.

반면 이번 패배로 강원은 8연패의 수렁으로 가고야 말았고 다 잡은 대어를 놓친, 좀처럼 잠 못 이루지 못하게 만든 그런 뼈아픈 경기로 남고 말았고요. 사실 이번 전북전에서 전 강원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료 10분 전까지 상당히 좋은 경기력을 펼쳐보이며 전북을 농락시켰던 그때까지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남은 후반기, 해볼만하더라고요. 비록 이 패배로 리그 꼴찌를 기록하게 됐지만요.

아쉽지만 희망을 읽을 수 있던 경기였습니다. 그래서 스포츠는, 아니 축구는 영화보다 더 극적일 수 밖에 없나봐요.

오랫동안 못 이겨서 진지한 표정의 강원 선수들

김영후, 프리킥 골을 성공하고 나서.

넘 좋아하던 강선규, 이상돈 선수의 모습을 보며 흐뭇했어요.

서동현 선수도 와서 축하해줬죠.

이들 모두는 이적선수인데,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이젠 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팀 2번째 골을 성공시킨 이창훈 선수.

언제나 그렇듯 과장된 리액션이 귀여운 주장, 정경호 선수. ㅋ

이상돈 선수는 역시나 이번에도 넘 좋아하고. ^^

한데 이을용 선수 완벽한 찬스에서 왼쪽으로 패스하다 심우연한테 막히고 말았어요. ㅠㅠ

서동현 선수의 가위차기 슛도 막혔고. ㅠㅠㅠ

안성남 선수의 슈팅은 골대 옆을 살짝 비켜갔고...

너무나 아쉬워했던 안성남 선수.

바제 선수의 슈팅도 안타깝게 무효...

결국 2-3로 지게 되며 다들 좌절하고...

을용타는 일어날 기운도 없는 듯...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하던 순형선수.

골키퍼 유현선수를 위로해주던 강원FC 김원동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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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정과 망치로도 도통 깰 수 없는 얼음장을 보는 듯하다. 전 세계를 엄습한 경제 한파가 K리그에도 닥쳤다. 이적시장 문이 열린지 여러 날이 흘렀으나 현재 K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굳을 데로 굳어버린 얼음장 밑으로도 강물은 쉼 없이 흐르는 법. ‘큰 손’의 움직임은 확실히 줄어들었으나 와중에도 이적 소식은 꾸준히 들려오고 있다. 이번 겨울 ‘난 자’와 ‘든 자’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감의 특성상 모든 기준이 ‘1월15일까지’라는 점을 미리 밝히겠다. 따라서 이 시간에도 시나브로 진행 중일 겨울 이적시장의 중간동향 정리 정도로 보면 무난할 듯싶다.


여느 때보다 조용한
2009시즌을 대비한 K리그 이적시장은 지난해 12월24일 프로축구연맹이 자유계약(FA) 자격 취득선수 140명의 명단을 발표함과 동시에 실질적인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보통 각 구단들의 동계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월 중순 쯤이면 이적시장도 절정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 조용한 발걸음만 보일 뿐이다.

일단 K리그에서 대표적으로 알아주는 ‘큰 손’들이 이렇다 할 영입 없이 동면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겠다. 지난 시즌 챔피언 수원과 준우승팀 서울이 대표적인 예다. 경제 한파로 구단 예산이 줄어든 수원은 아직까진 ‘고요한 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수원은 마토(오미야)를 시작으로 이정수(교토) 박주성(센다이) 안효연(전남) 안영학(재계약포기) 등 주전 및 준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여기에 재계약을 천명했던 신영록, 조원희 등도 FA자격을 획득을 무기로 해외진출을 노리고 있는 중이다. 1군 선수들의 무더기 이탈이 이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를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원이 아니다. 물론 4년 만에 우승컵을 든 차범근 감독 마저 자신의 연봉을 자진 삭감했을 정도로 구단의 씀씀이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기에 대어급 선수들의 영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주전급 선수들을 활용한 트레이드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 AFC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해야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챔스와 K리그 제패를 동시에 노리고 있는 욕심 많은 수원이다. 따라서 이적시장 문이 닫히기 전까지는 성급히 결론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이 조용한 이유는 다소 다르다. 최원권을 광주로, 이을용을 강원으로 각각 떠나보냈지만 부상과 군 입대 등을 이유로 전열에서 이탈했던 선수들이 상당수 복귀하며 선수보강이 충분히 이뤄진 까닭이다. 심우연, 고명진, 이종민 등 부상으로 지난 시즌 많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던 선수들이 회복했고 김승용, 한태유, 여효진, 박동석 등 입대 전 주전급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이 지난해 11월 상무에서 전역하며 팀에 합류했다. 여기에 이청용, 기성용 등 꾸준히 성장 중인 젊은 선수들의 활약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이 지금까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침묵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고요속의 분주함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가운데도 판을 벌인 팀들도 있다. 감독 교체 후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 작업을 진행 중인 성남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명실 공히 팀의 ‘레전드’라 할 수 있는 신태용을 새 감독으로 앉힌 성남은 대대적인 방출과 영입 과정을 통해 개편작업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브라질 듀오 두두와 모따의 방출을 확정지었고 김상식, 김영철, 박진섭 등 베테랑들과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이동국에게 결별을 통보했다. 그러나 이동국, 김상식을 내주는 조건으로 전북으로부터 문대성과 홍진섭을, 인천으로 손대호를 보내는 대신 라돈치치를, 마지막으로 제니트로부터 이호를 영입해 세대교체와 누수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최근 2년 간 선수단에 역동적인 변화를 줬던 전북은 올 시즌에도 이적시장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공격의 재구성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재진(감바 오사카) 정경호(강원) 홍진섭, 문대성(이상 성남)을 떠나보낸 전북은 이동국(前성남)을 영입한데 이어 에닝요(대구)에도 손을 잡으며 공격진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시도하고 있다. 올 시즌 처음으로 K리그에 뛰어드는 강원FC 역시 선수 영입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미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23명의 선수들을 영입한 강원은 이을용(前서울) 정경호(前전북) 등 연고지역 출신의 스타 선수들은 물론 문주원(前대구) 김진일(前부산교통공사) 오하시 마사히로(前가와사키 프론탈레) 등 주전급으로 활용 가능한 선수들까지 팀에 합류시키며 다가오는 첫 시즌을 대비하고 있다.

그간 골키퍼 포지션이 다소 취약했던 것으로 평가받았던 경남과 대구는 각각 김병지(前서울)와 조준호(前제주)를, 스트라이커 부재에 시달렸던 전남은 정윤성(前경남) 안효연(前수원)을 영입하며 부족한 2%를 채웠다. 부산 역시 팀의 ‘아이콘’ 안정환의 이적에 대비해 공격수 보강에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양동현(前울산)과 호물로(前제주) 영입에 성공했다. 인천 역시 팀을 대표하는 공격수였던 라돈치치(現성남)와 방승환(現제주)을 떠나보냈지만 국가대표 출신의 미드필더 손대호(前성남)와 호주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제이드 노스(現뉴캐슬 제트)를 영입하여 중원과 수비라인 강화를 꾀했다.

아시아 쿼터제 후폭풍
이번 이적시장 최고 키워드는 단연 ‘아시아쿼터제’다. 기존 용병 한도 3명에 AFC 회원국 선수를 별도로 1명 더 둘 수 있는 ‘아시아쿼터제’가 적용되는 원년인 만큼 아시아쿼터제 승차권을 이용한 선수들이 꽤나 많았다. 특히나 K리거들의 J리그 대이동이 현실로 나타난 겨울 이적시장이었다. 박동혁, 조재진(이상 감바 오사카) 이정수(교토) 박원재(오미야) 박주성(센다이) 조성환(삿포로) 등이 일본행을 택했다. 비단 K리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U-20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U리그에서의 활약으로 대학 유망주로 손꼽히던 정정현(쇼난 벨마레) 포르투갈리그에서 뛰었던 김병석(야마가타) 내셔널리그 부산교통공사의 유효진(요코하마FC) 등 많은 선수들이 대한해협을 건넜다. 특히 주목할 것은 1·2부에 상관없이 일본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J2리그는 유망주들의 진출 무대쯤으로 여겨졌으나 이번 이적시장에선 박주성과 조성환처럼 K리그에서 준주전급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의 진출 또한 이뤄졌다는 특징을 보였다.

물론 K리그 내에서도 아시아쿼터제 시행으로 인한 ‘진출’ 못지않게 이를 대비한 ‘영입’도 활발히 전개됐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은 팀이 바로 인천이다. 인천은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호주 대표로 활약했던 수비수 제이드 노스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올해 27세인 노스는 1998년 데뷔 이후 10년 간 호주 A리그에서만 202경기에 출장했던 잔뼈 굵은 선수다. 노스의 합류는 세대교체 이후 젊어졌지만 경험 부족이 문제로 지적되던 인천의 수비라인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팀들 가운데서는 수원이 가장 빨리 움직였다. 이정수, 마토 등 주축 수비수들의 이탈에 대비해 ‘중국의 홍명보’로 통하는 리 웨이펑을 영입한 것이다. 차범근 감독이 선전 핑안에서 지휘봉을 잡던 시절 선수와 감독으로 만난 인연이 이적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은 애들레이드에서 베테랑 수비수 사사 오그네노프스키를 데려와 김상식과 김영철의 공백을 메웠으며 신생팀 강원 역시 가와사키의 주전 미드필더 오하시 마사히로를 영입, 스쿼드에 노련함을 가미했다.


이들의 합류는 그간 브라질 선수들이 대세를 이루던 K리그 외인 선수 판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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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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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던 그 미소
2007년 7월20일 저녁 8시 상암월드컵경기장. 63,000 여명의 관중들이 모였기 때문일까요? 피부와 폐에 닿는 공기들은 무척이나 끈적거렸습니다. 양손으로 열심히 손부채질을 했지만서도 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더군요. 이미 땅거미는 짙게 깔렸는데도 말이죠. 

그때 갑자기 “와~”하는 함성이 들렸습니다. 전광판에 선수들의 모습이 잡혔기 때문이죠. 에스코트 어린이의 손을 잡은 FC서울과 맨체스터Utd.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시선은 유독 한 선수에게만 쏠렸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만 하고 끝낸다면 대부분 ‘맨유 선수 중 하나겠지’라고 추측할지 모릅니다. 맨유 선수들이야말로 평소 보기 힘든 세계적인 선수들이니까요. 저와 친한 지인들은 “혹시 비디치 아니야?”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네, 저는 그 선수를 무척이나 좋아하거든요.

그러나 제 시선을 사로잡은 선수는 따로 있었습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는 그렇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긴장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말이죠.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상협 선수였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신나게 만든 것일까요? 맨체스터Utd.라는 명문팀과의 경기에 선발 출장했다는 사실이 그를 춤추게 만들 것일까요? 빈 좌석을 찾아볼 수 없는 상암경기장을 처음 봤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경기장 곳곳에서 터지던 플래시보다 더 반짝이는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사실 FC서울 선수들에게 관중들로 가득 찬 경기장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FC서울은 그해 4월8일 수원전에서 이미 프로축구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운 터였습니다. K-리그 한 경기를 보기 위해 찾은 55,397명의 관중이라.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대단한 기록이었죠.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상협 선수는 그날 뛰지 못했답니다. 2군에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그는 2006년 가을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2007년 초 무릎 수술을 해야만 했죠. 재활을 하는 데에만 자그마치 3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덕분에 터키 전지훈련에도 따라가지 못했고요. 축구화도 3월이 돼서야 겨우 신어볼 수 있었답니다. 

 “그 경기요? 안 봤어요. 보기 싫었어요. 홈 경기장에서 많은 관중들 앞에서 뛰는 건 모든 선수들의 꿈이잖아요. 보면 더 뛰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아서 일부러 안 봤어요.”

그런데 말이죠, 수만 명의 관중들 앞에서 뛰고 싶다던 그 꿈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답니다. 3개월 전, 경기를 보지 않겠다며 시무룩한 얼굴로 텔레비전 전원을 꺼버린 그때의 이상협 선수는 어디로 간 걸까요? 7월20일, 그날 그 자리에는 얼굴 한 가득 행복한 웃음꽃이 만개한 이상협 선수만 있었을 뿐입니다.

“저희 팀이 14개 구단 중에서 제일 인기 많잖아요. 항상 많은 사람들 앞에서 뛸 수 있어서 좋아요. 그 중에서도 홈 경기장에서 뛸 때가 제일 좋아요. 그런데 오늘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뛰었다는 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너무 좋아요.”

경기가 끝난 후, 스물 두 살의 이상협 선수는 열두 살 소년 이상협으로 돌아가 웃었습니다. 좀처럼 잊기 힘든 웃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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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이 누구에요?
 
‘이상협’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3년 전 그때가 생각납니다. 2004년 10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렸던 아시아 청소년 대회 취재를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만났던 이강진 선수는 제게 이렇게 말했죠. 

“제 친구 중에 이상협이라고 있거든요. 걔도 참 잘하는 친구인데… 와서 같이 뛰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우승 기쁨도 함께 누렸을 텐데 말이에요.”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자 이강진 선수는 “17세 청소년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다”며 “정말 잘하는 친구”라고 아낌없이 칭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강진 선수의 말대로 이상협 선수는 17세 청소년대표팀에서 잘 나가는 에이스 중 하나였답니다. 어디 한번 그의 출전 기록들을 살펴볼까요? 2003년 1월 러시아에서 열렸던 U-17 친선대회에서 이상협 선수는 3게임이나 연속으로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팀 내 최다 득점자였죠. 같은 해 4월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친선대회와 6월에 열린 부산컵에서는 각각 2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덕분에 핀란드에서 열린 U-17 청소년 월드컵 예선 3경기 모두를 뛸 수 있었죠.   

그렇지만 그도 선수입니다. 그리고 시련 없는 선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말입니다. 그에게 다가온 첫 번째 시련은 바로 19세 청소년대표팀 탈락이었습니다. 그 시련이 주는 아픔과 좌절의 쓴맛 앞에서 고개 숙이고 있을 때 생은 또다른 시작이라는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그의 실력을 알아본 FC서울이 입단계약서를 내밀었거든요.

그 나이 또래 축구 소년들의 꿈은 다 그렇겠죠. 대표팀 발탁, 그리고 프로 입단. 그 큰 두 개의 꿈 중 하나를 이뤘으니 아주 조금은 숨을 돌렸을 듯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습니다. 프로생활은 그에게 결코 녹록치만은 않았으니까요.  

서서히 프로에 녹아들다
“게임 못 뛰는 게 제일 힘들었죠. 고등학교 때만해도 제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프로에 와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저보다 나이 어린 애들보다 훨씬 못하는 거예요. ‘왜 안 되지?’, ‘왜 안 될까?’하면서 고민했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2군 게임도 못 뛰게 됐어요. 정말 너무 많이 힘들었죠.”


그가 입단 첫해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굳이 아픈 기억을 들춰가며 물어보고 싶은 마음 또한 없습니다. 그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며 ‘이 정도 쯤 힘들었겠지’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의 첫 모습은 입단 1년 후인 2006년 7월 19일 울산전입니다. 그는 후반 15분 정조국 선수와 교체되며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2분 쯤 뒤에 첫 번 째 슈팅을 날렸죠. 그것은 K-리그 무대에서 그가 처음 날린 슈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슈팅은 그대로 골로 연결이 됐습니다. 아, 가슴 시린 데뷔골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데뷔골은 그날의 결승골이 돼 FC서울에게 승리를 안겨줬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럴 때 신데렐라라는 표현을 쓰는가 보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비록 그해 시즌, 무릎 부상으로 비록 2경기밖에 뛰지 못했지만 그는 이렇게 단 2경기만으로 자신의 이름을 모두에게 각인시켰습니다.

누군가는 그 모든 것들이 그의 강한 의지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지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쓰러질 것만 같은 순간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네, 모두 맞는 말입니다. 언젠가 이상협 선수도 경기장에서 그와 비슷한 말을 했거든요.
 “게임에 들어가면요, 죽기 살기로 뛰어요. 지는 게 싫거든요. 뛰면서도 절대 진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래서 골 먹히면 너무 화가 나요.”

그를 다시 만난 것은 2007년 4월 15일 울산전입니다. 박주영 선수와 이천수 선수가 만난다며 상암벌 빅 매치라고 떠들었지만 소문난 잔치가 그러하듯 경기는 예상과 달리 지루했습니다. 그리고 이상협 선수는 바로 그날 1군 복귀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아쉽게도 그의 시즌 첫 경기는 0-0 무승부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못내 억울했나봅니다. 그래서 다섯 경기 만에 강렬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나봅니다. 혹시 그해 5월2일 전북전, 그날을 기억하시나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께는 조금 더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이상협 선수가 누드 세레모니를 선보였던 날이라고 하면 기억에 도움이 될까요? ^^

얼마나 기뻤으면 유니폼을 벗어 던지며 서포터스에게 달려갔을까요? 올 시즌 터진 자신의 첫번째 골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넘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나봅니다. 그러나 그 골은 비단 이상협 선수 본인 뿐 아니라 모두에게 큰 의미를 가진 골이었습니다. 바로 FC서울의 6경기 연속 무득점 행진을 끊어버린 골이었으니까요.

후에 그에게 농담조로 혹시 의도한 세레모니가 아니냐고 물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상협 선수의 대답은 “그렇다”였습니다.

“경기 전에 골을 넣으면 어떤 세레모니를 할까 종종 생각해요. 재미있는 세레모니를 보여주면 팬들이 좋아하잖아요. 프로 선수니까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제 존재도 각인시키고… 결국 모두에게 좋은 것 아니겠어요? (웃음).”

그 때문에 출전선수 명단에 이상협 선수의 이름을 발견할 때면 늘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사로잡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또 어떤 세레모니로 우리를 즐겁게 해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그는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뜁니다. 그것이야말로 프로선수 이상협의 꿈이니까요.

끝나지 않을 그의 꿈
현재 FC서울은 박주영 선수의 이적과 김은중, 정조국 등 주전 공격수들의 부상으로 최전방을 책임질 선수들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데얀 선수가 제 몫을 해주고 있다고는 하다만 혼자는 힘든 법입니다. 신예 이승렬 선수는 데뷔 첫 시즌인지라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고요. 그런 현실 속에서 슈퍼 조커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이상협 선수입니다.

그는 어제 열린, 리그 1위 자리를 놓고 다툰 성남과의 일대혈전에서 종료 3분 전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렸습니다. 실로 마법같은 등장이었지요. 왼쪽 측면에서 문전 앞을 향해 달려들던 이상협 선수의 움직임을 삽식간에 읽은 이청용 선수의 넓은 시야와 정확한 크로스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단 한번의 터치로 골을 성공시킨 이상협 선수의 결정력을 칭찬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겠지요.

그에게 물었습니다."요즘 기분 좋죠? 게임도 많이 뛰고 골도 많이 넣고 무척 행복할 것 같아요." 이상협 선수는 땀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힘든 걸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러더니 이내 씩 웃었습니다. 물론 애써 짓는 그런 웃음은 아니었답니다. 저는 그 웃음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몸은 조금 피곤하도 힘들지라도 이렇게 뛰는 지금이 좋다. 그렇게 말이지요.  

언젠가는 17세 때 입었던 대표 유니폼을 다시 한 번 입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끔은 팬 투표로 올스타전에 선발돼 뛰는 모습을 상상해보곤 하죠. 수원과 만날 때엔 보란 듯이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습니다. 지는 것은 정말 싫으니까요. 경기가 없는 날이면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과도 우연히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퇴 후에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지금 그가 꾸는 꿈입니다. 그리고 숨 쉬며 달리는 이 시간동안만큼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꿈들입니다.

그 목록 속 하나의 꿈이 이뤄지면 또 하나의 꿈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겠지요. 그렇게 조금씩 자라며 축구선수 이상협이 되는 것이겠지요.

앞으로도 그의 꿈이 영원하길 바랍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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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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