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황재원 선수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주소를 알려달라더군요. 그때 짐작했죠. 아, 이사람.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라고요.  

황재원 선수가 12월 12일 12시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잊지 않고 결혼식에 초대하여 주던 그 마음씨가 참 고마웠어요. 꼭 와서 축하해달라던 문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고요.



제가 황재원 선수를 처음 만난 건 2007년입니다. 파리야스 매직으로 끝났던 당시 홍대에서 포항 4인방을 인터뷰하기로 했죠. 황진성, 정성룡, 박원재, 황재원 이렇게 4명을 직접 만나 포항의 우승 4인방에게서 우승 뒷 이야기를 듣기로 하였죠.

한데 전날 황재원 선수에게서 전화가 오더군요.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셔서 병원에 계시는데 디스크 수술을 받아야할 것 같다고, 그래서 병실을 지켜야하겠다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인터뷰 장소에 못나갈 것 같다 하였고, 그가 빠짐으로서 인터뷰 기획부터 컨셉, 질문, 사진촬영 시안까지 다시 짜야했지만 저는 알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아프시다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제 휴가를 받아 겨우 효자 노릇하려고 하는데 무리하게 그것과 상관없이 기사를 쓰고 싶다며 제 직업적 욕심을 부릴 수는 없겠더군요. 어머니의 빠른 쾌유를 빌게요, 가 제 마지막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봄. 포항의 AFC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홈경기 때 취재 차 포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야간경기를 마치고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서울로 가려 했는데 마침 R리그 경기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송라에 있는 포항 클럽하우스 구경도 할 겸, 또 오랜만에 R리그 경기도 볼 겸 하여 클럽하우스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재원 선수를 만나게 되었죠. 가까이서 얼굴 보며 인사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인사를 하자마자 대뜸 물어봤지요. 제가 누군지 아냐고요. 모른다는 대답이 나올 건 분명했고요 그럼 확실하게 기억하게 만들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물어봤는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저를 알더군요.

“목소리 들으니까 딱 알겠는데요”하며 웃는 황재원 선수.

사실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가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포항 우승의 주역 중 하나였던 황재원 선수는 이듬해 1월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탑승하며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다는 영광까지 누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동아시아대회를 준비하던 중 사건이 터졌습니다. 헤어진 연인과의 문제였죠.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옛 연인이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성토의 글을 올렸고 이것이 뉴스가 되어 언론의 도마 위에 올라갔고 축구팬들의 비난이 이어졌고 그는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상 때문에 귀국한 것이라는 대표팀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선수들의 사생활에도 엄격한 잣대를 내리는 허정무 감독의 의중도 있었을 것이라는 ‘설’도 오갔죠.

그리고 옛 여자친구의 눈물의 기자회견.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진실은 아니었다는 거... 이것 역시 지금에 와서 쓸 수는 없었지만 황재원 선수가 짊어지고 가야할 책임도 있었으나 반대급부로 피해 역시 안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죠. 애정사는 연인들 본인만 아는 이야기라고요. 황재원 선수도 친한 기자들에게 해명하고 싶다고, 억울한 이야기를 조금은 들어달라고 연락을 해왔는데 이게 또 퍼져 각 언론사 기자들은 그날 만나기로 한 호텔에 다 모이고 말았습니다.

호텔에서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었건만 방송사 카메라까지 등장하였고요. 결국 카메라 없이 조용한 방에 기자들이 입회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으나 너무 많은 기자들이 왔던 관계로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라는 사죄의 멘트만 남기고 황재원 선수는 떠났습니다.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였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읊조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마음이 아프더군요.

황재원 선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남자가 되어버렸지만 내막을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저 사람이 저렇게 뉴스 속 범죄자처럼 고개를 숙인 채 있어야할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그날 저녁 황재원 선수와 전화로 오랜 시간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던 건 그는 저와 얼굴 한번 본적도 없는 사이였는데 전화로 깊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었고요 나중에 해명기사가 나와도 선수에게 좋을 것이 크게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가슴에다 묻어두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때 그 긴 통화 덕분에 황재원 선수는 제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포항은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였고 역시나 황재원 선수는 주장으로서 꽤나 멋진 플레이를 선보이며 우리 앞에 다시 멋진 선수로 나타나주었고 지난해에는 K리그 수비부분 베스트 플레이어로도 뽑혔죠.

작년 여름 버스에 내리자마자 저를 보며 물 좋은 곳에서 일하니 더 예뻐진 거 같다며 웃으며 인사해주던 그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정말 마음 고생 안하고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저도 웃으며 화답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작년 강원과 포항과의 리그 경기 중 윤준하 선수에게 넣은 태클로 PK를 내줬을 때도 최순호 감독님 잘하시라고 일부러 PK까지 준 건데, 하며 농담까지 할 정도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K리그 시상식을 앞두고 기자단에게 전달 된 투표용지에서 발견한 그의 이름. 올해에도 황재원 선수는 수비 부분 베스트플레이어로 이름을 올렸더군요. ^^ 제 눈을 사로잡았던 그 수비력이 여전히 빛나고 있음이 참으로 제 일처럼 흐뭇했고 또 기뻤습니다.

K리그에서 이름을 알린 선수라면, 더구나 팀의 중심 선수라면, 결혼소식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기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게 됩니다. 그러나 황재원 선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난 날의 아픈 과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자로서, 또 축구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빛나는 인생을 다시금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조광래호 아시안컵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국가대표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고요. 다음달에 열리게 될 아시안컵에 선발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신혼여행도 포기한 채 그는 어제부터 제주도에서 시작된 훈련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K리그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을만큼 멋진 플레이를 선보인 수비수들은 지극히 적습니다. 그래서 더 저는 황재원 선수에게 시선이 가고 관심을 쏟게 되고 그의 내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수비수니까 결혼식에 꼭 가서 축하해줄게요.

그의 결혼식 청첩을 받고 제가 했던 말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저는 그에게 앞선 말을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수비수니까, 라고요.

내년 아시안컵에서는 그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대표팀 울렁증도 날려버린 채, 리그에서 보여줬던 빛나는 모습을 온전히 그라운드에서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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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서동현은 지난 9월 10일 전북과의 원정경기에서 김영후의 도움으로 이적 후 2호골을 터뜨리며 완벽하게 강원FC에 녹아내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투톱으로 함께 뛰던 김영후와의 조합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사실 그날은 비가 계속해서 내렸고 '레인메이커'라는 서동현의 별명이 생각났던 밤이었습니다. 특히나 비가 오면 특히 더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기에 내심 서동현의 골을 기대하기도 했어요. 역시나, 강원의 레인메이커는 비만 만들지 않았죠. 멋진 골도 만들어냈습니다. ^^


3-1로 이겼던 아름다운 밤. 골을 터뜨린 서동현에게는 더욱 특별했던 밤이었겠죠. 그리고 2호골을 터뜨리도록 도와준 김영후에게 고마움을 표한 밤이기도 했고요. 팀 동료로 함께 뛰는 이상 항상 김영후에게 고마워할 서동현이겠지만 그래도 딱 한번 얄미웠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서동현과의 인터뷰 도중 알게 된 재미난 사실을 공개해드릴게요.

인터뷰 도중 서동현은 “지난 8월 14일 대전전에서 이적 후 첫 골을 터뜨렸어요. 굉장히 기뻤는데 슬프게도 1호 퇴장이 그보다 더 이슈가 되었네요”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죠. 서동현은“당시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 뿐 아니라 팬들에게까지 미안했습니다. 락커룸에서도 안절부절 못했는데 (김)영후 형의 프리킥 결승골 덕분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갈 수 있었어요. 페어플레이를 중요시하는 강원의 선수로 뛰는 만큼 앞으로는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라고 다짐했지요.

한데 서동현의 재미난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서동현은 인터뷰 도중 투톱 파트너로 활약 중인 김영후에게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는데요,“퇴장 당할 당시 영상을 보니 영후 형은 옆에서 물만 먹고 있던데요?”라며 “다음날 다들 나를 위해, 심지어 코치님까지 나서 변호해주고 있었는데 ‘형은 그 상황에서 물이 먹히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너 몫까지 뛸 생각에 힘이 들어 물을 마셨다’며 째려보더라고요”라며 웃었습니다.

이어 서동현은 “이적 후 첫 골을 넣고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해 나르샤가 멤버로 활동 중인 브아걸의 시건방춤을 추었는데, 다들 예쁘게 봐줘서 고마웠어요”라며 “팬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홈에서는 2호 세레모니를 보여줄 예정이에요. 제 세레모니를 통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즐겁게 돌아갔으면 좋겠어요”라는 바람도 드러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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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와 전북현대와의 K-리그 21라운드 경기가 열렸던 전주월드컵경기장. 많은 분들은 전북의 홈에서의 가뿐한 승리를 예상했죠. 6강 플레이오프 진입이 사실상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전북과 아직 중하위권에 링크된 2살박이 강원과의 대결이었기 때문이죠.


경기 시작 전 배포된 출전선수 명단에는 조금 놀라웠습니다. 지금까지 리그경기마다 선발로 선발됐던 유현 골키퍼 대신 리그 출장기록이 고작 2경기에 불과한 초보 골키퍼 김근배가 나왔습니다. 미드필더에서는 중국 국가대표 리춘유 대신 권순형이 나왔고요. 이을용은 부상에서 회복한 복귀전이었습니다.


에닝요, 루이스, 이동국, 김형범, 로브렉 등 쟁쟁한 선수들로 가득찬 전북은 아무래도 골리앗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강원FC 선수들은 다윗 같은 강건함이 있었습니다. 전반 15분 김영후의 패스를 받은 정경호가 친정팀을 상대로 첫골을 뽑아냈고 전반 41분 다시 한번 김영후의 패스를 받은 서동현이 팀 2번째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서동현의 경우 이적 후 2호골이었고 성공적으로 강원FC에 녹아내린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강원FC의 공격은 후반들어서도 매섭게 계속됐고 후반 13분 김영후가 다시한번 정경호를 도왔고 정경호는 팀 3번째 골을 성공시킴과 동시에 멀티골을 올리며 친정팀에 뼈아픈 패배의 맛을 보게 했죠. 후반 42분 이요한의 만회골이 터졌으나 3-1. 전북에게는 시간이 부족했고 강원FC는 지난해 7월 이곳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5-2로 이겼던 기쁨을 다시 한번 재연했습니다.


무승부와 패배의 갈림길 속에서 오랜만에 원정에서 강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기에 참으로 달콤했던, 그리고 아름다웠던 밤이었습니다. 그래서 축구는 공이 굴러갈 때까지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가 봅니다. 


입장하는 선수들.

정경호의 첫번째 골.

기뻐하는 주장.

동료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패스의 달인 권순형.

이날 경기의 수훈갑 정경호.

도움을 준 김영후와의 포옹.

라피치와도 함께.

이을용의 지시를 받으며.

나르샤의 열띤 응원.

멋졌던 나르샤.

정경호와 김영후의 시너지 효과!

이날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된 정경호.

이렇게 좋아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 ^^

팬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첫번째 골이 들어가던 순간의 장면.

질주본능 김영후.

김영후의 포효.

서동현의 팀 2번째 골.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르샤. ^^

영후, 동현 모두 수고했어!

이을용에게도 수고했다고 말씀하신 김원동 사장.

팬들에게 감사인사 중인 강원FC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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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박원재.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 K-리그에서부터였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원과의 플레이오프전이었죠. 당시 그는 수원 홈에서 따바레즈의 프리킥을 헤딩골로 연결하며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끌었습니다. 결승골이었죠.

이어 그는 바로 열린 성남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연속골을 뿜어내며 단번에 자신의 이름을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아보지 못한 '중고 신인'은 그렇게 챔피언결정전을 통해 진정 ‘스타’로 거듭났습니다.



“청소년대표팀이요?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었어요. 고교선발에도 안 뽑혔는걸요. 전 팀에서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다른 잘하는 선수들 뽑혀 가는 거 구경만 하던 평범한 선수였죠.”


그렇지만 그는 늘 꿈꿨습니다. 포항스틸러스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볼을 줍던 어린 볼보이는 언젠가는 K-리거가 되겠다고, 그리하여 왼쪽 가슴엔 기필코 태극마크를 달겠다고 말이죠.


“파리아스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원재 자리에서(왼쪽 미드필더) 원재 만한 기술 가진 선수는 없다고요. 제가 처음 포항에 왔을 때 제일 눈에 들어온 선수가 바로 원재에요. 제가 경기(에 공격수로) 나설 때면 항상 왼쪽에 서요. 원재랑 하고 싶어서요. 원재만큼 체력 좋고 발재간 있고 또 성실한 선수도 드물어요. 사람이 잘하다보면 건방져질 수 있는데 워낙 착한 아이니까 앞으로도 성실함을 잃지 않을 거라고 봐요. 조만간 국가대표로도 뽑히고 ‘왼쪽 미드필더’하면 누구나 ‘박원재’를 떠올릴 그런 날이 올 거예요.” (포항스틸러스 팀 동료 이광재)


이광재 선수의 말처럼 박원재 선수는 해가 바뀌자마자 닻을 올린 허정무호에 탑승하며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 선수가 됐습니다. 지난 1월 30일 칠레와의 평가전에서는 A매치 데뷔전도 치렀고요. 좀처럼 공격의 활력을 보이지 못했던 대표팀은 박원재 선수의 투입 이후, 왼쪽 측면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던 박 선수 덕분에 -비록 대표팀 선수들은 여전히 득점엔 실패했지만- 마지막까지 칠레 문전 앞을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박원재 선수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경기는 충분히 가치있던 경기였죠. (후에 경기를 관람했던 신태용 선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 날씨 때문에 몸이 덜풀린 공격진 중에서 제 몫을 했던 선수는 염기훈 선수와 박원재 선수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오늘 열린 2010월드컵 아시아예선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는 후반 40분 조용형 선수 대신 투입돼 약 8분가량 왼쪽 날개로 뛰었습니다. 비록 출전 시간은 짧았지만 갓 A매치 데뷔전을 치른 햇병아리 선수에겐 소중한 경험이 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박원재 선수가 투입될 당시 관중석과 기자석에서는 잠깐 웃음보가 터졌답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박지성 선수도 뛰었는데요, 박지성 선수와 흡사한 외모를 지닌 탓에 ‘박지성 동생’ 혹은 ‘3초 박지성’으로 불린 박원재 선수도 함께 뛰게 됐으니 재밌을 수밖에요.






“한번은 월포에 다 같이 운동하러 갔는데 어떤 꼬마 저를 보고 ‘박지성이다!’ 딱 그러는 거예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그 아이 아버지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박지성 아니야. 가짜야.’ (웃음) 또 한 번은 홈경기 때, 아마 수원전이었을 거예요. 다쳐서 뛰지 못하는 바람에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를 봤거든요. 그런데 앞에 앉아있던 꼬마 2명이 경기 내내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는 거예요. 전반전 끝나고 나선 자기들끼리 ‘박지성 맞지?’ ‘박지성인 거 같은데?’ 그러더라고요.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아줌마도 궁금했나봐요. 못 참겠다며 저한테 박지성 아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말했죠. '지성이 형은 지금 영국에 있는데요. 전 박지성이 아니라 박원재에요.' (오)범석이도 대표팀 다녀올 때마다 매번 그랬어요. 정말 똑같이 생겼다고요. 나중에 사진 한번 같이 찍어보라고 하던 걸요. 그렇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때만 해도 박원재 선수는 K-리그 선수였기 때문에 박지성 선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답니다. 그러나 드디어 국가대표팀에 승선하고 말았네요. 그 덕분에 박지성 선수와 함께 훈련을 받게 됐고 이렇게 게임까지 뛰게 됐고요. 그리고 언론과 팬들은 형제처럼 닮은 외모를 지적하며 관심을 기울이고 있죠.


개인적으로 박지성 선수를 닮았다는 이유로 박원재 선수가 조명을 받고 있는 상황을 저는 좋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끈기와 성실로 똘똘 뭉친 선수고 그 때문에 피치 위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닙니다. 백패스와 횡패스를 지양하며 그 때문에 공격지향적인 플레이를 선보이지만 수비 가담 시에도 역시 적극적이죠.


이처럼 수많은 장점을 가진 좋은 선수이기 때문에 저는 박지성 선수를 닮은 그의 외모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박지성 선수의 외모만 닮은 평범한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죠. 언젠가는 ‘박원재’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승부를 거는, 그리하여 ‘박원재’라는 그 이름 자체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겠죠. K-리거의 꿈은 그렇게 영그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스타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겠고요. 다시금 새로운 별을 꿈꾸렵니다. 박원재 선수, 부디 당신이 그 주인공이 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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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7 삼성하우젠 K-리그 우승팀은 ‘전통의 명가’ 포항 스틸러스에게 돌아갔습니다.

11월 11일 성남 탄천운동장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포항은 전반 43분 터진 죠네스의 선제골을 잘 지켜 2연승(1차전 3대 0 포항 승)으로 너무나 쉽게 2007 시즌 K-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요.


이번 포항의 우승은 여러모로 인상 깊습니다. 우선은 리그 5위 팀이 '6강 플레이오프 제도' 덕분에 경남, 울산, 수원을 연거푸 제압하며 결국엔 우승했다는 사실이 가장 눈에 띕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포항의 우승이 더욱 주목을 끄는 이유는 바로 ‘축구는 이름값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참’임을 다시 한 번 증명시켜줬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비록 1차전에서 장학영 선수에게 한 골을 허용했지만 골키퍼 정성룡 선수는 특유의 침착함으로 마지막까지 포항의 골문을 지켜냈습니다. 청소년대표 시절 한 살 어린 차기석 선수에게 밀리며 2인자의 설움을 겪어야만 했지만 그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묵묵히 이겨냈지요. 결국 정성룡 선수는 이번 챔피언결승전에서 포항을 우승으로 이끌며 ‘진정한 1인자’로 빛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가 대단하게만 보이는군요.

박원재 선수 역시 그렇습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포항 스틸러스가 배출한 또 다른 스타지요. 수원과의 플레이오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끈 그는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연속골을 뿜어내며 단번에 자신의 이름을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아보지 못한 ‘중고 신인’이 챔피언결정전을 통해 ‘스타’로 거듭났습니다. 또 하나의 신데렐라 역사를 쓴 그 모습이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네요. 


최효진 선수도 빼놓을 수 없겠죠.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그때, 그는 울산에게 우승컵을 내주며 굵은 눈물방울을 잔디 위로 쏟아내야만 했지요. 당시 이를 보다 못한 장외룡 감독이 직접 나서 그를 달래줘야만 했을 정도로 그는 참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아픔은 결국 오늘의 기쁨으로 승화됐습니다. 올 시즌 포항으로 이적하며 오범석 선수에게 밀려 벤치 설움도 겪었지만 그는 결국 주전 자리를 꿰차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네요. 그 모습에 대견하다는 생각만 연신 드는군요.  


이광재 선수는 또 어떻고요. 경남과의 6강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기분 좋은 조짐을 보였던 그는 이어 펼쳐진 울산전과 성남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역시 골을 기록하며 ‘특급 조커’로서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줬습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가봅니다.


그러고 보니 포항 수비의 핵 조성환 선수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한때 ‘김호의 아이들’ 중 하나로 총망 받는 미래를 보장받는 듯 했지만 포항 이적 후 잠시 잊혀진 존재가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지난겨울 진행했던 루마니아 리그 진출이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중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많은 우려의 눈으로 그를 지켜봤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역시 프로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플레이로 포항의 수비를 책임졌으니까요.  그의 노고 역시 칭찬하지 않을 수 없겠죠.   


‘돌아온 스트라이커’ 고기구 선수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지난 해 포항은 이동국 선수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최전방 공격수의 부재를 걱정해야만 했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9골3도움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이동국 선수의 자리를 확실히 메운 고기구 선수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올 시즌 개막전이었던 3월 4일 인천전에서 첫 골을 기록한 이후 10월 10일 울산전까지 그는 연이은 골 침묵 속에서 괴로워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문에 경남, 울산, 수원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중용되지 못하는 결과와 만나야만 했고요. 그러나 성남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파리아스 감독은 그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고기구 선수는 그 믿음에 보답했지요. 성남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보여준 그의 골은 정말 멋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장 투혼을 불사른 K-리그 17년 차 김기동 선수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번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마지막으로 필드 플레이어로서는 최다출장(426경기)인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만약 그만의 지독한 ‘자기 관리’가 없었다면 우승컵을 드는 오늘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7년 만에 손에 든 우승컵, 그 뒤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뒤에 얻은 승리가 있었습니다. 진정한 승자가 된 그에게 존경의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이로서 2007 K-리그도 끝이 났습니다. 2007 시즌 일정표가 나오길 기다렸던 지난겨울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참 빠르기도 하지요. 어느새 다음주에는 신인 선수 드래프트 일정까지 잡혀있고요. 내년에는 또 어떤 선수들이 등장하여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할까요?  그 생각만으로도 제 마음은 어느새 내년 봄을 꿈꾸며 빠르게 뛰기 시작하네요.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에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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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